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0:47:22

윤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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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茂夫
파일:윤무부_연합뉴스.jpg
출생 1941년 4월 15일 ([age(1941-04-15)]세)
경상남도 통영군 이운면
(現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
본관 칠원 윤씨
학력 거제초등학교 (졸업)
한영중학교 (졸업)
한영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생물학 / 석사)[1]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생물교육학 / 박사)[2]
가족관계 아내 김정애
딸 윤정림, 아들 윤종민[3]
직업 생물학자, 조류학자, 교수, 저술가
소속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거주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1. 개요2. 생애3. 논란
3.1. 태극기 집회 참여 오해3.2. 환경영향평가 희귀종 누락 의혹
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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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인, 학자.

경희대학교의 명예교수로, 들의 먹이활동과 번식 등의 생태를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전달하여 일명 '탤런트 교수'로 통했다.

2. 생애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탄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산이나 바닷가를 다니면서 새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탓에 7남매 중 윤무부 혼자만 공부할 기회를 얻었는데[4], 15살 때부터 부산광역시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일하고 있던 둘째 형이 부대 이전으로 서울특별시로 가게 되면서 당시 중학생이던 윤무부도 형을 따라 서울로 가 유학 생활을 했다. 서울 한영중한영고를 졸업한 후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로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함께 탐조 활동을 하며 이 때부터 새를 관찰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탐조활동을 하는 와중에 위기도 수차례나 있었다. 대학원생이던 1967년에는 광릉에서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철새의 이동을 관찰하다 개울가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6시간 가량을 떠내려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당시 이 집중폭우는 광릉 부근에서만 주민 90여 명을 익사시킨 대형사고였는데, 윤무부는 다리 밑에서 시신 12구와 함께 발견됐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서 이를 두고 호외도 났다. 의정부시, 포천시 같이 군부대가 많이 있는 곳이나 강화도[5] 같은 접경 지역에서 탐조활동을 위해 검문소를 지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여러 번 철창 신세를 진 적도 있다고 한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쌍안경과 값비싼 카메라를 소지하고 그외 다른 장비들을 넣기 위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닌데다 탐조 활동을 마친 후 며칠간 씻지도 못한 꾀죄죄한 상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 간첩으로 오인받기 딱 좋았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출타해 며칠씩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 탓에 이를 기이하게 본 동네 주민이 신고하는 바람에 어느날 새벽에는 기무사에서 자택을 조사한답시고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1979년부터 경희대학교 생물학 교수로 재직해 2006년 8월 말, 정년퇴임했다. 재직 중에도 조류연구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조류와 관련없는 수업 중에도 새 얘기만 했을 정도.

2006년 12월, 탐조 활동을 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때는 몸의 오른쪽이 마비돼 곧 죽을 거라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2010년대 초, 재활에 성공했다. 후유증으로 오른손과 오른발은 예전처럼 잘 쓰지 못하게 됐는데, 재활하면서 왼손을 쓰게 돼 걷는 것만 다소 불편할 뿐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어 다시 탐조 활동에 나서고 있다.

3. 논란

3.1. 태극기 집회 참여 오해

파일:external/cdn.ddanzi.com/162038916.jpg

2017년 2월 4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윤무부로 짐작되는 사람이 촬영되었다. 윤무부가 맞는지 아닌지는 정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봐도 얼굴도 그렇고, 또한 휠체어와 손가락 끝을 자른 장갑을 통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 심지어 많은 수의 기자들도 윤무부라고 기사를 내보냈다. 이때 일부 네티즌들은 박근혜의 별명을 이용해 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인터뷰에 따르면 태극기 집회에 찍힌 게 본인은 맞지만 극우 논란은 오해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새 사진 현상을 맡긴 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몰린 것을 목격했고, 이때 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새박사'라고 반가워하면서 우연히 집회로 강제로 떠밀어 가게 된 거라고 하였다. 목에 걸린 팻말은 집회에 참가한 한 분이 걸어준 것이며, 이를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현장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외국인이 집회에 참여하면 외국에서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선전 효과가 있어서 억지로 집회에 끌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3.2. 환경영향평가 희귀종 누락 의혹

환경보호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건설업자들 입맛에 맞게 환경영향평가서를 써 주며 환경파괴에 일조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모 사이트의 한 유저가 윤무부 박사와 건설업체 간의 유착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문, 뉴스기사. 건설업체로부터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받을때 현지에 사는 일부 희귀종의 조류를 보고서에 일부러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건설 허가가 떨어지기 쉽게 하였고, 지금의 명예는 이로 얻어진 것이라는 주장. 다만, 이 글 외에 다른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다소 연관된 문제로 과거 경인운하 사업에서 찬성측 입장에 섰던 이력이 있으며, 그 논리나 주장이 오리 등 조류의 보호보다는 개발에 옹호적이었다. 관련 사설[6].

실제로 언론과의 인터뷰는 환경보호 쪽으로 많이 하고 있지만, 개발에 찬성하는 의견을 많이 낸다.

뉴스기사. 실제로 경희대에서 조류학을 연구하는 유정칠 교수와 대립하여 법정에서 개발을 옹호하기도 했다.

다만 4대강 정비 사업 관련해서는 반대 입장에 있었다. 저 사업이 철새도래지를 직접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조류 학자가 환경 운동가는 아니고 개발에 반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을 반대하지 않는걸 자신의 조류 권위자라는 입장을 이용해서는(=희귀종등을 누락해 건설사에 유리하게 환경영향평가를 할 경우) 안된다.

물론 현재 나온건 의혹일뿐 증거 제시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른건 사실이다.

4. 기타

새 관련 필름 스크랩과 녹화 테이프가 수천 개에 사진이 60만여 장, 수많은 새소리 녹음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이런 소장품을 두고 2006년, 거제시에서 윤무부 조류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자택 안과 외부에도 항상 새장을 직접 만들고 손을 볼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이른 아침마다도 정성스레 새들을 돌보는 모습을 인근 주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연구용 도구 이외의 도구에는 상당한 기계치다. 브레인 서바이버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는 정답을 입력하는 기기의 사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여 오답률이 매우 높았다. 한편 조류를 연구하는 박사답게 몰래카메라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는, 이경규가 날렸던 로봇 새가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를 듣고 그 새가 로봇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이경규도 이 사실을 보고 매우 당황했는데, 아무래도 사전조사를 깊이 안 했던 모양.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은 이경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 윤종민 박사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의 길을 걸으며 경희대학교 생물학과[7]콜로라도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을 거쳐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과거 아내와 데이트할 때도 야외에 새를 보러 다녔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새를 보러 다녔고, 가족들이 반대를 해도 꿋꿋하게 새 보러 가자고 할 정도로 못 말리는 중증 새 덕후. 하지만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가 되겠다고 하자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류학자 쪽이 다른 분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돈벌이도 잘 안 되고 먹고 살기도 힘든 쪽인지라...[8]

1971년,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황새 한 쌍 중 밀렵된 수컷[9]의 박제 작업에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멸종된 걸로 판단된 크낙새의 마지막 사진도 찍었다.

키가 작다. 학창 시절 키 순서로 번호를 매겼는데, 늘 1번을 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별명은 이름 때문에 붙은 내무부, 총무부. 아들에 따르면, 윤무부 본인이 키가 작기 때문에 키 큰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했단다. 그러던 중 사촌의 소개로 현재의 부인인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의 김정애 여사를 만났는데, 긴 생머리에 키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관인 예비 장인이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딸을 시집보낼 수가 없다며 반대했는데,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데이트할 때에도 새 관찰을 했다고 하며, 결혼 후에도 가족 휴가를 갈 때는 유원지 대신 새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체험 삶의 현장 역대 최저 일당 기록의 보유자이다. 고물장사 체험을 가서 하루 동안 겨우 3,010원을 벌었다.

교수직 외에 당시 엔터테이너 교수 중 하나로[10] 방송 출연 등 외도를 많이 한 편인데, 특히 2000년대 초중반 예능이나 개그 프로에 자주 얼굴을 비추었고, 특유의 사람 좋은 말투와 수더분한 인상으로 깨알같이 웃음을 주고는 했다. 몇번 광고도 찍었는데, 대표적으로 엠파스가 운영하던 시절, 고인 役을 맡은 윤 교수 앞에 양배추 조세호낙지 윤석주가 왜 갈매기살을 돼지고기집에서 파냐고 묻자 벌떡 일어나 천연덕스럽게 '나도 몰라, 지식인도 몰라', '엠파스는 모르는게 없네'라고 대답해주는 광고가 유명하다. 광고.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황새춤 동영상을 만들었다. 2014년 말에는 아이온 : 영원의 탑 업데이트 기념 광고에 출연했다. 마족이셨다. 2015년에는 KT 올레 기가 홈캠 광고에 출연했다.

2021년 5월 1일,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에 출마한 부천 FC 1995의 후보 헤르[11] 지지를 선언했다.

5.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배나무 밭에서의 알락할미새(Motacilla alba leucopsis) 및 제비(Hirundo rustica gutturalis)의 社會的 就眼行動의 觀察(1966)[2] 박사 학위 논문: 한국에 사는 휘파람새 Song의 지리적 변이(1995)[3] 그의 아들 윤종민 박사(동물학)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조류(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4] 정작 학창 시절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5] 1960 ~ 70년대만 하더라도 강화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6개 가량이나 지나쳐야만 했다.[6] 내용은 새만금을 다룬 내용이니 혼동 제외.[7] 부자가 사제지간으로 있었다. 아들을 전속조교로 삼아 주말마다 탐조활동을 다녔다고...[8] 윤무부 본인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생물학과에 합격했다고 하자 학비를 대주던 둘째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둘째 형은 어렸을 때부터 미군부대에서 질시받으며 일해왔기에 동생만큼은 영어영문학과 같은 유망한 학과를 나와 떳떳하게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경희대 생물학과에 다니게는 되었다. 근데 윤무부의 동생은 대학을 못 갔는데?[9] 황새 항목에도 있지만, 암컷은 보호받다가 1994년에 사망했다.[10] 방송의 신선함과 전문성을 위해 90년대 ~ 2000년대 초반 실제 교수, 박사 등 전문직 인력들이 대거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패널로 방송 출연을 많이 했다. 윤무부 교수 외에도 조경철, 김동길, 황수관, 이원복, 민용태 등이 그 예.[11] 보라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