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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네시아의 음악 문화를 설명하는 문서.2. 전통음악
2.1. 가믈란(카라위탄)
전통음악으로 가믈란(Gamelan)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있다. 가믈란은 원래 인도네시아어로 '타악기 모음'이라는 뜻으로, 음악 장르로서는 징, 실로폰, 북 같은 타악기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연주 형식을 가리키며, 중동부 자바, 발리, 순다 지역에서 제각기 독특하게 발전했다. 인도네시아가 불교, 힌두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연주되어 온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형태를 갖춘 건 마자파힛 제국 때의 일이고, 오늘날에도 명절이나 종교 행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한다. 심지어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사곡으로 가믈란을 연주하기도 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방송에서 심심하면 가믈란을 틀어주고, 이것만 틀어주는 라디오도 있을 만큼 인기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현지의 음악대학 학과 명칭 등 자바어권에서 보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자바의 전통 예술 음악 및 그 공연 양식'을 가리킬 때는 '가믈란' 대신 '카라위탄'(Karawitan, ꦏꦫꦮꦶꦠꦤ꧀) 내지 '카라위탄 예술'(Seni Karawit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카라위탄'은 '정교하다', '매끄럽다'라는 뜻의 자바어 형용사 '라윗'(rawit)에 자바어 양분접사 'ka- -an'을 붙여 만든 파생어이며, 이 '라윗'은 가믈란 예술이 추구하는 이상을 요약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경지에 이른 가믈란 음악가를 가리킬 때 '라윗'의 다른 파생어인 '팡라윗'(pangrawit, '라윗에 다다른 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카라위탄'은 사실상 '가믈란 음악'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다르며, 카라위탄이 지니는 추상적 음악성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가믈란 악기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가믈란 편성에 사용되는 실물 악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크론총이나 크론총의 파생 장르들, 또는 서양과 중국의 외래 요소가 섞인 가믈란의 파생 장르 감방 크로몽(Gambang Kromong) 등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가믈란 음악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가믈란 편성법은 크게 (중부) 자바계 가믈란 편성, 발리계 가믈란 편성, 순다계 가믈란 편성, 치르본계 가믈란 편성으로 분류한다. 자바계 가믈란 편성은 가믈란 욕야카르타, 가믈란 수라카르타 등의 근세 궁정 가믈란과 캐주얼하게 연주되는 가믈란 시트란(Gamelan Siteran), 가벼운 악기로 편성하는 가믈란 가돈(Gamelan Gadhon), 스카텐(Sekaten) 축제에서 연주되는 가믈란 스카텐(Gamelan Sekaten), 기원후 4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고 가믈란 편성 뭉강(Munggang) 등으로 나뉜다. 발리계, 순다계, 치르본계 가믈란 편성도 다양한 양식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가믈란에서 사용하는 음계는 기본적으로 슬렌드로 5음계(Slendro)와 펠록 7음계(Pelog)로 나뉜다. 대략 서구식으로 옮기면 슬렌드로는 [도/레/파/솔/라], 펠록은 [레/미♭/파/솔#/라/시♭/도] 음을 사용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옮김이며 각 음 간의 진동수 비율은 서구 음계에서의 비율과 조금씩 다르다. 한편 가믈란 편성을 이루는 여러 악기마다 각각 음정이 조금씩 다르며, 이에 따라 화음이나 선율의 개념도 서구 음악의 그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가믈란 음정의 표준화를 지지하는 음악가는 서구식으로 악기들이 정확한 공통 음정을 따르도록 작곡하기도 한다.
각 지방의 전통에 따라 슬렌드로와 펠록 음계의 각 음을 부르는 자바어, 발리어, 순다어 고유 명칭이 존재하는데, 자바식의 예를 들면 위의 슬렌드로 5음계는 자바어로 [panunggal/gulu/dhadha/lima/nem], 펠록 7음계는 [bem/gulu/dhadha/papat/lima/nem/barang]으로 부르며 앞의 세 단어는 공히 머리/목/가슴을 뜻하고, 다음 두/세 단어는 숫자, barang은 '것'이라는 별 뜻 없는 단어다. 슬렌드로와 펠록 음계는 순서대로 1/2/3/5/6, 1/2/3/4/5/6/7의 숫자에 대응하는데(명칭상으로도 papat=4, lima=5, nem=6), 각 음에 대응하는 숫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죽 쓰고, 숫자가 나타내는 음표의 상하좌우에 점과 선으로 장단, 쉼표 등을 표시하면 가믈란 악보가 된다. 이것을 크파티한 표기법(Kepatihan)이라고 한다. 순다식 음계는 배열 순서가 자바식과 반대이고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네덜란드 지배기에 유럽에도 알려져서 특히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가믈란을 좋아했다고 한다. 레오폴드 고도프스키는 아시아 대륙으로 순회 연주 여행을 다니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서 들은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바 모음곡(Java Suite)을 작곡했는데 이 모음곡집의 제1번이 바로 가믈란이다. 현대에도 가믈란을 공부하거나 직접 자신의 곡에 반영한 서구 음악가들은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미국에서만 존 케이지, 루 해리슨, 그리고 필립 글래스와 스티브 라이히를 비롯한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가믈란 들어보기. 발리섬의 가믈란으로, 다양한 악기가 서로 다른 장단으로 연주하고, 똑같은 징도 서로 다르게 조율되어 엇박과 간섭효과를 이용해 화려한 음악을 만든다.
2.1.1. 현대 가믈란
가믈란 음악은 전통 시대의 음악적 유산으로 그치지 않으며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와 현대에도 정체되지 않고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19세기의 발전으로 주요한 것은 독자적인 악보 표기법의 고안이었다. 가믈란 악보는 식민지 시대인 19세기에 유럽 악보의 영향으로 수라카르타와 욕야카르타의 귀족들이 처음 고안하였는데, 처음에는 음의 높낮이를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묘사하였고 그 방식에서 수라카르타식과 욕야카르타식이 나뉘었으나 1900년 전후 수라카르타에서 보다 적기 편한 오늘날과 같은 상술한 숫자 표기가 개발되어 정착되었다. 이에 기반해 19세기 말부터 '가믈란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가믈란 음악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전반의 고전적인 가믈란 작곡가로는 와시토디닝랏(K. R. T. Wasitodiningrat, 1909–2007), 마르토팡라윗(R. L. Martopangrawit, 1914–1986) 등이 있다.동시대 가믈란 작곡가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나노 수라트노(Nano Suratno, 1944–2010), 수보노(Blacius Subono, 1954–), 요하네스 수보워(Yohanes Subowo, 1960–), 마데 수반디(I Made Subandi, 1966–) 등은 현대의 인습타파적이며 실험적인 가믈란 작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는 서양 악기나 전자 키보드, 신디사이저 등 전자 음악을 도입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1] 수탄토(Sutanto, 1954–), 와얀 사드라(I Wayan Sadra, 1954–2011) 등은 여러 전위적 극작가, 안무가 들과 협업하였다. 알고리즘적 작곡 기법과 폭넓은 음향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 클래식의 맥락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다루는 파트릭 하르토노(Patrick Hartono, 1988–) 같은 예술가도 있다.
한편,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가믈란이 예술 음악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가믈란은 대중음악 영역에서도 가볍게는 라운지 음악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크론총, 당둣, 팝, 록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도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거듭 이루어져 왔다. 대중음악 장르와 가믈란을 섞을 때는 주로 해당 장르를 주로 해서 가믈란적 요소를 종으로 가져와서 혼합하는 경우가 많고, 자세한 사항은 각 장르에서 다룰 일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2.2. 크론총
16세기에 동남아시아에 도달한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포르투갈의 브라기냐(braguinha) 기타가 말레이 반도 및 말루쿠 제도 지역에 전해졌고, 이것이 우쿨렐레처럼 발전하고[2] 인도네시아 지역 전반에서 토착 음악에 흡수되어 크론총(keroncong)이라는 악기가 되었다.크론총을 중심으로 하는 오래된 대중음악 합주 양식도 크론총이라고 불리는데, 편성은 크론총 연주자와 가수 한 명이 기본이며 경우에 따라 플루트, 타악기, 바이올린, 첼로, 통기타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첼로 연주는 주로 피치카토 주법으로 한다.
크론총 역시 가믈란처럼 계속 발전했는데, 20세기 전반과 독립 직후에는 쿠스비니(Kusbini, 1910–1991), 그상 마르토하르토노(Gesang Martohartono, 1917–2010), 켈리 푸스피토(Kelly Puspito, 1930–2009) 등의 뮤지션이 크론총의 발전을 주도했다. 특히 1950년대는 크론총의 황금기로서, 크론총이 라디오 방송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수많은 뮤지션들이 크론총 씬에서 경쟁을 벌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모던 크론총 시대(Masa keroncong modern, 1960–2000)에는 자바식 가믈란 또는 당둣과의 퓨전이 돋보였는데, 이는 가믈란, 크론총, 당둣이 혼합된 혼성 장르 '참푸르사리'(Campursari)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참푸르사리 아티스트로는 만트하우스(Manthous), 디디 큼폿(Didi Kempot)을 비롯하여 소이마 판차와티(Soimah Pancawati), 착 디킨(Cak Diqin) 등이 있다.
21세기의 컨템퍼러리 크론총은 대중음악 장르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으며, 전 시대의 참푸르사리에서 보여줬던 장르 간 혼성의 가능성을 팝, 록 음악, 힙합 등 다른 대중음악 장르나 심지어 인도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활발히 탐색하고 있다. 본단 프라코소(Bondan Prakoso, 1984–) 같은 뮤지션이나 나다픽시(Nadafiksi) 등의 그룹이 유명하다. 나다픽시는 크론총과 힌두스탄 음악(또는 인디언 퓨전), 체임버 팝 등의 요소를 혼합하여 독특하고 장려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데, 이하에 앨범 "Teorema"를 소개한다.
3. 현대 대중음악
인도 팝(Indo pop)으로 불리는 대중음악은 전통이 길고 수준도 높다.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인구에서 나오는 독보적인 시장규모로 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다양하고 수준 높은 대중음악을 생산하는 국가이다. 록, 헤비메탈, 일렉트로니카 등 웬만한 분야에서는 풍부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다만 아직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새로운 장르를 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크론총 등 전통 장르와 재즈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는 대체로 1950년대부터로 간주되나, 실제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독자적으로 번성한 것은 이하의 당둣이 나온 1970년대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고품질의 대중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7년작 뮤지컬 영화 세 소녀(Tiga Dara)의 사운드트랙이 좋은 사례이다.
이처럼 영화 사운드트랙의 질이 높은 편이라, 1977년 공개된 Badai Pasti Berlalu (The Storm Will Surely Pass) 사운드트랙[3]은 인도네시아 롤링 스톤에서 뽑은 자국 앨범 베스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공개 당시 엄청난 히트를 쳤다고.
3.1. 당둣
현대에 생겨난 인도네시아 고유의 대중음악 장르로서, 한국의 트로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당둣(dangdut)이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당둣은 자바, 말레이 고유의 음악 전통에 인도 음악 및 약간의 아랍 음악 스타일이 융합되어 1970년대에 탄생한 장르이며, 1980–199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 민중가요로 전유되기도 했다. 90년대에 인기의 정점을 찍고 내려와서 현재는 주로 중장년층에 의해 향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당둣의 제왕' 로마 이라마(Rhoma Irama)가 있다.당둣은 인도네시아 대중 음악의 주류로 오랜 역사를 이어가며 다양한 장르로 세분화되어 발전하였다. 동부 및 중부 자바의 코플로(koplo, dangdut koplo), 서부 자바의 람팍(dangdut rampak) 등 지역별로 각종 음악 장르가 클래식 당둣에 접목된 다양한 당둣 장르가 발달하였고, 퓨전 장르인 당둣 하우스(dangdut house, 펑키 코타와 함께 1990년대에 발달) 등도 생겨났다.
3.1.1. 클래식 당둣
1970년대의 클래식 당둣은 수카르노 시대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풍미한 들리 믈라유 음악(musik Melayu Deli)[4] 내지 이라마 믈라유(irama Melayu, '믈라유 곡조') 장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라마 믈라유 밴드는 '믈라유 오케스트라'(Orkes Melayu, OM)라고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일부 당둣 밴드는 OM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가 있다. 재즈로 치면 래그타임 같은 것인데, 여기에 크론총과 크론총의 파생 장르들, 그리고 당대의 인도 음악, 아랍 음악, 록 음악 등이 혼합되어 마침내 1970년대에 탄생한 것이 클래식 당둣이다.클래식 당둣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앞서 언급한 로마 이라마가 있다. 로마 이라마는 1960년대 말부터 이미 이라마 믈라유 씬에서 주류로 활동하던 아티스트로, 1970년대 초에 이라마 믈라유 스타일을 변주하면서 당둣으로 넘어갔다. 1970년대 전반부터 로마 이라마는 특히 당시 인도네시아에 유입된 록 음악의 영향을 받아 록과 근접한 당둣으로 인기를 끌었다. 로마 이라마는 1990년대까지도 당둣의 정상에서 '당둣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전형적인 클래식 당둣을 보여주는 곡으로 로마 이라마의 'Begadang'(1973)를 꼽을 수 있다. (#, 로마 이라마 공식 유튜브)
클래식 당둣의 인기는 크론총 등 타 장르와 당둣이 융합된 참푸르사리(campursari) 내지 총둣(congdut)이 주목받은 1990년대부터 다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코플로(이하 절에서 서술)가 나온 2000년대부터 클래식 당둣은 당둣 씬의 주류에서는 밀려났지만, 1970년대의 고전적인 인기곡은 여전히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친숙하다.
197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당둣 뮤지션으로는 로마 이라마 외에는 A. 라픽(A. Rafiq)과 엘비 수카에시(Elvy Sukaesih)가 꼽힌다. A. 라픽 역시 록 스타일의 당둣을 했는데, '인도네시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이명도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도 클래식 당둣의 발전은 지속되었다. 1980년대의 주요 아티스트로는 리타 수기아르토(Rita Sugiarto), 만슈르 S.(Mansyur S.), 에비 타말라(Evie Tamala) 정도를 꼽을 수 있다.
3.1.2. 코플로
동부와 중부 자바에서 2000년대에 발달한 코플로는 빠르고 춤추기 적합한 타악기 비트를 특징으로 하는데, 동부 자바의 빠르고 반복적인 큰당(kendang, 자바 전통 북) 비트를 클래식 당둣에 접목해서 타악기 리듬을 극대화하고 당둣 곡에 다양한 싱커페이션을 삽입하는 실험을 거쳐 탄생하였다. 코플로는 발전하면서 브레이크비트, 댄스 팝, 일렉트로 하우스, 유로비트, 레게 등의 특징도 선택적으로 흡수하였다.싱커페이션은 음악적으로 빠른 타악기 비트와 함께 코플로의 핵심이다. 오늘날 코플로에서는 곡별로 십수 가지 싱커페이션이 사용되며, 그중 여러 곡에서 쓰이는 유명한 것에는 이름도 붙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코플로 팬들은 여러 코플로 곡에서 사용되는 수십 종류의 싱커페이션을 자연스럽게 외우고 있다.
코플로는 1990년대 당둣의 주류이던 총둣(congdut, 크론총과 당둣이 결합한 당둣 참푸르사리. 코플로보다 전통적인 색채가 강함)을 물리치고, 1990년대에 유행한 댄스 음악의 인기에 일부 힘입어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도로 확산되어 자바에서 당둣의 주류가 되었다. 코플로 곡의 가사나 제목에서도 댄스의 영향은 쉽게 읽을 수 있는데, 흔히 보이는 단어 'goyang'은 '흔들거리다'라는 뜻이다. 코플로 무대에서도 흔히 춤, 간혹 골반을 흔드는 다소 성적인 뉘앙스가 있는 춤이 노래와 동반되며, 아티스트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이전 세대의 클래식 당둣이나 총둣을 즐기던 사람들은 코플로가 등장한 2000년대 초중반에는 코플로를 타락한 신세대의 음악으로 매도하거나 심지어 당둣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이때 전 세대의 전설적 당둣 스타 로마 이라마가 코플로의 확산을 이끈 아티스트 중 하나인 이눌 다라티스타(Inul Daratista)의 춤을 외설로 인기 몰이를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유명한 해프닝도 있었지만, 코플로의 확산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코플로는 2021년 현재까지도, 온갖 음악적 혹평과 교양 없는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koplo' 자체도 원래 '멍청한', '덜떨어진' 정도의 비하어다) 당둣 씬의 주류 장르로 남아 있다.
이눌 다라티스타 외에 2000년대 코플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는 데위 프르식(Dewi Persik), 자스키아 고틱(Zaskia Gotik), 시티 바드리아(Siti Badriah)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의 코플로는 동시대 여러 대중 음악 장르와 혼합되며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코플로가 발달하고 씬이 커짐에 따라, 인도네시아 음악 평론가들은 코플로를 여러 혼합 장르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하위 장르로 세분하기도 한다.
2018년에 유행한 시티 바드리아의 코플로 곡 'Lagi Syantik'은 2021년 1월 2일 현재 유튜브 조회수 6억 2400만 뷰를 넘었다. (#) 그러나 이 곡은 타 장르와 퓨전이 많이 진행된 편으로, 2010년대의 전형적인 코플로로 보기는 어렵다.
2010년대 중반 코플로 스타일에 조금 더 가까운 아티스트로 넬라 하리스마(Nella Kharisma)를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곡으로 'Konco Mesra'(2017, #), 'Jaran Goyang'(2017, #)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2010년대 코플로에서 인기를 끈 아티스트는 비아 발렌(Via Vallen), 치타 치타타(Cita Citata), 해피 아스마라(Happy Asmara), 아유 팅 팅(Ayu Ting Ting)[5] 등이 있다. 워낙 청자 규모가 거대한 장르인 관계로 비교적 마이너한 가수의 유튜브,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조회 수가 백만 단위를 찍는 경우도 흔하다.
3.2. 팝
모카, 화이트 슈즈 앤 더 커플 컴퍼니 같은 한국에도 알려진 유명 밴드나 가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아디티아 소퍈(Adhitia Sofyan) 이나 안드레 하리한도요 앤 소닉 피플(Andre Harihandoyo and Sonic People, AHSP) 등이 무난한 팝 또는 팝 록으로 어느 정도 국제적 인지도가 있다.인도네시아어로 노래하는 아티스트로도 2000년대 이래 아그네스 모(Agnes Mo), 셰일라 온 세븐(Sheila on 7) 등 수많은 팝 뮤지션이 인기를 끌었다. 인도네시아어 팝은 같은 마인어권인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의 음악시장에 큰 영향력이 있어, 말레이시아 팝에서 인도네시아식 표현이 흔히 사용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는 영미권 팝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2000년대부터는 당둣 등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해 완전히 영미식 팝 어법을 따라가는 경우나, 영미식 스타일에 인도네시아적 요소를 넣는 경우 둘 다 흔히 보이고 있다. 당둣 외의 포크 음악 역시 당둣이나 팝과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되어 있다. R&B 역시 꾸준히 사랑받아 온 장르다.
2012년에 'Hanyalah Cinta'로 히트를 치고 서구권 팝 무대로 진출해서 활동하는 앙군(Anggun)도 해외에서 유명하다. 2018년 초에는 'What We Remember'로 인도네시아 출신 여가수로서는 최초로 미국 빌보드 차트 톱10에 진입했다.
2023년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떠오르거나 주목받고 있는 팝/포크/R&B 계열 아티스트로는 나딘 아미자(Nadin Amizah), 이샤나 사라스바티(Isyana Sarasvati), 툴루스(Tulus), 티아라 안디니(Tiara Andini), 아네스 델리시아(Anneth Delliecia), 아루마(Aruma), 파비오 아셰르(Fabio Asher), 사데 수산토(Sade Susanto) 등이 있다. 유라 유니타(Yura Yunita)도 롱런하는 팝 아티스트로 꼽힌다. 이하에 사례로 2022년 연말에 공개된 Aruma의 'Muak'을 소개한다.
3.2.1. 인디
인도네시아 인디 씬은 1970년대부터 구루 집시(Guruh Gipsy), 갓 블레스(God Bless), 슈퍼키드(Superkid), 갱 프강사안(Gang Pegangsaan),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등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많은 아티스트는 록이나 메탈 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1990년대의 인디 록 및 메탈 아티스트는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과감하게 다루는 음악적 저항 정신의 첨병이었다. 이 시기 팝 또는 포크에 가까운 스타일을 취한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는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Pure Saturday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를 덧붙이면, 2000년대 이전까지는 인디 씬을 가리키는 데 '인디(indie)'라는 용어보다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라는 용어가 더 흔히 쓰였다.민주화 이후인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인도네시아 음악계가 서구와 동북아시아 팝 문화를 흡수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영미식 포크나 재즈 또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세련된 스타일로 추구하는 인디 뮤지션이 많이 생겨났다. 동시에 90년대의 저항적 음악 전통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남겼다. 2010년 전후 인도네시아 인디 씬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밴드로 Endah N Rhesa가 있다.
Endah N Rhesa - Silence Island(2013)
2023년 현재 활동하는 젊은 인디 아티스트 또는 그룹 가운데 일부를 들면 Elephant Kind, Reruntuh, Bilal Indrajaya, T. Rucira, Sisitipsi, Barasuara, Grrrl Gang, Fletch, Pusakata, Silampukau, Mr. Sonjaya, Payung Teduh, eńau, Kapal Udara, Joko in Berlin, Fourtwnty, Feel Koplo, Rio Satrio, Phoneme, Danilla, Ardhito Pramono, Sharesprings, Elegi 등이 있다.
eńau - Negara Lucu
Phoneme - Sunya Reda
Sharesprings - Here Comes the Past
80년대 일본 시티 팝, 디스코, 70~80년대 인도네시아 대중음악 등 과거 음악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추구하는 복고풍 인디 아티스트도 일부 있다. Reality Club, Diskoria, Kurosuke, Vira Talisa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Reality Club은 2017년 'Is It the Answer'로 유명해진 후 2022년의 'Anything You Want'가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는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왔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Reality Club - Anything You Want
3.3. 록
인도네시아 록을 상징하는 곡 중 하나인 "Guruh Gipsy"(1976)의 수록곡 'Indonesia Maharddhika[6]'(프로그레시브). 활기 넘치는 도입부(~2:48)와 그 이후의 풍성한 전개부(~8:33)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8:33부터 시작되는 환희에 찬 절정부는 인도네시아 록의 초기, 어쩌면 전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한 페이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오마주를 낳았다.
인도네시아 록은 록 인도(Rock Ind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록은 상술한 크론총 등 장르에서 경험이 축적된 대중음악 씬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1958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1960년대에 본격적인 로큰롤을 시작하고 1960–1970년대를 풍미한 밴드 쿠스 브르사우다라(Koes Bersaudara, 1968년부터는 '쿠스 플루스'Koes Plus로 활동) 등이 활동하여 성립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화 유입에 부정적이었던 수카르노의 집권기에는 록 밴드들이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다. 수하르토 집권기가 시작된 1960년대 중반부터는 급격히 정권이 친서방 성향으로 바뀜에 따라, 록 밴드에 대한 탄압은 정권에 반항적이지 않은 한 사라지거나 완화되었다. 수하르토 시대에는 수카르노 시대에는 수입이 제한되었던 미국 대중문화가 인도네시아로 밀려들어왔고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등 영미 록 아티스트의 곡이 인도네시아에서 큰 유명세를 얻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록도 빠르게 성장하였는데, 1970년대에 이미 "Guruh Gipsy"[7]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이 나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스캘러(Scaller), 루마사킷(Rumahsakit, '병원'), 에펙 루마 카차(Efek Rumah Kaca, '온실효과')[8], 멜랑콜릭 비치(Melancholic Bitch), 몽키 투 밀리어네어(Monkey to Millionaire), 방쿠타만(Bangkutaman) 등의 밴드가 등장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2018년 현재는 주로 얼터너티브 록과 팝 록이 메인스트림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도 자카르타, 반둥, 수라바야 등지에 거대한 인디 씬이 형성되어 있다.
Polka Wars - Mokelé (인디)
Kaveh Kanes - Tiger in Your Tank (얼터너티브/인디)
Murphy Radio - Graduation Song (매스 록)
The Trees and the Wild - Zaman, Zaman ('Zaman'은 '시대', 포스트록)
Negative Lovers - Flooded Eye (사이키델릭/노이즈)
.Feast - Dalam Hitungan (얼터너티브/스토너)
Bedchamber - Out of Line (인디/슈게이즈)
Halimun Triangle - An Ode to the Night (포스트펑크/프로토펑크)
3.4. 재즈
인도네시아에서 재즈 음악의 역사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바타비아에서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컬럼비아 파크 보이즈 클럽(Columbia Park Boys Club)이 공연했던 1919년부터 시작된다. 이 새로운 음악은 동인도의 중산층-상류층 청년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20년에는 마카사르의 판엘딕(W. M. van Eldik)과 루돌프 수프라트만(Wage Rudolf Supratman)[9]이 동인도 최초의 재즈 밴드를 결성하였다. 1922년에는 바타비아에서도 재즈 밴드가 결성되었으며, 20년대에 이미 필리핀이나 미국의 재즈 밴드가 동인도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30년대 찰리 오베르베이크 블룸(Charlie Overbeek Bloem, 1912–2004) 등이 주도하며 널리 인기를 끌던 동인도 재즈는 태평양 전쟁 와중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대일 방비를 위해 젊은 남성을 대대적으로 징집하여 방어태세를 갖추게 함에 따라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는다.[10]1945년 블룸이 일본군 캠프에서 풀려나고 일본군이 물러감에 따라 로컬 재즈 씬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2년간 테디 윌슨의 지도 하에 재즈를 공부하고 돌아와 1950년대부터 활동한 재즈 피아니스트 부비 첸(Bubi Chen, 1938–2012)은 인도네시아 재즈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비록 온전히 인도네시아 작품은 아니지만, 미국 재즈 클라리네티스트 토니 스콧(Tony Scott, 1921–2007, 원래는 비밥으로 유명하다)이 가믈란 음악의 짙은 영향 하에 부비 첸, 잭 레스마나(Jack Lesmana, 기타), 요피 첸(Jopie Chen, 베이스), 베니 무스타파 판디스트(Benny Mustapha van Diest, 드럼) 등의 인도네시아 연주자들과 협업으로 만든 "장에르 발리"(Djanger Bali, 1967)는 전설적인 인도네시아 재즈 초기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11]
70년대의 대중음악 융성에 기반하여 80년대부터는 재즈에도 독창적인 작곡가들이 유입되었으며, 크라카타우(Krakatau) 등의 출중한 밴드가 활동하였다. 2000년대에는 민주화와 더불어 저변이 급격히 넓어졌다. 2005년부터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재즈 페스티벌인 자카르타 국제 자바 재즈 페스티벌(Jakarta International Java Jazz Festival, JJF)이 자카르타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2010년대에는 재즈적 기법을 팝이나 록에 혼합하는 시도도 흔히 나타나고 있다.
2023년 현재 자카르타와 발리 섬 등지에 재즈 씬이 형성되어 있다. 인드라 레스마나(Indra Lesmana) 등이 재즈 가수로 유명하며, 조이 알렉산더(Joey Alexander, 2003-)라는 예명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천재적인 성취로 주목받기도 했다. 롱런하는 재즈 아티스트로 Mondo Gascaro 등이 유명하며, Mocca, Sore, Glenn Fredly 등 많은 아티스트는 재즈를 스타일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또는 대중음악 장르와 융합된, 보컬을 잘 활용하는 퓨전 재즈가 강세를 보인다. Dian Kusuma처럼 보사 노바나 라틴 재즈를 참조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2023년 기준 젊은 아티스트 중에는 Vira Talisa가 이런 스타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재즈는 1950년대 음악, 또는 식민지 시대 음악이라는 이미지도 약간 있어 아예 스윙 재즈 등 당시의 분위기를 상기시키는 복고풍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80~90년대 아티스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고, 요즘도 NonaRia, Deredia 등이 있다.
5Petani - Perjalanan (프리)
Tommy Protomo - Jetlag (스무드, 퓨전)
Dewa Budjana - On the Way Home (퓨전, 에스닉)
3.5. 일렉트로니카
일반적인 일렉트로니카 밴드로서는 반둥 씬 출신의 보틀스모커(Bottlesmoker), 호모제닉(Homogenic) 등이 유명하다. 그 밖에 디파 바루스(Dipha Barus) 등이 일렉 전문 DJ로 유명세가 있다.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이 가미된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하는 아티스트 우왈마사(Uwalmassa), 타라왕사월라스(Tarawangsawelas) 등은 해외에도 약간 인지도가 있다.EDM 분야에서는 하우스(음악)를 마개조한 펑키코타(약칭 펑콧)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BPM부터 늘리고 동남아 특유의 뽕끼를 잔뜩 집어넣어서 하우스의 범주를 이미 벗어난 장르. 그래서인지 은근히 하드코어 테크노 취급받기도 한다. 일본의 J-CORE씬에서는 가끔 이런 계열의 곡을 믹싱하거나 작곡하는 아티스트도 있기 때문. 유튜브에서 indonesian funky kota라고 치면 각종 펑콧 믹스셋을 들을 수 있다.
Jonathan Kusuma - Mordor Disko
Zatua - Sin Existencia
Uwalmassa - Untitled 02
3.6. 메탈
버거킬(Burgerkill), 비사이드(Beside), 다운 포 라이프(Down for Life) 등 메탈코어 밴드들이 유명하다. 2000년대를 풍미한 스토너 메탈 밴드 스링아이(Seringai)처럼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유명한 역사적 밴드도 있었다. 이 외에도 자사드(Jasad), 식사쿠부르(Siksakubur) 등을 필두로 데스 메탈 장르도 잘 발달해 있는데, 2000년대는 스트레이트아웃(Straightout) 등이, 2010년대는 데드스쿼드(DeadSquad) 등이 대중적이었다.메탈 씬에서 인도네시아만의 사운드를 보여주는 밴드로 카린딩 어택(Karinding Attack)도 특기할 만하다.[12] 2024년 기준 히잡을 쓰고 공연하면서 보수적인 사회에 도전하고 여성의 억압을 비판하는 가사를 내세운 여성 3인조 메탈 밴드 보이스 오브 바츠프롯(Voice of Baceprot, baceprot은 '소음'을 뜻하는 순다어)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메탈 밴드가 활동하고 있다.
Burgerkill - Air Mata Api (메탈코어)
Killharmonic - Suppressed Denied Controlled (테크니컬 데스)
Lefty Fish - End Up on the Screen (재즈코어, 아방가르드)
3.7. 힙합
인도네시아 힙합은 90년대에 시작되었다. 붐뱁 스타일로 유명해진 D.P.M.B. 정도가 초기 인도네시아 힙합의 대표 아티스트 격이고, 이 외에도 B.G.N.B.(Boyz Got No Brain), 브군달 클랜(Begundal Clan) 등이 90년대, 00년대 힙합 아티스트로 인지도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힙합 음악은 90년대의 짧은 황금기 이후 그리 빠르게 확산되지는 못했으나 10년대 후반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대중화되어 있다. 아직 록이나 메탈 등 기타 대중음악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야의 다양성은 부족한 편이다. 2016년 Dat $tick 싱글로 전세계를 휩쓴 래퍼 Rich Brian(舊 Rich Chigga)이 인도네시아인이다. 같은 88rising 소속인 가수 NIKI도 인도네시아인이다.기타 대표적인 최신 힙합 아티스트로 Saykoji가 ### 있으며, Fade 2 Black이나 JFlow 등도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유명세가 있다.
2021년에는 Noise from Under라는 래퍼 겸 프로듀서가 Aliquem Alium Internum이라는 뛰어난 데뷔 앨범으로 주목받았다.
3.8. 지방어 음악
자세한 내용은 자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순다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아체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발리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반자르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지방어로도 많이 불리는 당둣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 현대 대중음악의 가사는 인도네시아어 또는 영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자바어, 순다어 등 사용자 수가 많은 언어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지방어 음악을 발달시켜 온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각 언어 문서로 넘겨주기 처리한다.
4. 클래식 음악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대인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유럽인들에 의해 서양 고전음악이 동인도에 전해졌으나, 서양 고전음악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는 식민지 시대에는 설립되지 않았고, 동인도에서 토착민 대상의 음악 교육은 초등교육, 중등교육 과정이나 사범학교 정도에서만 이루어졌다. 따라서 20세기 초 최초로 서구적 의미에서의 '작곡가'로 활동했던 동인도 토착민들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음악 분야에서 공식적인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수다르노토(Sudharnoto, 1925–2000)는 자카르타의 의학대학으로 진학했지만 2학년에 중퇴하고 자바에 체류 중인 유럽인 음악가들에게 음악을 개인교습으로 배워 전업 음악가로 활동하였고, 〈할로 할로 반둥〉(Halo, Halo Bandung) 등의 여러 대중적인 곡을 작곡한 이스마일 마르주키(Ismail Marzuki, 1914–1958)는 네덜란드어로 교육하는 중학교를 다닌 후에는 어떤 분야의 고등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독학으로 십대부터 작곡을 시작해 많은 곡을 썼다. 아미르 파사리부(Amir Pasaribu, 1915–2010), 사리자 니웅(Saridjah Niung, 1908–1993) 등은 반둥의 사범학교 출신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였다. 이 가운데 아미르 파사리부는 꾸준히 자바 체류 중인 유럽인 음악가에게서 음악을 배웠으며, 1936년부터 3년간 도쿄의 무사시노 음악대학(武蔵野音楽大学)에서 유학하면서 음악을 공부했다. 인도네시아 국가의 작곡가 루돌프 수프라트만(Wage Rudolf Supratman, 1903–1938)은 마카사르의 사범학교 출신으로 유럽인 매부 빌럼 판엘딕(Willem van Eldik)에게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다.아미르 파사리부 등 일부를 예외로 하면 정식으로 음악에 대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이론적 배경을 갖춘 작곡가 세대는 독립 이후에야 출현하였는데, 초기 작곡가 가운데는 프랑스로 유학하여 올리비에 메시앙과 앙리 뒤티외 문하에서 음악을 공부한 슬라멧 압둘 슈쿠르(Slamet Abdul Sjukur, 1935–2015)가 독보적이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중세 아랍 음악 연구로 1968년 박사학위를 받은 리베르티 마닉(Liberty Manik, 1924–1993, 작곡가, 음악학자) 등 음악학에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암스테르담 음악원, 파리의 에콜 노르말 음악원,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등에서 공부한 트리수치 카말(Trisutji Kamal, 1936–)은 가믈란 음악과 아랍 음악의 요소를 서양 클래식 전통과 혼합하는 작풍으로 독특한 입지를 차지한다.
다음 세대의 작곡가로는 전자 음악을 폭넓게 사용한 오토 시다르타(Otto Sidharta, 1955–), 인도네시아적 모티브를 활용한 야지드 자민(Yazeed Djamin, 1950–2001) 등이 있다. 동시대에는 아난다 수카를란(Ananda Sukarlan, 1968–, 작곡가, 피아니스트), 수 첸 마르힝(Soe Tjen Marching, 1971–), 토니 프라보워(Tony Prabowo)[13], 이완 구나완(Iwan Gunawan), 나탄 이스칸다르(Nathan Iskandar) 등이 작곡가로서 활동 중이다.
인도네시아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은 가믈란 등 다양한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의 요소를 서양 클래식 음악과 혼합하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전통 음악 가운데 가믈란이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도 있다. 가믈란이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의 대표라는 인식은 부분적으로 가믈란을 서양 작곡가들이 일찍부터 주목한 결과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전통 음악이 (인도네시아 내에서조차) 가믈란에 가려 무시되곤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믈란을 전통 요소 가운데 하나로 상대화하려 노력하는 인도네시아 작곡가들도 있다.[14]
4.1. 제도사
인도네시아에서 서양 고전음악을 가르치는 최초의 음악대학은 1952년에 욕야카르타에 개설된 인도네시아 음악예술학교(Akademi Seni Musik Indonesia, 1984년 욕야카르타 인도네시아 예술대학교로 흡수 통합)였다. 이어 1976년에 자카르타 예술대학교(Institut Kesenian Jakarta)가 설립되었으며, 80년대 이래로는 지역별로도 다양한 음악대학이 설립되었다.식민시대 말에는 아미르 파사리부가 첼리스트로 활동한 바타비아 라디오 오케스트라 등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독립 이후 1970년대의 자카르타 교향악단(Orkes Simponi Jakarta)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향악단도 창설되어 왔다. 최근인 2016년 11월에는 자카르타 시립 교향악단(Jakarta City Philharmonic)이 활동을 시작했다.
5. 여담
일본 아이돌 그룹인 AKB48의 자매 그룹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JKT48[15]이 있다.14년에 새로 당선된 조코위 대통령은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에 뮤직뱅크 자카르타에 참석해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대통령 취임 이후 Creative Economy Agency를 신설하면서 한국의 K-Pop을 본받아 인도네시아에서도 창조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Creative Economy Agency의 청장인 Triawan Munaf가 취임사에서 다시 K-pop에 대해 언급했을 정도.
소녀시대를 참고해서 만든 9인조 걸그룹인 Cherrybelle가 소녀시대의 Kissing You를 Best Friend Forever라는 제목으로 번안을 해서 불러 인도네시아에서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음원 무대
인도네시아에서도 몇몇 리듬게임 음악 작곡가가 활동함을 확인하였다. 펌프 잇 업에서 초고난이도 채보로 등장하는 곡도 있다.[16]
롤링 스톤 지가 발매되던 나라기도 했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자체적으로 베스트 목록도 뽑았을 정도.
음원을 불법 다운로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음원 제작사가 생각보다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 출신인 디타가 2020년에 대한민국의 걸그룹 SECRET NUMBER로 데뷔하면서, 인도네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국 걸그룹으로 데뷔한 가수가 되었다.[17]
2021년 4월 tvN 코미디빅리그의 코빅엔터 코너에서 인도네시아 노래인 'Ampun Bang Jago'를 사용하면서 인도네시아 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인니어 기사 유튜브 선공개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된 댓글이 엄청나게 달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 자세한 내용은 코빅엔터의 방자고&황자고 항목 참조.
[1] 반대로 일렉트로니카에서도 초기부터 가믈란 음악을 도입한 작곡이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테크노 장르에서는 가믈란의 사용이 흔했다. YMO도 가믈란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걸로 유명하다.[2] 실제로 하와이의 우쿨렐레도 기원은 브라기냐 기타이다.[3] 크리셔(Chrisye), 브를리안 후타우룩(Berlian Hutauruk) 등 참여. '태양'(Matahari)이라는 곡이 유명하다.[4] 1940년대 메단을 중심으로 하는 수마트라 북동부 들리 지역에서 기원한 말레이 음악 장르[5] 곡으로 Sik Asik, #, # 등이 있다.[6] 'Maharddhika'는 산스크리트어 단어로, 인도네시아어 'merdeka'(자유로운, 독립한)의 어원이지만 산스크리트어 원 뜻은 '번영하는, 힘이 넘치는, 현명한'이다. 여기서는 인도네시아어 뜻과 산스크리트어 뜻이 중의적으로 쓰였다. 더불어 자바인들의 모어인 자바어로 'mahardika'는 주로 '현명한'으로 쓰이는데, 산스크리트어 어형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 자바어에서 제목의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다.[7] 크리셔(Chrisye)가 이끈 밴드 집시(Gipsy)와 수카르노의 막내아들 구루 수카르노푸트라(Guruh Sukarnoputra)의 공동작업으로 탄생. 2007년 롤링스톤 인도네시아 투표에서 인도네시아 최고 명반 2위로 꼽힘.[8]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사운드트랙을 담당해 해외에도 좀 알려졌다.[9] 인도네시아 국가 인도네시아 라야(Indonesia Raya)의 작곡가 및 작사가이기도 함[10] 출처: The Kids Went Wild In Batavia[11] 출처: IndoJazzia: Indonesian Jazz Is Going Places[12] 메탈 스타일의 인도네시아판 잠비나이쯤 되는데, 통상적인 헤비메탈 밴드처럼 거칠거나 스피디한 느낌은 없지만, 불안하고 황량한 사운드를 창출하는 데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13] "Tony Prabowo, Indonesia’s most celebrated composer and his masterpiece: the opera Gandari," Independent Observer, 2020년 1월 20일.[14] "A new perspective of composing based on inspiration of Indonesian traditional music beyond the gamelan," Mahidol Music Journal 5 no. 1 (2022), https://so04.tci-thaijo.org/index.php/mmj/article/view/260850.[15] 여기서 JKT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Jakarta)의 약어다.[16] 월드뮤직 최종 보스곡 중 대다수 곡은 이 나라의 작곡가가 만들었다...[17] 사실 아이돌 그룹으로만 보면 앞서 2017년 보이그룹 14U로 데뷔한 인도네시아인 멤버 로우디도 있었다. 그러나 2019년 팀이 해체되면서 현재 활동중인 아이돌 그룹 인도네시아인 멤버로는 디타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