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 이후 해란구에서는 중국공산당의 반체제투쟁이 전개되고 있었고 일본군과 만주군이 한인과 한족을 수시로 학살했다. 1950년대부터 오랫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1년 2~3개월간 94차례의 토벌 작전 과정에서 1,700~1,900여 명(모두 한인과 한족)이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주국의 영역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중국공산당의 협력자들에 대한 학살로 한국에서는 인지도나 그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1] 여기서 한인과 한족은 1930년대의 시점에서 민족으로 분류한 것이며 이 지역의 한인들은 1950년부터 중국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 분류에 따라 조선족으로 불리게 된다.[2] G2 사회주의 신중국에서는 걸핏하면 기의, 의거, 참화, 참안을 자주 써먹는데, 기의와 의거는 대규모의 봉기와역사적인 거사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참화와 참안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관점에서 불행한 사건을 침소봉대하는 정치선전용 낱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