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국]]의 주요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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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계파 | ■ 급진파 공화당, ■ 민주당 주전파, ■ 버번 민주당, ■ 비타협파, ■ 록펠러 공화당, ■ 뉴딜연합, ■ 보수연합 | |
( 중앙 정당 · 지역 정당 ) |
뉴딜연합 New Deal coalition | |
<colbgcolor=#0044c9> 한국어 명칭 | <colbgcolor=#ffffff,#1f2023>뉴딜동맹 / 뉴딜연합 |
활동 시기 | 1932년 ~ 1960년대()[A] |
주요 인물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해리 S. 트루먼 린든 B. 존슨 존 F. 케네디 애들레이 E. 스티븐슨 휴버트 험프리 제임스 팔리 (James Farley) |
이념 | 전기 성향 : 빅 텐트[2] 새자유주의[3] 후기 성향 : 현대자유주의[5] 냉전자유주의 친(親) 민권운동 |
스펙트럼 | 중도좌파[A][7] |
대립세력 | 보수연합 |
정당 | [8] |
연관 세력 | 1948년 진보당 딕시크랫[9] 록펠러 공화당 |
왼쪽부터 남부 백인, 소수자, 노동조합원 뉴딜 연합의 주된 지지층은 이렇게 3가지로 크게 요약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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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딜연합은 1930년대부터 민주당(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 연합이다.한국에서는 뉴딜동맹이라고 번역되는 경우도 많으나, 보수연합을 보수동맹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 명제는 뉴딜연합으로 한다.
2. 역사
대공황의 여파로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루스벨트는 기존의 민주당 텃밭이었던 미국 남부에 더해 1920년대 공화당 정권의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으로 큰 피해를 본 노동조합과 블루칼라 노동자들, 도시 거주자들, 흑인, 아일랜드계 등 백인 소수인종, 가톨릭교도와 유대인 등 많은 집단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끌어들였다. 부통령 후보와 뉴욕 주지사 경력을 가진 베테랑 정치인 루스벨트는 각 주의 상원의원 등 유력 정치인을 포섭하고 뉴욕 등 대도시의 정치기계(political machine)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소수인종 권리 확대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뉴딜 정책에 남부 농촌 지원책을 다수 포함하여 남부의 민주당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남부 텃밭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북동부 및 중서부, 서부 해안 주들이 경합주 내지는 민주당 지지주로 전환되어 루스벨트는 전대미문의 4선을 했고, 해리 S. 트루먼까지 합쳐 민주당이 20년을 연속으로 집권하게 된다. 남부 민주당원들이 공화당과 합작하여 보수연합을 구축, 뉴딜 정책의 상당 부분을 저지하기는 했지만 대통령 선거든 의회 선거든 민주당의 우세 자체는 수십 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1960년대에는 흑인민권운동, 공화당의 남부전략 등으로 뉴딜연합이 흔들린다. 노동조합이 약화되었고, 민권운동 지지 여부로 기존 민주당 지지층이 분열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파가 대두되어 로버트 케네디 암살,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로 대표되는 혼란이 펼쳐졌다. 특히 주요 민주당 지지층이였던 남부가 공화당으로 이전하고,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부상함으로써 해체되었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이 남부 전역, 거의 모든 주를 석권한 것은 남부가 민주당을 충실히 지지한 Solid South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단,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가 민주당 텃밭 취급인 시대가 끝난 것이다. 연방 선거나 주의회 선거에서는 1994년 공화당 혁명[10] 이전까지 남부에서 민주당이 많은 의석수를 가져갔다. 1994년 공화당 혁명을 시작으로 연방회의 선거와 주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11] 2010년 이후에는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발심과 공화당 내 티 파티 세력의 유입으로 2010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승을 거두게 되면서 남부 민주당 세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이후부터는 연방선거는 물론이고 주단위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다. [12]
3. 유사 개념
3.1. 위대한 사회 민주당원 (Great Society Democrats)
1970년대 남부전략으로 뉴딜 연합은 해체되나, 여전히 뉴딜 정책의 영향력은 1984년 대선까지 민주당에 머물렀다. 이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영향력이 컸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계승한 "위대한 사회" 정책으로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가 주도 복지를 늘리는 진보적인 경제 정책을 추구했고, 이는 당시 민주당 의원들에게 폭 넓게 수용되었다.[13]이들을 통칭하는 명확한 명칭은 없으나, 존슨-험프리-먼데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파는 196~70년대 내내 테드 케네디, 유진 매카시, 조지 맥거번 등으로 대표되는 당내 진보파(케네디파)와 갈등을 빚었다. 1972년 대선에서 조지 맥거번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민주당의 계파 분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1968년, 린든 B. 존슨의 은퇴 이후, 휴버트 험프리가 그의 계파를 물려받아 1978년 사망할 때까지 당 내 최대 권력자로 군림하였다. 1976년 대선에서 험프리는 건강 문제로 출마하지 못했으나 지미 카터가 당선되고 험프리 파의 2인자였던 월터 먼데일 상원의원이 실세 부통령으로 거듭난다. 허나, 지미 카터는 보수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 당선된 이후로는 험프리파는 물론 케네디파(당내 진보파)와도 갈등을 빚었고, 1980년 대선에서 카터-먼데일이 엄청난 차이로 낙선하며 민주당은 타격을 입는다. 설상 가상으로, 1980년대 노조 가입률도 떨어지고 험프리도 죽으면서 월터 먼데일이 이끌게 된 이 파벌은 당 내에서 입지가 자연스레 축소되었다.
1984년 대선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는 조지 맥거번의 선거 참모였던 게리 하트(Gary Hart)와 월터 먼데일이 맞붙었다. 게리 하트는 1970년대 민주당 내 진보 파벌에 속해있었으나 이후 기술 혁신과 신산업 투자가 진정한 진보를 이끌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당 내 온건주의자들과 협력했다. 게리 하트는 노동자 권익과 복지 확대를 내세운 먼데일 후보를 위대한 사회 민주당원(Great Society Democrat)으로, 자신을 참신한 아타리 민주당원(Atari Democrat)으로 묘사했다. 먼데일은 하트를 간신히 꺾고 대선 후보로 결정되나, 압도적으로 패배했고, 이후 위대한 사회 민주당원은 비주류로 밀려난다. 비록 게리 하트 본인은 1988년 대선 도중 불륜으로 정계에서 불명예스럽게 은퇴하나, 마이클 두카키스, 빌 클린턴, 앨 고어 등 하트와 유사한 입장을 취한 민주당의 보수파들이 연이어 대선 후보로 지명되며 민주당의 우경화가 진행된다.
이러한 온건파 민주당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 당 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나 2004년 대선에서 1984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당 내 현대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존 케리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고 비교적 온건한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버락 오바마에 패하는 등 이전과 같지 않은 역량을 보여줬다. 결정적으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며, 2018년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이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 "위대한 사회 민주당"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대표적인 "위대한 사회 민주당원"이었던 196~80년대 정치인으로는, 상기한 린든 B. 존슨, 휴버트 험프리, 월터 먼데일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프랭크 처치(Frank Church)[14], 대니얼 이노우에, 에드먼드 머스키, 마이크 맨스필드 등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4. 둘러보기
[A] Sebastian Berg, ed. (2017). Intellectual Radicalism after 1989: Crisis and Re-orientation in the British and the American Left. Transcript Verlag. p. 35. "Hence the centre-left of U.S. politics, symbolised by the New Deal Coalition which had given the Democrats comfortable majorities in Washington for a long time, disintegrated from the mid-1960s onwards."[2] FDR을 비롯한 초기 뉴딜 동맹은 인종적,문화적으로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 복지 성향의 보수적 종교이나 백인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미국 민주당이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진보주의 노선을 강하게 걷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3] FDR의 경우 사회적으로 그래도 보혁구도로 따지면 당대기준에선 후자에 가깝긴 하나,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여러 사회문화적 성향이 뚜렷하게 진보적이지 않고 모호했다는 평가가 있다. 루즈벨트 본인은 사회자유주의자가 아닌 새자유주의를 칭했다.[4] 경제적 진보주의라고 볼 수 있다.[5] 후기로 가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거부하게 되면서 미국의 자유주의는 절대적으로 범 좌파 이념이 되었다. 미국 정치모델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 한국에서도 21세기의 자유주의,진보주의(liberal)자들은 범 좌파, 보수주의(conservative)자들은 우익으로 분류된다.[A] [7] 80년대 레이건 혁명 이후 중도화된 주류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펼쳤다. 특히 린든 B. 존슨의 경우 경제적으로 상당히 좌파적인 대통령이였다.[8] 록펠러 공화당을 뉴딜연합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9] 남부 보수 인종주의자들도 뉴딜연합의 주요 세력 중 하나였다.[10] 깅리치 혁명이라고도 한다.[11] 이때부터 남부쪽 공화당세가 이전에 비해 강해진 건 맞지만 2010년 중간선거 이전까지 남부주내 연방선거 및 주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이 마냥 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화당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가령 웨스트 버지니아만 하더라도 급격하게 공화당세로 기울어진 것은 2017년이 기점이었으며 이전까지는 웬만한 주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12] 그래도 캔자스, 루이지애나 등 일부 남부주에서 로라 켈리나 존 벨 에드워즈 등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선출해냈다.[13] 악명높은 조지 월리스도 인종차별적 수사와 별개로 경제적으로는 확고한 진보 성향이었으며, 도로 건설과 교도소 확충, 복지 확대 등을 옹호하였다.[14] 처치는 린든 B. 존슨의 수제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