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3:00:49

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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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11월 8일 단종에 의해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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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9월 5일 세조에 의해 책록
수충위사동덕좌익공신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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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문 조효문 최유 한계미
한종손 황수신 황효원 홍윤성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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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한 제명, 1506년 중종 때 복권
2 1458년 6월 29일 세조에 의해 책록
3 1466년 연회에서 세조에게 양위를 종용한 혐의로 인한 제명
4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3등에서 2등으로 책록
5 1455년 10월 22일 세조에 의해 책록
6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으로 인한 제명
7 1699년 숙종 때 복권
8 1691년 숙종 때 복권
9 1504년 아들 이세좌와의 연좌로 인한 제명
10 1455년 11월 12일 세조에 의해 책록
11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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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추봉 완창대군의 증손
파성군 | 坡城君
이름 이사철(李思哲)
출생 1405년(태종 5)[1]
사망 1457년 1월 20일[2] (향년 51 ~ 52세)
(음력 1456년, 세조 2년 12월 16일)
봉호 견성부원군(甄城府院君)[3]
파성군(坡城君)1872년(고종 9)[4]
시호 문안(文安)
성지(誠之)
부모 부친 - 밀양군(密陽君) 이란(李蘭, 1357 ~ 1428)[5]
모친 - 파평 윤씨 윤사우(尹師禹)의 딸
부인 최예(崔睿)의 딸

1. 개요2. 본문3.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의 문신.

2. 본문

태조 이성계의 형 완성군 이천계의 손자이며 아버지 또한 개국좌명공신으로 밀양군에 추증된 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이란이다. 이사철은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박사가 되었고 이후 세종의 한글 창제를 보좌했다고 전해진다. 좌승지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고, 단종 재위기 수양대군의 손을 잡고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정난공신 1등으로 책정된다. 이후 함경도 도체찰사를 지내고 우의정에 올랐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2등에 올랐으며 견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이후 명나라에 선위사로 파견되어 연경에 갔다온 후 좌의정에 올랐다. 1456년 병으로 사직하였고 같은해 12월에 사망하였다.

1872년(고종 9) 할아버지 이천계환조의 아들 명목으로 영성대군(永城大君)으로 추봉되고 그 증손자까지 추증하면서, 이사철도 왕족 작위를 추증받아 파성군(坡城君)이 되었다. 1900년(광무 4) 이천계가 완창대군의 아들로 판정되어 영성군(永城君)으로 낮아졌지만, 이사철은 여전히 항렬상 완창대군의 증손자였기 때문에 한 끗 차이로 왕족 작위를 보전할 수 있었다.

3. 여담

함길도로 발령받았을 때 세종과 주고받은 문답이 유명하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207021_002 두 인물은 서로 6촌 형제 관계이다.
함길도 경력(經歷) 이사철(李思哲)이 하직하니, (세종이) 불러 보고 말하기를,
"나의 족속(族屬)은 모두 학문을 모르므로[6], 네가 학문에 힘쓰는 것을 깊이 아름답게 여겨 내가 오래도록 집현전(集賢殿)에 두고자 하였으나, 너는 시종(侍從)한 지가 오래 되어 나의 지극한 마음을 아는 까닭에, 특별히 너를 보내어 그 임무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니, 너는 가서 게을리 하지 말라."
하니, 사철이 아뢰기를,
"소신이 본디부터 사물(事物)에 정통하지 못하와 잘못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자질(姿質)이 아름다움을 아노니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만약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인들 능히 하지 못하리오."
하고, 이어 활과 화살을 하사하였다.
줄곧 집현전 학사로 재직하다가 외지인 함길도로 발령받자 어려움을 호소한 것인데, 세종의 위로가 인상깊다.

체격이 크고 먹는 양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다.
[1] 전주이씨 대동종약회에는 1411년생으로 되어있으나, 세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에는 1405년생으로 되어있다.[2] 율리우스력 1월 11일[3] 공신 명목.[4] 추봉 영성대군의 손자 명목 → 추봉 완창대군의 증손 명목.[5] 영성군 이천계의 장남.[6] 문(文)이나 학문으로는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 끝판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의 멘트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이사철이 이천계의 손자로서 왕실의 방계이므로 집안 사람으로서, 그리고 전주 이씨가 원래는 무인 집안이었기 때문에 쓴 표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