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19:46:28

명예 아리아인

Ehrenarier

1930년대, 나치 독일이 내세운 제도 중 하나.


1. 개요2. 제도가 마련된 배경
2.1. 동아시아인2.2. 그 밖에
3. 제외 대상
3.1. 유대인3.2. 흑인
4. 명예 백인5. 타 매체에서6. 관련 문서

1. 개요

민족학적으로 접근 시 아리아인은 아니나, 아리아인에 못지않게 나치의 사상 보급 혹은 전쟁 및 경제 활동에 크게 이바지한 민족 및 개인에게 준 일종의 칭호. 그러니까 일본 제국이 떠들고 다니던 '황국신민'과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명예 XX인'의 유래가 된 것도 역시 이것.

제도 초기에는 독일 인접국가들 출신자들에게만 수여된 나름대로 레어 칭호였으나, 나치가 정권의 기반을 어느정도 잡고 중국 장제스와의 관계나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 제국과 손을 잡은 뒤 아돌프 히틀러가 일본인 이외에 다른 호의적인 민족들에게 동맹국으로 대등한 입장을 부여하기 위해 명예 아리아인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의미가 크게 확대되었다. 나치 친위대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오컬트나 동양의 문명과 문화에 심취하여 추진된 일이라는 설도 있다.

2. 제도가 마련된 배경

처음에는 나치가 우생학을 통해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과정에서, 히틀러를 포함한 상당수 당원들의 인종적 특징이 이상적인 아리아인의 특징과 상충되는 치명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우회등록 기법이었다.[1] 제도도입 초기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그 측근들을 아리아인으로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2] 괜히 나치의 사상보급에 이바지한 사람이란 널널한 조건이 추가로 붙은 것이 아니다. 이후 경제활동에 이바지한 경우라거나 전쟁에 참가한 경우가 추가 되며 나치에 협조하거나 돈을 내거나,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뿌려지게 된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요상한 칭호를 만들지 않을 수 없는게 전쟁이란게 1:1이 아닌 이상은 혼자 하는것도 아닌만큼 당연히 동맹국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만 1등 나머지는 꼴등!" 이라고만 외치면 누가 동맹을 맺을까. 그러느니 차라리 "우리는 1등 나머지는 꼴등 그렇지만 우리만큼 우수한 애들은 1등이 될 수도 있고 못해도 2, 3등은 됨" 요런 구호쯤은 내세워야 적어도 동맹국을 물색할 수 있다. 아무리 개막장 국가라 해도 자국을 개돼지로 여기는 나라 따위와 동맹을 맺고 싶을리가 없다.

2.1. 동아시아인


일본의 외무대신 마츠오카 요스케(松岡洋右)를 환영하는 히틀러와 독일인들
일본인은 게르만인과 생물학적으로 별개의 종이나, 아리아인과의 동맹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

나치 정권의 실질적인 2인자였던 카를 하우스호퍼는 아시아에서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을 형제의 나라로 봤다. 하우스호퍼의 사상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36년, 나치 독일은 소련코민테른에 대항하기 위해 방공 협정을 일본 제국과 체결하는데, 이 조약을 현장에서 주도한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히틀러는 일본인을 명예 아리아인으로 취급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조약에 따라 독일 정부는 일본인을 명예 아리아인으로 대우해 줬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문화가 없다면 일본이나 중국은 다시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며 일본인보다 아리아인이 위대하다는 걸 확실히 해두기는 했지만 일본과 추축 동맹을 맺은 후엔 독일에 사는 일본인들을 명예 아리아인이라 선포하고, 심지어 여러 번 아시아와 접촉하고 나서는 "아시아인의 고대 문명이 우리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믿는다" 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을 명예 아리아인 취급한 것은 어디까지나 방공 협정의 수월한 집행을 위한 보너스였다. 모든 독일인들이 일본인을 환영한 것은 아니라, '날생선을 먹으며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지닌 야만인'으로 취급한 독일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심지어 정신 나간 나치당원이 길을 가던 일본 외교관의 뺨을 친 적도 있다.[3] 이후 일본제국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하면서 영국령을 점령할 때, 히틀러가 '그 노란 원숭이들의 만행에 분노하며 백인 형제인 영국에게 지원군을 파병해줄 수도 있다' 라는 제의가 있었다는 일화를 보면 히틀러도 나치도 근본적으로 일본인들을 인종적으로 멸시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호주에 대해서는 "범죄자 후손들에 대해서는 알거 없고 그냥 일본에게 줘버리자"라는 반응이었다.

힘러가 게르만 고대의 유산을 찾아내려고 하자 우리가 설직히 그때 한게 뭐가 있냐고 우습게 여긴 적도 있고결론적으로 명예 아리아인에 대한 의견은 나치당 내부는 물론이고 히틀러 본인까지도 정해진 의견이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사실 히틀러는 일본과 적대국인 중국인도 명예 아리아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중화민국의 관료 쿵샹시는 독일을 방문했을 때, 히틀러의 대접을 받기도 했다. 중일전쟁이 터지고 삼국동맹이 체결되기 전까지 나치 독일중화민국은 서로 협력관계였다.

한국인 중에서도 명예 아리아인이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예시로 손기정이다. 히틀러는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와 다르게 멋진 선수라고 했다. 또한 안익태에게 나치 독일의 악단 지휘를 맡겼다. 물론 당시 조선민족 자체가 한일합병으로 일본 시민권자가 된 상황이었으니, 국내에선 일본인에게 차별받아도 해외에선 일본인 여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나치들의 눈으로 보면 조선인 역시 일본인과 같은 '명예 아리안인'이 된다(...)'

한편 탈아입구론에 쩔어있던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명예 아리아인, 명예 백인으로 대우해주는 것에 대단한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2.2. 그 밖에

비슷하게 원래 핀란드인은 북방민족으로 취급받지 않았으나[4] 겨울전쟁으로 소련과 적대하게 되면서 북방민족 취급을 받게 되었다.

크로아티아는 나치의 절멸대상에 포함되는 슬라브족 국가이지만 나치에 점령된 국가 중 제일 적극적으로 협력한 국가라 고트족의 후예라느니 뭐니 하면서 실드쳤다.

원래 나치 이론에 따르면 아랍인 또한 열등한 민족이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등에 맞서기 때문에 기존의 발언을 철회하고 온갖 립서비스를 해주었고 대표적으로 아민 알 후세이니는 명예 아리아인 칭호를 받았다.

3. 제외 대상

3.1. 유대인

유대인은 일단은 명예 아리아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막스 플랑크가 "똑똑하고 실력 있는 유대인들은 차별하지 말고 명예 아리아인처럼 대접해달라"고 히틀러를 설득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우리를 언제 배신할지도 모르는게 유대인일세"라며 무시당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하지만 애초에 이 제도가 주먹구구식인 탓에 예외가 있기 마련이라 헤르만 괴링이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라고 한 적도 있고 무엇보다도 히틀러 본인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치료해줬던 유대인 의사 에두아르트 블로흐(Eduard Bloch)[5]와 1차세계대전때 본인이 속한 연대의 지휘관이었던 에른스트 헤스(Ernst Moritz Hess)를 특별히 봐준 적도 있다. 거기에 에밀 마우리스(Emil Maurice) 또한 유대인 혈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당원 초기부터 같이 지내던 친맥으로 하인리히 힘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명예 아리아인 칭호를 주면서 슈츠슈타펠의 장교직에 붙었다.

3.2. 흑인

당시 거의 모든 서양인들은 유색인종을 열등하다 생각하고 흑인은 인간이 아닌 짐승, 노예라는 인식을 당연시 하고 있었다. 윈스턴 처칠 또한 대부분의 영국인들답게 동양인도 열등인종으로 생각했었고 흑인들은 인간 이하로 봤다. 그리고 당시 미국은 쿠 클럭스 클랜이 합법적 단체였다.

독일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서방세계와 차별을 두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흑인들을 더 존중해 주기도 했다.[6] 전쟁 시기에는 흑인 슈츠슈타펠 대원들이 동원되었다.

그래도 나치는 명예 아리아인에 흑인을 포함시켜줄 마음까지는 없었다. 나치가 주장하던 아리아인 개념과는 거리가 먼 아시아인에게 명예 아리아인 칭호가 부여된 이후부터는 허들이 더더욱 낮아졌고 심지어 나치가 운용하는 강제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에게도 노역의 대가로 칭호를 주기도 했지만 흑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심하게 차별받던 영국 흑인들의 배신을 유도하고 내부협조를 얻기 위해 칭호를 뿌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음에도 나치 상부는 흑인은 아리아인이 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4. 명예 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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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이전에도 동아시아인을 백인과 동등하게 보는 것은 어느정도 있던 일이었는데 이 경우 동등하게 대해줘야한다는 의견과 그래서 오히려 더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이 일본인의 심장은 백인과 같다느니 터키인보다 일본인이 백인에 더 가깝다는 등의 황당한 발언을 하면서 일본인을 명예 백인 취급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근데 그 루스벨트도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미국 서부로 몰려오던 그 '명예 백인'의 미국 이민을 제한했다.

나치가 몰락한 후 명예 아리아인 제도는 사라지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치며 "명예 백인"이라는 인종등급제도로 변모해 명맥을 유지한다. 위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인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

현대에 동양인들을 보고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표현 자체도 인종차별적인 표현이라 비꼬는 의도 외에는 잘 안쓰인다.

현재에도 백인우월주의자들이나 네오 나치 중에서 동아시아선진국 국민인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예외적으로 백인과 비슷한 취급을 해주는 부류들이 있다. 그 중 일부는 브레이비크처럼 동아시아인들이 순혈민족을 유지하면서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며 동아시아인을 극도로 칭찬하기도 그리고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린 그래도 일본인들, 한국인들은 동등하다고 보기 때문에 백인우월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중 자신의 아시안 페티시 성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명예 백인론을 들먹이는 작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처드 스펜서 같은 경우.

일본인한국인들응 이 점을 이용하여 이민, 유학, 관광, 주재원, 워홀 등 종류를 망라하고 북미유럽, 오세아니아 같은 서양권 국가들에 갔을 때 다른 아시아인들[7]과 따로 놀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북미유럽, 오세아니아 같은 서양권에서는 서로 같은 동병상련의 입장인 이상 일본인 커뮤니티와 한국인 커뮤니티가 서로 매우 친한 경우가 많다.[8]

5. 타 매체에서

인터넷 등지에서는 "뭔가 X가 아니면서 X인척 행세한다거나 X를 옹호한다" 등을 비꼬는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자면 명예남성.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에서 명예 브리타니아인이라는 칭호가, 진격의 거인에서도 명예 마레인이라는 칭호가 나온다.

진격의 거인에서 등장하는 마레 제국이 거인 전사대 등 특권을 받는 에르디아인들을 "명예 마레인"이라고 부른다.

6. 관련 문서




[1] 참고로 벨기에 뢰벤 카톨릭 대학이 히틀러의 생존 친척의 하플로 그룹을 연구해본 결과 약 80%는 북아프리카인(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베르베르인), 20%는 그리스-유대인이며 독일-오스트리아 아리아인일 확률은 높게 쳐도 5%다.[2] 실제로 극초기 나치당은 바이에른을 거점으로 한 지역 정당이었기 때문에 상당수 당원들은 갈색머리에 그을린 피부를 지닌 전형적인 남부인들이었다. 당시 우생학 기준으로는 알프스인종이라 불렸다.[3] 나치독일의 일본 프로파간다(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양도서 1, 1권/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양도서, 이경분)[4]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목민 출신이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유목민 출신이 세운 터키, 헝가리와 함께 몽골 취급 당하고 있다.[5] 가난한 집안이 불쌍해서 치료비를 상당부분 면제해줬다고 하며, 히틀러는 "모든 유대인이 블로흐 같았으면 유대인 문제란 게 있을 수가 없지."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6]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의 흑인 육상 대표선수인 오웬스의 당시 나치독일과 히틀러에 관한 증언을 살펴보기 바란다.[7] 특히 중국인들과 인도인들.[8] 반면 일본인 커뮤니티와 한국인 커뮤니티 모두 다른 아시아인 커뮤니티, 특히 중국인 커뮤니티 및 인도인 커뮤니티와는 사이가 영 좋지 않다. 특히 중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와 일본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관계는 본토 중일관계에 편승하여 거의 원수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