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4:31:47

후속곡

1. 개요2. 특징3. 특이 사례4. 타이틀곡보다 후속곡이 더 유명해진 사례

1. 개요

한국 음악 시장에서 쓰이는 용어로, 한 음반 내에서 타이틀곡에 이은 2번째 이상의 활동곡이다. 싱글 음반은 발매하지 않고 정규 앨범만 발매하던 기형적인 과거 한국 음반 시장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개념으로, 타이틀곡처럼 오직 한국에서만 쓰이는 개념이다.

타이틀곡 활동 후 같은 음반에서 타이틀곡이 아닌 수록곡을 택해서 활동하는 곡이다. 리컷 싱글(후발 싱글)과 비슷하지만 리컷 싱글과는 다르게 곡을 별도의 싱글로 발매하지 않고 그 음반에 넣여진 채로 활동한다. 영미권에서 앨범을 발매한 후 반응이 좋은 곡의 뮤비를 찍고 공식 활동을 하는 것과도 유사하지만, 이 역시 따로 별개의 싱글을 발매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2. 특징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디지털 싱글이나 미니 앨범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지 않았고 보통 한 앨범에서 2~3곡 정도를 정해서 한 곡은 타이틀곡, 후속곡으로 1, 2곡을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1년 동안 한 앨범으로 활동한 사례도 있었다.[1]

후속곡은 일반적으로 타이틀곡에 이은 2번째 활동곡이지만 그 다음 후속곡이 또 나올 수 있는데, 두번째 후속곡은 3번째 활동곡이라는 의미로 '삼속곡'이라고 통칭했다. 그 다음 후속곡은 '사속곡', 그 다음 후속곡은 '오속곡', 이렇게 통칭했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최대 삼속곡까지만 활동했고 사속곡 이상은 드물었다.[2]

타이틀곡의 경우는 인터넷 포털 등 앨범 정보에 바로 기재되는 반면 후속곡의 경우 앨범 발매 후 반응과 수록곡 등의 인기도 등을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있기에, 항상 앨범 발매와 동시에 등록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가수들이 타이틀곡의 인기 여부와 반응 등에 따라서 후속곡 활동 시기를 조율하거나, 혹은 아예 후속곡 활동을 하지 않고 빠르게 새 앨범으로 재기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후속곡으로 선정되는 곡은 대부분 사전에 준비하는 형태다. 음반 발매 당시에는 첫인상을 강렬하게 주기 위해서 센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놓고, 앨범 초동판매를 보고 결정한다. 아이돌의 경우에는 후속곡으로 보통 밝은 곡을 선택하나, 차분한 곡이라도 인기가 높다면 후속곡 활동을 하기도 한다.[3] 특히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선정해놨다가 어떤 이유로 그 타이틀 곡으로 활동을 못할 경우(표절시비,방송금지,활동문제,천재지변[4]등)를 대비해 스타일이 다른 곡을 준비해두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 바로 후속곡으로 프로모션을 전환한다. 가끔씩 타이틀 곡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앨범을 구매한 청자나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목받은 후순위 트랙이 타이틀 곡을 밀어내고 후속곡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앨범은 1번 트랙이 곧 타이틀곡인[5][6] 경우가 99%고 후속곡은 2~4번 트랙 정도에 박히는데 정말 운좋게도 뒷순위에 처박혀있던 곡이 입소문을 타 후속곡 지정되어 대박이 터지는 케이스가 간혹 나온다. 예외적으로 1번 트랙이 후속곡인 경우도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한국의 디지털 음원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후속곡 활동이란 명칭이 거의 사라지고 싱글 및 리패키지 음반의 발매로 대체되었다. 혹은 앨범을 내고, 컴백주에만 2곡이나 3곡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3. 특이 사례

드물지만 수록곡이 3곡 이하인 싱글 음반도 후속곡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예시: 동방신기Hug, 2PM의 Again & Again)

코요태의 정규 5집 비상은 오속곡 활동까지 예정되었지만 실제로는 삼속곡까지만 활동했다.

HYBE LABELS 소속 가수들(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LE SSERAFIM 등)은 2010년대 들어서도 드물어진 후속곡 활동을 가끔 한다.

김종국은 사속곡까지 활동한 경우가 무려 3번 있었다. 터보 시절 정규 3집 Born Again의 타이틀곡 Goodbye Yesterday - 후속곡 회상 (December) - 삼속곡 금지된 장난 - 사속곡 Always, 정규 4집 Perfect Love의 타이틀곡 애인이 생겼어요 (True Love) - 후속곡 X (The Greatest Love) - 삼속곡 White Love (스키장에서) - 사속곡 허니문 (Honeymoon), 정규 솔로 3집 This is me의 타이틀곡 제자리 걸음 - 후속곡 사랑스러워 - 삼속곡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 - 사속곡 그녀의 남자에게

4. 타이틀곡보다 후속곡이 더 유명해진 사례

여러가지 원인으로 타이틀곡보다 그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이 인기를 더 얻는 경우가 많다.[7] 사례 목록을 보다가 '이게 타이틀곡이 아니었나?' 싶은 노래들이 많을 것이다.(가수명은 기호→번호→가나다→ABC 순서로 배열)


[1] 아이돌의 경우 예전에는 타이틀곡 3주, 후속곡 3주 정도 해서 1달에서 2달 사이로 활동을 했다.[2] 간혹 이벤트성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3] 예외로, 방탄소년단이 후속곡 활동을 한 Anpanman, 고민보다 Go 등이 있다. 이 곡들도 인기가 높긴 했지만 연간 차트 중위권에 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전하지 못한 진심', 'Best of me'를 제치고 후속곡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전하지 못한 진심'은 유닛곡이라 거의 불가능 하기는 하다.[4] 특히나 한국 사회는 국가적인 변고나 위급상황이 터지면 엄숙주의가 발동해 공중파부터 연예프로 송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에 향락적인 문화 소구가 말이 되냐는 식으로, 그렇게 천재지변처럼 강제로 활동이 접힌 가수들의 사례가 숱하다. 그런 이유로 후속곡을 준비해놓는 것.[5] 디지털 싱글도 이 곡이 리드싱글일 가능성이 99%.[6] 혹은 1번이 인트로곡, 2번이 타이틀곡인 경우도 꽤 있다.[7] 2018년 상반기까지 멜론을 비롯한 뮤직 앱에서 보통 이런 곡들은 옆에 'HOT'이라고 표기해 놓았다.[8] 애석하게도 부적절한 가사 때문에 iTV를 제외한 방송 3사에서 모두 방송금지를 당했다. 다만 뮤직비디오는 캐이블TV 음악 채널에서 간간히 나왔다. 그래도 당시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는 시기 였기에 온라인 상으로 많이 청취했었다.[9] 당시에는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경연 프로그램에 자주 선곡되면서 재조명된 케이스다.[10] '노찾사(래를 람들)'의 <사계>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며 힙합 버전과 하우스댄스 버전 두가지가 있다.[11] 1996년 가을 윤일상으로부터 받은 곡인 '겨울잠 자는 아이'로 정식 데뷔했지만 데뷔 무대에서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이를 빨리 눈치챈 제작자 신철은 윤일상의 다른 곡인 '많이많이'로 타이틀곡을 급히 바꾸어 활동하게 했고, 결국 구피는 1997년 초에 들어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뒤 데뷔곡인 '겨울잠 자는 아이'는 다시 삼속곡으로 짤막하게 활동을 했다.[12] 여기에 언급한 김건모 1~3집의 후속곡들이 모두 가요톱10 골든컵을 수상했다. 특히 2집과 3집은 가요계 판도를 바꿔놓을 정도의 히트곡이고 원래 타이틀곡 활동도 빨리 접어서 지금 시점에선 오히려 선공개곡에 가깝게도 느껴진다.[13] 사실 2집과 3집은 타이틀곡 활동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후속곡을 더욱 길고 활발하게 활동해서, 지금 기준에서는 선공개곡과 오히려 통하는 점이 있다.[14] '나만의 것' 역시 지상파 가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히트곡이지만, 그 후속곡은 가요 차트 1위를 넘어 현재까지도 김완선을 대표하는 곡이다.[15] 혼잣말 역시 김장훈의 유일한 가요차트 1위 곡이란 의의가 있지만, 임팩트가 컸던 곡은 '난 남자다'다.[16] 이 곡으로 인해 댄스 가수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미디어 템포 및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로 자리매김에 성공했고, 현재 최고 인기 연예인 김종국이 있게 되었다.[17] 타이틀곡인 제자리 걸음이 발매되자마자 모든 음원 차트들을 휩쓸어 5주 이상 1위를 차지했으며 벨소리&컬러링 차트에서도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모든 음악 방송 순위제 제도 명예졸업 그랜드 슬램을 달성, 총 18관왕을 수상하여 2000년대 통틀어 단일곡 기준 최다 1위를 차지, SBS 가요대전 대상까지 수상했던 당해 메가히트곡이지만 김종국하면 떠오르는 노래 사랑스러워가 제자리 걸음보다 더 크게 히트했다. 나머지 KBS, MBC 가요대상 석권과 이동 통신사 KTF, LG텔레콤 벨소리&통화 연결음 서비스 연간 차트 1위 차지, 모든 음악 방송 순위제 제도 명예졸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다.[18] 현재 김종국 노래들 중 유튜브 조회수, 멜론 스트리밍 수가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곡이다. 게다가 삼속곡임에도 당대 대규모 음원 플랫폼 싸이월드 뮤직에서 2005년 연간 11위, 2006년 연간 83위 2년 연속 차트인 시켜 타이틀곡 제자리 걸음보다 꾸준히 사랑받는 성과를 보여주었고, 벅스뮤직 차트 통산 6주 1위 및 벨소리&컬러링 차트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음원 성적 한정으로 타이틀곡 제자리 걸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는 여론도 상당히 많았다.[19] KBS드라마 첫사랑의 삽입곡으로 유명해졌다.[20] <Pigman>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려 했지만 그리 대중적이지 않아서 실패하였다. 기존의 이미지와 비슷하고 대중적인 <바다를 닮은 너에게>로 변경하면서 활동하지만 하필이면 H.O.T.를 필두로 한 10대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가요 시장이 재편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인기가 예전만 못했다. 그리고 이 후 노이즈는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게 되었다.[21] 타이틀곡 '태양의 나라' 나라는 곡 자체가 워낙 종교같은 분위기가 풍겨져서 별로였지만(당연히 특정 종교언급은 전혀 없다.) 후속곡 '마지막편지... 그것조차 거짓' 으로 노바소닉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유일하게 부제가 두개인데 진심이 잔잔한 락발라드면 또다른 진심은 거친 하드락인 반전있는 곡이다. 특히 또다른 진심 파트는 댄스아케이드 게임인 PUMP에 수록되어서 대중들 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22] 'The Buggles' 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를 샘플링 하였다.[23] 발매 당시에는 큰 관심을 얻지 못 했으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크라운제이가 부르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곡이다. 이후 타이틀곡 보다 더 유명해지면서 대표적인 축가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여담으로 결혼식 여기저기에서 축가를 불러달라고 노을을 호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노을은 이 노래를 공백기간 내내 부르며 버텼다고 직접 말했다. 그 덕에 노을을 축가가수로 만든 1등공신인 셈이다. 또한 노을의 역대곡들 중 가장 인기있는 노래로 알려져 노을을 먹여살려준 노래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24] 'Summer Couple'이 원제고 '태양은 가득히'는 부제다. 원제 보다 부제로 많이 알려진 곡.[25] 신해철이 프로듀싱을 한 그룹으로 반짝 주목을 받았지만, 타이틀곡 〈Delete〉는 생각보다 호응을 얻지 못했고, 대중에게 이름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한 건 후속곡인 〈태양은 가득히〉부터다.[26] 1996년 이 앨범을 출시한 라인음향측에선 이 앨범을 3집으로 유통했다.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이 수록되어 1991년에 나온 박미경의 데뷔앨범은 당시 박미경이 무명이었던지라 라인음향 측에서 없는 취급을 한 듯하다.[27] 활동 당시에는 아담의 심리의 순위가 높았지만, 후대에는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가 많이 언급된다. 이 곡은 1993년에 발매된 정인정의 <내게는 소중한 그대>를 리메이크했다.[28] 이쪽은 7집이 발표되기 전 숨이 먼저 선공개되어 먼저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다.[29] 타이틀곡 <겁쟁이>는 활동 당시 음악 방송에서 17관왕을 수상하여 2000년대 단일곡 1위 횟수 2위 기록을 보유하여 버즈 노래들 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가졌으나, 시간이 흘러 추후에는 후속곡 <가시>와 삼속곡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노래방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에 당시 10~20대들은 오히려 겁쟁이를 버즈 1번 대표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30] 기존 타이틀곡이었던 My Darling (End)이 좋은 평을 듣지 못하자 추후에 남자를 몰라로 타이틀곡으로 변경되었다.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유난히도 민경훈의 가사 실수가 많았던 것은 살인적인 스케줄과 더불어 타이틀곡이 갑작스레 변경되어 연습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쌈자가 된 원흉이 곡의 인기 때문이라니[31] 이쪽은 가사와 내레이션의 문제로 방송금지되어 활동곡을 교체한 사례.[32] 1997년에 발매된 유민성의 곡인 <선택>을 리메이크 하였다.[33] 당시 음악 트랜드 였던 테크노음악을 가미 하였으며 테크노댄스인 일명 '도리도리 댄스'로 트랜드에 맞춰서 나름 중박을 터트렸다.[34] 본래는 타이틀곡인 <나쁜남자>만으로 활동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부족함을 느꼈는지 사정사정해서 후속곡까지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곡으로 첫 1위를 차지하면서 가수 비를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SK텔레콤 광고까지 찍었다.[35] 빅마마의 멤버인 이영현의 솔로곡이다.[36] 천생연분은 원래 방송 활동 계획이 없었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이 곡으로 방송 활동을 한 결과 1위를 여러 번 차지한 타이틀곡보다도 더 유명하게 되었다.[37] <바람난 남자>가 일부가사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 지상파 방송 출연을 별로 하지 못했지만 유일한 발라드 활동곡인 <Again>으로 뜻밖에도 뒤늦게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Again>은 당시 그룹활동을 염두에 두지 않은 안유진의 솔로곡이나 다름없었기에 안무와 함께 랩을 삽입한 공연용 버전을 따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2002년에는 스페셜리믹스 앨범을 내어 <Again> 리믹스버전을 선보여 다시 타이틀곡으로 밀었다. 하지만 3집 앨범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서 활동이 점점 줄어들었고 2002년 이후 그룹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었다.[38] 타이틀곡은 차트인도 못했으나 수록곡인 Way back home이 각종 차트에서 1위를 석권했다. 차트를 조작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39] 노래는 여름분위기의 신나는 곡이라 인기가 있었지만 정작 신화는 후속곡 활동 당시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발생돼서 아쉬웠다고 한다.[40] 두 곡 모두 엄정화의 커리어에서 내로라하는 히트곡이지만, 특히 'FESTIVAL'은 대표적인 여름 노래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41] 사실 앨범 작업 당시 'FESTIVAL'을 처음 듣자 엄정화는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해당곡의 작곡가 주영훈과 소속사 측이 겨우겨우 설득하여 곡을 작업하게 되었는데 예상외로 5집 앨범곡 들 중 상당히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의외로 가요계에 히트곡들 중 이런 사례가 은근 많다.[42] 여담으로 'FESTIVAL'은 가수 컨츄리꼬꼬의 곡 이였으나 가뜩이나 가벼운 그룹 이미지에 이 곡까지 해 버리면 이미지가 더 가벼워질 것 (결국은 한없이 가벼워졌다는 건 자랑 아님.) 같아서 거절했다고...[43] 사실 <정>은 후속곡이긴 하나, 워낙 타이틀곡의 활동이 짧고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정'을 실질적인 타이틀곡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 영턱스클럽 본인들도 그렇게 내세우는 분위기다. 참고로 <훔쳐보기>는 이효리 2집에 리메이크되어 실렸다.[44] 여담으로 <정>은 가수 구피의 곡이었으나 당시 영턱스 클럽을 프로듀스 했던 이주노가 신철에게 타이틀곡 요청으로 의해 가져간 것이다.[45] 활동 당시에는 타이틀곡인 '질투'가 지상파 3사 1위 후보에 다 올랐고, 생방송 TV가요 2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성적이 더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후대에 '질투'가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영턱스클럽하면 떠올리는 대표곡으로 <정>,<타인> 이 두 곡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46] 신디로퍼(Cyndi Lauper)의 쉬밥(She bop)을 리메이크 한 곡이며 락 버전과 테크노댄스 버전 두가지 가있다.[47] 두 곡 모두 임창정의 커리어에서 내로라하는 히트곡이지만, 특히 '결혼해줘'는 대표적인 축가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48] 가수 데뷔 이후 그동안 발라드곡 으로만 활동하다가 이미지 변환을 위해 처음으로 댄스곡 활동울 시도하였다. 진지한 이미지에서 신나는 이미지 변환이 잘 먹혔는지 이후 댄스곡 활동을 종종하기 시작했다.[49] 공교롭게도 두 곡 모두 영화제목에서 모티브를 따냈다. 두 곡의 공통점은 노래 난이도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인데 발라드곡인 <Love Affair>는 노래가 높기도 높지만 노래 중간에 숨을 쉴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댄스곡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역시 노래도 높은 데다가 춤까지 춰야하기 때문에 활동할 때는 대개 립싱크로 공연했다고 한다.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3위 까지 오르는 상당한 히트를 쳤다.[50] 그동안 이정현의 앨범 활동곡들 중 타이틀곡 제목은 외자 였고 후속곡 제목은 두글자 였으며 타이틀곡이 가장 인기를 얻었었다.(1집: 와, 바꿔 / 2집: 너, 줄래) 그러다 3집에서는 타이틀곡 제목과 후속곡 제목 글자수를 서로 바꿔서 활동했는데 오히려 후속곡을 외자로 활동했던 '반' 이 더 인기를 얻었다. 1~2집 때 처럼 3집도 '반'을 타이틀곡으로 '미쳐'를 후속곡으로 활동했어도 크게 상관 없었을거 같다.[51] 시트콤 뉴 논스톱에 출연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고, 데뷔 후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52] 슈가맨 2에서 대표곡 공연을 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53] 장나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더블 타이틀로 <기도>와 <그게 정말이니>를 내놓았다. 이 두곡도 1위를 차지했지만 활동했던 2002년 전후로 너무나 이미지 소비가 많이 되었던 탓에 기대만큼의 흥행은 하지 못했고, 이름값에 모자라지 않은 정도로 히트는 했다.[54] 반면 후속곡인 <나도 여자랍니다.>는 컨셉상으로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여 장나라의 히트곡들 중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십수 년이 지난 이후에도 2집 타이틀곡인 <Sweet Dream>과 함께 장나라 가수 시절을 대표하는 곡으로 남게 되었다.[55] 참고로 작곡가인 ND Lee가 2002년에 발매된 리듬게임 EZ2DJ 4th의 수록곡인 Lovely Day에 한국어 가사로 다시 작사 한걸로 보인다. 두 노래를 비교하여 들어보면 게임 음원에 썼던 악기 소리를 여럿 들을 수 있다. 당시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리듬게이머들이 많이 놀랐다는 후문이다.[56] 1998년 사오정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Hello Mr 사오정> 으로 활동하였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하자 <첫눈의 약속> 으로 변경하면서 활동을 이어가며 나름 소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하필 정상급 인기 10대 아이돌그룹들이 대거 등장하는 바람에 원히트원더로 조용히 사라졌다.[57] 이 곡의 후속타로 죠앤이 개인적으로 애정하던 발라드곡 〈순수〉를 내세웠으나 〈햇살 좋은 날〉의 반응이 좋은 상황에서 〈순수〉로 활동곡을 바꾸는 것에 대해 팬들이 서운함을 표해서 결국 다시 '햇살 좋은 날'로 활동곡을 되돌렸을 정도로 가장 반응이 좋았다.[58] 타이틀곡인 <16/20> 모던록 스타일에 주다인의 독특한 음색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후속곡인 <나는 나>는 락발라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두 활동곡의 공통점 모두 주다인 만의 독특한 음색의 추임새가 들어갔다는 거.(<16/20> = 아야야야~ 쇼킹~쇼킹~, <나는 나> = 때때때때때때때~)[59] 타이틀곡인 <수필러브>는 미친 듯한 베이스 위에 엄청 빠른 랩을 얹은 독특한 곡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오히려 곡명이 의미불명으로 한국어를 망친다는 이유로 소비자 단체에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당시에는 대중문화의 분위기가 보수적 이였으며 심지어는 가수들의 염색도 태클을 거는 시기였었다. 후속곡인 <센티멘탈>은 1집의 모던 록 스타일을 잇는 곡으로 소폭 인기를 얻었다.[60] 당시엔 외부 가수 피처링이 흔하지 않았었는데 배반의 장미로 인기를 누리던 엄정화가 피처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인기가수가 신인가수의 피처링으로 지누션을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1위까지 차지하기도 했다.[61] Bee Gees(비지스)의 How Deep Is Your Love를 리메이크 하였다.[62] 1997년 패닉이적전람회김동률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며 단 하나의 앨범만 발표했다.[63] 가사 자체가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하는 내용인데 당시 이 곡으로 활동 했을 때 IMF가 막 터진 시기였기에 대중들에게 많은 힘을 심어주기도 했다.[64] 컴백 무대에서 미스터를 인트로 격으로 짧게 선보였는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후 미스터를 동시 활동곡으로 승격시키고 이 곡으로 일본에 진출해 대성공을 거둔다.[65] 〈일심(一心)〉은 데뷔 후, 첫 1위를 안겨준 곡. 이 노래를 개사해서 아이스크림 CF까지 찍을 정도로 1999년 활동 당시에는 인기였으나 후대에 들어서는 언급이 거의 안되고 있다. 오히려 후속곡이었던 〈Gimme! Gimme!〉의 인지도가 더 좋으며 불후의 명곡에서 조수미도 이 노래를 불렀다. 터보의 Goodbye Yesterday - 회상과 비슷한 사례.[66] 코요태 데뷔 이후 첫 1위를 안겨준 곡이다.[67] 사실 <All For You>는 후속곡 보다는 삼속곡에 가까웠는데(후속곡은 <맥주와 땅콩>) 5집 수록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후 2012년 응답하라 1997에서 서인국정은지가 리메이크 하여 더 큰 사랑을 받았다.[68] 타이틀곡 Promise로 데뷔했을 때는 천하의 대성기획이 내놓은 가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영 반응이 없었고, 한 달여만에 잊혀진 사랑으로 활동곡을 교체. 이 때문에 잊혀진 사랑이 클릭비 1집 타이틀곡인 줄 아는 사람들도 꽤 많으며 심지어 언론에서도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부터 반응이 좀 오기 시작했으나,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 뒤 소속사 선배인 핑클을 띄운 전략을 클릭비에게도 감행하여 발랄하면서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선 Dreamming으로 클릭비의 이름을 제대로 알릴 수 있었다. 클릭비 1집 수록곡 중 가장 인지도가 있는 곡은 단연 이 곡이다.[69] 이 곡은 터보의 팬덤을 남녀노소, 세대불문으로 대폭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곡이다. 이로 인해 당시 유치원생부터 노년층까지 강타했으며 현재도 남녀노소 유아층~노년층까지 상당히 많이 알고 있고, 들리고 있는 터보의 대표적 메가히트곡 및 스테디셀러다. 실제로 원곡인 검은 고양이 네로는 앨범 내 각주에서 상술한 대로 이탈리아 동요며 그 곡을 번안해서 만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70년대에 동요로 먼저 나오기는 했으나 현재도 대중들이 잘 알고 있고, 메가히트를 한 건 당연히 터보 1집에서였다.[70] Goodbye Yesterday로 무려 H.O.T.젝스키스를 제치고 KBS 가요톱10 4주 연속 1위, 나머지 SBS 생방송 TV가요20 1주 1위, MBC 인기가요 BEST 50 1주 1위, 한국영상음반협회 다운타운 집계 차트 5주 1위를 기록하는 등 활동 당시에는 굉장히 인기가 많은 곡이었으나 시간이 흐른 추후에는 이상하게 터보 대표곡으로서는 자주 언급되지 않는 곡 중 하나며, 이 곡의 제목을 "그랬나봐"로 알고 있을 정도다. 사실 당시 이 곡이 히트했을 때가 IMF 사태 초기로서 전대미문의 경제불황기였음을 감안하기는 해야 한다. 회상은 KBS 가요톱10에서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에 밀려 최종 2위로 그쳤지만, 나머지 음악 방송에서는 1위를 모두 휩쓸어 총 12관왕을 수상했다. 당시에도 크게 히트했고, White Love (스키장에서)와 더불어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겨울 노래 대표 스테디셀러다.[71] 이 곡으로 활동할 때는 지금까지 강한 댄스를 강조했던 터보 곡들과는 달리 말랑말랑한 느낌과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경향이 강했기에 터보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평가를 받아 생각만큼 흥행이 안 되어(마침 H.O.T가 '열맞춰'로 컴백을 한 시점이었다.) 'X (The Greatest Love)'와 'White Love (스키장에서)'로 빠르게 후속곡 전환을 했다. 데뷔 이래 꾸준히 인기가 좋던 터보답게 흥행이 잘 되지 않던 곡이었음에도 이 곡은 SBS 인기가요MBC 음악캠프 1위, 쇼! 뮤직탱크 3주 연속 1위를 수상하여 총 5관왕을 달성하였다.[72] 'White Love (스키장에서)' 활동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였기에 상당히 높은 인기를 얻었고, 추후 현재까지도 회상 (December)과 더불어 겨울마다 흘러나오는 겨울 노래 국민송으로 칭송받고 있다.[73] 〈달팽이〉의 흥행으로 가요차트에서 10위권 안에 들었다.[74] 왼손잡이는 원래 이적의 솔로곡이지만 방송 활동 한정으로 인트로 파트와 중반 파트에 김진표 랩파트를 추가했다.[75] 가수 '' 가 솔로가수 데뷔 전에 본명(정지훈)으로 활동했던 보이그룹이며 1집 때와 달리 2집은 후속곡 까지 활동했었다. 후속곡 이였던 <한여름밤의 꿈>은 활동시기가 여름 이였기에 팬클럽 역대 활동 중 그나마 소폭 인기를 얻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인기 가수들에 의해 묻혀 버린 뒤 소리소문없이 해체하며 사라졌다. 이후 멤버였던 정지훈은 JYP로 이적하여 2년여간의 힘든 연습생활(연습생활 도중 모친상을 당하였다.) 끝에 '' 라는 예명으로 솔로가수 데뷔를 하였다.[76] 공감토크쇼 놀러와 1세대 아이돌 특집 때 옥주현이 1집 타이틀곡이 그리 흥하지 못했고, 내 남자친구에게 때부터 반응이 터졌다고 솔직히 인정한 바 있다. 무한도전 토토가에서도 출연 조건이었던 노래방 점수 95점을 넘기 위해 타이틀곡인 〈Blue Rain〉 대신 〈루비〉를 불렀다.[77] 1996년 천명훈, 이성진이 결성한 듀오 그룹이다. 타이틀곡인 빠삐용은 독특한 분위기로, 후속곡인 팡팡은 밝은 분위기로 두 활동곡 모두 중박을 터트렸다. 데뷔 1년 뒤 문성훈, 노유민, 김환성이 추가 영입 으로 그룹명을 NRG로 변경하면서 새롭게 활동을 이어갔다.[78] 원래 타이틀곡은 '무아지경'이었는데 발매 당시에 선정적인 가사로 방송 3사에서 모두 방송금지를 당했다. 결국 대중적인 다른 곡을 선택한 게 'DOC와 춤을'. 무아지경은 MBC에서 후속곡으로 짧게 활동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79] 당시 소속사에서 댄스곡 요구에 작업한 곡이며 락과 댄스가 가미되었다. 하지만 소속사의 요구로 만들어진 곡이라 EVE(이브) 맴버들 에게는 흑역사로 비쳐진 곡이라고 생각하여 이후 해당곡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80] 타이틀곡인 <편지>는 god의 역대 타이틀곡들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였으며 오히려 밝은 분위기의 후속곡인 <0%>가 더 인기를 얻었다.[81] 전사의 후예 역시 반응이 좋았지만 표절 시비로 인해 급하게 후속곡 활동을 시작했다.[82] 가사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데다가 문희준의 부상으로 타이틀곡 활동 중 3주간 휴식기를 가지면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곡. 타이틀곡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대신 '행복'으로 활동을 재개했다.[83] 멤버(강타) 자작곡의 첫 활동곡이였다.[84] 0.5 = 일의 반 = 반일을 의미. 당시 주영훈이 프로듀싱한 그룹으로 홍보했으나 딱히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85]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에서의 소환곡도 이 곡이었다.[86] 그러나 하필 <너에게 쓰는 편지>의 후렴구가 더더의 <It's you>와 상당히 비슷해서(정확히는 후반부 외에는 사실상 거의 동일) 표절의혹에 휘말렸다. 결국 <It's you>의 작곡가 였던 강현민이 소송을 걸었고, 2006년경 표절인정 으로 판결이 났다. 그후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너에게 쓰는 편지> 작곡에 강현민도 공동작곡으로 표기하도록 명시하였다. 이 곡이 MC몽 1집 곡들 중 높은 인기를 얻은건 사실이지만 표절곡 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87] 2005년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 다운로드 55만 건으로 연간차트 2위에 기록되었다.(1위는 윤도현사랑했나봐 60만건, 3위는 김종국사랑스러워 50만건) 그로 인해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등급에서 50만곡 이상을 판매한 곡에게 수여되는 플래티넘을 받은 몇 안되는 곡이다.[88] 1집의 동명곡과 달리 표절의혹이 없으며 피쳐링은 일본의 유명 그룹 m-floLISA가 담당하였고 이후 3집 리페키지 앨범에서는 가수 메이비가 담당하였다. 두 앨범의 차이점은 영어보컬(3집 정규)과 한국어보컬(3집 리페키지) 이다.[89] 후속곡인 Messenger로 중국에 진출해 큰 인기를 얻으며, 중국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한류의 원조'라 불렸을 정도였다.[90] '고요속의 외침'도 유명하긴 하지만 〈이별공식〉은 R.ef하면 많이들 떠올리는 대표곡으로 R.ef의 상징곡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고요속의 외침은 SBS에서만 1위를 달성한 반면 이별공식은 방송 3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으며 후에 빅스가 리메이크했다.[91] 본래는 4인조였지만 멤버인 주연정이 <자유>로 활동 도중 부상을 당해 탈퇴되어 <첫사랑> 활동 부터 3인조로 축소하여 활동 하였다. 타이틀곡은 어두은 분위기 였지만 후속곡은 밝은 분위기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주연정은 1년여 뒤 파파야로 재데뷔했다. 하지만 O-24, 파파야 모두 1집은 성공을 거뒀으나 2집은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92] 타이틀곡 〈Yes〉는 이상민 스스로가 최고라고 꼽을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곡이나, 정작 대중들에게 혼성그룹 'S#ARP'이 제대로 인식되기 시작한건 후속곡인 〈Lying〉 때부터다.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아는 사람도 꽤 있다.[93] <Just a feeling>은 원곡과 리믹스곡이 있는데 대부분 리믹스곡으로 활동했었다.[94] 윤상의 원곡을 리메이크했으며 리메이크 발표 이후 많은 후배 가수들이 커버했다.[95] 지오(ZIO)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리메이크했다.[96] '소중한 사람을 위해'는 2004년 데뷔한 V.O.S의 데뷔곡이지만 그렇게 많이 언급되지 않고, 팬이 아니고서는 이 곡을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 현재 인지도나 커버가 많이 되는 곡은 단연 '눈을 보고 말해요'다.[97] 1995년 발매된 황대일의 〈강요하지마〉를 리메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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