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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1. 개요
鄭道昭(471 ~ 516)
북위의 인물. 자는 희백(僖伯). 사주(司州) 형양군(滎陽郡) 개봉현(開封縣) 출신. 삼국시대 조위의 장작대장 정혼의 9대손. 형양문령백 정희의 아들.
2. 생애
정도소는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여러 글을 두루 섭렵하였다. 처음에는 중서학생(中書學生)이 되었고, 비서랑(秘書郎)으로 옮겼다가, 주문중산(主文中散)으로 전임되었다. 이어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侍郎), 비서승(秘書丞), 겸중서시랑(兼中書侍郎)을 역임하였다.정도소는 효문제의 면한(沔漢) 일대 정벌에 종군하였다. 효문제가 현호(懸瓠)의 방장죽당(方丈竹堂)에서 신하들을 연회에 불러 잔치를 베풀었을 때, 정도소는 형 정의와 함께 앉아 있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술이 무르익자, 효문제가 노래하였다.
"백일(白日)이 하늘에 빛나 온 천하에 비추지 않는 데가 없으나, 강좌(江左) 한 귀퉁이만은 홀로 비치지 못하도다."
이에 팽성왕 원협이 이어서 노래하였다."성명(聖明)을 따라 형회(衡會)에 올라, 만국이 정성을 바쳐 안팎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도다."
정의가 노래하였다."구름과 우레 크게 떨쳐 하늘의 문이 열리니, 온 땅이 손님으로 와서 역법을 하나로 바로잡는도다."
형만(邢巒)이 노래하였다."순임금이 방패와 창을 들고 춤추니 천하가 돌아오고, 문덕(文德)이 멀리 미쳐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도다."
정도소가 노래하였다."황제의 교화가 한 번 북을 울리니 아홉 땅에 가득 차고, 해를 이고 하늘에 의지하여 육합(六合)이 청명하도다."
효문제가 또 노래하였다."저기 여분(汝墳)을 따라가던 옛 교화의 곧음을 본다 하나, 오늘날의 도풍(道風)의 밝음만 같지는 못하도다."
송변이 노래하였다."문왕(文王)의 정치와 교화가 강과 못에 빛나던 것, 어찌 오늘날의 큰 교화가 사방에 빛나는 것만 하겠는가."
이후 효문제가 정도소에게 이르기를,"짐이 비록 업무로 분주하여도, 여러 재능있는 준걸들과 더불어 시와 노래를 폐하지 않았으니, 마침내 형만(邢巒)에게 명하여 이를 모두 모아 서문을 짓게 하겠다. 경은 그 나이에 잇달아 집안의 상사(喪事)를 당하였으니, 짐이 문석(文席)을 돌아볼 때마다 항상 가슴이 애달프구나."
라 하였다. 뒤이어 정도소는 정식으로 중서시랑(中書侍郎)에 임명되었고,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로 승진하였다.선무제가 즉위한 후, 북해왕 원상이 사도(司徒)가 되자, 정도소는 낭야왕 원병(元秉)과 함께 그의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었다. 이후 정도소가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전임되었을 때, 상표하여 아뢰었다.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 다스림을 융성하게 하는 도리는 반드시 재능 있는 사람을 얻는 데 달려 있으며, 재능을 기르는 근본은 학문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자학당(國子學堂)의 집과 방이 겨우 마련되었을 뿐, 글을 읽고 가르치는 소리는 끊겨 버린 상태입니다. 또, 성 남쪽의 태학(太學)에는 한·위(漢魏) 시대의 석경(石經)이 무너져 잔해가 되었고, 잡초가 무성하여 아이들과 목동들이 이를 보고 탄식합니다. 뜻을 지닌 사람들은 마음으로 애통해하거늘, 하물며 신이 직접 그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어찌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하늘 같은 자애로움으로 굽어 살펴 주시어, 신의 미약한 뜻이 만에 하나라도 합당하다 여겨진다면, 다시 상서성과 문하성에 조서를 내려 영제(營制)의 모범을 의논케 하소서. 그리하면 오옹(五雍)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무너진 석경의 글도 며칠 안에 다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옛 경전을 제경(帝京)에 다시 세우고, 빼어난 모범을 후세에 전파하는 것은 천하를 가진 임금의 아름다운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광평왕 원회가 사주목(司州牧)이 되었을 때, 정도소는 대종정경 원광과 함께 주도(州都)로 임명되었다. 정도소가 다시 표를 올려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당우(唐虞)가 천명을 열어 나라를 세울 때에는 문덕(文德)을 근본으로 삼았고, 은(殷)과 주(周)가 다스림을 이룰 때에는 도예(道藝)를 먼저 세웠습니다. 따라서 예악(禮樂)이란 나라의 기초이므로 잠시도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나라가 문교(文教)를 널리 펼치니 사해(四海)가 그 마음을 바쳤고, 노(魯)나라가 주나라의 예를 지키니 강대국 제(齊)나라도 돌아와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분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번갈아 일어나, 오적(五籍)이 불타 없어지고 많은 유학자들이 죽임을 당하였으니, 인의(仁義)의 경전을 해치고 전쟁의 술법만을 귀히 여겼습니다. 천하가 무너져 흩어지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수십 년 동안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 이 때문입니다. 한나라의 고조도 진영 안에서조차 숙손통 등을 예우하며 불렀고, 광무제가 난세를 평정할 때에도 정중(鄭衆), 범승(範升)으로 하여금 동관(東觀)에서 서적을 정리하게 하였습니다. 위(魏)·진(晉)에 이르러서도 어찌 한 번이라도 문헌을 소홀히 하거나, 학문을 게을리하고 군대의 일만을 중히 여긴 적이 있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대위(大魏)가 일어났을 때에도 비록 무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 군마가 교외에 있었으나, 그래도 뛰어난 유학자를 불러 모으고 학교를 널리 세워 도의(道義)를 팔황(八荒)에 펼치고, 성덕(盛德)을 만국에 베풀었으므로, 교화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자가 없었고, 풍속을 굽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이제 성세를 타고 휴평(休平)의 기틀을 열고 무궁한 운수를 펼치며, 이(伊)·천(瀍)의 땅에 정립하여 보력(寶曆)을 새롭게 하였으니, 아홉 땅은 지극한 덕화의 조화를 느끼고, 사방은 격양가(擊壤歌)로 경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오랑캐 같은 민오(閩吳)가 강을 의지하고 교화를 막고 있으므로, 선제(先帝)께서 이에 무노(武怒)를 떨쳐 전차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궁중에서는 잠시 머무르며 전적에 마음을 두시어, 고(故) 어사중위 이표와 이부상서 임성왕 원징 등으로 하여금 뛰어난 유학자를 잘 선발하여 문교를 숭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원징 등이 조칙을 받들어 사문박사(四門博士) 40인을 두었고, 국자박사(國子博士), 태학박사(太學博士) 및 국자조교(國子助教)는 예전부터 이미 간택하여 임명했습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선제의 본래 뜻은 속히 이를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군국에 일이 많아 아직 학교를 세우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이 되었으니, 학관(學官)은 쇠퇴하고, 사술(四術)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하여 늙고 뛰어난 유학자들은 경전을 덮고 논하지 않으며, 속된 학문에 치우친 젊은이들은 근본을 잃고 지엽적인 것만 좇게 되었습니다. 출세와 경쟁의 풍조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오직 폐하께서는 밝고 사려 깊으시며, 그 혜안이 멀리 통달하시니, 교화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도리로써 이끌고, 먼 지방이 항복하지 않으면 문교를 베풀어 감화시키십시오. 또, 폐하께서는 경서와 전적에 마음을 두시고, 글과 책을 즐겨하시니, 그 교화는 헌원과 요임금을 뛰어넘으시고, 그 덕은 순 임금과 하나라보다 융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듭 중지(中旨)를 내려 학관을 세우도록 권면하시어, 건물은 이미 마련되었으나 학생들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신은 학문이 얕고 경서를 두루 통달하지 못했으나, 지난날 율령을 삭제하고 정리할 때 우연히 의논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삼가 옛 제도를 살펴보고, 옛 일을 상고하여, 학령(學令)을 참고로 정리해 마련하여 봉하여 올렸으나, 지금까지 회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학문이 폐한 지 여러 해라, 경학(經學)이 막혀 침체되었습니다. 바라건대 학령과 제도를 모두 조속히 시행하도록 조칙을 내리셔서, 교수(敎授)와 생도(生徒)가 의거할 바를 갖추게 하소서."
이에 조서가 내려졌다.엎드려 생각하건대, 대위(大魏)가 일어났을 때에도 비록 무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 군마가 교외에 있었으나, 그래도 뛰어난 유학자를 불러 모으고 학교를 널리 세워 도의(道義)를 팔황(八荒)에 펼치고, 성덕(盛德)을 만국에 베풀었으므로, 교화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자가 없었고, 풍속을 굽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이제 성세를 타고 휴평(休平)의 기틀을 열고 무궁한 운수를 펼치며, 이(伊)·천(瀍)의 땅에 정립하여 보력(寶曆)을 새롭게 하였으니, 아홉 땅은 지극한 덕화의 조화를 느끼고, 사방은 격양가(擊壤歌)로 경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오랑캐 같은 민오(閩吳)가 강을 의지하고 교화를 막고 있으므로, 선제(先帝)께서 이에 무노(武怒)를 떨쳐 전차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궁중에서는 잠시 머무르며 전적에 마음을 두시어, 고(故) 어사중위 이표와 이부상서 임성왕 원징 등으로 하여금 뛰어난 유학자를 잘 선발하여 문교를 숭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원징 등이 조칙을 받들어 사문박사(四門博士) 40인을 두었고, 국자박사(國子博士), 태학박사(太學博士) 및 국자조교(國子助教)는 예전부터 이미 간택하여 임명했습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선제의 본래 뜻은 속히 이를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군국에 일이 많아 아직 학교를 세우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이 되었으니, 학관(學官)은 쇠퇴하고, 사술(四術)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하여 늙고 뛰어난 유학자들은 경전을 덮고 논하지 않으며, 속된 학문에 치우친 젊은이들은 근본을 잃고 지엽적인 것만 좇게 되었습니다. 출세와 경쟁의 풍조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오직 폐하께서는 밝고 사려 깊으시며, 그 혜안이 멀리 통달하시니, 교화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도리로써 이끌고, 먼 지방이 항복하지 않으면 문교를 베풀어 감화시키십시오. 또, 폐하께서는 경서와 전적에 마음을 두시고, 글과 책을 즐겨하시니, 그 교화는 헌원과 요임금을 뛰어넘으시고, 그 덕은 순 임금과 하나라보다 융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듭 중지(中旨)를 내려 학관을 세우도록 권면하시어, 건물은 이미 마련되었으나 학생들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신은 학문이 얕고 경서를 두루 통달하지 못했으나, 지난날 율령을 삭제하고 정리할 때 우연히 의논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삼가 옛 제도를 살펴보고, 옛 일을 상고하여, 학령(學令)을 참고로 정리해 마련하여 봉하여 올렸으나, 지금까지 회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학문이 폐한 지 여러 해라, 경학(經學)이 막혀 침체되었습니다. 바라건대 학령과 제도를 모두 조속히 시행하도록 조칙을 내리셔서, 교수(敎授)와 생도(生徒)가 의거할 바를 갖추게 하소서."
"경이 유학을 높이고 학문을 두텁게 하려는 뜻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새 학령을 곧 반포하여 멀리까지 시행하도록 하라. 직무에 뜻을 두고 근심하는 바, 결코 관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할 만하다."
이에 정도소가 또 표하여 말하였다."삼가 생각하건대, 도읍을 중현(中縣)으로 옮긴 지 장차 10년이 되어가지만, 벼슬아치들은 학업(學業)을 잃고, 조두(俎豆)의 예의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밝은 조정에도 교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나라의 빛을 드러내고 교화를 널리 펴서 백성을 의(義)의 길로 이끄는 도리가 아닙니다. 신이 지난 해부터 줄곧 학령(學令)을 청하고 학생의 설치를 아뢰었으나, 거듭 여러 차례 올렸어도 아직 한 번도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신의 식견이 얕고 벼슬을 넘보아 감히 자리에 앉은 탓으로, 감화를 일으킬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학관(館宇)은 수리되었고, 학생들의 거처도 대체로 지어졌으며, 박사(博士) 또한 보임되었으니, 충분히 강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새로운 학령이 아직 반포되지 않았더라도, 청컨대 옛 제도에 따라 임시로라도 국자학생(國子學生)을 두어 점차 학업을 열어가게 하소서. 그래야만 교화가 법도를 갖추어 시행되고, 유학의 풍속이 무너지지 않으며, 후생들이 새로 옮긴 도읍의 뜻을 이해하게 되고, 학도들이 새로운 배움의 이익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자의 사당이 이미 완성되었으니 석전(釋奠)의 시작과 읍양(揖讓)의 풍속은 새로운 학령을 내려 시행하소서."
그러나 조정에서는 답하지 않았다.그 뒤, 정도소는 비서감(秘書監)•형양읍중정(滎陽邑中正)에 임명되었다가, 밖으로 나가 평동장군(平東將軍)•광주자사(光州刺史)를 지냈다. 이후 평동장군의 직함은 유지하면서 청주자사(青州刺史)로 옮겼다가, 다시 조정에 들어와 비서감이 되었고, 평남장군(平南將軍) 더해졌다.
희평 원년(516년), 정도소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조정에서는 그를 진북장군(鎮北將軍)•상주자사(相州刺史)로 추증하고, 시호는 '문공(文恭)'이라 하였다.
정도소는 시(詩)와 부(賦)를 짓는 것을 좋아하여 모두 수십 편을 남겼다. 그가 두 주(州)를 다스릴 때에는 정무가 관대하고 후하여 위엄과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으므로, 관리와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