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7 18:06:53

위 디오니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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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그는 누구인가?3. 사상
3.1. 위계3.2. 신비주의3.3. 부정 신학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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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스콜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정체불명신학자이자 철학자. 신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신과의 신비주의적 합일을 주장하였다.

본래 그는 1세기 무렵에 사도 바울로의 연설을 듣고 회심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Dionysius Areopagita)라고 알려졌지만, 근대 문헌학 연구를 통해 6세기 누군가가 '디오니시우스'라는 가명으로 저서를 집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후대 철학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막대해서, 그의 저작들은 폐기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2. 그는 누구인가?

6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스스로를 "사도 바울로의 제자, 디오니시우스"라고 자칭한 사람이 쓴 저작들이 돌아다니며 권위를 행사했다. 《사도행전》 17장에 바울로가 아테네로 가서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설교했다는 기술이 있는데, 그 가운데 바울로의 설교를 듣고 몇몇 사람이 그를 믿게 되었고 아레오파고스[1] 재판관(또는 의회 의원) '디오니시오스'라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그의 저작들은 532년, 단성론과의 논쟁에서 처음 언급되기 시작하여 그리스도교 교리 확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 내내 누구도 그가 사도 바울로의 제자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종교개혁 이후 역사적 배경을 세밀하게 따지는 문헌학이 발전하면서[2] 디오니시우스에게도 이런 문헌학 잣대가 대어졌는데, 결론적으로 그는 바울로의 제자는커녕, 그와 같은 시대에 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진짜 이름이나 출생지, 생년, 활동지역 등은 명확하게 알 도리가 없으나, 현대 학자들은 그의 저작과 서신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언급을 바탕으로 서기 5~6세기 초반 시리아 학자라고 추정한다. 저작들을 살펴보면 바울로의 시대에 쓰였다기엔 이상하고 표현방식이나 문체가 오히려 5~6세기에 가까우며, 주창한 개념들도 역시 5~6세기에 부합한다. 532년에 처음으로 그의 저작을 언급한 기록이 나타난 것도 증거 중 하나.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듯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프로클로스5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는데, 위 디오니시우스의 저작에 등장하는 개념인 일자(一者), 미(美), 선(善) 등은 프로클로스의 저작을 공부하지 않고선 나올 수가 없었다. 500년대 초에 그의 저작이 디오니시우스의 이름으로 나오고, 이후 520년에서 540년 사이에 그의 저작을 인용하는 그리스도론 논쟁 관련 문헌들이 나타나므로, 위 디오니시우스의 저작은 500년에서 520년 사이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의문점은 그가 대체 왜 자신의 정체를 숨겼냐는 점이다. 2세기에서 3세기 정도에 쓰여진 그리스도교 위경들도 저자가 스스로를 베드로, 바울로, 12사도 등으로 자처했지만, 이들 또한 그저 자칭이었을 뿐 실제는 아니었는데, 300년이 지나 위 디오니시우스도 이들처럼 행동한 것이다. 디오니시우스가 미천하거나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출신이라,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바울로의 제자 디오니시우스를 자칭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통 당대에 활동했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거의 대다수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 않고 활동했으므로 확실히 위 디오니시우스의 행보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3]

사상적 측면에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보이고 신비주의적 측면이 강해, 일각에선 아예 그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즉 신플라톤주의 사상가가 그리스도교의 탄압을 피하려 사도 바울로의 제자 아레오파고의 디오니시우스로 위장했다는 것. 그러나 그의 저작이 정말로 이교도적이라면 중세 유럽에서 누군가는 '이 책에서 하는 주장이 이상한데?' 하고 태클을 걸 만한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까 중세 유럽의 깐깐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보기에도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므로, 위 디오니시우스가 숫제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3. 사상

3.1. 위계

위 디오니시우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찬가지로 위계(Hierarchy)를 주장한다. 그의 위계가 신플라톤주의와 다른 점은, 신플라톤주의는 〔일자-지성-영혼〕의 위계 구조이지만, 디오니시우스의 위계는 지성에 천사를 배치하고 영혼에 인간의 이성을 배치한다는 점이다.(〔일자-천사-이성〕)

그에 따르면 천상의 존재들도 서열짬밥 순으로 위계가 있으며 천상의 아홉 천사들도 위계에 따라 구분된다. 순서대로 치품천사(세라핌), 지품천사(케루빔), 좌품천사, 주품천사, 역품천사, 능품천사, 권품천사, 대천사, 천사 순이다. 가장 높은 치품천사와 가장 낮은 일반 천사들은 위계에 따라서 하는 일도 다르다. 천사는 지상의 위계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옆에서 하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사람들의 청원을 하느님께 전하는 일을 한다. 대천사는 좀더 중요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탄생을 알린 가브리엘 또한 대천사였다.

또한 위 디오니시우스의 9품천사론에서 상위계급은 하위계급의 이름과 역할을 겸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제일 높은 치품천사는 천상계 모든 천사들의 직품을 겸하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제일 낮은 '천사'란 위계는 모든 천상계 천사들이 그 이름과 역할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통틀어 '천사'라고 부를 수가 있다.

중요한 건 중세 초기 교리학자들이 이런 디오니시우스의 위계론을 가지고 와서, 천상의 그림자인 교회 역시 이런 위계의 질서 하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교리를 세운 것이다. 천사들에게 위계가 있듯이 교회조직도 주교, 신부, 부제 순으로 위계를 이루며, 일반 신자도 정화가 필요한 자들, 중간단계인 하느님의 조명이 비쳐진 신실한 신자들, 그리고 완전히 하느님과 하나됨을 겪은 자들로 나뉘게 된다.

이런 디오니시우스의 위계론은 동방정교회로마 가톨릭교회의 위계적 교회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디오니시우스가 살아있던 시절은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 교리가 정립되고 교회조직도 체계화되던 시점인데, 이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교회 측에서 가상의 디오니시우스를 내세워 권위를 부여하고는 이를 통해 위계질서를 확립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유출 단계설부터 위계질서를 대입하기에 매우 적절한 이론이다)

3.2. 신비주의

위 디오니시우스의 주요 공적 중 하나는 영혼의 상승을 〔정화-조명-합일〕의 세 단계로 공식화한 점이다. 이 형식은 그 후 서양 신비주의의 표준이 되었다. 정화의 1단계는 영혼을 정결케 하는 것을, 조명의 2단계는 하느님의 빛이 영혼을 비추어주는 것을, 그리고 합일의 3단계는 하느님과 하나 되는 체험을 의미한다. 정화의 단계는 육체적인 욕망이나 돈, 권력 등에서 벗어나 영혼을 깨끗하게 준비한다. 조명의 단계에서는 천사로부터 하느님의 '계시'를 전달받는다. 여기서 계시의 메타포는 '하느님의 빛'이다. 즉 하느님의 빛(계시)을 받고 그 계시를 이해해서 구원을 얻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합일의 단계는 계시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이로서 하느님과 연합되고 신과 합일을 이룬다.

위 디오니시우스의 이러한 신적 합일 개념은 모든 관념과 지식을 초월하여 '몰아적 상태'에 이르는 것에 그 토대를 둔다. 따라서 그의 사상적 특징은 '무정념', 즉 이성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오기를 요청한다. 하느님은 말로 형용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이성적 추론으로 도달할 수도 없는 신비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들은 하느님에게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제한하고 멀리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곳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고 일치하게 되는 곳이며 침묵과 암흑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또 그곳은 본질을 넘어선 빛 속이고 모습이나 소리, 개념 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인간이 이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신과 합일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인간이 신과 합일하게 된다면 신비적 침잠의 상태에 빠지게 되어 결국 탈아[4]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3.3. 부정 신학

위 디오니시우스가 이야기하는 하느님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다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적용되는 속성으로 정의내릴 수 없다. 예를 들면 성경에 등장하는 "선하다, 나쁘다, 힘이 있다, 질투한다" 등의 하느님을 묘사하는 표현은 인간의 감각적인 언어로 하느님의 행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 하느님을 정의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무한한 자를 설명하려면 무한한 술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자인 신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유한한 것의 나머지 전부는 무한한 것이 되므로, 우리가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은 아니다'라는 부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이를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선하다'라고 말해선 안되며, '하느님은 악하지 않다'라고 말해야 된다. 왜냐하면 '선하다'는 용어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것은 항상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하느님을 정의할 수 없고, 긍정을 통한 문장은 오직 '하느님은 하느님이다'만 진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위 디오니시우스는 하느님에 대한 묘사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양한다.

이처럼 언어의 불능성을 강조한 위 디오니시우스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중세 사상가들이 유비 철학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4. 여담


[1] 아테네에 있는 돌 언덕의 이름이다. 아테네에서는 유서 깊은 재판장 터이기도 하다.[2] 소위 "콘스탄티누스의 유증"(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이라 불리는 문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때다.[3] 위 디오니시우스보다 한 세대 앞서 활동했던 이들 중에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네스토리우스 같은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칼케돈에서 이단으로 몰려 정죄된 뒤에 그의 모든 저작들이 금서로 몰려 소각되었고, 유일하게 전승되는 저작으로 다마스쿠스 사람 헤라클레이데스의 이름을 빌리는 형식으로 제목을 지은 《다마스쿠스의 헤라클레이데스의 저작》만이 남았다.[4] '나'를 벗어난다는 뜻. 즉 '나'라는 관념을 잊고 몰입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