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2년 10월 12일 일본의 AV 여배우였던 모모이 노조미(桃井望)와 같이 있던 애인이 자동차 안에서 살해당한 의문사 사건.2. 사건 경위
2002년 10월 12일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나라이강(奈良井川)의 하천 부지에서 승용차가 불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대원이 출동했으나 현장에서 젊은 두 남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승용차와 함께 불에 탄 상태였는데 신원을 조회한 결과 여성은 AV 배우였던 모모이 노조미(당시 24세)였으며 남성은 설치기사로 일하던 사카이 히로키(酒井宏樹/24세)[1]였다.시신은 각각 승용차의 뒷좌석과 차에서 10m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모모이의 시신은 수많은 자상[2]이 보였고 사카이의 시신은 불에 심하게 탄 상태로 발견되어 사인이 불분명하였다. 경찰은 사카이가 벌인 살인과 동반자살에 혐의를 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3. 시체의 상태
모모이 노조미는 차 후방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옆으로 누운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허리와 복부에 입은 상처로 인한 치명상이 사인으로 불에 그을린 상태였지만 얼굴은 거의 타지 않았다. 눈은 열려 있었으며 얼굴은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맨발만이 하얗게 불타다 남은 상태로, 신발은 나가노에 신고 간 부츠밖에 없었으나 그 부츠는 사카이의 자택에 남겨져 있었다.사카이 히로키는 뒷좌석과 조수석 사이에 웅크려 원형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타 있었다. 부검 결과 폐에는 담배 한개피 분의 연기밖에 들어가지 않아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되었다. 타다 남은 왼손에서는 손잡이가 타버린 칼이 발견되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사카이는 오른손잡이이며 칼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경찰이 제공한 시신의 사진을 본 사카이의 가족은 "두개골 정가운데가 찌그러져 있거나 깨져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구타당한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4. 사건 정황
- 휴대전화가 사라져 있었다.
- 자택의 PC 전원이 켜져 있었다.
- 신발이 자택에 남아 있었다.(두 사람 다 사체 발견 당시 맨발이었다)
- 자동차 소유자이며 운전자인 사카이 히로키가 뒷좌석에서 발견되었다.
- 사카이 히로키는 차 안, 모모이 노조미는 차 밖에서 발견되었다.
- 등유가 뿌려져 있었지만 등유가 담겨있던 용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 2명 다 연기를 마시지 않아 불에 타 죽었을 가능성이 낮다.
- 사카이 히로키는 사건 수개월 전 80만엔을 빌렸으나 차용증에 기입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모이 노조미를 찌른 것으로 추정된 칼이, 오른손잡이였던 사카이 히로키의 왼손에 쥐어져있었다. 사카이는 오른손잡이지만 2002년 5월부터 오른팔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기 시작하자 병원을 다녔는데도 나아지질 않자 회사에도 보고하였다. 이런 점을 노리고 왼손에 쥐어진거라면 사카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 모모이를 찌른 것이라면 혈흔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 불에 탄 차는 문이 전부 잠겨 있었고 차의 열쇠는 차 안에 있었다.
- 사건 이후 사카이의 모친이 아파트를 정리하다 나온 사진 필름에는 사건 당일 저녁에 방 안에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하단의 사진) 사진 속에서 사카이가 입고 있던 녹색 트레이닝복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카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나가노현 경찰은 의문점이 너무나도 많은 이 사건을 단순히 동반자살[3]에 인한 살해라고 단정지었다. 즉, 사카이가 모모이를 찌른 뒤 모모이와 본인의 몸에 등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자살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차량 안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면 두 명의 시체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모모이는 혼자 1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5. 피해자에 대해
AV 배우 프로필 | |
<colbgcolor=#DCDCDC><colcolor=#000> 이름 | 모모이 노조미 Nozomi Momoi 桃井望 |
출신지 | 일본 |
출생 | 1978년 9월 23일 |
사망 | 2002년 10월 12일 (향년 24세) |
신장 | 148cm |
활동기간 | 2001년 ~ 2002년 |
링크 |
2001년(당시 20세) AV 업계에 데뷔하여 로리타계 배우로 인기를 얻으면서 2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였다. 2002년에는 같은 로리 계열 배우인 나가세 아이, 츠츠미 사야카, 이츠키 와카나와 아이돌 유닛 'MINX'를 결성하여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머지않아 모두 은퇴했다.
사카이 히로키와는 같은 지역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5], 2002년 모모이와 재회하여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하였다. 사카이는 사건으로부터 3일 전부터 모모이와 자택에서 지냈고 사건 당일에는 컨디션 불량으로 회사를 쉬었다. 취미로 밴드를 하고 있었던 사카이는 차량이 불에 탔다고 추정된 시각 불과 30분 전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브에 초대했다. 친구들의 증언에서도 사카이는 평소와 같이 밝았고, 교제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두 사람이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은 아직도 남겨져 있다.
6. 자살인가 타살인가
정황상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모모이 노조미가 AV 업계에서 일어난 트러블로 누군가에 의해 애인과 함께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AV 업계에 정통한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그건 절대 타살. 업계 관계자라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일부에서는 함께 죽은 남성에게 직접적인 원인이 있고 모모이씨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세계에서 어두운 면은 수만가지니까요.
모모이 노조미는 1년 동안 200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마디로 1주일에 3일은 촬영한 것이다. 보통 여배우의 개런티는 한 작품 당 100만엔 정도이니 모모이는 약 2억엔 가까운 액수를 벌고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모이는 유닛 활동, 그라비아 활동 등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심지어 AV계의 막장 테크라는 스카톨로지류 작품에까지 출연하는 등 하드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모모이가 사카이 히로키와 사귀기 시작하고 사카이와 교제를 지속하기 위해 AV배우를 그만두려고 하자 은퇴 문제로 업계 관계자와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사건 발생 이틀 후에는 모모이가 출연하는 단체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사건 발생 직전 모모이가 그 촬영을 거부해서 업계 관계자들과 다퉜다고 한다.
애인인 사카이 히로키는 아파트 이웃인 한 남성의 꾀임으로 피라미드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대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남성과 본사의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있었다. 이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 차용증에 쓰인 필적이 일치했고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위조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 이후 15년간 자취를 감추다가 2010년 방송에 인터뷰를 하러 나타났는데 차용증을 본인이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알리바이도 "당시 풍속점에 간 것을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꾸며낸 것"이라고 했다.[6] 경찰은 18인 체제로 그를 철저히 조사했지만, 용의자로써의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사건 이전에 그가 빌린 80만엔의 차용증에 기입된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었으며 변제 기한은 사건으로부터 10일 전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금전적 문제가 사건에 관계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유족에 따르면 서랍에 있던 사진 필름이 사라졌다고 한다. 경찰의 수집품 리스트에도 없었으므로 누군가가 방에서 가지고 나간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집 새시 앞에 누군가 2번 들꽃을 놓고 갔는데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사건 현장에 꽃을 바치고 있다고 한다.
7. 그 밖의 입장
경찰은 동반자살과 타살 양쪽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다.이에 유족들은 "경찰이 자살했다는 동기를 어떻게든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동반자살이 아닌 타살을 주장하며 피해자 불상의 살인죄로 고소하겠다는 방침을 피력했는데 타살의 이유로 사카이 히로키가 죽기 직전까지 친구와 아무 일없이 메일을 주고받은 점과 현장에 남겨진 칼과 등유가 들어간 폴리 탱크의 구입 경로가 불확실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변호인은 시오지리서에 두 사람이 동반자살에 이른 견해를 묻는 질문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동반자살의 근거는 조사중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친구들도 시오지리경찰서에 '동반자살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견으로 모은 7,300명의 서명을 제출해 원인 해명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중립공평(中立公平)한 입장에서 조사하겠다'는 이유로 해명을 거부했다.
나가노현 경찰은 영 미덥지 않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중론. 시골도시 같은 느낌의 나가노현이지만 야쿠자에 의한 강력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동네인데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고 야마구치구미 내부에서 분쟁이 일었다 하면 나가노현에서 야쿠자 한두 명이 죽은 시체로 나온다.
2003년 사카이 히로키의 유족이 자살로 인해 보험금을 받지 못해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일어났는데 회사 측은 '지급 책임 개시부터 2년 이내의 자살이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거부하자 재차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지급을 요구했다. 1월 23일 나가노 지방법원은 제3자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타살을 인정한다고 결론내렸다.
이 사건이 모모이를 둘러싼 야쿠자, 관동연합 등과 연관 있다는 루머가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1] 축구선수 사카이 히로키와는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2] 칼에 찔린 상처.[3] 일본어로는 '無理心中'이라고 표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반자살 중에 서로 합의 하에 함께 자살하는 것을 '心中'라고 하고 죽을 의지가 없는 사람이 죽으려고 하는 자에 의해 '살해 후 자살'(예를 들면 부모가 갓난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경우)이 되는 것을 '無理心中'이라고 한다.[4] 모모이가 AV 작품을 찍으면서 번 수입들은 전부 동거하고 있던 프로듀서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사망 직전 지인에게 자신은 저금이 500만엔밖에 없었다고 한다. 상당한 수의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저금이 크게 모이지 않은 것은 관리하고 있던 프로듀서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에 대해서도 조사해본것 같지만 사망한 시점에서는 이미 관계는 끊어진 듯 보이고 살해할 동기도 없어보여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5] 사카이가 한 학년 위인데 빠른년생인 듯 싶고 당시에 모모이는 사카이를 알고 있었지만 사카이는 모모이를 알고 있지 않았다.[6] 이 남성은 아내와 자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