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25 03:13:41

이원(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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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의 증손
이원 | 李源
파일:황사손 이원.jpg
출생 1962년 9월 23일 ([age(1962-09-2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일대)
재임 기간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이사장
2012년 5월 23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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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colcolor=#fff> 본관 전주 이씨[2]
상협(相協) → 원(源)[3]
부모 친부 이갑
친모 이경숙
양부[사후] 이구
양모 아리타 키누코
형제자매 남동생 이정
여동생 이은영
배우자 최희정
자녀
슬하 2남 [ 펼치기 · 접기 ]
장남 - 이권 (1998 ~ )
차남 - 이영 (1999 ~ )
학력 상문고등학교 (졸업 / 6회)
뉴욕 공과대학교 (신문방송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일병 소집해제#
경력 HBO 프로듀서
현대방송 프로듀서
현대홈쇼핑 디지털 방송 본부장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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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정복고에 관한 시각3. 생애
3.1. 이구 사망 이전3.2. 이구 사망 이후
4. 가족과 후계5. 황실 적통에 대한 논란
5.1. 의친왕의 10남 이석5.2. 의친왕의 차녀 이해원5.3. 이원의 적통 결격사유5.4. 구 황실가족의 입장
6. 여담7. 참고

1. 개요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을 잇는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인물 중 한 명이며[5] 2005년도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이구[6]의 양자로 지명한 인물로, 전주이씨 제사를 봉행하는 '황사손(皇嗣孫)'으로 불리며 종묘대제, 환구대제, 사직대제조선왕릉 제사의 초헌관 역할을 담당한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에게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혈통상 가장 가까운 황실 가문인 이구의 큰 아버지 의친왕계에서 양자를 들여야 했는데, 고종의 증손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이준사동궁 사손으로 의친왕가 종손이었기에 거절하였고, 이준의 사촌동생이자 다음 서열인 이원이 영친왕계 이구의 사후양자로 출계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법상 사후양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민간 종친회의 명목적인 계승이지 공식적인 법적 양자는 아니다.

본인을 황태자, 황태손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의친왕가 황실가에서 거부하자[7], 2012년 본인이 직접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을 설립하여 이 단체에서는 본인을 황태손, 황태자라 부르고 부인을 황태손비, 아들들을 황자라고 부르며 본인이 황실의 적통 인물이라 주장하면서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있으며, 구 황실 재산을 황태손인 자신에게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026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조직운영규정 제66조(주재)를 개정하여 종묘, 사직, 왕릉 포함 조선왕실의 묘·단·능·궁·전·원·묘(廟·壇·陵·宮·殿·園·墓) 봉향을 이원 황사손이 아닌 종약원 이사장이 주재하는 것으로 개정하였다. 종약원 조직운영규정(2026.02.10. 개정)

2. 제정복고에 관한 시각

이원은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거창하게 치른 바 있으며, 현재는 자신을 황사손으로 세워준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본인을 황태자, 가족을 황가로 참칭하는 등 제정복고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기존에 이원이 사용했던[8] 황사손이라는 명칭은 과거 민가에서 가문의 제사를 봉양하기 위해 친척 자녀들 중 뽑힌 사람을 봉사손으로 호칭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구의 사망 이후 모든 제례를 '봉행(奉行)'하는 사람을 일컫도록 만들어진 신조어다. 구 황가의 제례를 받드는 후손이라는 의미인 것.

말로는 제정복고에 반대한다던 이원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열었다. 이 부분이 논란이 되자 이원은 황제를 참칭하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 행사에서 황제 역할을 수행한 것뿐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행보를 보면 단지 여론을 의식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이원이 수장을 맡고 있는 대한황실문화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본인을 '황태자', 아내를 '황태자비', 아들들을 '황자'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대한황실문화원에서 배포하고 있는 단체 소개 브로셔에서 본인을 '황태자 이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2020년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에서도 스스로를 '황태자'로 칭했으며, 2022년 이후로는 '황태손'으로 표기하면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자신과 그 가족을 황실로 참칭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9]

이원은 자신은 단순히 제례를 봉행하는 황사손이 아니라 조선왕실대한황실의 적통을 이은 인물을 뜻하는 '황태자' 혹은 '황태손'으로 호칭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2005년에 전주이씨 종친회인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으로부터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사후양자로 지명을 받았기에, 자신은 '황사손'이라고 불리면 안 되고, 노골적으로 황실의 수장, 황실의 적통, 황실의 대통을 이은 사람으로 인정하라는 것.

그러나 이원을 황사손으로 지명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이를 거부하자 이원은 2012년 스스로 대한황실문화원을 설립하여 단체소개하는 팜플렛과 홈페이지에서 본인을 '황태자'로 소개하기 시작했고, 영문 소개에서 본인의 호칭을 'Crown Prince'로 고쳤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본인을 황실 적통 황태손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선 '황사손'이라 부르고, 본인이 설립한 대한황실문화원에선 '황태손'이라고 부르겠다는 희한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대한황실문화원의 이사진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임원단 모두 전주 이씨 종친회 사람들이다 보니 전주이씨 종친들이 종약원에서는 '황사손', 이원 앞에서는 '황태손'으로 부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원의 황사손 지위를 떠받쳐주는 전주 이씨 가문 내 세력 기반이나 다름없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조차 이원의 요구를 무시하는 와중에,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한황실문화원에서라도 '황태자'/'황태손' 호칭을 받으려 하는 등, 칭호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명목상이지만) 양조부인 영친왕이 '황태자'였고, 양부 이구가 '황세손'으로 불렸던 점을 고려할 때, 이원이 '황태자'나 '황태손'이 되는 것은 예법상 적절하지 않다. 양아버지 이구가 '황세손'으로 불린 판에 이원이 '황태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부적절한데, 이구를 가리키던 '황세손'이나, 현재 이원을 지칭하는 '황사손'이라는 호칭은 왕정 시절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조어라는 점을 들어, 이원은 오히려 자신을 '황태자' 또는 '황태손'으로 불러야 예법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황제국의 호칭 체계대로라면, '황' 다음에 '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저 주장이 맞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 시대에는 '황태자'나 '황태손'이라는 호칭이 더욱 부적절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한반도의 마지막 황제는 죽은 지 [age(1926-04-25)]년이 지났다. 그리고 '황태자'나 '황태손'은 단순히 서열만으로 자동으로 주어지는 작위가 아니라, 황제의 책봉을 통해서만 부여되는 지위이다.[10]

그런데 현재는 이원을 책봉할 수 있는 황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예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황제의 책봉이 필요 없는 신조어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의친왕가는 2005년 이원을 이구의 사후양자로 출계시킬 때 '황태손'이 아닌 황사손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사실 민주공화국 시기에 구 황실의 후손들에게 저런 호칭을 별도로 만들어 칭하는 것 자체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원이 가지는 유일한 정당성은 종친회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이구의 사후양자로 지명한 것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사후양자는 대한민국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제도[11]이므로, 이원이 이구를 계승한 것은 그저 종친회 족보상의 사적인 계승일 뿐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이석, 이해원 등 적통을 주장하는 다른 구 황족들도 다 각각의 민간단체에서 지명을 받고 있고, 이원 역시 민간단체에서 지명됐기 때문에 이들보다 정당성 면에서 나은 것이 없다. 정작 이원은 자신의 친척인 황족들 사이에서조차 자신이 황실의 적통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12]

한편 이원보다 황실 복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의친왕의 10남인 이석[13]이나 의친왕의 차녀인 이해원[14][15] 정도가 있다. 반체제 성향의 복벽주의자들이 내부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구 황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고, 이석 등은 구 황실 제사에도 참여하며 구 황가 일원들에게 극진히 예우받고 있다.

3. 생애

3.1. 이구 사망 이전

1962년 9월 2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에서 의친왕의 9남 이갑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81년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아버지 이갑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공과대학교(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약칭 NYIT)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 케이블 회사인 HBO에서 6년간 PD로 근무했다. 1990년 귀국 후엔 광고 회사 금강기획[16]에서 5년 동안 방송 제작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에는 케이블 채널 현대방송에서 PD로 일했다. 또한 결혼 관련 케이블 채널인 뷰티TV에 설립 멤버로 참여했고, H.O.T.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는 관련 캐릭터 사업을 담당했으며, 그들이 주연으로 나온 3차원 입체 영화 〈평화의 시대〉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후 2001년 현대홈쇼핑 개국과 동시에 창립 멤버로 합류했고, 여러 팀의 부장으로 재직했다. 황사손 지명 당시에는 상품 제2본부 아동레포츠팀 부장이었다.#

3.2. 이구 사망 이후

2005년 7월 16일, 슬하에 후손 없이 사망한 이구[17] 사후양자(死後養子)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으로부터 지명받았다. 그러나 현행 민법상 사후 양자 제도[18]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이구와 남남이다.[19] 이구의 비공식 양자가 된 이후 황사손(皇嗣孫)[20]으로서 현재 조선왕릉이나 종묘에서 초헌관을 맡고 있다.
파일:선원계보기략_황실족보.png
<colbgcolor=#29176e> 《선원계보기략》에 실린 고종 후손의 가계도
순종영친왕의 후사가 다 끊긴 상황에서, 그들의 유일한 형제인 의친왕의 손자가 (명목상이나마) 이구의 양자로 지명되는 것 자체는 적절했다. 그중에서도 굳이 9남 이갑의 장남인 이원이 지명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일본으로 귀화했고,[21] 의친왕가를 계승한 6남 이곤 외에 2남부터 7남까지는 이미 각각 출계하여 법적으로는 다른 방계 황족의 후사를 이었고(2남 이우, 3남 이방, 4남 이창, 5남 이주, 7남 이광), 8남 이현은 독신이었다. 가장 서열이 높던 의친왕의 후계자 이곤의 아들 이준은 의친왕가의 종손으로 사동궁을 잇겠다며 지명을 거부했고, 그 다음 서열이 지명됐는데 그게 바로 이원이었다. 양자 입적 후 사촌형이자 의친왕가 종손 이준과 함께 삼년상을 치뤘다.

본인은 스스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혹은 '명예총재'라고 명명하곤 했지만, 정작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1대 총재 의친왕 이강, 2대 총재 영친왕 이은, 3대 총재 회은황세손 이구로 이어지는 총재직을 2019년 정관에서 삭제했다. 그에 따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이화빌딩 4층의 총재실을 철거하였고, 이원은 이화빌딩 3층의 창고를 할당받아 본인을 황사손으로 지명해준 종약원과 별도로 대한황실문화원을 설립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오죽하면 본인들이 임명한 황사손의 총재 자격도 정관에서 삭제하고 쓰던 방도 철거했을까-.

조선 왕실과 단순 전주이씨의 종친회는 이미 조선 시대부터 족보와 제향 모두 분리되어 있었으나 도리어 현재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이화문(오얏꽃)을 심벌로 사용하고 조선의 5대 제향 및 조선 왕릉 제향 전반을 도맡는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에 황실 숭모 사업을 시도한 민간 단체가 여럿 생기며 황손 가계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오히려 종약원에서는 "황손들을 일반 전주 이씨 방계처럼 의친왕파로 분파시키자!"라는 성토까지 있었다. 전주이씨 종친회인 대동종약원은 일찍부터 왕실에서 분파해 그 후손의 수가 많은 파, 그중 특히 효령대군파의 입김이 강하다.

2020년 이후 이원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측에 '황사손'이라는 직함을 '황태손'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친족들인 의친왕가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원은 2012년 5월 23일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을 세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스스로를 황태자, 황태손으로 부르고 외부기관에는 본인이 황실의 적통이라 주장하고 있다.

원래는 회사 생활과 황실 의례를 병행하려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으로부터 매월 일정한 금액을 받고 있다.

4. 가족과 후계

생부 이갑의친왕궁 밖에서 태어나고 생모와 살았기 때문에 황실 가족들과 교류가 없어 뿌리를 몰랐고, 부친 의친왕과는 만난 적이 없었기에 한국에서 이혼한 후 1981년 미국 이민을 가서 이복누나 이해경에게 구 황가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본인이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원은 생부 이갑이 미국에서 재혼하고 계모와 살게 되면서 본인과 사이가 틀어졌고 급기야는 한국으로 돌아와 생부와 의절을 하였다. 명목상 양부 이구와는 살아생전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슬하에 아들이 2명 있다. 이원은 아들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황사손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아들들의 뜻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5. 황실 적통에 대한 논란

이원은 본인이 조선 왕실과 대한 황실의 법통을 이어 황실의 수장이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인물 중 한 명이다. 이원을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측에서는, 그를 황사손으로 지명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민간 종친 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5대 제향 및 왕릉 제향의 초헌관을 일임하는 제주 역할은 인정하나, 그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이은 인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원을 제주로서만 인정하는 구 황족들은 이원을 황사손도 아닌 봉사손으로 칭한다.

5.1. 의친왕의 10남 이석

그를 황실의 적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 인물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 황실문화재단의 총재이자 의친왕의 10남인 이석이다. 이 사람은 강경 복벽주의자로, "애초 순종 황제 다음 황위가 바로 손아래 동생인 의친왕이 아닌, 당시 10살에 불과한 영친왕을 옹립한 것 자체가 일본의 결정이었고, 황실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으며, 그 황태자로 책봉된 영친왕이 침략국 일본의 왕족인 이방자 여사와 강제 결혼하여 일본인 혼혈 아들을 낳아 대한 황실의 적통을 잇게 하는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황실의 위계대로 황통이 영친왕이 아닌 형인 의친왕으로 돌리자는 주장은 일제 잔재 청산의 의미로 대중의 설득력을 얻기는 했으나, 의친왕으로 황통이 이어진다고 한들, 의친왕의 10남에 불과한 이석이 황통을 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의친왕의 후계자는 6남인 이곤이고, 이석과 이곤 사이에도 형제들이 있는 만큼 예법상 이석의 조카들[22]이 계승서열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당장 의친왕의 후계자 이곤의 장남인 이준이 황실 서열 1위이고, 이준의 사촌 동생인 이원이 영친왕계로 출계하여 전주이씨대동종약원 황사손으로 봉무하고 있고, 그 외 본인보다 승계 서열이 높은 조카[23]들이 살아있다.

그러나 이석은 본인이 황실 적통이라 주장하고 있고[24], 아들이 없이 딸만 둘[25]인 이석은 2018년 재미 교포 앤드류 리(한국명 이상민)를 양자로 들여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그를 황태자로 임명하는 의식을 치르며 이원이 황실의 수장이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한국일보》:대한제국 황세손 남가주 대저택 사다.《조선일보》:138억 미국 대저택 매입 알고보니 대한제국 황태자

5.2. 의친왕의 차녀 이해원

이원을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단체는 대한제국황족회[26]라는 이름의 기독교 계열 종교 단체이다. 2005년 이구가 후사 없이 죽은 뒤이원을 양자로 들여 황실 적통을 잇게 하자, 의친왕의 차녀 이해원은 이원의 아버지 이갑(아명 이충길)의 어머니 함씨가 당호를 받지 못한 첩이라는 점과 의친왕의 아들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이원이 황실의 적통을 잇는 것을 반대했다. 이 단체는 2006년 당시 살아있는 황실의 후손 중 가장 연장자였던 이해원(의친왕의 차녀)를 여황제로 옹립하고 대관식을 열어 대한제국 황실이 부활했다고 선언했다.KBS 뉴스:대한제국 황위 이해원 옹주 승계…'황실 부활' 선언 그러나 대한제국황족회라는 단체에는 정작 대한제국 황실 후손이 없고, 기독교 계열 종교 단체가 주축이 된 것으로 논란이 있었다.

5.3. 이원의 적통 결격사유

정리하자면 이원을 황실의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순종효황제 다음으로 손아래 동생인 의친왕이 황통을 이었어야 했는데, 일제의 농간과 순헌황귀비의 희망, 그리고 항일 정신이 투철한 의친왕을 껄끄럽게 여긴 이토 히로부미는 20살이나 어린 영친왕을 황태자로 임명하고, 일본으로 끌고가 일본인 이방자와 강제결혼 시켜서 혼혈 아들 이구를 낳았다. 영친왕이 황태자로 임명된 것은 일제가 개입하였기에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다시 황통을 의친왕으로 되돌려야 한다.
* 이원의 아버지 이갑(의친왕의 9남)의 어머니 함씨는 사동궁에서 당호를 받지 못한 첩이다.
* 이갑은 사동궁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외부에서 태어나 생모와 생활했었기에 정작 황실의 예법이나 문화를 모른다.
* 이원은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정작 황실가의 후손들과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황실가의 중심이 될 수 없다.
* 대한민국은 사후 양자 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원은 합법적으로 이구의 가계를 잇지 못하는 명목상 양자이다.
* 전주 이씨의 종친 단체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의친왕을 1대 총재, 영친왕을 2대 총재, 이구 황세손을 3대 총재로 인정했으나, 이원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총재 혹은 명예총재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 고종의 후손 30여명의 황실 후손들은 이원을 제주로는 인정하지만 황실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 이원이 설립한 대한황실문화원에 그의 친척인 황실후손들은 없으며 이원이 참석하는 제향에 함께하는 황족이 없다. 구 황족들 모임에 이원은 참석을 하지 않는 만큼 황실후손들과 교류를 끊고 있어 대표성이 희미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정통성 논란이 있다.

5.4. 구 황실가족의 입장

굳이 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선원계보기략》의 황실 가계도를 근거로 적통을 꼽자면, 고종의 장증손이자 의친왕가의 종손인 이준이 황통 승계 서열 1위가 된다. 그러나 2005년 이구의 양자로 출계하여 황사손으로 봉무하라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제안도 거절하고, 동생 이원에게 넘겨주는 등, 이 사람은 황실 적통 승계에는 관심이 없고[27], 의친왕과 황실 선양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우리가 잘 모르는 의친왕의 삶, 역사적 재평가 꼭 해야죠)

이와는 별개로 이준영친왕계로 이어지는 것을 존중하는 입장이다. 그는 '광복 후 많은 정치인, 학자, 독립운동가 등이 의친왕으로 황통을 복구하자는 건의를 드리러 사동궁으로 조부님을 찾아왔다. 그러나 비록 일제가 영친왕을 순종의 황태자로 임명했던 과거가 있더라도 민주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선원계보》 변경은 의미도 없으며,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었기에 조부님은 황통 변경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라고 하면서, '아픈 역사도 역사로서 존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28] 그리고 의친왕의 5녀 이해경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에서, '해방 직후 영친왕이 친일파이니 황통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두고, 황실 어른들은 "영친왕이 어려서 볼모로 끌려갔는데 이제 와서 친일파라고 세자가 아니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노했다.'라고 서술했다.[29]

종합해보면 구 황가의 구성원들은 이원이 전주이씨의 제사를 봉행하는 제주라는 점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원이 구 황실의 적통을 이은 사람이냐에 관해서는 구 황가 내에서도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30]

게다가 이원은 설, 추석 등 황실가의 명절 모임, 구 황실 가족의 장례식이나 결혼식 등 관혼상제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친족인 구 황실 가족들과 교류를 끊고 홀로 황실의 적통, 황실의 수장이라고 셀프참칭 중이다.

고종황제 후손 50여명의 구 황가 일가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의친왕가 이준 종손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홍유릉에 성묘 도는 것이 목격되는데 이원은 이 때도 참석하지 않는다. 구 황실가는 매월 8월 15일에 의친왕의친왕비의 제향을 모시는데, 이 자리에도 이원은 참석을 하지 않을 정도로 구 황가와 완전히 교류를 끊고 혼자 황태손을 참칭하고 있다.

2026년 기준 자신이 황실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석과 이원 두 명이며, 정작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황실 서열이 가장 높은 이준은 황실의 적통, 수장은 순종 황제에서 끝났고, 대한민국 시대에 본인은 적통에 관심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체적으로 구 황실가의 입장은 이원을 황실의 제사를 봉행하는 황사손으로는 인정하나 이원이 요구하는 황실 수장이나 대표를 뜻하는 '황태손'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6. 여담

  • 2020년 10월 개최된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중 하나인 〈헬로우 황태자〉에 출연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썸네일과 프로그램 명칭에서 드러나듯 스스로 황태자라고 자칭하고 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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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헬로우 황태자〉 Ep2) 〈오상진, 낙선재에 무슨 일로 오셨소? - 낙선재, 슬프지만 아름다운〉 <colbgcolor=#29176e> 〈헬로우 황태자〉 Ep3) 〈전하! 대한제국 오얏꽃에 무슨 일이? - 못다 핀 오얏꽃,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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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한 황사손(이원)
  • 증조할아버지인 고종을 개명군주(開明君主)로 평가했다.# 다만 "내 할아버지가 나라를 제대로 못 지켰다"는 말을 한 적도 있어서# 고종을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아닌 듯하다. 두 기사 사이에 8년의 시차가 있어서 그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왕으로서 좀 적극적으로 잘했어야지 정도의 아쉬움의 표현으로 해석하면 말은 된다.

7. 참고


[1] 대한황실문화원 홈페이지 및 SNS[2] 시조 43세, 태조 22대손[3] 2005년 7월 16일 황세손 이구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의친왕계 중에서 양자를 들였어야 했는데 당시 황실 계승서열 1위 이준은 사동궁 사손으로 의친왕가를 계승해야 했기에 황실의 후손들이 상의 끝에 이준 다음 서열인 이상협이 전주이씨대동종약원으로 부터 사후 양자로 지명받고, 2020년 '원'으로 개명하였다.[사후] 사후양자 지명이므로 법적 효력은 없다.[5] 또 다른 인물로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석(의친왕의 10남)과 2005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이원을 지명한 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전주이씨 종친들이 만든 '문화대한제국'이라는 단체에서 옹립한 여황제 이해원(의친왕의 2녀)도 있었으나, 이해원은 2020년에 사망하였다. 정작 황실 승계 서열 1위였던 이준(의친왕의 장손자)은 적통 승계에 관심이 없어보인다.[6] 고종황제의 3남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로, 2005년 후사가 없이 사망하였기에 큰 아버지 의친왕가에서 양자를 들여 대를 잇게 해야 했다.[7]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의친왕가 황실가족들은 제사를 봉행하는 '황사손' 역할을 맡긴 것이지, 황실의 수장이나 대표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확고히 하였다.[8] 황태자/황태손을 참칭 중인 이원 본인만 황사손 칭호를 쓰지 않을 뿐,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의 단체에서는 지금도 사용한다.[9] 출처: 〈이원 대한제국황사손 2024년 신년 메시지, “시민이 편안하고, 세계가 평화로운 세상 염원”〉, 《세종대왕신문》, 2024년 1월 1일., 〈2024년 3월 9일, 대한황실TV '개국' / 안녕하십니까? 황태손 이원입니다 [대한황실TV]〉, 유튜브 《대한황실TV》, 2024년 3월 9일.[10]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는 황태자의 적장자로서 지위가 확실함에도 황제에게 책봉을 못 받아 '황태손' 칭호를 받지 못하고, 단지 '군왕(郡王)' 으로만 머물렀던 사례가 있었다. 당 헌종이 그 예. 멀리 갈 것 없이 조선에도 사례가 있다. 정조영조의 장손이었음에도 태어난 직후가 아닌 6세에야 세손으로 책봉되었고, 순조는 정조의 유일한 후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죽기 직전까지 세자 칭호를 못 받았다.[11] 호적이 상속제로 돌아갔던 시절에는 호적을 상속받을 후사가 없는 경우에 한해 사후양자 입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원이 황사손으로 지명된 2005년에는 호적제도가 상속에서 단순 승계로 변경된 지 오래였고, 2008년부터는 아예 호적이란 개념이 없어진다.[12] 이는 이구 사망 이후 이원이 황사손으로 지명된 것이 이해경, 이준, 이갑 등 소수의 구 황족들에 의해 결정된 점이 크다. 이원을 황사손으로 지명한 종약원조차 이원의 황태손 참칭을 거부하고 있고, 게다가 이원이 조선 왕릉 제례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구 황족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마당에 자신을 제례의 봉행자에서 그치지 않고 황실의 적통을 이은 사람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니 먹힐 리가 없다.[13]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그 가수가 맞다. 황실 복원 및 본인 황위 계승을 가장 열정적으로 주장하며 BBC 인터뷰 등에서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대표적으로 상술한 BBC 인터뷰와 채널A 〈쾌도난마〉에서의 낭설 주장 등 구 황실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남겼다.[14] 2020년 사망했다. 드라마 〈궁〉 열풍이 불던 2006년 9월 29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문화대한제국'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에 의해 '제30대 대한제국 여제'로 옹립되었지만,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대수가 '30대'인 것은 순종(27대)에 이어 영친왕이구를 각각 28대, 29대 황제로 간주한 것.[15] 엄밀히 말해서, 족보와 계보도가 중요한 《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이해원은 의친왕의 차녀로 태어나긴 했지만, 남연군의 종가인 계동궁의 종손 이기용에게 양녀로 갔기 때문에 황실 계보도 상으로는 의친왕의 딸이 아닌 이기용의 딸이다. 어차피 의미는 없지만, 설사 여황제를 인정하더라도, 황실 족보상 의친왕의 딸이 아닌 이해원이 대통을 잇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딸 중에서는 의친왕의 5녀인 이해경이 의친왕 '가문'의 첫 딸이 된다. 이해경이 의친왕비 김씨의 호적으로 들어간 유일한 딸이기 때문이다. 이해경의 언니들도 이기용에게 입적했는데, 이들은 이기용의 호적에 있던 상태에서 결혼을 했기 때문에 굳이 의친왕비의 호적으로 들어가기 어려웠지만, 이해경은 미혼이어서 가능했다.[16] 정주영 시절 현대그룹의 광고 기획을 위해 1982년에 설립된 기업.[17] 자신이 태어난 도쿄 구저택이 있었던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신관 객실에 머물다 갑작스럽게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18] 직계 비속 없이 사망한 사람의 입후를 위하여 배우자, 직계 존속 또는 친족회 등 선정권자가 양자를 지명할 수 있는 제도로 주로 제사를 잇기 위하여 인정되었다. 조선 세종 때 도입되어 대한민국 민법도 1991년까지는 사후 양자를 법률상 양자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호주 상속'이 '호주 승계'로 변경되면서 사후 입양은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갖지 않게 되었다.[19] 그러나 제사를 맡은 명목상 양자로서 홍유릉 내의 회인원 제향에서도 직접 초헌(初獻)하며, 공석에서는 이구를 '아버님'으로 호칭한다.[20] 황사손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측에서는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라는 뜻의 '봉사손(奉祀孫)'이라고만 칭한다.[21] 이후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하긴 했으나 그 자식들은 일본인으로 사는 등 전주 이씨 집안과는 관련 없는 집안이 되었다.[22] 이곤의 아들인 이준이 이미 계승을 거부했지만, 이곤의 동생이자 이석의 형인 이갑이 아들만 둘이다. 그중 하나가 종약원에서 황사손으로 지명된 이원.[23] 이석의 장조카 이준, 이원의 동생 이상우 등[24] 그의 주장은 자신이 황실 복원 운동을 가장 활발히 한 점, 그리고 현시점에서 의친왕의 생존해 있는 아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라는 점에서 본인이 황실 적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 양반집의 계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본인의 장조카가 본인보다 황실 승계 서열이 높다. 그의 직계 조상인 수양대군처럼 단종을 몰아내 죽이지 않는 한.[25] 장녀 이홍, 차녀 이진.[26] 정작 진짜 황족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후에 단체명을 '문화대한제국'으로 바꿨다.[27] 민주공화정에서 적통이 무슨 의미냐며, 적통은 순종에서 끝났다고 주장하는 공화주의자[28] 출처: 의친왕기념사업회 블로그.[29] 출처: 이해경, 2023,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259쪽.[30] 본인이 황태자비라고 부르는 부인과, 황자라고 부르는 두 아들을 제외하고는[31] 첫 번째 에피소드인 〈살아있다! 대한민국에 황태자가? - 종묘제례 주관자로서의 삶〉은 다른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없고 궁중문화축전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만 시청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