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2 00:11:04

신석정

한국의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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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 운율·정서를 계승한 시인.[2] 조국 광복 염원·의지 및 부정적 현실 극복을 다룬 시인.[3] 정치적 이념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한 유파. 특정 사상이나 계급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반발하며 등장했으며, 시 동인지 《시 문학》을 중심으로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했다.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의 시인이 활동했다.[4] 부정적 현실을 지식인의 관점에서 비판한 소설이 많았다. 특히 의식의 흐름 기법이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이상날개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있다.[5] 장편소설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부정적 인물이 득세하던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이때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채만식태평천하, 염상섭삼대가 있다.[6] 계몽주의에 기반한 농촌 계몽 소설, 향토적 삶을 다룬 향토적 농촌 소설, 식민지 지배와 통치 제도의 억압성과 부조리로 인한 농촌의 현실을 다룬 현실 비판적 농촌 소설이 있다.[7] 만주 사변 이후 더욱 극심해진 일제의 사상 통제와 검열을 피해, 역사적 사건을 다루어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8]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어 아예 한국어 사용 자체를 금지할 지경에 이른 관계로 주제 의식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몇몇 단편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순수 소설인 황순원'별'이 1941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전후세대(1920년대생) 작가들은 체계적인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다른 세대와 비교도 안되는 굴곡진 인생 경험을 했음에도 이를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었고 이전 세대와 60년대 부상한 한글세대(김승옥 등) 사이에 끼어버렸다.
고전문학 · 장르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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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eaea,#2d2f34> 이름 신석정(辛夕汀)
본명 신석정(辛錫正)
본관 영월 신씨[1]
출생 1907년 8월 15일[2]
전라북도 부안군 동도면 동중리
(現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3]
사망 1974년 7월 6일 (향년 66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4] 자택[5]
아호 석정(夕汀, 釋靜, 石汀)·석지영(石志永)
호성(胡星)·소적(蘇笛)·서촌(曙村)
학력 중앙불교전문강원 (국어국문학 / 졸업)

1. 개요2. 생애3. 목가적 시인?4. 시 목록
4.1. 아직 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4.2. 꽃덤불
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시인. 본관은 영월(寧越). 대중들에게 목가(牧歌)적인 시를 저술한 시인으로 알려져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시집 "촛불"과 시 "들길에 서서"와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가 있다.

신경림 전 국회의원은 그의 조카이며[6], 독립유공자 신헌은 그의 5촌 당숙(堂叔)이다.

2. 생애

1907년 8월 15일 전라북도 부안군 동도면(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서 아버지 신기온(辛基溫, 1874. 10. 5 ~ 1958. 10. 27)[7]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윤옥(李允玉, 1870. 8. 20 ~ 1930. 2. 6)[8]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9]으로 태어났다. 중앙불교전문강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전라북도 문학상' 심사 도중에 쓰러져 치료를 받다가 1974년 7월 6일 전라북도 전주시 남노송동 자택에서 고혈압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27년 『기우는 해』로 문단에 데뷔
1931년 10월 『시문학詩文學』3호에 「선물」 발표
1939년 첫 시집 「촛불」 발간
1947년 제2시집 「슬픈목가」발간
1956년 제3시집 「빙하」발간
1967년 제4시집 「산의 서곡」발간
1970년 제5시집 「대바람 소리」[10] 발간

3. 목가적 시인?

신석정이 그저 목가적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창씨개명까지 거부하고 검열과 회유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시를 저술했다. 이후 4.195.16 때도 독재에 저항하면서 강한 생애를 살았다.

널리 알려진 시가 목가적 시가 대부분인 탓에 저항시인의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저항시는 물론 다양한 장르의 시를 쓴 시인으로 목가적 시인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4. 시 목록

4.1. 아직 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光線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촛불을 켜지 말으서요
그리고 나의 작은 冥想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林檎처럼 붉어질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羊들이 낡은綠色寢臺에 누어서
남은 해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湖水우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이 나려오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
늙은山의 고요히 冥想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오는 그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있는 기인뚝을 거처서 들려오든 물결소리도 차츰 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인 가을부터 우리田園을 訪問하는 가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읍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석긴
자장가를 듣고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읍니다
어머니 아직촛불을 켜지 말으서요
인제야 저 숲넘어 하늘에 작은 별이하나 나오지 않었읍니까?

4.2. 꽃덤불

태양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5. 여담

  • 2009년 4월 16일 오마이뉴스 기사, 2009년 4월 23일 전북일보 기사 등 신석정 시인이 신경민 전 국회의원의 "작은 할아버지"로 소개되는 기사가 종종 있다. 그러나 2019년 11월 24일 전북일보 기사에서 신경민 전 국회의원이 직접 "신석정 시인은 저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 꽃이 가득한 윗집의 조부 항렬 할아버지였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신석정이 부원군파(府院君派) 31세 석(錫) 항렬, 신경민이 부원군파 33세 경(京) 항렬로 신석정 시인이 신경민 전 의원에게 조부뻘이 되는 것은 맞으나, 족보상으로 26촌 지간이나 차이가 난다. 한편, 신경민 전 국회의원의 작은 할아버지는 심석(心石) 신영엽(辛泳曄, 1911. 4. 10 ~ )씨이다.


[1] 부원군파(府院君派) 31세 석(錫) 항렬.[2] 음력 7월 7일.[3] #. 영월 신씨 집성촌이다.[4] 1989년 완산구가 신설되어 완산구에 편입되었다.[5] 당시 자택이 있던 남노송동 175-27번지에 여전히 비사벌초사 신석정가옥이 남아 있다.[6] 동생 신석우(辛錫雨, 1915. 5. 11 ~ 1965. 12. 25)의 3남 3녀 중 다섯째.#[7] 간재(艮齋) 전우의 문인이다.[8] 이재선(李載善)의 딸이다.[9] 형 신석갑(辛錫鉀, 1904. 1. 14 ~ 1975. 11. 5), 동생 신석우(辛錫雨, 1915. 5. 11 ~ 1965. 12. 25), 누이 신석주(辛錫珠) 등이 있다.[10] 마지막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