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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곤(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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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건 의친왕 이곤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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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 제3대 궁주
<colbgcolor=#29176e><colcolor=#ffffff> 대한제국 고종의 손자
이곤 | 李錕
파일:PrinceYiGon_royalscreen.png
출생 1919년 1월 3일
경기도 경성부 관훈정 사동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1]
사망 1984년 3월 23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성바오로 병원
재임기간 사동궁 제3대 궁주
1955년 8월 16일 ~ 1984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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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colcolor=#fff> 본관 전주 이씨
곤(錕)
아명 명길(明吉)
부모 부친 의친왕 이강
적모 의친왕비 김덕수
생모 수인당 김흥인
형제자매 동복형 이우, 이수길[2]
이복형 이건[3]
이복동생 이해원, 이해청, 이해경, 이갑[4], 이석
배우자 황경생(黃慶生)1919년생
자녀
2남 3녀 [ 펼치기 · 접기 ]
장녀 이양(李洋)
차녀 이기(李淇)
장남 이수[5]
삼녀 이제(李濟)
차남 이준(李浚)
최종 당적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약력 대한민국 국회 국회도서관 사서 (1960~1962)
민주당 초급행정특보위원
대한민국 국회 국회사무처 직원 (1964~1974)
민주정의당 특임행정위원 (1981~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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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이곤 혼례 사진4. 사동궁 사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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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6남으로 의친왕가인 사동궁의 후계자였던 인물이다. 대한민국공무원민주정의당 소속 특임행정위원을 지냈다.

어머니는 수인당 김흥인(修仁堂 金興仁)으로, 이우이수길은 동복 형이다.

2. 생애

1919년에 의친왕궁인 사동궁에서 의친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 중후반 의친왕은 의친왕비 김씨와 수인당 김씨를 동행하고 전국순회를 떠난다. 순회는 명목이고,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자금을 모을 목적으로 전국을 순회하게 되는데 그 일이 발각되어 일제에 의해 큰 고역을 치른 후, 각서를 작성하고 1930년에 일본으로 강제 압송된다. 이때 수인당 김씨가 의친왕과 일본으로 함께 가게 되는데 의친왕의 아들인 이곤 황손도 함께 동행하게 된다.

첫째 아들 이건, 둘째 아들 이우, 다섯째 아들 이주와 함께 일본에 볼모가 되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일본 릿쇼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했다. 형 이우가 "일본이 곧 패망하니 조선으로 돌아가자."라고 권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8.15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의 견제 속에 황실 재산이 모두 국유화 되어 궁핍한 삶을 살았다. 왕실보조비가 나오긴 했지만 명목상의 액수여서 살림에 큰 보탬은 되지 못했다. 6.25 전쟁 때는 미군 부대 통역관, 거제도포로수용소 미군식당 등에서 많은 일을 했다.#

6.25 전쟁 이전에는 사동궁에서 거주하다가 휴전 후 덕수궁에서 거주했다.#

제2공화국 시기인 1960년에 장면 총리의 천거로 국회도서관 사서로 2년간 일했으며, 이후 민주공화당 황호현 의원의 추천으로 1964년부터 1974년까지 국회사무처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62년에 덕수궁 궁담을 없애고 철책을 새로 만들 때 나와서 청량리홍릉 한 구석에 낡은 마굿간을 개조하여 7년 간 임대료 2,250원을 내고 살았다. 그러나 문화재관리국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1967년부터 7차례나 철거통지를 보냈고, 결국 1969년 4월에 철거하여 이곤의 가족들은 퇴거당했다. 당장 갈 곳이 없어 홍릉 한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새려했으나, 하필 비가 쏟아져 근처의 누각 처마 밑으로 옮겨야 했다.#

1984년 1월 14일 교통사고를 당한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3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3. 이곤 혼례 사진

파일:이곤 혼례사진.jpg
<colbgcolor=#29176e> 이곤 혼례사진. 의친왕 및 의친왕비 김씨와 그리고 의친왕의 자녀들이 함께 배석한 대한황실의 유일한 혼례사진이다. 뒤로는 사동궁 양관이 보인다. 의친왕의 뒤편으로는 의친왕의 3남 이방, 4남 이창, 5남 이주, 8남 이현과 셋째 사위, 넷째 사위가 있고, 의친왕비 김씨 뒤편으로는 셋째 며느리, 의친왕의 1녀 이해완, 5녀 이해경, 4녀 이해숙, 3녀 이해춘, 다섯째 며느리가 배석하고 있다.
파일:이곤혼례사진2.jpg
<colbgcolor=#29176e> 이곤 혼례사진

4. 사동궁 사손

의친왕은 12남 9녀의 자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 이건은 일본인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귀화를 하였고, 둘째 아들 이우는 운현궁의 이준용에게, 셋째 아들 이방은 소현세자파의 이기손에게, 넷째 아들 이창은 은전군파의 이헌용에게, 다섯째 아들 이주는 인평대군파의 이인용에게 각각 양자로 출계함에 따라서, 여섯째 아들 이곤이 의친왕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사동궁의 사손이 되어 의친왕과 의친왕비의 별세 후 상주가 되어 제사를 모시게 된다.
파일:의친왕장례식_상주_이곤황손.jpg
파일:의친왕비 김비마마 장례식_상주_이곤황손.jpg
<colbgcolor=#29176e> 1955년 의친왕 장례식에서 상주를 맡은 이곤 <colbgcolor=#29176e> 1964년 의친왕비 장례식에서 상주를 맡은 이곤
사동궁 사손 지위는 아들 이준이 물려받아 의친왕 가문의 종손으로 이어진다. 이준에게는 아들 2명이 있기에 향후 사동궁 사손은 이준의 자녀들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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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917~1982. 대한민국 외교관까지 역임했다.[3] 후에 일본인으로 귀화하며 모모야마 켄이치로 개명.[4] 현 대한제국 황사손 이원의 생부.[5] 걸음마를 갓 뗀 아기 때 덕수궁 안을 돌아다니다가 석조전 분수대에 빠져 요절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차남 이준이 사실상의 장남이자 독자가 되었고, 이곤 사후 사동궁 사손 지위를 물려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