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22:53:24

프론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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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의3. 각 밴드의 프론트맨

1. 개요

Frontman

밴드나 그룹에서 공연을 이끌어가며 그룹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주로 보컬리스트기타리스트가 맡는다. 라이브 이외에도 언론 인터뷰 등 다른 대외활동에서도 프론트맨이 밴드의 대변인 역할을 맡는다. 정형화되어 정해져 있는 직책이 아니기에, 그 정의 또한 두루뭉술한 편이다.

밴드에서 여성이 이 역할을 맡는 경우 프론트우먼(Frontwoman)[1]이라는 표기를 쓰기도 하며, 아예 성별 표현을 제외하고 프론트로 표기하는 매체도 꽤 있다.

역사적 의의로는, 1960년대의 록 밴드의 프론트맨들로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서 퍼포먼스가 정립되기 시작한다.

2. 정의

흔히 프론트맨이라고 하면 그룹의 리더 혹은 보컬리스트를 떠올리나, 모든 그룹이 프론트맨 = 리더 또는 프론트맨 =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좋은 프론트맨이 가져야 할 소양은 번듯한 외모, 화려한 언변, 외적인 카리스마와 퍼포먼스이나 이것이 밴드를 이끄는 리더의 소양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

프론트맨이 밴드의 주된 음악적인 흐름을 이끈다고 해도 밴드에 대한 관리 능력이 떨어지면 리더는 다른 멤버가 맡게 된다. 예를 들어 QUEEN의 프론트맨은 프레디 머큐리이며 음악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것 역시 프레디였지만, 스스로 단 한 번도 QUEEN의 리더임을 자부한 적이 없었으며[2] 실질적인 밴드의 리더는 유일한 퀸의 원년멤버이자 공식 석상 등에서 밴드를 대표하여 발언을 주로 도맡는 브라이언 메이였다. 밴드에서 프레디가 상대적으로 나중에 합류했다는 점도 있으나 음악 이외의 사생활이 워낙 바빴던 성격상 밴드를 규합하고 외부와의 업무를 하는 데 그리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

5 세컨즈 오브 서머비틀즈처럼 여러 멤버가 보컬을 겸하는 경우 밴드의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멤버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굳이 프론트맨을 꼽지 않는 그룹들도 많다.[3] 솔로활동을 한 아티스트 또한 프론트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본인이 밴드이고 본인이 리더이자 프론트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밴드의 인상을 좌우하는 직책이기에, 보통 밴드 하면 그 밴드의 프론트맨을 떠올리게 된다. QUEEN에서 존 디콘의 이름은 몰라도 프레디 머큐리는 알고, 롤링 스톤스에서 찰리 와츠는 몰라도 믹 재거는 아는 것 처럼 말이다. 록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흔히 ‘록밴드의 프론트맨’을 떠올린다면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관중들을 조련하며 공연을 이끌어 나가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대중음악계에서 퍼포먼스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1960년대더 후,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도어즈,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등의 밴드들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치아로 기타줄을 연주한다던지 기타를 이용 갖은 퍼포먼스롤 보였고,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는 특유의 윈드밀과 슬라이딩, 그리고 악기 부수기 등의 퍼포먼스로 후대의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4]. 특히,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가 기타나 관악기가 솔로 연주를 할때 특유의 막춤을 추는 퍼포먼스부터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무대 매너로 수많은 밴드부터 대중음악계의 다양한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보통 프론트맨의 이미지를 구축한 프론트맨을 뽑으라면, 믹 재거가 뽑히는 편이다. 1950년대에 등장한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본격적으로 퍼포먼스를 정립한 자들이라고 평가받는다.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도 떼창을 유도하거나 호응을 유도하는 등 이른바 ‘관객 조련’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70년대 이기 팝의 영향을 받아 무대 위 퍼포먼스는 더욱 강렬해지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섹스 피스톨즈시드 비셔스는 이기 팝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프론트맨이었다.[5]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이러한 선대의 프론트맨들의 영향을 받아 프론트맨들의 무대 매너들이 더욱 다채롭고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프레디 머큐리는 역동적인 몸짓과 여러 괴상한 구호들로 관중들을 조련해 나갔고[6], 앵거스 영은 무대 위를 머리를 흔들며 방방 뛰어다니거나 누워서 기타를 치기도 하였으며, 토킹 헤즈데이비드 번은 기이한 춤과 동작으로 무대를 장식했다.#[7] 너바나커트 코베인처럼 라이브 연주를 '일부러' 개판치면서 밴드의 인지도를 올린 경우도 있다.[8]

많은 밴드에서 프론트맨=보컬=작곡=리더 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예시로 오아시스가 있다. 밴드의 리더와 작곡을 맡은 건 노엘 갤러거[9]였지만 밴드의 프론트맨은 엄연히 노엘이 아니라 보컬인 리암 갤러거였다. 혹은 연주자 1명의 존재가 너무 독보적이고 나머지는 일방적으로 따르는 밴드의 경우 프론트맨이 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잉베이 말름스틴. 워낙 자의식, 콧대가 높고 자신이 부각되기를 바라는 제왕적 사고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로 보컬조차 자기 맘대로 뽑았다 해고했다 이러는 지라 사실상 잉베이가 잉베이 밴드의 프론트맨. 그 외에도 멕시코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 역시 자신이 중심이 되는 밴드 산타나를 이끌면서 필요할땐 보컬을 피처링해 싱글을 내놓는다. 산타나의 빌보드 hot 100 1위곡 Smooth, Maria Maria 모두 보컬을 피처링해와 대박이 난 케이스.

그룹에서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프론트맨이자 보컬이자 리더에게 치우쳐져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분명 밴드의 다른 구성원도 그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게, 연주자들은 본인들의 스타일이나 연주기법이 있을 지언정, 보컬처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알아챌만큼 자신만의 특색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주로 보컬이 프론트맨을 맡게 되는 것이다. 하술할 잉베이 말름스틴이나, 프라이머스의 레스 클레이풀처럼 순수하게 악기 연주실력과 작곡능력으로 자신의 밴드를 끌고다니며 간판역할을 하는 아티스트가 숱하지만 이를 인정받는 경우는 비교적 소수이다.

그만큼 팀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은 책임감과 멤버들을 아끼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현식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자신의 밴드 김현식과 돌개바람, 봄여름가을겨울등을 이끌고 직접 클럽을 돌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공연을 따내고 밴드 멤버들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앨범을 만들땐 멤버들에게도 자작곡을 하나씩 받아 싣는 등 멤버들에게 인망이 넓고 충성심을 얻어야 오래 밴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룹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멤버이다보니 수많은 밴드의 프론트맨들은 솔로 활동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가 음악적 전성기를 그룹 내에서 지냈거나 그룹 시절 때처럼 옆에서 조언해 줄만한 음악적 동료의 부재 등의 요인 때문에 솔로 활동은 음악적으로 존경받지 못하였다. 솔로 활동으로도 인정받는 프론트맨은 존 레논,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로버트 플랜트, 프레디 머큐리, 필 콜린스, 루 리드, 시드 바렛, 스팅, 피터 가브리엘, 브라이언 이노, 호소노 하루오미 등으로 몇 되지 않는다.

3. 각 밴드의 프론트맨

  • ☆:기타리스트
  • ★:베이시스트
  • □:드러머
  • ■:기타 포지션

[1] 대표적으로 블론디데비 해리, 푸지스로린 힐, 재니스 조플린 등이 있다.[2] 늘상 인터뷰 등에서 인터뷰어가 자신을 "퀸의 리더"라고 칭하면 곧바로 "나는 리더가 아니고 그냥 밴드 내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밴드 내에서 내가 차지하는 지분은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25%이다."라고 정정하기도 했다.[3] 물론 존 레논폴 매카트니가 대부분 노래의 작사/작곡을 맡고 리드 보컬을 맡는 등 프론트맨으로서는 나머지 보다 훨씬 유명하다.[4] 여담으로 악기 부수기 퍼포먼스는 의도한게 아니었다. 원래는 노래가 끝나고 기타를 높게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하려했는데 천장이 너무 낮은 나머지 기타가 부딪혀 박살이 났고 이를 퍼포먼스로 착각한 관객들이 환호를 하자 그 이후로 공연이 끝나면 악기를 부쉈다고 한다. 이후 드러머인 키스 문도 피트 타운젠트를 따라서 공연이 끝나면 드럼 세트를 박살냈다.[5] 시드 비셔스는 베이스도 제대로 칠 줄 모르는 베이시스트였지만, 무대 매너가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회자되곤 한다.[6] 흔히 ‘에-오’(Ay-oh) 구호라고 알려져 있다.[7] 데이비드 번의 이런 모습은 1980년에 등장한 그들의 걸작 Remain in Light의 성공부터 시작됐다고 한다.[8] BBC의 음악프로인 탑 오브 더 팝스에서 밴드에게 핸드싱크를 요구하자 빡친 멤버들이 노래를 이상하게 부르는 등 대놓고 깽판을 쳤다. 이후 오아시스와 뮤즈역시 이걸 따라했다.[9] 물론 자기 이름을 건 밴드에서는 당연히 노엘이 프론트맨이다.[10] 기타리스트로 더 유명하지만 10개가 넘는 곡에서 보컬로 참여했을 정도로 사실상 밴드 내 서브 보컬 대우를 받았다.[11] 보컬인 사이먼이 프론트맨을 맡는다. 다만 이 경우는 밴드의 창설자가 애초에 키보디스트인 닉 로즈와 베이시스트인 존 테일러이고, 사이먼은 이 두 사람이 주최한 오디션을 통해 뽑힌 보컬이었기 때문에 사이먼이 곧 리더라 보긴 어렵다. 사실상 음악을 주도하는 것은 공동 창설자이자 듀란 듀란이란 명칭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닉 로즈이다. 역시 창설자이며 밴드 이름을 직접 지은 존 테일러도 밴드의 대표자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존 테일러는 아름다운 외모 덕에 핀업 보이로서 매스컴을 장식해서 듀란 듀란 하면 존 테일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존 테일러가 잠시 탈퇴했을 때 사이먼은 닉 로즈와 함께 밴드를 지켰기 때문에, 밴드의 터줏대감으로서 리더 못지 않은 존재감을 갖고 있긴 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보통 프론트맨이란 단어를 리더로 번역해 왔고, 사이먼이 밴드에서 맏형이다 보니 사이먼이 리더의 이미지로 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12] 보컬인 데이브가 프론트맨이며, 인터뷰도 도맡아 하는 밴드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단, 밴드의 메인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마틴 고어가 음악의 방향성을 정하는 실질적인 리더이므로 프론트맨이 곧 리더가 아님을 보여 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13] 리치 블랙모어는 밴드의 오너로써, 디오는 가장 유명했던 시절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으로 밴드 역사 전체로 볼때 프론트맨은 리치 블랙모어가 맞으나, 밴드를 대표하는 프론트맨은 디오라는 부활의 김태원,이승철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다.[14] 한국에서는 메가데스의 마귀할멈 목소리 프론트맨으로 더 알려져있지만, 미국에서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이자 리프 메이커로 더 높이 평가받는다.[15] 메슈가라는 밴드의 정체성이 이 사람의 현란한 폴리리듬드러밍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사람 없이는 메슈가를 설명할 수 없다.[16] 보컬이 아닌데도 프론트맨이 된 경우다. 알다시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실력은 보컬을 하지 않아도 관객들을 사로잡을만큼의 실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미 헤이거 시대는 실제로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다.[17] 사실 밴드 전성기(1978년~1984년)에는 이 사람이 에디 밴 헤일런보다도 더 프론트맨 역할을 많이 맡았다. 회계, 재무 담당에다가 비주얼 담당까지 도맡아서 한국에서의 공기에 가까운 인지도와는 달리 밴 헤일런이라는 밴드를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놓은 프론트맨으로 평가받는다.[18] 사실 오지는 블랙 사바스보다는 솔로 경력을 통해 프론트맨으로써의 자질을 인정받은 케이스다.[19] 통상적으로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를 프론트맨으로 구분하지만, 모터헤드의 프론트맨 레미 킬미스터는 ‘비틀즈 멤버 넷 모두가 프론트맨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균형있는 밴드였다.[20] 다만 이쪽은 60년대 중후반부터 정신병 등 건강 문제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밴드를 이끌어가는건 동생인 데니스 윌슨칼 윌슨이었다.[21] 프론트맨 호칭에 대해 본인은 프론트 펄슨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22]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은 쟈니 로튼이긴 하였으나 시드 비셔스는 무대 위에서 자해를 하는 등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줬는데다가 펑크 록 그 자체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라 쟈니 로튼보다도 프론트맨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23] 키보디스트라는 마이너 포지션이고 팀의 창설이나 고정멤버도 아니었지만 순수한 실력과 경험치만으로 밴드를 대표하는 프론트맨으로 인정받은 케이스. 그 독재자 잉베이 말름스틴이 자기 앨범에 솔파트를 내준 실력자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24] 탈퇴 이후에는 데이브 스네이크 사보가 리더 겸 프론트맨을 맡고 있다.[25] 특이하게도 보컬인 톰 아라야의 존재감이 저 두 기타리스트한테 밀리는 편이다. 사실 이렇다할 프론트맨이 부각되지 않으면서도 팀의 정체성이 강하고 업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달린 몇 안되는 밴드이기도 하다.[26] 프론트맨으로서의 입지는 리암보다 적기는 하다.[27] 사실 크림은 슈퍼밴드의 이미지 때문에 누가 프론트맨인지를 따지기 어렵다. 에릭 클랩튼이나 진저 베이커 모두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이자 팀의 간판이었으니... 물론 그 셋중에서 잭 브루스가 가장 입지가 컸다.[28] 본인이 밴드의 주인으로 욕심을 안낸데다, 안셀모의 막장행각때문에 스스로 프론트맨의 이미지도 까먹고, 팀의 해체는 물론 다임백의 피살 사주 의혹까지 받는 바람에 현 시점에서는 안셀모 자체를 밴드의 흑역사로 간주하는 팬들까지 생겨났다.[29] 팀의 리드보컬이긴하나, 팀의 정체성 자체가 변태적인 다양성과 이를 주도하는 레스의 베이스 연주이다.[30] 이쪽은 시대별로 프론트맨이 바뀐 특이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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