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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더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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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유소년 시절에서 주니어 선수 시절1.2. 1998년 : 프로 데뷔1.3. 1999년1.4. 2000년1.5. 2001년1.6. 2002년1.7. 2003년1.8. 2004년1.9. 2005년1.10. 2006년1.11. 2007년1.12. 2008년1.13. 2009년1.14. 2010년1.15. 2011년1.16. 2012년1.17. 2013년1.18. 2014년1.19. 2015년1.20. 2016년1.21. 2017년1.22. 2018년1.23. 2019년1.24. 2020년1.25. 2021년1.26. 2022년 :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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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의 역대 테니스 시즌 성적을 정리한 문서.

1.1. 유소년 시절에서 주니어 선수 시절

스위스바젤 근처의 작은 도시 비닝겐에서 태어났다. 그후 프랑스, 독일 국경에 위치한 뮌헨스타인에서 자랐고[1] 6살이 되던 해 테니스를 처음 접한 그는 14살에 주니어 챔피언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주니어 선수로서는 마지막 출전 시즌이었던 1998년에 주니어급 테니스 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오렌지볼 16세부와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였고 US 오픈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남자 테니스 선수 주니어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는 등 주니어 선수 시절에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될 자질을 인정받는 선수였다.

참고로 페더러의 회상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랜드슬램이나 마스터즈급 대회의 볼키즈로 자주 뽑혀 세계적인 수준의 선배 테니스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바로 눈앞에서 봤던 게 큰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2]

1.2. 1998년 : 프로 데뷔

1998 시즌 연간 성적
전적(승률) 우승 횟수 상금 획득 그랜드슬램 성적 최고 랭킹 연말 랭킹
2승 3패 (40%) 0회 $ 26,370 - 301위 301위

페더러는 1998년에 프로로 데뷔하면서 세계 랭킹 702위로 시작했다. 1998년에는 아직 페더러가 주니어 대회에 주로 나왔고 시니어 대회도 세계 랭킹 순위가 낮아서 ATP 투어보다 등급이 낮은 챌린저 투어 대회나 퓨처스 대회에 주로 출전이 많았고 정식 시니어 대회인 ATP 투어 남자 단식 출전은 3개 대회에 그쳤다.

페더러의 ATP 투어 남자 단식 첫 출전은 페더러가 세계 랭킹 702위에 올라있던 1998년 7월에 페더러의 모국인 스위스의 그슈타드에서 개최된 ATP 투어 그슈타드 오픈 남자 단식으로, 당시 페더러는 주최 측이 제공한 와일드카드를 받고 본선에 출전했다. ATP 투어 그슈타드 오픈 남자 단식 32강전(1회전)에서 페더러는 세계 랭킹 88위로서 럭키 루저로 본선에 올라온 루카스 아놀드-케르(아르헨티나)를 만나서 세트 스코어 0-2(4-6, 4-6)로 패하면서 페더러의 ATP 투어 남자 단식 데뷔전 결과는 패배로 끝났다.

이후 페더러는 1998년 9월말에 프랑스툴루즈에서 개최된 ATP 투어 툴루즈 오픈 남자 단식에 본선에 올라 통산 두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페더러의 세계 랭킹 순위가 878위에 불과해 예선전을 통과해 ATP 투어 툴르즈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올랐는데 놀랍게도 페더러는 ATP 투어 툴루즈 오픈 남자 단식 32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45위인 기욤 라우(프랑스)에게 2-0(6-2, 6-2)의 승리를 거두며 ATP 투어 남자 단식 통산 첫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페더러는 ATP 투어 툴루즈 오픈 남자 단식 16강전(2회전)에서도 세계 랭킹 43위로 대회 7번 시드를 받은 리처드 프롬버그(호주)를 2-0(6-1, 7-6<7-5>)으로 꺾으면서 통산 두번째 출전한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페더러는 ATP 투어 툴루즈 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선 세계 랭킹 20위로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우승 후보 얀 시메링크(네덜란드)에게 세트 스코어 0-2(6-7<5-7>, 2-6)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하지만 ATP 투어 남자 단식 8강 진출로 페더러의 세계 랭킹 순위는 878위에서 396위로 수직 상승했고 바로 페더러는 연이어서 모국인 스위스바젤에서 열린 ATP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에 주최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아 본선에 출전하였으나 본선 1회전에서 세계 랭킹 8위로 본선 4번 시드를 받은 우승후보인 골드슬래머 안드레 애거시(미국)를 만나게 되어 세트 스코어 0-2(3-6, 2-6)로 완패하여 탈락하며 시니어 첫 시즌을 마감했다.

그래도 1998년에 세계 랭킹 702위로 시작했던 페더러는 1998년 연말 세계 랭킹 순위 301위를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1.3. 1999년

1999 시즌 연간 성적
전적(승률) 우승 횟수 상금 획득 그랜드슬램 성적 최고 랭킹 연말 랭킹
13승 17패 (43.33%) 0회 $ 200,986 예선 128강 128강 예선 57위 64위

페더러는 1999년에 세계 랭킹 순위 302위로 시작하였고 199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을 시작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도 본격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페더러는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선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1999년에 페더러는 차근차근 대회에 출전 및 입상하면서 세계 랭킹 순위를 올려나갔는데, 우선 호주 오픈 직후인 1월말에 독일의 하일브론에서 개최된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페더러는 2월초에 프랑스마르세유에서 개최된 ATP 투어 마르세유 오픈 남자 단식에 주최측이 제공한 와일드카드를 받고 본선에 올라서 본선 1회전에서 세계 랭킹 5위로 대회 1번 시드를 받은 우승 후보 카를로스 모야(스페인)를 2-1(7-6<7-1>, 3-6, 6-3)으로 이기는 등 선전하며 8강에 진출하였고, 2월 중순에 네덜란드로테르담에서 열린 ATP 투어 로테르담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올라 8강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페더러는 ATP 투어 로테르담 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선 세계 랭킹 2위로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우승 후보 예브게니 카펠니코프[3](러시아)에게 세트 스코어 1-2(1-6, 7-5, 4-6)로 패하였다.

여기에 페더러는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1999년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3월에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에서 열린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 주최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첫 본선 진출을 이뤘으나 본선 1회전(128강전)에서 세계 랭킹 106위인 케네트 카를센(덴마크)에게 세트 스코어 0-2(5-7, 6-7<4-7>)로 패배하면서 탈락했다. 페더러는 4월에 모나코에서 개최된 마스터스 몬테카를로 오픈 남자 단식에도 주최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처음으로 출전하였으나 역시 본선 1회전(64강전)에서 패배했다.

5월초에 페더러는 슬로베니아류블랴나에서 열린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진출했고 5월말에 페더러는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 주최 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본선에 출전하여 커리어 첫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진출 겸 커리어 첫번째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진출을 기록했다. 당시 로저 페더러는 아직 어린 나이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 첫 출전한 것이었는데, 1999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128강전(1회전)에서 만난 상대는 하필이면 당시 세계 랭킹 3위로 대회 3번 시드를 부여받은 패트릭 라프터[4](호주)였고 세트 스코어 1-3(7-5, 3-6, 0-6, 2-6)으로 페더러가 라프터에게 역전패하고 말았다.

6월초에 페더러는 영국의 서비튼에서 열린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올랐으나, 6월 중순에 영국의 런던에서 열린 ATP 투어 런던 오픈 남자 단식에선 본선 1회전(64강전)에서 패하여 탈락하였다. 6월말에 페더러는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도 전년도 윔블던 남자 단식 주니어 우승자 자격으로 주최 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아 본선에 출전하며 커리어 첫번째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 진출을 달성했는데, 역시 1달 전에 열린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과 마찬가지로 본선 128강전(1회전)에서 탈락하였다. 페더러가 만난 상대는 세계 랭킹 59위에 올라있던 이리 노박[5](체코)이었는데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 경기 역시 세트 스코어 2-3(3-6, 6-3, 6-4, 3-6, 4-6)으로 페더러가 아쉽게 역전패했다.

7월에 페더러의 모국인 스위스의 그슈타드에서 개최된 ATP 투어 그슈타드 오픈 남자 단식에 페더러는 주최측이 제공한 와일드카드를 받아 본선에 출전하였으나 본선 1회전(32강전)에서 패하여 탈락하였다. 8월 중순에 페더러는 미국워싱턴 D.C.에서 열린 ATP 투어 워싱턴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하였으나 역시 본선 1회전(32강전)에서 패하였다. 8월 말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가 출전 신청할 때의 세계 랭킹 순위가 109위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본선 자동출전권을 받지 못하고[6] 예선전부터 출전했으나 예선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9월 중순에 페더러는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에서 개최된 ATP 투어 타슈켄트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하여 16강에 진출하였고, 9월말에 프랑스의 툴루즈에서 열린 ATP 투어 툴루즈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페더러는 10월초에 페더러의 모국인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된 ATP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주최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고 출전하여 8강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ATP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페더러는 세계 랭킹 6위로 대회 4번 시드를 받은 우승 후보 팀 헨만[7](영국)을 만나서 세트 스코어 0-2(3-6, 5-7)로 완패하였다.

하지만 페더러는 10월 중순에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된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진출하며 커리어 통산 첫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페더러는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에 주최 측이 제공한 와일드카드를 받고 본선에 출전하였는데 32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21위에 올라있던 빈센트 스파디아(미국)를 2-0(6-4, 6-2)으로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게다가 페더러는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 16강전(2회전)에선 세계 랭킹 34위이던 이리 노박(체코)에게 2-0(7-6<10-8>, 6-1)으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페더러의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 8강전 상대는 카롤 쿠체라[8](슬로바키아)였는데, 페더러는 쿠체라에게 2-1(2-6, 6-4, 6-1)로 역전승을 따내며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처음 4강 진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페더러의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 4강전 상대는 세계 랭킹 7위로 대회 5번 시드를 받은 그렉 루세드스키[9](영국)였고, 페더러는 루세드스키에게 세트 스코어 0-2(3-6, 4-6)로 패하였다.

그리고 페더러는 바로 다음주에 프랑스의 리옹에서 열린 ATP 투어 리옹 오픈 남자 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하였고 10월말엔 프랑스의 브레스트에서 열린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에 출전하여 커리어 첫번째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이렇게 페더러는 1999년 시즌 막바지에 커리어 첫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4강 진출과 커리어 첫번째 ATP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면서 1999년에 세계 랭킹 302위로 시작한 시즌을 연말에 64위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페더러는 세계 랭킹 64위를 기록함으로서 스위스 선수 중 세계 랭킹 2위이면서 세계 랭킹 100위권 중 가장 어린 선수라는 위치를 차지한다.

1.4. 2000년

페더러는 2000년에 세계 랭킹 순위 61위로 시작하였으며, 2000년에 처음으로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에 모두 출전하면서 자신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출전 연속 기록의 서막을 열었다.

먼저 1월에 호주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첫 출전한 페더러는 128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38위이던 마이클 창(미국)에게 3-0(6-4, 6-4, 7-6<7-5>)으로 승리하며 페더러 자신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첫 승리를 따냈고 64강전(2회전)에서도 승리하며 32강(3회전)까지 진출했으나 32강전(3회전)에선 세계 랭킹 54위인 아르노 클레망[10](프랑스)에게 세트 스코어 0-3(1-6, 4-6, 3-6)으로 패배하며 탈락하였다.

페더러는 2월에 프랑스마르세유에서 개최된 ATP 투어 마르세유 오픈 남자 단식에서 주최측이 부여한 와일드카드를 받고 본선에 출전했는데,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38위로 대회 6번 시드를 받은 파브리스 산토로(프랑스)에게 2-0(7-6<7-4>, 7-5)로 승리를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하며 페더러 자신의 첫 ATP 투어 남자 단식 결승 진출을 달성하였으나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77위인 마르크 로셋(스위스)에게 세트 스코어 1-2(6-2, 3-6, 6-7<5-7>)로 아쉬운 역전패를 당하면서 준우승을 거두었다.

연이어 페더러는 3월엔 덴마크코펜하겐에서 열린 ATP 투어 코펜하겐 오픈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진출했고, 이후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에서 열린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스터즈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본선 1회전에서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99위인 저스틴 기멜스톱(미국)에게 2-0(7-5, 6-3)으로 승리하며 페더러 자신의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본선 첫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64강전(2회전)에선 패하면서 탈락했다.

그리고 페더러는 5월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하여 16강전까지 진출하였으나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10위던 알렉스 코레차(스페인)에게 세트 스코어 0-3(5-7, 6-7<7-9>, 2-6)으로 패하면서 탈락하였다.

6월에 윔블던 남자 단식에 출전하였으나 하필 페더러가 본선 128강전(1회전)에서 만난 상대는 우승 후보이며 세계 랭킹 5위로서 대회 5번 시드를 받은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러시아)였고 페더러는 카펠니코프에게 세트 스코어 0-3(5-7, 5-7, 6-7<6-8>)으로 패하였다.

8월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한 페더러는 32강전(3회전)까지 진출하였으나 32강전(3회전)에서 세계 랭킹 12위에 올라있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에게 세트 스코어 1-3(5-7, 6-7<6-8>, 6-1, 6-7<6-8>)으로 패하여 탈락했다.

그리고 9월에 열렸던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에서도 페더러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48위인 토미 하스(독일)에게 세트 스코어 0-2(3-6, 2-6)로 패배하였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세계 랭킹 62위인 아르노 디 파스쿠알(프랑스)에게 세트 스코어 1-2(6-7<5-7>, 7-6<9-7>, 3-6)로 패하면서 아쉽게 노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페더러는 10월에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스위스바젤에서 개최된 ATP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하여 32강전에서 주최측에게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20위인 토미 하스(독일)와 대결하여 2-0(6-3. 6-3)으로 승리함으로서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준결승전 패배를 설욕하였고, 16강전과 8강전에서도 연달아 모두 승리를 거두어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만난 페더러의 상대는 세계 랭킹 9위로 대회 3번 시드를 받은 우승 후보 레이튼 휴이트(호주)였는데 페더러는 휴이트도 2-1(6-4, 5-7, 7-6<8-6>)로 꺾으면서 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결승전에선 우승 후보로서 세계 랭킹 4위로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토마스 엔크비스트(스웨덴)에게 세트 스코어 2-3(2-6, 6-4, 6-7<4-7>, 6-1, 1-6)으로 아쉬운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로저 페더러는 2000년 세계 랭킹을 61위로 시작하여 29위로 마감하면서 꾸준히 성적 상승세를 이어갔다.

1.5. 2001년

2001년은 페더러에게 여러가지로 뜻깊은 해였다. 먼저 2001년 2월에 이탈리아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오픈 남자 단식에서 7번 시드로 출전한 페더러는 세계 랭킹 7위로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러시아)를 준결승에서 2-1(6-2, 6-7<4-7>, 6-3)로 이기고 자신의 통산 세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결승에 올랐고,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67위에 올라있던 줄리앙 보우터(프랑스)를 2-1(6-4, 6-7<7-9>, 6-4)로 꺾고 페더러 커리어 통산 첫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8강에 오르면서 자신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첫 8강 진출을 이뤘다.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도 8강 진출을 해냈고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16강에 올랐다.

이 성적 중에서도 2001년에 페더러한테 가장 의미가 깊었던 것이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의 성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2001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로저 페더러가 전년도 윔블던 남자 단식 챔피언이며 통산 윔블던 7회 우승에다 윔블던 남자 단식 4연속 우승을 이루고 5연속 우승에 도전하던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미국)와 대결하여 5세트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 끝에 3-2(7-6<9-7>, 5-7, 6-4, 6-7<2-7>, 7-5)로 꺾으며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에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2001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을 후세에 평가하자면 테니스 황제로 군림하던 피트 샘프라스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등극을 알리는 역사적인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당시나 이 경기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은 누구도 아직 페더러가 새로운 테니스 황제가 될지는 몰랐다. 이미 전성기에 접어들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해내고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 시작한 동세대 라이벌들인 레이튼 휴이트마라트 사핀, 앤디 로딕 등과 달리 페더러의 전성기의 시작은 2년이나 지난 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더러는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1위이던 팀 헨만(영국)에게 세트 스코어 1-3(5-7, 6-7<6-8>, 6-2, 6-7<6-8>)으로 패배하였고 경기후 존 메켄로가 페더러의 시대가 올것이라고 예언하여 후에 화제가 되었다 잘 찍네, 2001년 US 오픈 남자 단식 16강전에서는 세계 랭킹 2위이던 커리어 골드슬래머인 안드레 애거시(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0-3(1-6, 2-6, 4-6)으로 패배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로저 페더러는 2001년에 세계 랭킹 29위로 시작하여 연말에는 세계 랭킹 13위로 마치게 되었다.

1.6. 2002년

로저 페더러의 2002년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는 부진한 편이었으나 이때까지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했던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 두 번이나 결승에 진출하여 한 차례 우승을 달성하였고 전년도에 처음 우승하였던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두 번의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2년의 구체적인 성적을 살펴보면 첫 번째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은 16강전(4회전)에서 세계 랭킹 9위이던 토미 하스(독일)에게 세트 스코어 2-3(6-7<3-7>, 6-4, 6-3, 4-6, 6-8)으로 아쉬운 역전패를 당해서 탈락했다. 그리고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16강(4회전) 진출이라는 성적을 올렸지만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과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는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랜드슬램 대회를 이외의 다른 대회 성적은 상대적으로 좋았는데 2002년 1월에 호주시드니에서 열린 ATP 투어 시드니 오픈 남자 단식에서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준결승에서 3번 시드를 받은 세계 랭킹 15위 앤디 로딕(미국)을 2-0(7-6<7-3>, 6-4)로 꺾고,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67위인 후안 이나시오 첼라(아르헨티나)를 2-0(6-3, 6-3)으로 격파하고 우승하여 통산 두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2년 3월에 미국마이애미에서 열린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는 1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레이튼 휴이트(호주)를 2-0(6-3, 6-4)로 이기고 페더러로선 커리어 처음으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올랐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9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안드레 애거시(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1-3(3-6, 3-6, 6-3, 4-6)으로 분패하였다. 그래도 페더러로선 커리어 첫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이었다.

2002년 5월에는 독일함부르크에서 열린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스터스 함부르크 오픈 남자 단식에 페더러는 1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8강전에서 세계 랭킹 2위이던 구스타부 쿠에르텡(브라질)을 2-1(6-0, 1-6, 6-2)로 제압하고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5위이던 마라트 사핀(러시아)마저 3-0(6-1, 6-3, 6-4)로 꺾으면서 페더러 자신의 커리어 첫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 우승으로 통산 세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2년 10월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에 6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9위로 4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카를로스 모야(스페인)를 2-0(6-2, 6-3)으로 꺾고 결승전에서 5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이리 노박(체코)을 3-1(6-4, 6-1, 3-6, 6-4)로 물리치면서 페더러 자신의 ATP 투어 남자 단식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페더러는 세계 랭킹 순위를 2002년 첫주에 세계 랭킹 13위에서 시작하여 2002년 마지막주에 세계 랭킹 6위로 끝마칠 수 있었다.

1.7. 2003년

2003년에 세계 랭킹 6위로 시작한 로저 페더러는 1월에 열린 그랜드 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6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16강전(4회전)에서 10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세계 랭킹 12위이던 다비드 날바디안[11](아르헨티나)에게 세트 스코어 2-3(4-6, 6-3, 1-6, 6-1, 3-6)으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하지만 2월 중순에 프랑스마르세유에서 열린 ATP 투어 마르세유 오픈 남자 단식에 로저 페더러는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86위인 요나스 비요크만(스웨덴)을 2-0(6-2, 7-6<8-6>)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3년 첫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다섯 번째 ATP 투어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월 말에 UAE두바이에서 열린 ATP 투어 두바이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결승전에서 3번 시드를 받은 세계 랭킹 10위인 이리 노박(체코)을 2-0(6-1, 7-6<7-2>)로 꺾고 2003년 두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여섯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4월 말에는 독일뮌헨에서 열린 ATP 투어 뮌헨 오픈에서도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8번 시드를 받은 세계 랭킹 35위 야르코 니에미넨(핀란드)에게 2-0(6-1, 6-4)으로 완승을 거두고 우승을 달성하면서 2003년 세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일곱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다.

뮌헨 오픈 우승 직후인 5월 초에 마스터스 시리즈 중 하나인 마스터스 로마 오픈 남자 단식에 4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서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세계 랭킹 3위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를 2-0(6-4, 4-2<경기 중 페레로 기권>)로 꺾고 통산 세번째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결승전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패배하면서 마스터스 로마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5월 말에 열린 그랜드 슬램 대회인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선 128강전(1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6월 중순에 독일의 할레에서 열린 ATP 투어 할레 오픈 남자 단식에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73위인 니콜라스 키에퍼(독일)을 2-0(6-1, 6-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2003년 네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여덟 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우승의 여세를 몰아 6월 말에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에 4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서 5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세계 랭킹 6위인 앤디 로딕(미국)을 3-0(7-6<8-6>, 6-3, 6-3)으로, 결승전에서는 세계 랭킹 48위에 올라있던 마크 필리포시스[12](호주)를 3-0(7-6<7-5>, 6-2, 7-6<7-3>)으로 꺾으면서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여 첫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획득했다. 로저 페더러 통산 첫 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통산 첫 번째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이었고 여기에 2003년 다섯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ATP 투어 남자 단식 아홉 번째 우승이었다.

8월 말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로저 페더러는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했는데 16강전(4회전)에서 탈락했다. 10월 초에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ATP 투어 비엔나 오픈 남자 단식에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결승전에서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세계 랭킹 7위이던 카를로스 모야(스페인)를 3-0(6-3, 6-3, 6-3)으로 꺾고 2003년 여섯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10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11월 중순에 영국런던에서 열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 3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로저 페더러는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진행된 조별 예선 1회전에서 세계 랭킹 5위이던 안드레 애거시(미국)을 2-1(6-7<3-7>, 6-3, 7-6<9-7>)로 이기고 조별 예선 2회전에서는 세계 랭킹 8위인 다비드 날바디안(아르헨티나)을 2-0(6-3, 6-0)으로 꺾었다. 조별 예선 3회전에선 세계 랭킹 2위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에게 2-0(6-3, 6-1)으로 승리하며 조별 예선 3연승으로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 올랐으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앤디 로딕(미국)을 2-0(7-6<7-2>, 6-2)으로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결승전에선 조별 예선에서 대결하였던 안드레 애거시와 재차 대결하여 3-0(6-3, 6-0, 6-4)의 완승을 거두고 마스터스컵 남자 단식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이 마스터스컵 남자 단식 우승은 로저 페더러 통산 첫번째 마스터스컵 남자 단식 우승 겸 통산 11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이었다. 이렇게 로저 페더러는 2003년에 ATP 투어 이상급 대회에서 일곱 차례 우승을 해내는 좋은 성적으로 2003년 마지막을 세계 랭킹 2위로 끝마칠 수 있었다.

1.8. 2004년

2004년 세계 랭킹 2위로 시작한 로저 페더러는 1월 말에 열린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였는데 16강전(4회전)에서 15번 시드를 받은 전 세계 랭킹 1위인 레이튼 휴이트(호주)에게 3-1(4-6, 6-3, 6-0, 6-4)로 승리하였고 8강전에서도 세계 랭킹 8위인 다비드 날바디안(아르헨티나)을 3-1(7-5, 6-4, 5-7, 6-3)로 꺾었다. 4강전에서 세계 랭킹 3위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에게 3-0(6-4, 6-1, 6-4)으로 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하였는데 결승전에서 대결하게 된 상대는 당시 세계 랭킹 86위로 추락한 상태이던 전 세계 랭킹 1위인 마라트 사핀[13](러시아)이었다.

로저 페더러는 200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마라트 사핀에게 세트 스코어 3-0(7-6<7-3>, 6-4, 6-2)의 완승을 거두고 통산 첫번째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통산 두 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이 우승으로 페더러는 통산 12번째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으며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도 오르게 된다. 페더러의 세계 랭킹 1위는 스위스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 달성하는 세계 랭킹 1위이기도 했다.

3월초에 U.A.E두바이에서 열린 ATP 투어 두바이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는 우승하였고 이어서 3월말에 미국캘리포니아 주에서 개최된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페더러는 우승하며 통산 첫번째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5월초엔 독일함부르크에서 열린 마스터스 함부르크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하였다.

페더러는 5월말에 개최된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선 본선 32강전(3회전) 진출에 그쳤으나 6월초에 독일 할레에서 열린 ATP 투어 할레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였고 6월말에 개최된 2004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하며 윔블던 남자 단식 2연패통산 3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7월초엔 스위스의 그슈타트에서 열린 ATP 투어 그슈타드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였고 8월초엔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하였다.

9월초에 개최된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8강에서 만난 안드레 에거시와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 있었지만 결승전에서 만난 레이튼 휴이트를 6-0, 7-6, 6-0 으로 압도하며 관광보내며 우승하면서 통산 첫번째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통산 4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9월말엔 태국방콕에서 열린 ATP 투어 방콕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연말에 열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서도 페더러는 우승하면서[14]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2연패를 기록했다.

페더러의 2004년 시즌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만 우승 3회,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역시 우승 3회, 일반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선 우승 4회를 기록하며 투어 11회 우승을 거두었고 2004년 ATP 투어 남자 단식 통산 74승 6패를 기록하며 승률 92.5%를 기록하였는데 이 승률은 역대 단일 시즌 ATP 투어 남자 단식 승률 공동 4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승률이었다.[15]

1.9. 2005년

도하에서 우승을 한 뒤, 호주 오픈에서 4강에서 마라트 사핀을 만나 다 이긴 경기를 놓치는 바람에 2연패에 실패했지만, 이 후 로테르담 - 두바이 - 인디안 웰스 - 마이애미에서 전부 우승을 했다. 특히 인디안 웰스에서 우승은 '무실세트 우승' 이었고,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서 라파엘 나달 상대로 우승은 1985년 팀 마요트 이후 처음으로 두세트를 내주고 세세트를 따내는 모습을 보여줬다(2–6, 6–7(4), 7–6(5), 6–3, 6–1). 그리고 그 우승은 나달 상대로 커리어 처음으로 승리를 챙긴 한 해였다.

클레이 시즌은 몬테카를로 마스터스에서 1번 시드를 받았지만, 8강에서 리샤르 가스케에게 역전패를 당했고, 함부르크 마스터스에선 무실세트 우승을 했다. 그리고 롤랑 가로스 8강까지 무실세트로 이겼지만 4강에서 라파엘 나달에게 패하고 만다 (3–6, 6–4, 4–6, 3–6). 이때까지 그의 성적은 46승 3패.

그러나 페더러는 이 후 자비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할레에서 1라운드에서 로빈 소더링에게 고전했지만 이기긴 했고(6–7(5), 7–6(6), 6–4), 그 후 윔블던 - 신시내티 - 유에스 오픈에서 자비 없는 모습을 보여준 끝에 우승을 거두었다. 무려 25연승. 특히 US 오픈에서 우승은 그의 통산 500번째 경기였다.

데이비스 컵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하나 더 추가한 그는 방콕 오픈에 나가서 앤디 머레이를 꺾고 우승해 (2016년 랭킹 1위 머레이 맞다), 이제 남은 기록은 1984년 존 매켄로 이후 처음으로 82승 3패 시즌 도전을 하는 것이었다. 77승 3패인 그는 마스터스 컵에서 전승 우승을 하면 정확히 82승 3패로 마무리 할 수 있었으나 왕중왕전에서 2세트를 따고도 3세트를 내리 내주는 바람에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래도 이 해 11번 우승, 1번 준우승, 2번 4강, 1번 8강 등 그야말로 지배한 모습을 보여줬고, 1984년 존 매켄로 이후 가장 좋은 승률인 95.294% 를 기록했다. 95% 이상 승률을 기록한 선수는 Open Era 시대 이후 역대 3번째였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1년 내내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시즌을 만들었는데, 역사상 1년 내내 1위를 놓치지 않았던 5번째 선수가 되었다(지미 코너스 1975~76, 78 / 1986~87 이반 렌들 / 1994, 1997 피트 샘프라스 / 2002 레이튼 휴이트). 만약에 라파엘 나달을 프랑스 오픈에서 잡았더라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었고, 다비드 날반디안을 왕중왕전에서 잡았더라면 81승 4패가 아니라 83승 2패 시즌이 되었는데, 1925년 빌 틸든 이후 가장 높은 승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1925년 빌 틸든은 78승 1패로 98.734% 를 달성했다).

1.10. 2006년

시즌 시작을 카타르 도하에서 했는데 도하에서 그는 우승을 차지하고, 이어지는 호주 오픈에서 2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복귀한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결승에서 패했지만, 인디안 웰스와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몬테카를로 마스터스에서 결승까지 갔지만 나달에게 패했고, 로마 마스터스에서도 결승까지 갔지만 나달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2세트 타이브레이크 끝에 패했고, 5세트에서 마지막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게 천추의 한. 그리고 롤랑 가로스 결승에서 나달을 상대로 또다시 역전패를 당하면서 44승 4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49경기에서 48승을 거두었는데, 할레에서 고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윔블던에서 나달을 상대로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세트 타이브레이크 승리를 거두었다면 무실세트 우승도 가능했었다. 그 후 로저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 1라운드(!) 에서 머레이에게 셧아웃을 당했다(시즌 유일하게 세트를 얻지 못한 경기였다). 하지만 US 오픈에서 그는 로딕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데이비스 컵에서 팁사르비치와 조코비치를 셧아웃 시키고 2승을 챙겼고, 도쿄에서 8강전에서 스즈키 타카오에게 고전 했지만 승리 한 이후 결승에서 팀 헨만을 꺾고 시즌 9승 째를 챙겼다. 마지막 마드리드 마스터스 - 바셀 - 마스터스 컵에서 모조리 우승을 한 채 시즌을 마무리 했다.

2년 내리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으며, 시즌 성적은 92승 5패를 기록했다. 랭킹 포인트는 8375점인데, 지금 시대로 환산하면 15945점이다.
페더러의 2006년은 정말로 위대한 해였고, 역사에 남을 시즌인건 사실이다. 3년 내리 9할대 이상의 시즌을 달성했었고, 17개 대회에 나가서 12회 우승, 4회 준우승은 어마무시 했으니까.

1.11. 2007년

200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페르난도 곤잘레스(칠레)를 3-0으로 꺾고 전년도에 이어 호주 오픈 남자 단식 2연패를 달성하였고 호주 오픈 남자 단식 통산 3회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대회 내내 한 세트도 상대선수에게 허용하지 않으면서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하여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레전드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다.[16][17] 이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페더러의 영원한 호구 앤디 로딕을 상대로 페더러는 2세트에서 6-0 베이글까지 선사하는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자신의 시대가 끝나지 않을거 같은 인상을 주었다.

2007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전년도에 이어 두번째로 결승전에 올랐지만 역시 결승전 상대는 라파엘 나달(스페인)이었기 때문에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또 실패했다.

2007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선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5세트까지 엄청난 접전을 펼친 끝에 3-2(7-6<9-7>, 4-6, 7-6<7-3>, 2-6, 6-2)로 승리하며 우승하여 윔블던 남자 단식 5연패를 달성, 비외른 보리(스웨덴)가 가지고 있던 윔블던 남자 단식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인 윔블던 남자 단식 5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세웠다.

페더러는 2007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도 결승까지 진출하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10회 연속 결승 진출을 기록하면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연속 결승 진출 기록을 세웠으며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3-0으로 꺾고 US 오픈 남자 단식 4연패를 기록하여 존 메켄로(미국)와 이반 렌들(체코)이 가지고 있던 US 오픈 남자 단식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18]

그리고 페더러는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하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했다.

1.12. 2008년

하지만 2008년 시즌 페더러는 폼이 다소 떨어지면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에게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패하면서 탈락하였다. 하지만 페더러는 2004년 윔블던 남자 단식부터 2008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까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15회 연속 4강 진출을 기록하면서 역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연속 8강 진출 기록[19]인 15회 연속 8강 진출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선 결승에 오르며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3회 연속 결승 진출을 기록했지만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만나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게다가 나달에게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마저 패하며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 특히 2008년 라파엘 나달과의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은 두 차례의 비로 인한 경기 지연, 그로 인해 7시간 넘게 진행된 경기 시간,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 3,4세트를 타이 브레이크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며 풀세트까지 가는 등 치열한 경기 내용으로 인해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손꼽힌다. 이 엄청난 승부에서 페더러는 세트 스코어 2-3(4-6, 4-6, 7-6<7-5>, 7-6<10-8>, 7-9)으로 패하면서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기록을 5연패에서 마감한다.

페더러의 포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나달의 첫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코트에 쓰러져 환호하는 나달과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페더러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결정적으로 윔블던 남자 단식이 끝나고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페더러는 237주 연속 지켜오던 세계 랭킹 1위를 라파엘 나달에게 내주고 2위로 밀려나면서 역대 최장기간 연속 세계 랭킹 1위라는 위대한 기록은 237주 연속 세계 랭킹 1위[20]로 종료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종료되었지만 페더러는 거의 만 4년 반 가까이 단 한번도 세계 랭킹 1위를 내주지 않고 독주하며 테니스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페더러는 2008년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앤디 머레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5연패를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던 US 오픈 남자 단식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선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13. 2009년

200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또다시 만난 라파엘 나달에게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2-3(5-7, 6-3, 6-7<3-7>, 6-3, 2-6)으로 패하며 호주 오픈 남자 단식 3연패에 실패한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 중 눈물을 쏟아낸 페더러와 우승자 호명 직후 페더러를 안고 위로하던 나달의 모습은 200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God. It's killing me Um

2009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대회 5연패를 노리던 라파엘 나달이 16강전(4회전)에서 로빈 소더링(스웨덴)에게 발목을 잡히며 탈락했다. 기회를 잡은 페더러는 결승에서 그 소더링을 3-0(6-1, 7-6<7-1>, 6-4)으로 제압하고 대망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사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2006년부터 3년 연속으로 결승에 올랐으나 번번이 라파엘 나달에게 패하면서 이루지 못했던 대기록을 2009년에 드디어 달성한 것이다.[21]

2009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는 풀세트 접전끝에 앤디 로딕(미국)을 3-2(5-7, 7-6<8-6>, 7-6<7-5>, 3-6, 16-14)로 잡아내며 또 너야? 6번째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더불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통산 15회 우승을 달성하여 피트 샘프라스가 가지고 있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14회 우승 기록을 경신하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러면서 1년만에 나달에게 빼았겼던 세계 랭킹 1위 자리도 되찾아왔다.

2009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위력적인 플랫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에게 세트 스코어 2-3(6-3, 6-7<5-7>, 6-4, 6-7<4-7>, 2-6)으로 패하며,[22]준우승하여 US 오픈 남자 단식 6연패에는 실패한다.

1.14. 2010년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오픈에서는 견고한 모습을 대회 내내 잘 유지하며 결승에서 앤디 머레이를 3-0으로 꺾고 개인 통산 16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였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작년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로빈 소더링을 만나 8강전에서 1세트를 먼저 따냈으나, 연속하여 3세트를 내주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탈락하였다.[23]
2010년 윔블던 오픈 8강에서 괜찮은 실력자인 토마스 베르디흐[24]의 파워에 오랜만에 황제답지 못한 멘탈을 보여주며 탈락했다. 이로서 페더러는 2003년 11월 10일 이후로 처음으로 세계 3위로 랭킹이 떨어졌다.
2010년 US오픈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준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2010년 런던에서 열리는 ATP 파이널스에서는 결승에 올라 라이벌 라파엘 나달을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1.15. 2011년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당시 절정의 폼을 유지하고 있던 노박 조코비치에게 0-3으로 패하며 탈락한다. 조코비치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통산 2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모두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기록하게 되었다.

2011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그 해에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연승 가도를 질주하던 노박 조코비치를 준결승에서 3-1로 꺾으며 라파엘 나달과 결승에서 격돌했다.[25] 둘간의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의 맞대결은 통산 4번째.

1세트 초반 5:2까지 앞섰다가 양말 갈아신은 나달에게 순식간에 다섯 게임을 모조리 내주면서 기세가 꺾여 2세트까지 연달아 내줬다. 우천으로 잠시 중단되는 동안 잘 추스려 3세트를 잡았지만 결국 체력적인 면에서 한계를 보이면서 나달의 우주방어에 무릎꿇고 말았다. 세트 스코어 1-3 패.

같은 해 US 오픈 남자 단식 4강에선 조코비치와 맞붙어 첫 두 세트를 내리 따냈으나 3,4세트를 내주었고 마지막 5세트에서는 게임 스코어 5-3으로 앞선 상태에서 40-15 즉, 더블 매치 포인트까지 다다랐으나 갑작스런 체력 저하로 인해 결국 5-7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2011년은 조코비치가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3개의 메이저대회를 모조리 휩쓸면서 1위를 독주하였고 페더러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예전만 못한 풋워크와 체력으로 인해 세계랭킹 3위권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래도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조 윌프리드 송가를 2-1로 꺾고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통산 6회 우승을 달성하며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통산 최다 우승 기록[26]을 경신했다.

1.16. 2012년

2012년 연초의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라파엘 나달에게 준결승에서 1-3으로 패하며 탈락한다. 당해년도 호주오픈의 노박 조코비치라파엘 나달의 결승전은 6시간 가까이 펼쳐진 혈투로 2008년 윔블던 결승 이후 또 하나의 명경기로 손꼽히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조코비치가 3-2로 승리하면서 호주오픈 2연패를 달성한다.

2012년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서 나달을 상대로 2-0(6-3, 6-4)로 꺾으며 연초에 나달에게 당한 호주 오픈 남자 단식 패배를 설욕하였고 결승에서도 존 이스너(미국)에게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통산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본선 252승을 달성하며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본선 최다승 기록[27]을 세웠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준결승까지 올랐으나 조코비치에게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하지만 페더러는 2012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통산 237승을 달성하면서 지미 코너스가 가지고 있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여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2012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앤디 머레이를 꺾고 우승하며, 2010년 호주 오픈 이후 정말 오랜만에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샘프라스의 윔블던 최다우승 기록 타이를 이루고 오랜만에 랭킹 1위에 오른 것은 덤. 거기다 한 주 모자랐던 역대 최장기간 랭킹 1위를 넘어서서 역대 최장기간인 302주 랭킹1위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뒤에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남자단식 부분에 스위스 대표로 출전 - 결승전서 영국대표인 앤디 머레이와 2012 윔블던 리매치를 갖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패배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참고로 전설을 써 나가는중인 페더러의 커리어중 유독 올림픽 단식 금메달이 없다.[28] 역대 올림픽 출전기록은 위에서 언급된 2012 런던을 제외하고 2004 아테네 올림픽 2회전,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2012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8강전에서 토마스 베르디흐에게 1-3으로 패하며 탈락하였다.
해당 대회는 앤디 머레이가 조코비치를 꺾고 비원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대회이기도 하다.

1.17. 2013년

시즌 첫 그랜드슬램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앤디 머레이를 상대로 명승부를 펼쳤으나 2-3으로 패하며 준결승에서 멈춰섰다.

201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 통산 900승을 달성했다. 이는 지미 코너스(1,256승), 이반 렌들(1,068승), 기예르모 빌라스(929승)에 이어 역대 다승 부문 4위에 해당하는 기록. 하지만 8강전에서 송가에게 0-3으로 패하면서 4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열린 2013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겨우 두번재 경기인 64강전(2회전)에서 세계랭킹 116위인 세르게이 스타코프스키(우크라이나)에게 덜미를 잡히며 광탈하고 말았다. 참고로 128강전(1회전)에서 오랜지색 밑창이 달린 테니스화를 신고 경기했다는 이유로 윔블던 주최측에게 한소리 들은건 덤(....)[29] 해당시즌에는 페더러를 비롯 나달, 여자 단식의 아자렌카등 톱랭커들이 조기에 광탈한 대회이기도 하다. 다만 2013년 윔블던 남자 단식은 잔디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대회기간 잔디상태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이 많았던 대회이기도 하다.

2013년 신시내티 마스터스 8강전에서 나달에게 1-2(7-5, 4-6, 3-6) 로 패해 2002년 10월 28일 이후 가장 낮은 순위인 7위까지 떨어졌다. 아울러 2013년 US OPEN 에서 7번 시드를 확정해 (물론, 앞선 6명의 선수가 부상등으로 결장하면 시드는 올라간다) 2002년 US OPEN 이후 가장 낮은 시드를 기록했다. 페더러는 2013 US오픈에서 지금까지의 부진을 털어내고 제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모양. 그러나 단식 4회전(16강전)에서 스페인의 토미 로브레도에게 0-3(6-7, 3-6, 4-6)으로 완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것도 역대 대결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었던 상대에게 당한 완패.

결국 2013 시즌은 페더러의 역대 커리어중 최악으로 남게 돼버렸다. 일부 언론에선 페더러의 부진한 성적에 슬슬 은퇴 이야기까지 나오는 모양이지만, 본인은 이런 이야기를 일축하며 부활하겠다는 인터뷰를 남겼다.[30] 또한 스테판 에드베리를 새로운 코치로 영입했다.

1.18. 2014년

201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만난 앤디 머레이[31]를 멘붕시키며 결국 부활에 성공(...). 그러나 4강전에서 천적인 라파엘 나달을 만나 0-3(6-7, 3-6, 3-6)으로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32]

2014년 프랑스 오픈(롤랑 가로스) 남자 단식에선 잘나가다가 16강전에서 리트비아의 어네스트 굴비스[33]에게 2-3(7-6<7-5>, 6-7<3-7>, 2-6, 6-4, 3-6)으로 패하면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는 201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챔피언 스탠 바브린카에게 1세트를 빼앗겼을 뿐 준결승까지 무난하게 올랐다.[34] 사실 대진운이 상당히 좋았는데, 3라운드까지 파블로 로렌지, 질 뮐러, 산티아고 그랄도등 비교적 별볼일 없는 선수들을 상대했다.[35] 게다가 16강에선 통산전적 12전 11승을 기록중인 토미 로브레도를 만난걸 보면 대진운이 기가 막힌다는 평가.

4강전에선 캐나다의 신성 밀로시 라오니치[36]를 만나게 됐다. 전적상 페더러가 4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어도 잔디 코트의 특성상 강력하고 정확한 서브를 주무기로 하는 라오니치가 유리할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앤디 로딕 같은 강서버를 잔디코트에서 많이 상대해 봤던 경험을 증명하듯 페더러가 3-0(6-4, 6-4, 6-4)으로 가볍게 승리하고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와 맞붙게 되었다.

2014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은 역대급 명승부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만큼 양 선수의 경기력이 뛰어났다. 다만 페더러가 아쉽게도 풀세트 접전끝에 2-3(7-6<9-7>, 4-6, 6-7<4-7>, 7-5, 4-6)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참고로 결승전 이전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조코비치가 자신에게 아빠로 살아가는 방법을 물어봤다는 사실을 말해 화제가 되었다는 후문.[37]

2014년 8월 첫째 주 마스터스 1000 캐나다 마스터스에서 4강전 펠리시아노 로페스를 꺾고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에서 조 윌프리드 송가에게 패배했다. 8월 둘째주에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서 개최된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인 마스터스 1000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6위에 올라있던 다비드 페레르(스페인)에게 2-1(6-3, 1-6, 6-2)로 승리하며 우승했다.
2014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선 세계 랭킹 16위인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준결승전에서 만나 세트 스코어 0-3(3-6, 4-6, 4-6)으로 완패. 당시 칠리치의 서브가 워낙에 위력적이었고 스트로크 싸움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칠리치는 대회 내내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면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다.

2014년 10월에 중국상하이에서 개최된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인 마스터스 1000 상하이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노박 조코비치를 꺾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우승했다.

2014년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에선 순조롭게 잘 나가다가, 준결승에서 같은 스위스 출신의 스탠 바브린카를 만나 윔블던 결승 못지 않은 극적인 경기를 펼쳤다. 경기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두번째 세트에서 간신히 따라잡았지만, 세번째 세트에서 끝장을 보지 못하고 결국 타이브레이크로 돌입... 최종스코어 2-1(4-6, 7-5, 7-6<8-6>) 로 힘겹게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덤으로 팬들의 정신줄과 기력도 가져갔다 사실 페더러에 비해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매치포인트만 해도 다섯 번을 맞았던 바브린카 입장에선 참으로 아쉬운 결과였으나, 반대로 페더러의 멘탈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 보여줬던 경기.

하지만 모든 것을 불사른 준결승 후 바로 다음 날인 결승 몇시간 전 돌연 리타이어를 선언했다. 복식 결승 후 본인이 직접 나와서 해명했는데, 두시간 사십 분이 넘었던 준결승 경기에서 등에 부상을 입었고 경기 몇 시간 전까지도 진통제, 휴식, 테라피 등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도저히 회복이 되질 않아 경기를 치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상태에서의 경기를 하기에는 자기 나이를 고려했을 때 너무 위험부담이 큰("too risky at my age") 일이라고. 타이틀은 자연스럽게 조코비치에게 넘어갔다. [38] 이미 ATP 파이널스에서 최다 타이틀 기록(6회)을 보유하고 있고 만약 이겼다면 자기 기록을 자기가 깰 수 있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더 안타깝고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39]

이후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후배이자 절친인 바브린카와 페어를 이루어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고.... 드디어 그의 타이틀 리스트에 데이비스 컵을 추가했다! 화려한 그의 커리어에서 이 데이비스 컵은 유독 인연이 아니었는데 이걸로 또 한번 전설을 써내렸다. 등 부상으로 인해 첫째 날 프랑스의 가엘 몽피스에게 스트레이트로 패배했으나 둘째 날 바브린카와 페어를 이룬 복식, 셋째 날 리샤르 가스케와의 단식에서 컨디션을 회복해 가며 무난하게 승리. 본인에게도 의미가 깊었는지 스위스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코트에 엎드려 버렸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시상 후 인터뷰에선 팀에게 공을 돌리며 ("This one is for the boys")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1.19. 2015년

호주 오픈 직전에 열리는 대회인 2015 ATP 투어 브리즈번 인터내셔널 단식 결승에서 캐내다의 밀로시 라오니치(랭킹 6위)를 2-1(6-4, 6-7, 6-4)로 꺾고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프로통산 1000승의 금자탑을 달성했다. 이는 선배 테니스 선수인 지미 코너스(미국출신/1,256승), 이반 렌들(체코출신/1,068승)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

이 분위기를 이어나가 2015 호주 오픈에서도 준수한 활약이 기대 되었으나, 단식 32강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이탈리아 출신의 안드레아스 세피(싱글랭킹 46위)에게 1-3(4-6, 6-7<5-7>, 6-4, 6-7<5-7>)으로 패배 - 14년만에 호주오픈 16강안에 들지 못하는 이변을 기록했다.

호주 오픈에서의 충격이 컸는지, 이어지는 두바이 오픈에서는 그야말로 대오각성.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가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2:0으로 누르며 대회내내 무실세트, 노타이브레이크로 우승을 차지했다. 페더러는 결승에서만 11개의 에이스를 쏟아낼 정도로 날선 기량을 선보였으며, 이 대회 결승에서 통산 9000에이스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역대 4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며, 페더러가 얼마나 공격적인 면에서 완성된 선수인지를 새삼 입증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 오픈에선 같은 스위스 출신의 절친 스탄 바브린카를 8강서 만나 0-3(4-6, 3-6, 6-7<4-7>)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윔블던에선 무난히 순항중이며, 4강서 앤디 머레이를 3-0 (7-5, 7-5, 6-4) 으로 꺾고 2년 연속 결승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결승전 상대로 노박 조코비치가 올라오면서 2014년 윔블던 결승전의 리매치가 성사되었으나 결승전에서 조코비치에게 1-3(6-7<1-7>, 7-6<12-10>, 4-6, 3-6)으로 패배하고 만다. 역시나 후반 체력문제와 조코비치의 날카로운 스트로크에 당한게 원인.

US 오픈 남자 단식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8월에 2주 연속으로 개최되는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중에 먼저 열리는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캐나다 로저스컵에는 불참한다고 발표하였는데 마스터스 1000 캐나다 로저스컵에 출전한 앤디 머레이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페더러를 세계 랭킹 3위로 밀어내고 머레이가 세계 랭킹 2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바로 다음주에 열린 마스터스 1000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는 4강전에서 앤디 머레이를 2-0(6-4, 7-6<8-6>)으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하였고 결승전에서도 노박 조코비치를 2-0(7-6<7-1>, 6-3)으로 꺾으면서 우승을 차지하여 1주일만에 다시 페더러가 세계 랭킹 2위로 복귀하고 머레이는 세계 랭킹 3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페더러가 만 34세에 거둔 이 우승으로 페더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최고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 기록을 다시 경신하였다.[40]

US 오픈에선 무난하게 상위 라운드로 진출 - 준결승서 후배 바브린카를 3-0으로 꺾고 결승서 노박 조코비치와 붙게 되었다. 결과는 1-3(4-6 7-5 4-6 4-6)으로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 2012 윔블던 준결승 이후 조코비치와의 메이저대회 맞대결에서 계속 패하고 있다.

10월 둘째주에 세계 랭킹에서 2위 자리를 앤디 머레이에게 내주고 다시 3위로 밀려났다. 페더러와 머레이 두선수 모두 별다른 대회 출전이 없어서 1년 전에 획득한 ATP 싱글 랭킹 포인트가 소멸되는데 상대적으로 페더러의 소멸 포인트가 많아서 페더러와 머레이의 세계 랭킹이 바뀌었다.

10월 마지막주에 스위스바젤에서 열린 ATP 월드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에서 로저 페더러가 결승전에서 라파엘 나달을 2-1(6-3, 5-7, 6-3)로 꺾고 우승하면서 11월 첫째주에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다시 앤디 머레이를 제치고 페더러가 세계 랭킹 2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11월 첫째주에 열린 마스터스 1000 파리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는 16강에서 탈락하였으나 앤디 머레이는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11월 둘째주에 발표된 ATP 싱글 랭킹 순위에서 다시 페더러는 머레이에게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 자리로 내려앉았다.

1.20. 2016년

연초 이반 류비치치를 새 코치로 들였다.

호주 오픈 남자 단식 32강에서 마리아 샤라포바의 옛 남자친구불가리아의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를 꺾고 역대 남자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 본선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 앞으로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6승 이상만 더 거두면 역대 테니스 선수중 그랜드슬램 대회 통산 306승을 기록한 전설의 여성 플레이어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기록도 깰 수 있다. 그리고 역시나 상위 대진표로 쭉쭉 나가면서 4강에 안착 - 노박 조코비치 와 결승티켓을 놓고 맞붙게 되었는데, 초반 경기운영이 꼬이며 22개의 백핸드 에러를 내더니 1-3으로 패했다. 그래도 4세트에서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는지 보는 이들이 경악할만한 랠리를 보여주며 아직까진 최정상급의 선수란 사실을 증명한게 그나마 위안. 하지만 페더러는 조코비치와의 이 경기 이후 딸들을 욕실에서 목욕시키다가 어처구니없게도 무릎 반월판 부상을 당하게 된다.

결국 페더러는 무릎 부상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고 두달간 재활 훈련을 했다. 일단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엔 불참하고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 복귀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갑작스러운 복통 증세로 기권을 선언하며 다음번에 복귀전을 치를듯 하다. 설상가상으로 허리 부상이 악화되며 생각보다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전년도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앤디 머레이가 올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 남자 단식에선 준우승을 기록하여 포인트 방어에 실패하면서 2016년 5월 둘째주에 머레이를 제치고 다시 세계 랭킹 2위 자리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어서 열린 마스터스 1000 로마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는 16강 진출에 그쳤으나 앤디 머레이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페더러는 세계 랭킹 3위로 밀려나고 머레이가 세계 랭킹 2위에 올라섰다. 게다가 페더러는 등 부상이 악화됨에 따라 결국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도 참가를 포기함으로써 이어오던 또 하나의 대기록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연속 출전 기록65회 연속 출전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페더러는 부상이 호전되어 6월 독일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ATP 월드 투어 메르데세스 컵 남자 단식에 출전, 준결승까지 진출하면서 ATP 투어 남자 단식 통산 1072승을 달성하는데 성공 - 이반 렌들(체코)이 가지고 있던 역대 테니스 선수 투어 ATP 투어 남자 단식 통산 최다승 2위의 기록을 넘어섰다.

윔블던 남자 단식에선 무난히 8강까지 진출, 4강 티켓을 놓고 마린 칠리치(크로아키아)와 붙었다. 처음엔 칠리치의 강력한 서브 등에 밀리며 1세트와 2세트를 연달아 내주어 0-2로 스코어가 밀렸으나 기적같이 3세트와 4세트, 5세트를 연속해서 따내며 3-2(6-7<4-7>, 4-6, 6-3, 7-6<11-9>, 6-3)로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4세트에서 칠리치의 게임을 브레이크해 5-4로 앞섰으나 페더러 자신의 게임을 칠리치에게 브레이크 당하며 타이브레이크를 허용했고, 타이 브레이크에서도 페더러는 먼저 앞서나가다가 칠리치에게 역전당하는 위기를 맞았으나, 이 위기에서 페더러는 신들린 듯한 플레이로 포인트를 따내 11-9로 재역전하며 5세트까지 끌고갔고, 5세트에선 페더러의 서브 에이스가 잘 터진데다 칠리치의 게임을 페더러가 2번 브레이크하여 결국 준결승에 극적으로 진출하였다.

페더러의 윔블던 남자 단식 준결승 상대는 젊은 톱랭커인 밀로시 라오니치(캐나다)이며, 여기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면 반대편 대진에서 올라오고 있는 앤디 머리(영국)와 우승컵을 놓고 대결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페더러는 준결승전에서 라오니치의 대포알 서브에 엄청나게 고전하면서 풀세트 접전까지 흘러갔고, 결국 페더러는 체력저하에다 5세트 중간에 발목이 꺾이는 악재까지 겹치며 세트 스코어 2-3(3-6, 7-6<7-3>, 6-4, 5-7, 3-6)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7월 말에 페더러는 테니스 선수로서 계속 활동하기 위해선 무릎 부상을 확실하게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US오픈을 포함하여 2016년 시즌 후반기 전체를 결장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21. 2017년

반년간의 재활을 끝내고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출전을 시작으로 공식 대회에 복귀했으며, 작년 하반기부터 부상 치료 및 재활을 위해 쉬었던터라 ATP 싱글 랭킹 포인트를 잃어버림에 따라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페더러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17번 시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페더러는 대회 초반엔 경기 감각이 다소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며 고전했으나 32강전(3회전)에서 붙은 토마스 베르디흐(체코)를 3-0(6-2, 6-4, 6-4)으로 압도한 경기를 기점으로 날선 경기력을 보여주며 상위 라운드로 계속 진출했다.

남자 단식 16강전(4회전)인 니시코리 케이(일본)와의 대결에선 풀세트 접전끝에 3-2(6-7<4-7>, 6-4, 6-1, 4-6, 6-3)로 승리를 거뒀다. 같은 드로에 속해 있으며 8강에서 만날 확률이 높았던 세계랭킹 1위인 앤디 머레이가 16강전에서 탈락함에 따라 머레이를 꺾은 미샤 즈베레프(독일)를 상대로 8강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남자 단식 4강전에선 친구인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스위스)와 맞붙었는데 1~2세트를 페더러가 먼저 가져갔으나, 3~4세트를 연달아 바브린카에게 내주며 5세트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여기서 페더러가 역스윕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더블 폴트를 범한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을 극적으로 브레이크하면서 3-2(7-5, 6-3, 1-6. 4-6, 6-3)로 승리하며 페더러는 7년만에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 진출했다.

페더러의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상대는 2000년도 중반부터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라파엘 나달.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에선 정말 오랜만에 그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되었는데, 결승전 내내 페더러의 포핸드가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나달의 2배가 넘는 57개의 범실(범실 수: 57 vs 28)을 페더러가 기록하며 고전했다. 그러나 페더러는 서브와 백핸드로 차분하게 경기를 운영하며, 나달의 2배가 넘는 73개의 위너(위너 수: 73 vs 35)로 경기를 주도했고, 마지막 5세트까지 가서는 포핸드까지 살아나면서 결국 3시간 37분간의 풀세트 접전 끝에 3-2(6-4, 3-6, 6-1, 3-6, 6-3)로 승리! 2012년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 이후 5년만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우승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통산 우승 18회를 달성했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5세트 게임스코어 4-3으로 페더러가 앞선 상황에서 나달의 서브 게임을 듀스까지 몰고가면서 나온 26구의 랠리. 두 선수 모두 치기 어려운 코스의 공을 집요하게 추격하며 리턴했고 결과적으로 페더러의 포핸드 다운더라인 샷이 코트 빈 공간에 떨어지며 경기의 모멘텀을 자신에게 끌어온다. 그 포인트를 바탕으로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해낸 페더러는 이어진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켜내며 우승을 하게 된다.

이번 페더러의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이 더욱 위대한 이유는 만 35세 5개월이란 나이에 이뤘다는 부분. 이는 1969년 오픈 시대 이후 역대 두번째 최고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겸 역대 두번째 최고령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 기록으로, 이전 기록인 켄 로즈웰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45년전인 1972년에 달성(만 37세 2개월)한 기록이라 아주 체계화된 현대 테니스와는 비교가 힘들다는걸 감안하면[41] 사실상 역대 최고령 우승이나 마찬가지다.[42] 현재 페더러가 20대 시절의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최정상급 선수들과 진검승부를 벌일 만한 실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 터라 새로운 전설을 써나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리고 3월 상반기에 매년 9개 대회가 열리는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 중에 첫 번째로 개최되는 대회면서 9개 대회 중에 가장 큰 규모여서 제5의 그랜드슬램 대회로 불리는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16강전에서 호주 오픈에서 만났던 나달과 2달만에 재대결하여 2-0(6-2, 6-3)으로 꺾는 등 순항한 끝에 결승전에선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를 2-0(6-4, 7-5)으로 꺽고 결승전까지 5경기에서 무실세트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페더러는 이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으로 만 35세 7개월의 나이로 최고령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43]

3월 하반기에 개최된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페더러는 32강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상대로 2-0(6-3, 6-4)으로 완승을 거두는 등 무난하게 계속 승리를 거두며 8강까지 진출하였고 8강 상대로 토마스 베르디흐를 만났다. 베르디흐 상대로 페더러는 고전하였는데 1세트는 6-2로 무난하게 따냈지만 2세트를 3-6으로 내주었다. 이어진 3세트에서도 페더러가 5-2로 리드하다가 베르디흐에게 브레이크를 허용하며, 타이브레이크까지 가게되었고 페더러는 타이브레이크에서 4-6으로 뒤쳐지며 두 개의 매치포인트를 내주는 위기를 맞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4포인트를 페더러가 연속해서 따내며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하였다. 결국 페더러가 베르디흐를 2-1(6-2, 3-6, 7-6<8-6>)로 꺾고 극적으로 4강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페더러의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4강전 상대는 매너나 인성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력만큼은 차세대 선수들 중에 선두를 다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 랭킹 16위 닉 키리오스. 그리고 페더러는 키리오스를 상대로 매세트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2-1(7-6<11-9>, 6-7<9-11>, 7-6<7-5>)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진 결승전 상대는 올해 들어서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과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16강전에서 연달아 만났던 라파엘 나달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페더러와 나달의 결승전 맞대결은 2005년의 페더러와 나달의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대결 이후 12년 만에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리턴 매치가 성사된 것인데 여기다 시즌 시작 몇달 만에 페더러와 나달의 세번째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2017년 시즌 초반이 마치 10년 전의 두 선수의 전성기 시절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둘 중 우승하는 선수는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라가고,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라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결승전에서 페더러는 나달을 맞아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는 좋은 모습으로 2-0(6-3, 6-4)으로 승리하며 우승까지 따내는데 성공했다. 과거 나달 상대로 페더러는 기껏해야 2연승이 고작이었고 도리어 나달에게 3연패 이상을 밥먹듯이 당했는데 결국 커리어 막판에 나달 상대로 무려 4연승을 거두며 완벽히 설욕, 나달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다.

그리고 페더러는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까지 우승하면서 2017년 들어서면서 호주 오픈 남자 단식,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까지 연달아 우승을 따내어 거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분좋은 출발을 하고 있는중.[44] 2017년 올 시즌 현재까지 페더러의 성적은 19승 1패. 페더러가 시즌 첫 20경기에서 19승을 찍은 적은 전성기 시절인 2004년(19승), 2005년(19승), 2006년(19승) 이후 처음이다.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우승 후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페더러는 현재 자신의 나이와 큰 부상을 당했던 몸 상태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 만큼 프랑스 오픈 이전에 개최되는 클레이 코트 대회는 전부 불참하고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만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한 번 큰 부상을 당했었기 때문에, 랠리가 길어져 몸에 부담이 큰 클레이 코트 대회는 대부분 불참하고 이후 열리는 잔디와 하드 코트 대회에 주력할 계획이었다.이는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의 회복력이 느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프랑스 오픈 개최 2주 전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도 출전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여 올해 클레이 코트 시즌은 완전히 불참하게 되었다. 자택이 있는 스위스의 클레이 코트에서 연습기간을 가졌는데, 랠리가 길어져 체력적 부담이 큰 경기장 특성상 몸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있고, 다시 한 번 부상을 당한다면 자신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현재의 폼을 회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과감히 올해 클레이 코트 시즌은 접고, 상대적으로 랠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아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는 윔블던 남자 단식이 포함된 잔디코트 시즌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페더러의 공식 경기 복귀는 잔디 시즌 첫번째 대회로서 6월 세번째주에 독일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되는 ATP 월드 투어 메르세데스 컵 남자 단식으로, 이 대회에서 페더러는 대회 1번 시드를 받았고 대회 1번 시드여서 32강전(1회전)은 부전승으로 통과했으나 아쉽게도 16강전에선 패하여 탈락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주에 독일의 할레에서 개최된 게리베버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며 윔블던 우승 전망을 밝게 했다.

이후 1주간 휴식 후에 윔블던 남자 단식에 출전 - 128강부터 4강까지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순항하고 있다. 페더러가 순항하는동안 노박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 앤디 머레이가 전부 탈락했으며 16강전에서 상당한 강적인 그레고리 디미트로프(불가리아)를 3-0(6-4, 6-2, 6-4)으로 격파 & 8강전에서도 밀로시 라오니치(캐나다)를 3-0(6-4, 6-2, 7-6<7-4>)으로 물리치는등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4강에선 토마스 베르디흐(체코)와 붙게 되었는데, 1~2세트 모두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페더러가 집중력을 발휘하여 두 세트 모두 타이 브레이크에서 승리 - 3세트에서 더욱 집중력을 발휘한 페더러가 날카로운 서브를 앞세워 3-0(7-6<7-4>, 7-6<7-4>, 6-4) 스코어로 결승 진출을 확정지음과 동시에 대회 무실세트 행진을 이어갔다.

결승전 상대는 2014년 US오픈 준결승서 패배한 전적이 있는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 그리고 그 경기에서 칠리치를 3-0(6-3, 6-1, 6-4)으로 누르고 무실세트로 5년만에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의 쾌거를 맛보게 되었다. 윔블던 남자 단식 무실세트 우승은 1976년 비외른 보리 이후 무려 41년만의 기록. 게다가 이 우승으로 페더러는 윔블던 남자 단식 8회 우승을 기록함으로써 피트 샘프라스와 공동으로 가지고 있던 기록에서 단독으로 역대 윔블던 남자 단식 최다 우승자가 되었다.

페더러는 또한 지미 코너스를 제치고 윔블던 남자 단식 4강 진출 12회 및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 통산 91승으로 단독 1위에 올랐으며, 만 35세 11개월의 나이로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면서 역대 최고령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 기록도 다시 썼다.[45] 또한 페더러는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46][47]한 것에 더하여 1976년에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비에른 보리가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이후 무려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41년만에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페더러는 마지막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통산 19회 우승을 달성하며 통산 20회 우승이라는 본인의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섰다.

US 오픈을 앞두고는 ATP 월드 투어 캐나다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만 출전하며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는 전략을 꺼냈다. 게다가 랭킹 2위인 앤디 머레이가 허리부상 때문에 US 오픈 출전을 포기하면서 대회 이후 최소 랭킹 2위 등극 확정 & 우승한다면 1위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페더러도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에서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다시 악화되면서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당시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알렉산더 즈베레프에게 세트 스코어 0-2(3-6, 4-6)로 패하게 되었다.

이후 ATP 월드 투어 신시내티 마스터스 1000에 출전하지 않고 약 2주의 휴식 뒤 US오픈에 출전하였지만, 캐나다 마스터스1000에서 악화된 허리 부상의 여파로 회복에 집중하느라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탓에, 윔블던에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8강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에게 세트 스코어 1-3(5-7, 6-3, 6-7<8-10>, 4-6)으로 패하고 말았다. 물론 이 경기에서 페더러의 패배는 페더러의 경기력이 부진한 탓도 있지만 델 포트로가 정말 오랜간만에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선전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페더러는 2017년 US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출전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통산 71회 출전을 달성하여 기존에 파브리스 산토로가 가지고 있던 대기록으로서 역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최다 출전 기록인 통산 70회 출전 기록을 경신하여 역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통산 최다 출전자가 되었다. 그리고 US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을 달성하면서 세계 랭킹 순위가 다시 한계단 올라서며 ATP 싱글 랭킹 2위로 복귀하였다.

US 오픈 남자 단식 이후 페더러는 휴식을 취하다가 10월에 중국상하이에서 열린 ATP 월드 투어 상하이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에 출전하여 4강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만나 2-1(3-6, 6-3, 6-3)로 역전승을 거두며 US 오픈 남자 단식 8강전 패배를 설욕하였고 결승전에선 또다시 나달과 만나게 되어 올해 들어서만 나달과 네 번째 대결을 벌였는데 2-0(6-4, 6-3)으로 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이 우승으로 페더러는 상하이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에서 만 36세 2개월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페더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최고령 우승 기록을 다시 경신하였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만 페더러는 나달에게 4연승을 거두며 커리어 막바지에 나달과의 천적 관계를 거꾸로 역전시켰다. 특히 페더러는 올해 들어서만 201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5세트 ~ 2017년 상하이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 결승전 2세트까지 나달 상대로 7세트를 연속으로 잡아내고 있다.(물론 나달도 페더러 상대로 2013년 신시내티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 8강전 2세트 ~ 201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전 3세트까지 7세트 연속으로 잡은 적이 있다)

올해 페더러는 선택과 집중을 한 효과가 뛰어났다. 페더러는 올해 클레이 코트 대회를 모두 불참[48]하여 체력적인 부분을 세이브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는 다음과 같은 성적을 남겼다.

* 승-패 전적 : 49승 4패, 92.45% 승률 => 2006년 92승 5패 (94.85%) 이후 첫 9할대 승률.
*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승-패 : 20승 1패, 95.24% 승률 => 2005년 27승 1패 (96.43%) 이후 가장 높음.
* 그랜드슬램 대회+9개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승-패 : 38승 2패, 95% 승률 => 커리어 하이.

하지만 페더러의 연말 세계 랭킹 1위는 쉽지 않다. 페더러가 올해 드디어 나달과의 맞대결 전적은 극복했지만, 클레이 코트 대회를 모두 불참한 관계로 페더러의 승률은 1위지만 (나달 65승 10패, 승률 86.667%), ATP 싱글 랭킹 점수에서 페더러는 나달에게 1460점차로 뒤져 있다. 그 이유는 페더러가 호주 오픈 남자 단식과 마이애미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 상하이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면서 ATP 싱글 포인트 4000점을 얻었을 때 나달도 이들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거두며 ATP 싱글 포인트 2400점(1200+600+600)을 가져가며 포인트 격차가 많이 나지 않게 선방을 했고, 여기다 페더러가 불참한 클레이 코트 대회에서 나달이 추가적으로 엄청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결국 페더러는 바젤 오픈에서 우승을 했지만, 부상으로 파리 마스터스를 불참했고, 나달이 1위를 확정지었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나달-페더러가 세계 랭킹 1-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두 선수 모두 85% 넘는 승률로 1,2위로 마무리 했는데, 참고로 빅4가 활동하던 때에 세계 랭킹 1,2위가 동시에 85% 이상 승률을 달성한 경우는 2005년 페더러-나달, 2013년 나달-조코비치, 2014년 조코비치-페더러, 2016년 머레이-조코비치다.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된 셈.

이후에 열린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조별 예선전에서 3연승을 거두어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2017년 9할대 승률을 확정지었다. 역사상 9할대 승률을 4회 이상 기록한 남자 테니스 선수는 다음과 같다.
이반 렌들 : 1982, 1985, 1986, 1987, 1989
비외른 보리 : 1977, 1978, 1979, 1980
로저 페더러 : 2004, 2005, 2006, 2017

그리고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4강 진출을 기록하여 2017년 시즌은 52승 5패로 마무리 했다. 승률은 91.23%. 역사상 9할대 승률을 기록하고도 세계 랭킹 1위에 오르지 못한 시즌을 만들었는데, 이 기록의 남녀 통틀어 해당자는 다음과 같다(40전 이상 해당).

세레나 윌리엄스 : 2012년, 3위, 58승 4패 (93.55%)
세레나 윌리엄스 : 2003년, 2위, 38승 3패 (92.68%)
크리스 에버트 : 1982년, 2위, 75승 6패 (92.59%)
이반 렌들 : 1982년, 3위, 107승 9패 (92.24%)
비외른 보리 : 1977년, 3위, 69승 6패 (92.00%)
슈테피 그라프 : 1986년, 3위, 64승 6패 (91.43%)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 1989년, 2위, 73승 7패 (91.25%)
로저 페더러 : 2017년, 2위, 52승 5패 (91.23%)
비외른 보리 : 1978년, 2위, 82승 8패 (91.11%)
슈테피 그라프 : 1992년, 2위, 71승 7패 (91.03%)
크리스 에버트 : 1985년, 2위, 81승 8패 (91.01%)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 1988년, 2위, 70승 7패 (90.91%)
모니카 셀레스 : 1990년, 2위, 54승 6패 (90.00%)
* 공식 랭킹이 생기기 전엔 마거릿 코트가 1961년 81승 6패 (93.10%), 1971년 64승 4패 (94.12%) 를 기록하고도 1위를 못했다.

1.22. 2018년

그랜드슬램 통산 20회 우승을 달성하다.

호주 오픈에선 역시나 강력한 모습을 선보이며 무실세트로 가볍게 결승에 안착했다.[49] 특히 결승전 티켓을 놓고 한국의 정현 선수와 벌인 4강전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경기였다. 정현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며 세트 스코어 1:0으로 앞서 나갔고 2세트 도중 정현이 부상으로 인한 기권을 선언하며 그대로 결승에 진출했다. 작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 이어 마린 칠리치와 다시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다.

결승전 당일, 1세트를 6-2로 손쉽게 잡아내면서 작년 윔블던처럼 무실 세트 우승을 거머쥘 것처럼 보였지만, 2세트에서 칠리치의 서브와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내주며 경기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후 3세트는 브레이크를 한 번 해낸 뒤 끝까지 지켜 6-3으로 따냈으며, 4세트도 초반부터 칠리치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우승에 대한 전망을 밝혔으나, 중반 이후부터 페더러의 범실이 급격히 늘어나며 2번 연속으로 브레이크를 당하면서 6-3으로 패배했다. 4세트 중반 이후부터 서브의 위력이 떨어지고 랠리에서도 이기지 못하면서 체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5세트에서는 더욱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5세트 첫 게임에서 어렵게[50] 자신의 서브를 지켜낸 뒤, 칠리치의 서브로 진행된 2번째 게임에서 듀스를 이룬 가운데 결정적인 호크아이 챌린지로 상대의 더블폴트를 잡아내었고, 그것을 계기로 브레이크에 성공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후 침착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잘 지켰고, 칠리치가 여러 차례 범실을 범해 자멸하며 결국 6-1의 압도적인 스코어로 5세트를 승리하며 최종 스코어 3-2(6-2, 6-7<5-7>, 6-3, 3-6, 6-1)로 고대하고 있던 호주 오픈 통산 6회 겸 그랜드슬램 통산 20회 우승을 달성했다.

로테르담 대회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해 1위를 탈환했다. 2012년 11월 4일 이후 5년 106일 만에 1위 자리에 오른 것이다. 덤으로 세계 최고령 1위[51]를 차지했다. 또한 처음 1위에 오른 뒤, 가장 오랜 기간을 두고 다시 1위에 올랐는데 14년 17일만이었다. 결국 로테르담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시즌 12연승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가 12승 무패로 시작한 경우는 2006년, 200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그리고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에서 1번 시드를 획득했는데, 1000대회 이상에서 1번 시드를 받은 적은 2012년 상하이 마스터스 이후 처음이며, 인디안 웰스 마스터스 기준으론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번 시드를 획득하게 되었다. 호주 오픈보다 더 물오른 실력으로 무실세트로 제레미 샤디, 정현 등을 꺾으며 4강까지 진출한 상태이다. 준결승전에서 보르나 초리치한테 한 세트를 내주었으나 이후 역전승했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한테 패하며 준우승했다.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에서는 세계랭킹 175위인 타나시 코키나키스와 64강 경기를 치렀는데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 & 이 덕에 나달에게 랭킹 1위를 내주게 되었다. 이후 유럽 클레이 시즌의 마스터즈 대회 3개(몬테카를로/마드리드/로마)는 최근 몇년 간과 동일하게 체력관리를 위해 불참하고 프랑스 오픈에만 참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아에 유럽 클레이 코트 시즌 전체를 쉬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현재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슈투트가르트 오픈 & 할레 오픈에 참가해 컨디션을 점검하고 윔블던에서 본격적으로 통산 9회 우승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6월 중순에 열리는 슈투트가르트 오픈에 출전하며 3개월만에 복귀를 신고함과 동시에 가볍게 4강에 올랐다. 만약 결승에 진출하면 나달을 근소하게 누르고 싱글랭킹 1위 복귀가 가능하다. 그리고 닉 키리오스에게 살떨리는 타이브레이크 끝에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 1위 자리를 탈환한다. 결승에서도 밀로시 라오니치를 2: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할레 오픈에서는 베데네를 꺾고 16강에서 잔디 스페셜리스트인 브누잇 페르를 만나 3세트에 타이브레이크 접전까지 갔고 매치 포인트도 몇번 있었으나 결국 역전해서 승리했다. 그 후 비교적 랭킹이 낮은 선수들을 만나 순항하며 결승까지 올랐으나, 상반기 인디안 웰스 4강전에서 만나 대등한 경기를 펼친 보르나 초리치를 만나 첫 세트 타이브레이크를 6-4로 앞서나갔으나, 역전당해 첫 세트를 내주고, 두번째 세트를 따냈으나, 윔블던 전 주라 무리하지 않은것도 있고, 체력적인 측면에서 열세를 보이며 3세트를 2-6으로 맥없이 내주며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우승해야만 랭킹 1위를 유지할 수 있던 상황에서 패배하면서 랭킹 2등으로 다시 내려왔다.

2018 윔블던에서는 무난하게 순항하며 상위라운드 진출을 기록하고 있다. 1회전에서 두산 라요비치, 2회전에서 루카스 락코를 3-0으로 누르고 3회전에 오르며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의 기록을 합쳐 26세트 연속 승리를 이어갔다. 특히 2회전에서는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베이스라인에서의 백핸드 드롭샷을 보여주며 지켜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3회전에서는 독일의 얀 레나르드 스트러프에게 3-0(6-3, 7-5, 6-2)승리를 거두고 윔블던 연속세트 승리를 29세트로 늘림과 동시에 가볍게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현재 페더러가 속한 블록의 최대 난적이라 평가받았던 마린 칠리치가 2회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탈락하며 어지간한 이변이 없는한 올해도 최소 결승 진출은 무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편. 16강에서는 프랑스의 아드리안 마나리노에게 또다시 3-0(6-0, 7-5, 6-4)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과 함께 윔블던 32세트 연속 승리를 달성했다.

그러나 8강전 케빈 앤더슨에게 2-3(6-2, 7-6<7-5>, 5-7, 4-6, 11-13)으로 예상치 못한 리버스 스윕을 당하면서 허무하게 대회를 마감했다. 1세트를 어렵지 않게 잡은 뒤 2세트 초반 브레이크를 당한 위기를 넘기고 타이 브레이크 접전끝에 승리를 거뒀으나, 가면 갈수록 포핸드와 백핸드 범실이 늘어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3세트 5-4에서 돌입한 10번째 게임에서 매치 포인트 찬스를 잡았으나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결국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앤더슨의 서브와 포핸드 크로스에 고전함과 동시에 경기시간 2시간이 넘어가면서 체력적 한계가 왔는지 범실이 늘어갔고 5세트에서 끝없는 서브 게임 끝에 치명적인 경기 첫 더블폴트를 범하며 브레이크 포인트를 내주고 이걸 막아내지 못해 패배했다. 이로서 우승 포인트 2,000점을 온전히 방어하는데 실패 + 반대편 대진표에서 랭킹 1위 나달이 4강에 진출에 성공하면서 1위 자리 재탈환도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52]

8월 북미 하드코트 시즌에서는 캐나다 마스터스를 스킵하며 체력을 안배하고자 했고, US 오픈의 전초전으로 그동안 7차례 우승하며 강세를 보였던 신시내티 오픈을 택하여 결승까지 순항하였으나, 결승전에서 상승세의 노박 조코비치에게 0:2의 패배를 당했다.[53]

그리고 본게임인 US 오픈에서 1~3회전을 무실세트로 승리하면서 순항하는 듯 싶었지만, 4회전에서 만난 존 밀먼에게 1-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평소의 페더러답지 않게 1세트부터 첫 서브 성공률이 50% 이하를 찍었고, 경기가 길어지자 더블 폴트 10개 + 언포스드 에러 76개라는 치명적인 실수가 누적되며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특히 올해 심했던 US의 고온을 견디기 매우 어려웠다고.

ATP 파이널스에선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니시코리 케이에게 졸전을 펼치고 패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티엠과 앤더슨을 스트레이트 세트로 잡아내며 일단 4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4강에선 알렉산더 즈베레프에게 5-7, 6-7로 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는 사샤의 서브와 경기력에 고전했으나, 운도 지지리 안 다른 경기였는데, 2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페더러가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포인트를 잡은 찰나, 사샤가 귀신같이 페더러의 득점 순간에 저 뒤에 있던 볼키즈 한 명이 볼을 코트에 실수로 떨어뜨린 것을 발견하여 지적했다.[54] 매우 흔치 않은 케이스라 그런지 무기력하게 흔들리며 타이브레이크를 내주고 말았다.

1.23. 2019년

작년과 마찬가지로 호프만컵에서 2019시즌을 시작했다. 이미 2번의 우승이 있고 올해도 작년에 이어 스위스의 벨린다 벤치치와 복식을 이루어 우승에 도전한다. 조별 라운드에서 영국의 노리와 미국의 프란시스 티아포, 그리스의 스테파노 치치파스를 상대로 모두 단식에서 완승을 거두며 또 한 번 스위스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작년 결승에 이어 또 독일의 알렉산더 즈베레프, 안젤리크 케르버를 만나게 되었는데 제일 먼저 치러진 남자 단식에서 작년 ATP 파이널스 준결승에서 패한 경험이 있는 즈베레프를 상대로 6-4,6-2으로 2대 0 완승을 거두었다.~진짜 뭐지 이 인간~뒤이어 이뤄진 여자 단식에서는 반대로 안젤리크 케르버가 완승을 거두면서 복식까지 이어졌다. 첫 세트는 스위스팀이 4-0으로 쉽게 가져왔으나 두번째 세트를 4-1로 내주면서 마지막 세트는 3-3으로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마지막 매치포인트에서 페더러와 벤치치가 네트를 점령하여 독일팀을 압박하면서 결국 매치포인트를 가져오는데 성공했고 작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여러모로 작년의 데자부~이벤트성 친선경기라 해도 각 국가의 대표로 출전하는만큼 모든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atp투어 경기 못지않은 경기에서 즈베레프를 비롯한 넥젠들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작년에 이어 또 호프만컵 챔피언[55]이 되었으니 아주 상쾌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의 즈베레프가 세레모니 인터뷰에서 페더러를 향해 아쉬움 섞인 투정을 부린건 덤 ~당신 38살이잖아요~https://youtu.be/-giJ_yhad5Q

이번 호프만컵이 의미있었던건 조별 라운드에서 미국팀 대표로 세레나 윌리엄스가 출전하여 페더러와 세레나가 같은 코트 위에서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각자 남녀테니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두 아이콘이 만나 멋진 경기를 선보이고 셀피까지 찍으며 테니스팬들에게 또 한 번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했다. 페더러와 세레나의 셀피 https://twitter.com/rogerfederer/status/1080115621688299520?s=09

호주 오픈에서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순항 중이다. 1라운드에서 데니스 이스토민, 2라운드에서는 영국의 데니얼 에반스를 상대로 3대 0 완승을 거두며 20년 연속 호주오픈 3회전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달성했다.

3회전에서는 미국의 프리츠를 만나 6-2, 7-5, 6-2로 3대0 완승을 거두며 1시간 30분도 채 안돼서 16강행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16강에서 그리스의 떠오르는 신성 스테파노스 치치파스를 만나 첫세트부터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며 첫세트는 무려 13점을 얻어 힘들게 첫세트를 따냈다. 하지만 연속 3세트를 6-7, 5-7, 6-7로 내주면서 8강행이 좌절됐다. 페더러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승부처에서 치치파스의 집중력이 더 좋았기에 나온 결과. 페더러는 2세트에서 치치파스의 여러 서브게임을 10분 넘게 끌면서 많은 브레이크포인트를 만들었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는 못했다. 만약 브레이크포인트를 한 번이라도 성공하여 2세트를 따냈더라면 경기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것이다. 올해 38살 5개월의 나이인 페더러의 체력적인 불리함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후 순위도 6위로 내려앉았다.

호주 오픈 16강전 이후의 인터뷰에서 클레이코트 시즌에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되면 2년만에 페더러의 클레이 코트 복귀가 된다. 롤랑 가로스에도 출전하겠다고 한 것은 그가 2019년 시즌을 자신의 마지막 테니스 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추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클레이 코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페더러지만, 이제 정말 은퇴가 코앞인만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후회없이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는데, 페더러는 그런거 아니라고 일축.

2019년 3월 2일, ATP투어500 두바이 테니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호주 오픈에서 일격을 당했단 스테파노스 치치파스를 2대0(6-4, 6-4) 완승을 거두며 커리어 통산 100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랭킹도 다시 4위에 안착했다.

두바이에서 100회 우승을 달성한 이후, 시즌 첫번째 마스터스 대회인 ATP 투어 인디언 웰스 오픈에 출전하였다. 두바이에서의 100회 우승의 기세를 몰아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도 좋은 경기력으로 무실세트로 결승까지 오르면서, 인디언 웰스 오픈 3년 연속 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결승에서 도미니크 팀에게 1대2(6-3, 3-6, 5-7)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팀에게 생애 첫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우승을 선사함과 동시에 인디언 웰스 오픈 2년 연속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다.[56]

이어서 마이애미 오픈에 출전하였다. 인디언 웰스 오픈 준우승 후 마이애미 오픈에서 충격의 2라운드 탈락을 했던 작년과는 다르게, 대회 첫 경기에선 1세트를 내주는 등 다소 고전했지만, 이후 완벽한 경기력으로 다닐 메드베데프, 케빈 앤더슨, 데니스 샤포발로프 등 만만치 않은 영건과 베테랑들을 모두 무실세트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호주오픈 16강 탈락 이후 참가한 3개 대회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할 정도로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중. 그리고 결승에서 이 대회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존 이스너를 2대0(6-1, 6-4)으로 꺾고 우승하면서, 통산 101번째 우승 타이틀을 추가함과 동시에 2017년 상하이 오픈 이후 약 1년 5개월여 만에 통산 28번째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계 랭킹도 3위까지 다시 상승.

4년만에 참가한 클레이 코트도 일단은 나쁘지 않은 편. 마드리드 오픈에서 가스케, 몽피스 등 프랑스 선수들을 연이어 잡아내며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에서 클레이 코트 전문가인 도미니크 팀에게 접전 끝에 1:2로 패배. 이어 로마 오픈에서도 주앙 소우자, 보르나 초리치를 제압하며 8강까지 진출했으나, 8강 스테파노스 치치파스전 직전에 부상으로 기권을 선언했다.

그리고 4년만에 돌아온 롤랑 가로스에서는 16강까지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8강에 진출했다. 16강 종료 직후 인터뷰에서 페더러 본인도 대회에 참가하면서 1회전에서 0대3으로 지는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며 8강 진출에 대한 감격을 표현했다. 8강에서는 절친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와 대결했고, 두 세트가 타이브레이커까지 이어지는 접전끝에 3대1(7-64, 4-6, 7-65, 6-4) 승리를 거두며 2012년 이후 7년만에 프랑스 오픈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3년 연속 프랑스 오픈 우승을 노리는 라파엘 나달과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클레이 코트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달린 나달을 롤랑가로스에서 이기는 건 어려워보였고[57] 예상대로 3-0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경기 중 매너도 아쉬웠는데 경기가 풀리지 않자 공을 라켓으로 쳐서 위로 멀리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8][59]

잔디 코트 시즌에서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윔블던 전초전으로 출전한 할레오픈에서 16강 송가 8강 아굿에게 고전하긴 했으나 클레이시즌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 대회 10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대망의 윔블던에서는 세계 랭킹 3위로 출전하나, 윔블던의 독특한 시드 선정 방식으로 인해 2번 시드로 배정되었다. 1회전에서 만난 신예 로이드 해리스에게 1세트를 내주고 이후 해리스의 다리 부상으로 힘겹게 승리를 거두며 불안한 모습을 보얐으나 이후 경기는 관록을 보여주며 순항. 8강전 니시코리 케이에게 초반 고전했으나, 컨디션을 회복하며 승리, 4강에서 2008년 동 대회 결승에서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함께 일궈냈던 평생의 라이벌 라파엘 나달을 윔블던 코트에서 정확히 11년만에 상대하게 되었다. 나달과의 4강에서 1세트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간 끝에 페더러가 기선 제압. 2세트에서는 페더러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타 나달이 페더러의 서비스 게임을 두 차례 브레이크하며 6:1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페더러의 반박자 빠른 공세와 낮게 깔리는 슬라이스가 유효 적절하게 터지면서 나달이 스트로크 싸움에서 밀리며, 페더러가 경기의 흐름을 장악했다. 3, 4세트 초반, 페더러가 각각 한 차례씩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를 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흐름을 끝까지 내주지 않으며, 결국 3, 4세트를 각각 6:3, 6:4로 승리,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했다. 약 1개월 전, 롤랑 가로스 4강전의 대패에 대한 완벽한 설욕. 나달과의 이 두 경기는 클레이 코트와 잔디 코트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제 2014, 2015년 결승에서 본인을 제압했던 노박 조코비치를 상대로 아홉 번째 윔블던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조코비치와의 윔블던 결승은 4시간 57분간 진행되었으며 2019 ATP 투어 최고의 명승부이자, 향후 윔블던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명경기였다.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기억되고 있는 페더러나달의 2008년 파이널의 역대 윔블던 최장 시간 결승전 시간 4시간 48분마저 넘어선 혈투였다. 1세트에서는 서로의 서브게임을 지키며 팽팽하게 진행되다 페더러가 아쉽게 타이브레이크에서 패배하며 내주고 말았다. 분위기를 리드해갔으나 에러가 속출한 것이 1세트를 내준 주 원인. 2세트에서는 조코비치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며, 페더러가 3차례나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6-1로 가볍게 세트를 따냈다. 3세트에서 페더러는 또 한번 타이브레이크로 내주는데, 타이브레이크 상황에서 페더러의 백핸드 에러 3개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4세트에서 페더러가 다시 저력을 발휘하며 6-4로 세트를 따내며, 풀세트까지 경기가 이어진다. 5세트에서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게임스코어 7-7 상황에서 페더러가 극적으로 조코비치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승기를 잡는다. 게임 스코어 8-7로 앞선 상황,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40-15까지 달아나며 더블 챔피언십 포인트를 만들며 9번째 윔블던 타이틀 코앞에 다가섰다. 그러나 조코비치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패싱샷을 작렬시키고 듀스를 만들더니, 기어코 브레이크까지 하면서 동률을 만들고 만다. 2011 US 오픈 준결승에서 본인의 서브게임 40-15 더블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역전당한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12-12까지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였지만 올해부터 적용된 5세트 12-12 타이브레이크에서 또다시 패하면서 준우승을 기록한다. 최종 스코어 2-3(65-7, 6-1, 64-7, 6-4, 123-13).

페더러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통한의 패배였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이나 실제 기록상으로도 페더러가 조코비치에 앞섰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브레이크를 7회 성공했으며(조코비치 3회), 서브 에이스 갯수(26:10), 더블 폴트(6:9), 위너 횟수(94:54), 전체 포인트(218:204), 리시브 포인트(79:64), 퍼스트/세컨드 서브 성공 확률, 네트 플레이 시도 및 성공률 등 언포스드 에러(62:52)와 타이브레이크(0:3)를 제외한 주요 통계에서 조코비치를 압도했다. 조코비치는 베이스라이너답게 이러한 열세를 주특기인 베이스라인에 떨어지는 스트로크로 대응하였는데, 두 선수가 기록한 베이스라인 포인트 중 조코비치와 페더러의 포인트 비율은 6:4 정도로 조코비치가 많았다. 페더러는 서브 에이스와 네트 플레이 등 다양한 득점 루트를 활용하여 베이스라인 랠리에서의 불리함을 충분히 만회하였지만, 문제는 이것이 타이브레이크에선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코비치는 타이브레이크에서 페더러를 계속해서 베이스라인으로 내몰았는데, 두 선수가 타이브레이크에서 기록한 총 33포인트 중 베이스라인 랠리로 포인트가 결정된 것이 20회였으며, 이 중 80%인 16포인트를 조코비치가 쓸어 담아버렸다. 페더러가 경기 통틀어 65회 시도하여 무려 51포인트를 가져간 네트 플레이는 정작 타이브레이크에선 겨우 1포인트를 획득하는데 그쳤다. 즉, 전체적인 경기와 세 차례의 타이브레이크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조코비치는 전체적인 경기 흐름에선 페더러에게 밀렸지만[60] 필사적으로 동점 상황을 유지하였고, 타이브레이크에선 자신에게 유리한 베이스라인 랠리를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전술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아무튼 이 경기는 08년(상대: 나달), 09년(상대: 로딕), 14년(상대: 조코비치) 윔블던 결승과 함께 페더러 본인의 대표적인 명승부 뿐 아니라 윔블던의 역사에 남을 명경기로 기억될 것이다. 시상식 인터뷰에서 결승을 빨리 잊고 싶다며 유머와 여유를 보여준 동시에 상대 조코비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만 37세의 나이에 결승에 오른 이런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며 소회[61]를 밝히며 페더러다운 품격있는 모습으로 갈채를 받았다.

이어 진행될 북미 하드코트 시즌에서 페더러는 2018년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마스터스는 건너 뛰어 체력을 비축하고, 신시내티 오픈US 오픈의 워밍업 대회로 삼을 계획임을 밝혔다. 신시내티 오픈 3회전에서 안드레이 루블레프와 커리어 첫 대결을 펼쳐 완패했다.(3-6, 4-6) 워밍업 대회에서 두 게임만 치르고 탈락, US 오픈의 전망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US 오픈 1,2회전에서는 세계랭킹 100~200위권 안팎의 하위랭커들을 상대로 첫 세트를 내주고, 특히 포핸드 에러를 양산하며 불안감을 가져다 주는 플레이를 펼쳤으나 어쨌건 각각 3-1로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리고 3,4라운드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며 각각 3-0으로 가볍게 압승, 2017년 이후 2년 만에 US 오픈 8강에 진출했다. 4라운드 상대였던 다비드 고팡에게는 3세트 6-0 베이글까지 만들어 냈다. 두 자릿수의 서비스 에이스, 그리고 라이벌인 나달, 조코비치에 비해 몇 배나 되는 네트 플레이로 4라운드까지 통과, 서브 앤 발리 스타일로 점점 변화해 가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8강에서 그리고르 디미트로프에게 2-3(6-3, 4-6, 6-3, 4-6, 2-6)으로 역전패했다. 디미트로프에게는 커리어 역대전적 첫 패배(7승 1패). 디미트로프의 플레이도 좋았지만, 서비스 에이스가 풀세트 경기였음에도 6개에 그쳤고, 4세트 이후 포핸드 에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뼈아팠다.

10월에 열린 상하이 마스터스 1000 대회에서는 라모스 비놀라스와 다비드 고팡을 누르고 8강에 진출했지만 알렉산더 즈베레프에게 1-2로 패배하여 탈락하였다. 비록 패하였지만 2세트 5-6, 0-40, 즈베레프 서브 상황에서의 트리플 매치포인트를 극복하였고, 이 세트에서만 5개의 매치포인트를 극복하며 기어이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하는 집념을 보여줬다. 하지만 2세트 타이브레이크 및 3세트 경기에서 프랑스오픈에서의 관중샷을 재현...하는 등 상당히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매너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62]

홈그라운드인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인도어 바젤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대회 10번째 우승, 커리어 통산 103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스테파노스 치치파스(6-4, 6-4), 알렉스 드 미노(6-2, 6-2) 등 20대 초반의 떠오르는 영건들에게 한수 위의 기량을 선보이며 대회 내내 큰 어려움 없이 쉽게 타이틀을 차지했다.

ATP 파이널스에선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도미니크 팀에게 패했으나, 마테오 베레티니노박 조코비치를 잡아내며 4강에 진출하였다. 특히, 조코비치에게는 4년 만의 승리. 하지만 올해에도 4강에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에게 패배(3-6, 4-6), 3년 연속 파이널 4강에 머물렀다. 4강에서는 특히 1세트를 내준 것이 뼈아팠는데, 첫 서비스 게임을 두 번의 스매싱 찬스를 날리며 허무하게 내줬고, 이후 여러 차례 브레이크 기회를 잡았으나 끝내 브레이크에 실패하며 세트를 내줬다. 1세트 혈전 이후 2세트에서는 체력적으로 여실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포핸드 에러를 양산, 허무하게 게임을 내줬다. 총 12번의 브레이크 찬스 중에서 단 한 차례만 성공한 것이 이날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줬다.

1.24. 2020년

호주 오픈 드로에서 4강까지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대진을 배정받았다. 노박 조코비치와는 4강전에서, 라파엘 나달과는 결승전에서 만날 수 있으며 주요 20대 영건과의 맞대결도 4강 이전까지는 피하게 되었다. 2020년에 신설된 ATP Cup에 불참하여 경기감각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점,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겠지만 2019-2020 호주 산불로 인한 경기력 유지 문제 등이 변수가 될 듯 하다.
1회전과 2회전은 각각 3-0으로 손쉽게 이겼으나, 3회전에서 호주의 존 밀먼을 맞아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세트스코어 2-2 상황에서 맞이한 5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4-8까지 밀렸으나 이후 연속 6포인트를 따 내며 극적으로 승리(4-6, 7-62, 6-4, 4-6, 7-68), 호주오픈 통산 100승째를 기록했다.
4회전을 3-1로 이긴 뒤, 8강전에서 테니스 샌드그렌에게 존 밀먼 때보다 더 큰 위기를 맞았으나 결국 이겨내고 3-2(6-3, 2-6, 2-6, 7-68, 6-3)로 승리, 4강에 진출했다. 3회전부터 말을 듣지 않던 포핸드의 범실이 이날도 두드러졌으며(언포스드 에러 56개), 2세트 이후 샌드그렌에게 서비스 에이스(5-27), 위너(44-73) 등에도 압도당하면서 어려운 경기를 풀어갔다. 하지만 4세트에서 7개의 매치포인트를 지워내는, 승부수에서 강점을 보이는 노련미로 게임을 5세트까지 끌고 가며 기어이 6-3으로 5세트를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호주오픈 8강전 15전 전승의 기록을 이어갔다.
4강전에서는 노박 조코비치를 맞아 초반 선전했지만 결국 0-3(61-7, 4-6, 3-6)으로 완패했다. 8강전에서 단 5개에 그쳤던 서비스 에이스가 살아났고(15개), 1세트에는 조코비치의 서브게임을 두차례 브레이크 하면서 4-1까지 앞서 나갔지만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를 놓치고, 오히려 5-3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허용하며 타이-브레이크로 경기가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는 1세트 후반부터 범실을 줄여가기 시작한 조코비치에게 압도당하며 1세트를 내줬다. 2세트 이후부터는 조코비치의 견고함이 되살아나며 시종 끌려갔다. 결국 2세트에 한 번의 브레이크, 3세트에서도 한 번의 브레이크를 허용하며 패배, '호주의 왕' 노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2월 19일에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고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이로 인해 예정된 투어 일정 가운데 두바이 오픈부터 유럽 클레이 시즌(프랑스 오픈 포함)을 전부 패스하고 잔디 시즌 복귀를 목표로 잡았다고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인하여 프랑스 오픈의 9월 연기 + 윔블던을 포함한 7월 초까지의 ATP 투어 전경기 취소 등 테니스 투어 스케줄상의 대격변이 일어나며, 실제 수술로 인한 불참은 두바이 오픈 하나가 되었다.

6월 10일, 트위터를 통해 수술을 받은 오른쪽 무릎의 회복이 더뎌 추가 검사를 한 결과 예상한 것과 달리 상태가 좋지 않음을 언급했다. 그래서 오른쪽 무릎 관절경 수술을 추가로 받은 상태이며 추가 재활의 시간이 필요 + 정상적인 몸상태로 경기를 뛰기 위해서 2020 잔여시즌을 모두 포기하고 2021년에 복귀할 것임을 밝혔다.#

호주오픈 이후 무릎수술로 시즌아웃 되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시즌이 진행되었다면 2019년에 획득한 모든 포인트를 잃고 랭킹이 70위 아래로 떨어졌어야 하나, 코로나19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며 랭킹포인트가 2년간 유지되는 것으로 임시 조치가 취해진 덕에 모든 랭킹포인트를 온전히 보존하여 내년 호주오픈에도 매우 높은 시드를 받으며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윔블던을 비롯해 여러 빅타이틀 대회들이 취소, 중단, 연기되면서 GOAT 경쟁자인 나달과 조코비치가 타격을 받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코로나19로 인해 페더러가 여러 이득을 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63]

1.25. 2021년

호주 오픈은 불참했다. 2월 2일의 인터뷰에서 호주 오픈은 무릎 상태 때문에 출전하기엔 이르다고 판단했으며, 3월의 ATP 투어 엑손모바일 오픈 출전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3월중순부터 개막한 엑손모바일 오픈단식 16강을 치르며 드디어 복귀, 영국의 대니얼 에번스를 상대로 2-1(7-6<10-8> 3-6 7-5)로 승리를 거두며 405일만에 투어 대회 승수를 챙겼다. 아쉽게도 8강에서 니콜로즈 바실라쉬빌리를 상대로 접전을 펼쳤으나 3세트 게임 스코어 5-4에서 매치포인트까지 잡았음에도 실수를 하며 연이여 포인트를 내준 끝에 1-2(6-3, 1-6, 5-7)로 패했다.

5월 중순에 개막한 제네바 오픈 단식16강에서 스페인의 파블로 안두하르(75위·스페인)에게 1-2(4-6 6-4 4-6)로 탈락해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스위스에서 열린 경기에서의 32연승을 마감하였다.

롤랑 가로스에선 32강전 도미니크 쾨퍼와의 경기를 3시간 35분 접전 끝에 3-1(7-6<7-5> 6-7<3-7> 7-6<7-4> 7-5)로 이겼다. 그러나 무릎 부상을 걱정한 페더러는 6월 28일에 열리는 윔블던에 집중하기 위해서 16강전을 기권한다.

윔블던이 개막하기 전에 ATP 500 시리즈인 할레 오픈에 참가하였지만 16강전에서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를 상대로 1-2(6-4, 3-6, 4-6) 패배하였다.

윔블던에선 6번 시드를 받았고 1회전 아드리앙 마나리노에게 고전하지만 마나리노가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승리하였다. 이후 2,3,4회전을 무난히 순항하며 8강전에 안착했으나, 상대 후베르트 후르카츠에게 0-3(3-6, 6-74-7, 0-6)으로 무기력하게 완패하였다. 페더러가 윔블던에서 베이글 스코어로 세트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배한 것은 2002년 이후로 19년만이다.

한편 2020 도쿄 올림픽은 현재 페더러의 나이나 기량 등을 생각하면 사실상 현역 마지막 올림픽 출전 기회로 평가되고 있었는데, 무릎 부상 회복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

8월 16일, 본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릎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 당분간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공지했다. 사실상 올 시즌은 접은 셈이며, 복귀는 빨라야 내년 호주 오픈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ATP측에서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대회가 취소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년부터 변형적인 랭킹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8월 23일부터 본래의 시스템으로 회귀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에 페더러는 랭킹이 한참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

1.26. 2022년 : 은퇴 선언

코치진측에서 무릎 부상의 회복이 더뎌 호주 오픈 복귀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언급을 했는데, 결국 엔트리하지 않으며 불참이 확정되었다. 한편 호주 오픈에서는 평생의 라이벌 라파엘 나달이 우승하며, 이제 페더러를 제치고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 21승을 달성했고, 페더러도 나달의 우승 직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진심어린 축하 메시지를 나달에게 보내 주었다.

3월 초에 나온 인터뷰에 따르면 회복 문제 때문에 늦은 여름에나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즉, 롤랑 가로스와 윔블던 출전은 어려울 전망이며 남은 그랜드슬램 중에선 US 오픈만 출전이 예상된다. 현재 출전을 약속한 건 9월에 열리는 레이버컵과 10월에 고향에서 열리는 ATP500 바젤이다.

한편 대회출전을 못하면서 랭킹 포인트가 많이 빠져 현재 싱글 랭킹이 40위권으로 많이 내려갔으며, 올해 윔블던은 랭킹 포인트가 부여되지 않기로 결정되어 작년에 획득한 포인트가 자동소멸되기 때문에 윔블던 종료 직후 ATP 싱글 랭킹 포인트가 단 1점도 없는 상황이 된다. 때문에 7월 초 즈음에 발표될 싱글 랭킹 리스트에서 페더러는 당분간 이름이 빠지게 된다.

윔블던 본선 개최 기념행사에 참석했는데, 내년 복귀를 목표로 재활중이라는 근황을 전했다. 앞서 언급된 레이버컵과 ATP500 바젤 참석은 몸 상태에 따라 참석을 못할 가능성도 있는 듯.

그러던 중, 9월 15일 본인의 SNS를 통해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64][65] 다음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레이버컵 대회가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며, 앞으로도 테니스를 하겠지만 그랜드 슬램(메이저 4개 대회)이나 투어에서는 경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 #2

그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라파엘 나달을 비롯해 노박 조코비치, 데니스 샤포발로프, 도미닉 팀, 스탠 바브린카,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닉 키리오스, 가엘 몽피스, 잭 삭 등의 남성 선수들과 세레나 윌리엄스, 비너스 윌리엄스, 벨린다 벤치치, 외제니 부샤르 등의 여성 선수들, 리오넬 메시, 킬리안 음바페, 토니 크로스 등의 운동 선수들, 롤렉스, 윌슨, 메르세데스-벤츠, 유니클로 등의 후원사가 SNS로 그의 은퇴를 축하했다.

9월 22일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영상

9월 23일부터 개막하는 레이버컵 1일차 일정에서 라파엘 나달과 함께 복식에 출전해 현역 은퇴 경기를 가졌다. #1 #2 #3 은퇴발표 10일 전에 나달에게는 미리 알려줬었다고 하며 둘의 우정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고 뭔가를 계속 같이 하겠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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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문에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의 3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2] 이 부분은 공식 은퇴를 선언한 글에서도 언급했다.[3] 1999년에 세계 랭킹 1위까지 기록해본 선수로 1995년부터 2001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7회를 달성하였으며 1997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 5회, 4강 진출 13회를 기록하였고, 2000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23회, 준우승 13회를 달성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러시아 선수 최초로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인데 페더러의 라이벌로 유명한 마라트 사핀은 러시아 선수로선 두번째로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이다.[4] 1991년에 프로에 데뷔하여 2002년에 은퇴하였으며 1999년에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선수이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전성기였는데 은퇴할 때까지의 커리어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에선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회, 윔블던 남자 단식 준우승 2회,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 진출 3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2회, 준우승 4회, 4강 진출 3회를 기록하였고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7회, 준우승 7회를 기록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경기 스타일은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너여서 클레이 코트에서 약하기는 했지만 페더러와 붙었던 이 무렵엔 전성기여서 애송이이던 페더러를 클레이 코트에서 못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5] 1993년에 프로에 데뷔하여 2007년에 은퇴하였고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였던 체코 출신의 선수로 전성기 중인 2002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은퇴할 때까지 기록한 커리어 통산 성적은 2002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2002년 마스터스 마드리드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4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6회, 준우승 5회를 기록하였다. 페더러와 붙었던 이 시기엔 아직 전성기 전 평범한 투어급 선수였던 지라 세계 랭킹 순위가 낮았다.[6] 그랜드슬램 대회 단식의 본선 자동출전권을 받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대회 6주 전 선수의 세계 랭킹 순위가 104위 안에 들어야만 한다.[7] 2002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인 4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였는데 앤디 머레이가 등장하기 이전에 영국의 희망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영국에서 개최되는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을 이루어 줄 영국 선수로 기대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4강에는 4번이나 올랐으나 결승 진출은 실패하였다. 2007년 은퇴할 때까지의 주요 성적은 통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4강 진출 6회, 8강 진출 4회,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003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3회, 4강 진출 4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0회, 준우승 14회를 기록하였다. 영국 국적의 테니스 선수의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이라는 영국인들의 기대는 팀 헨만 다음 세대의 선수인 앤디 머레이가 달성하게 된다.[8] 1992년에 데뷔하여 2005년에 은퇴하였고 1998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하였으며 전성기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였던 슬로바키아 출신 테니스 선수로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성적은 1998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1998년 테니스 마스터스 함부르크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6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였다.[9] 1991년에 프로로 전환하여 2007년에 은퇴하였고 1997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4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였던 캐나다 출신 선수였는데 1995년 5월에 어머니의 모국인 영국 측의 집요한 설득으로 캐나다 국적을 버리고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은퇴 시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7년 US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1997년 윔블던 남자 단식 8강 진출, 1998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즈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3회, 준우승 10회를 기록한 선수이다.[10] 1996년에 프로에 뛰어들었고 2012년에 은퇴한 선수로 전성기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였는데 전성기 중인 2001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10위까지 올랐었다. 은퇴할 때까지 거둔 커리어 통산 성적은 2001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2000년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4회, 준우승 6회를 달성했다.[11] 2006년에는 세계 랭킹 3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였던 선수로 2013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주요 성적은 2002년 윔블던 남자 단식 준우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 진출 4회, 8강 진출 5회, 2005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2006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4회, 4강 진출 5회를 기록하였고 ATP 투어 남자 단식도 우승 8회, 준우승 8회를 기록하였다.[12] 98년에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준우승을 했었고 99년 3월까지 ATP 투어 남자 단식 7회 우승으로 99년 4월에는 세계 랭킹 8위까지 올랐었던 90년대 후반에 활약한 강호였으나 99년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 세 번이나 수술을 하면서 수년간 부진에 허덕이다가 2003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부활하여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안드레 애거시(미국)까지 꺾으며 2003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에 진출했다. 2006년 은퇴할 때까지 마크 필리포시스가 거둔 통산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준우승 2회, 8강 진출 3회, 1999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00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2000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리고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0회, 준우승 8회를 기록했다.[13] 마라트 사핀은 2003년 호주 오픈에서 손목 부상을 당하여 1년간 긴 부진에 빠지면서 세계 랭킹 순위가 폭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부활하여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앤디 로딕(미국)을 꺾고 4강전에서는 세계 랭킹 4위인 안드레 애거시(미국)마저 격파하면서 결승전에 진출한 상황이었다.[14] 결승에서 미국의 앤디 로딕을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여담으로 로저 페더러는 준결승 태국의 파라돈 스리차판과의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서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겼다.[15] 당시 기준, 2004년 당시 역대 단일 시즌 ATP 투어 남자 단식 승률 1위는 존 메켄로(미국)가 1983년에 기록한 96.5%(82승 3패), 승률 2위는 지미 코너스(미국)가 1974년에 기록한 95.9%(93승 4패), 승률 3위는 비외른 보리(스웨덴)가 1979년에 기록한 93.3%(84승 6패), 페더러와 타이 기록인 4위는 이반 렌들이 1986년에 기록한 92.5%(74승 6패)였다.[16] 200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의 무실세트 우승으로 기록한 페더러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무실세트 우승기록은 1980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비에른 보리에 이어서 무려 27년만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대기록이었다.[17] 호주 오픈 남자 단식 무실세트 우승기록으로만 한정할 경우 1971년에 켄 로즈웰이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이후 무려 36년만에 페더러는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18] 메켄로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US 오픈 남자 단식 3연패를 기록하였고, 이반 렌들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US 오픈 남자 단식 3연패를 기록했다.[19] 페더러가 경신하기 이전 기록은 이반 렌들이 가지고 있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14회 연속 8강 진출 기록이다.[20] 페더러 이전의 최장기간 연속 세계 랭킹 1위 기록은 지미 코너스가 달성했던 160주 연속 세계 랭킹 1위 기록이었다.[21]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나달은 프랑스 오픈 13회 결승 진출 + 13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클레이코트에서는 가히 신과 같은 존재이다. 이 뒤로도 페더러는 클레이코트에서 나달을 만나면 계속 털렸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그랜드슬램인 셈.[22] 사실 이길 수 있던 경기 였다. 첫 세트를 따내고 두번째 세트도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으나, 페더러의 포핸드 발리를 델포트로가 포핸드 다운더라인으로 받아냈는데, 폴트가 났다. 델포트로는 챌린지를 신청하고, 라인을 아주 살-짝 핥은 공이 나오면서 인으로 인정, 페더러는 판정에 납득할수 없는 표정을 보여주며 흔들린다. 그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당하고 3세트를 따내지만 4세트 중간 델포트로가 마지막 공 판정 이후 1분 여의 시간동안 수건으로 닦고, 공을 정리한 후 챌린지를 신청하여 너무 늦은 타이밍이였는데, (페더러는 이미 벤치였다) 심판이 챌린지를 받아주며 페더러는 다시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판에게 ' I don't give a shit' 를 시전한다. 두번이나 멘탈이 흔들린 페더러는 4, 5 세트를 연속으로 주었고, 만일 이번 타이틀을 얻엇다면 US open 우승 숫자를 6회로 늘리며 단독선두가되고, 이어진 2010 호주오픈 우승으로 Non-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로드 레이버 이후 46년만에 이뤄낼 수 있었다[23] 2004년 윔블던을 시작으로 모든 그랜드슬램에서 4강이상 올랐던 페더러였고, 그랜드 슬램 연속 4강 진출 기록을 23회로 마감한다. 참고로 2008년 프랑스 오픈부터 7회연속 결승진출 중이였다. 말할 것도 없겟지만 이 연속 4강진출 기록은 ATP월드투어 신기록이다. 결승진출 기록은 종전에 10회 연속 결승진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록 또한 페더러의 것[24] 탑스핀 포핸드가 대세인 요즘에 탑스핀보다는 플랫한 포헨드를 선호하는 전통적인 테니스를 친다. 실력은 좋은데, 멘탈이 영 별로라 한 번도 그랜드 슬램 우승을 못 했다(...) 다비드 페러와 더불어서 페더러등 괴물들에게 피해를 본 선수[25] 조코비치는 그 해 클레이시즌의 나달도 연달아 격파하는 미친 폼을 보여주었는데, 프랑스오픈에서도 조코비치가 나달을 이길거라는 예상이 더 많았다는걸 고려하면 이 승리 또한 페더러의 저력을 보여준 엄청난 의미가 있다.[26] 페더러가 경신하기 이전의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은 5회 우승으로 이반 렌들과 피트 샘프라스가 달성했다. 둘 모두 과거 마스터스 컵 시절에 5회 우승을 달성한 것인데 이반 렌들은 1987년에, 피트 샘프라스는 1999년에 기록을 세웠었다.[27] 기존의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본선 최다승 기록은 안드레 애거시가 2006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달성했던 통산 251승이었다.[28]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남자복식 금메달을 획득했다.[29] 테니스항목 윔블던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이대회는 복장규정이 너무나 까다롭기로 유명하다.[30] 참고로 2013시즌부터 페더러는 나이가 들어서 떨어진 체력등을 고려하여 기존에 사용하던 라켓보다 가벼운걸 사용하여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완벽한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큰 재미는 못보고 US오픈에선 기존에 사용하던 라켓을 들고 출전했다고.[31] 다만 앤디 머레이는 척추 수술 이후 전 경기에서 로버트 스테펜같은 100위권 선수에게 1세트를 내주는등 컨디션이 별로 였다 윔블던 우승 한 번하더니 군기가 빠졌다[32] 그런데 나달은 8강전에서 손에 큰 물집이 잡히는 부상을 입어 100%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33] 페더러를 이긴 다음 다음 라운드에서 토마스 베르디흐를 3대 떡으로 관광보내는등 대활약을 보이며 4강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노박 조코비치를 만나 3-1로 패배.[34] 바브린카와 붙은 8강 2세트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페더러가 서브, 포핸드, 백핸드등등 전체적으로 밀렸다. 다만, 2세트 후반부터 페더러의 집중력과 노련미로 극복. 참고로 그랜드 슬램에서 바브링카가 페더러 상대로 1세트라도 딴게 이번이 처음이다(...)[35] 파블로 로렌지는 저니맨으로 ATP 랭킹 100위권에서 노는 선수, 뮐러는 ATP 투어보다 한등급 아래인 챌린저 투어급 선수, 산디아고 그랄도는 ATP 랭킹 50위권안에 들긴 하는데 우승한 ITF + 챌린저 투어 13개중에서 11개가 클레이 코트인 클레이 코트 스페셜리스트라 잔디에선 무척 약한편이였다. 참고로 뮐러 선수는 2014년에 한국에서 개최된 김천 챌린저 오픈에서 우승했었는데 국내 테니스 팬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36] 현 ATP 싱클랭킹 9위로 일본의 케이 니시코리, 불가리아의 그리고르 디미트로와 더불어 주목받는 신인 & 셋중 그랜드 슬램 타이틀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불린다. 참고로 아이스하키등의 동계 스포츠가 대세인 캐나다에서 테니스를 전파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등 선행으로 유명.[37] 윔블던 우승 직후인 7월 10일에 조코비치는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는데, 아마도 이걸 염두에 두고 페더러에게 조언을 구한 듯하다.[38] 그리고 결승 경기는 노박 조코비치와 대회가 열리는 영국의 대표 테니스 선수인 앤디 머레이의 단식과 존 매켄로 등의 레전드들을 불러온 복식 시범경기로 대체되었다.[39] 결과적으로 페더러는 다음해인 2015년 투퍼 파이널의 결승전도 조코비치에게 내주었고, 이후 은퇴 전까지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조코비치가 2022-2023 시즌 연속으로 우승하고 최다 타이틀 기록을 탈환하였기 때문에 페더러에겐 크게 아쉬움이 남을 대회이다.[40] 기존의 최고령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우승 기록은 페더러가 2014년 마스터스 1000 상하이 오픈 남자 단식에서 만 33세 2개월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세웠다.[41] 거기에 호주 오픈은 시즌도 정반대인데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욱더 머나먼 길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타 대륙의 강호들이 출전을 자주 포기하던 대회이기도 하다. 로드 레이버켄 로즈웰을 위시한 위대한 호주 출신 선수들 덕분에 호주 오픈의 위상이 높았던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42] 다만 이런 식으로 따지는 건 위험한 게,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생명은 길어지고 있다. 몸관리의 개념이 점점 발전하고 있기 때문. 즉 기록은 그냥 기록일 뿐이다.[43] 기존의 최고령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 기록은 안드레 애거시가 만 34세 3개월의 나이로 2004년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면서 세운 것이다.[44] 페더러조차 호주 오픈 남자 단식과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을 연달아 우승한 것은 페더러의 전성기 시절이던 2006년에만 1번 달성한 기록이다. 오픈 시대 이후 현재까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마스터스 1000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은 연달아 우승한 선수 자체도 페더러와 함께 노박 조코비치 둘 뿐이다.[45] 종전 기록은 아서 애시가 1975년에 기록한 만 31세 11개월.[46]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사람은 총 5명이며, 10번 달성하였다.[47] 페더러는 200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기록한 이후 10년만에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다시 무실세트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48] 페더러의 데뷔 이후 처음이다. 페더러의 클레이 코트 대회 0승 시즌이 2시즌에 있었지만 시즌 전체로 페더러가 클레이 코트 대회를 모두 불참하여 페더러의 클레이 코트 대회 시즌 전적이 0승 0패인 것은 처음이다.[49] 4강 종료까지 무실 세트다.[50] 듀스 3번, 브레이크 당할 뻔한 게 2번[51] 종전 기록은 안드레 아가시의 33세이다.[52] 이 결과를 본 나달, 조코비치 모두 안타깝고 충격적이라는 인터뷰를 하였다.[53] 조코비치에게 이 우승은 뜻깊었는데, 그동안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했던 신시내티 오픈 우승을 따내며 9개 마스터스 시리즈에서 1회 이상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미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ATP 파이널스 우승까지 따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정도 아닐지[54] 경기 중 코트에 볼이 2개면 무효다. 포인트를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해야한다.[55] 2001,2018,2019년에 우승으로 총 3번 우승한 최초의 선수[56] 그래도 부상으로 빠졌던 2016년을 제외하면 2014년부터 계속 결승에 올라오고 있다. 다만 2012년까지만 해도 결승에 올라오면 패하지 않았지만 2014년이후 2017년 우승을 제외하면 모두 준우승을 찍으면서 결승승률이 5할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다[57] 경기전 배당이 1.13 vs 6.0 수준이었다.나달의 승률을 85%에 가깝게 봤다는 소리.[58] 파일:federershot.gif[59] 물론 관중의 리액션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것이지 페더러가 가까운 관중쪽을 노린건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매너는 아니다. 이런 행위는 매너를 중시하는 테니스에서 당연히 경고를 받게 되는 행위이며 이런 행위는 같은 경고를 받게되는, 일반적으로 그냥 경기 안풀린다고 본인의 라켓을 내동댕이 쳐서 부러뜨리는 것보다도 더 비판을 받는 행위인데 라켓을 내동댕이 치면 그냥 화풀이이지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정말 드물게 이게 이상한데로 튀면서 엉뚱한 사람이 다치고 실격당하는 일도 있긴 하다.) 관중석쪽으로 공을 날리는 행위는 관중이 맞거나 할수도 있기 때문. 당장 권순우가 호주오픈에서 그랜드슬램에서 독일의 스트루프에게 완패했을때 국내 기사 리플중 가장 뜨거웠던건 단순히 무기력하게 진 경기 내용이 아닌, 경기가 풀리지 않자 공을 신경질적으로 관중석 쪽으로 쳐낸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였었다. 또한 이전 편집들에서 관중쪽을 겨냥한게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실드를 치며 해당항목을 반달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관중쪽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될 정도로 친다면 그건 단순히 엄파이어의 경고정도로 넘어가는 문제가 아니다. 페더러는 이 뒤에 상하이 마스터스에서도 비슷한 행동으로 결국 포인트 페널티 실점까지 하면서 즈베레프와의 8강에서 1-2로 패해 탈락하게 된다.[60] 실제 경기 후, 조코비치는 무려 5시간 57분간 진행된 그 유명한 2012년 호주 오픈 결승 라파엘 나달전 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든 경기였다고 술회했다. 이 호주 오픈 경기는 2008년 윔블던 결승 나달 대 페더러외 함께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혈투인데, 실제 경기 후 시상식에서 조코비치, 나달 두 선수가 말하기조차, 서있기조차 힘들어했던 그야말로 육박전이었다.[61] 이어 조코비치가 “페더러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바로 나 자신이 그 많은 사람 중 하나”라며 페더러를 극도로 리스펙트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62] 롤랑가로스때만큼 심한 관중샷까지는 아니었으나 2세트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샷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결국 3세트에는 포인트 페널티까지 먹었다.[63] 나달이야 어차피 결과적으로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했으니 그렇다쳐도, 윔블던이 취소된 것은 윔블던 우승확률이 가장 높았다고 할 수 있는 조코비치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코비치는 2020년 마지막으로 열린 그랜드슬램인 프랑스 오픈까지 겨우 시즌 2패(그나마도 한 경기는 실격패고, 나머지 한 경기는 그 롤랑가로스의 나달이다)만을 당했을 정도로 폼이 좋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64] 참고로 약 1달 전에 동갑내기인 세레나 윌리엄스도 은퇴를 선언하며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동시기에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세레나도 이 소식을 듣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페더러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글을 올렸다.[65] 후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가족 & 코칭 스태프를 제외하고 은퇴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건 라파엘 나달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