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02:47:46

번세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권 「전조록일(前趙錄一)」 2권 「전조록이(前趙錄二)」 3권 「전조록삼(前趙錄三)」 4권 「전조록사(前趙錄四)」
유연 · 유화 유총 유총 유총 · 유찬
<rowcolor=#fff> 5권 「전조록오(前趙錄五)」 6권 「전조록육(前趙錄六)」 7권 「전조록칠(前趙錄七)」 8권 「전조록팔(前趙錄八)」
유요 유요 유요 유선 · 유성 · 유익 · 유윤
<rowcolor=#fff> 9권 「전조록구(前趙錄九)」 10권 「전조록십(前趙錄十)」 11권 「후조록일(後趙錄一)」 12권 「후조록이(後趙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석륵 석륵
<rowcolor=#fff> 13권 「후조록삼(後趙錄三)」 14권 「후조록사(後趙錄四)」 15권 「후조록오(後趙錄五)」 16권 「후조록육(後趙錄六)」
석륵 석홍 석호 석호
<rowcolor=#fff> 17권 「후조록칠(後趙錄七)」 18권 「후조록팔(後趙錄八)」 19권 「후조록구(後趙錄九)」 20권 「후조록십(後趙錄十)」
석호 석세 · 석준 · 석감(鑒) 석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21권 「후조록십일(後趙錄十一)」 22권 「후조록십이(後趙錄十二)」 23권 「전연록일(前燕錄一)」 24권 「전연록이(前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외 모용황
<rowcolor=#fff> 25권 「전연록삼(前燕錄三)」 26권 「전연록사(前燕錄四)」 27권 「전연록오(前燕錄五)」 28권 「전연록육(前燕錄六)」
모용황 모용준 모용준 모용위
<rowcolor=#fff> 29권 -2l 「전연록칠(前燕錄七)」 30권 「전연록팔(前燕錄八)」 31권 「전연록구(前燕錄九)」 32권 「전연록십(前燕錄十)」
모용위 토욕혼· 모용한· 모용인· 모용각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33권 「전진록일(前秦錄一)」 34권 「전진록이(前秦錄二)」 35권 「전진록삼(前秦錄三)」 36권 「전진록사(前秦錄四)」
부홍 부건 부생 부견
<rowcolor=#fff> 37권 「전진록오(前秦錄五)」 38권 「전진록육(前秦錄六)」 39권 「전진록칠(前秦錄七)」 40권 「전진록팔(前秦錄八)」
부견 부견 부비 부등
<rowcolor=#fff> 41권 「전진록구(前秦錄九)」 42권 「전진록십(前秦錄十)」 43권 「후연록일(後燕錄一)」 44권 「후연록이(後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수 모용수
<rowcolor=#fff> 45권 「후연록삼(後燕錄三)」 46권 「후연록사(後燕錄四)」 47권 「후연록오(後燕錄五)」 48권 「후연록육(後燕錄六)」
모용수 모용보 모용성 모용희
<rowcolor=#fff> 49권 「후연록칠(後燕錄七)」 50권 「후연록팔(後燕錄八)」 51권 「후연록구(後燕錄九)」 52권 「후연록십(後燕錄十)」
모용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53권 「후진록일(後秦錄一)」 54권 「후진록이(後秦錄二)」 55권 「후진록삼(後秦錄三)」 56권 「후진록사(後秦錄四)」
요익중 요양 요장 요흥
<rowcolor=#fff> 57권 「후진록오(後秦錄五)」 58권 「후진록육(後秦錄六)」 59권 「후진록칠(後秦錄七)」 60권 「후진록팔(後秦錄八)」
요흥 요흥 요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61권 「후진록구(後秦錄九)」 62권 「후진록십(後秦錄十)」 63권 「남연록일(南燕錄一)」 64권 「남연록이(南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덕 모용초
<rowcolor=#fff> 65권 「남연록삼(南燕錄三)」 66권 「하록일(夏錄一)」 67권 「하록이(夏錄二)」 68권 「하록삼(夏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혁련발발 혁련창 혁련정
<rowcolor=#fff> 69권 「하록사(夏錄四)」 70권 「전량록일(前涼錄一)」 71권 「전량록이(前涼錄二)」 72권 「전량록삼(前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궤 장실 장준
<rowcolor=#fff> 73권 「전량록사(前涼錄四)」 74권 「전량록오(前涼錄五)」 75권 「전량록육(前涼錄六)」 76권 「촉록일(蜀錄一)」
장중화 · 장령요 · 장조 장현정 · 장천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특
<rowcolor=#fff> 77권 「촉록이(蜀錄二)」 78권 「촉록삼(蜀錄三)」 79권 「촉록사(蜀錄四)」 80권 「촉록오(蜀錄五)」
이류 · 이웅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1권 「후량록일(後涼錄一)」 82권 「후량록이(後涼錄二)」 83권 「후량록삼(後涼錄三)」 84권 「후량록사(後涼錄四)」
여광 여소 · 여찬 여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5권 「서진록일(西秦錄一)」 86권 「서진록이(西秦錄二)」 87권 「서진록삼(西秦錄三)」 88권 「남량록일(南涼錄一)」
걸복국인 · 걸복건귀 걸복치반 · 걸복모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rowcolor=#fff> 89권 「남량록이(南涼錄二)」 90권 「남량록삼(南涼錄三)」 91권 「서량록일(西涼錄一)」 92권 「서량록이(西涼錄二)」
독발녹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고 이흠
<rowcolor=#fff> 93권 「서량록삼(西涼錄三)」 94권 「북량록일(北涼錄一)」 95권 「북량록이(北涼錄二)」 96권 「북량록삼(北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저거몽손 저거무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97권 「북량록사(北涼錄四)」 98권 「북연록일(北燕錄一)」 99권 「북연록이(北燕錄二)」 100권 「북연록삼(北燕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풍발 풍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colbgcolor=#483D8B><colcolor=#fff> 고장후(姑臧侯)
樊世 | 번세
시호 없음
작위 고장후(姑臧矦)
(樊)
(世)
불명
생몰 ? ~ 358년 9월
출신 악양군(略陽郡) 임위현(臨渭縣)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전진의 인물. 저족 호족 출신으로 경명제 부건이 관중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웠던 개국공신.

2. 생애

황시 원년(351년) 정월, 마침내 장안성을 함락시킨 부건이 천왕(天王), 대선우에 즉위하면서 전진 정권이 세워졌다. 이때 관중 평정에 큰 공을 세웠던 번세는 특진(特進)에 임명되고 고장후(姑臧侯)에 봉해졌다.

영흥 2년(358년) 9월, 폭군 부생을 몰아낸 천왕 부견왕맹을 재상으로 삼아 신임하였고, 이에 따라 전진의 종친과 옛 공신들 중에서 갑자기 등장한 왕맹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이가 많았다. 번세는 이들 무리의 대표로 나서서 왕맹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우리는 선제와 더불어 사업을 일으킨 공이 있음에도 국가의 권력을 함부로 장악하지 않았소. 한데 그대는 전투에서 아무런 공을 세운 바가 없으면서 어찌 감히 홀로 중대한 임무를 처리하려 하는가? 이는 우리가 밭을 갈아 농사를 다 지어놓았더니, 그대가 죄다 먹는 꼴이 아니더냐!"
왕맹이 답했다.
"그렇다면 마땅히 사군을 재부(宰夫)로 삼아 경작과 동시에 요리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겠소."
이에 번세가 대로하여 말했다.
"네놈의 머리를 베어 장안성 문에 매달아 놓으리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도저히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왕맹은 더이상 번세를 상대하지 않고 바로 부견에게 아뢰었다. 이를 전해들은 부견 역시 노하여 말했다.
"반드시 저 저족 늙은이를 죽여 백관을 조용히 시키겠소."

다음 날, 조회에 참석한 천왕 부견이 왕맹을 향해 말했다.
"짐은 양벽(楊璧)을 부마로 삼을 생각이다. 양벽은 어떤 인물인가?"
그러자 이미 양벽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낸 번세가 왈칵 성을 내며 부견에게 항의하였다.
"양벽은 신의 사위입니다. 이미 혼사가 정해진지 오래인데 어찌 이제와서 그가 폐하의 부마가 될 수 있습니까!"
그때 왕맹이 번세를 꾸짖었다.
"폐하께서는 천하의 제왕이므로 그대가 감히 혼사를 다투려 함은 곧 천자에 맞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천자가 둘이면 어찌 천하의 위아래가 올바로 잡힐 수 있겠는가!"
번세가 너무 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왕맹을 폭행하려 하니, 좌우에서 그를 붙잡아 말렸다. 그 와중에도 번세는 부견이 보는 앞에서 왕맹을 향해 큰소리로 아주 심한 욕설을 하였다. 결국 분노한 부견이 명을 내려 번세를 체포하였고, 이내 번세는 서쪽 마구간에서 참수당했다. 번세가 죽은 후에 그를 따르던 저족 공신들이 부견에게 몰려와 왕맹의 목을 베어야 한다며 따졌다가, 오히려 부견의 노여움을 사 권익이 부견을 말리기 전까지 전정(殿庭)에서 공개적으로 채찍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