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탈리아어로 복수를 뜻하는 말
단어 자체로는 복수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복수보다 조금 더 지독한 단어다. 일반적인 복수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도 하고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용서를 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지만 벤데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이 목숨을 바쳐서 꼭 해내야 될 보복' 정도로 인식된다.개인 대 개인, 혹은 가문 대 가문으로 벌어지는 전쟁에 가깝다.Feud 참조 특히 코르시카나 시칠리아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 대부 시리즈에서도 종종 묘사되며, 실제로 이탈리아인이면서 마피아가 아닌 사람이 벤데타에 성공하면 진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조직이라면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조직차원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보호해줄 수도 있겠지만, 일개 개인이 혼자서 벤데타를 행하려면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을 각오를 해야하고 그 과정 또한 매우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벤데타를 해낸 마피아 조직원을 힘든 일을 해냈다는 뜻에서 '존경받는 남자(A man of respect)'라고 부르기도 했다.
벤데타 문화가 발달한 지중해권도 뭐 우리랑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 사소한 개인간의 마찰에 벤데타급의 맹목적이고도 절대적인 복수가 항상 따라오진 않는다. 벤데타가 걸리는 상황은 개인으로선 용서하고 넘어가고 싶어도 그러기도 힘든, 가족, 가문, 지역, 직종 등 집단 단위로 원한을 샀을 때이다. 따라서 서로 막상 원한을 산 일의 당사자들은 용서하고 넘어가고 싶어도 소속 집단 전체의 명예가 걸려서 피의 악순환이 반복됨이 현실에서나 픽션에서나 벤데타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나오는 양가 원수관계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벤데타 문화는 다행히도 현대엔 상당히 약화되었는데,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왕국 시절 마피아 탄압으로 마피아의 세가 크게 꺾이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초대형 전쟁으로 흐지부지해졌다가 전후 이탈리아 공화국에서 이러한 복수 행위를 강하게 처벌하고 치안을 지속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각종 영화나 소설 등에 등장하는, 가족이나 가문, 조직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면서 이루어내는 '피의 복수' 같은 것이 바로 벤데타. 본래 이탈리아어지만 영어로도 흡수가 되었는데 이는 후일 마피아로 발전하는 코르시카 사람들의 거친 기질, 그리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이 단어가 등장했던 게 크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도 있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에서도 이 단어가 언급된다.
서구 대중문화에서 자주 언급된 덕에 뭔가 비장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인식도 있지만, 실상은 공권력이 약하거나 공정하지 않은 곳에서라면 인류 문명 어디서든지 나타나는 일종의 전근대적 인습이다. 알바니아에도 카눈이라는 비슷한 관습이 있고 다른 발칸반도 국가인 그리스, 보스니아나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코소보에도 있으며 특히 세르비아에서는 크르브나 오스베타(Крвна освета, Krvna osveta)라고 불리며 굉장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진다.
또한 이슬람 및 인도권에서 발견되는 명예살인과 연관짓는 경우도 있지만, 이 둘은 가족/친족 공동체의 '외부'에 대한 폭력과 '내부'에 대한 폭력이라는 차이로 구분된다. 벤데타는 공동체의 외부에 있는 적을 향한 사적 보복인데 비해 명예살인은 공동체의 내부 구성원에 대한 사적 처벌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둘이 서로 무관한 것은 전혀 아니다. 결국 이 둘은 모두 '해당 지역의 공권력을 신뢰하지 않는 가족/친족 공동체'가 사적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문제가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외부의 적에게 복수하는 것이면 벤데타, 공동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내부 구성원을 처벌하는 것이면 명예살인이다. 말하자면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라 한 가지 풍습이 있는 곳에서는 다른 풍습도 같이 나타난다.
애초에 명예살인 항목을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명예살인 개념 자체가 벤데타와 유사한 복수 개념까지 상당히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르시카등 남이탈리아의 벤데타 개념을 상세히 소개하여 이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면 이탈리아의 산적 두목 쿠쿠메토의 패거리 이야기에서 명예살인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산적 무리가 자신의 연인을 윤간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 산적 똘마니가 차라리 자기 손으로 연인을 살해하자 동료 산적들 뿐 아니라 살해당한 아가씨의 아버지까지도 그것이 아가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살인이었다고 인정하는 것[1]. 결국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벤데타나 카눈과 같은 복수든, 명예살인이든 결국은 같은 논리와 행태에서 서로 다른 측면을 일컫는 것이라 봐도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셈이다.
사실 이탈리아뿐만 아니고 스페인에서 상당히 최근인 90년대, 스페인 당국과 ETA가 총질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종종 볼수 있는 문화였다. 여기서도 중앙 국가 권력과 법치는 약한데 전근대의 친족, 직업 집단이 근대화 과정에서 각종 이념 투쟁에 휘말리면서 각종 노동조합이나 지역 공동체 집단이 바로 무기까지 손에 넣고 힘 없는 국가가 못하는 노사분규, 지역사회 갈등 해결을 주도하면서 공동체의 폭력적 사적 복수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내전기 이전 하루가 멀다고 아나키스트, 경찰, 헌병대, 기업의 용역 깡패들이 서로 폭탄던지던 1920년대 바르셀로나가 전형적인 예이고, 남부 안달루시아에서도 소작농 전투노조, 지주 용역깡패들이 서로 피의 보복을 하게 되었고 결국 스페인 내전의 거대한 폭력 사태로 터졌다.
튀르키예나 캅카스 지방에도 비슷한 관습이 있다. 특히 체첸이나 인구셰티야 공화국, 다게스탄에서 복수문화가 아주 강하다. 결론적으로 따지고 보면 사실 이탈리아의 사례가 미디어 등을 통해 가장 유명하지, 국가 권력이 약한 와중 이런 친족, 업종 중심 공동체들이 모여 폭력을 통해 복수를 하며 이 과정에 가부장적 의미로 '명예'를 쌓는 반골 집단주의 공동체 문화는 지중해권 전역의 보편적인 인류학적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중해권은 라틴-슬라브-아랍-베르베르, 기독교-이슬람 같은 외향적 차이보단 이런 사회문화적 풍습으로 통해 서로 연결되는 점이 많다는건 페르낭 브로델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땅 넓고 가문이나 지역 공동체별로 뭉쳐야 할 일이 많던 전근대 중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다.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강호의 은원관계' 같은 것이 그런 전통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다만, 중국의 복수 문화는 서구권의 복수 문화와는 약간 다른점이 있는데, 서구권의 복수 개념은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데 비해 중국의 복수 문화에서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남을 위해서' 대신 복수해주는 이들을 협객이라 부르며 숭상했다는 점이다.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 이미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행하며 자신의 위급함을 돌보지 않은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 사생존망의 위급함을 겪었어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사기』 유협열전
『사기』 유협열전
중국의 복수 전통(협객 전통)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범(典範)이라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닌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사기의 자객열전에서 다루는 인물로 중국 협객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형가나 예양의 사례를 참고할수도 있을 것이다. 형가는 남의 나라를 구해주기 위해 다른 나라 왕을 암살하려 시도한 인물이고, 예양은 자신이 섬기던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다른 군주를 암살하려 시도한 인물이다. 즉 자신이나 가족, 가문, 아니면 잘해야 소속 조직의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인 벤데타와는 그 동기가 명확히 다르고, 사적 복수의 논리로는 어찌보면 '그걸 왜 네가 나서냐?'는 의문이 들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복수 전통에서는 그 동기의 정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남이 대신 복수에 나서주는 것도 정당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흔히 인식하는 벤데타의 전형이 자신이나 자기 가족, 가문이 입은 피해나 모욕에 대해 직접 되갚아주겠다고 보복하는 것이라면, 협객의 전형은 '평소에는 공짜 술, 밥이나 얻어먹고 거들먹거리던 파락호, 건달'인데 그 지역에 살던 '힘없는 민초 아무개가 지주나 지방 벼슬아치 등 유력자에게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원한을 대신 풀어주겠다며 자기네 건달패를 모아 목숨걸고 그 유력자 집에 쳐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사마천이 사기를 쓰던 한나라 시대에도 이런 행태가 바람직하게 여겨지던 것은 아니었다.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하지만 그 나름의 정당성과 가치를 인정할만한 면 역시 있다고 보았기에 유협 집단과 자객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역사기록에 따로 남긴 것.
그리고 벤데타 전통과 협객 전통이 보이는 이러한 차이는 서로마 멸망 이후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강력한 중앙정부의 통제력 바깥에 머물렀던 남이탈리아 지역과, 역사적으로 가장 빠르게 중앙집권국가가 형성되어 오랜 기간 유지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중국 사이의 역사적 경험 차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남이탈리아 뿐 아니라 발칸, 캅카스, 중앙아시아 등 벤데타와 유사한 복수 전통이 뚜렷하게 형성된 것으로 유명한 많은 지역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행사하는 공권력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가족/가문이나 부족/씨족 중심의 자치적 공동체의 전통적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들이었다. 이에 비해 중국사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강력한 공권력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던 것. 물론 이 공권력이란 어디까지나 전근대의 공권력, 즉 현대 국가의 공권력과 같이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보복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한국은 중앙집권 때문에 비교적 복수 문화가 적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정도만 해당되고 함경도나 평안도, 황해도 북부, 그리고 간도(오늘날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나 남한이더라도 부산 일대같이 서울과 멀리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가로막힌 지역은 복수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2][3]역시나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의 영향으로 자기 부인을 강간하거나 자기 부인과 간통한 남자를 현장에서 살해하는 것(자기 부인까지 포함)하는 것은 용인되는 문화도 있었고, 특히 효도, 정절을 위한 복수는 사면은 물론 표창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해방 직후에도 히키아게샤를 폭행하거나 재산을 뺏는 건 물론 살해하는 일까지 있었고 서북청년회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즉, 가문과 지역 공동체, 국가와 민족에 관련된 문제는 어느정도 복수를 용인해줬다 할 수 있다.
상술된 대로 해당 문화권에서도 벤데타 걸리는 상황은 애초에 본인이 관대하게 넘어가고 싶어도 외부에서 "니 가족/친구/직장/고향의 명예는 생각 안 하냐?" 같은 집단적 압박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제약적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만약 어떤 사람이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결심한다면 주변에서는 "저 사람은 관대한 대인배구나!" 라고 존경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또는 저 사람이 속한 집단은 호구구나! 마음껏 괴롭히고 빼앗아도 되는구나!" 라고 만만하게 보고 먹잇감으로 삼으려 든다는 것. 이러니 해당 문화권에선 21세기가 되어도 피가 피를 부르는 사적 복수 문화가 좀처럼 사라지기 힘들다.
이러한 복수-집단적 명예 문화는 주로 '공권력이 부재한, 또는 미약한 상황에서 가족/가문등의 집단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들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되지만 사실 이조차도 딱 잘라 말하기는 애매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기나긴 역사 내내 공권력 하나는 짱짱센 세계구급 선두주자이던 중국에서도 복수 문화는 (조금 특이한 형태로 발전했을지언정)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공권력이 강하냐 약하냐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가 그 신뢰성이다. 공권력이 공정하고 신뢰성있다면 사회 구성원들로써는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공권력에 맡기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공권력이 무력하다면 뭐 말할 가치도 없고, 무력하지 않더라도 공정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당연히 자신의 문제를 그런 믿을 수 없는 공권력에 맡기지 않으려 하게 되는 것이다.
상기된 것처럼 중국의 복수 전통인 협객 전통에서 공권력과 충돌하는 반체제적 특성이 나타나게 된 것은 결국 동시대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강력한 공권력의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 하지만 그 공권력이 민초들의 편은 아니었던 중국사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며, 이는 본 문서의 주제인 벤데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벤데타 문화의 본고장인 시칠리아, 코르시카 및 남이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동로마 제국의 남이탈리아 상실 이후 이슬람 세력, 신성로마제국, 카탈루냐, 스페인, 프랑스, 통일 이탈리아 등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자 쟁탈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리고 물론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저러한 지배세력은 모두 '외부 세력'이었던 것이다. 전근대의 기술적 한계 속에서 이들 외부 세력은 남이탈리아 지역을 간접적으로 통치, 통제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 또는 자신이 속한 가문이나 집단의 문제를 '외부 세력(=이방인)인 상위 권력'에 맞기기보다는 자신들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자신들의 방법으로 스스로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 때문에 복수-집단적 명예 문화가 두드러진 다른 부족/씨족 문화권 지역에 비해 비교적 체계화된 중앙권력(=공권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중해 문화권이면서도 벤데타 문화가 두드러지게 발달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 당장 벤데타 문화의 형성과 떼놓을 수 없는 조직인 마피아만 보더라도 (근현대적 범죄 조직으로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지역 사회와 유착한 자치적 자경집단으로써 반 외세적 성격을 얼마간 가지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긴 기간동안 당당히 사회문화의 한 영역에 자리잡고있던 복수행위 근현대 이후 급속히 사적제재로써 범죄시되기 시작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근대국가는 '공권력'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의 독점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국민국가'로써 국민에 의한 국가이자 국민을 위한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상적인 (최소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공권력이 (그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객관적이면서 공정한 심판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에 더이상 벤데타와 같은 사적 복수가 필요하지 않고, 이러한 공권력에 의한 심판은 주관적인 사적 보복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겨지기에 사적 제제를 금지하고 공권력으로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권력을 얼마나 신뢰할지는 사람마다 그 생각이 다르기에 현대에도 사적제재에 의한 복수행위가 통쾌한 정의구현이라 보는 이들, 혹은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나름의 정당성은 가지고 있다거나 필요악이다, 또는 공권력의 부족함이나 과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적지 않다. 당장 한국은 세계 기준으로 봐도 치안수준이 높은 선진국에 속하지만 한국인 중에도 사적 복수를 통쾌하게 여기며 사이다를 외치는 이들의 수가 그리 적지만은 않은 것.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전쟁 역시 국가 단위로 벌이는 복수에 해당하기에 규모만 큰 벤데타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으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타국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당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느끼)는 경우, 먼저 군사적으로 도발을 당하거나 자국민이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발생하면 '우리도 호구가 될 수는 없다'며 보복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은 전형적인 복수의 논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전근대 사회에서는 가문이나 소규모 공동체 단위로 벌이던 벤데타가 국가라는 정체성 하에서 대규모로 벌어지는 것일 뿐, 똑같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물론 이는 그리 신기한 논리는 아니다. 상기된 바와 같이 애초에 근대국가의 논리 자체가 '국가가 모든 폭력을 독점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국가는 정치적 논리로 이 폭력의 독점적 행사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법치국가의 논리는 '법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행사되는 국가의 공권력이 개개인의 사적 폭력에 의한 복수와 자구책보다 더 공정하기에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고, 근현대 민주국가의 논리는 '국가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여, 그 국민의 의사에 따라 그 주권(의 일부인 공권력)을 행사하면 그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민족국가의 논리로 국가의 구성원(민족, 또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익을 실현하는데 가장 바람직하다면 국가의 폭력 독점 역시 정당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가 무엇이건 폭력은 폭력이기에 그 본질적인 성격은 똑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을 근거로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은 정당한 공권력이지만 국가가 아닌 것(개인, 또는 가족이나 가문, 또는 각종 단체 및 조직)이 행사하는 폭력은 사적 폭력이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그 구성원들을 대신하여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논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 논리에 대한 반론 역시 상당하고 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해당 논리가 현대 사회의 보편적 전제중 하나로 기능하는 논리인 것 역시 현실인 것이다.
2. 작품명
2.1.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 및 그를 원작으로 한 영화
2.2. 크라임 파이터즈의 후속작 크라임 파이터즈 2의 수출명
자세한 내용은 크라임 파이터즈 2 문서 참고하십시오.2.3. 바이오하자드 CG영화 시리즈 세번째 작품의 부제
자세한 내용은 바이오하자드 벤데타 문서 참고하십시오.3. 대중매체
3.1. 매직 더 개더링의 카드 Vendetta
3.2. 제노기어스의 기어
카란 람세스와 동조한 아니마의 그릇이 와이번과 융합해 태어난 기어 밸러. 동조자의 정신 상태를 반영해서인지, 재앙의 분위기를 감돌게 하는 그 기체는 등부분의 돌기로부터 박쥐와 같은 날개가 나서 공중에서의 기체 밸런스를 유지하기 때문에 무릎으로부터 아래의 부분은 역간접장에 형태 변화하고 있다.균조장의 각부 첨단은 지상에서의 보행 운동에 향하지 않고, 그 때문에 항상 체공 상태를 유지해 전투를 실시한다.
람세스는 이 기체를 타고 웡 페이 퐁과 에레하임 반 호텐이 탑승한 벨톨을 개발살내지만 디스크2로 교체된 뒤에는 시스템 이드를 발동한 페이에게 순식간에 박살난다.
「(유혈을 수반하거나 뿌리 깊은) 복수」를 의미하는 영어(=즉 1. 항목)에 유래.
3.3. Warhammer 40,000의 인류 제국이 운용하는 강습 수송기 발키리(Warhammer 40,000)의 파생형
자세한 내용은 발키리(Warhammer 40\ 문서 참고하십시오.3.4.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캐릭터
자세한 내용은 발레리아 벤데타 문서 참고하십시오.3.5. 도타 2의 영웅 닉스 암살자의 궁극기
국내 클라이언트에서는 일반적인 복수와는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피의 복수' 라고 번역하였다.3.6. 던전앤파이터의 직업 블레이드의 2차 각성명
자세한 내용은 블레이드(던전 앤 파이터) 문서 참고하십시오.3.7. 네이버 웹툰 히어로 킬러의 빌런 집단
자세한 내용은 히어로 킬러(웹툰)/설정 문서의 벤데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 다만 이는 '벤데타의 일종'은 아니다. 벤데타는 이러한 여러 형태의 사적 폭력 행동중에서 강력한 적을 상대로 '너에게 복수하겠다'고 선포하고 싸움을 거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2] 한반도 항목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는 여러 산맥과 강, 이에 따른 지역별 다양한 기후로 다스리기 만만한 지역이 아니며 언급한 지역들은 태백산맥, 낭림산맥같은 자연방벽 때문에 온전한 공권력 투사가 어려워 토관 제도같은 자치권까지 주며 간접통치 비슷하게 나아갔으며 행정력이 그럭저럭 닿는 지역도 현지의 복수문화에 맞추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금지하던 혹형까지 알음알음 시행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 지역들은 호환 등 척박한 생활환경 때문에 근대까지만 해도 총에 대한 규제가 현재의 미국 수준으로 엄청 널널해서 총기 사고도 꽤 터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 정부가 투사 가능한 공권력의 수준이란 것도 시대적, 상황적 영향에 따라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3] 그리고 중앙정부에서 가까운 한양이나 경기도등 수도권 지역이라 해도 공권력의 영향력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미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를 들어 한양에는 서얼들로 구성된 검계가 있었고 경기도, 인천 일대에서는 명화적, 백마적같은 도적들이 설치고 다닌 적이 있었음이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 나라 상태가 영 좋지 않으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떨어져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고, 나라 상태가 썩 괜찮은 상황이라 해도 전근대 국가에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란 근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사회 곳곳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보부상들은 자신들의 자치조직과 규율을 만들어 그것을 어기는 자는 양반이나 육방관아 관속들의 간섭조차 받지 않고 스스로 처벌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말석이던 행상인들이 무슨 법위에 군림하던 초법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행상인들은 '마을 공동체' 바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고, 따라서 마을을 중심으로 한 정주사회의 사회적 질서 바깥에 있는 자신들의 질서 유지를 위한 자치(자경) 기능을 스스로 담당하였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마을'은 꼭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한 공권력 체계가 가져오는 질서에 완전히 속해있엇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향촌 단위에서 잘못한 이들을 직접 처벌한다거나, 주인이 머슴이나 노비를 직접 처벌하는 등의 사적 제재는 (일단 법적으로는 금지된 일이었음에도) 흔한 일이었다. 당장 '향약'을 보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이는 어떻게 벌한다'는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 모두가 근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엄연한 사적 제재들이다. 즉, 전근대~근대 초기까지의 국가에서는 기술적, 시대적 한계상 공권력의 사회의 말단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부분은 사적 수단에 의해 채워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것을 조선과 같은 사례의 경우 그나마 국가의 상황이 괜찮은 시기에는 단순한 사적이고 주관적인 폭력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규약'과 같은 형태로 가능한 한 객관화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는 점에서 전근대~근대 초기 국가로써는 높은 수준의 행정력과 공권력을 가진 국가였다는 평가를 받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