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15:24:33

창덕궁 취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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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취한정
昌德宮 翠寒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창건시기 미상
파일:취한정.png
<colbgcolor=#bf1400> 취한정#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소요정, 농산정, 취규정, 청의정, 태극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 후원정자이다. 취규정옥류천 사이에 있다. 임금이 옥류천 우물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든 정자이다.

2. 이름

'취한(翠寒)' 뜻은 술먹고 취하는 게 아니고 '푸르고(翠) 춥다(寒)'이다. '취'는 '비취'란 뜻인데 여기서는 의미가 넓어져 비취색, 즉 푸른색을 나타낸다. '푸른 나무들(蒼翠)이 추위(寒)를 업신여긴다(凌)'는 뜻의 사자성어 '창취능한(蒼翠凌寒)'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금은 취한정 주변에 느티나무가 무성하지만 예전에는 소나무가 울창했다. 그래서 여름에도 시원했으며 심지어는 서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3. 역사

지은 때는 정확히 모르나, 숙종이 취한정을 주제로 시 《취한정제영(翠寒亭題詠)》를 지은 것을 보아 숙종 때나 그 이전에 건립한 듯 하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 1층[1]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총 3칸이다. 가운데 칸 서쪽 부분으로만 실내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칸 하단부에는 장초석을 깔고 그 앞에 2단 짜리 돌계단을 놓았다.
  •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추녀마루, 내림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용두, 취두, 잡상은 올리지 않았다. 공포를 두지 않고 납도리로 엮은 민도리 양식으로 지었다. 처마는 홑처마이다.

파일:동궐도 취한정.png}}} ||
<colbgcolor=#bf1400> 《동궐도》의 취한정
사방이 트여있으며 바닥은 전부 마루이다. 단, 《동궐도》에는 가운데 칸만 마루이고 양 옆에 온돌방이 있는 모습임을 보아 후대에 지금처럼 바뀐 듯하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만들었다.
  • 모든 칸 하단부에 난간을 설치했다. 실내로 출입할 수 있는 가운데 칸 남쪽 부분에는 가운데에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옆에 풍혈을 뚫은 난간을 짧게 만들었다. 나머지 칸의 난간은 전부 머름 형태이다.
  •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며, 가운데 칸 남쪽 부분의 도리에 걸려있다.
  • 바깥 쪽 기둥마다 주련을 걸었다. 총 12개였는데 하나가 사라져 지금은 11개이다.[2]
  • 주련마다 를 적어놓았다. 취한정의 아름답고 한가로운 풍경을 노래한 내용이다.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一庭花影春留月 (일정화영춘유월)

    뜨락에 가득한 꽃 그림자는 봄에 머문 달이요


    滿院松聲夜聽濤 (만원송성야청도)

    정원 가득한 소나무 소리는 밤에 파도소리 듣는 듯 하네


    九天露湛金盤重 (구천노담금반중)

    높은 하늘의 이슬이 짙어 금 쟁반이 무겁고


    五色雲垂翠盖凝 (오색운수취개응)

    오색구름 드리워 푸른 지붕을 감싸네


    寶扇初開移玉座 (보선초개이옥좌)

    보배로운 부채 처음 펼칠 때 임금께서 오시니


    華燈錯出暎朱塵 (화등착출영주진)

    들쑥날쑥한 화려한 등불이 붉은 장막을 비추네


    鸞輿逈出千門柳 (난여형출천문류)

    난여[3]는 멀리 천 개 대문의 버들을 지나고 나와


    閣道廻看上苑花 (각도회간상원화)

    각도[4]에서 고개 돌려 상원의 꽃을 바라보네


    種成和露桃千樹 (종성화로도천수)

    이슬 머금은 천 그루 복숭아를 심어 두고


    借與摩霄鶴數群 (차여마소학수군)

    높이 하늘을 나는 학 여러 마리에게 내어 주었네


    拂水柳花千萬點 (불수류화천만점)[5]

    물을 스친 버들 꽃이 천만 송이 피었고


    隔林鶯舌兩三聲 (격림앵설양삼성)

    숲 너머 꾀꼬리들이 두 세 마디 씩 울음 우네

5. 여담

  • 위에 언급했듯, 숙종은 취한정의 여름 경치를 소재로 한 《취한정제영(翠寒亭題詠)》을 지었다. 《궁궐지》에 실려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綠陰芳草政堪賞 (녹음방초정감상)

    푸른 꽃과 나무는 정말 감상할 만하고


    檻外長留瀑布聲 (함외장류폭포성)

    난간 밖에 폭포 소리가 오래 들린다


    驟雨O過風暫歇 (취우O과풍잠헐)

    소나기 방금 지나고 바람이 잠시 멎었는데


    園中葉葉聽蟬鳴 (원중엽엽청선명)

    정원의 잎들마다 매미우는 소리 들린다


    森森簇簇總環亭 (삼삼족족총환정)

    빽빽이 우거져 모두 정자를 두르니


    冒雪凌寒色愈淸 (모설능한색유청)

    눈보라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아 빛이 더욱 맑구나


    愛爾獨持君子節 (애이독지군자절)

    너 홀로 군자의 절개를 지킴을 사랑하니


    不渝夷險一心貞 (부유이험일심정)

    평탄하든 험하든 달라지지 않고 한 마음으로 곧구나.

  • 위의 를 읽고 감탄한 정조가 시 《취한정》을 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澗翠空濛開畵境 (간취공몽개화경)

    푸른 계곡에 안개 끼어 아른아른 그림같은 경치 열어 주니


    庭松偃蹇聞琴聲 (정송언건문금성)

    뜨락의 소나무 솟은 채 거문고 소리 듣도다


    佳山未許遊人到 (가산미허유인도)

    아름다운 산은 노는 사람이 오기를 허락하지 않고


    可愛幽禽隔樹鳴 (가애유금격수명)

    숨은 새들이 나무 저편에서 우는 것이 사랑스러워라


[1]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2] 정확한 분실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57년에 작성한 《각궁주련조서》에도 1개를 잃어버렸다고 나와있다.#[3] 鸞與. 난새방울을 단 임금의 수레이다.[4] 閣道. 복도같은 개념이다.[5] 이 구절의 뒷부분을 잃어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이 곳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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