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치 경력2. 감독 경력
2.1. 성남 일화 천마 감독 대행 (2009)2.2.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10~2012)2.3. 성남 일화 천마 감독 사퇴 이후 (2013~2014)2.4.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5~2016)2.5.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7)2.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2018)2.7.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 (2020~ )
3. 전술 스타일4. 관련 문서[clearfix]
1. 코치 경력
1.1. 대표팀 코치 (2014~2016)
2014년 8월, 대표팀의 공격 코치.
2014년 9월 A매치 직전까지 신임 감독 선임이 지연되면서, 공격 코치로 합류해 A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감독 경력이 있는 신태용 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다. 실질적인 감독 대행이었다.[1]
9월 5일 베네수엘라전 직전에 울리 슈틸리케가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갑자기 슈틸리케가 지휘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2] 슈틸리케는 고양종합운동장 관중석에서 우루과이전을 관전하며 취임 인사만 하게 되었다. 이전 감독인 홍명보와 달리 전술의 유연성을 보여 주면서, 이동국의 2골을 앞세워 3-1로 베네수엘라에 역전 완승을 거두었다.(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내가 알제리전을 지휘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면서 전임 감독을 우회해서 비판했다.
추석에 열린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후반 25분에 프리킥[3]에서 히메네스에게 헤더 골을 허용하여 0-1로 패했다. 그러나 변칙적인 전술을 선보여 전반전에는 수비의 완벽함을, 후반전에는 맹렬한 공격을 보여줘 져도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예전에 뛰었던 팀의 모기업에서 생산하는 보리탄산음료인 "맥콜"을 본떠서 맥콜라리라는 별명을 얻었다.[4]
그리고 10월부터 새롭게 선임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같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5]를 맡았다. 자세한 것은 슈틸리케호 문서를 참고.
얼마 못가 이광종 감독의 급작스런 사임으로 후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국가대표팀 코치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다.
선수단에게 전술 지시를 내리는 신태용 수석 코치 |
2. 감독 경력
사진 오른쪽 인물. 왼쪽은 전 베트남 대표팀의 박항서 감독.
올림픽 대표팀과 U-20 대표팀, 성인 대표팀 감독직 모두 전임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소방수로 부임했다.
2.1. 성남 일화 천마 감독 대행 (2009)
성남 일화 천마 감독 대행 시절
본래 김학범 감독 아래서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김학범 감독이 갑작스레 경질됐고, 박규남 당시 성남 사장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은 물론 지도자 경험도 일천했기 때문에, 우선 감독 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1.1. 2009년
2009 시즌부터 친정 팀 성남 일화 천마를 맡아 리그와 FA컵에서 준우승을 해냈다.1990년대와 2000년대의 성남은 K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부자 구단이었으나,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무렵에는 있는 선수도 털려 나가는 가난한 구단으로 전락했다.
감독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동국, 김상식을 전북 현대 모터스에 트레이드하고 손대호를 라돈치치와 트레이드했으며 김영철, 박진섭을 방출한 것이었다. 한편 이동국은 당시 먹튀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김상식의 숙청에 대해서는 성남 팬 사이에도 논란이 많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신태용 감독 본인의 결정이 아니었다고. 구단에서 리빌딩에 착수하면서 이동국은 남기고 김상식과 김영철을 내치려고 했다. 이동국과 김상식을 남기고 싶어했던 신태용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반발하자 구단은 전무를 택한 것이다.[6]
초기에는 이러한 팀 상황과 맞물려, K리그에서 명장으로 꼽히는 김학범 감독의 후광을 벗어날 수 있는가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실제로 2009년 시즌 초반에는 성적이 좋지 못해 성남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기도 했으나 그 해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포항 스틸러스를 원정에서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1-0으로 이기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비록 전북 현대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FA컵도 준우승했지만 부임한 첫 해, 그것도 감독 대행 신분으로, 선수층마저 예전같지 않은 팀에서 일궈낸 성과치고는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2+1년 계약을 맺어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당시 신태용 자신도 이런 급작스러운 발탁을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 자격증조차 없었다.
그가 은퇴할 시기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할 때는 성남 일화에서 변변치 않은 지원으로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는 비난이 구단을 향해 빗발쳤는데, 이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우승 청부사라고 불렸던 세르비아 출신 레전드 스트라이커 샤샤 드라쿨리치가 뺨을 맞고 설설 기었을 정도로 엄격한 군기반장이었으나,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형님같은 자상한 리더십과 자율 중시[7]를 내세워 군대식 기강잡기로 유명하던 성남을 일시에 바꿔 버렸다. 나중에 국가대표 감독이 됐을 때는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던 대한민국 축구의 의례적인 문화인 합숙을 폐지하기도 했다.
감독이 되면서부터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팀을 꾸렸지만 선수들이 해이한 모습을 보일 때, "나랑 김도훈 코치가 합작해서 넣은 골만 200개가 넘는다. 근데, 너흰 뭔데 빈둥거리나?"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8]
훗날 신태용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성남에서 쫓겨나듯 은퇴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선수와 코치로 있던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격한 코칭 스텝과 선수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컬쳐 쇼크였다고 한다.
2009년 7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에 출전해서 유벤투스에게 0:3 패하여 아쉽게 탈락했으나, 스페인의 세비야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신인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9년 11월 인천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레드 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하자[9] 관중석 한 켠으로 가서 무전기로 지휘를 하고, 이후 포항과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 무전기로 지휘했는데, 무전기로 지휘했던 경기를 모두 이겼다. 게다가 인천과의 경기에서는 골키퍼로 뛰고 있던 정성룡을 필드 플레이어로 바꾸는 과감한 전술을 시도하고 심지어 출전 정지가 끝난 뒤에도 더 높은 곳에서 보겠다며 또 관중석에서 무전기로 지휘를 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무전기 매직"이라 불렀다.
2.2.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10~2012)
성남 일화 천마 감독 시절
2.2.1. 2010 시즌
2010년에는 또 선수가 털렸을 때[10] 비록 리그는 4위[11]로 마치긴 했으나 정식감독 데뷔 시즌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두며 K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2010년에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함으로써 현재까지도 선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12] 이는 그의 별명인 과르디태용/태용디올라라는 별명이 더욱 굳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도 국가간 최상위 클럽대항전 우승을 선수, 감독으로 모두 경험한 인물들은 10명도 채 안 되며, 아시아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그리고 2010 UAE클럽월드컵에 아챔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하였고 비록 챔스 우승팀 인테르나치오날레에게 0:3, 남미 챔피언 브라질 인테르나시오나우에게 4:2로 졌지만, 개최국이자 아라비안 걸프 리그 우승팀 UAE 알 와흐다를 4:1으로 격파하며, 클럽 월드컵 4위를 기록하였다.
구단에서는 언제나 신태용 감독에게 지원을 많이 못해 줘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이에 신태용은 "이런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나가는 게 감독의 몫입니다."라고 대답했다.
2.2.2. 2011 시즌
2010년 시즌이 끝나고예상대로 얇은 선수층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라돈치치는 부상으로 전반기에 거의 못 뛰고 있고, 있는 선수는 부상, 없는 선수는 없기에 오죽했으면 팀 성적이 안 나와도 팬들이 감독을 까기 보다 구단을 먼저 까고 감독을 위로할 정도. 본인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못 해 먹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결국 2011 시즌 리그에서 10위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6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이렇게 스쿼드가 토막났는데도 2011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1-0으로 꺾고 FA컵 우승하여, 극적으로 2012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이로써 선수, 감독으로 리그, 컵대회,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정우, 라돈치치, 사샤 모두 이적설이 나오는 등 선수진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신태용 감독은 구단의 부족한 지원에도 "있는 전력으로 성적을 내는 것이 감독"이라는 태도를 견지했지만 FA컵 우승 이후 아챔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구단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성남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신태용 감독이 성남 일화 천마 선수단 가운데 가장 몸값이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2.2.3. 2012 시즌
2011 시즌 종료 후, 다행히도 성남이 다시 돈을 풀기 시작하면서 과거 K리그의 큰손으로 불리던 시절로 돌아갈 낌새를 보였다. 그리고 2011년 12월 23일, 성남과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2012년 4월 28일 수원전이 끝나고 기자 회견장에서 격렬하게 판정에 불만을 토로하다 벌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는데, 성남 팬들이 자발적으로 자체 성금 모집에 나섰다. 한 중년 팬이 500만원을 보내기도 한 끝에 약 700 만원이 모였고, 연맹은 벌금을 유소년 심판 교육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12년 7월 피스컵에서 잉글랜드의 선덜랜드AFC를 격파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깜짝 성과를 보였던 지난 2년과 달리, 2012년에는 구단이 억지로 만들어낸, 한요윤 덕분에 팀 자체가 파탄나면서 K리그 상위 스플릿은 물론 FA컵, 아챔 모두 일찍이 탈락하면서 그렇잖아도 어두웠던 구단에서 전격적으로 다른 팀의 성남 출신 감독을 데려오면서 신태용은 또 한번 성남에서 쓸쓸히 물러났다.
2.2.4. 총평
2010년을 전후해서 1960년대 생 40대 젊은 감독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K리그 감독층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미와 배짱을 보이면서 가장 앞날이 기대되는 인물이다.비록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험은 적지만, 차근차근 감독으로서 지도력이나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커리어를 봤을 때 유력한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 앞으로 몇 년 내에 대표팀 감독, 코치진 역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가능성이 있다.
감독이 되어 얻은 별명은 과르디태용와 대한민국의 모예스가 있다. 전자는 선수 출신 감독이자 젊고 능력있다는 점에서 전 FC 바르셀로나와 전 FC 바이에른 뮌헨, 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 펩 과르디올라를, 후자는 없는 살림에도 팀을 참 잘 꾸려 나간다는 점에서 에버튼 FC을 맡았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을 빗댄 별명이다.
특히 2011 시즌 종잇장처럼 얇은 스쿼드를 가지고 승점을 관리하는 대신 공격하는 축구를 밀어붙였다.[13] 때문에 일각에선 전술적 아집이 심한 감독이란 비난이 일었다. 물론 2009 플레이오프, 2010년 아챔 우승이나 2011년 FA컵 우승처럼, 작심하고 노린 토너먼트 경기들을 복기해 보면 그라운드의 여우답게 상대에 맞춰 용의주도하게 전술을 바꾸는 감독이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전술적 고집이 심한 편이 맞으며, 외국인한테 공격을 다 맡기며 경기를 풀어 나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승점관리를 잘 못하며, 실제로 리그에서는 큰 두각을 보여주질 못했다.[14] 이런 성향은 특히 2012년에 완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2011년 신태용 감독이 공격적인 축구를 밀어붙인 이유는 '신인들의 경험을 쌓아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러한 팀 운영은 전성찬, 박진포라는 걸출한 신인을 만든데도 한몫을 했다. 이런 성향은 그 전후 시즌에도 드러나는 편인데, 베스트 스쿼드에서 경기 초반이나 후반에 자신이 키우려는 선수를 집어넣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베스트 11을 고집하던 김학범 감독과 대비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0 시즌 홍철을 윙 포워드로 장학영과 함께 출전시키며 경기감각을 키웠고, 조재철, 전성찬도 그런 식으로 키워 냈다. 박진포나 김성환은 팀 내에 동일한 포지션의 주전이 없어 기회를 잡은 다른 케이스이다.
그리고 선수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풀고 조이고 하며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게 하는 데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성찬, 조재철, 홍철, 조동건 등 신인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살리는 등 준수한 결과를 남겨 왔으며, 선수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그들에게 맞는 포지션을 새로 찾아주는 등 눈썰미도 예리하다.[15]
그러나 2012년 중반부터는 비판이 늘었다. 원하는 선수들을 모두 영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성적은커녕 땅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야심차게 사왔던 선수들 중에 임종은, 김성준을 빼면 성공한 영입이 없었다.
또한 팬들이 크게 반발했던 사건이 한상운과
한편
이러한 영입 실패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선수단 장악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4월 중순 터진 전지훈련의 강도에 대한 용병들의 불만[17], 텐진으로 이적한 요반치치의 불만, 그리고 대놓고 태업하던 윤빛가람 등, 폭풍지름의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팀 스스로 무너졌다.
또한 승강제를 위한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2012년 일정은 살인적이였는데[18] 몇 년새 얇아진 스쿼드와 전성찬, 이창훈 등의 장기부상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동료가 골을 넣어도 나머지 선수들은 축하도 없이 멀거니 바라만 보던 깨강정 팀워크, 에벨톤과 박진포의 콤비플레이로 최전방까지 오더라도 서로 믿지 못해서 패스를 주지 않던 광경까지, 모래알 팀워크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어찌나 심하게 팀 내부에서 곯아버렸으면 신태용 감독이 누구라고 이름만 밝히지 않았을 뿐, 언론에 대놓고 울화를 터뜨렸을 정도.
그래도 특유의 전, 후반에 기대주를 교체해 집어넣는 방식으로 전현철, 김평래, 임종은, 윤영선, 하밀 등을 키워냈던 점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센터백 임종은-윤영선 라인의 성장은 아직은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불안했던 성남 수비에 안정감을 넣어 주었다.[19] 하지만 역으로 그렇게 키웠던 선수들까지 빼면서 쓴 김현우, 박세영, 윤승현 등의 실패, 무엇보다 센터백 자리에 야심차게 영입한 황재원의 폭망이었다.
공격은 죽어라 하는데 막상 한 방도 없고, 골도 없는 소위 지루 축구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다.[20] 가뜩이나 선수단 면면이 크게 바뀌면서 상당 기간 손발이 안 맞아 고생할 텐데, 여기에 팀 케미스트리까지 붕괴해 버렸다.
일단 팀 레전드에, 사실 지원은커녕 무자비하게 뺏기기만 하던 시절 동안 이뤄 낸 그 동안의 업적은 놀라울 정도이며, 거기다 나이까지 젊은 신태용보다 나은 국내파 감독을 크게 찾기 힘드니 두고 보자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문선명 총재의 사망과 겹쳐 팬들이 다시 불안감을 안은 작금의 태세에, 만약 예산이 다시금 시도민구단화가 진행될 경우 대처법이 없기 때문에 팬들은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결국 시즌 후반기에도 성남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14승 10무 20패 리그 12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는다.
또한 통일스포츠는 재정난을 이유로 그 해 11월 말 여자축구 충남일화 팀을 해체하면서 팬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리고 구단에서 신태용 감독 및 코칭스텝 전원의 사표를 요구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이는 곧 언론에서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11월 28일 강원 FC와 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21] 사표를 요구했고, 신태용 감독이 거취를 고심하는 와중 7일 재차 사표를 종용했고 결국 신태용 감독이 사표를 썼다고 한다.
비록 성적부진으로 여러 말이 많이 나온 한 해였지만, 누가 봐도 높으신 분들의 책임회피 + 희생양 찾기 + 꼬리자르기 콤보를 얻어맞고 사실상 경질당한 셈이라 전반적인 여론은 신태용 감독에게 동정적인 편이다.
새로 성남의 감독으로 부임한 안익수 감독이 팀의 주축인 김성환, 임종은 등을 내보내면서 비판받자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올라간 모습을 보여 줬다.
2.3. 성남 일화 천마 감독 사퇴 이후 (2013~2014)
2.3.1. 2013년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갔을 때 함부르크에서 손흥민을 만난 자리에서 찍은 사진.
사퇴 후 유럽으로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 일간스포츠에 '신태용의 신의 한수'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귀국하면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툴롱컵을 통해 JTBC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데뷔했다. 아울러 K리그 홍보 대사를 겸임하며 본인의 친정이었던 성남 일화 천마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2.3.2. 2014년
이후 성남 FC의 초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스승의 그림자를 넘을 수 없었고 새 수석 코치와 자리를 이어받듯이 2014년부터 성의 K리그 클래식 경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2.4.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5~2016)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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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U-23) 문서 참고하십시오.
2015년 2월 5일 킹스컵을 지휘하다 백혈병으로 하차한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리우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2015년 4월 27일,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직과 국가대표팀의 코치직을 겸임하는 것으로 공식 발표가 났다. 새 인물을 국가대표팀 코치진에 합류시키는 것보다 기존에 손발을 맞췄던 신태용 올림픽팀 감독을 겸직시켜 양팀의 가교 역할은 물론, 올림픽 연령대의 젊은 선수들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는 것이 향후 국가대표팀 운영에도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 밝혔다.
2.5.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7)
2016년 11월 22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안익수의 후임 감독으로 거론된 최종 후보 2인[22] 중, 신태용이 새로운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열리고 있는 2017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까지다. 일정 문제로 인하여 국가대표 A팀 슈틸리케호에서는 완전히 물러나기로 했다.U-20 월드컵 축구 청소년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의 행적은 신태용호(U-20)을 참조.
결과는 U20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파[23]시키며 16강 10위로 마감하였다. 아쉬운 부분은 개최국이라는 것과 과거 U-20 대표팀이 몇 차례 8강에 진출했다는 것 등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특히 24강 조별 리그 잉글랜드전에서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3-5-2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16강 포르투갈전에서는 본래 공격수로 활용되던 이승우와 백승호를 윙어로 배치하는 4-4-2 포메이션을 쓴 결과 원래 부실했던 측면 수비가 더욱 부실해지는 등, 실험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이 지적받았다.
2.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2018)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호 문서 참고하십시오.2017년 6월 15일 국가대표팀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가 경질됨과 동시에 카타르전 경기를 보던 축구팬들은 짧은 시간 내에 괜찮은 결과와 성인팀과 달리 공격적인 축구 철학과 유연한 전술 운영을 보여 줬던 신태용 감독을 재평가했고 감독 대행 시절에도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 준 신태용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여론과 우선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만 전념시켜 한다는 여론이 대립했다.
이후 차기 감독 후보로 허정무, 최용수, 정해성 수석 코치 등과 함께 후보군에 올랐다. 이에 본인은 "설레발은 치지 않겠지만, 제안이 온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후보군으로 언급되는 허정무 감독과 최용수 감독이 자리를 고사했기에 사실상 신태용으로 결정이 났다는 반응도 있다.
결국 2017년 7월 4일부터 이전에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의 뒤를 이어서 태극전사를 이끌게 되었다.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신태용호 문서와 그 하위 문서를 참조하자.
잘하는 것은 철퇴인데, 하고 싶은 것은 빌드업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던 시절로 요약할 수 있다. 신태용이 하고 싶었던 전략은 후방 빌드업을 통한 축구인데 기성용을 제외한 빌드업 가능 선수의 전무, 오버래핑을 해줄 풀백진의 수준 미달 등으로 역시 현 한국 국대에서 이상적일 뿐 실현하긴 어려운 전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빌드업을 통한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려면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오면서 팀적인 호흡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적인데, 짧은 기간에 그런 빌드업 플레이를 입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동안 해 온 걸 포기하고 전문가들이 얘기한 쉽고 과거부터 자주 해 왔던 4-4-2로 돌아서면서 경기력이 좋아졌다. 급하게 부임한 소방수 감독, 부임 전부터 히딩크 부임설 등 멘탈을 흔들리게 할 만한 각종 언플과 여론, 핵심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등 갖가지 악재가 겹친 것은 사실이나 그런 환경 속에서 본인도 스스로 우왕좌왕했던 부분은 많이 아쉽다.
계약 종료는 러시아 월드컵 이후 2018년 7월 31일에 이루어졌다. 감독 선임을 담당하는 김판곤이 이번 대회 성적과 월드컵 준비 과정 등을 보고 그의 거취를 결정하기로 했고 7월 5일 에 감독선임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신태용을 차기 감독 후보 중 하나로 두고 다른 감독 후보들과 경쟁시킬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를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다. 이로 인해 퇴임 기자 회견조차 가지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기사[24]
그래도 네이버 댓글, 각종 커뮤니티들의 FC 코리아를 제외하고는 좋게 평가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팀을 재건한 것과 부상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상태로[25] 독일과의 월드컵 32강 본선 조별 리그 3차전에서 강렬한 마지막을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복귀하기를 바라는 이들도 제법 있다. 퇴임 후 첫 공개강연에서 이미 가기 전부터 많이 두드려 맞아 선수단에 사기 저하가 왔다며 FC 코리아들에게 또 다시 소신발언을 했으나 FC 코리아다운 반응을 볼 수 있다. 베플은 욕 겁나 많이 먹은 황의조는 겁나 잘하던데ㅎ[26][27]로 자신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인신공격과 비난을 정당화하는 추악함까지 볼 수 있다.[28]
2017 일본 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 우승하였고[29], 2018 월드컵 19위를 기록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 피파 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이기면서 신 감독 개인으로서도 자랑할 만한 타이틀이 생겼다. 바로 아시아 국적 축구 감독으로서 최초로 독일을 이긴 감독과 세계 최초로 독일을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22등)시킨 감독[30], 월드컵 우승 감독을 상대로 승리, 아시아 최초로 원정 월드컵에서 2017 컨페드컵 우승국, 피파 랭킹1위, 디펜딩 챔피언 2:0 승리 및 탈락시킨 감독 타이틀이다. A매치에서 아시아 팀 중 독일을 이긴 건 한국 뿐인데 2004년에 독일을 3:1로 이길 때 조 본프레레 감독은 네덜란드 국적이다. 그러니 신 감독이 아시아 국가 국적의 감독으로선 최초로 독일을 이긴 사람이다. 두 번째 타이틀은 당시 멕시코를 이끌고 독일을 1:0으로 이긴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과 공동으로 갖고 있는 타이틀이다. 독일은 78월드컵 당시 2라운드 8강 조별 리그 탈락(6등) 이후로 조별 리그 탈락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멕시코와 대한민국에 패배하며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22등)하며 그 기록이 깨졌다. 그래서 신 감독이 오소리오 감독과 더불어 공동으로 독일을 세계 최초로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란 다신 없을 레전드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2.7.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 (2020~ )
자세한 내용은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신태용호 문서 참고하십시오.3. 전술 스타일
여러 팀을 거치는 동안 4-2-3-1, 4-4-2, 3-5-2 등 다양한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포메이션은 팀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한다.그러나 전술 기조에 있어서는 일관적인 모습들이 꽤 드러나는데,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팀을 맡든 상대에게 강한 압박 수비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공격수는 전방에서 뛰는 수비수다" 라고 언급한 듯이 상대를 전방에서부터 누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감독 생활 초창기인 성남 FC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때도 상대에게 압박을 걸 수 있는 스피드와 체력을 갖춘 손흥민과 이근호를 투톱으로 활용하는 4-4-2 전술을 시도하였다.
강한 압박 수비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를 선발할 때 체력과 활동량을 중시하고 훈련의 강도도 매우 높다. 다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는 문제가 되었는데, 대회 직전까지 고강도의 체력 훈련과 몸싸움 훈련을 진행하여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체력이 소진되고 대회 중 주축 선수들을 부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불러왔다.[31]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한다는 점이 있다. 이는 상술한 압박 전술과도 통하는 부분으로, 공을 끊어낸 뒤 천천히 후방에서 플레이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바로 공을 전방으로 보내 공격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을 보내는 방식은 팀의 상황에 따라 짧은 패스와 롱 볼을 적절히 사용한다.
4. 관련 문서
[1]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해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정식 부임 이후에도 몇 개월 동안은 신태용 코치가 선수 선발 및 작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2] 비슷한 시기에 친정 구단의 감독 교체가 있었지만, 성남은 국내파이고 연고자라서 무리가 없었다.[3] 이전에는 코너킥으로 기술되었으나, 사실은 기성용과 손흥민의 공격 실패 직후 역습을 당하며 우리 골대 오른쪽 골라인 부근에서 반칙을 범해 허용한 프리킥이다.[4] 정작 슛포러브에서는 맥콜을 맞았을 때 기분이 좀 그랬다고 해명했다. 아래 쪼옵쪼옵 짤방을 맥콜 빨면서 재현하기도...[5] 수석 코치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5살 많은 카를로스 아르무아. 아르무아 수석 코치는 피지컬 코치도 겸임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레알에서의 선수 경력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 보니 스페인어에 능통한지라 아르무아 수석 코치를 위해 스페인어 통역관을 요구했다. 따라서 2001년의 박항서 코치를 승계한 셈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와의 친분으로 공식 석상에서도 독일어보다 스페인어를 많이 쓴다고 한다.[6] 방출된 이동국과 김상식은 나란히 전북 현대로 이적한 후 최강희 감독 밑에서 화려하게 비상했고 2009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친정팀인 성남 일화에 비수를 꽂는다. 저 둘 대신 들어온 문대성과 홍진섭은 이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며 포텐이 터지지 않은 채 결국 성남을 떠나고 만다. 김영철은 전남에서 1년 뛰고 은퇴했다.[7] 예를 들면 2010년 화이트데이에 인천과의 경기가 있었을 때 "오늘 이기면 분위기 좋게 여자 친구랑 와인을 마시는 것이고 반대로 지면 성질내면서 소주를 마신다고 생각을 하라고, 그건 너희들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면서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성남은 인천에 6-0으로 이겼다.[8] 현역 시절에 거친 박종환-이장수-레네-차경복 감독은 비록 선진 감독은 아니었으나 각자 개성은 달랐고, 이들이 가진 장단점을 취사선택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9] 당시 사샤와 유병수가 몸싸움을 버리다가 사샤가 유병수의 머리를 밟자 주심은 고의로 판명하고 사샤에게 레드카드를 꺼내 퇴장시켰다. 이를 본 신태용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던지면서까지 거칠게 심판에게 항의를 했다. 결국 신태용도 퇴장 당했고, 2경기 출전 정지를 당했다.[10] 김정우는 2009년 말 상무에 입대, 이호는 2010년 초 UAE로 옮겼다가 여름에 J리그로 옮겼다. 심지어 선수 영입하는 데 6천만원이 없어서 영입 못했다고 한다.[11] 정규시즌 기준 5위, 플레이오프 최종순위 기준 4위[12] 2021시즌에 김기동이 2번째가 될 수 있었으나, 결승에서 알 힐랄에게 2:0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실패했다.[13] 이 방식은 변병주 감독이 2008년에 이근호를 앞세워 대구 FC를 공격 우선으로 이끈 적이 있다.[14] 2009년 K리그 준우승도 4등에서 시작해서 PO 토너먼트로 결승전까지 간 것이다.[15] 예로 홍철은 본래 FW였다가 DF로 전향한 케이스. 그리고 홍철은 지금 국대 승선에 성공했다. 장학영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직후 성남의 구멍이라고 불리던 좌측 풀백을 잘 막아주고 있었다. 게다가 신태용 감독의 공격적인 성향과 과거의 FW였던 경험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잘 크고 있는 중. 다만 고재성처럼 실패한 사례도 있다. 측면 공격수였던 선수를 장학영급으로 키울 수 있다고 오른쪽 풀백으로 돌렸으나 욕만 먹었다. 그 후 발전은 하였지만 수비력은 끝내 나아지지 않다가 정작 중국에 가서 측면 공격수로 터졌다. 2012년 경남에서 가서도 윙포워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풀백 전환은 실패한 사례가 되었다.[16] 장학영은 일화가 성남시에 완전 정착한 이후 선수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레전드이자 원클럽맨이었다.[17] 신태용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18] 한 시즌 총 44경기. 폭서기에도 1주 2경기를 벌이고, 작년은 총 30경기였다.[19] 그리고 이때 욕 먹어가며 키운 윤영선은 8년 뒤에 잘했다.[20] 득점 운이 너무 안 좋은 것도 있었다. 들어가야 할 슛이 아쉽게 골대를 맞고 나오거나 골키퍼 손에 막히고 다시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이 있다.[21] 일정상 마지막 경기는 12월 1일 상주전이지만, 상주가 몰수패를 당해 자동으로 2:0 승리가 된다. 따라서 강원전이 최종전이었다.[22] 나머지 후보 1명은 감독 대행으로 수원 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던 정정용 감독.[23]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훗날 2021 코파 우승과 유럽리그로 이적하는 마르코스 세네시, 후안 포이스, 곤살로 몬티엘, 산티아고 콜롬바토,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1차전 잉글랜드전 퇴장으로 한국전 불참)가 뛰었으며, 이 중 곤살로 몬티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후안 포이스, 에세키엘 팔라시오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멤버다.[24] 신태용 감독 역시 아시안컵 이후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괜히 후보군에 넣어서 외국인 감독과의 협상카드로 사용하기 보다는 믿고 맡겨주든 그냥 보내주든 깔끔하게 끝나기를 바랐던 모양. 사실 허정무 전 감독도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였음에도 추악한 FC코리아들은 아르헨티나전 4:1완패와 16강전 우루과이 첫골 실점을 언급하며 허정무 감독을 비난한 사례가 있었으며, 허정무 감독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는데로 마쳤다.[25] 당시 팀은 월드컵 직전에 이근호, 권창훈, 김진수, 김민재, 염기훈 5명이 빠졌는데, 이 중 4명이 핵심 선수였고 백업 조커마저 아웃되었다. 본선에서 박주호와 기성용까지 빠져버렸으니 얼마나 처참한 스쿼드였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26] 이것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황의조는 자존심이 정말 강한 선수고 오히려 K리그나 J리그에서 보여준 활약도에 비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해서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비난 받은 만큼 오기가 생겨서 활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알지도 못하고 깐 놈들은 선수에게 빅엿을 먹었음에도 그것도 생각하지 못한 체 태도 싹 바꿔서 추종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27] 월드컵 이후 열린 아시안게임 때 황의조 선발 했을 때 온갖 비판이 황의조한테 갔는데 아시안게임전 열린 월드컵 때 황의조를 선발했으면 비판을 아시안게임때 보다 더 먹으면 더 먹었지 적게 먹지 않았을거다.[28] 다만 답글에선 댓글 작성자를 맹비난하는 댓글들이 많다.[29] 2006 월드컵 우승 감독 마르첼로 리피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 리피 중국과 2:2 무승부[30] 독일은 1978 월드컵 2라운드 8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6등)한 적이 있다.[31] 월드컵 첫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박주호가, 두 번째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기성용이 부상으로 대회 중 낙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