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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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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중세2.3. 중세 말2.4. 근세2.5. 근대2.6. 20세기2.7. 21세기
2.7.1. 2000년대2.7.2. 2010년대2.7.3. 2020년대
3. 관련 문서

1. 개요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양국은 중세 시대부터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이었으나 근세를 기점으로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차이가 생겨났으며, 현대까지는 걸프 전쟁 등의 이유로 외교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현재도 상호 국민 감정은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파에서도 사우디는 수니파가 절대다수인 반면, 이라크는 수니파시아파가 혼재되어 있어서 차이점도 존재한다. 양국은 종파가 차이가 있지만 이라크의 무슬림들도 메카로 성지순례를 하러 사우디에 가는 경우가 많으며 사우디도 이라크를 배척했다가는 중동 북부의 레반트 지역으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이란을 견제할 수 없게 될 뿐더러 이라크내 과반은 아니라도 수니파 인구가 많기 때문에 이라크와의 외교 관계는 반드시 신경 쓴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 아랍 연맹의 정회원국이기도 하다.

걸프전쟁 후 단항되었던 두 나라간 정기 직항 항공편이 2017년에야 재개되고 국경선을 재개방하면서 두 나라 관계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는 사우디의 카타르 단교/봉쇄 조치에 동참하지 않으며 카타르와 사우디의 대립에 되도록이면 중립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웃한 이란의 자국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 관계 개선 및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2017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조정 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했으며 이라크인들도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로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간다.

2. 역사적 관계

같은 아랍권이지만 이라크는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에 의해 이슬람, 아랍인화되기 이전 메소포타미아와 아시리아 등 지금의 사우디 일대의 아라비아 반도 지역 아랍인들과는 다른 민족,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국가여서 같은 아랍권이지만 서로 상이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같은 아랍 국가이면서도 두 나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2.1. 고대

아라비아 반도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고대부터 교류와 교역이 적지 않았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고대 아라비아의 언어 및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이라크에서 사용되던 아람어아랍어와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로 아람어가 아랍어 어휘 및 문자에 여러모로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비정된다. 고대 말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중심지 일대를 이라크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이라크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다. 이라크는 아랍어로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2.2. 중세

이슬람교가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계시될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사산 왕조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가 아부 바크르의 지도 하에 라쉬둔 칼리프조로 통일된 이후 사산 왕조와 아랍 무슬림들 사이에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사산 왕조의 중심지였던 이라크 지역은 아라비아 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입장이었고 사산 왕조의 중심지가 아랍 무슬림들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이라크 지역은 아랍화되었다. 라쉬둔 칼리프조의 붕괴 이후 우마이야 칼리프조가 이슬람 제국을 계승하였다.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이라크 일대로 이주하여 바스라, 쿠파(도시) 같은 신도시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호라산 일대의 압바스 칼리프조가 흥기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트리고 이슬람 제국의 패권을 장악했다.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 제국의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에 해당하는 바그다드로 천도한다. 압바스 왕조의 중세 신도시 바그다드가 흥기하고, 아라비아 반도는 이후 이슬람의 성지 메카메디나 이외에는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변방 지대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2.3. 중세 말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 치세에 튀르크계 노예병 및 용병 맘루크들을 중용하기 시작한 이래 압바스 왕조 군대의 주력은 아랍인에서 튀르크인 노예병으로 변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아랍인들의 칼리프조 내에서의 입지 및 위상도 급격히 축소되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소외는 가속화되었다. 아라비아 반도는 예멘, 오만 일대의 해안 교역 및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 순례지 외에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의 땅이 되었고 자이드파(예멘 일대), 이바디파(오만 일대) 등 이슬람권 주류에서 밀려난 소수 종파들이 숨어사는 벽지로 전락한다.

압바스 칼리프조가 시아파 부와이흐 왕조에게 공격당해 칼리파가 시아파 세력에게 인질로 붙잡히는 등 지방 통제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아라비아 반도에는 시아파 계열 극단주의 세력인 카르마트가 자리를 잡고, 메카와 메디나로 성지순례를 하는 순례객들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카르마트는 순례객들을 대학살하고 시체로 잠잠 성수를 막아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동쪽에서 이주해온 셀주크 튀르크는 이라크 일대를 장악한 부와이흐 왕조를 몰아낸 이후 11세기 중반 네지드 지방에서 카르마트 세력을 완전 토벌하였다.

2.4. 근세

근세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이집트, 시리아 일대를 장악했던 맘루크 왕조를 격파한 이후 칼리파를 겸하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 술탄은 아라비아 반도의 성지 순례지를 관리하는 사업도 병행하게 되었다.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의 아라비아 반도 지배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현지 통치자들에게 이래저래 간섭을 안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큰 변화 없이 현상 유지가 이루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라크 일대의 패권을 두고 시아파 12이맘파 근본주의 성향의 사파비 제국과 전쟁을 벌였는데 사파비 제국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이라크 북부 일대만 장악하는데 그쳤다. 이후 이라크 남부 지역은 사파비 제국의 시아파 강제 개종 정책의 영향으로 주민 상당수가 시아파가 되었고 반면 이라크 북부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 등으로 쿠르드인 인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18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지방 군벌 정권이자 오늘날 이라크의 시초로도 평가받는 이른바 이라크 맘루크 왕조가 디리야 토후국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오스만-사우디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2.5. 근대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이라크와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졌다. 시리아와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 일대의 성지순례 루트를 중심으로 아랍 우월주의 이데올로기가 퍼지고 다시 와하브파 신학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라크, 시리아로 전파되면서 아랍인들 사이에 반 튀르크 감정이 격해진다.

2.6.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양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양지역은 왕정이 보존되기도 했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라크와 사우디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왕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하심 왕조가 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면서 양국간에는 갈등이 생겨났다. 사우디는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된 이라크를 자주 견제했다. 공동의적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를 지원했다. 그리고 90년대초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반발했고 사우디는 걸프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이라크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에 동참했다.

2.7. 21세기

2.7.1. 2000년대

2003년에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양국 간에 관계가 공식적으로 회복되었다. 다만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국민 감정은 순식간에 아물지 않았다. 이라크의 시아파 정권이 출범하고 이란과 밀접해지자 사우디와 이라크 사이에 다시 외교 갈등이 번진다. [1]

2.7.2. 2010년대

그러다가 2010년대 중반에 다에쉬가 이라크 영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는 팔짱만 끼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는 반사우디 감정이 폭발하기도 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란과 밀접함을 넘어 위성국으로 의심가는 이라크 시아파 정권을 지원하기보다 냉전 말기부터 사우디의 위성국화한 예멘 내전에 개입하는게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0년대 후반에 다에쉬가 몰락한 뒤에 사우디측은 이라크 국경의 검문소를 개방하기도 했다.

사실 현재 이라크가 주변 중동 국가들 중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에는 주변 이웃나라들 중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우디 이외에도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다른 중동국가들로는 시리아, 쿠웨이트, 이란, 요르단, 튀르키예 등 몇 더 있기는 하지만 바로 동쪽과 남동쪽의 이란과 쿠웨이트는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 후로 외교 관계가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 등 역사적으로 몹시 앙숙인데다 특히 이란은 미국 등 서방권의 경제재제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2] 북쪽의 튀르키예는 쿠르드족 문제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경험하는 등 이라크인들에게 있어서 이란과 쿠웨이트보다 더 원수지간이며, 바로 서쪽의 시리아시리아 내전으로 쑥대밭이 되어 경제적 지원조차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고, 또 다른 서쪽의 이웃나라인 요르단은 정치적으로 시리아보다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석유가 나오지 않는 중동에서 아주 가난한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3] 일단 이라크로서는 걸프 전쟁때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양국 간 갈등이 적었고, 축적한 오일머니가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실익도 챙기고, 이웃한 숙적인 이란과 튀르키예를 견제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사우디 역시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라크를 배척했다가는 이란의 중동에서의 외교적 영향력 팽창을 억제하거나, 이라크와 가까운 레반트 등 중동 북부 지역에서의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라크와는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더 이득이다.

2010년대 중반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작한 유가 치킨 게임으로 국제 유가가 대폭 하락하면서, 석유 수출 외에는 외화 획득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라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당시 이라크는 다에시 토벌전이 한창이었던 때였는데 이 때 사우디아라비아 측으로부터 ISIS 토벌 관련해서 도움은 커녕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이후 경제를 복구해야 하는 이라크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유가 폭락 유도가 반가울 턱이 없다.

2014년 이라크는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비난했다. #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주이라크대사관을 25만에 재개설했다. #

2.7.3. 2020년대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약 30년간 닫혀있었던 국경 검문소를 다시 열었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18일(현지시간) 사우디와의 교역을 위해 아라르 국경검문소를 재개통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닫혀있던 국경 검문소의 개방을 계기로 걸프전쟁으로 얼어붙었던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진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2021년 4월 1일에 블룸버그 통신은 사우디와 이라크가 30억 달러(약 3조4천억원) 규모 공동 투자 펀드 조성에 합의했다.#

2022년 2월 6일에 이라크의 푸아드 후세인 외교부장관이 사우디의 외교부장관 파이잘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왕자와 전화 회담을 갖고 바그다드에서 열리기로 되어있던 이란과 사우디의 회담 지연 문제를 논의했다.#

3. 관련 문서



[1] 이를 예견했는지 사우디는 이라크의 정권교체에 반대하던 아랍 국가들 중 하나였다. 수니파의 지지를 받는 이라크 바트당 정권이 무너지고 선거로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인구에서 더 많은 시아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바트당 정권 붕괴 이후 이는 현실화된다.[2] 그래도 쿠웨이트는 경제적으로 이란에 비해서 그나마 안정적인 편이다.[3] 오죽하면 이라크도 석유가 나오지 않는 요르단에게 석유 공급 할테니 낙타 등 가축이라도 돈 대신 주라며 압박을 하기도 한다.공짜로는 석유 수입 허락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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