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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불교 Theravada | थेरवाद | |
미얀마 승려 | |
팔리어 | थेरवाद |
한자 | 上座部佛敎 |
영어 | Therav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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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는 팔리어 경전을 근간으로 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의 분파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의 주요 종교이다.2. 소승 불교?
과거엔 '소승 불교'(Hīnayāna, 히나야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이는 대승 불교 측에서 '우리는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니 큰 수레(대승)고, 저들은 개인의 해탈만 중시하니 작은 수레(소승)다'라는 의미로 기존의 상좌부 불교를 비난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이에 1950년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에서는 '소승 불교' 또는 '히나야나'라는 말은 현존하는 어느 불교 종파에 대해서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였다.또한 이는 역사적으로도 오류가 있는 호칭이다. 기원후 2세기 카니슈카 왕 때 인도 북부에서 설일체유부 주도로 일어난 제4차 결집 후 인도에서 대승 경전을 취급하지 않는 부파 불교를 소승 불교라고 불렀다. 스리랑카에 3차 결집의 결과물을 전하여 상좌부 불교의 맥을 잇게 한 뒤 인도 북부에 남아 있던 원래의 상좌부 불교는 세우의 《이부종륜론》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에 설일체유부를 독립시킨 뒤 히말라야로 들어가 설산부가 되어 인도 북부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소승'이란 말이 나온 때는 인도 북부에서 원래의 상좌부 불교가 사라진 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명칭은 상좌 불교 또는 테라와다 불교이며 이 문서에서도 두 명칭 위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 측에서는 소승 불교라는 용어 대신 테라와다 불교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1990년대~2000년대까지만 해도 공교육 과정과 (불교학을 제외한) 대학 수준의 학술 서적에서도 거의 소승 불교로 통용되었기에 지금도 불교에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 중에는 소승불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상나라가 은나라로 통용되었던 것과 비슷한데[1], 2010년대 이후 공식적으로는 상좌부 불교로 통용되는 추세이다.
불교 초심자나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상좌부라 불러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수많은 불교학자와 스님들 및 신자들은 각종 학회와 법회 그리고 일상에서 소승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소승이라는 비난과 폄하를 불교역사가 포함하고 있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대장경에도 적대적인 주장의 논이 모두 실려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논쟁을 피하지 않는것이 불교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3. 역사
3.1. 기원
남아시아의 부파 불교 | |
법장부 | |
설일체유부(보특가라론 제외) | |
보특가라론자 | |
대중부 | |
분별설부(현대 테라와다의 기원, 법장부 제외) |
석가모니의 입멸 후에도 하나의 상가로 유지되던 불교는 서방 교단과 동방 교단간의 계율 문제로 인해 제2차 결집이 일어났다. 초기 상가의 계율대로 생활하던 서방 교단측에서 느슨하게 변해버린 동방 교단을 문제삼았고 서방과 동방 교단의 장로들이 모인 결과 서방 교단의 방식이 옳다고 결론을 낸다. 그러나 이후에도 동방 교단에선 이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비구들이 존재했고 결국 이들은 별도로 갈라져 나갔다. 이렇게 불복하여 갈라져 나간 동방 교단이 대중부로 불리게 되고 기존의 서방 교단은 상좌부(Sthaviravada)로 불리게 된다. 이 때가 석가모니의 입멸후 100여년 후이다.
이후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의 주도로 기원전 250년경에 제3차 결집이 일어나고 이때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한 고승들의 일종의 해설서인 논장이 추가되며 경,율,론 삼장이 완성된다. 아소카 왕은 이 결집 이후 불교 포교사들을 사방으로 파견하는데[2] 그 중 아소카 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가 이 제3차 결집의 결과물을 가지고 스리랑카로 갔다. 이들은 '분별설부(Vibhajjavada)'[3]라 불렸으며, 이 스리랑카의 분별설부가 현재의 상좌부(Theravada, 테라와다)이다.[4] 이후 이슬람의 인도 침략으로 인도 대륙에선 1200년대부터는 어느 부파 할 것 없이 불교가 아예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스리랑카만이 상좌부(Sthaviravada)의 명맥을 이었다.[5] 현대에는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하기 때문에 동북아에 주로 분포하는 대승 불교를 북방 불교라고도 부르는 것처럼 테라와다 불교는 남방 불교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한자로는 이 Sthaviravada와 Theravada 둘 다 상좌부 불교라고 혼용해서 지칭하고 있다. Sthavira는 산스크리트어로 장로, 상좌를 뜻하고 Thera는 팔리어로 장로, 상좌를 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할 때 둘 다 상좌부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부파 불교 중에서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Theravada뿐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좌부 불교라고 얘기하면 이 Theravada(테라와다)를 지칭한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테라와다(Theravada)의 테라(thera)는 장로(長老), 상좌(上座)란 뜻이고, 와다(vada)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따라서 테라와다를 직역하면 '장로/상좌들의 가르침'이다. 장로는 승단(sangha)에서 비구들(bhikkhu)을 지도하는 사람들이고, 상좌는 비구들 중에서 윗자리에 앉는 비구들을 말한다.
3.2. 전파와 분포
불교의 원류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인도 북부 지역이지만, 아소카 대왕시절 인도 전역과 간다라 지역, 스리랑카 지역으로도 퍼졌고 안정적으로 불교의 원형을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대두로 불교가 쇠퇴해갔고, 육상 무역로가 막히면서 스리랑카를 통한 해상 무역로가 발달함에 따라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에서 동남아시아로 활발히 확산될 수 있었다.동남아시아는 원래부터 상좌부 불교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1세기 이전에는 대승 불교가 강세였다. 스리위자야와 크메르 제국 등의 국가들도 모두 대승 불교였다. 당시 미얀마와 태국 등지에 살았던 몬족, 피우족 등은 다른데보다 먼저 스리랑카와 교류를 해 일찍이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미얀마와 태국 이 두 나라에 상좌부 불교가 확고히 자리잡은 것은 각각 버간 왕조, 수코타이 왕조 때 일이다. 크메르 제국은 이전에는 힌두교와 대승 불교가 주류였지만, 자야와르만 7세 시절부터 아들 타말린다(Tamalinda) 황자를 출가시켜 스리랑카로 파견하여 상좌부 전통을 학습하게 하고 팔리어 경전을 수입하여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상좌부 불교가 국가 종교로 정착하였다.
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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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 | |
상좌부 불교 |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불교가 상좌부에 속한다. 다만, 같은 동남아시아라도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은 중국을 통해 전래된 대승 불교가 주류이다.[다만]
4. 특징
상좌부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므로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 이상의 길은 없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말씀하신 길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삼법인, 사성제, 인연의 가르침, 팔정도와 깨달음을 이루어 해탈하기 위한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이라고 하는 수행 방법이다. 석가모니는 해탈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집착을 없애고 번뇌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이 수행을 통해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아라한(나한)이 된다. "붓다(부처)"는 석가모니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깨달음을 얻은 인물을 의미하는 경우는 아라한 등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깨달음을 얻은 인물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대승 불교, 금강승 불교에서만 해당한다.
상좌부 불교의 장로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게, 다만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가는 것에 자신의 모든 책임을 두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자신의 해석을 더하는 것을 일절 거부한다. 그리고 팔리어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의 길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당시에도 그러한 장로들의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승 불교와 핵심적인 교리는 차이가 없지만, 수행법이나 사상면에서 차이가 있다. 또 세세한 계율과 그 해석에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육식을 금하지 않고 허용한다.
대승 불교와 비교하여 상좌부 불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상좌부 불교에서는 팔리어로 된 경(니까야),율(위나야),론(아비담마) 삼장만을 경전으로 여기며 이것이 부처님의 본래 말씀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본다. 대승 경전[7]은 후대에서 대승 불교의 교리를 합리화 하기 위해 만든 경전이라고 봐서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 불교에서는 대승 경전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은 아니지만 진설이라고 본다.
- 계율을 중시하고, 다른 종교 및 다른 문화의 형태를 혼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게 항상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 대승 불교에서와 달리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기 때문에 사찰 음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승려들은 계율에 따라 음식을 별도로 만들어 먹지 않고 탁발 또는 공양청으로 재가자들로부터 얻어먹는다. 요리를 직접 해먹게 되면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과 맛을 추구하고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육식을 허용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식을 저장하거나 해먹는 것은 계율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 부처님오신날이 음력 4월 15일이다.
세부적인 교리를 보면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며, 티벳이나 일본의 금강승(밀교)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커진다. 대승 불교와 대조해 보면, 상좌부 불교는 적어도 다음 9가지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 1. 깨달은 자는 다시 태어나는가?
- 상좌부 불교: 깨달은 자인 아라한과 부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궁극의 깨달음을 이룬 자는 다시 태어남이 없다.
- 대승 불교: 깨달은 자는 자유로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선사들은 깨닫고 나서 자유로이 다시 태어남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으며, 티벳불교는 더 나아가 일부 법맥의 깨달은 스승은 다시 태어나 깨달음의 맥을 잇는다는 주장을 한다.
- 2. 깨달음과 열반(팔리어로 닙바나,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은 무엇인가?
- 상좌부 불교: 성위4과(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가 깨달음이고, 각 과는 위빠사나의 16단계 지혜를 통해 닙바나(열반)를 체험해야만 일어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대로 깨달음은 아라한과뿐이다. 석존(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자신이 아라한과를 얻기 전까지는 '깨달았다.'고 하지 않으셨음을 초전법륜에서 5비구에게 강조하셨다.
- 대승 불교: 탐진치 3독의 소멸을 열반으로 보는 데선 상좌부 불교와 같다.[8]그러나 보살사상을 강조하는 대승에선 화엄경에 기초해 아라한과보다 보살 10지를 넘어서 구경각을 이루라고 강조한다. 이 과정과 결과에 있어 선종은 돈오점수, 점수돈오, 돈오돈수 등 다양한 주장과 학설이 있다. 보살사상의 영향으로 열반 자체보다 계속 다시 태어나 중생교화하는 보살도가 아라한보다 뛰어난 경지라고 본다.[9]
- 3. 부처와 보살(팔리어로 보디삳따,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삳바)은 무엇인가?
- 상좌부 불교: 아라한도 깨달은 이이고 부처님도 깨달은 이이지만 두 존재는 다른 점이 있다. 이 세상에 아라한은 많을 수 있지만, 새로이 불법을 펴는 정등각자(正等覺者) 부처님은 우주에서 오직 한 시대에 한 분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공겁(空劫) 시대도 있다. 보디삳따[보살]는 이러한 부처님이 아라한과를 얻기 전에 바라밀을 닦는 수행자일 때의 이름이다. 따라서 보디삳따는 반야심경에서처럼 깨달음의 설법을 하지 않는다. 또한 4아승기 십만 대겁 동안 바라밀을 닦아야 하므로 부처님에게 깨달음의 설법을 듣고 한 생에 깨닫는 일도 없다. 보디삳따는 공겁을 지나 스스로 닙바나를 체험하고 아라한과의 깨달음을 스스로 이루어 부처가 되어 잊혀진 불법을 새로이 펴야 한다. 따라서 보디삳따가 설법하거나 부처님께 깨달음의 법을 듣는다고 하는 경전은 다 위경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 대승 불교: 부처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보디삳바[보살]란 단어는 다양한 뜻으로 쓰이고, 모든 수행자를 총칭하는 이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공간적으로 여러 부처가 존재할 수는 있어도 한 세상에 동시에 여러 부처가 나올 수는 없으며, 모든 부처는 저마다의 정토가 있다.# [10] 아함경에도 목련존자가 기광여래라는 부처가 있는 세계로 가서 기광여래를 만나고 기광여래의 제자들을 데려온 일화가 있다. <증일아함경> 29권 참조
- 4. 핵심교리가 4성제 8정도인가? 3법인, 4법인인가?
- 상좌부 불교: 석존께서 친히 하신 말씀에 따라 4성제 8정도가 있는 것이 불교다. 8정도에는 스님이라면 계율이 포함된다. 스님은 아플 때가 아니면 오후에는 음료수 외 음식을 먹지 않고, 대처(帶妻)를 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이 불교다. 4성제와 8정도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거나 다른 교리를 핵심교리라고 내세워, 스님들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 종교는 불교가 아니다.
- 대승 불교: 대승 반야심경의 '무고집멸도'를 4성제의 부정이라고 알고 있으나, 대승에서 무/공은 상주불멸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지 현상으로서의 존재의 부정이 아니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대승 불교에서도 인정되는 가장 기본적인 불교 교리다.[11]
- 5. 공즉시색(空卽是色)인가?
- 상좌부 불교: 아니다. 공(空)(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다.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논리적으로 맞으나 공즉시색(空卽是色)은 논리적 오류다.
- 대승 불교: 그렇다고 본다. 모든 물질(색)은 물론 법도 그 성질은 공하다고 본다. 중관학파의 윤회즉열반이란 표현도 이에 기초하는 것으로, 윤회도 실체가 없기에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참조 참고로 위의 상좌부 불교 주장은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오류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색'과 '색의 공'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이지 공이 색에 한정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다음 구절인 "수상행식 역부여시(수상행식도 역시 이와 같다)"를 보면 더욱 의미가 명확해진다. 오온 중 나머지 수,상,행,식도 색과 마찬가지로 "수즉시공 공즉시수", "상즉시공 공즉시상", "행즉시공 공즉시행", "식즉시공 공즉시식"인 것이다. 이처럼 반야심경에서는 오온과 오온의 공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주제를 설하고 있으며, 이는 곧 "오온은 공(空)=무자성(無自性)=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는 법무아(法無我)를 뜻한다.
- 6. 6식(六識)은 동시생멸인가?
- 상좌 불교: 니까야에 적힌 석가모니 부처님 설법에 기초해 말룬꺄뿓따경(Malunkyaputta Sutta)과 바아히야경(Bāhiya Sutta)에서 석존께선, 볼 때 보는 것만 있고, 들을 때 듣는 것만 있다고 하셨다.[12]
- 대승 불교: 동시생멸을 주장하는 대승 불교 지도자도 있다.
- 7. 오온(五蘊)은 차례로 일어나는가?
- 상좌부 불교: 초기불교에서는 오온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다(《초기불교입문》(초기불전연구원): 72).
- 대승불교: 티벳밀교의 한 종파에서는 오온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에선 대체적으로 오온이 동시발생이라고 보는듯하다.
- 8. 6식(六識)인가? 8식(八識)인가? 10식(十識)인가?
- 상좌부 불교: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6식(六識) 안에 있다. 논서에선 결생식, 재생연결식, 바왕가(잠재의식)등이 언급되는데, 눈과 연결되어 안식(眼識), 귀와 연결되어 이식(耳識)이듯이, 다 특수한 조건하에서의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다.
- 대승 불교: 6식설 외에도 유식설에서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더해 8식(八識)설도 인정한다.# 구유식파의 9식설 등도 있으나 신유식파의 8식설이 정론으로 통한다.
- 9. 위빠사나, 사마타 vs. 비빠샤나, 샤마타
- 상좌부 불교: 팔리어 사마타(samatha)에서 sama는 고요함, 평정, 평화의 의미고 tha는 '지키다, 머물다, 어떤 상태로 남겨지다'는 뜻에서 나왔다. 팔리어의 사마타는 표상(니미따nimitta)[13]를 대상으로 하여 표상에 집중하여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이다[14]. 팔리어 위빠사나 (vipassanā)는 있는 그대로 본다, 즉 현상을 현상 자체로서 본다, 혹은 관념으로 조립한 전체상과 부분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그대로 해체하여 본다는 의미이다[15](행선과 좌선 참조관념 해체#). 구체적으로 팔리어의 위빳사나는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의 생멸을 나타나는 그대로 알아차려 무상・고・무아를 아는 등 16단계 지혜를 차례로 밟아나가 닙바나를 체험하는 수행이다[16].
- 대승 불교: 북방 대승에서 산스크리트어 샤마타는 지(止, 멈춤)나 적정(寂靜)으로 번역되고, 산스크리트어 비빠샤나는 관(觀) 또는 비발사나(毘鉢舍那)등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비빠샤나와 샤마타 수행은 북방 대승의 선종에선 하근기로 폄하되어왔으나, 실제로는 대승 불교에서도 선종 등장 이전까지는 이 지관 수행법이 표준 수행법이었고, 정혜쌍수와 더불어 선종에서도 관심법의 기초로 내려왔으며#, 이를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선종영가집이다. 또한 지관(샤마타 비빠샤나 수행) 수행법을 다루는 중국의 천태지의의 저서 <마하지관>과 이를 요약한 <천태소지관>은 선종의 수련서 <좌선의>의 기반이 되었다. 한국의 초의선사도 지관법을 수련한 승려 중 대표적 인물이다. # 헌데 왜 선종에선 많은 승려들이 이를 폄하해왔는가 하면, 선종이 이러한 지관 수행법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수행법을 제시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며, 한국 선종의 경우 그 중에서도 간화선 중심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한 근대적 연구가 진전되고 남방불교, 티벳불교 등의 전통들이 유입되면서 한국 불교계도 특정 수행법만을 절대화하지 않는 추세이기는 하다.
상좌부불교의 이론에 따르면 석가불이 열반한 후의 5000년 내에 사념처(四念處,위파사나) 수행은 여전히 사향사과. 예를 들어 수다원과(須陀洹)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을 수 있으며, 사념처 수행은 유일한 방법이다. 마하시 사야도 또는 레디 사야도가 쓴 저서 등을 포함한 사념처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야 정확한 사념처 수행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의 승려들이 탁발로만 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엔 사찰 근처에 깟삐야꿋띠(kappiyakuti/kappiya-kuti, 淨廚)를 마련해 음식을 조리하고 깟삐야부미(淨地, kappiya-bhumi)를 두어 음식을 저장해 먹는다. 이는 계율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탁발로만은 승단 운영이 불가능하여 생겨났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도 기근이 들자 승려들이 직접 음식을 해먹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 사항의 적용을 정법(淨法, 깟빠kappa)라 한다. 석계율 역시 석가모니 당대에부터 시대와 상황에 맞게 계속 변해 왔다(참조). 또한 사찰에 설치한 정주와 정지를 쓴다 하더라도, 재가자들이 재료를 가지고 와서 요리를 한 뒤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방식을 취해 승려들이 직접 요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자들이 주는대로 먹는다는 원칙은 동일하다.
조계종이 불교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 탁발을 금지한지가 이미 반세기가 넘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겐 상좌부의 신기한 모습 중 하나. 마찬가지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탁발로 매일 생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에서도 탁발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날을 정해 시행하고, 평소에는 재가자가 선원내에서 조리하여 공양하는 식으로 한다.[17]
현대 동남아 상좌부 불교권에선 탁발과 운동 부족으로 되려 비만 승려들이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었다. # 요약하면 맛있는 것을 먹고 한 끼에 폭식하며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비만에 걸리가 딱 좋은 환경이다. 예전에는 재가 신도들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아 보시하는 음식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형편이 좋아지자 좋은 음식을 보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승려들도 그런 것을 먹고 비만이 되었다는 것. 게다가 육식도 가리지 않으니 비만 문제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또다른 특징은 최근까지 오랫동안 비구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있었으나 대승 불교와는 달리 전승되던 중에 비구니계가 오래전에 유실되어 더 이상 비구니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다사 실 마타'(스리랑카), '띨라신'(미얀마), '매치'(태국)라고 하는 평신도 여자 수행자가 있어서 이들을 보고 '비구니'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비구니는 아니다.
본래 불교의 계율은 부처에게 계를 전해 받은 자가 경전에 기록된대로 형식을 갖추어 다시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를 전수받은 자가 실종되거나, 사고사 또는 살해 당해 명을 달리한다거나, 정신병이나 기타 장애 등으로 인해 적법한 형식을 갖출 수가 없거나, 극히 드문 경우지만 본인이 받은 계의 전수를 그 누구에게도 해주길 거부한다면 설령 제3자가 계의 내용을 모두 안다고 해도 후대에 그 계를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상좌부 비구니의 계맥이 전부 끊어져 버린 탓에 때문에 전세계 불교 어디에서도 상좌부 전통에 따라 비구니계가 전해지는 곳은 없다.[18][19]
현대에 들어 대승으로부터 비구니 계맥을 받음으로서 비구니 상가를 복구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대부분 승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불교계 내부에서도 "상좌부는 여성 불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므로 동남아의 여자들은 현세에 공덕을 쌓고 윤회하여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서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성찰과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20] 그래도 스리랑카 승가에서는 어떻게든 비구니 계맥 문제를 해결하고자 20세기 막바지였던 1996년, 한국 조계종의 협조를 받아 스리랑카 교단이 비구니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 10명에게 수계를 하게 하고 교단에서 정식으로 인정하여 마침내 비구니 승가가 정착했다.# 1998년에는 대만의 불교계로부터도 수계한 듯하고, 2000년대 후반 기준으로 스리랑카에만 비구니 500여 명이 불도를 닦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렇게 스리랑카에서 비구니 승가가 복구된 이후 태국에서도 스리랑카에서 비구니계를 받아와 비구니 승가를 복구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1998년도에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아온 최초의 비구니가 생긴 이래, 2019년 기준 태국엔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아온 비구니 285명과 태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수계한 사미니 8백여 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태국은 여성수계금지법까지 만들며 여전히 태국내 비구니 수계를 막기 때문에 완전한 복구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잔 브람이 이끄는 호주의 테라와다 교단(Buddhist Society of Western Austraila)에도 정식 비구니 상가가 존재한다.#
다만 이를 단순히 구태한 남녀차별의 문제로 매도하는 것은 상좌부의 교리를 이해하지 않고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보려는 아집이라는 의견도 있다. 상좌부의 비구니 승단 복구는 율장적 시선에서 보면 이미 불가능해진 지 오래인, 수많은 지나간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좌부의 율장에 따르면 어떤 여인이 비구니로 수계하려면 먼저 적법하게 수계한 장로 비구니 5명이 입회해야 한다. 헌데 비구니 계맥이 끊어진 지 오래라 적법하게 수계한 장로 비구니를 초빙할 방도가 없다. 또한 상좌부 율장에서는 비구니 수계자는 비구니 승단 뿐만이 아니라 비구 승단에서도 이중으로 계를 받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반드시 비구 승가가 협력해주어야만 한다. 따라서 대승 비구니 계맥을 통한 상좌부 비구니 계맥의 복원 시도는 상좌부 율장의 유효성을 결여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무효이고, 이것을 받아 단독으로 상좌부 비구니 승단을 복구하겠다는 것 역시 비구 승가에 대한 월권행위인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대승불교는 법장부의 사분율을 받아들여 승려들이 계체를 얻는다고 여긴다. 설령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계맥이 유효하다고 인정해도, 분별설부의 율장을 사용하는 현대 상좌부 불교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거니 받아들이자!"라고 수용할 수가 없다. 심지어 같은 대승불교권인 티베트 불교는 상좌부나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계맥을 모두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불교가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 내부로 사분율을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비구니의 계맥을 받은 비구니가 탄생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예로 들면, 중근세기 가톨릭 교회에서 분열해 떨어져나간 개신교가 한국에 자리잡고는 21세기에 그리스나 러시아 정교회를 보고 "마! 니캉내캉 차피 다 같은 뿌리를 둔 한 식구인데, 느그 복제랑 책들 싹 갖다 버리고 우리 성경이랑 우리 행사 방식 채용해도 되는거 아이가?"라고
밀교 수준은 아니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도 빠릿따(paritta, 호신주護身呪)라 하여 위험이나 악령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고통을 해소하는 호신주를 사용한다.[21] 이것이 나중에 대승 불교에서 다라니, 진언으로 발전한다.
대승비불설 문서만 보면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가 서로 갈등이 많고 멀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교류가 많다. (성지순례, 스리랑카 진신사리) 그러나 상좌부의 승려들은 대승 불교 승려들과 함께 포살할 수 없다거나, 대승의 의견에 동의하면 범계한 것으로 보는 등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 또한 한국 승려들이 상좌부 불교계로 유학 갔을 때 몇몇 상좌부 승려들이 대승 불교 승려들의 법랍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경계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1973년 한국 조계종에서 조선시대 숭유억불로 인한 계맥 유효성 문제를 완전히 봉합하고자 태국 승려를 초빙해 합동수계식을 열어 당시 20여명 정도의 한국 승려가 계를 받았다.[22] 하지만 수계식 이후 '대승이 어찌 소승으로부터 계를 받겠는가!'하는 반발이 나와서 없던 일로 하고 지금처럼 합동수계식을 하기로 했다.
5. 논란
상좌부 불교가 한국에도 점차 알려지자 한편으로는 오직 팔리어 니까야와 상좌부 불교만이 순수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정통 불교이며, 상좌부 불교만이 옳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서 한국 불교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상좌부 불교에 대한 한국 불교 주류의 반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자현으로, 상좌부 불교를 소승불교로 깎아부르며 오늘날에 초기불교 수행은 가능하지도 않고 저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극언을 남기기도 했다.물론 대승 불교를 비판할 때 자주 하는 말처럼 산스크리트어 → 한문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나 거기다 산스크리트어 원전도 없는 아예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경전의 존재, 그 외에도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기존 중국의 문화들과 사상들이 스며들어 일어난 변질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대승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불보살들과 신들은 힌두교의 유산이며 한국 무속 신들조차 불보살로 대체되어 들어오거나 산신각이니 용왕각이니 하는 식으로 무속신을 모시는 곳이 사찰들 내에 공식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지어 '대승 옷을 입은 힌두교'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니까야가 대승 경전들에 비하면 초기 경전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과는 별개로 상좌부 불교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상좌부 불교 = 초기불교"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상좌부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문화의 영향이나 내부적으로 많은 계파가 등장하고 논쟁하며, 새로운 문헌이 등장했다. 또한 대승 불교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첨삭/증보개정을 거친 문헌들이 존재한다. # 앞 링크에 나오듯 현존 니까야는 기원후 4~5세기 스리랑카에서 붓다고사와 마하위라파(대사파)가 자기 부파의 입지를 늘리고 타 부파와 대승 불교, 힌두교 등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재편집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23] 해외에선 실제 북방 전통 문헌 중 일부는 가장 이른 시기의 팔리어 필사본보다 연대가 훨씬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미 국제 불교학계에서 아함경[24]과 니까야는 석가모니의 친설 그대로는 아니라고 밝혀졌고 #, 남방 부파의 역사적 문헌들도 그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좌부 불교에서 니까야에 대한 해석의 표준으로 인정받는 붓다고사[25]가 쓴 주석서인 <청정도론>(위숫다막가)인데, 하와이대 명예교수 칼루파하나는 저서 <불교철학의 역사>에서 붓다고사가 후대 인도불교의 사상을 석가모니의 친설인 양 끼워 넣었음을 밝혀 큰 논란이 되었다.[26]
또한 상좌부 불교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초기 승단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것이 아니다. 테라와다 불교 현지의 수행법도 사마타와 위빠사나 중 위빠사나에 치우쳐 석가모니 당대의 수행법과 거리가 멀어졌고(##), 동남아 민간신앙이나 대승 불교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27]
때로는 한국 대승 불교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상좌부 불교의 계율 중심 생활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국 대승 불교 승려들이라고 다 파계승이 아니듯이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에도 파계승이나 영업 행위가 없는 게 아니며 상좌부 불교 국가들 현지의 승려의 높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폐해는 오히려 한국보다 심하다. 당장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 사원에도 동북아 사찰의 민간 신앙처럼 정령 신앙이 결합하거나[28] 기복신앙을 장려하거나 # 승려가 자금세탁 혐의로 조사받고 # 심지어 사찰 안에서 동물학대와 불법 동물밀매를 하고 # 살인, 성매매, 횡령, 불법 금융거래에 연루되어 승려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 문제가 심각하다. 최고위급 승려가 벤츠를 수집하는 호화 생활을 하기도 한다.#
숭유억불을 표방했던 조선이나 중국의 유교 왕조 국가들과 달리, 동남아 상좌부 불교의 경우 개종 이후부터 국교 지위를 쭉 누려왔고, 20세기에 공산화를 겪었던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지배적인 위치에서 끌어 내려진 적도 없다.[29]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시절에도 영국이나 프랑스가 불교계를 오히려 이용하면 이용했지 전면적인 식민지 개종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터라 식민지 시절을 겪으면서도 불교계의 사회적 영향력은 유지됐다.[30] 이렇게 자국 내에서의 높은 사회적 비중과 위치 때문에 세속 권력, 재력과 결탁하여 일어나는 종교계의 권력형 범죄, 부패는 동남아 쪽이 훨씬 더 심하면 심했지 대승 불교권에 비해 좋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 투표함 이송을 방해하며 총격전을 벌이거나 기자를 납치하는 일에 상좌부 불교 승단과 고위 승려가 깊이 관련되어 있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상좌부 불교의 수행법이나 교리가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독재 체제의 유지에 악용되기도 한다. 예컨대, 미얀마에서의 위빠사나는 한동안 불교 수행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꼰바웅 왕조의 민돈 왕이 왕실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도입하고 1911년에는 승려 민군 사야도가 수행 센터를 설립하면서 민간에 퍼졌다. 이후 미얀마 군부 정권에서는 위빠사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보급했는데, '무상, 고, 무아'를 체득하여 속세에의 집착을 여읜다는 점에서 체제 순응적인 인간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색계 및 무색계 선정을 비롯한 사마타 수행은 정신을 각성시키고 자비심을 배양한다는 점에서 체제 전복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겨, 재가 수행자에게는 잘 권장되지 않는다. 특히 외국인이 아닌 국내 재가자들에게 이런 경향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마타는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세속에서 살아가는 재가자가 하기에는 힘도 들고 시간도 든다'고 만류하거나, '한번 이 수행을 시작하면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일어나며 주변의 일상이 흔들린다. 하기 전에 신중하게 결정하라' 등의 조언을 하는 사야도들이 여럿 있다. 우스운 점은, 정작 군부 인사들은 정신력 강화를 위해서나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31] 사마타를 즐겨 수행한다는 점이다.
또한 상좌부 불교는 단일 승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일각의 생각과 달리 상좌부 불교 내에서도 계율 해석 문제 등으로 인한 이견이나, 기성 불교계의 침체와 엇갈리는 신흥 불교단체인 담마까야 재단[32]의 약진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여러 종파로 갈라져 있으며, 이들간에는 대승 불교나 밀교를 대하듯 서로간에 포살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33] 그리고 스리랑카에선 출가 승려들 사이에도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등[34] 자신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동남아 상좌부 불교계의 주장과는 모순점이 있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상좌부 불교 승단의 과제라 하겠다.
때문에 국내에 상좌부 불교가 새롭게 들어옴으로써 기존 조계종이 변화하고 각성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많은 학자들도 이런 동남아내 정치적, 사회문화적 상황들로 인해 부패된 것들과 동남아 토속신앙과 결부되어 변질된 것들[35]에서 오는 요소 등은 한국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잘 걸러서 그런 것까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6. 부정관 수행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검색하지 말자. 유튜브나 구글에서 한글로 '부정관'이라고만 쳐도 혐짤이 바로 뜬다.한자로는 不淨觀, 팔리어로는 Paṭikkūlamanasikāra라고 하며 자만심을 버리기 위해 시체를 보며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시다림(尸陀林)[36]에서 고행한 것이 기원이라고도 하며, 묘지 등에 가서 시신이 썩어가는 것을 하나 하나 관찰하면서 육체의 부정함과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대승 불교에서는 백골관이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37] 자살 충동을 부추기는 등의 역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상좌부 불교, 특히 태국 불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수행법으로 여기며, 이 때문에 태국의 의과대학 인체해부수업에 스님들이 꽤 많이 견학 온다.[38]
7. 대한민국의 상좌부 불교 전파
한국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고려 후기 등장한 여러 군소종파들을 통틀어 십이종이라 부르는데, 이 십이종 중에 상좌부 불교와 관련된 교종 종파인 소승종(小乘宗)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여말선초기의 한국 선종의 고승 나옹 혜근 스님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준 인도 승려 지공선현(指空禪賢)대사도 북전 불교와 더불어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를 학습했던 승려였다.
그러나 이때는 남방 불교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이며, 1980년대 중후반에 거해 스님이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위빠사나 수행 열풍이 불었다. 당시 한국의 주류 불교계에서는 간화선만을 중시하고 위빠사나와 테라와다 불교는 소승의 가르침이라 하여 이를 폄하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불교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있던 학자들 중 테라와다 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몇몇 승려들에 의해 위빠사나 수행과 테라와다 불교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으며, 재가자 단체를 중심으로 팔리어 경전 읽기나 위빠사나 수행이 시작되었다.
위빠사나라는 특정 수행 방식만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테라와다 불교 자체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조계종의 간화선 중심주의가 안팎으로 비판받는 정도가 강해지고 승려들의 도박/음주 사건이 언론을 타면서 기존 한국 불교계에 자성과 비판의 여론이 번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재열 법사와 유마선원(현 법림선원), 전재성 박사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중심으로 팔리어 불경을 국내에 번역/보급하고 팔리어 대장경인 니까야 중 하나인 <앙굿따라니까야>를 세계 최초 완역해 펴내는 등의 노력으로 대중적으로 테라와다 불교를 접하는 신도들이 늘어났다.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의 초기불전연구원을 통해서도 니까야와 아비담마 서적들이 번역되었으며, 2013년 조계종의 교육원에서 강원의 교과목 7개 분야 중 한 분야로 초기불교가 들어가 니까야 강독과 《아비담마 길라잡이》등이 교재로 채택되었다.
현재 한국에 있는 테라와다 불교는 크게 볼 때 한국에 포교를 목적으로 건너온 동남아 도래승에 의한 선원들과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로 직접 출가한 한국인 구법승에 의한 선원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 등지에서 승려들이 한국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또는 포교를 목적으로 건너와서 활동하는 절이나 선원들이다. 후자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로 직접 출가해서 활동하다가 국내로 돌아온 한국인 승려들이 활동하는 절이나 선원들이다. 1980년대부터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들로 직접 출가하는 한국인들이 늘기 시작했으며 이후 귀국한 승려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선원이나 수행처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2009년에 빤냐와로 스님[39]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가 만들어지며 공식적으로 국내 테라와다 교단이 출범했다.[40]
니까야 한국어 번역판은 자잘한 판본들이 있으나 대표적으로는 크게 두가지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나오는 판(전재성 역)과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나오는 판(각묵스님, 대림스님 역)이 대표적이다.
일개 블로거가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블로거의 빠알리어 원문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여 영어 번역을 전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일 뿐이다. 링크로 제공된 두 가지의 비교에도 이미 원문에 대한 몰이해가 드러나 있다. 빠알리 원문을 읽고 스스로 판단해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41]
한국 불교계가 세계 각 나라의 불교계와 교류를 늘리면서 2012년도 즈음만 해도 현지의 몇몇 선원의 수행법이 곧 테라와다 불교 수행 전체로 이해되던 것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테라와다 불교계 전반에 대해 더 잘 알려지고[42] 테라와다 불교권의 고승들 또한 한국을 몇 차례 찾아왔다. 특히 2016년 각산스님은 한국불교 최초로 세계명상대전(WMC2016)을 주최하여 태국 불교의 전설로 불리는 고승 아잔 간하[43], 아잔 브람[44]이 참가하여 혜국스님 등 한국 선승들과 '초기불교와 간화선 수행'을 지도하고 무차토론을 가지며 상좌부 불교가 한국에 더욱 새롭게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서 노동자 혹은 결혼 이민으로 들어온 신자들이 꽤 많아 한국 신자들 수에 더해지고 있다. 캄보디아 출신의 결혼 이민 영주권자인 당구 선수 스롱 피아비는 아직 외국인 신분에 상좌부 불교 신자임에도 2022년에 조계종에서 <올해의 불자 대상>을 수상까지 하였다.
7.1. 국내 선원 목록
이름 | 웹사이트 | 위치 |
싸띠 아라마 [45] | https://sati.school/ | 경남 김해시 대동면 / 인도 비하르주 보드가야 (분황사) |
붓다의길따라 선원 [46] | 공식 사이트 | 울산시 울주군 |
담마와나 선원 | 서울시 용산구 숙대입구역 | |
보리수 선원 | 공식 사이트 | 경기 과천시 |
세나니 승원 | 공식 사이트 | 경남 하동군 |
빤디따라마 위빳사나 수행센터 | 경기도 양평군 | |
메따 승원 | 경남 하동군 | |
향천 선원 | 서울시 중구 | |
태종사 | 부산시 영도구 |
8. 같이 보기
[1] 멸칭이 정식 호칭처럼 쓰였다는 점, 공교육 과정과 학술 서적에서도 쓰였다는 점 등[2] 일부는 그리스 지역까지 갔다.[3] 여기서 분별(vibhajja)이란 개념적으로 분석한다는 말이 아니다. 관념적으로 조립된 전체상과 부분상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난 그대로 해체(vibhajja)하여 본다는 의미이다.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고 옮겼는데 분별이란 말이 상대를 폄하하는 말인 듯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초기불교입문(초기불전연구원): 40-43) 또한 분별설부의 교리를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지 않는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분별설부'라는 이름의 부파에 대해 각 부파의 상충하는 기록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재의 분별설부가 지닌 성격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아비담마, 밀린다빵하, 빳타나, 위숫디막가 등의 저술을 통해 교리 차원에서 체계화를 거친 뒤의 분별설부는 상당히 교조주의적인 면모를 많이 보인다.[4] 알파벳으로 Theravada로 표시하는 글자에서 v발음은 영어의 v가 아니라 우리말의 순경음ㅂ(ᄫ)으로, 남방불교 지역에서는 '우/오'로 발음된다. 즉 우리말로 좀더 정확한 표기는 '테라ᄫᅡ다'이고 실제 발음은 '테라와다'이다. vipassana의 실제 발음이 '위빳사나'인 것과 같다. 우리말에서도 15세기 말을 일부 간직하는 경상도말에서는 아직도 “덥어라(더ᄫㅓ라),” “고맙아(고마ᄫᅡ)”하는 것을 현대의 서울말에선 "더워라," "고마와"라고 하는 것과 같다.[5] 인도 대륙에 남아있던 후기 밀교, 대 불교들 중 일부가 이슬람 침공 때 티베트로 넘어가서 살아남았고 그게 후에 티베트 불교가 되었다.[다만] 베트남의 경우 남부 일부는 상좌 불교를 믿는다[7] 반야심경, 금강경, 천수경, 법화경 등[8] 조계종 불광사 불광미디어 링크.[9] 대승에 대한 오해로 상좌부의 아라한과를 부정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상좌부의 아라한과를 낮추어 보긴 해도 부정하진 않는다. 만일 부정한다면 대승 불교에서 나한(아라한)을 공경하는 나한 신앙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10] 정토종 항목의 주석도 참조하면 좋다.[11] 참조: <불교 입문>-대한불교조계종 출판부, <도표로 보는 불교 입문>-민족사.[12] What the Buddha taught(Gordon Fraser)의 24쪽에서, 마치 영혼처럼 똑같은 식(識)이 보고 듣고 느끼고 인과의 결과를 받으며 윤회한다고 믿는 사아띠(Sāti)에게, 석존께서는 ‘이 어리석은 사람아’라고 석존께서 줄 수 있는 최대의 면박을 주며, ‘내가 식(識)이 조건 때문이 일어난다고, 다시 말해 조건 없이는 식(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눈과 보이는 것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안식(眼識)이라 불리고, 귀와 들리는 것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이식(耳識)이라 불리고,.... 마음과 마음 대상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의식(意識)이라 불린다’(Mahātaṇhāsaṃkhya-sutta, Majjhima-nikāya I (PTS ed.), p. 256 ff)고 분명히 설파하신다. 즉 똑같은 불변의 식(識)이 눈으로 보면 안식(眼識)이 되고, 귀로 들으면 이식(耳識)이 되고...마음 자체 내의 대상을 알면 의식(意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촛불의 불꽃이 일정량의 연료와 산소를 조건으로 하나의 불꽃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 연료와 그 다음 산소를 조건으로 다음 불꽃이 일어나 사라지는데, 앞의 불꽃과 뒤의 불꽃은 서로 다른 연료와 산소를 조건으로 한 서로 다른 불꽃이며, 앞 불꽃과 뒤의 불꽃이 만난 적도 없듯이, 안식(眼識) 일어나 사라지고, 이식(耳識)이 일어나 사라지지만, 안식과 이식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동시에 생멸한 적이 없다. 한 번에 육식 중 한 식(識)만 생멸하며, 여러 개의 식(識)이 동시에 생멸하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빠사나의 고차원적인 지혜를 통해서 안식(眼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에 의식(意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에 이식(耳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하는 식으로 한번에 6식 중 한 식(識)만 생멸함을 직접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잘 믿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관념 해체&볼 때 보는 것만 있다오문인식과정의문인식과정. 위빠사나의 지혜로 바로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관념을 거친 앎으로써는 그 논리적 가능성만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13] 빠리깜마 니밋따, 욱가하 니밋따, 빠띠바가 니밋따가 있다.[14] 초기불교입문 (초기불전연구원): 193[15] 초기불교입문 (초기불전연구원): 40-43. 위빠사나(vipassanā)는 경전에서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로 거기서(Each presently arisen state) 통찰한다(vipassati)”(131Bhaddekaratta Sutta~134경Lomasakangiyabhaddekaratta Sutta, Majjhima-Nikāya; The Middle Length Discourse of the Buddha(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95): 1039; 아비담마 길라잡이 2(초기불전 연구원 2017): 272)에서 위빳사띠(vipassati)라는 동사로 등장한다. vi-는 ‘분리해서, 해체해서,’ passati는 ‘보이는 그대로 본다(sees), 못 본 것을 발견한다(find), 알아차린다(understands)’의 뜻이 있다. 문맥과 어원으로 볼 때 위빳사나는 현재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조립된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념으로 조립되기 이전에 원래의 해체된 상태 바로 거기서 나타나는 그대로(as and when it comes), 알아차림이다. 현재의 현상을 관념으로 조립해서 이해하지 않고, 현재의 현상이 나타나는 그대로, 현재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서, (관념으로 조립하고 구성하는 시간 지체나 왜곡 없이) 바로 알아차림에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이 있다.[16]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도서출판 불방일): 60-122[17]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불특정 다구에게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 해당 선원에 다니는 신도들과 거리에서 모여서 그들이 탁발을 하는 형태다.[18] 반면 대승 불교에선 계맥이 끊겼으나 이를 서상수계, 즉 계를 받기를 부처나 보살에게 간절히 요청해서 받았다 하고, 혹은 자서수계, 즉 자기가 자기에게 계를 주었다고 하면서 계맥을 존속케 한 사례가 있다.[19] 조선시대의 불교계에서도 서상수계로 계맥을 시작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서상수계나 자서수계는 대승 불교 전통에서는 용인됐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는 불법적이며 무효라고 본다. 서상수계나 자서수계의 교학적 근거가 대승 경전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승 불교계에서도 계맥 문제는 내부적으로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다.[20] 이와 관련해서 법륜 스님 구글토크에서 한 외국인이 질문하고 법륜 스님이 답변한 것이 있다. 법륜 스님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불교가 봉건 문화를 받아들여서 발생한 것이고, 원래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지적했다.[21] 사실 이런 풍조 자체는 석가모니 생전부터 존재하여, 아함경에 '바라문교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은 축생도에 떨어지는 것이다'라 나올 정도로 주술을 금기시하던 석가모니 본인도 점차 선의의 주문은 인정하였고, 때문에 초기 불교 시대부터 이미 호신주가 사용되었다. 이런 풍조가 극대화된 케이스가 대승 불교 중 밀교다.[22] 일본은 한국 불교 시선으로 보면 지키는 계율보다 안 지키는 계율이 많아 논외고, 당시는 아직 냉전 시대였으므로 중국 대륙과 베트남도 논외고, 대만도 일본 불교나 민간신앙 영향이 짙었고, 스리랑카는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내전 중이었다. 남는 게 태국 밖에 없는 것.[23] 추가 참조 문헌: 사이토 아키라 저/이자랑 역 <대승불교의 탄생>, 씨아이알[24] 참고로 아함경은 상좌부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25] 인도 부다가야 출신의 기원후 5세기경에 활동했던 불교학자이다.[26] 이 때문에 국내 상좌불교 수련센터에서도 해피법당이나 파욱 사야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견명상원 등 단체에 따라선 니까야만을 강조하기도 한다.[27] 해당 링크글들의 저자인 황순일 교수와 마성 스님은 전부 상좌부 불교 전공자이고, 특히 마성 스님은 상좌부 불교 우월론자이기도 하다.[28] 참조: <인조이 미얀마>넥서스BOOKS, P. 354[29] 그나마도 라오스의 경우는 애초에 사회 경제적 기반 자체가 사회주의고 뭐고 할 만큼의 기본적인 산업화, 근대화도 안 돼서 종교계와 대놓고 싸울 여건도 못됐다. 심지어 집권 공산당인 빠텟라오에도 지하투쟁 시절부터 좌경화된 공산주의자 승려들도 꽤 있었다. 애초에 베트남 전쟁에 꼽사리 끼어 집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중국의 등소평 정부를 필두로 공산권 전반에 개혁, 개방의 바람이 부는 탓에 탄압도 간접적이었지 다른 공산 국가들과 달리 전면적으로 국가 무신론을 표방하며 종교계와 전쟁을 벌일 틈이 없었다.[30] 따라서 아무리 본국의 식민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 해도 근본적으로 토착 다수 신앙에게 전면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던 그리스도교권 선교사들은 주류 다수 민족보단 오지에 사는 소수 민족들을 상대로 선교를 했기 때문에 현대의 동남아 그리스도인들은 카렌족 같은 소수 민족 사이에나 비중이 높지 주류 민족 사이엔 존재감이 약하다.[31] 상좌부 불교에서는 색계 선정이든, 무색계 선정이든, 수행자 본인이 체험해 본 바 있는 정신 상태에 해당하는 세상에 환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가르친다. 색계 4선과 무색계 4선은 각각 불교 세계관에서 색계 18천(天), 무색계 4천에 대응된다.[32] 태국식 발음으로 '탐마까이'라고도 한다. 네덜란드에서 가톨릭 성당을 인수할 정도로(기사링크) 국제적으로 강력하게 성장하는 교단이다. 이곳의 교리는 일부 대승불교 승단의 견해처럼 진아(眞我, 참 나)의 개념을 긍정하거나, 이름처럼 법신불(dhammakaya)의 존재를 긍정하며 그에 귀의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33] 참조: 불교평론 통권 63호[34] 석가모니는 시작부터 기존 인도에서 존재하던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다.[35] 한국 불교에서 한국의 무속신앙과 결부된 형태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동남아에서도 그런 현상이 똑같이 존재한다.[36] 이 숲의 이름이 한국어 '시달리다'의 어원이 되었다는 민간어원이 존재한다. 실제로는 '휘달리다'라는 옛 어형이 전설화(fronting)되면서 와전된 것이다.[37] 대한민국에서도 기사에 나오듯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닌데, 승려들은 간화선을 주로 한다. 일본에는 시체를 대신하는 백골관용 그림(구상도)이 남아 있다. 주로 미녀가 죽고 시체가 썩어가고 짐승들이 파먹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유명한 단린 황후를 모델로 하는 구상도 중에는 실제 단린 황후의 유언으로 만들게 된 것도 있다.[38]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스님들이 병원 수술실 한 켠에 옹기종기 앉아서 시체 해부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사진들을 간간히 볼 수 있다.[39] 1980년대 후반에 태국으로 출가하여 태국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삼장법사가 되었다.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들 내에서도 공식적인 삼장법사는 별로 흔치 않다.[40] 별도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곳도 많이 있기 때문에 국내 모든 테라와다 선원이 이 교단 소속은 아니다.[41] 예를 들어, 해당 블로거는 vevaṇṇa 를 '계급 외의 사람'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해석도 가능하지만 vi-vaṇṇa '색(상)을 여읨, 떠남' 이라는 원문 그대로의 직역에서, 그 vaṇṇa는 계급, 카스트, 와르나의 의미도 가능하나 또한 화려한 색을 가진 의상, 음식 등 재가자의 상태를 말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저열한 상태'라는 것은 지나친 의역이나 '계급을 여의었다' 역시 원문의 중의적 표현들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강조한 의역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링크에서 이외에도 이미 빠알리어에 대한 몰이해가 드러나는 부분이 몇 군데 더 드러나 있고 이것은 블로거 개인의 이해 수준으로 받아들여야 할 터이다. 또한 두 번째 링크에서, 'Jarāmaraṇassa ce bhikkhu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dhammaṃ deseti, dhammakathiko bhikkhū'ti alaṃ vacanāya'이라는 문장에서, rāga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욕탐이나 욕망 격정과 같은 의역적 번역을 피하고 싶은 의도가 전재성 박사의 번역에서는 드러나 있고 그것 자체는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virāga의 dat/gen 형태의 번역, '떠나, 그것이 사라지고'라고 하는 것 역시 매우 지나친 의역이 된다. 빅쿠 보디의 영문 번역만을 정설로 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원문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만약 어근에 근거한 범어-빠알리어의 뉘앙스와 해석의 접근법을 본인이 잘 모른다고 한다면, 영문 번역판을 기준으로 그것의 빠알리 원문으로부터의 번역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감히 판단내리는 것은 경솔한 태도일 수밖에 없는데, 해당 블로거의 의견이 바로 이러한 경우다. 전재성 박사의 번역은 dhammakathiko bhikkhū를 형용사 - 명사 관계보다는 계사가 생략된 주어와 주격 보어의 관계로 해석하였는데, 초불연의 번역은 형용사 - 명사의 관계로 보았고 이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수행승은 가르침을 설하는 님(전재성),'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초불연)’ 모두 '그,' '그를' 이라는 원문에 없는 지시어를 삽입하는 등 의역이 있다. 또한, bhikkhū 에 대해 주어와 보어 관계로 본 '수행승은'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당시의 사문들과 빅쿠들에 대한 구별, 즉 일반 수행자들과 계를 구족한 상가의 출가 수행자 집단에 대한 구별과 그 중요성을 희석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재성 박사의 번역에는 일정한 재가자 중심의 기조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조는 일부 한국 재가불자들에게, 전재성 박사의 번역을 더 적절한 것으로 생각하고 선호하는 입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두 번째 링크에도 원문에 대한 해당 블로거의 몰이해는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고 있으니 읽고 그것을 바른 견해라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42] 과거엔 국제적으로도 널리 퍼진 마하시 사야도의 순수 위빠사나가 많이 들어왔고 현재도 테라와다 불교의 수행이라 하면 아나빠나사띠란 말보다 위빠사나란 말이 더 널리 통용될 정도로 영향이 많이 남아 있으나, 지금은 파욱 사야도 계통이나 아짠 차 계통 등 다양한 계통의 테라와다 불교 수행법을 쉽게 접할 수 있다.[43] Ajhan Ganhah. '아잔'은 비구계를 받은지 10년 이상된 스님을 말한다. 아잔 간하는 무려 45년간이나 일체의 외부 문물과 관계를 끊고 수련에 집중한 경력을 가진 스님으로, 9미터나 되는 거대한 코브라가 자신의 코 앞에 나타나 혀를 낼름거리며 입을 벌리며 위협하자, 코브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날 만나러 와 줘서 고맙다.'고 하자 코브라가 고개를 숙이고 사라진 이른바 '코브라 설법' 사건은 태국에서 유명하다. 특히 아잔 간하가 40여 년간의 은둔을 깨고 나온 것이 이번 2016 한국 세계명상대전을 개최하기 전 한국 참불선원의 각산 스님의 삼고초려 후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생애 최초의 국외 출타를 결정한 일이라 더욱 뜻 깊은 일이었다.[44] 혹은 아잔 브라흐마. 호주 불교의 개척자로 알려진 서양인 승려다. 이전에도 몇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으며, 저서인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등은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45] 방장스님:인도 물라싼가 법인 이사장 붓다팔라 스님[46] 삼장법사이자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 창립자인 빤냐와로 스님이 선원장으로 있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