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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rnhorst-Klas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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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rnhorst 샤른호르스트 | Gneisenau 그나이제나우 |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전함.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의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의 이름을 계승했으며 독일군의 재무장 시 나치 독일 해군 증강 계획인 Z 계획의 일환으로 건조되었다.2. 제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Schlachtschiff der Scharnhorst-Klasse | ||
이전급 | L 20 α급 (취소), 바이에른급 | |
다음급 | 비스마르크급 | |
기준배수량 | 32,600톤 | |
만재배수량 | 38,700톤 | |
전장 | 235m | |
전폭 | 30m | |
흘수 | 9.69m[1] | |
출력 | 157,811I마력 (111,717kW) | |
최고속력 | 31노트 (약 57km/h) | |
항속거리 | 샤른호르스트 | 19노트(약 35km/h)에서 13,100km |
그나이제나우 | 19노트(약 35km/h)에서 11,500km | |
동력 | 기관 | 수관식 보일러 12기 |
증기 터빈 3기 3축 | ||
추진 | 직경 4.8m 3엽 스크류 프로펠러 3기 | |
승조원 | 총원 | 1,669명 (1,840명까지 증원 가능) |
장교 | 56명 | |
수병 | 1,613명 | |
무장 | 주포 | 28cm 54.5구경장 SK C/34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
부포 | 15cm 55구경장 SK C/28 2연장 부포탑 4기 (총 8문) 15cm 55구경장 SK C/28 단장 부포좌 4기 (총 4문) | |
대공화기 | 10.5cm 65구경장 SK C/33 2연장 대공포탑 7기 (총 14문) | |
3.7cm 83구경장 SK C/30 2연장 기관포좌 8기 (총 16문) | ||
2cm 65구경장 SK C/30 2연장 기관포좌 5기 (총 10문) → 2cm 65구경장 SK C/38 2연장 기관포좌 19기 (총 38문) | ||
어뢰 | 53.3cm 3연장 수상어뢰발사관 2기 (총 6문) | |
장갑 | 측면 | 주장갑 350mm 하부 170mm 상부 45mm |
장갑함교 | 측면 300mm 천정 200mm 관측창 350mm 해치 220mm | |
갑판 | 주갑판 95mm 상갑판 50mm 흘수선 경사장갑 105mm | |
주포탑 | 전면 360mm 측면 200mm 후면 180mm 천정 180mm 바벳 350mm | |
부포탑 | 전면 140mm 측면 60mm 후면 60mm 천정 50mm | |
함재기 | 아라도 Ar 196A-3 수상기 3기 | |
함재기 시설 | 캐터펄트 1기 |
3. 개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배하면서 독일 제국 해군이 붕괴된 후 1920년대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가해군에서는 해군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이었고 프랑스와 소련이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여기에 대처할 예비적인 건함 설계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1차대전 당시에 설계까지만 진행된 에르자츠 요르크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30.5cm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한 배수량 19,600t의 순양전함을 1928년에 설계했다.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고 나치 독일이 된 독일은 나치 독일 해군에게 자신은 바다에서 영국 해군과 제해권의 향방을 가리기 위해 함대결전을 일으킬 목적으로 대규모의 함대를 만들 생각이 없으며 독일의 해양통상로를 위협하는 프랑스 해군과 제한적인 전투를 진행할 목적으로 적당한 규모의 함대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후속작인 D급 중순양함 2척을 건조하라고 지시했다. D급 중순양함은 기존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배수량을 2만톤으로 늘리고 장갑을 크게 증설하여 방어력을 높히고 최고속도도 29노트로 증가시킨 군함이었다. D급 중순양함은 1934년 1월 25일에 주문이 들어가서 1934년 2월 14일에 건조가 개시된다.
그러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뚫고 나치 독일이 건조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예상과는 달리 영국 해군을 비롯한 열강들의 해군에 엄청난 놀라움을 주었으며 즉시 대응할만한 군함을 찾아내거나 건조에 돌입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당장 프랑스는 됭케르크급 전함을 2척이나 건조하기 시작했고 D급 중순양함이 여기에 대해서 전혀 상대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따라서 나치 독일 해군의 수장인 에리히 레더는 D급 중순양함의 배수량을 늘리고 3번째 주포탑을 장착해서 28cm 주포를 9문으로 늘려서 됭케르크급 전함을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 아돌프 히틀러는 방어력 강화 및 내부 구조 변경에는 동의했으나 주포탑 증설에는 반대했으나 결국 1934년 2월에 암묵적으로 승인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미 D급 중순양함부터 베르사유 조약의 제한을 본격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영국과 해군 조약을 새롭게 체결해서 기존 조약의 굴레를 벗어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영국-독일 해군조약을 1935년에 체결하게 된다.
일단 새로운 전함을 건조가능하게 될 예정이었으므로 배수량 29,000t을 가지며 28cm 3연장 주포탑 3기를 설치해서 총 9문의 주포를 탑재하는 설계안이 나왔고 D급 중순양함은 1934년 7월 5일에 취소되었고 D급 중순양함에 부여할 예정이었던 함명도 다른 군함에 쓰기로 하고 1차대전 시기의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에서 가져온 함명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새로운 전함의 함명으로 선택되었다. 전함을 건조할 조선소도 킬과 빌헬름스하펜에 있는 두개의 업체로 지정되었으나 14개월 정도 군함의 건조가 지연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독일 해군조약 체결을 기다리기 위한 것도 있었고 D급 중순양함이 취소된 곳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정리 및 개편작업이 진행되었으며 대형 군함의 설계 및 건조가 10여년 이상 단절되었기에 실제 건조에 돌입하자 설계 변경이 매우 잦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되자 주력함의 주포 구경 한계가 40.6cm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탑재할 주포를 교체하는 것을 생각하고 곧 38cm으로 주포를 교체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38cm 주포는 아직 개발단계였고 주포탑 설계도 확정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서 실제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장착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모될 상황이었으며 과거의 건함 경쟁에서 보듯이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의 주포 구경 확대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당장 장착이 가능한 28cm으로 일단 주포를 장착한 후 나중에 38cm으로 주포를 교체한다고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이 변경되었다.
주포 결정의 혼란 속에서 기존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주포인 28cm 52구경장 SK C/28 3연장 주포탑보다 성능이 좋은 28cm 54.5구경장 SK C/34 3연장 주포탑으로 주포가 변경되는 이득이 있었으나 나중에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주포로 채용되는 38cm 51.66구경장 SK C/34와 주포탑 바벳 및 포탑링 규격등 주포 교체에 필요한 각종 조치를 미리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손해도 발생했다. 결국 1942년 전함 그나이제나우를 수리하면서 38cm으로 주포 환장을 하려고 하니까 선체를 연장하고 주포탑 바벳을 강화하며 전기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의 각종 조치 및 시간이 필요했으며 비용도 증가하여 1943년에 주포 교체 시도가 포기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마켄젠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설계가 완성되었으나 1차대전 방식 설계를 제대로 수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디젤 엔진을 채용하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증기 터빈으로 동력기관을 바꾸면서 동력기관 설치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있었던 어뢰방어대책인 삼중 함저 바닥과 측면의 삼중 격벽도차 채용하지 못해서 포탄 및 어뢰 방어에 취약점을 드러냈으며 실전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4. 특징
초기 샤른호르스트의 모습은 새하얀 모습으로, 마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연상시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가져 '백색의 전함'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번은 어떤 영국인이 영국 해협 돌파작전 당시 안개낀 영국 해협을 조용히 통과하는 샤른호르스트를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마치 중세시대의 한 채의 거대하고 요새화된 고성을 보는 듯한 엄청난 아름다움을 가진 배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훗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프랑스나 영국의 것이 아닌 무려 크릭스마리네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
38cm SK C/34 2연장 주포탑으로 주포를 교체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예상도 |
본래 주포로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탑재된 것과 같은 38cm SK C/34 2연장 3포탑 6문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전력 획득을 지연시킬 수는 없어서[2] 당대 전함과 동급의 350~400mm급 주포를 탑재하지 못했고, 28cm SK C/34 포 9문을 주포로 얹었다. 따라서 순양함 이하 함급이나 자체 무장이 빈약한 항공모함을 상대로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영국의 정규 전함 상대로는 열세였다. 건조 시기에 당초 설계에 비해 배수량이 크게 늘어서 침수 부위가 커졌고 내파성이 악화되었다. 후에 선수를 경사진 형태의 아틀랜틱 보우(Atlantic Bow)로 교체하면서 약간 더 나아졌다. 그럼에도 샤른호르스트의 속력은 31.5노트로 빠른 기동력을 가지고 있고, 28cm(약 11인치) 주포는 구경은 작지만 분당 3.5~4발 이라는 중순양함 수준의 빠른 연사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유격전술에 안성맞춤인 전함.
5. 활동
6. 동형함 목록
함명 | 기공 | 진수 | 취역 | 비고 |
샤른호르스트 (Scharnhorst) | 1935년 6월 15일 | 1936년 10월 3일 | 1939년 1월 7일 | 1943년 12월 26일 노스케이프 해전 당시 침몰 |
그나이제나우 (Gneisenau) | 1935년 5월 6일 | 1936년 12월 8일 | 1938년 5월 21일 | 1945년 3월 23일 고텐하펜[3] 연안 봉쇄용으로 자침 |
- 1번함(샤른호르스트)의 자세한 활동내역은 샤른호르스트(전함) 문서 참조.
- 2번함(그나이제나우)의 자세한 활동내역은 그나이제나우 문서 참고.
28cm 주포 9문씩을 장비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노르웨이 전역에서 순양전함 리나운(381mm 주포 6문 장비)와 교전을 벌이고는 도망간 적도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리나운은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그나이제나우는 주포 1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주포탄의 위력은 리나운이 훨씬 강하지만 리나운은 순양전함이기 때문에 장갑이 전함보다는 약하다. 단순 계산으로 381mm 주포 6문한테 28cm. 주포 18문이 붙은 것이고, 샤른호르스트의 28cm SK C/34 주포는 15.1km 거리에서 336mm의 관통력이 나온다. 즉, 15.1km에서라면 리나운을 충분히 관통 가능하다.[4] 따라서 해볼만한 싸움이었으나, 두 전함의 목적은 상륙이 완료될 때까지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고, 리나운은 2차 나르빅 해전의 나비효과까지 일으키는 대 판정승을 거뒀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낚인 셈이 되었다.
물론 그냥 낚였다고 보기엔 좀 애매한 것이 라나운에게 입은 피해로 인해 샤른호르스트급 두척이 둘 다 내빼버리자 글로우웜 때문에 빠져야했던 아트미랄 히퍼를 포함한 모든 주력함이 전선에서 빠지게 되었고 남아있는 함정들은 영국 해군에게 말그대로 일방적으로 사냥당했기 때문이다. 이때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크릭스마리네는 아무것도 못하고 유보트만 믿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영국군 함선 분류표에는 순양전함으로 분류되어 있고[5], 이게 주로 세간에 퍼졌다. 덕분에 일부 독일계 사이트에만 전함으로 기록되는 중. 주포의 위력 역시 11인치라 저평가를 받은 것일 뿐 현측 관통력 한정으로는 꽤 강력했다. 다만 카테고리상의 부실해보이는 스펙과 전함 상대로 제대로 된 활약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이런 취급을 받은 꼴. 사실 개념상으로도 샤른호르스트급은 순양전함이 될 수 없다. 순양전함은 당대 기술력의 한계로 화력, 장갑, 항속을 모두 챙길 수 없어서 셋 중 장갑을 포기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갑을 덜었으면 덜었지 화력은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설령 건드린다 하더라도 포문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지 구경을 줄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6]
주장갑대인 320mm 구역 바로 위는 45mm밖에 되지않으며 갑판도 최대 140mm 정도로 두껍지는 않았다. 비스마르크급과 동일한 구식설계의 취약성을 보였다는 것. 아래에서 서술된 샤른호르스트의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보일러실 타격은 이 부위를 그대로 관통당해 발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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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장갑 구조 |
후에 RAF의 공습으로 손상된 그나이제나우를 뒤늦게서야 14.96인치의 380mm로 환장할 계획이었으나... 히틀러의 대형함 폐기명령에 그나이제나우의 환장계획은 좌절되고, 3번 포탑은 육상에 설치된다.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함께 독일 수상함대의 최신형 전함으로 핵심전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국 영국 해군[7].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는 곧 펼쳐질 바다 사자 작전과 대서양 작전에 대비해 브레스트항에 머물렀으나,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배하고 허구한 날 공습을 얻어맞자 영국 해협 돌파작전(케르베로스 작전)이라는 퇴각작전을 계획하고 독일 점령지 노르웨이로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와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및 Z형 구축함 5척과 함께 이동했다(영국은 이들이 밤에 움직일거라 판단 밤에는 영불해엽을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독일은 이미 계산하고 낮에 움직였다 이에 처음 보고가 들어왔을때 믿지 못했다). 브레스트에서 도버 해협을 거쳐서 북해로 진입하는 미친 계획이었는데 영국 해군이 유일하게 남은 비스마르크급 전함인 티르피츠를 견제하기 위해서 주력함대가 움직이지 못 하고 브레스트에서 출발한 사실 자체도 늦게 알려져 아무런 피해 없이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샤른호르스트는 기뢰를 2번 밟아 집결지인 노르웨이로 가지 못 하고 모항인 빌헬름스하펜에 임시로 기항하게 된다. 그나이제나우도 기뢰를 1번 밟지만 승조원들이 혼신의 힘으로 복구한 덕에 움직일 수 있었다. 도중에 정찰기에게 걸려 공습이 날아오긴 했으나 뭐 늘상 그렇듯 명중한 폭탄은 없다.
그러나 1943년 12월 26일에 결국 영국에서 소련으로 향하는 수송선단[8]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항[9] 했다가 노르웨이의 영국 스파이로부터 샤른호르스트의 출항소식을 전달받고 급히 출동한 영국함대[10]에 걸려 포격에 얻어맞고 수장당한다. 노스케이프 해전 참조.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샤른호르스트라는 함선은 잘 눈에 띄지도 않는데다가 갑자기 나타나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사라지는, 말그대로 눈엣가시인 존재라 미끼를 걸어 유인한 것이다. 사실 먼저 만났던 중순양함 HMS 노포크의 함대는 상대가 가능했으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바람에 샤른호르스트는 포기하고 만다. 샤른호르스트의 마스트에 포탄이 명중하며 레이더가 날아갔는데, 이때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11] 이후 Ar 196 A-3 정찰기의 오보로 킹 조지 5세급 전함 3번함 듀크 오브 요크 외 13척의 군함과 마주치고는 도망친다. 도망가던 중 HMS 듀크 오브 요크가 최대 유효사정거리에서 날린 포탄이 장갑판과 장갑판 사이를 뚫는 바람에 보일러실이 직격당해 속도가 8노트까지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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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갑대를 피해 관통한 14인치 포탄 |
보수반이 간신히 22노트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이미 영국함대에 포위당한 상황에서 결국 350발에 가까운 포탄들과 11발의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이 때 약 1,900명의 승조원중 36명[12]만 생존했다. 영국 해군의 함대는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총 55발의 어뢰를 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영국 해군 제독은 자신의 훈사에서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용감한 배'라며 높이 평가한다. 샤른호르스트는 영국군의 포격에 대화재가 일어나 선미부터 선수까지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영국 S급 구축함들의 어뢰 일제사격에서 11발의 어뢰가 명중하고, 그중 선수에 명중한 한 발이 큰 폭발을 일으켜 선수 부분부터 침몰한다. 현재 샤른호르스트의 잔해는 노르웨이 북쪽 약 103km 지점에 선수부분이 잘려나가고 뒤집어진 채로 위치하고 있다. 이는 당시 듀크 오브 요크의 전대 사령관 브루스 프레이저 제독의 기록과 오차가 컸는데, 당시 북해의 날씨상황 때문에 오차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샤른호르스트의 최후는 1943.12.26 오후 7시 45분 경.
사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속력은 28.3노트로 31.5노트로 순항할 수 있었던 샤른호르스트급에 비해 한참이나 느리다. 당시 샤른호르스트급보다 빠른 전함은 영국에는 없었다. 그러나 보일러실의 직격탄은 버티기 힘들었나 보다.
"...샤른호르스트는 장갑과 내해성, 특히 화력 면에서 영국 순양함들보다 월등했다. 경무장인 순양함들에 비해 샤른호르스트는 부포 외에도 11인치 중포를 9문이나 갖고 있었다. 그런 우위의 화력면을 볼 때 접촉이 이루어졌던 그 날 아침에 포사격으로 전투를 벌여 결판을 냈어야 했다."
"...프레이저 제독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호송선단이 순양함의 보호만 받으며 독일의 무장전함을 조우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가 타고 있던 전함 듀크 오브 요크는 아직 200마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해군원수 카를 되니츠 제독은 샤른호르스트의 이 마지막 항해에 대해 훗날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 '불운과 재난의 연속'이었다고 기록했으며, 당시 전단장으로 샤른호르스트 함과 함께 전사한 해군소장 에리히 베이 제독의 지휘에 관해서도 의문을 남겼다. 또한 앞으로 크릭스마리네의 모든 함들은 레이더 없이는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샤른호르스트가 노포크와의 교전에서 레이더를 잃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론상 속도를 살려 잡히기 빠져나갈 수도 있었던 포위망이 완전히 조여진 상태에서 두들겨맞은 전훈을 반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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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의 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HMS 글로리어스, 샤른호르스트에서 촬영 |
그러나 샤른호르스트는 크릭스마리네의 전투함들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전과를 가진 전투함이다. 대표적인 전과가 1940년 6월 8일 자매함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노르웨이 근해에서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HMS 글로리어스를 포격으로 격침시키고 예하 호위 전대(구축함 2척)를 전멸시킨 것. 글로리어스는 직접 포격으로 격침당한 최초이자 유일한 정규항모가 되었다.(호위항모까지 넣으면 갬비어 베이가 최후) 그리고 이때 샤른호르스트는 26km라는 역대 최장거리 명중탄[13]을 냈으며 포탄이 함상갑판에 명중해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가라앉았고, 노르웨이 전역에서 철수하는 공군의 전투기와 조종사, 정비사 등이 함께 타고 있다가 대부분 함께 사망했다. [14] 이때 샤른호르스트도 HMS 글로리어스를 호위하던 구축함 HMS 아카스타에게 뇌격을 맞아 승조원 약 50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으나 빠르게 복구해 큰 피해는 없었다. 또한 본 전투 직전 우연히 인근 해역에 머물던 영국의 호송선단 소속 수송선들과 대잠 호위함으로 징발되었던 트롤어선 십여 척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전과를 호위하던 구축함들(해전 이후 연료문제로 회항)과 함께 이룬 바 있었다.
자매함 그나이제나우 함과 함께 모범함정으로 지정되어 전 승조원이 대양 함대 휘장을 수여받았다.
7. 여담
건조 중이나 운용 중에 죽은 사람이 많고 그래서인지 귀신 들린 배라는 도시전설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으로 대모의 자살인데, 이는 사실. 단치히 포격전에서는 이유없이 포가 폭발하고 환풍구가 고장나는 등 여러 인명사고도 발생하였다.그 외에도 설계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과적상태가 발생, 보급품이나 연료를 적당히 실은 평소에도 반침몰상태로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하고 정작 바다에서는 고장이 잘 나는 장비를 가득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애로가 꽃피었다고 한다. 당장 개수 때 2만 미터에 이르는 쓸데없는 전선을 제거하였다 등의 문구가 기록될 정도였다.
전쟁 당시 영국에서는 콤비로 통상파괴전을 벌이고 튀어버리는 이 두척을 신데렐라의 두 언니들에 빗대어 추한 자매들(Ugly sisters)이라고 불렀다. 함선 자체의 손꼽히는 미모를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한 명칭이다.
이 전함에 쓰인 주포를 육지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페이퍼플랜이 있었다.
타미야의 1/700 함선 라인업 워터라인으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발매되어 있다. 그런데 순양전함으로 분류했다. 가격도 보통 전함의 가격인 3600엔이 아닌 주로 순양함의 가격인 2200엔이다.
8.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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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사급 전함 |
- DEAD AHEAD에 나오는 오리온 공화국의 메이사급 전함은 샤른호르스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주포 구경이 11인치에서 14인치로 늘어났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아이오와급 전함의 요소도 일부 섞여있다.
- 중국의 모바일 함선 의인화 게임 전함소녀와 벽람항로 순양전함으로 등장. 전함소녀쪽은 샤른호르스트(전함소녀), 그나이제나우(전함소녀)를 벽람항로는 샤른호르스트(벽람항로), 그나이제나우(벽람항로)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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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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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제나우 |
- 월드 오브 워쉽에서 7티어 독일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한다. 또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는 업건 계획이 적용된 버전으로[15] 정규 7티어 전함으로 나왔다. 둘 다 재빠른 기동성과 충분한 내구도와 부포로 무장했으며 특장점으로 어뢰를 달고 있어 근접전에서 우위를 가져가기에 탁월하다. 특히 샤른호르스트의 경우 안 그래도 뛰어난 관통력을 가진 주포에 연사력까지 겸비해 순양함의 시타델을 쓸어버리고 전함은 연사력으로 피해를 누적시키거나 근접전을 강요해 어뢰로 박살내는 등 7티어 내 상당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원본에서 약점으로 지적받던 80mm 두께의 시타델 수직장갑대가 수평장갑으로 깔끔하게 평탄화되었고 일관적인 입사각 탄 궤적 시스템 덕분에 45mm 두께의 측면 상단을 뚫려 노스케이프마냥 상탄에 시타델이 털릴 일이 없게 되었다. 특히 50mm 갑판장갑이 미국산 초고각포가 아니면 죄다 도탄을 내버리는 만능장갑이라 전함 간 저격전에서 상당한 중장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나이제나우는 포문 수도 적고 집탄도 안 좋아 운용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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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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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제나우 |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1차 전함으로 그나이제나우와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샤른호르스트가 등장하며 모두 측면에 어뢰 튜브가 설치되어있어 근접하는 적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어뢰를 날려줄 수가 있다. 다만 은근 관통력 좋은 전함들과 독일 담당일진 영전 때문에 근접전 능력을 못살리고 용궁가는일이 가끔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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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 그나이제나우 |
- 워썬더 독일 해상트리 5랭크 6.7에 위치해 있으며, 타 전함보다 한방화력이 바늘포마냥 빈약하여 타 전함을 잡는 것이 힘들지만 20초 미만이라는 빠른 연사력과 해상장비 중에서 나름 탑에 드는 방공망을 자랑하였고 16인치 대응방어라는 은근 단단한 맷집으로 순양함들 상대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함선이다.
[1] 배수량 37,303톤 기준[2] 38cm 함포 자체의 남은 재고가 없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사용할 함포가 더 급했기 때문.[3] 現 그디니아[4] 독일 전함들의 주포가 대체로 그렇지만 현측타격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KGV의 14인치보다도 측면 관통력은 우수했다. 실제로 리나운에게 낸 명중탄은 선체를 관통해서 전치 1개월을 끊어주었다.[5] 교전 이전에 관측되었을때도 순양전함으로 보고되었다.[6] 리나운급 순양전함이 대표적이다. 주포 구경은 15인치에 달하지만 주포의 포문 수는 고작 6문 뿐이다.[7] 유틀란트 해전때 영국과 비슷한 수의 함정을 잃었으나 독일해군 수가 더 적었기에 영향이 컸다. 그리고 1차대전 이후에 많은 전함이 자침되었고, 2차대전 때 독일은 아예 새로 만들어야 됐지만 영국은 새로 건조하는 것에 더하여 구식 전함의 개수를 하면서 전력의 차이가 커졌다.[8] 무기대여법에 의해서 대규모의 수송선단이 북극해를 거쳐서 아르한겔스크와 무르만스크로 향했는데 이 수송선단은 주요 공격대상 중 하나였다.[9] 전함이 수송선단 잡으러 가는 게 폼이 빠져 보일 수도 있지만, 상대 주력과 싸워 이길 수 없으면 정면승부는 피해야 하니 남는 시간에 수송선단이라도 잡고 있는 게 낫다. 그리고 1차대전 때 독일의 경순양함 SMS엠덴의 전과를 보면 알 수 있듯 통상파괴를 이용해 상대를 말려 죽이는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에게 장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는 데 좋은 전략 중 하나이다. 물혼 상대 해군과 정면으로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면 싸우러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상대 해군이 정면충돌을 피해다니면서 수송선단을 잡으러 다닐 것이므로 입장만 바뀌는 것이다.[10] 영국 함대의 순양함들은 어찌어찌 상대가 가능했으나 하필이면 나타난 게 4연장 함포를 달은 괴악한 놈이었다. 저 4연장 함포는 안 좋은쪽으로도 괴악해 제대로 작동되는 주포는 여전히 절반에 불과했지만 샤른 호르스트를 상대하기에는 그걸로도 충분했다.[11] 여기서 노포크를 날려버리고 최대 항속으로 튀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으나 당시는 악천후였고 자칫 발이 묶인다면 오히려 포위당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영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했다.[12] 모두 부사관 및 수병으로, 장교는 전원 전사했다.[13] 기록에 따라서는 HMS 워스파이트가 지중해에서 약 23km 떨어진 이탈리아의 줄리오 체자레를 명중시킨 것이 최장거리 명중 기록이라고도 한다.[14] 노르웨이에 배치되었던 영국 전투기가 글로리어스의 적재 한계보다 많았기 때문에 일부 전투기는 스스로 날아서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기후가 좋지도 않은 북해를 가로질러오라는 말을 듣고 투덜거리던 '운 나쁜' 조종사들은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배타고 편하게 간다고 좋아하던 동료 조종사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15] 두 사진중 윗 사진의 연장포탑이 15인치 업건 계획으로 등장한 그나이제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