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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辨證法 / dialectic[1] / Dialektik다양한 사상을 하나의 정의로 통합시키거나 여러 가지 종류로 분할하여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론[2] 또는 헤겔로 대표되는 철학적 방법론[3]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생하였으며, 중세에는 거의 논리학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것을 체계화하여 현대적 의미의 변증법으로 만든 것이 헤겔이다. 이 문서에서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2. 설명
근현대 철학의 맥락에서 변증법은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사태 자체의 운동을 아무런 외적 전제 없이 그대로 사유하고자 하는 헤겔의 철학적 방법론, 신플라톤주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일원론적 세계관, 동구권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여러 법칙들[4], 사태의 본질을 모순으로 보고 한 극단이 어떻게 다른 극단으로 이행하는지를 중시하는 세계관 등등. 이러한 의미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그저 변증법이 갖는 여러 측면들 중 하나를 강조하는 의미들이다. 하나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상이 극도로 전개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이론이 변증법이다.헤겔에 따르면, 변증법은 고대 회의주의, 즉 피론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피론주의자들은 내재적 비판의 일종으로 상대가 A를 제시하면 상대의 전제에 기반해[5] ~A를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절대적인 것으로 정립된 A가 비(非)A와 관계하며, 따라서 A는 고립된 것으로 간주할 수 없음이 드러나게 된다. 좁은 의미에서 헤겔이 말한 변증법은 바로 이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방법론을 변증법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사변(思辨)이라고 불렀다. 피론적인 변증법은 단순히 A가 제시되면 ~A를 제시하고 ~A가 제시되면 A를 제시하는 순환에 머무를 뿐이지만, 헤겔이 말하는 사변은 A와 ~A를 통일적으로 사유한다. 또한 이러한 사변은 경험적 전제와 같은 외적인 규준에서 자유롭게 사유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유되는 사태 자체를 자신의 규준으로 삼는다. 개념을 사태 자체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경향을 헤겔은 '개념의 노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변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 의미되는 바이다.
헤겔 변증법은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아도르노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 아울러 쇠렌 키르케고르, 질 들뢰즈와 같이 헤겔과는 독자적으로 변증법을 전개한[6] 이들도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이데올로기 비판의 맥락에서 변증법은 주로 내재적 비판으로 인식되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 자신이 자신의 가치라 설명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삼아 그것들을 과연 현실의 체제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방식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동등한 가치의 상품들이 서로 교환된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교환에는 잉여 가치의 착취라는 부동등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동구권 마르크스주의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따라 변증법을 일종의 객관적 변증법, 즉 사물들이 따르는 객관적인 운동 법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으며, 반대로 서구권 마르크스주의의 경우는 변증법을 일종의 주관적 변증법, 즉 사유가 그 전개 극단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이치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에 변증법이 적용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동구권 마르크스주의는 예를 들어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대립물의 통일'로 파악했으며, 서구권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인 중기 루카치[7]는 변증법을 사회적인 것의 영역에 한정시켰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입장에는 변증법의 핵심인 부정이 자연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으며, 대조적으로 동구권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변증법이 자연 철학에 가깝게 사용되었다.
3. 개념
이 문단에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 개념이 혼재할 수 있다. 둘은 인식론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지만, 이 문단에서는 그러한 차이를 담는 데에 주목하지 않았다.3.1. 정반합
| 변증법 | ||
| 정(定) Thesis | 반(反) Antithesis | 합(合) Synthesis |
헤겔 변증법은 그 체계적 방대함 때문에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간략히 도식화한 트리아데(Triade), 또는 정반합이라고 불리는 공식이 있다. 헤겔 변증법의 구체적 성질을 설명하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그 체계를 간략화하기에 적합한 공식이다. 트리아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명제(테제, thesis)와 반명제(안티테제, antithesis)를 사용하여 이 모순되는 주장들의 합명제(진테제, synthesis)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
이러한 변증법이 이루어지는 과정 또는 그 결과물을 일컬어 '정반합'이라고도 부르며, 이 정반합이라는 단어는 변증법의 동의어로서 쓰이기도 한다.
| 예문) 정명제: 1+1=2이고, 1+1+1=3이다. 따라서 귀납적으로 1을 n개 더하면 n임을 알 수 있다. 반명제: 만약 n이 1/2나 3/4처럼 자연수가 아니라면 1을 1/2개만 더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1을 n개 더해도 n이 아닌 것 아닌가? 합명제: 1을 n개 더했을 때 n이라는 것은 1*n=n임을 의미한다. 어떤 n이든 1을 곱하면 그대로 n이라는 것은 자명하므로, 따라서 1을 n개 더하면 n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8] |
| 예문) 헤겔의 체계 미학 이론은 예술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헤겔은 예술사를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이라고 불리는 세 단계로 구분한다. 정명제—상징적 예술 형식: 고대 그리스 이전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기타 오리엔트 지역에서 종교적 숭배를 위해 제작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의 예술 작품으로 대표되는 단계이다. 감관을 압도하는 거대 구조물이 건립되지만, 신에 대한 구체적인 통찰이나 깨달음이 없다. 따라서 이 미약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이 단계의 예술은 단지 신의 피상적인 특징, 즉 '강함'이나 '거대함' 따위의 덕목을 나타내기 위한 거대하고 웅장한 형태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반명제—고전적 예술 형식: 고대 그리스 지역의 조각으로 대표되는 단계이다. 내용과 형식의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그리스의 조각은 더 이상 재연될 수 없는 미의 극치로 평가된다. 나아가 예술 그 자체가 신성의 직접적 구현이기 때문에 이 단계의 예술은 그 자체가 이미 종교이다. 합명제—낭만적 예술 형식: 중세 기독교의 회화로 대표되는 예술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예술은 감각적 형식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고차적 내용이 지배하기 때문에 새로운 더 높은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 정신과 역사의 최종 지점에 도달한다. |
3.1.1. 오해
정반합 도식은 사실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과는 맞지 않다. 변증법적 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노년 헤겔학파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본문에서도 설명되기도 하지만 헤겔은 한 번도 정반합의 트리아데를 정의한 적이 없다. 정반합으로 헤겔 변증법의 기초가 설명되기는 하지만 전통 논리학의 형식적 방법론의 핵심[9]에 대립하는 헤겔 변증법의 핵심, 다시 말해 '형식화할 수 없는 구체적 발전의 과정으로서 논리학'이라는 본질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도식이다. 상당히 오래부터 문제시되었는지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헤겔 논리학에 대한 푸르동의 무지를 비꼬며 정반합 도식으로 헤겔을 설명한 바가 있다.헤겔 변증법을 설명하면서 정반합을 꺼내는 일은 없도록 하자. 헤겔을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설명이다.
3.2. 아우프헤벤
헤겔이 정의한 변증법 요소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아우프헤벤이다.지양이라고 번역한다. 문서 참조.
3.3. 범주
변증법에서 모든 범주는 각각 모순적 대립을 이루는 쌍으로서 통일물이다. 실재는 다양한 범주 측면과 관계들이 때마다 불가분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기에, 몇몇 범주도 서로 결합해 있지 않으면 안 되며, 서로 일정하게 의존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범주들의 모든 질서, 그 내용과 형식은 객관적인 것에 연원하며, 주관에 반영된 개념, 판단, 추론으로서 범주 역시 물질의 반영에 기반한다. 상대적 진리 및 절대적 진리란 인간 인식을 통해 객관적 실재의 이 범주 간 보편적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범주 규정의 원칙은 하나의 대립쌍으로 이루어진 두 항이 서로 모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의적으로 '간주'되는 '상대적 쌍'은 범주 규정을 이루지 못한다.
객관적 연관 운동 및 발전 연관 운동의 모든 측면에 존재하는 범주는 나열된 범주보다 훨씬 많을 것이며, 기술된 범주는 대표적 범주를 추린 것이다.
3.3.1. 개별자-특수자-보편자
개별자-특수자-보편자은 한 규정이 보편 내에 포섭되는 포섭 규칙의 일반이다. 개별자는 특수자와 매개되며, 동시에 특수자는 보편자와 매개된다. 궁극적으로 개별자는 보편자와 매개된다. 따라서 보편적 규정이 개별적인 것으로 보이더라도, 이것에 의해 술어로서 보편성을 가진다.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자. 세계 내부에는 무한히 많은 현상과 과정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서로 구별되는데, 이러한 구별은 서로 상이한 규정을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이러한 상이한 규정은 실재적이며, 동시에 객관적이라는 점에서 개별자(Einzelnes)라는 범주가 성립된다.[10]
각각의 개별자는 다른 개별자와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써 객관들의 하나의 특정한 부류에 속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온화된 원소가 열을 내며 운동하는 현상 역시 수많은 개별적인 현상으로 나누어질 수 있으나, 우리는 이것을 연소 과정이라는 하나의 보편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주관 속에서 파악되기 전에 이미 객관적 운동의 한 범주로 되어 있다.
개별자와 보편자의 차이는 상대적이다. 보편적인 것 역시 개별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개별적인 것 역시 보편적인 것으로 될 수 있다. 이는 보편과 개별의 분류에서 역시 쉽게 확인되는 것이다.
특수자는 보편자와 개별자 사이를 잇는 매개자이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혁명은 사회적 혁명이라는 보편자에 대해서는 특수자이며, 동시에 1917년 1월 혁명에 대해서는 보편자이다.
형이상학[11]에서 보편자와 개별자에 대한 취급은 연관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보편자가 개별적인 것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또한 개별자가 보편적인 것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부정하며, 형식적 개념들 사이에 불변적인 상위와 하위의 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자연 현상 광찰에서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은 항상 그 구분이 상대적일 뿐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었다. 가령, '오렌지 나무'는 '오렌지 나는 열매'라는 매개라는 특수자하에서 개별자를 가질 경우, '오렌지'나 '잎사귀'를 포함할 수 있는데, '오렌지'와 '잎사귀'는 같은 매개 방식으로 다시 '오렌지 나무'를 포함할 수 있다.
형이상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든 개념자에 속하는 '관여'라는 매개자를 두었으나, '관여' 역시 매개되어야 했으며, '관여'를 매개하는 '관여의 관여'를 새로 추상하여, 무한 퇴행에 빠지게 되었다.
변증법에서 보편자와 개별자는 서로가 서로를 제약하며, 동시에 하나의 개념자가 다른 개념자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는 두 대립항의 통일물 또는 체계를 형성한 통일물의 군(群)인 모순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모순은 개별자를 통해 그것의 보편성을 실현한다.
3.3.2. 본질과 현상
현상과 본질은 대상, 사물, 객관적 현실 과정의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의 복잡한 통일을 표현한다. 인식의 범주로서의 본질과 현상은, 실천에 기초하여 사물의 심오한 본질을 밝히는 인식 과정의 감성적 계기와 이성적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을 반영한다.현상과 본질에 관한 문제는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 모두 중요한 주제로 되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에서 현상과 본질은 옳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유물론적 감각주의에서 본질은 현상이 곧 본질이며, 본질과 현상을 단지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유물론적 합리주의는 현상과 본질이 갖는 상이한 규정을 옳게 파악했으나, 본질을 파악함에서 감성적 인식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본질 파악을 관조라는 행위에 종속하였다.
형이상학에서 본질은 현상의 이면에서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고 현상을 영원한 어둠으로 산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현상은 열등한 것이고, 고려 가치가 없으며, 사유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만 고찰된다.
헤겔의 저서 《논리의 학》에 대해, 레닌은 그의 관념론적 전제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현상과 본질에 대한 헤겔 학설이 지니는 일련의 긍정적인 점을 지적하였다. 헤겔은 칸트가 본질을 인식될 수 없는 사물 자체로 규정한 후, 그것을 현상과 분리했다는 점을 옳게 지적하였다. 헤겔은 칸트를 포함한 당대 형이상학에 대항하여 현상과 본질에 대한 변증법적 관계를 정초하였다. 그는 현상을 본질에 침투하는 영원한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 내에서 본질은 현상과 상호 연관 하여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그리하여 본질은 현상의 근거 관계이며, 현상에 대한 실재적 근거[12]와 형식적 근거[13]의 통일이 본질임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변증법에서 현상과 본질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규정을 조건으로 갖고 있는, 통일된 것으로 이해된다. 본질은 오로지 현상을 통해 그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이 되며, 현상은 본질의 자기 동일성 확보 과정상의 일면적인 규정을 의미한다. 본질은 현상의 양상 간 관계이며, 추상적으로 규정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본질과 현상의 상호 연관은 일(一)과 다(多)의 통일이며 그것은 단일한 것의 다양한 발현을 표현한다. 본질과 형식 관계는 그 내용이 아닌, 형식의 측면에서 보편과 개별의 범주를 드러낸다. 가령, 음향, 빛, 온도 등은 각이하며 개별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에서 그 매개 현상의 본질은 일반적인 것이다. 그것은 각각 탄성 매질의 운동, 전자기파, 분자의 운동 등이다.
본질은 객관 세계의 내적인, 은폐된, 깊은 과정의 표현이다. 분자, 원자, 전자의 운동이 그러하며, 인력, 자기, 전기의 본성이 그러하다. 우리는 비록 분자의 직접적인 충돌을 식별할 수 없으며 인력, 자기, 전기의 본질을 직접 파악할 수 없고, 그것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이 본질이 자체의 외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본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중에 던진 물체는 반드시 땅에 떨어진다는 것, 어떠한 물체를 만져봄으로써 그 대상이 가열되어 있다는 것 등을 느낀다.
즉 우리가 직접 부딪히는 것은 우선 본질의 표현, 사물의 외적 측면이며, 본질 그 자체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직접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외적 표현과 내적 본질 간의 모순에 대한 실례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관계에서 무수히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은 외관상 ‘노동의 가격’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노동력의 가치이다. 외적 표현은 여기에 있어서도 내적인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것과 모순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현상의 연결 고리를 분석함으로써 산업 자본의 이윤이 잉여 가치를 전유한 결과가 총선대 자본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전면적으로 해명하였다. 잉여 가치의 기원이 왜곡된 형태를 취하는 것은, 실제에서 자본이 서로 떨어진 부분 즉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일체로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본질과 현상의 모순된 통일을 연구함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은, 각이한 본성을 가진 본질은 외적 현상에서도 각이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본질과 사회주의의 본질이 표현되는 특성을 고찰해 보면 우리는 양자 간에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본질과 현상에 관한 인식 과정에서 인간은 우선, 외적 측면 즉 현상과, 내적 측면 즉 본질 간의 불일치에 부딪히게 된다. 현상은 감성적 인식 과정에서 지각적 작용을 통해 각이한 보편적 대상으로 전화한다. 이 각이한 보편적 대상은 추상적 사유 과정의 내용(오성적 인식으로의 전화)이 되며, 추상적 사유 과정의 내용은 오성적 인식에서 자기모순에 도달하고 이성적 인식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한 인식 과정인데, 매개 이론과 실천이 통일되어 있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본질과 현상 간의 모순을 밝히는 것은 인식의 시작점에서는 구체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인식 과정으로서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상승 과정이다.
3.3.3.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마르크스에게서 이 문제는 탐구 대상 및 사유 속에서 반영된 그 대상의 모상에 대한 내적인 구분의 문제로 취급된다.[14] 추상(abstrakt)은 대상에 관해 운동이 마멸된, 정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모든 인식을 말하며, 구체(konkret)는 대상을 그것의 실제적 운동에 근사하는 운동하는 개념으로 파악될 때를 의미한다.인식은 대상에 관한 추상을 구성할 수 있는데, 이러한 추상의 구성은 인간 의식이 독립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산물이 아니라, 객관에 의해 반영되어 의식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 의식의 인식 과정상 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은 대상으로부터 보편적인 대상을 추려내는 것으로, 오성적 인식 단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추상이 구성된다. 점(点), 선(線), 면(面) 등은 물질의 구체적인 운동 양상이 추상된 결과 성립한 개념이다. 이 수학적 개념은 물질의 운동 양상 속에서, 그것에 상응하는 객관적 규정이 존재하기에 인간의 인식 과정 속에 존재할 수 있지만, 인간이 감각적으로 경험한 대상이 실제로 정교한 선이나 면이라는 대상 의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선과 면이 그대로 의식의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아니다.[15] 예를 들어, 수학 교재에서 보는 선과 면은 엄밀히 말하자면 입체적이다. 그것은 그것이 표지된 종이라는 두께를 항상 반영하며, 동시에 그것은 가까이에서 보면 원이나 원통형에 수렴하는 모습으로 감각된다.
추상은 인간 인식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이며, 추상 없는 구체는 존재할 수 없다. 추상은 그것이 실재와의 관계에서 갖는 모순을 반드시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 인식이 그 모순을 인식하게 될 경우, 추상은, 그 추상적인 사유라는 규정의 한계를 자각하고 이성적 인식 단계로서, 구체적 사유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 사유는 비로소 객관적 개념이 형성되는 단계이며, 이 객관적 개념이 이념을 구성하고, 이념이 이론지를 형성하면, 본래 반영의 담지체였던 객관으로의 복귀라는 조건들이 형성된다. 이 조건들의 결과는 올바른 실천이다.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은 다양한 제 추상의 접합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구체는 오로지 추상이 갖는 내적 제약성에 도달해야지만 생성될 수 있다. 추상의 내적 제약성으로의 도달은 인간 인식이 추상적인 것과 객관적 실재 간 모순을 파악했을 때만 가능하다.
3.3.4.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에 대응하며 상호 통일을 이룬다. 또한 헤겔(관념론)과 마르크스-엥겔스(유물론)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엥겔스는 역사적인 방법과 논리적인 방법의 통일에 관해 다루면서 "순수한 사유에서 출발(ging vom reinen Denken aus)"[16]하는 헤겔 변증법의 사변적 특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헤겔이 "최초로 역사에서 발전을, 내적 연관을 입증"[17]하고자 하였던 그의 학문적 노력을 조명한다.
4. 역사
여기서는 용어의 역사가 아닌 논리학적 발전사를 중점으로 다룬다.4.1. 고대-중세
변증법은 서양 문명에서 최초로 체계를 갖춰가면서 발달한 논리적 사고 중 하나다.[18][19]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명문화되지 않았던 개념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변증법을 아예 안 쓴 건 아니고 변증법을 의식하며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역사 속에서는 고대와 중세에 설득과 변론 속에서 주로 써왔던 것들을 대상화해서 다루기 위해 도입했던 개념이다. 변증법적 접근의 목표는 다양한 이견들을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서 환원시키는 것에 있었는데, 이 과정은 곧 민주주의적 사고와도 이어진다.소크라테스의 경우, 하나의 전제가 모순에 도달함을 보여 전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인 개념에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충돌한 이후에 등장하는 효과로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식이라는 아이를 받아낸다는 의미로 산파술이라고도 불렀다. 후대에 헤겔에 와서 완성된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변증법에 비하자면 원형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만 지식을 종합한 결과로서 현실에 대한 그 이전 시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통찰이 산출된다는 부분에서는 일치한다.
4.2. 칸트
칸트는 이율배반 개념을 통해 논리에서 모순의 필연성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이를 주관론적으로 단순히 처리해 버렸고, 대신 헤겔에게서 중대한 논리학적 핵심으로서 재발견된다.칸트에 의하면 변증론이란 가상(假象)의 논리학, 즉 참인 듯이 보이는 오류를 비판하는 논리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경험적 세계 즉 현상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며 초경험적인 것, 예컨대 신이나 영혼 등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본래 개개의 판단을 종합, 통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경험을 초월한 무제약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며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칸트는 이 오류를 선험적 가상이라 불렀는데, 이를 밝히고 비판하는 것이 선험적 변증법의 임무이다. 즉 칸트에게서 변증법이란 플라톤과 같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단지 참인 듯한 오류를 비판하는 소극적인 역할로 규정되어 있었다.
칸트의 이원론적 철학은 피히테, 셸링, 헤겔을 거쳐 절대적 동일 철학으로 발전한다.
4.3. 헤겔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사물의 운동을 파악하여 그 체계적 원리를 분석했다. 그는 세계가 운동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구체적인 사물의 내적 연관을 밝혔다.4.4.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통해 기존의 청년 헤겔학파를 비판하고, 사적 유물론을 수립하였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을 통해 물질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변증법적 해명을 이루었다. 마르크스는 정신의 자기 발전이라는 헤겔의 결론을 비판하며, 그 관념론적인 경향을 철폐하고 헤겔 변증법을 유물론과 결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재탄생시켰다. 오늘날에는 헤겔의 관념론적 계승자인 관념론적 헤겔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마르크스주의)학파가 대립한다.5. 비판
칼 포퍼는 《추측과 논박》에서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비판하면서, 그 자체로 모순을 포함하는 논리학은 모든 명제를 참으로 도출하게 되기 때문에 전혀 논증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20] 그렇지만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하는 것이 포퍼는 헤겔을 읽지도 않고 헤겔을 비난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학계에서 그의 주장을 유의미한 지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6. 기타
- 동방신기의 3집 앨범 "O"-正.反.合.(오정반합)이 변증법을 다룬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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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어 διαλεκτική에서 유래되었다.[2] 고전적인 의미. 이 경우에는 주로 변증술 내지 변증론이라고 한다.[3] 현대적인 의미[4] 부정의 부정,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양에서 질로의 전화 등등.[5] 따라서 그것이 자기 논박적이라는 회의주의에 대한 표준적 반론을 사용하기가 까다로워진다.[6] 이것들이 변증법이 맞는가는 논쟁적이지만 말이다.[7] 즉 역사와 계급 의식에서의 루카치[8] 물론 진짜 수학을 논하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끝내면 수학자들에게 한 소리 듣는다. 저 합명제로의 귀결을 제대로 하려면 실수에서의 곱셈을 제대로 정의하든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이는 자연수의 곱셈을 정수의 곱셈으로, 정수의 곱셈을 유리수의 곱셈으로, 유리수의 곱셈을 실수의 곱셈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요구하며, 이를 위한 자연스럽고 일반화된 방식들이 이미 연구되어 있다(자연수에서 그로텐디크 군(Grothendieck group)을 이용한 정수환(ring)으로의 확장, 정수환에서 얻어지는 the field of quotient로 유리수체(field) 정의하기, 완비화(completion)를 이용하여 유리수체에서 실수체로 확장하기 등이 있다. 이때 덧셈과 곱셈, 대소 관계도 같이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다만 이 예문은 '덧셈'에만 매몰되어 논의가 정체된 상황을 '곱셈'이라는 더욱 향상된 개념으로(자세한 정의 및 설명은 다 생략했지만 어쨌든) 타개하여 논의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진 걸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9] 모든 것을 형식에 기초하여 파악하고 내용을 보지 않는 것.[10] ≪스탈린 선집≫, 제1권, p. 134.[11] 여기에서의 용법은 전통적인 형식 논리학이라는 의미다.[12] 어떠한 한 현상에 대한 동어 반복적 근거로, 예를 들어 "화폐는 금이다.", "내가 넘어진 이유는 돌에 걸렸기 때문이다." 등은 흔히 대상에 대한 ‘옳은 근거’로 취급되지만, 그것은 항상 언술된 ‘본질’에 대해 설명되어야 할 근거를 항상 남겨놓는다는 점에서 동어 반복적 성격을 지닌다.[13] 어떠한 현상에 대한 근거를 규정지을 때, 그것의 단일한, 종적인 근거를 말한다. 가령, "화폐는 물질의 자기 운동의 결과물이다."는 화폐에 대한 형식적 근거이다.[14] 소연방과학아카데미, 문성원 외 역(1990),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변증법」(E. 일리옌코프), ≪맑스주의 변증법의 역사≫, 제1권, 한울림, p. 222.[15] 당연하지만, 감각된 대상에는 점, 선, 면이라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수학적 개념이 서는 것은 그것이 곧바로 대상 의식을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감각물, 지각물에 대한 추상의 결과로 성립되는 것이다.[16] MEW, Bd. 13, Berlin: Dietz-Verlag, 1961, 473.[17] Ibid., 474.[18] 다른 두 가지는 문법과 수사법.[19] 하지만 조금 조심해야 할 것은 당시엔 변증법이 논리학과 동의어 취급이었다.[20] 칼 포퍼, 《추측과 논박 2》, 15장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