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20:10:19

타다이마 오카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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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유형 13. 유형 24. 유형 3
4.1. 유형 3-1
5. 남용에 따른 부정적인 시각6. 해당 방식으로 끝맺은 작품
6.1. 드라마6.2.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6.3. 소설6.4. 영화
7. 실존 인물8. 해당 방식이 모티브가 된 노래9. 참고

1. 개요

[ruby(다녀왔어,ruby=ただいま)] - [ruby(어서 와,ruby=おかえり)]로 끝나는 일본 만화의 클리셰를 가리키는 말이다.

2. 유형 1

갖은 고생 끝에 모험을 끝낸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오자 소중한 사람이 반겨주더라는 상황 및 그러한 이야기 구조.

이 패턴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향과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염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염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그 예로 조조는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돌리거늘, 고향을 어이 잊을 수 있을 손가'(狐死歸首丘, 故鄕安可忘)라는 말을 남겼다. 비교적 외부로의 탐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서양에서도 이런 염원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자신의 아름다운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이란 를 남긴 바가 있다. 또 미국과 같은 가족끼리 유대가 강한 사회에서도 많이 환영하고 감동하는 엔딩이기도 하다. 최근의 경우 일본 창작물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일본 사회의 '이바쇼(居場所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와 산업화되는 일본에서 많은 일본인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리운 고향', '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면서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대개 주인공을 맞아주는 오카에리 측 캐릭터는 기다리는 히로인인 경우가 많다.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한 교수는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야구가 영웅신화적인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교수는 집을 떠난 영웅이 시련을 겪으면서 위업을 달성하고 다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듯, 야구의 공격수 또한 1루-2루-3루로 상징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다시 타석(홈)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2002년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도 남자주인공(장혁 분)이 이 해석을 언급하며 "집(홈)을 나섰다가 집에 무사히 돌아오면 1점을 주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난 야구가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상황을 조금 비틀어서 주인공을 만신창이가 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으로 몰아 넣고 이 클리셰를 사용하는 것으로 기다려준 사람과 돌아온 장소와의 대비를 줌으로써 여운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3. 유형 2

유형 1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

이쪽에선 이별한 사람들(주로 연인)이 결국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류의 결말이 해당된다. 주로 연애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는 작품들(미연시라든가)에 쓰인다.

이 클리셰에 쓰이는 이별의 형태는 다양한데, 그냥 평범하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긴 시간 동안 헤어지는 경우라든가, 매우 특수한 사정(초자연적 요소도 포함)으로 인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던가, 혹은 아예 한쪽이 죽어서 정말로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별을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헤어져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재회를 통해 해소되면서 감동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유형 1처럼 훈훈함으로 연막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기한 이별의 케이스 중 3번째. 사별의 케이스의 경우 죽은 줄 알았던 상대가 사실은 살아있었다는 반전의 충격과 겹쳐지기 때문에 감동은 배가 된다. 다만, 왜 살아있었는지 제대로 독자들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유형 1처럼 욕먹기가 쉽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나가 열린 결말을 지향하게 된다면 굳이 힘들게 설명하지 않고 마지막에 '재회'를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상식적인 설명[1] 같은 것보다는 그 순간의 분위기 등을 통한 감성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많으며, 덕분에 역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매우 곤란해지는 엔딩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잘 사용해도 그런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는 것(…).
미연시쪽에선 Key의 전신인 Tactics의 초기작 'ONE ~빛나는 계절로~'의 결말이 최초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ONE의 주제[2]을 잘 살린 엔딩이라 열린 결말은 아니다. 이게 열린 결말이면 주인공이 죽는 거 빼면 열린 결말이 아닌 게 없다.

반대 개념으로는 복수불반분이 있다. 이는 한 번 헤어진 연인은 다시 만나봤자 잘 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 항목에서 다루는 건 대부분 대판 싸우거나 뜻이 안 맞아서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주로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사정으로 인해 떨어져있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많기 때문에 꼭 그렇지도 않다.

노래에서도 많이 쓰인다.

4. 유형 3

주인공의 사망이 전제되는 유형으로, 사별한 인물과 천국에서 재회한 듯한 연출이 특징이다.

주인공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인물은 작중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먼저 죽는다. 그리고 스토리가 결말까지 진행되어 엔딩 단계에서 주인공 역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먼저 죽었던 인물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어서와" 라고 인사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주인공 측에서 환상을 보는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 사후세계에 대한 명확한 배경 설정이 존재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정말로 사후세계에서 만나 재회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인사를 건네는 인물은 주인공이 죽었을 때 떠올릴 정도의 인물이므로 (혹은 사후세계에서 가장 먼저 주인공을 맞이해줄 정도의 인물) 대부분 주인공에게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 해당된다. 이런 캐릭터는 당연히 스토리상 주역일 수 밖에 없으므로, 작중에서 먼저 사망할 경우에도 그 영향이나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굉장히 힘있게 연출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후 주인공의 사망 이후에도 이 캐릭터가 재등장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주게 된다.

다만 이 유형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이 기본전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특수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드엔딩이 될 수 밖에 없다. 간단한 언급조차 스포일러가 되는 수준이다.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이것은 주마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즉, 죽음의 순간 최후에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가장 간절하게 보고 싶었던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된다.

사후세계를 명확히 연출하는 경우,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 혹은 켈트 신화의 아발론 등이 원조가 될 수도 있다.[3] 사후세계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나 안내역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와 같이 사후세계 연출을 선택한 작품에서 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욱 스토리가 진행된다면, 현실에서는 주인공의 사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가끔 보여주곤 한다.

클리셰 비틀기도 있는데, 사후세계에서 주인공을 맞이하며 반갑게 안아준 인물이 주인공을 안으면서 안보이게 '썩소' 를 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당연하지만 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좀 더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4.1. 유형 3-1

주인공이 죽긴 하지만, 목표를 이루고 죽은 경우에 해당한다.

허망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원하던 것을 손에 넣고 죽었다면 무조건 배드엔딩이라고만은 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강력한 최종보스에게 복수의 칼을 갈다가 마침내 동귀어진으로 복수를 이룬다고 한다면, 최종 목표를 이뤘다는 긍정적인 감상도 가능할 것이다. 승산이 없을 정도로 복수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더더욱 그럴 것. 물론 평생의 숙원을 이뤄낸 주인공이 사망함으로써 그 이후의 세계를 지켜보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슬픔을 피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나 막장이 되는 상황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들어갈 수 있다.

이 유형의 경우에는 너무 큰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주마등을 보면서 미리 죽은 동료들을 떠올리거나 다른 동료가 주인공이 웃으며 죽은 얼굴을 보고는 저승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것으로 생각하는 연출이 꽤 많다. 먼저 가있던 사람들로부터 정말로 기쁘게 환영받는 장면이다. '모든 것을 이룬 주인공이 마침내 진정한 안식을 찾는다'는 엔딩 클리셰와 연결되기도 한다.

5. 남용에 따른 부정적인 시각

일상에서 흔하디 흔하게 주고받는 회화를 작품의 엔딩에 삽입함으로써 그 표현력과 연출을 극대화시켜준다.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일상 언어가 작품 속에 등장하면서 친숙함을 주면서도, 짧은 두 마디의 대화가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귀환" 또는 "재회"를 연출하기 위한 기법으로서도 좋은 편이기에, 장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이 클리셰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이 생겼으며, 그 이후로도 쓸데없이 과하게 남용되는 탓에, 이 클리셰 자체에 학을 떼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상 독창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4] "여기서 울어야 합니다" 뉘앙스로 엔딩연출을 막 던진다는 지적이다. 그저 감동을 위한 감동이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엔딩에서 이 클리셰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작가가 고심하지 않고 스토리를 대충 완결시켰다' 라는 인상을 받는 독자들도 많다.

상술했듯 분명한 장점과 확실한 연출을 가진 대사이긴 한데, 그만큼 정형화되기 쉬웠고 이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분명 잘 사용하면 절절한 감동을 보장하긴 하지만, 너무 남용된 탓에 진부한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이다.

6. 해당 방식으로 끝맺은 작품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6.1. 드라마

6.2.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6.3. 소설

6.4. 영화

7. 실존 인물

  • 타나하시 히로시 - 1년에 딱 한번 레슬 킹덤에서 승리하면 타다이마라고 외치고, 관중들은 거기에 맞춰 오카에리라고 화답해준다.
  •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 - 예시
  • 따효니,아이리 칸나 - 악어의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보물을 찾던 여행중에 칸나가 먼저 죽고 따효니가 재회하였을때 타다이마 라고 외치고 칸나가 오카에리 로 화답해준다. *(칸나의 콘서트가 끝나고나서 반대로 따효니가 오카에리라고 하고 칸나가 타다이마로 화답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8. 해당 방식이 모티브가 된 노래

9. 참고



[1]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실은 살아 있어서 재회가 가능하다는 식의 설정 등[2] 과거를 받아들이고 영원의 세계와의 결별.[3] 발할라는 오딘을 위해 목숨을 버린 용사들이 모여 끝없는 전투를 펼치는 곳이며, 아발론은 죽은 후에도 자신의 기억과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세계이다.[4] 물론 너무나 기본적인 일상대화이기 때문에 대사 창조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과 표현 상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이다.[5] "미안해, 나에겐 아직 돌아갈 곳이 있었어, 이렇게 기쁜일이……."[6] 전체적인 내용은 전혀 아니지만 분위기나 연출이 너무나도 이 클리셰의 분위기이다보니 기재한다.[7] 문제는 히로인이 다 늙은 다음에야 돌아온 메탈 슬라임 주인공……. 다만 코믹스판에서는 50년 전 모습으로 회춘한다.[8] 위 분류에 따르면 유형3-1이다.[9] 어서와 사메키치. 다녀왔어 와다노하라로 막을 내린다.[10] 사실 이 엔딩의 끝이 좋지 않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11] 시나리오드릴러(G), Lv. 1 플레이(드릴랜드) 한정.[12] 결말부 대사 번역:
스스무: 여어, 애들아 다녀왔어!
안나: 스스무!
타이조: 스스무!
타이요: 스스무 형!
Z박사: 스스무 군!
푸치: 즈즈무!! 이제 틀렸다고 생각했었다멍! 다행이다멍!!
[13] 결말부 대사 번역:
스스무: 애들아, 다녀왔어!
다른 동료: 어서와, 스스무!!
[14] 물론 "다녀왔어"가 끝나자마자 사망하지만 말이다. 그와 별도로 교토편이 끝난뒤 다 같이 귀환하면서 히로인이 해주기는 한다.[15] 아로나프라나가 에필로그에서 이걸 시전한다.[16] 하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샤먼 파이트가 끝난 후 흩어져서 노력은 해 봤지만 아무것도 못한 듯, 그저 7년 후 '타다이마오카에리' 식으로 예전의 동료들과 만나는 것으로 끝났다.[17] 이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는 이 대사가 직접 나온다. 서드 임팩트 시작 직전에.[18] 내용은 다르지만 애니판도 해당 항목에 속한다.[19] 7화 A파트 토도마츠와 5인의 악마 참조,(..) 취소선이 그어져있는건 보면 안다.[20] 클리세가 반대였다. 이치마츠가 오카에리, 토도마츠가 타다이마.[21] 제대로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뭔지 보여줬다…….[22] 버텍스 격파 후 쓰려진 유우나가 깨어나자 토고가 오카에리하며 유우나가 타다이마한다.[23] 작품 주인공이 둘인 만큼 둘이 서로 다른 타다이마 오카에리를 시전하는데, 어둠의 유우기는 먼저 무토우 유우기와의 이벤트 배틀에서 패배한 뒤 성불하여 저승으로 돌아가는 1.3.1의 타다이마 오카에리 엔딩을 맞는다. 그리고 무토우 유우기는 동료들과 함께 지상으로 돌아와 햇볕 아래에서 완결이 난다.[24] 최종보스 격파 후 귀환했을 때 기도하는 히로인 이자요이 아키가 시전했다. 단, 마지막회는 아니다. 여기서 대충 얼버무린 게 아니라 동료들의 미래는 마지막 화에서 제대로 정리가 나게 된다.[25] 결말에서 최종보스와 우주에서 싸우다 아공간으로 날아간 후로 행방불명 상태였던 오도 유가가 2년 후에 지구로 귀환하면서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가 오카에리를 시전한다. 다만 유가는 말없이 웃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26] 현재 시점의 일이고 돌아온 사람도 떠난 사람이 아니다.[27] 주군인 오토모 소린이 자비를 찾아오라며 헛소리를 해대자 보다 못해서 따귀를 때려버려서 유배당하게 되는데 결국 소린과 재회하면서 이 클리셰가 나오나 했다가 훈훈한 추격전으로 마무리.[28] "어서와.기다렸어""응...다녀왔어"[29] 연오랑 - "고마워요. 돌아올 곳을 만들어 줘서."[30] 원작 한정.[31] 1이 타다이마, 2가 오카에리. 1만2천년(작품내에서의 시간차) 그리고 17년(1, 2의 마지막화의 제작년도차)의 시간을 넘었다[32] 주인공이 마지막에 사망하고 나서, 먼저 사별했던 아내를 달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스탭롤에서 나온다.[33] 6세대까지는 챔피언을 이기고 엔딩을 보고 나면 항상 집에서 다시 시작한다. 특히 하트골드/소울실버블랙2/화이트2의 경우는 스태프 롤이 올라가면서 여정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와 만나면서 끝난다.[34] 항상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시즌이 끝나며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35] '또다시 올리마의 모험' 의 컷씬 마지막에 우주선 포드를 타고 PNF-404 에 도착하면서 마중나오는 피크민들에게 다녀왔어, 피크민!(ただいま, ピクミン!) 이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36]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오카에리 타다이마.[37] 형형색색의 세계의 팬디스크. 주인공이 두 작품 연속으로 고분분투한다.[38] 카렌 루트[39] 유형 2에 해당.[40] 주인공이 교도소에 있다 출소한 날 히로인이 둘 사이의 딸과 함께 맞아줬다.[41] 사건이 종결되고 이오리와의 대결을 마친 쿄가 기다리고 있던 유키와 만나며 이 말을 나눈다.[42] 사건이 종결되고 애쉬와 엘리자베트는 KOF XIII에서 나온 어린 시절 둘이 놀았던 정원으로 가며 이 말을 나눈다.[43]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오픈엔딩인 척 하는 클로즈 엔딩이다.[44] 서로 고백한 다음 배를 타고 떠나려니 고장으로 배가 회항해 버리고 서로 뻘줌하게 타다이마 오카에리 대사를 읊는 일종의 비틀기다.[45] 레이시아는 마지막 장에서 메토우데와의 결전에서 치명상을 입고 기능정지하지만, 한달 여뒤 다시 주인공 아라토에게 돌아온다. 물론 인류미도산물이 아니라 기억을 기성품에 옮긴 복제품으로써.[46] 제임스 그레이 감독, 호아킨 피닉스, 기네스 팰트로 주연 영화. 유형 1이긴 하지만 막상 보면 기묘해서 새드 엔딩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47] 정신병과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던 후카세의 과거 기억에서 모티브를 딴 노래다. 가사 내용과 무대에서 상영하는 영상을 종합해보면, 자살하러 집을 나선 사람이 주마등을 본 후 결국 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