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3 19:46:07

권원강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DEPRECATED] top1 파라미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문서명1 파라미터를 사용해 주세요.
#!if top1 == null && 문서명1 != null
[[교촌치킨]]{{{#!if 문서명2 != null
, [[]]}}}{{{#!if 문서명3 != null
, [[]]}}}{{{#!if 문서명4 != null
, [[]]}}}{{{#!if 문서명5 != null
, [[]]}}}{{{#!if 문서명6 != null
, [[]]}}}

<colcolor=#000> 교촌에프앤비(주) 회장
권원강
權源綱|Kwon Won Kang
파일:Kwon Won Kang.jpg
<colbgcolor=#F9BA15,#F9BA15> 출생 1951년 8월 15일 ([age(1951-08-15)]세)
대구광역시
거주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대우트럼프월드수성
국적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대한민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대한민국}}}{{{#!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본관 안동 권씨 (安東 權氏)
현직 교촌에프앤비 주식회사 회장
(사)대구치맥산업협회 협회장
학력 계성중학교
대건고등학교 (중퇴)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수료)
영남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수료)
가족 부인 박경숙
외동딸 권유진(1982년 출생)
6촌 권순철
MBTI INFP
취미 산악자전거(MTB)
골프
좌우명 간절하게 바라면 반드시 이뤄질 것
재산(주식) 1,669억 (2022.12.23 기준)
연봉 14억 8천만원(24년 기준)[1]
서명 파일:권원강 서명1.png

1. 개요2. 생애3. 평가
3.1. 성격
3.1.1. 정도경영3.1.2. 상생3.1.3. 고집(뚝심)
3.2. 경력3.3. 역량3.4. 비판3.5. 도전
4. 창업초기 일화5. 출간도서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창업주. 교촌에프앤비(교촌치킨)회장.

2. 생애

1951년 8월 15일, 대구광역시에서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대구 남문시장에서 소금고추를 판매하셨는데 당시 정부가 전매사업자만 소금을 팔 수 있게 하여 독점 판매로 부유한 가정이었다.

학교 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군 복무 이후 정부에서 소금에 대한 전매사업자의 독점 판매를 해제하여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생계를 위해 철물점, 판촉물, 노점상, 과일장사 등 잡다한 일을 전전했다.

서른 살에 박경숙 씨와 결혼해 딸 권유진 씨를 낳았다.

잡다한 일을 하면서 돈벌이가 좋지 못해 3,300원짜리 분유 하나도 구입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은 큰집에서 제사를 마치고 큰누나가 딸 권유진 양에게 용돈으로 5,000원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가치로는 라면 한 개가 110원인데 40개 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5,000원이면 라면으로 3인 가정에서 10일 이상 끼니를 때울 수 있으니 딸의 돈이지만 욕심을 냈고, 당장 뺏지는 못하고 집에서 뺏고자 했다. 그러나 집에 걸어오는 동안 딸 권유진 양은 주머니에 있던 5,000원을 잃어버렸다. 비로소 욕심에 눈이 멀어서 탐하다가 딸마저 그 돈을 갖지 못하였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그 후로는정직을 매우 중요시 여기게 된다.

이후 돈벌이를 위해 인도네시아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택시 기사5년간 일하다 1991년 3월 40대에 개인택시 면허를 3,500만 원에 팔았다. 참고로 1980년도 당시에는 10년 이상 택시회사에서 일을 해야 개인택시 면허 취득조건이 생겼으나,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서 3년 무사고 운전자 조건으로 개인택시 면허 취득조건을 가질 수 있었다. 이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판매할 때는 할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판매에 대한 큰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 대구에 통닭집을 차리고 싶었으나 돈이 부족하여 결국 구미의 한 아파트 상가에 3,300만원[2]으로 10평짜리 매장을 얻고 ‘교촌통닭’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지금의 교촌치킨이 시작된 곳이다.

교촌이라는 이름은 당시 BBQ, BHC영어로 된 가게들이 많았다. 창업 당시에는 치킨피자가 인기 많은 업종이었는데 피자는 남의 나라 음식이라서 배제하였다고 한다. 이에 차별적으로 한국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교촌(校村: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지었다 한다.

이후 서예가 이상현 씨에게 부탁하여 붓글씨로 로고를 만들었다.

파일:교촌BI1991.jpg

한때 장사가 너무 안돼서 하루에 닭을 한 마리도 팔지 못했다. 폐업을 하고 싶었으나, 폐업비용 300만원조차 없어 폐업을 하지도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3. 평가

3.1. 성격

소심한 성격이다. MBTIINFP로써,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넘치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을 스스로 이상주의 성격이라고 설명한다.

3.1.1. 정도경영

1996년 닭고기 수급이 불안정하여 매일 공급받던 1Kg짜리 이 모자라서, 500g짜리 만 들어 왔다.
게다가 황당하게도, 수급 불안정으로 인해 500g짜리 이 1Kg짜리와 가격이 똑같았다.[3]

그로인해 다른 치킨집들은 500g짜리 파우더 및 튀김옷을 잔뜩 부풀려서 1Kg인 것처럼 속여 팔았지만, 권원강 회장은 500g짜리 을 2마리 조리하여 1Kg을 맞춰 정직하게 판매했다.

이에 교촌통닭이 점점 잘나가자 주변 치킨집에서 질투비방이 시작되면서 이상한 소문[4]이 떠돌게 된다.

"교촌통닭을 주문하면 닭다리 4개, 날개 4개가 들어 있는데 품질이 낮은 닭을 대충 손질해서 튀긴다." 라는 소문이 퍼진다.

500g 을 2마리 조리하여 정직하게 1Kg에 맞춰 판매하니 '닭다리날개가 4개씩'인 것을 빌미삼아 비방을 하는 것이다.

결국 500g 을 2마리 조리하는 것은 변함없으나, 닭다리날개 2개씩은 따로 빼내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였고 간혹 대구에서 친척이나 지인들이 놀러 올 때마다 보관하였던 닭다리날개를 튀겨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의 고민으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우리 애들이 치킨을 엄청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리, 날개를 너무 좋아한다. 가슴살은 퍽퍽해서 별로고 다리랑 날개만 먹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방법이 없나?”

이에 다리날개를 따로 판매하게 된다.
이것이 교촌 콤보메뉴의 시초이다. 당시에는 교촌골드라는 메뉴판매했다고 한다.

3.1.2. 상생

2000년대 들어서 수도권으로 가맹사업을 확장한다. 지방에서는 이미 맛으로는 증명이 되어 가맹사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003년에는 조류독감으로 치킨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촌을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300여명 넘게 있었다. 당시 가맹점 1곳을 오픈할 때마다 본사에는 2,000만원가량의 수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권원강 회장은 300여명의 예비 창업자를 그냥 돌려 보낸 것. 이유는 조류독감으로 기존 가맹점들의 매출 피해 최소화 및 내실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2021년 3월 14일 권원강 회장본인지분 중에서 총 100억원의 주식전국 1,300여곳의 가맹점주들에게 증여[5]하기도 한다.
이유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맹점주들에게 상생실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3.1.3. 고집(뚝심)

구미에 교촌통닭을 창업했을 당시 오토바이가 아닌 자동차 프라이드배달을 시작하였다. 자동차는 오토바이에 비해 기동성 뿐만 아니라 구입비와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아래의 이유로 선택을 하였다고 한다.
• 안전: 눈, 비가 와도 안전하다. 자동차는 배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사고의 위험이 낮다.
• 품질: 치킨의 품질. 당시에는 배달통이 없었다. 뒷좌석에 바구니를 묶어서[6] 치킨 상자를 넣어 배달하는 형태였다. 특히 비포장 도로를 주행할 경우 치킨 상자에 들어 있는 치킨의 형태가 엉망이 되거나 튀김용 기름이 새는 등 문제가 있었다. 자동차는 바삭함과 형태유지가 더 뛰어나다.
• 날씨: 한여름, 한겨울, 장마, 폭설 등 기상이변으로 배달하는 치킨의 맛이 변할 수 있다. 자동차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 소음: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오토바이는 시끄럽기 때문에 소음공해를 만든다. 자동차는 조용해서 고객들에게 안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 홍보: 자동차에 ‘교촌통닭’이라고 크게 쓰고 다니면 홍보 및 가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치킨 2마리 배달 주문이 있었는데 배달 자동차태양열에 의해 매우 뜨거웠다. 에어컨을 틀고 배달을 할 법도 했는데, 에어컨을 틀면 치킨이 식을까봐 차량 내부의 온도가 50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달을 강행하였다. 손에 땀이 너무 많아서 운전대가 미끄러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 온 권원강 씨에게 깜짝 놀랐지만, “깨끗한 기름에 정성을 다해 튀겼습니다.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게 된다. 권원강 씨가 뜨거운 차에 돌아오니 아직도 치킨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고 ‘식기 전에 가져다드려서 다행이다’라고 안도를 하였다. 그 날 저녁, 오후에 치킨을 주문하였던 고객은 일부러 매장을 방문하여 치킨 5마리를 포장해가기도 하였다. 권원강 씨의 ‘진심’에 고객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3.2. 경력

1991년, ‘교촌통닭’으로 치킨 장사를 시작한 권원강​ 회장은 치킨을 180도에서 10분과 2분 두 번 튀기는 비법으로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권 회장을 찾아와 기술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이 늘면서 1994년 교촌통닭의 가맹 사업을 시작했다.

1999년, K&G 시스템을 설립했고, 2002년 교촌에프앤비로 사명을 변경한 후 사장을 역임했다.

2004년, 회장으로 취임했고, 2007년 회사 창립 16년 만에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에 진출했다.

2014년,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1위 브랜드로 올라선 교촌치킨은 이후 8년간 1위 자리를 지켰다.

2018년, ‘육촌 갑질’로 교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권원강 회장의 6촌 동생인 권순철 전 상무이사 본부장의 직원 폭행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권원강 회장은 교촌치킨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문을 작성해 게시했다.

2019년 3월, 교촌에프앤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권원강​ 회장은 퇴임 당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와 혁신에는 한 사람의 회장이 아닌 보다 투명하고 전문화된 경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업공개를 위한 사전 작업일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육촌 갑질' 사건 발생으로 오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내세운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20년 11월, 안정적 수익성을 바탕으로 교촌에프앤비는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코스닥을 거치지 않고 코스피직상장했다.

2022년 3월, 교촌에프앤비 사내이사 및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같은 해 12월 교촌에프앤비 회장으로 재선임되며 경영에 복귀하였으며 사단법인 한국치맥산업협회 협회장도 맡고 있다.

3.3. 역량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CEO다.

10평짜리 닭집에서 시작한 교촌을 가맹점 1300여 개의 프랜차이즈로 키워냈다.

정도경영,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경쟁사들이 공격적으로 가맹점을 늘려가며 매출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 속에서도 가맹점 수익 보존을 위해 점포수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

그 덕에 교촌치킨의 가맹점당 평균 매출은 경쟁사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2022년 기준 교촌치킨의 가맹점당 평균 매출액은 약 7억 4900만 원으로 bhc(약 5억 9700만 원), BBQ(약 4억 3200만 원)보다 훨씬 높으며 폐점률도 1%가 채 되지 않는다.

자영업자 사이에서 교촌은 ‘가맹점과의 상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4. 비판

2018년 치킨업계에 배달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경쟁사들이 줄줄이 배달비를 도입하면서 소비자 사이에서는 교촌이 치킨 배달비를 만들었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2021년에도 치킨업계에서 가장 먼저 제품 평균 가격을 올려 ‘가격 인상 주도 브랜드’라는 낙인이 찍혔다.

2022년 권원강​ 회장이 경영 복귀를 한 후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가격 인상이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교촌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

거액의 배당금도 수차례 논란이 됐다.

권원강 회장이 교촌에프앤비의 지분을 100% 확보한 2009년부터 교촌에프앤비의 고배당이 시작됐다.

2009년부터 5년간 회사의 순수익은 총 48억 원으로 집계됐으나 권 회장이 챙긴 배당금은 14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2010년 교촌에프앤비가 23억 원의 순손실을 냈을 때도 권 회장은 30억 원의 배당금을 받아 논란이 됐다.

최근 교촌의 실적이 악화한 가운데서도 권 회장의 고배당은 이어졌다.

2022년 교촌은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8.2% 감소한 89억 원을 기록, 당기순이익은 49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권 회장은 34억 5751만 원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3.5. 도전

2014년부터 8년간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던 교촌치킨은 2022년부터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022년 BHC에 1위 자리를 뺏긴 데 이어, 지난해에는 2위 자리마저 BBQ에 내주며 업계 3위로 밀려났다.

공교롭게도 2022년 권원강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뒤로 실적 하락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권원강​ 회장은 글로벌과 신사업 부문에 집중해 실적 반등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다.

복귀 후 첫 해외 진출지로 대만을 낙점했고, 대만 1호점 오픈식에 직접 참석했다.

신사업은 ‘소스’와 ‘한식’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해외 소스 수출 사업을 전개하고, 한식사업도 확장 중이다.
2024년 2월, 서울 여의도에 ‘메밀단편’ 1호점을 열었다.

최근에는 판교에 신사옥을 마련하고 회사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위치하던 사옥을 20년 만에 옮긴 것이다.

권원강​ 회장은 신사옥 이전에 맞춰 ‘진심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철학을 담은 기업의 새 비전인 ‘진심경영’을 선포하고, ‘푸드와 행복이 잇닿다’는 교촌의 새 브랜드 슬로건도 발표했다.

진심경영을 통해 교촌을 글로벌 푸드컬처 브랜드 그룹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4. 창업초기 일화

1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 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이에 다른 치킨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간장 마늘 소스2년개발하였다.

이것이 교촌 최초메뉴 교촌 오리지날이다.
파일:교촌오리지날.jpg

하지만 여전히 장사가 잘 되지 않았고 권원강 회장지혜(잔꾀)를 발휘한다.

당시114전화를 하여 궁금한 업체기관전화번호를 물어보던 시대이다.
권원강 회장은 의도적으로 114전화하여 교촌통닭이라는 치킨가게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십 번씩 교촌통닭이라는 가게의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가 계속 오니 114 안내원들 사이에서는 교촌통닭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화제가 되었다.

안내원들이 맛에 대한 궁금증에 몇 번 배달을 했다고 한다.

이는 권원강 회장끈기집념을 잘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일화로는 늦은 저녁에 남녀 손님이 매장에서 치킨을 먹고 있었는데 인근 회사 직원 10여명이 회식을 하기 위해 방문을 했다. 그런데 작은 매장이기 때문에 4인용 탁자가 3개뿐이었다.

일반적인 장사꾼이라면 손님들이 곧 일 테니, 탁자를 붙이든 남녀 손님과 합석을 하든 어떻게든 10여명의 손님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권원강 회장은 이미 매장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남녀 손님에게 불편함과 피해가 될까봐 10여명의 손님을 돌려 보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매장의 남자 손님이 감동하여 권원강 회장에게 명함을 건냈다. 그 남자는 구미공장에 위치한 대기업 노조 임원이었던 것이다.

이후 대기업 노조주관하는 행사, 모임, 집회마다 교촌통닭을 대량주문했고, 주기적으로 구미공장의 직원들이 매장에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입소문구미를 넘어 인근 지역인 김천까지 퍼졌고 김천에서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와 기술 전수를 부탁한다.

이것이 교촌치킨의 가맹사업의 시작이다.


위 일화를 통해 권원강 회장판단진심, 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로인해 지금까지도 권원강 회장진심경영, 정도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5. 출간도서

파일:교촌과나.jpg파일:최고의 상술1.jpg
편저: 김주영

교촌과 나 : 교촌치킨 창업주 권원강 회고록
2023.
저자: 권원강

최고의 상술
2025.03.03.
출간일 베스트셀러 선정.

6. 기타

  • 2025년 3월 24일, 사내이사직에서 자진 사임을 하였다. 이유는 ‘균형 있는 의사결정 및 경영 효율성 강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최대주주로서 지분율이 69.2%에 달하기 때문에 본인의 막강한 지배구조 영향력이 기업의 유연함을 해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다만, 회장최대주주로서 비전과 전략 방향 제시 등 주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9년 3월 친인척의 갑질 논란으로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을 내려 놓았으나 2022년 3월 다시 사내이사로 선임 되었고 임기 만료일인 2026년 3월보다 1년 앞서 사임하는 것이다. 링크

[1] https://m.blog.naver.com/kmhsu/223830759768[2] 개인면허 판매로 3,500만원을 갖게 되었으나 생활비로 200만원을 사용했다.[3] 공급 육계업계는 하림.[4] “교촌에서는 찌꺼기를 모아서 판다.”[5] 당시 주가로는 400~1,200만원 상당이라고...[6] 파일:권원강오토바이.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