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피살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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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 야마가미 데쓰야 | |
관련 문서 | 영향 및 전망 · 반응 · 반응/아시아 | |
관련 단체 | 자유민주당(일본)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일본 정계와의 관계) |
<colbgcolor=#000><colcolor=#fff> 야마가미 데쓰야[1] [ruby(山, ruby=やま)][ruby(上, ruby=がみ)][ruby(徹, ruby=てつ)][ruby(也, ruby=や)] | Yamagami Tetsuya | |
출생 | 1980년 9월 10일 ([age(1980-09-10)]세) |
일본 미에현[2]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3] |
학력 | 나라현립코리야마고등학교 (졸업) 모 대학교 공학부 (중퇴) 전문대학 (졸업) |
가족 | 조모(1982년 사망) 외조부(1999년 사망) 아버지(1984년 사망)[4] 어머니 형(1979년생 ~ 2014년 사망, 향년 35세) 여동생(1983년생) |
직업 | 해상자위대 자위관[5] (2002.08. ~ 2005.08.) → 측량업체 아르바이트생 → 재무설계사, 택지건물거래사[6] → 플라스틱 제조업체 파견사원 (2020.10. ~ 2022.05.) → 무직 |
예전 거주지 | 나라현 나라시 오미야정 (大宮町) # |
링크 | [7] |
재판선고 | 제1심 (나라지방재판소) -항소심 (오사카고등재판소) -상고심 (최고재판소) - |
피의사실 | 살인[8], 총도법 위반 |
범행 시각 |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
범행 장소 |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 |
범행 도구 | 급조 총기[9] |
수감지 | 오사카 구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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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암살한 인물.개인적으로 원한을 가진 통일교와 아베가 관계되어 있다고 여겨 이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으며 애초부터 암살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통일교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2. 생애
<rowcolor=#fff> 초등학교 졸업 당시의 야마가미 | 중학교 졸업 당시의 야마가미[10] | 고등학교 졸업 당시의 야마가미[11] |
2.1. 기본정보
1980년 9월 10일에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났다. ## 유명 대학 출신인 그의 외조부는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작은 건설회사를 창립하였고 오사카 토목 관련 하청 단체의 회장도 역임했다고 한다. 딸이 2명 있었으며 모두 우수하여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 큰딸이 야마가미의 모친이며 오사카시립대학을 졸업하고 영양사로 근무했다. 작은딸(이모)은 훗날 의사가 되었다. 아들(외삼촌)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76년에 교통사고로 이미 사망했다. 야마가미의 부친은 교토대학 출신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한다.그러나 야마가미가 4살이었던 1984년, 모친의 과도한 집회 참가 문제[12]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부친이 자살했다.[13] 남은 가족은 모친의 고향인 나라현으로 이주하여 외조부댁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이 즈음부터 모친은 전술한 건설회사에서 임원으로서 재정 관리를 담당하며 육아에 힘을 쏟았다. 또 이 시기에는 집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친은 당시의 상황에 많이 힘들어했으며 지인에게는 '종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상담하기도 했다. 야마가미의 외조부는 남편 없이 3남매를 키워야 하는 야마가미의 모친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그녀가 종교에 빠진 것을 당연히 여겼다고 한다.
이 즈음부터 모친은 재산을 청산하고 생활 수준에 무리가 갈 정도로 구 통일교회에 거액의 헌금[14]#을 하여 야마가미 3남매는 먹을 것이 부족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여동생과 소아암에 걸려 한쪽 눈을 실명했으며 훗날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형이 있었다. 모친은 아이들을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아이들을 방치한 채 장기간 한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 형이 작은아버지에게 '먹을 것이 없다'며 전화를 해 먹을 것과 돈을 얻어 연명했다고 한다. #
연년생인 형은 2014년[15]에 통일교 간부를 칼로 습격하다가 실패하여 바로 다음날 의문의 자살을 하였고, 세 살 밑의 여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16] # 여동생의 잠적도 통일교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마가미 본인도 이후 해상자위대 근무 시절 자살 시도를 했다.
2.2. 학생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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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농구부 시절의 야마가미 |
마이니치신문은 그가 고등학생 때 학교 응원단과 문예부에서 활동했고 주변에선 얌전한 성격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심지어 성실하고 우수한 모범생이어서 친구는 적지만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 응원단의 경우 야구부가 강세인 반면 존폐위기를 겪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말수도 적은 야마가미는 정말 열성적으로 활동하여 별명이 단장이었다고 한다. 동급생들은 입을 모아 "고교 졸업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증언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나름 우수한 학생에 친절한 성격으로, 교우관계도 좁지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모친은 투병 중이던 형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에게는 별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이 즈음에 통일교에 많은 재산을 갖다 바쳤고, 집안이 순식간에 가난해지면서 가족이 나라현 시내를 전전했다고 한다. 그와 모친은 정말 조용한 성격으로 주변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18] 이 와중에 1999년 외조부가 사망하면서 모친을 말릴 사람이 없어졌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통일교에 단단히 심취한 모친이 상당히 큰 돈을 종교단체에 헌금하는 것도 모자라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팔아 버릴 정도였고 결국 2002년 8월 21일 파산하고 만다. # 심지어 파산 후에도 계속 헌금을 납입했다고 한다. #
이처럼 공부를 잘 해 명문대학[19]을 꿈꾸었으나 금전 문제로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또한, 학자금은 부친 쪽의 친척[20]들이 힘들게 마련하여 대 주었다고 한다. # # 이 때 그는 주변 지인에게 '종교 때문에 집이 이상해졌다, 돈이 없어 어쩔 도리가 없다', '통일교회가 없었다면…'과 같은 말을 자주 하며 해가 지날수록 우울해졌다고 한다. #
결과적으로 야마가미는 진학교라 불릴 정도의 명문고에서 우수한 성적이었음에도 돈 문제로 대학은 가지도 못하고, 굶주림에 3남매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친척에게 연락하는 경우도 꽤 있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자연히 통일교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교 졸업 직후 독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여동생도 독립했다고 한다. 시기나 기혼 여부는 불명.
2.3. 임기제 자위관 시절
2002년 8월에 입대하여 12월까지 나가사키현의 사세보교육대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그 후 2년간 하츠유키급 호위함 '마츠유키(DD-130)'의 승조원으로 지냈다. 보직은 병기를 담당하는 포뢰과였다. 2004년 4월부터는 히로시마현 에다지마시의 제1술과학교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까지 3년 동안 히로시마현 구레시 일본 해상자위대의 임기제 자위관으로 복무한 후 동년 8월 임기 만료로 퇴역했다.최종계급은 해사장이다.[21] 즉 한국 또는 다른 나라 군대의 일반 병(兵)에 해당하는 사(士)로만 복무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예비역 해군 병장인 셈이다.[22] 자위대는 간부뿐만 아니라 조사도 자위관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조사의 경우는 처음부터 장기복무자원으로 구분되어 사로 시작해 조까지 올라가는 코스인 일반조후보생과 임기제 계약으로 구분되어 일단 사로 3년 복무하고 더 복무하고 싶은 지원자에 한해 계약을 갱신하거나 시험을 쳐서 조로 진급할 수 있는 자위관후보생으로 나뉜다. 자위관후보생 코스로 들어간 임기제 자위관들은 보통 기술도 학력도 마땅찮은지라 계약을 갱신하여 최대 8년의 기한을 채우는 게 일반적인데, 그냥 첫 계약 3년만 채우고 퇴역한 것으로 보아 당장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독립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 진지하게 자위관을 진로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23] 실제 후술하듯, 퇴역 후 여러 자격증도 취득했다.
방위성 및 해상자위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마츠유키는 2002년 4월 9일,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을 태운 북미 원양연습항해에 투입되었다가 귀국했고 야마가미는 그 직후에 함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이후 마츠유키함은 2003년 3월 주력함대라 할 수 있는 호위대군에서 지방함대라 볼 수 있는 지방대로 전속되었고[24] 그 이후 도크에 들어가 정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야마가미는 실제로 장거리 항해 및 작전에 나서진 않았고 기껏해야 몇 번의 초계항해 정도가 전부였을 거라고 한다. # 야마가미는 이곳에서 연 1회 정도 소총을 다루는 기본 훈련을 받았으며 실탄사격 및 소총의 분해나 정비, 조립, 총을 부정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사건 이후 야마가미의 자위관 경력이 주목받아 자작 총기 제작이 가능한 무기전문가로 불렸으나, 2~3년 정도의 근무만으로 총기 제작 기술을 얻을 수는 없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3년이라는 긴 복무기간을 거친 과거의 대한민국 중장년층 남성들은 전부 총기 제작 기술을 습득했다는 말이 되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복무한 군종도 총기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해상자위대였다. 이러한 언론 보도 기조에 해상자위대 측에서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한 해상자위대 간부는 "해자대는 총기를 만드는 기술 따위 가르치지 않으며 포뢰과라 한들 소총류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소총류의 실탄은 1년에 1번 취급할까 말까 하며 사격훈련 역시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야마가미가 해자대 시절 배운 기술을 범행에 사용했다는 일련의 보도를 강하게 부정했다. #
문예춘추의 2022년 7월 10일 보도#에서는 조사관계자 취재에 의해 2005년에 야마가미가 자살을 시도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여러 매체의 보도에서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생활이 곤궁한 형과 여동생을 위해 생명보험금으로 생활 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음이 드러났다.
코단샤의 프라이데이 디지털판 7월 15일자 기사에서는 야마가미가 2004년 5월 8일에 상담기관에 보냈다고 하는 통일교회 관련 이메일 일부가 공개되었다. 이 이메일이 진본이라면 야마가미는 실제로 외부의 도움을 구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야마가미가 보낸 이메일[25] |
2.4. 임기제 자위관 퇴역 후
퇴역 후에는 나라시에 거주하던 것으로 확인# # # #되었는데,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측량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2급 재무설계사[26], 택지건물거래사 등 자격증을 취득했다. 택지건물거래사는 상당히 고난도의 자격증으로[27], 야마가미가 상당한 노력가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마가미가 평범한 환경에 있었다면 이 자격증만으로도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이후 8회 이상 이직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파견사원으로 리프트 일을 주로 전전했다. # 단, 범행 당시 기준으로 무직이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
야마가미의 모친이 회사를 이어받았으나 방치된 채로 제대로 경영되지 않았던 건설회사는 큰 적자를 내고 결국 2009년에 문을 닫았다.
퇴역 이후 가족들과도 소원해져서 정월에나 가끔 얼굴을 비췄고 친척들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34살이던 2014년에는 투병 중이던 형이 자살하여 큰 충격을 받았으며, 여러 사건이 겹쳐 자신의 생활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 또한, 야마가미를 아는 지인은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형의 장례식 때 야마가미가 울부짖으며 "형이 죽으면 어떡해? 형은 바보야.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텐데"라고 말했다며 이런 일이 발생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이렇듯 형의 죽음이 큰 충격이 돼서 장기적인 복수를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친척들도 있었으나, 야마가미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약 8년 전[28]이었다. #
2019년 10월경에 생성된 야마가미 본인의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이 발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 문서의 '체포 후 경과' 항목을 참고할 것.
2.5. 2020년 ~ 사건 전
2020년 가을부터 교토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업체에서 1년 6개월간 파견사원으로 근무하며 지게차로 짐을 싣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2022년 3월부터 트럭 기사들과 트러블이 생기더니 외부 업체 기사들과도 마찰을 빚어 기피 대상이었다고 한다. 공장 책임자는 산케이신문에 "처음에는 성실했지만, 올해 들어 동료들과 격하게 싸운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중순부터 무단결근이 잦아지다가 결국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며 퇴직을 신청해 유급 휴가를 쓴 뒤 5월 15일에 퇴직했다고 보도했다. #당시의 직장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의바르고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학창 시절 동급생들과 자위대 시절의 동료들도 당시의 활동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고 존재감이 옅은 성격이었다며 비슷한 증언을 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부터 일 처리 관련으로 동료들에게 지적당하자 말싸움[29]을 하는 등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였다는 말도 있고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이라 단체 점심식사 때도 홀로 차 안에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시급은 1,800엔 정도로 벌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예의 바르고 물의를 일으키지 않던 인물이 범행 1년여 전부터 거칠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는 증언은 사회성의 저하와 함께 극단적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 성격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파견회사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말수가 적고 얌전한 인상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적고, 자가용 차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전했다.
이후 사건 현장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월세 4만엔(약 38만원)의 2.7평짜리 원룸에서 사건 직전까지 혼자서 기거해 왔으며, 주변 이웃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점에서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폭탄과 총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낸 건지 층간소음을 굉장히 심하게 냈다고 한다. 요미우리 신문은 "약 1달 전부터 야마가미의 집에서 톱질하는 소리, 금속성 소음이 들렸다"는 이웃의 증언을 보도했다.
2021년 1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나라현의 작은 차고를 빌려 총기와 폭탄을 제조했다고 한다.
2022년 봄부터 암살을 계획했으며, 사건 전날인 7일에는 아베 신조를 따라 오카야마현의 모 행사에도 참석했다. 행사가 열린 시민회관에는 짐 검사로 출입하지 못했다. 고베 연설회에서도 목격담이 나왔다. 6월 19일에는 음식점에서 주차 문제로 항의를 받자 물러갔으나 그날 밤부터 별점 테러를 했다고 한다.
사건 이전부터 계속 아베의 유세를 따라다니며 경호 상태를 확인한 것이 포착되었다.
또한 암살 하루 전인 7일에 나라현 나라시의 통일교 건물에 사제총기를 시험발사했다고 한다. 직접 제작한 총에는 6개의 탄환이 들어있다고 했는데 총탄 흔적도 정확히 6개로 일치했다.[30]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건물을 향해 총을 쐈는데 큰 소리에 당황한 나머지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
2022년 7월 17일자 복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야마가미는 자신이 몇 번 방문한 적 있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요네모토 가즈히로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또한, 2020년 하순에 해당 블로그에 남긴 댓글이 발굴되었다. '아직 부족해(まだ足りない)'라는 닉네임으로 작성한 것들이 야마가미의 댓글이다. 댓글의 내용이 주로 본문 내용에 반박하는 것들[31]이라서 요네모토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가 그의 사상에 동의했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 문서의 '체포 후 경과' 항목을 참조할 것.[32]
3.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자세한 내용은 아베 신조 피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3.1. 사건 내용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아베 신조는 제26회 일본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근처에서 가두연설을 시작했다. 10시에 이미 전철을 타고 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야마가미는 연설이 시작하자 박수를 치는 등 동조하는 척하다가 5~8m 거리에 접근해 사제 총기로 저격했다.[33] 첫 격발은 빗나갔으나 2번째 격발 중 2개의 탄환이 아베에게 치명상을 입혔고,[34] 결국 아베는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숨졌다.[35]전직 해상자위관이었다는 경력이 주목받았지만 야마가미의 자위관 퇴역은 17년 전인 2005년의 일로 2022년 시점에는 십수 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당시의 경력이 사제총기 제작과 사격 등에 영향을 얼마나 끼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자위대는 대한민국 국군 여군과 같이 퇴역하더라도 예비군 격인 예비자위관으로 편성되어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라 예비자위관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편성되지 않기 때문에 퇴역 이후로 군사훈련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 해군과 마찬가지로 함상근무를 하는 해상자위대의 해상자위관은 육상자위관에 비해 소총을 비롯한 개인화기의 훈련을 덜 받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격 훈련을 받은 경험이 세간의 인식보다는 많지 않았을 수 있다.
▲ 인파 속의 야마가미 |
▲ 아베의 뒤로 접근하는 야마가미[36] |
야마가미가 저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
저격 후 체포되는 야마가미 |
제압되는 야마가미의 모습 |
현행범으로 체포된 야마가미 |
바닥에 떨어진 사제 총기 |
야마가미의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있는 경찰관[37] |
사회적 파장도 큰 데다 전직 총리이자 현역 국회의원을 총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보니 최소 징역 15년 이상이 선고될 것이 확실해 보이며, 경우에 따라서 사형 선고도 가능해 보인다. 본래 나가야마 기준으로 인해 1명 살해는 명백한 가중사유가 없는 한 사형이 선고되지 않으나 야마가미는 인터넷으로 무기 제조 과정을 검색하고 복수의 사제 총기와 폭발물을 제조했으며 2022년 봄부터 저격을 계획했다. 사실상 테러에 가까운 범죄 유형이라 나가야마 기준의 또 다른 항목인 범행의 형태, 결과의 중대성, 사회적 영향을 미루어 볼 때 명백한 가중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사형이 확정될 가능성도 크다.[38] 2002년 이시이 코키 살인 사건의 범인과 2007년 이토 잇쵸 나가사키 시장 총격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 모두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기에 야마가미에도 최소 무기징역이 선고될 거라 보는 관측도 있다.[39]
범행을 저지른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그의 이름, 나이가 경찰에 의해 공개되었고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었다.
3.2. 체포 후 경과
- 사건 발생 당시 살인미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가# 같은 날 17시 3분경 아베 신조가 결국 사망하면서 죄목이 살인으로 바뀌었다. 진술이 오락가락[40]하고 증거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히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 야마가미는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돌던 아베 전 총리의 일정도 확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베 전 총리의 나라현 유세 일정은 사건 발생 전날인 7일 오후에 확정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지됐다. 야마가미는 해당 지역 후보자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무소 관계자가 야마가미를 의심스럽게 생각해 전화를 건 이유를 물었는데, 야마가미는 돌연 전화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
- 이후의 보도에 의하면 본인 말로는 원래 폭탄을 만들어 살해할 생각이었으나 자작 폭탄으로 실험한 결과 범행 성공이 불가능할 거라고 판단해 총으로 바꿨다고 한다. ## 7월 11일에는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진술#이 나왔는데, 표적만 제거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 없었고 폭탄을 던졌다간 관계 없는 사람까지 말려들 수 있기에 그러고 싶지 않아서 총을 만들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 위의 초기 진술에 따라 용의자의 집을 수색한 결과 매우 많은 자작 폭탄이 발견되어서 용의자의 집 인근 주민에게 긴급 피난 명령이 떨어졌고 범행에 쓰인 총기와 비슷한 방식과 재료로 만들어진 다연장 사제 총기도 여럿 발견되었다. ## 야마가미는 이런 무기를 제작하는 데 유튜브를 참고했다고 진술했다. #
- 이런 총기와 폭발물을 완성시키는 데는 지식 습득, 재료 수급, 가공 및 조립, 테스트 및 보완의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야마가미는 애초에 오래 전부터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를 계획하며 자작 총기와 폭탄을 꾸준하게 만들고 있던 중에 마침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나라현에 유세하러 온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추가 진술과 조사 이후 동기 및 증언에 대한 실제 증거가 명확해 '무차별 살상 테러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야마가미는 7월 7일에 오카야마현에서 이뤄진 행사에 아베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 또한 참석했다고 공술했으며, 그때는 실내에서 행한 연설이었기 때문에 범행을 일으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갑작스런 나라현 방문이 야마가미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은 맞지만, 아베가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 와서 즉흥적으로 타깃으로 삼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실제로 그는 통일교 교주가 최우선 살해 대상이었으나 접촉이 힘들자 차선으로 특히 선거 기간이라 보기가 쉬웠던 아베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
- 나라현 경찰은 형사부장 및 90명의 인원을 갖춘 수사본부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 야마가미는 체포 직후 "어쨌든 (아베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
나라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는 야마가미 |
- 7월 10일 이틀 간의 현경 조사를 받은 이후 나라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
- 마이니치 방송 및 다수 언론의 7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사건 전날 야마가미는 통일교 시설을 향해서 자작 무기의 시험 발사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실제로 나라현의 해당 시설의 벽에서 피탄 흔적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
- 아사히 신문의 7월 12일자 추가 보도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줄곧 문선명의 아내이자 현 가정연합 교주 한학자를 노리고 있었지만 실패하여 아베로 표적을 바꿨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사건을 일으키기 2~3년 전에 아이치현을 한학자가 방문한 일이 있어 그곳에 화염병을 가져갔다고 밝히면서 이전에도 암살 시도를 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41]
- 가정연합 교주 한학자가 참가했다고 하는 '2~3년 전의 교단 행사'에는 2019년 10월 5~7일에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재팬 서미트(JSLC) in 나고야', '4만인 참가 효정문화축복 페스티벌' 및 '재팬 서미트 in 나고야 & 4만인 대회 축승회'가 물망에 올랐다. 가정연합은 3일간의 행사 광경이 담긴 영상을 공식 유튜브에 공개[42]하기도 했다. 특히, 관련 기사에 따르면 10월 5일 이벤트에는 대한민국 전직 국회의원 및 미국 전현직 하원의원, 일본 국회의원을 포함한 각계 인사 750명이 모였다고 한다. 2022년 7월 14일, 현대 비즈니스는 관련 기사를 통해 '나고야에서 열린 4만인 이벤트'가 야마가미가 언급한 '3년 전의 행사'일 것으로 추측했다.
- 야마가미의 모친과 여동생은 잠적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7월 14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나라현 경찰이 그녀를 찾아내 청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모친은 오직 아들의 행동을 사죄할 뿐, 통일교에 관련해서는 한 줄의 비판은커녕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
- 아베를 습격하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비난이 집중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 이로써 아베 살해뿐만 아니라 사건의 파장까지 고려하고 범행을 저질렀음이 드러났다.
- 일본 테레비 아사히의 아침 방송 '굿! 모닝'은 2022년 7월 14일자 방영분에서 단독보도를 통해 사건 전날의 정황을 조금 더 자세히 전달했다. (영상) 야마가미는 원래 오카야마 지원연설 때 아베 신조를 암살하고자 했으나, 집회장 뒷문으로 출입해야 하고 경비가 삼엄하여 들어가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신칸센을 타고 돌아가던 중에 자민당 홈페이지를 통해 갑작스러운 지원연설 일정 변경[43]을 알게 되고 나라에서 살해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모친이 다녔던 나라 소재의 가정연합 교회 근처 CCTV에 시험 발사음이 기록되었음이 확인(영상)되었다.
- 야마가미의 숙부는 JNN 및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마가미는) 2005년 1월 자위대 재직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며 그 이유에 대해 '어머니의 헌금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형과 여동생에게 사망 보험금을 주려고 했다'는 얘기를 조카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피의자의 어머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옛 통일교에 가입하자마자 2천만 엔, 약 1억 9천만 원을 헌금하는 등 모두 1억 엔(한화로 9억 5천만 원)을 단체에 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는 이달 중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며, "죽기 전에 하려던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공격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
- 공영방송 NHK의 '뉴스워치 9' 2022년 7월 15일자 방송에는 정신과의 가타다 다마미(片田珠美)가 출연하여 "힘든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낸 사람은 자신에게 책임 없는 일로 고난을 겪었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것은 일그러진 특권의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야마가미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후 SNS 등지에서는 가타다가 한때 야마가미의 모친이 심취했던 실천윤리굉정회의 회원 또는 관련인물이었음이 드러나 부적절한 인터뷰였다는 말이 나왔다.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간부였다는 곽정환 씨가 2022년 7월 19일에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구 통일교회가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곽정환 씨는 문선명의 3남 문현진의 장인이며, 해당 기자회견 소식을 최초로 단독보도한 매체 UPI 통신이 현재 3남이 소유한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44]의 자회사임을 고려하면 전날 보도처럼 이 사건의 진정한 이유를 밝히러 나왔다기보다는 가정연합과 대립하는 종교단체의 입장을 밝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 7월 25일, 정신 감정을 위해 오사카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 감정은 11월 29일까지 4달 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치러진 9월 27일에 야마가미를 그린 영화 '레볼루션+1'이 개봉되었다. # 야마가미와 아베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되었다. 참고로 제작진들이 적군파 출신이다.
- 11월 7일, 나라현 경찰에서 야마가미를 총기도용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추송을 검토했음이 확인되었다. # 오는 29일까지 실시되는 정신 감정을 종료한 후에 다시 재조사하여 그것을 근거로 최종 판단할 방침이라고 한다.
- 11월 17일, 나라현지방검찰청에서 야마가미의 정신 감정을 2023년 2월 6일까지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 그러나 야마가미의 변호사들이 결정에 항소하여 결국 1월 10일까지로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
- 2023년 1월 8일, 야마가미가 검찰로 송치되었으며 구류기한인 13일까지 기소될 전망으로 알려졌다. #
- 1월 13일, 나라현지방검찰청에서 야마가미를 살인죄 및 총도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
- 구치소 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영치금도 많이 들어오는 등 수형자치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총리를 죽이다니 대단하다'는 체제 불만분자부터 '가능하다면 나의 형기와 바꿔 주고 싶다'는 반응까지 있을 정도다. #
- 2월 11일, 나라현 경찰에서 아베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고 나라현 검찰에서는 다음 주에도 야마가미를 추송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실상 검찰에게 모든 수사 권한을 위임한 셈이다.
- 2월 14일, 야마가미가 오사카 내의 경찰서에서 오사카 구치소로 다시 이송되었으나 2월 17일에 야마가미의 대리인이 이송에 대하여 취소 항고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 구치소에서 매일 신문과 잡지를 읽고 가정연합에 관한 기사도 훑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족과는 면회했지만,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통일교를 믿고 있는 걸 알고 면회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교에 대한 원한이 여전히 격렬한 걸로 보인다. #
3.2.1. 그 외
-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는 아베가 사망하는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 아베 사망 이후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3.2.2. 살해 예고 편지 발견
요미우리 신문 2022년 7월 17일자 보도에서는 야마가미가 오카야마시에서 아베 신조를 습격하고자 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소개되었다. 평소에 가정연합을 비판하던 저널리스트 요네모토 가즈히로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야마가미는 2020년 하순에 요네모토의 블로그에 방문해 구 통일교회의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그와 댓글로 설전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케이신문에서도 같은 날, 편지에 관련된 보도를 내놓았다. 핵심적인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편지가 자필이 아닌 인쇄한 것이며 오카야마 시내 우체국의 7월 소인이 찍혀 있지만 흐릿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도통신 2022년 7월 17일자 기사를 통해 전문이 공개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야마가미가 언론인 겸 블로거 요네모토에게 보낸 편지 |
요네모토 님, 오랜만입니다.
'아직 부족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너무나도 총이 필요하다'고 썼었는데, 그날 이후로 총을 입수하느라 기력도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그건 마치 가짜 구세주를 위해 인생을 다 내팽개친 통일교회 회원 같지요.
방향은 정반대지만, 참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저와 통일교회의 인연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가 입교한 후 억을 넘어가는 금전 낭비와 집안의 풍비박산, 파산...
그 과정을 겪으며 제 십대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간의 경험은 제 일생을 끝없이 일그러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 인생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
제게 그것은...
부모가 아이를, 가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기에 내뱉을 수 있는 거짓말.
막을 방법이 없는 확신에 찬 악행.
그렇기에 끝나지 않는 충돌, 그 앞에 놓인 파괴.
세계의 모든 돈과 여자를 자신의 당연한 소유물이라 여기며
그 현실화를 위해 수단도 결과도 가리지 않는 자칭 현인신.
저는 그런 인간, 그리고 그런 자를 현실에서 신으로 숭배하는 집단,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
그것들을 '인류의 수치'라고 썼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베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해도 진정한 적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통일교회의 찬동자이자 신봉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문씨 일족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제게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분열에는 일거에 때려잡는것이 어렵다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로써 한학자 본인을,
어렵다면 적어도 문씨의 혈족 중 하나를 죽여버릴 작정이었지만,
한학자와 그 딸이 죽으면 3남[45]과 7남[46]이 기뻐하거나
또는 통일교회가 재결집하게 될 것이며
어느 쪽도 제 목적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아베의 죽음이 불러올 정치적 의미, 결과...
그걸 생각할 여유가 제겐 이미 없습니다.
'아직 부족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너무나도 총이 필요하다'고 썼었는데, 그날 이후로 총을 입수하느라 기력도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그건 마치 가짜 구세주를 위해 인생을 다 내팽개친 통일교회 회원 같지요.
방향은 정반대지만, 참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저와 통일교회의 인연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가 입교한 후 억을 넘어가는 금전 낭비와 집안의 풍비박산, 파산...
그 과정을 겪으며 제 십대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간의 경험은 제 일생을 끝없이 일그러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 인생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
제게 그것은...
부모가 아이를, 가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기에 내뱉을 수 있는 거짓말.
막을 방법이 없는 확신에 찬 악행.
그렇기에 끝나지 않는 충돌, 그 앞에 놓인 파괴.
세계의 모든 돈과 여자를 자신의 당연한 소유물이라 여기며
그 현실화를 위해 수단도 결과도 가리지 않는 자칭 현인신.
저는 그런 인간, 그리고 그런 자를 현실에서 신으로 숭배하는 집단,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
그것들을 '인류의 수치'라고 썼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베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해도 진정한 적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통일교회의 찬동자이자 신봉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문씨 일족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제게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분열에는 일거에 때려잡는것이 어렵다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로써 한학자 본인을,
어렵다면 적어도 문씨의 혈족 중 하나를 죽여버릴 작정이었지만,
한학자와 그 딸이 죽으면 3남[45]과 7남[46]이 기뻐하거나
또는 통일교회가 재결집하게 될 것이며
어느 쪽도 제 목적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아베의 죽음이 불러올 정치적 의미, 결과...
그걸 생각할 여유가 제겐 이미 없습니다.
3.2.3. 트위터 계정 발견
- 2022년 7월 19일 이후 계정이 일시정지 처리되어 이 문단의 야마가미 트윗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야마가미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47] |
2022년 7월 17일, 야마가미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이 발견되었다. 가정연합 및 구 통일교회, 문선명 일족에 대한 원한이 담긴 내용의 트윗이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부친과 모친의 학력[48], 부친의 투신 자살[49], 외조부의 사망과 모친의 자금 횡령[50] 사정 등이 언급된 트윗 등 그동안 밝혀진 정황과 디테일이 일치하는 내용이 많이 있어 야마가미 본인의 트위터일 가능성을 높게 보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트위터 계정 생성일은 2019년 10월로 보이며, 생성 후 초기에는 개인사에 관한 트윗이 주를 이루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대부분 일치하며, 모친의 직업[51]이나 외조부에 관한 에피소드[52] 등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내용들이 많이 있다. 2022년 6월 30일에 작성한 트윗이 마지막이며, 개인사나 구 통일교회 및 가정연합에 대한 원한 이외에는 정치/사회에 대한 견해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통일교회에 대한 원한이나 그 유래 탓인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고, 아예 한국을 적국이라 칭하며 북한과 동일시하는 트윗도 있다.[53][54] 2021년 들어서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을 보이거나 반일 성향 후보 이재명의 당선으로 한일관계의 황금시대를 기대한다는 등 비아냥대기도 했다.[55] 또한, 자국에 대한 비판들도 있고, 여성에 대한 불만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등도 있다.
계정을 생성한 2019년에도 트위터를 통해 통일교 간부를 살해하겠다고 시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
한편, 이 사건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아베 신조 살해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가인데 기본적으로 야마가미의 트위터에서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옳았다면 잘 평가해야 한다. 아베의 정치적 수법을 부정하려고 (바람직한) 결과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등의 중립적이거나 동조하는 견해도 자주 보였기에 일본 SNS나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후술할 각성 전의 야마가미는 중도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며, '정치적 이유의 살해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2022년 7월 17일 저녁, 전술한 편지와 더불어 야마가미의 트위터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내보냈다.
'넷 우익이라며 너희들이 비웃는 이들에 내가 포함된 것을 후회하는 게 좋아' |
미우라 루리의 트윗에 반응하는 야마가미 |
미우라 루리는 2022년 7월 17일에 야마가미의 편지 등에 대해 '인간이란 슬픈 존재군요(人間とはかなしいものですね)'라며 평소처럼 비꼬는 투의 트윗을 남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야마가미를 각성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사진 속에 나온 단체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美しい日本の憲法をつくる国民の会)'으로 일본회의 계열 단체라는 인식이 있다. 한편, 일본의 종교학자 쓰카다 호타카는 본인의 저서 '철저분석 일본의 우경화'[58]에서 '통일교회 상층부에는 일본회의 회원이 많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베 신조 집안의 내력 등을 고려했을 때 야마가미가 그를 최종 타깃으로 삼은 논리가 과도하게 비약적이지는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2.4. 재판선고
3.2.4.1. 1심
<colbgcolor=#000><colcolor=#fff> 일시 | 2025년 |
관할지소 | 나라현 나라시 나라지방재판소 |
피고인 | 야마가미 데쓰야 |
혐의 | 살인죄, 총도법 위반 |
선고 |
3.2.4.2. 항소심
3.2.4.3. 상고심
3.3. 범행 동기
야마가미는 자신이 원한을 가지고 있던 통일교에 아베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단 참조.
3.3.1.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2021년 가정연합 행사 Rally of Hope에 보내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기조연설 영상[59] |
1998년 1월 가정연합 집회 장면[60] |
3.3.1.1. '특정 종교'에서 '가정연합'으로
야마가미는 체포 후 심문에서 "아베 총리에 대해 불만을 가져 죽이려 했었다", "나의 모친이 특정 종교에 빠져 많은 돈을 헌금하여 가정이 파탄나고 파산했다"고 진술했다. # 특히, 7월 9일자 아사히 신문은 "야마가미의 어머니의 종교 활동으로 집안이 엉망이 됐다. 이 특정 종교 단체와 아베가 관계되어 있다고 믿고 그를 노렸다"는 피의자 진술을 보도했다. # 또한, 야마가미는 해당 종교 단체의 분파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에 어머니의 종교 단체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수사 관계자가 밝혔다. # 문예춘추에 따르면 야마가미 본인도 어머니가 속한 단체의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한다.친척들의 말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건설회사를 운영했을 때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도움을 구하기도 했으며, 종교단체에 대한 원한이 컸다고 한다.
더불어, 조사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르게 한 사상적 배경은 따로 없는 것 같다"고 한다. #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특정 종교 단체에 원한이 있었고, 아베가 그 단체에 가까워서 노렸다. 아베 전 총리의 정치 신조에 원한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은 일관적으로 '정치적 의도가 없으며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한 듯하다. #
7월 9일, 코단샤가 발행하는 현대 비즈니스는 단독 보도에서 야마가미 데쓰야가 진술한 종교 단체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일명 통일교임을 최초로 명시했다. 이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아베를 가정연합과 가깝다고 여기고 범행을 저질렀고, 야마가미를 조사한 수사관들이 그의 어머니가 열렬한 가정연합 신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
마이니치 신문의 7월 11일자 추가 보도에서는 상기 진술이 더 명확화되었는데, 이 기사에 의하면 야마가미는 "집안을 망친 단체를 일본에 불러들인 것이 기시 노부스케며 그 손자인 아베를 노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 기시 노부스케와 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은 야마가미의 주장대로 접점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61]
다만, 현대 비즈니스는 황색언론에 가까운지라 처음에는 이 보도를 신뢰하기 어려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며 가정연합 측도 고위 관계자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야마가미 데쓰야 씨의 모친은 가정연합인이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언론이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나 사실 확인 없이 해당 사건을 가정연합과 연관짓는 보도를 한 것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기에 해당 종교로 단정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인의 진술에 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야마가미의 집안을 망친 종교가 가정연합임이 점점 더 유력해졌다. 마이니치 신문에서 야마가미는 "이 단체를 일본에 확산시킨 사람이 아베 총리다"#라며,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이 단체는 일본이 아니라 해외에서 생긴 종교로 인터넷에는 이 단체 대표들이 설립한 민간활동단체 행사에 보낸 아베의 영상 메시지가 올라와 있다. # 이 보도 이후, 계속 매체에서 간접적으로 서술되어 왔던 특정 종교의 정체는 가정연합으로 잠정 확정되었다.
이후 가정연합 측에서는 "야마가미의 모친이 과거 가정연합 신자였으며 지금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고 확인해 주었으며, 후술할 기자회견에서 일본 가정연합 회장 다나카 도미히로가 직접 나서서 상세한 사정을 밝혀 야마가미와 관련된 특정 종교 단체가 자신들임을 확정지었다. 日통일교 “아베는 신자 아냐… 총격범 모친 거액 헌금은 본인 의사”
3.3.1.2. 기자회견 및 발언 신뢰성 논란
2022년 7월 11일에 진행된 가정연합 기자회견(영상) #에 의하면 "야마가미 본인이 구 통일교회(가정연합) 신자였던 적은 없으나 10대 후반에 모친을 따라서 교육에 참가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 관련 기록 일체가 없고 입교할 정도로 신앙을 심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기시 노부스케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창시자 문선명의 평화운동에 관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가정연합과는 깊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또한, 문선명의 막내아들 문형진이 창설한 생츄어리에 대해서는 "분파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전혀 별개의 종교다. 야마가미가 그곳에 속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또한, 야마가미의 모친에 대해서는 "1998년경[62] 입교한 것으로 생각한다. 파산은 2002년경이 아닐까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앞으로 경찰의 수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모친은 2009년경부터 2017년경까지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으나 2~3년 전부터 다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그 빈도는 최근 6개월간은 매월 1회 정도로 뜸하다" 정도로 정리했다. # 그리고 고액헌금에 대해서는 "1990년대 말의 이야기[63][64]일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는 종교 내 여러 행사에서 헌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며 일축했다.
기토 마사키 변호사[65]는 테레비 아사히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모닝쇼' 2022년 7월 12일자 방송에 출연해 본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는 주장을 펼쳤다. 기토 변호사에 따르면 "헌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정연합 내부적으로 HG[66]라는 은어를 사용하는데, 부동산 등 각종 자산을 팔아서 헌금한 후에 수중에 돈이 남지 않아 파산하게 되면 어차피 파산했으니 HG, 즉 빚을 져서라도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그걸 교단의 간부가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영상)#
기토 마사키 변호사 외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 소속 변호사들이 2022년 7월 12일 오후 5시경 공식 회견을 열어 전날 있었던 가정연합의 기자회견을 비판했다. ABEMA와 니코니코 동화를 통해 중계되었으며, 유튜브의 니코니코 뉴스 공식 채널에서도 동시 스트리밍되었다. (영상)## 이들은 회견 내내 가정연합을 옛 이름인 '통일교회'로 불렀으며, "가정연합이 여전히 헌금 요구 및 강매 행위를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또한, 일본 자민당과 가정연합과의 유착 관계 및 기시 노부스케와 문선명의 친교 관계를 지적하며, 가정연합의 기자회견에 거짓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본 문서에도 삽입된 1998년 1월 구 통일교 집회 장면을 상영했으며, 1세트 3,000만 엔의 불합리한 고가에 강매했다는 문선명의 성본(聖本) 역시 공개했다.
또한, 통일교 2세였던 여성이 가정연합과 관련한 본인의 사정을 고백했다. 이 여성은 먼저 구 통일교회에 입교한 모친의 강요에 따른 입교, 21세의 36만 쌍 합동결혼식에서 강제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화, 남편의 가정폭력 및 진짜 결혼 목적, 한국 측의 제안으로 재축복을 통해 한국에 거주한 이야기와 한국과 일본의 결혼 비용 차이, 새 남편의 낭비벽 등으로 인한 파산 등 기구한 사연을 밝혔다. 자세한 사정은 한 일본인 유튜버가 한국어로 해설한 방송을 참고할 것.
닛폰 테레비의 'news every.' 2022년 7월 12일자 방송에서는 본 변호사 반박 회견과 관련 사정을 종합해서 해설하기도 했다. (영상)
ABEMA의 토론 방송 'ABEMA 프라임'에서는 2022년 7월 13일자 방송(영상)에 통일교 2세였던 남성을 초대하여 가정연합 기자회견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이 남성은 "자민당과 구 통일교 및 현재의 가정연합에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가정연합과 UPF(천주평화연합)는 같은 조직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은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으로 생각한다. 직설적으로 돈을 내놓으라고는 하지 않더라도, '헌금을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협박한다"고 말했다.
문춘 온라인은 2022년 7월 14일자 기사에서 야마가미의 큰아버지를 인터뷰하여 야마가미의 모친이 구 통일교회에 입교한 시기가 실은 1994년으로, 가정연합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1998년과 상이함을 지적했다. 또한, 구 통일교회 신자 2세였다는 인터뷰어를 통해 "교회는 기자회견에서 기부는 개인의 자유라고 했지만, '천국에 가려면 필요하다'는 식으로 나오기에 의무와 다름이 없다. 신자 대부분은 수중에 돈이 거의 남지 않을 때까지 교단에 헌금하고, 남은 돈으로 겨우 생활한다"며, "조부는 풍족한 편이었지만, 부모는 헌금으로 돈을 다 써버려서 현재 생활은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큰아버지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입교 시기를 1991년으로 번복했다.
테레비 아사히의 주말 방송 '선데이 스테이션' 2022년 7월 17일자 방송(영상)에는 구 통일교회 시절부터 몇 년 전까지 일본 가정연합 소속 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했다는 한국인 남성이 출연했다.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한 채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가정연합은 기자회견에서 헌금에 대한 목표액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대체로 연간 1억 엔 이상의 목표액이 있으며, 규모가 큰 곳은 10억 엔 정도도 하는 등 대체로 달성하기 빠듯한 액수를 달성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신자 개인에 맞춰 세부적인 헌금 계획을 구상한다"며, "자신이 있던 교회는 자민당의 모 의원과 관련이 있었고 지원하기도 했다. 조직 전반적으로 자민당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의 헌금 방식 등등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공개된 피해자 증언 등과 대동소이하다.
사이비 종교 전문 웹진 '대략 일간 컬트 신문'은 2022년 7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가정연합 측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냈던 다나카 도미히로 회장의 7월 17일 설교 내용을 간추려서 보도했다. 기사에 의하면 이날 다나카 회장은 기자회견에 나섰던 것은 '하늘의 목소리(天の声)'에 따라서라고 주장하며, 야마가미는 회원으로 등록하지 않았으나 2~3회 정도 교육에 참가한 것으로 들었다며 기자회견 당일에 나오지 않은 사실들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가장 힘든 것은 어머님'이라며[67] 교단에 잘못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3.3.1.3. 일본 정계와의 유착
자세한 내용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일본 정계와의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3.3.2. 야마가미 집안의 상황
야마가미의 큰아버지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이 자살과 사고, 병마로 인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1984년에 동생(야마가미의 아버지)이 자살하고, 자살한 야마가미의 형은 소아암이 뇌에 전이돼 항암제 투여로 인해 오른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으며 야마가미 어머니의 동생도 1976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야마가미의 할머니도 1982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야마가미 모친이 1991년경[A] 통일교회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야마가미는 1984년에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큰아버지가 지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3.3.2.1. 모친의 종교 심취
일본 테레비 아사히의 아침 방송 '굿! 모닝'은 2022년 7월 14일자 방영분(영상) 단독보도를 통해 야마가미 모친의 주변인 인터뷰를 내보냈다. 문춘 온라인 역시 같은 날 심층기사를 공개했다.이를 통해 야마가미 모친의 종교 심취 사정이 기존에 다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조금 더 자세히 밝혀졌다.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야마가미 일가는 야마가미의 부친 생전에 히가시오사카시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일가와 친분이 있었던 한 여성은 "남편은 술을 마시면 말이 험해졌으며, 부인은 그걸 계속 참고만 있었다. 남편은 부인에게 마구 화를 냈는데, 1주일에 1번꼴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야마가미와 그의 형이 미취학 아동이었던 이 즈음에 모친은 구 통일교가 아닌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데일리 신초의 2022년 7월 13일 보도와 문춘 온라인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 단체는 실천윤리굉정회(実践倫理宏正会)로 보인다. 문춘 온라인에서는 '이른 아침에 집회를 하는 단체'로 표현했으며, 실천윤리굉정회는 실제로 '아사오키카이(朝起会)'라는 이름의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 활동이 도가 지나쳐 아이들이 엄마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으며, 이 때문에 남편과의 말싸움이 잦았다. 심지어 아침에 집회에 가는 야마가미의 모친을 남편이 뒤쫓다가 교통사고가 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남편이 노이로제를 겪게 되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까지 발전했다.
이후, 남편과 사별한 뒤에 3남매를 홀로 키우던 야마가미의 모친은 1991년경[A] 구 통일교회(현 가정연합)에 입교하게 된다. 당시 상황에 대해 친척은 "(야마가미의 모친은) 입교한 후에 힘든 기색은 사라졌지만, 생기가 없이 멍한 느낌이었다"며, 그녀가 종교에 빠져들고 헌금에 박차가 가해진 것은 그 이후라고 했다. 또한 "원래 야마가미의 외조부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임원으로서 재정 관리를 담당하던 그녀는, 외조부 사후에 집과 회사를 매각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야마가미 모친의 대학 동기는 졸업 후 수십 년만에 재회했을 때 그녀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며, "남편과의 관계 탓에 힘들었던 모양이었으나, 재회 당시에는 남편이 이미 사망한 뒤였다. 종교의 힘 덕분에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 훌륭한 종교라며, 심취한 듯 굴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당시에 해당 종교는 집단결혼이나 헌금 문제로 시끄러웠고, 비판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거길 관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아들이 큰 사건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나 통일교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
FLASH 2022년 7월 15일자 보도에서는 야마가미와 3회 정도 술자리를 가졌던 지인과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여태껏 본인 이야기를 거의 안 하던 사람이 '가족이 통일교회에 엮여 있다. 영감상법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통일교회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가족과 함께일 텐데'라고 했다"고 주장하며, "'통일교회와 아베 신조의 깊은 관계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못 한다'며,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분노를 실어서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모친은 나라시내 맨션의 관리인으로 성실히 근무 중이었으며 맨션 거주자에게 종교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백부의 말에 따르면 이미 종교에 심취해 일반인과 말이 통하지 않아 검찰 조사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통일교회 건에 대해선 면목이 없다면서도 아들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다한 것은 덤. #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본인이 통일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3.3.2.2. 종교에 의한 금전적 피해
산케이신문 보도와 데일리 신초 보도, 요미우리신문 보도, 문춘 온라인 심층기사를 종합해 보면 구 통일교에 의한 야마가미 집안의 금전적 피해는 다음과 같다.야마가미의 모친은 1991년[A] 구 통일교 입교 후로 거액의 헌금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1998년에 야마가미의 외조부가 경영하던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에 취임하는데, 1996년까지 흑자가 이어지던 회사가 과도한 헌금 때문에 1997년에는 4,000만 엔을 초과하는 부채를 지게 되어 은행에서 융자조차 못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모친은 헌금하라는 지시가 있을 때마다 헌금을 하여 정확한 헌금 액수를 모른다고 하며 백부는 모친이 입단 직후 2천만엔, 얼마 후 3천만엔, 3년 후 1천만엔을 헌금했다고 말한다.
또한, 야마가미의 모친은 회사 공금을 사용해서까지 구 통일교에 헌납했으며, 1999년에는 야마가미의 외조부로부터 상속한 토지 및 야마가미 3남매와 함께 지내던 나라시 시내의 단독주택을 매각하였다. 2002년에는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파산하고 만다. 이외에 야마가미 큰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야마가미의 모친은 친척들의 토지도 무단으로 매각해서까지 헌금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부동산을 매각한 금액이 총 1억 엔[7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여기에는 야마가미 부친의 사망으로 수령한 생명보험금 5천만 엔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야마가미의 큰아버지가 야마가미 3남매의 부탁으로 2005년에서 2014년까지 10년에 걸쳐 총액 5천만 엔을 환수[72]하는 데 성공하나, 야마가미의 모친은 이 환수금을 다시 구 통일교에 헌납하고 말았다고 한다.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의 기토 마사키 변호사는 미야네 세이지가 진행하는 '정보 라이브 미야네야' 2022년 7월 14일 방송에 출연하여 "토지 등 부동산만으로 1억 엔 상당의 피해이며, 구 통일교회가 영감상법[73]으로 일반인을 끌어들인 후 신자화하여 부동산을 취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기한 1억 엔 이외의 금전적인 피해도 +3~4억 정도로 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용의자나 그 가족과 20년 이상에 걸쳐 관계를 가져온 구 통일교회의 현지 간부였던 남성이 NHK의 취재에 따라 사건의 약 1년 전에 용의자로부터 교회에 대한 원한 등이 쓰여진 메일이 보내져 왔다고 증언했다. #
3.3.2.3. 종교 2세 문제
특히, 일본 시사주간지 FLASH에서는 공안관계자의 입을 빌려 "부모가 믿는 종교를 강제당해 힘들게 살아가는 '종교 2세 문제' 당사자로서 칼끝을 아베 전 수상에게 겨누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FLASH는 '야마가미 용의자의 사건은 종교 2세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심층 기사를 통해 '야마가미의 진술만으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종교 2세 문제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사이비 종교 전문 언론인 후지쿠라 요시로의 입을 빌려 '종교 2세 문제와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기반 방송인 ABEMA에서는 시사 등을 다루는 낮 방송 ABEMA히루즈(영상) 2022년 7월 11일자 방송분에서 종교 2세였던 당사자와 연락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종교 2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으며, 라이브도어 뉴스를 통해 기사화되었다. #
야마가미도 종교 2세는 괴롭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
2022년 7월 11일에는 네이트판에 통일교 2세를 자처하는 사람이 '통일교, 드디어 터질 게 터졌네'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을 올렸다. (원글)(아카이브)
문춘 온라인은 2022년 7월 14일자 심층기사에서 구 통일교회 2세였던 인터뷰이를 취재했다. 그는 "종교 2세에게는 행복추구권이 없다. 자유연애가 금지되기에, 좋아하는 상대가 있어도 교인이 아니면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만약 마음대로 결혼한다면 부모와는 연을 끊는 셈이 된다. 교회는 치외법권이기에 2세들의 개인적 노력으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다. 사회가 종교 2세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닛폰 테레비의 '뉴스 제로' 2022년 7월 16일 방송에는 구 통일교회 시절부터 신자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소위 '축복 2세'에 해당하는 20대 여성이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해 "어렸을 때부터 아무 의심 없이 통일교회에 나갔다. 란도셀을 물려받아 써야 하거나 과자 구매가 금지되는 등 다른 가정에 비해 경제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헌금 사실을 알았다. 집안에 항아리가 있거나 비싼 인감도장이 있었다. 부모님께는 교단으로부터 월 1회 헌금 수집 임무가 할당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 급여를 부모에게 넘겨야 했으며, 그 사유는 역시나 헌금이었다. 한국에서 열린 '합동결혼식 준비 및 순결 교육을 위한 세미나'에 참가해야 했다"며, 당시 교주 문선명의 액자가 벽에 걸린 교실 사진 등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부모가 치매에 걸린 조모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 '가정을 소중히 하라'면서도 헌금을 강요하는 교단에 의문을 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탈퇴했다"고 증언했고 인터뷰 시점에도 모친으로부터 '아이를 많이 낳으면 표창을 받는다'며 재입교 권유를 받고 있었지만 실은 그저 신자를 늘리는 것이 목적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야마가미에 대해서는 "범행은 절대 긍정할 수 없지만, 자신과 닮은 경우라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서 슬프고 복잡한 기분이다. 타인의 인생을 착취하는 교단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닛폰 테레비의 '뉴스 제로' 2022년 7월 18일 방송에는 '축복 2세'에 해당하는 여성이 나와 "어머니는 20대에 입교해서 월 3만 엔으로 생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헌금했다. 헌금 총액은 수천만 엔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초등학생 때는 문선명의 피가 들어 있다는 레드와인을 교인들이 마셨는데 나도 마셨다. 점점 위화감을 느껴서 중학교 때부터 안 가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교단이 정해준 상대와 결혼했다며 아마도 그런 삶을 보내는 2세 신자가 더 많을 거라고 했다. 또한, "2세 신자의 고민은 주변에 상담할 곳이 없다는 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일본 정치권을 강타한 통일교 게이트로 이어지면서 종교 2세 문제가 급격하게 퍼져나가 12월 10일에 통일교 피해자 구제 법안이 통과되었다.
4. 반응
4.1. 대한민국
한국 비하 논란과 역사왜곡, 독도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다방면으로 한국인들을 자극하여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아베 전 총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는 대한민국 내에서 아베 신조를 사살한 야마가미 데쓰야에 대한 평가는 꽤나 호의적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빗대 "데쓰야 의사/J-안중근/Death야/나라 의거/탕탕절" 등으로 통쾌하게 떠받고 있다.[74]특히 상술한 야마가미의 편지가 공개된 후에는 단순 정신이상자의 범죄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사유가 있는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통일교로 인해 벌어질 불특정 다수의 자국민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호의를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야마가미가 한국의 통일교로 인해 한국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는게 드러났음에도 그의 심정이 이해된다며 범행 동기에 대한 동정심을 드러내는 한국인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대순진리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사랑제일교회, JMS 등의 해악으로 인해 사이비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며 통일교 또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이비 종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방영되는 등 지속적으로 사이비 종교들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한국 또한 사이비 종교를 극도로 혐오하는 만큼 사이비 종교로 인한 증오심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물론 테러 자체에 대해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좋지 않게 보는 경향 때문에 추모 정도만 해 주는 것으로 그치는 의견도 있다.
4.2. 중국
반일 성향이 한국 이상으로 심한 중국에서는 한국 이상으로 완전히 핫한 아이돌이 되어 버렸다. 아베 사망 기념으로 점포 할인 행사를 열거나, 클럽에서 DJ가 하루종일 아베의 죽음을 축하하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아예 야마가미 데쓰야의 피규어를 발매하는 등 상업적 마케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를 모티브로 한 코스튬과 팬아트, 굿즈까지 제작되었다. 참고 링크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아베 신조를 사살한 야마가미의 정치적 성향은 극우에 가까운 편으로 한국과 중국을 매우 싫어했다.[75]
4.3. 일본
4.3.1. 가정연합 신도의 여론 조작 가능성
젊은 디지털 통일교 혁신리더 모임을 표방하는 피스 전망대는 공식 블로그의 2022년 7월 31일자 게시글을 통해, 통일교와 관련한 일본 내 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효정 사이버팀'을 창설했음을 알렸다.[76]한국 가정연합 언론 대응팀 '효정 사이버팀' 창설 소식 |
이들의 인원 구성은 알 수 없으나, 한국에 일본인 신도가 다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들을 이용한 여론조작이 행해졌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7월 30일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어로 일상을 올리던 한 재한 일본인 신도는 2022년 8월 1일에 '아베 전 총리 암살의 의문(安倍元総理暗殺の謎)'이라는 제목으로 간바레닛폰!전국행동위원회(頑張れ日本!全国行動委員会)[77] 등 극우인사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링크했는데, 전날 '효정 사이버팀'이 발족한 것을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운 블로그 노선 변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링크된 유튜브의 내용은 '야마가미의 행동에는 배후가 있다'는 등 제3자의 정치적 관여를 의심하는 음모론적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주로 트위터 등 신분을 알 수 없는 익명 투고자의 의견이 주류인 트위터나 커뮤니티 댓글 등에 가정연합 신자들이 활동을 개시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여론을 파악할 때는 가령 트위터의 경우 해당 투고자의 과거 트윗을 살펴보는 등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4.3.2. 일본 내 각종 반응
일본에서는 범행 당시에는 경악하면서 범죄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었지만, 나중에 밝혀진 그의 기구한 일생과 아베 이외에는 피해자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범행 과정이 재조명받으면서 급격하게 동정론이 확산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야마가미의 살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통일교, 그리고 그 통일교를 일본에 끌어들여 유착 관계를 맺은 일본 정치권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식으로 여론이 흘러갔다. 야마가미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된 것이다.또한 아베 피살 사건의 동정표로 인해 자민당의 지지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상이 공개되면서 오히려 같은 정당의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율이 감소하였고, 기시다 총리는 결국 통일교와 유착 의혹이 있는 국무대신 및 당직자들을 대거 물갈이해서 개각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78]
결국 통일교와의 연을 완전히 끊어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일본 정부가 2023년 10월 중순에 일본 통일교 종교법인의 해산명령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예 통일교 자체가 금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제 혜택을 받는 종교법인이 해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통일교 일본 법인의 해산 명령을 내리고 통일교와 유착 의혹이 있는 정치인들을 물갈이했지만 자민당과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점점 하락하여 17%까지 떨어졌다. 그 반대급부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이 14%, 제2야당 일본유신회의 지지율이 13%로 크게 상승하며 자민당의 턱 밑까지 쫓아오게 되었다.
4.3.2.1. 동정 여론
일각에서는 야마가미가 가족을 위해 보험금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깊은 가족애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자위대 퇴역 이후에도 다년간에 걸쳐 다양한 고난도의 자격증을 취득하고[79]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 보려고 최대한 노력한 인물이었던 점, 살상력이 높아 아베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폭발물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무고한 피해자를 막기 위하여 실패 확률이 높은 범행수단을 택했다는 점 등이 높게 평가받았고[80] 그의 품행이나 인생사를 보면 반사회적 악인은커녕 모범시민에 가깝기에 앞으로 갱생할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범인을 동정하고 고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며, 야마가미 집안이 풍비박산난 데는 피해자인 아베 일가와 자민당의 책임이 명백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야마가미를 의사나 열사 등으로 부르는 사람도 나타났다. 단순히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반감 및 고인드립성에 가까운 한국, 중국이 아니라 일본 안에서 야마가미를 의사나 열사로 호칭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범인의 인생역정과 범행동기가 갖는 호소력과 파장이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마가미가 인명을 무차별적으로 희생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테러리스트였거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정신병적, 반사회적 인물이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에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야마가미도 피해자라며 그의 감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고#[81] 서명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심지어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사카구치소에 있는 야마가미에게 온 영치금이 100만엔(1천만 원)이 넘고 과자 등의 식료품, 옷, 상품권 등이 도착할 정도였다. 팬레터까지 적잖이 오고 있다고 하는데 야마가미의 독방에는 이런 물품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서 친척 집으로까지 보내는 상황까지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같은 구치소 안의 재소자들도 '혼자서 국가의 최고권력자를 해치운 사람'이라며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을 가져 야마가미를 영웅시하는 현상도 벌어졌다.[82] 재소자 중 '내가 대신 형기를 살아 주고 싶다'고 말한 사람까지 나타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 한편 야마가미는 오사카구치소에서 생활하며 대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의 친척들에게 영어사전, 영어 자격 교재 등을 받기도 했으며 특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치소에서 여동생을 접견했을 때는 '사회 복귀가 가능해지면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로 통일교와 자민당의 너무나도 깊었던 유착 관계가 밝혀지고 그로 인한 피해와 철저하게 파묻혀져 있었던 문제들이 더 많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진심으로 그를 영웅화하려는 움직임[83]까지 일어났다. 보통 이런 암살 사건이 벌어지면 암살당한 피해자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로 아베의 국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었으며 기시다 내각 역시 지지율이 폭락했다. #[84]
이외에도 통일교-자민당 정권의 유착관계 폭로 속에서 야마가미를 정신병자인 것처럼 교묘히 왜곡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착실히 빌드업한 언론과 공권력의 태도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야마가미가 "통일교와 자민당이 유착관계가 있다고 '망상하고(思い込んで)'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85]했다면서 단어를 하나 지어넣어 보도한 NHK나 마이니치 계열의 언론들이 그 예시.[86] 당연히 이러한 시도들은 SNS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통하지 않았고, 역으로 들키면서 얼마나 통일교와의 유착이 심한지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연좌제와 이지메 문제 같은 사회적 압박이 극심한 일본 사회에서는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용의자의 가족 또한 신상털이에 온갖 사적제재를 당하기 일쑤지만, 야마가미의 가족은 백부부터 성실한 조사 태도를 보이고 인터뷰에 참여하는 등, 야마가미의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친인척들이 냉대는커녕 동정을 받는 현상이 일어났다. 참고로 부친, 형, 그리고 조부모는 사건 전에 사망했다. #
4.3.2.2. 장난성 반응
워게이밍 일본 지사에서는 사건 당일 "일본에도 의사가 아직 있네! 감동했다!"는 트윗을 남긴 사원이 해고되고 공식 명의로 사과문이 올라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토메 사이트에는 언론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거나 자유가 있어도 책임은 져야 한다는 등의 댓글들도 있는 반면, 통일교가 조직적으로 민원을 넣어 다구리를 친 것이냐느니, 언론의 자유는 어디로 갔냐느니 하면서 해당 사원을 옹호하는 댓글도 많았다. #리츠메이칸대학에서는 사망 이후 "아베 신조 사살 궐기 만세! 야마가미 의사를 현창하자!(야마가미 의사의 공로를 알리자)", "부패정치에의 혁명적 테로"[87], "7.8 단독궐기" 등의 클래식한 극좌파적 어휘가 적힌 삐라가 발견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 제작자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진지한 정권 규탄이라기보다는 반쯤 패드립성 장난으로 여겨졌다.
5ch 내부에서의 반응 |
5ch는 그 막장 성향답게 레이와의 안중근, 영웅이 태어났나? 등 막장스런 반응을 올렸다. 물론 일부는 전혀 생각치 못한 총기살인이라고 놀라는 반응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베 신조에 대한 조롱이였다.
한편 성씨가 한자로 산상(山上)이라는 것에 착안, 시리아 암살단의 수장인 산상노인(山上老人) 라시드 앗 딘 시난의 정통 후계자 산상철야라거나, 나아가 게임 어새신 크리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템플 기사단원인 아베 신조를 척결한 암살단 일본지부장이라는 드립도 있다.
4.3.2.3. 신토 신앙에 따른 화제 및 성지화
<rowcolor=#fff> 야마가미 하치만 신사 | 전9년의역 그림 |
아베 신조 피살 사건 현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야마가미 하치만 신사'가 갑작스럽게 화제가 되어 성지로 추앙받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 신사에는 헤이안 시대 무츠 지방의 호족 아베씨가 조정에 대한 부역, 납세를 게을리하다 토벌당한 사건인 '전9년의역'을 묘사한 그림이 봉납되어 있다. 또한, 신사의 이름과 범인의 성은 발음뿐만 아니라 한자 표기까지 같으며 아베 신조는 당시 토벌당한 "아베"씨의 우두머리 아베 요리토키(요리요시)의 먼 후손을 칭하고 있었다.[88] 게다가 신사에서 숭배하는 신인 '하치만'은 '유미야하치만(弓矢八幡; 활과 화살의 하치만)'이라고도 불리며 널리 숭배되는 궁술과 무예의 신인데, 야마가미는 해상자위대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
종합하자면, 그렇지 않아도 아베와 자민당을 해외 종교와 결탁한 매국적인 세력으로 간주하고 암살범 야마가미를 영웅시하는 시각이 팽배해진 판#에 역사적인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마치 외적과 결탁해 조정을 업신여긴 역적 아베에게 일본의 수호신이 내리신 영웅 야마가미가 천벌을 내린 듯한 기이한 그림이 조성된 것. 실제로 하치만 신앙과 야마가미의 명사수급 사격실력, 아베의 통일교 유착 및 매국 행위와 신사의 신성함을 연계지어서 해석하는 네티즌들이 많고, 심지어 전통적 존황 우익 사관에서 아베가 외적과 내통해 국가를 좀먹고 천황을 업신여겼으며,[89] 야마가미의 범행은 거기에 대한 정당한 민족적 응징이라고 보는 시각을 갖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물론 모두가 진지한 것은 아니며 인터넷 밈처럼 소모되는 측면도 있다.
각종 코멘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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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나스노 요이치 아님? '하치만 대보살에게 바치옵니다' 뭐 이런거임?"
"(범인에 대한)영웅시가 문제라고 그러는데, 근대 법치국가 시점에서 보면 확실히 죄인이지만 토벌된(討たれた) 쪽의 입장을 보면 그 녀석은 국적이니, 어떤 의미에선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카부라야[90]가 적중했을 뿐인데. 정당한 평가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한 거야."
"사이비 종교를 이용하며 천황을 소홀히 한 아베"
"하치만 신사는 천황을 모시는 곳이니 이건 칙령이나 다름없다"||
아베를 증오하는 리버럴이나 혁신계는 물론이고, 우익이 우익을 암살했기 때문에 성립하는 이런 기묘한 논리들 때문에 우경화의 주범인 아베가 죽었음에도 살해범에게 우익들까지도 매력을 느끼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아노미 상태에 빠져 버린 아베를 지지하던 넷 우익 계열 네티즌들은 이런 기사들에 과장된 가십거리로 선동을 한다면서 분노하는 댓글을 달았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유언비어
- 세계평화통일성전(일명 생츄어리) 연관설: 사건 초기 언론 보도에서 야마가미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분파에 소속되었다는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생츄어리 소속으로 짐작하는 의견이 있었다. 야마가미가 생츄어리의 2022년 6월 29일 규슈 집회에 참가했다며 사진과 함께 소문을 확산시킨 장본인 중 하나가 전직 경시청통역조사관을 자칭하는 반도 다다노부였는데, 2022년 7월 20일 생츄어리의 공식 홈페이지에 반도가 보냈다고 하는 사죄문이 공개되었다. 반도는 이 사죄문에서 본인이 야마가미로 지목한 해당 신자로부터 항의를 받고 사죄문을 쓰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외에도 일본의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된 야마가미의 편지와 트윗 내용[91]을 종합해서 고려할 때, 생츄어리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2022년 7월 14일 디시인사이드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일부 내용에 명백한 오류가 있음에도 해당 커뮤니티의 영향력 탓에 여러 커뮤니티와 SNS 등지로 퍼져나갔다. 본 문서에도 서술되었듯이 모친의 실천윤리굉정회 심취와 그로 인한 부친의 죽음이 먼저이며 모친의 통일교 입교, 1억 엔 헌금과 형의 자살은 나중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야마가미의 명문대 공대 재학은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 야마가미의 조부가 구 일본군 출신이라는 설이 나돌았지만 최초 소스였던 신뢰성을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트가 삭제되었고, 공식 보도에도 그러한 언급이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유언비어에 가깝다. 다만 향후 보도에 따라 뒤바뀔 수도 있다. 물론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구 일본군 병사출신일 가능성은 있다.
- 사건 직후 일본 SNS에는 "용의자의 국적을 밝혀라"고 요구하며 범인을 재일 한국인이라고 의심하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92] # 관련 기사는 한때 야후재팬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랭크되었다. 범인이 중국인이라고 의심하는 반응도 있었다. # 이후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한 범인인 그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런 주장은 사라졌다.
- 용의자의 계좌에서 중국측이 아베 총리 피살 대가로 용의자에게 '1,500만 엔'에 해당하는 중국 위안화가 입금된 기록을 확인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일본에서 떠돌았다. 2023년 1월 기준으로 1,500만 엔은 한화로 환산하면 약 1억 4천 3백만원이며 위안화 환산시 77만 4천 위안이다.
- 한때 SNS 등을 중심으로 용의자가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치료 관련 준교수[93]라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해당하는 인물은 일본 군마대학 재직 중인 동명이인으로 밝혀졌다. # #
5.2. 도시샤대학 입학 논란
야마가미가 명문고를 졸업했다는 점을 들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서일본 내의 명문대인 도시샤대학에 입학하여 중퇴했다는 추측성 소문이 확산되었다. 그러다 현대 비즈니스에서 야마가미가 도시샤대학에 입학했다고 확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사실처럼 보도되었다.그러나 도시샤대학이 도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야마가미는 애초에 우리 학교에 입학한 적도 없다"라며 전격 부인하면서 진위여부가 엇갈렸다. # 물론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를 살해한 전대미문의 암살범을 두고 "우리 대학 출신이다." 라고 당당하게 밝힐 가능성은 실제 진위가 어떻든 거의 없긴 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언론에서 적용되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야마가미 데쓰야'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번역 등 민간의 통용표기를 따라 '테츠야'라고 표기한 언론들도 많다.[2] 출생 후 5살까지 지내다가 나라현으로 이주하여 실질적인 고향은 나라현이다.[3] 일본 국적자만 들어갈 수 있는 해상자위대 자위관으로 복무했다. #[4] 사망 당시 야마가미 데쓰야가 4살이었고 야마가미 데쓰야의 큰아버지가 1945년생이라 사망 당시 30대였던 것으로 보인다.[5] 최종계급은 해사장(海士長, 해군 상등병~병장 해당).[6] 이직만 최소 8회다.[7] 현재 계정 정지 상태[8] 나라현 경찰에 의해 살인미수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나 피해자 아베 신조가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아 살인 혐의로 변경되었다.[9] 대구경 파이프와 AA 건전지 등으로 직접 제작한 2연장 수평쌍대식 소드 오프 샷건 형식의 싸제 총기로, 폭죽에서 모은 흑색화약을 점화시키면 볼베어링용 쇠구슬들이 담긴 캡슐이 발사되는 방식이다.[10] 밑에 적힌 こてつ(코테츠, 고철)는 이름에서 따온 별명.[11] 이름칸 밑에 적힌 히라가나는 원래 자신의 장래희망을 적는 칸인데, 야마가미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 "모른다(わからん)"고 적었다.[12] 자세한 내용은 본 문서의 '범행 동기' 중 '모친의 종교 심취' 항목을 참조할 것[13] 4살 때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는데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에 응하기 위해 거절하자 병원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야마가미 본인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며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14] 요미우리신문 2022년 7월 13일자 추가 보도에 의하면 구 통일교에 헌금한 금액은 약 1억 엔 정도이며 친척의 땅까지 무단으로 매각했을 정도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본 문서의 '범행 동기' 중 '종교에 의한 금전적 피해' 항목을 참고할 것.[15] 문춘 온라인의 2022년 7월 14일자 기사에서 야마가미의 친척을 인터뷰하여 사건으로부터 8년 전, 즉 2014년임을 확인했다.[16] 사건 이후 경찰이 어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사죄를 했는데 통일교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사건 이후 야마가미의 외삼촌이 모친을 조사에 응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불러 기거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우 지친 상태라 누워만 있다고 알려졌다.[17] 일본 교육계에서만 사용되는 용어. 대학 진학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실제로 대입실적이 좋은 고등학교를 부르는 말이다. 야마가미의 출신 고등학교는 나라현 야마토코오리야마시에 있는 코오리야마고등학교로 추정된다. 편차치가 무려 68이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편차 65-70은 백분위로 2.2-6.7% 사이로, 명문진학교라 불리는 학교 다수가 이 구간에 위치한다. 도쿄대학, 교토대학을 제외한 구 제국대학들, 기타 주요 국립대들, 게이오기주쿠대학, 와세다대학 등 일본 유수의 명문사립대를 써낼 구간이다. 다만 고교입시 편차치와 대학입시 편차치는 전혀 다른데, 보통 10정도 낮게 보아야 한다. 편차치가 78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카이세이고등학교에서도 죄다 도쿄대학에 가지는 못한다. 코오리야마 정도의 편차치인 68 정도라면 더 잘나가는 학교가 꽤 많고, 보통 도쿄대는 거의 못 보낸다. 그 학교 내에서도 중간 이하라면 명문대 입학은 어렵고, 보통은 그럭저럭 그 지방 대학에 간다.[18] 사건 이후에도 그의 본가는 나라시 히라마츠에 있으며 어머니가 거주한다고 한다. 사건 발생 2주 전 야마가미와 그의 어머니가 본가 근처에서 목격되었다.[19] 시사지 현대 비즈니스 측은 도시샤대학 공학부에 합격 후 중퇴했다고 보도#했으나 대학에서는 이를 부정#해 현재로서는 어떤 대학인지, 대학에 입학했는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이다.[20] 백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로 야마가미 3남매가 집에 먹을 것이 없을 때 주로 도움을 요청한 인물이다.[21] 海士長, 해군 상등병~병장에 해당된다.[22] 한국에선 장교에 해당되는 간부 출신으로 오인한 매체도 있었는데, 이는 자위대가 조사(曹士, 부사관/병에 해당)와 간부 모두 지원제로 충원하는 것을 모르는 데다가 호칭이 관(官)이었기 때문에 장교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빚어진 오해였다. 다른 나라의 군대처럼 자위대도 장교에 상응하는 간부는 대학 학사학위 소지자여야 가능한데 야마가미는 학사학위가 없다.[23] 참고로 자위대에서 장교가 되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방위대학교 출신이어야 한다. 사관생도 과정일 경우 방위대학교에서 4년 공부해서 거기서 학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며 간부후보생(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학사장교에 해당됨)을 하더라도 다른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방위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아서 임관해야 한다. 또한 조사 출신이더라도 준위에서 소위로 진급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방위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장교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조사 출신 장교가 되려면 아무리 못해도 10년 이상 복무해야 하는데 야마가미의 경우 고작 3년만 복무했다.[24]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취역한 신형 범용 호위함인 무라사메급 호위함이 하츠유키급들을 대체했다. 2002년 무라사메급의 마지막 함정 9번함 아리아케가 취역할 때까지 80년대 초중반에 취역한 하츠유키급들은 순차적으로 주력함대인 호위대군에서 밀려나 2선급 보조함대인 지방대로 옮겨진 것이고 마츠유키는 그 마지막 함이었다. 다만 2010년대 이후로 호위대군과 지방대간의 호위대 공동운용 등 편제 개편으로 주력함대와 보조함대로의 이분화된 구분은 곤란해졌다.[25] 統一協会(통일협회)로 적혀 있는 것은 1954년~1996년에 통일교 측에서 사용한 옛 명칭의 풀네임이 世界基督教統一神霊協会(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統一教会(통일교회)와 統一協会가 병용된다.[26] 일본에서는 파이낸셜 플래너라고 한다.[27] 합격률이 15~17%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상당히 낮은 합격률로 악명이 자자한 자격시험이다. 그마저도 전년도 합격자나 전체적인 자격증 소지자의 총수를 보고 고의적으로 난이도를 높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해마다 합격 커트라인이 들쭉날쭉하다. 확실한 것은 이 자격증을 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고, 야마가미는 이 자격증을 따냈다는 것이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택지건물거래사 항목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28] 2014년 전후로 추정된다. 대략 야마가미의 형이 사망한 시점과 얼추 비슷하다.[29]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적에 "그러면 네가 하든가!"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30] 해당 통일교 건물은 출입구 왼쪽으로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고 철제 문이 휘어졌다.[31] 요네모토는 구 통일교회의 피해자가 매우 적으며 세력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식으로 과소평가했고 야마가미는 그에 반박했다.[32] 다만 경중의 차이일 뿐 요네모토 역시 통일교회에 부정적인 인물이고, 설전으로나마 통일교회에 대해 제대로 대화해 본 인물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암살 의도를 증명하기 위해 이런 편지를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33] 아베 신조에게 다가가며 발포하는 야마가미. 트위터영상[34] 재장전이 불가능한 대신 총열이 2개 있고 한 총열당 6발의 총알을 넣어서 성공률을 높이려고 했다. 그래도 명중률은 형편없어 첫 번째 격발은 전부 빗나갔고 더 가까이서 쏜 2번째 격발은 명중했으나 6개의 쇠구슬 중 겨우 2개가 맞았을 뿐이다. 그러나 하필 그 2발이 아베의 목과 심장 부위를(정확히는 왼쪽 윗팔에 맞은 거지만 그 피해가 심장까지 도달한 것이다.) 관통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 산개된 나머지 구슬들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는 9m까지 날아가 건물 벽에 박혔다. 아베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인파가 상당히 몰렸던 상황이었던 만큼 타겟 이외에 아무런 피해자가 없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35] 이미 총을 맞았을 때부터 생명에 큰 위험을 겪고 있었고 급하게 헬기로 운송하고 대학교수가 직접 수술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지만 사망하게 된다.[36] 자세히 보면 주위 사람들과 같이 박수를 치며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고 있다.[37] 학창시절 사진과 신분증 사진의 모습으로 보아 원래는 안경을 쓰지 않은 듯하나 범행 당시에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후 시력이 나빠져 썼을 수도 있고, 일본의 경우 면허증 사진을 찍을 때 선명도를 이유로 안경을 벗고 찍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촬영 당시에만 안경을 벗었을 가능성도 있다.[38] 다만 1921년에 현직 총리였던 하라 다카시를 암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5년으로 감형 후 석방되어 천수를 누린 나카오카 곤이치(中岡艮一)라는 사례도 있지만 나카오카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다.[39] 그의 사상을 보면 확신범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인지라 유기징역으로 자연히 풀려날 날짜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 요소이다. 그렇다고 사형을 선고한다면 종교 2세 문제에 그저 채찍만을 들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제2, 제3의 야마가미 데쓰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40] 진술의 비일관성은 살인 초범자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이기 때문에 무조건 정신 이상으로 보기는 어렵다.[41] 다만 교회의 멤버들만 회장 내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42] 다만 사건 이후에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관련 동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원본 동영상의 캡쳐본이 올라오기도 했다.[43] 원래 아베 전 총리는 나가노현에서 한 후보를 지원연설하기로 했으나, 그 후보의 특정 논란으로 인해 연설을 취소하고 나라현으로 일정을 변경한 것이다.[44] 원래 가정연합 산하의 문선명 소유 회사였으나 2009년에 3남 문현진이 경영권을 가져갔다.[45] 가정평화협회를 만든 문현진[46] 세계평화통일성전(생츄어리)를 만든 문형진[47] '내가 증오하는 건 통일교회뿐. 결과적으로 아베 정권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48] 부친은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교토대학, 모친은 오사카시립대학 출신이라고 한다.[49] 입원 중이던 병원의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50] 계속 흑자를 이어가던 회사가 모친이 물려받기 1~2년 전부터 적자 상태였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트윗 내용대로라면 모친의 자금 횡령이 원인일 듯하다.[51] 영양사. 매체를 통해서 오사카시립대학 생활과학부 식품학과를 졸업했다고 보도되었다.[52] 외조부는 아이들 앞에서 부엌칼을 빼들고 모친을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알려진 대로 종교 심취와 계속된 거짓말 탓이다. 또한, 외조부가 삼남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뒤 모친을 억지로 결혼시킨 자기의 죄라고 했다고 한다.[53] 다만 이는 통일교의 유래나 어머니가 통일교의 영향으로 한국인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믿으며 심지어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한국에 자주 갔던 사실이나 한일 외교 분쟁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54] 실제로 일본 통일교 2세의 증언에 따르면 결혼식 축복 비용으로 한국인은 14만엔, 일본인은 140만엔을 지불하는 반일적 교조가 있다고 한다. 야마가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싫어하는 외국 사이비 종교가 자기 집안을 망치는 꼴로 보였을 것이다.[55] 언급한 기사의 내용이 이재명 후보의 일본 후진국 전락 발언을 다룬 것이었다.[56] 미우라 루리의 트윗에 링크된 논평기사는 삭제되었지만(참고로 투고된 곳이 산케이신문산하 온라인 논설지면인 iRONNA로, 일본 정치에 관심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우파 논객들의 기사가 많이 보인다.), 아카이브에 일부가 남아 있다.[57] 다만 트위터 개설 시 증오하는 것은 통일교회라는 말에 굳이 아베 정권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인 걸 봐서는 이 시점부터 이미 관계는 의심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이 사진이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고 하단에 나오는 아베 신조의 영상을 보고 일본 정계에 영향력이 높은 그가 살아 있는 한 통일교회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 정도의 거물을 암살 시 통일교회의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결국 차선책으로 그의 암살을 결심했을 확률이 높다.[58] 徹底検証 日本の右傾化(2017)[59] Rally of Hope 전체영상 링크 이 영상은 범인이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만큼, 암살 결행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원인일 것으로 보인다.[60]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 발생 이후 위기에 직면한 문선명 당시 교주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치러진 집회다. 영상은 사이타마 집회에서 촬영된 것이며, 피해자 가족이 손해배상 소송 증거용으로 찍었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소유권을 사탄이 아닌 천국으로 돌려야 한다며 집과 논밭, 건물, 자동차 등 소유물을 모조리 적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단, 내레이션에서는 이 시점에는 가족당 160만 엔의 헌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다른 지역인 나라현의 교회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같은 헌금 요구가 있었던 시기가 입교 및 자산의 급격한 감소 시점과 가까우므로 정황을 짐작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61] # 기시 노부스케의 인간관계 중 문선명에 대한 내용이다.[62] 하지만 문춘 온라인의 2022년 7월 14일 기사에서 야마가미의 큰아버지가 1994년부터 이미 구 통일교회 활동을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후 취재에서는 1991년으로 정정했다.[63] 여러 소스와 증언에 따르면, 구 통일교(가정연합)는 1999년에 교주 문선명의 설교집 7권을 1세트로 묶은 '성본(聖本)'을 출간했는데 일본에서는 이 성본 하나에 3,000만 엔을 요구했다고 한다. 단, 정가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해당 금액을 헌금하면 성본을 주는 구조로 위법성을 피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와 가격대의 성본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성본 중 하나가 2022년 7월 12일에 변호사 모임이 주관한 반박 회견에서 공개되었다.[64] 이외에도 영감상법(관련 영상)이라 하여 돈을 많이 낼수록 죽은 조상이 혜택을 본다는 논리로 잡동사니를 거액에 팔며 큰 돈을 갈취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행위는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공산당에서는 2004년과 2009년에 관련 피해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65] 오랫동안 통일교의 영감상법이나 마인드컨트롤, 옴진리교 등 사이비 종교 관련 피해자를 변호하고 피해 상황을 널리 알려온 변호사[66] HAYAKU GENKIN의 약어로, 한국어로는 '빨랑 현금 (가져와)'라는 뜻이다. 기토 변호사에 의하면 빚 내서 헌금(借金献金)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67] 통일교에서 한학자와 문선명은 '참부모님'으로, 전자를 '참어머님', 후자를 '참아버님'이라고 호칭한다.[A] 가정연합은 2022년 7월 11일 기자회견에서 1998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에 야마가미의 큰아버지를 취재한 기사에서 1994년으로 보도되었다. 2022년 7월 16일 시점의 최신 보도에서는 1991년으로 정정되었다. 기사가 잘못된 것인지 인터뷰어가 혼동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A] [A] [71] 1999년 환율 기준으로 한화로 환산하면 약 11억 원 상당이며, 이는 2022년 화폐가치를 따르면 한화로 환산했을 시 약 19억 4천만 원 정도다.[72] 단, 가정연합 측의 주장 5천만 엔 환수 자체는 사실로 보이나 이는 변호사인 백부가 헌금 전액을 돌려달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하여 마지못해 일부를 환수해 준 것으로 보인다.[73] 데일리 신초 2022년 7월 14일자 기사에서는 이러한 상법으로 강매하는 몇몇 상품과 그 가격을 신자였던 사람의 사례를 들어 게재했다. 항아리는 300만 엔, 모형 다보탑은 1억 엔, 고려인삼 엑기스는 4,800만 엔, 모형 석가탑은 5,000만 엔이라고 한다.[74] 또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아베 신조를 이토 히로부미에 비유하여 "이토 히로부미는 제대로 된 권총으로도 4발이나 버텼는데 아베는 사제 총기 2발도 못 버티냐"며 아베의 사망을 동정하지 않고 비꼬았다.[75] 특히 한국은 야마가미가 원한을 가진 통일교를 만든 사람이 한국인인 문선명인 만큼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76] 다만, 이 블로그를 보면 효정 사이버팀 자체는 조금 더 일찍 창설되었을지도 모른다.[77] 극우정당 신당 구니모리와 관련이 있으며, 유관 조직에 일본회의와 재일위구르인 단체 중 하나인 일본위구르협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일본위구르협회는 독일 뮌헨에 있는 세계위구르회의의 산하조직인데 이 단체는 통일교회의 산하조직인 국제승공연합의 괴뢰조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78] 그러나 이렇게 개각을 단행했음에도 자민당 정치인들의 부패가 또 적발되어 결국 총리 연임을 포기해야 했다.[79] 그 중 택지건물거래사 자격증의 경우 관련 학과를 전공한 대졸자도 합격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의 난이도다. 상단의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를 참조하면 해당 자격증의 합격률은 2010년 이래 10~20% 수준으로 형성되고 있다. 야마가미의 취득 시점으로 추정되는 2000년대 후반에는 평균 17%대였다. 시험이라는 것이 응시 집단의 수준 차이도 있으므로 합격률만 가지고 일률적으로 평가하긴 어려우나,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준고시 바로 아래 수준이다. 취득을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투입해야 하며, 머리도 어느 정도 따라와야 한다.[80] 그래도 총기 특성상 실탄이 퍼져서 발사되는 방식이라 다른 실탄이 근처의 벽에 박히기는 했다.[81] 상기한 문제를 서술한 뒤 컬트 2세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여러 사정을 볼 때 갱생의 여지가 있다며 야마가미의 감형을 탄원하였다.[82] 현재는 어느 나라든 이유를 막론하고 사적제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본은 추신구라 사건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도 가문/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한 살인행위만큼은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기껏해봐야 대표적인 사회불만세력으로서 정치적으로는 기껏해야 하수인을 시켜 좌파 지자체장 정도나 죽여온 야쿠자들도 무려 만년 집권여당의 현직 오고쇼라는, 일본국 최고의 실세를 직접 살해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마가미 데쓰야를 존경의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83] #山上徹也は英雄(야마가미 데쓰야는 영웅)이라는 태그를 적용한 트윗이 줄줄이 게시된 사례가 있다.[84] 심지어 트위터에서는 젠장이라는 뜻의 치쿠쇼(畜生)라는 말 대신 국장이라는 뜻의 고쿠소(国葬)라는 말이 대체되어서 쓰는 트윗까지 발견되는 상태(国葬ッツ). 치쿠쇼와 고쿠소 둘 다 뒤의 어감이 쿠쇼, 쿠소로 비슷하기 때문에 일종의 언어유희로 쓰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쿠소의 경우 별개로 똥이라는 뜻의 비속어도 존재하기 때문에 고쿠소를 치쿠쇼 대신 쿠소라는 뜻을 대체하는 말로 쓰는 걸로 볼 수도 있다.[85] 망상장애나 조현병이 있다고 해도 환자 본인은 그걸 진실로 믿으므로 망상이라고 하지 않는다.[86] 야스토미 아유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의 트윗 "자기 입으로 '망상해서'라고 말할 리가 없잖아. 누가 그런 얍삽한 왜곡을 하고 있는 거야?", 역사학자 야마자키 마사히로의 트윗 "완벽한 '인상조작'을 다같이 하고 있었다. 억측일 뿐인 스토리를 시청자에게 세뇌했다."[87] 원문: テロル. '적색테러', '백색테러' 같은 정치적인 테러 행위를 가리키는 맥락으로 쓰일 때 이렇게 표기하는데, 주로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표기. 한국어에서 '테러'를 북한식으로 '테로'라고 쓰는 것과 비슷한 어감.[88]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자신이 이 아베 요리토키의 아들 중 하나인 아베 무네토로부터 이어 온 후예라고 주장했으나 아베 신타로는 근거를 딱히 제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본은 족보가 교차검증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매우 엄히 따져서 이 경우 '자칭'으로 본다. 아베 신조는 44대손에 해당한다.[89] 아베와 상황의 관계가 여러모로 껄끄러웠던 것은 주지의 사실로, 이미 일각에서는 "아베는 천황폐하를 우롱했는가?"라든가, "아베는 천황폐하의 역신인가?" 같은 살벌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단, 후자의 기사는 아베를 까는 게 아니라 '아베가 우경화를 해서 천황과 사이가 벌어졌다는 좌파놈들이 많은데 사실 안 그러니 폐하를 정치에 써먹지 마라'면서 무리하게 해석하는 우익 논객의 제목낚시성 칼럼이다.[90] 카부라야는 신토에서 부정함과 악귀를 쫓는 의식에서 쓰인다.[91] 야마가미는 문선명 일가 모두에게 원한을 품어 왔으며 생츄어리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편지에는 한학자와 그 딸을 죽이더라도 문현진과 문형진이 기뻐할 뿐이라는 언급도 있었다.[92] 국내야구 갤러리, 일베저장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 같은 일뽕 커뮤니티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93] 한국의 부교수에 해당하는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