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0 20:09:38

태화사

태화루에서 넘어옴

한국 정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궁원宮苑
누원樓苑 임해전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 성동동 전랑지† · 용강동 원지 유적† · 구황동 원지 유적†
부여 궁남지† · 익산 금마저 왕궁 후원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안학궁 후원†
경복궁 경회루 · 향원정 · 창덕궁 서총대
원림苑林 만월대 금원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경복궁 북원 · 창덕궁 비원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 경희궁 후원† · 인경궁 후원†
화계花階 경복궁 아미산 · 창덕궁 낙선재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왕실누정王室樓亭 망원정 · 용양봉저정 · 낙천정 · 탕춘대
관원官苑
누원
樓苑
장대將臺 촉석루
영보정
방화수류정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연광정
통군정
인풍루
수항루
객사客舍
동헌東軒
군영軍營
세검정
환아정
영남루
군자정
한벽루
지수당
죽서루
백상루
강선루
육승정
칠보정†
관덕정
감영監營 영주관
부용당
오순정
명승名勝 광한루
항미정
채미정
망양정 · 월송정
쌍수정
경포대
청간정
총석정
부벽루
칠성정
풍패루
해월정
사원私苑
별서
別墅
정원
庭苑
석파정 · 옥호정† · 백석동 별서† · 성북동 별서 · 무계동 별서† · 윤웅렬 별서
운림산방
서석지
귀래정 · 독락당
다산초당
함안 무진정
남간정사
원림
苑林
부용원(보길도 윤선도 원림)
소쇄원 · 식영정 · 환벽당 · 면앙정 · 송강정 · 명옥헌 · 독수정
임대정
부춘정
백운동원림
초연정
용호정
요월정
심원정
초간정
용계정
만휴정
임천원
臨川苑
효사정 · 압구정† · 천일정†
서벽정
농월정 · 거연정
요수정 · 용암정
월연대
선몽대
청암정
침수정
위양지 완재정
향원鄕苑 영보정
무기연당
선교장
오죽헌
방해정
쌍산재
진주 용호정원
사원寺苑
정림사 연지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미륵사 쌍지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실상사 지당
송광사 계담
수선사 정원
불국사 구품연지†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청평사 고려선원
낙산사 의상대
대흥사 무염지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통도사 구룡지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봉선사 화계
봉정사 영산암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기타
금장대
태화루
현대정원
수목원 · 국가정원
진해루
월화원
외도 보타니아
별빛정원
황산불빛정원
39-17 마중
발리정원
섬이정원
아름다운정원 화수목
생각하는 정원
남이섬
원생정원
F1963 정원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현존하지 않는 건축물
}}}}}}}}}

파일:20937.jpg 파일:태화루1.jpg
현재 태화사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재건한 태화루의 모습.

1. 개요2. 상세3. 기록

1. 개요

太和寺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강변의 황룡연 위에 있었던 대사찰.

현재는 태화사의 일부였던 태화루만이 복원[1]되어 남아있으며, 이는 2011년 9월 공사에 착수하여 2014년 3월에 완공되었다.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어렴풋이 보인다. 태화교 바로 옆에 있고 바로 앞엔 태화장터가 있는데 매월 5, 10일마다 장터가 열려 혼잡해진다.

최근 울산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태화루 옆에 스카이워크를 설치할 계획이지만 현재까지 찬반 여론이 나눠지고 있고 울산시는 관계자는 하천변에 설치되는 인공물인 만큼 낙동강유역환경청과 공원조성계획 변경 등을 협의해야 한다면서 스카이워크 폭을 일부 줄이고, 자연경관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관광객을 태화루 쪽으로 유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였다. #

2. 상세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643년에 창건한, 당시 울산에서 가장 컸던 사찰이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데, 고려시대까지도 왕실에서 태화사를 관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중국 사신이 오가는 주요 길목에 위치했음도 태화사의 위상이 높았던 한 가지 이유인 듯하다.

현재는 폐사된 사찰이지만 흔적은 태화강으로 남아 현재까지 태화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3.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太和(태화)가 아닌 大和(대화)로 기록되었다.(자동 다운로드되는 PDF)
[1] 훼철된 지 400년 이상 지나서 다시 세워진 것이라 상상에 기반한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