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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선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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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창덕궁 선정전
昌德宮 宣政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수량 1동
지정연도 1985년 1월 8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 1405년 창건, 1647년 중건
파일:창덕궁 선정전2.jpg
파일:창덕궁_선정전_근경.jpg
파일:창덕궁 선정전.jpg
<colbgcolor=#bf1400> 선정전[1]

1. 개요2. 용도3. 역사4. 정문5. 구조

[clearfix]

1. 개요

창덕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보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이름의 뜻은 "정치(政)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宣)"이다. 선정을 베풀라는 뜻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그 ‘선정’은 ‘善政’이다.

2. 용도

편전이나 행사 공간으로도 많이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왕비가 양로연을 여는 일이 꽤 있었으며, 신하들의 아내를 불러 잔치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친잠[2]을 행한 뒤 하례를 받는 일과 책보[3]를 받는 의례 등을 거행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내전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왕실에서는 선정전을 혼전 / 빈전[A]으로 주로 사용했다.

3. 역사

파일:동궐도 선정문.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 선정전 일곽[5]
1405년(태종 5년) 창덕궁 창건 때 지었다. 처음엔 조계청(朝啓廳)으로 부르다가 1461년(세조 7년) 12월에 이름을 선정전으로 고쳤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8년(광해군 원년)에 복구했으나, 인조반정 때 다시 화재를 입어 1647년(인조 25년)에 재건한 후 오늘에 이른다.

4. 정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창덕궁 선정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구조

  • 현재 남아있는 궁궐 건물 중 유일하게 청기와 지붕이다. 왜냐하면 1647년(인조 25년)에 다시 지을 당시, 인경궁의 편전 광정전 건물을 헐어다 지었기 때문이다. 인경궁은 광해군궁궐 건설에 집착하여 세운 새 궁궐[6] 중 하나로 대부분의 지붕을 염초를 사용한 청기와로 만들었다. 인조 시기 인경궁을 훼철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을 창덕궁창경궁 재건 공사에 활용했는데 선정전도 그 중 하나였기에 청기와 지붕인 것이다. 이 때 옮겨온 창덕궁과 창경궁의 건물들은 이후 순조 때 일어난 화재로 거의 대부분이 불탔지만 선정전만큼은 옮겼을 때 모습 그대로이다. 즉, 유일한 청기와 건물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경궁 전각이다. 사족으로 같은 청기와 건물인 인경궁의 정전 홍정전은 몸체가 많이 바뀐 후[7] 내전의 경훈각 건물이 되었는데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졌다.

파일:1956년의 선정전.jpg}}} ||
<colbgcolor=#bf1400> 1956년, 한국전쟁 직후에 찍은 선정전의 모습
파일:1980년대 선정전.png}}} ||
파일:1980년대 선정전 내부.jpg
||
바뀐 선정전 외부(1980년대의 모습) <colbgcolor=#bf1400> 바뀐 선정전 내부(1980년대의 모습)
순종 연간에 내, 외부를 서구식으로 개조했다. 창호문도 유리으로 바꾸고, 내부에 카페트를 깔았으며, 위에 언급한 것처럼 복도각옥좌의 단도 없앴다. 또한 벽체 일부를 개조하고 앞 마당에 잔디를 심는 등 원형을 많이 변형시켰다. 그마저도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무너질 뻔 하기도 했다. 이후 부분 보수를 거쳐 1997년에 일부 달려있는 전구를 제외하고,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파일:선정전 내부.png}}}||
<colbgcolor=#bf1400> 내부 복원 이전 선정전
파일:20220911_154058.jpg}}} ||
내부 복원 이후 선정전
내부는 칸막이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뚫려있으며 대들보 위를 우물천장으로 가려 서까래가 바로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실내에도 단청을 칠하여 보존성을 높임과 동시에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제일 북쪽 중앙에 옥좌가 있으며 당가[9]를 설치하여 권위를 돋보이게 했다. 옥좌는 경복궁 사정전처럼 단 위에 있다. 일제 시기에 단이 철훼되었고, 1997년 선정전 일곽 복원 시에도 단순하게 옥좌만 놓였을 뿐, 단은 복원되지 못했다가 2021년 ~ 2022년에 와서야 복원되었다. 다만 기본적인 단청만 칠해져 있고, 세세한 부분은 아직 도색되지 않았다. 당가 위에는 봉황 두 마리 조각이 걸려있다.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내 손안에 서울.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세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 조선시대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던 의례.[3] 존호를 올릴 때 함께 올리던 옥책과 금보를 말한다. 책담는 보따리 말고[A] 혼전(魂殿): 임금왕비 신위를 임시로 봉안하던 곳.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이나 왕비의 을 모시던 곳.[5] 붉은 원이 원래의 선정문이고 푸른 원이 현재 선정문이다.[6] 인경궁, 경덕궁(영조 연간에 경희궁으로 바뀐다.), 자수궁.[7] 이런 전각을 옮길 경우엔 옮긴 후에도 원래 용도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창덕궁엔 이미 인정전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없어 건물의 골격을 바꾼 뒤 다른 용도로 사용한 듯 하다.[A] 혼전(魂殿): 임금왕비 신위를 임시로 봉안하던 곳.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이나 왕비의 을 모시던 곳.[9] 옥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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