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어밀리아 에어하트 Amelia Earhart | |
본명 | 아밀리아 메리 에어하트 Amelia Mary Earhart |
출생 | 1897년 7월 24일 |
미국 캔자스 주 애취슨 | |
실종 | 1937년 7월 2일 (당시 39세)[1] |
하울랜드섬 부근 | |
사망 판정 | 1939년 1월 5일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비행사, 작가 |
배우자 | 조지 P. 퍼트넘[2] |
학력 | 오곤츠 학교 (비졸업) 컬럼비아 대학교 (비졸업) |
수상 | 수훈 비행 십자장 |
링크 | 공식 사이트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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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여성 비행사. 여성 비행사가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여성 최초 대서양 횡단이나 여성 최초 북아메리카 횡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결국 1937년 세계일주 비행 도전 중 실종되었고, 현재까지도 자세한 실종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2. 비행사가 되기까지
1897년 캔자스 태생으로 원래는 비행사가 아니라 의학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종군하기도 했는데, 이때 위문공연차 온 항공대의 곡예비행단을 보고 매료되어 비행사로 전향했다고 한다.[3] 1921년부터 비행훈련을 받기 시작해 같은해 7월 개인 비행기를 구입[4], 1년 후 1922년 10월에 고도 4,300m의 비행기록을 세웠고 1923년에 들어서 국제항공연맹에 인정받아 16번째 여성 파일럿으로 정식 등록되었다.에어하트와 개인 비행기 '카나리아(The Canary)'[5] |
1925년에 매사추세츠로 이사해 데니스 공항에서 첫 공식비행을 기록했다.
3. 업적
3.1. 대서양 횡단
어밀리아 에어하트에 대한 기록 중 빠질 수 없는게 대서양 횡단인데, 마침 1927년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Charles Augustus Lindbergh, 1902~1974)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을 성공한 참이었다. 그리하여 1928년 4월에 미군의 힐턴 대령은 에어하트에게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에 성공한 여성 파일럿'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에어하트는 물론 받아들였다.결국 비행은 성공했고, 에어하트는 환대를 받으면서 캘빈 쿨리지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다만 이 비행은 계기비행으로, 조종사가 직접 바깥상황을 보면서 조종하는 시계비행이 아니라 계기판을 보면서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보통 주변 시야환경이 좋지 않을 때 시행하는 비행방식이었는데, 당시 에어하트는 계기비행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육군 항공대 측에서는[6] 다른 베테랑 파일럿들을 붙여줘서 자신은 사실상 아무것도 안하는 짐짝같은 취급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7] 이로 인해 언젠가는 진짜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3.2. 북아메리카 횡단
결국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성공했다. 1928년 8월에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해서 공식적으로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한 첫 여성 파일럿' 칭호를 얻는다. 이쯤 들어서는 비행 실력이나 기량도 부쩍 상승했다고 한다.3.3. 두 번째 대서양 횡단
박물관에 보관된 록히드 베가 5b |
그리고 두 번째 자력으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하게 된다. 단발 프로펠러기인 록히드 베가 5b 기종으로 뉴펀들랜드에서 출발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무착륙 비행으로. 대략 14시간의 비행 끝에 결국 기상 악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아일랜드의 데리에 착륙함으로써 파리까지 간다는 목표는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대서양 무착륙 횡단은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대서양 횡단은 실제로 본인이 조종해서 무착륙으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기 때문에 더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메달까지 받았다.
3.4. 그 외 비행기록
4. 실종과 관련 설
자세한 내용은 어밀리아 에어하트 실종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5. 기타
남아있는 에어하트의 사진들을 보면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이 거의 없는데, 치아상태가 너무 나빠서 사진을 좋게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고 한다.[8]비슷한 사람으로 식민지 시대 한국의 여성 비행사이자 영화 《청연》의 실제 주인공인 박경원이 있지만 그녀는 친일파 경력이 있어 평가절하 및 까임을 받고(박경원이나 권기옥 둘 다 청연 문서 참고) 되려 박경원과 달리 친일과 거리가 멀면서 박경원과는 정반대로 항일에 나선 여조종사 권기옥이 재평가되고 있다. 박경원과 달리 에어하트는 깔끔한 이미지인데다가 여성 인권 상향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에어하트가 생전 매던 스카프는 여성 파일럿의 상징이 되었다. NASA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인 아일린 콜린스는 첫 미션인 STS-63(디스커버리)에서 에어하트의 하얀 스카프를 가져갔다.
생전 에어하트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으로 『The fun of it』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호밀밭 출판사에서 2021년 6월 최초 완역본이 나왔다. 번역본 제목은 『펀 오브 잇 : 즐거움을 향해 날아오르다』. 에어하트의 관점에서 비행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서술이 담겨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도록 하자.
6. 매체에서
6.1. 게임
- 1936년부터 1945년을 배경으로하는 게임 Hearts of Iron IV에서는 1937년 7~10월즈음에 실종되거나 최초로 태평양 비행에 성공했다는 뉴스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여담으로 어밀리아 에어하트가 살아남으면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어밀리아 에어하트의 공군 자원입대를 수락할지 거부할지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자원입대를 받아들인다면 에이스 조종사로 쓸수 있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미국 특수 조종사 메리 러브하트(Mary Lovehart)는 이 조종사를 패러디한 인물이다.
- 워크래프트 럼블의 노멜리아 기어하트는 이 조종사를 패러디한 인물이다.
6.1.1. 도미네이션즈
자세한 내용은 도미네이션즈/유니버시티/아멜리아 에어하트 문서 참고하십시오.6.2. 영화
-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서 에이미 애덤스[9]가 분했다.
[1] 본인의 40번째 생일을 22일 앞두고 실종되었다.[2] 1887년 ~ 1950년[3] 하지만 그 이전에 12살 때 박람회에서 비행기를 처음 접했었을 때에도 인상깊어했다고 한다.[4] 어머니가 중고의 노란 비행기를 선물해 준 것이라고 한다. 아멜리아는 이 비행기에 카나리아라는 이름을 붙혔다.[5] 이 비행기는 아멜리아가 훗날 대서양 횡단 이전 생활고에 시달릴 때 판매하였다고 한다.[6] 당시에는 공군이라는 통합된 병종이 없었고, 육군과 해군에서 항공대라는 명칭으로 각각 독자적으로 운용했었다.[7] 실제 비행기를 조종한 파일럿은 월머 스털츠였다[8] 남아있는 그녀의 연설 영상을 통해 치아를 노출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데, 위쪽 앞니 두개 사이가 눈에 띄게 벌어져 있다. #[9]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분한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간호사 약혼녀인 브렌다 스트롱 역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