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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 데뷔 전
반야월초 4학년 당시 학급대항축구대회에서 재능을 보인 박주영은 시덕준 축구부 감독 눈에 띄어 축구 선수로 스카웃된다. 하지만 반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수재였던 박주영은 부모님의 반대로 3개월 동안 축구를 하지 못했으나, 박주영 본인과 학교의 노력으로[1] 다시 축구화를 신으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다. 4학년임에도 6학년 경기에 나설 만큼 월등한 기량[2]을 가졌던 박주영은 대구 전역에서 축구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고, 지역 축구 명문인 청구교육재단에서 그를 스카웃하고자 했고, 청구중 김병익 감독과 청구고 박경훈 감독이 합심하여 청구중으로 진학하게 된다.청구중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영남권 최고의 유망주로 성장한 박주영은 청구고 1학년에 포항 스틸러스의 지원을 받아 프로 데뷔시 포항과 우선 협상을 한다는 조건으로 브라질로 1년 간 축구 유학을 다녀온다.[3][4] 귀국 후 본격적으로 변병주 감독의 지도 아래 2학년부터 경기를 뛴 박주영은, 당시 고교 시합 33경기 47골을 기록하며 4개 대회 득점왕을 거머쥐고 청소년 대표팀에선 2살 월반을 하는 등, 전국구 유망주로 거듭났다.
청구고 졸업 후 포항 입단이 아닌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04학번으로 진학을 선택한다. 박주영은 새내기임에도 등번호 10번을 달았고, 고연전 득점 등 대학 무대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게다가, 200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6득점하며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득점왕에 오르는 환상적인 활약으로 인해 박주영의 주가는 엄청나게 뛰어 버린다.
2000년대 전후 천재로 칭해진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시드니 올림픽의 주축이었던 박진섭은 히딩크 부임 후 한순간에 국대에서 사라졌고, 한때 자타가 공인한 천재로서 리그와 대표팀을 호령했던 고종수, 이천수는 뜻하지 않게 커리어가 꼬였으며, 권집, 최성국, 김동현 등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축구계에서 아예 퇴출당했다. 전성기 시절 본인은 언제나 천재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적어도 당시 국내에서 그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드물었다.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킬러'라고 불릴 만큼 감각적인 슈팅과 개인기, 탁월한 결정력 등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로 지목받았었다. 특히 중국 수비수 3~4명을 제치며 개인기로 골을 만들어 낸 장면은 지금 봐도 인상 깊을 정도다.
2. FC 서울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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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경기 35골 10도움 2005-2008 |
참고하십시오. |
2.1. 시즌별 기록
2005 시즌: 32경기 18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 경기 | 득점 | 도움 |
| K리그 | 19 | 12 | 3 |
| 삼성 하우젠컵 | 11 | 6 | 1 |
| FA컵 | 2 | 0 | 1 |
| 합계 | 32 | 18 | 5 |
2006 시즌: 32경기 10골 1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득점 | 도움 |
| K리그 | 26 | 7 | 1 |
| 삼성 하우젠컵 | 4 | 1 | 0 |
| FA컵 | 2 | 2 | 0 |
| 합계 | 32 | 10 | 1 |
2007 시즌: 15경기 5골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 | 11 | 11 | 0 | 2 | 0 |
| 삼성 하우젠컵 | 3 | 2 | 1 | 3 | 0 |
| FA컵 | 1 | 1 | 0 | 0 | 0 |
| 합계 | 15 | 14 | 1 | 5 | 0 |
2008 시즌: 17경기 2골 4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 | 13 | 11 | 2 | 2 | 4 |
| 삼성 하우젠컵 | 4 | 3 | 1 | 0 | 0 |
| 합계 | 17 | 14 | 3 | 2 | 4 |
3. AS 모나코 FC
2008-2011
103경기(선발 100경기) 26골 9도움
103경기(선발 100경기) 26골 9도움
3.1. 2008-09 시즌
2008년 여름, 프랑스 리그앙 소속의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분위기는 '유럽에서 뛰기는 아직 부족하다'였다. 모나코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경력도 있고 나름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보니 그런 말이 더 많았다. 하지만 등번호 10번을 바로 부여받은 것에서 모나코의 높은 기대치를 볼 수 있었다.데뷔전인 FC 로리앙과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특히 모나코가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더라도 언제나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며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가르치고 있더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팀내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모나코에서 제대로 된 축구를 하는 몇 안되는 선수가 된다. 나머지는 네네, 알레한드로 알론소, 스테판 뤼피에 정도.[5]
08/09시즌 리그 31경기 5골 5도움, 컵대회 4경기 1도움을 기록하며 유럽무대 적응을 끝마쳤다. 덧붙이자면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다.
2008-09 시즌: 35경기(선발 34경기) 5골 6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리그 1 | 31 | 31 | 0 | 5 | 5 |
| 쿠프 드 프랑스 | 3 | 3 | 0 | 0 | 1 |
| 쿠프 드 라 리그 | 1 | 0 | 1 | 0 | 0 |
| 합계 | 35 | 34 | 1 | 5 | 6 |
3.2. 2009-10 시즌
09/10시즌 리그앙 포워드순위와 평점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최근 3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리그 21경기 8골 3도움으로, 네네에 이어 팀내 득점 2위로 3골이 결승골이고 2골은 팀을 패배에서 구한 동점골이다.1월 31일 OGC 니스전에서는 프랑스 리그 진출이후 처음으로 멀티 골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 골을 넣을 기회를 잡았으나 팀 동료 무사 마주의 리그 첫골을 돕기 위해 양보했다. 하지만 리그 후반에 허벅지 부상을 당했고 그로 인해 마지막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조기 귀국했다. 어쨌든 부상만 빼면 알찬 한 시즌을 보낸 듯하다.
2010년 월드컵 후 프리미어 리그 팀으로의 이적설이 많이 나돌았지만 거의 다 뜬소문이었거니와 군대 문제에도 발목을 잡혔고, 결국 AS 모나코에 계속 남아 있게 됐다.
2009-10 시즌: 33경기(선발 32경기) 9골 3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리그 1 | 27 | 26 | 1 | 8 | 3 |
| 쿠프 드 프랑스 | 5 | 5 | 0 | 1 | 0 |
| 쿠프 드 라 리그 | 1 | 0 | 1 | 0 | 0 |
| 합계 | 33 | 32 | 2 | 9 | 3 |
3.3. 2010-11 시즌
2010-11 시즌 들어서는 부상의 여파인지 영 활약이 미미하다. 주전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듯한 느낌. 지속적으로 이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후유증과 월드컵에 출전하며 프리 시즌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점, 그리고 저번 시즌 같이 뛰던 동료들이 모두 이적하며 동료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점 등을 부진의 원인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주포지션인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으로 자주 기용되었다.침체가 계속되나 했지만 2010년 11월 3일 FC 지롱댕 드 보르도전에서 크로스바에 맞고 튕겨나온 디외메르시 음보카니의 슛을 침착하게 골대로 다시 차넣으면서 장장 51일만에 시즌 2호골을 기록했고 이어서 11월 8일 AS 낭시전에서는 후반에 두 골을 몰아치며 완벽히 살아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안 게임 종료후 복귀 이틀만에 출전한 OGC 니스전에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다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시즌 5호골을 기록했다.
12월 23일. 팀의 6연속 무승행진을 끊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에 오랜간만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시즌 6호골이며 경질설이 나돌던 라콩브 모나코 감독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4주짜리 부상을 당해 아시안컵 출전이 좌절되었는데 그 연유가 황당하게도 단단한 겨울 잔디 위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기도 세레모니 도중 동료들에게 깔려서 무릎이 눌린 탓이라고 한다.
부상에서 복귀한 2월 13일. FC 로리앙과의 경기에 측면 공격수로 출전하여 승부에 쐐기를 박는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시즌 7호골을 기록했고 이어 27일 SM 캉과의 경기에서 시즌 두번째 멀티골을 터뜨리며 지난 시즌 부상으로 실패했던 두 자리수 득점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29라운드, AC 아를 아비뇽전과 경기에서 10호골을 기록하면서 차범근(17골, 분데스리가), 설기현(12골, 벨기에 주필러리그)에 이어 유럽 진출 한국선수 3번째로 10호 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10년 넘도록 아시아 국적 선수로 리그 1 최다 골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6]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소속팀 동료였으며 당시 박주영의 백업 자원이었다.[7]
4월 10일 30라운드, LOSC 릴경기에서 2회 연속골을 기록하며 11호 골을 기록했다. AC 아를 아비뇽이 리그 20위 꼴지(30라운드까지 겨우 1승 거두었다.)로 강등이 확실시된 약팀인 거와 달리 리그 1위를 달리는 LOSC 릴와 경기였기에 그 성과는 더 뚜렷했다. 덕분에 리그 16위로 오른 AS 모나코는 일단 강등권을 모면했다.
하지만 이후 모나코는 부진에 빠졌고 박주영도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2010-11 시즌 리그앙의 강등권에서 헤매다 강등당했다.
2010-11 시즌: 35경기(선발 34경기) 12골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리그 1 | 33 | 32 | 1 | 12 | 0 |
| 쿠프 드 라 리그 | 2 | 2 | 0 | 0 | 0 |
| 합계 | 35 | 34 | 1 | 12 | 0 |
3.4. 이적 사가
모나코가 강등당하면서 이적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에이젼트가 AC 밀란 부회장을 만났다는 기사도 뜨는 등 옆나라의 루머의 제왕 혼다를 넘어서는 기세로 수많은 이적설을 뿌렸다.[8] 하지만 이적시장 말까지 확실한 이적 뉴스는 뜨지 않았고, 결국 이적시장 마감을 1주일 가량 앞두고 전시즌 프랑스리그 디펜딩 챔피언 LOSC 릴과 메디컬 테스트를 마치며 계약을 앞두었다. 그런데 릴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날에 런던으로 날아갔다.[9] 르 퀴프의 보도에 따르면 릴 회장이 갔을 때 호텔방이 비어있었고, 릴과 계약을 포기하고 아스날과 계약하기 위해 떠났다고 한다. 덕분에 각종 축구 커뮤니티는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다.박주영의 이적으로 아스날에선 공격수 니클라스 벤트너가 선덜랜드 AFC로 이적설이 나돌고 있는데, 그런데 정말로 이적해버렸다. 1년 임대다. 하지만 선덜랜드 부동의 주전인 아사모아 기안이 뜬금없이 중동으로 임대가서 오히려 지동원에 유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찌됐든 논란을 뒤로 한 채, 2011년 8월 30일 한국시간 23시 경에 마침내 아스날 구단 홈페이지에 박주영의 공식 영입발표가 게시됐다. [10]
아스날 입단 인터뷰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9호. 그리고 등번호는 9번.
4. 아스날 FC
2011-2014
7경기 1골
7경기 1골
4.1. 2011-12 시즌
2011년 9월 10일 스완지 시티 AFC전에서 박주영이 교체로 등록돼있어서 교체 멤버로 데뷔전을 치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스날 마지막 교체 카드로 로빈 반 페르시에서 마루앙 샤막으로 교체했다. 박주영의 데뷔 무대는 날아갔다.[11][12]결국 2011년 9월 21일 칼링컵 32강, 4부리그 팀인 슈루즈베리 타운 FC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72분 가량을 뛰었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내지 못하고 미야이치 료와 교체되었다. 본인도 경기결과에 만족을 못했던지 인터뷰를 거절하고 경기장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데뷔전 이후 한달여가 지난 시점에서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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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칼링컵 4라운드 볼턴 원더러스전에 풀타임 출전하며 2-1 승리를 견인하는 결승골을 넣었다! 멋지게 휘어들어가는 골로 그간의 마음 고생을 한 방에 날렸다. 벵거 감독 역시 골이 들어가자 박수를 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프리미어리그 데뷔 준비가 끝났다고 발언했다. BBC에서는 벵거가 노다지를 캤다고 표현하는 등 현지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10월 29일 첼시 FC와의 경기에서는 벤치 명단에 들었지만, 반 페르시의 해트트릭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아스날은 5:3으로 승리하였다. 마지막까지 몸을 풀었고 출전을 앞둘 뻔 했으나 반 페르시의 역전골이 나오게 되자 베르마엘렌이 마지막 교체카드로 출전하게 되었다. 박주영으로서는 아쉽겠지만 다음 경기 고대하던 챔피언스 리그의 출전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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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세유전 출전을 위해 락커룸으로 들어가고 있는 박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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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 |
11월 2일 UEFA 챔피언스 리그 F조 4차전 마르세유전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교체로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선발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전방 공격수로서 단 한번도 슈팅을 기록하지 못했고 62분을 뛴 후 반 페르시와 교체되었다. 사실상 여기서 박주영의 아스날 시절은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링컵을 통해 얻어낸 꿈꾸던 챔피언스 리그 선발이었지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며 벵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2011년 12월까지 경기출전을 못하며 벵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경기에 연속으로 결장하면서 앞으로의 프리미어리그 인생을 결정지을 기로에 서있다. 국내 언론과 팬들의 설레발과 달리 박주영을 영입한 아스날의 당초 의도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는 공격수 샤막과 제르비뉴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날에 티에리 앙리가 임대영입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가, 앙리의 부상으로 희망이 보였으나 같이 영입되었던 18살짜리 신예 체임벌린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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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스날 경기전에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 출전한다는 기사가 올라오며 박주영 팬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1월 19일 현재 기준으로 앙리가 부상당해 맨유전에 출전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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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월)경기, 2월 2일(목), 2월 4일(토)의 경기에도 결국 출전하지 못했다. 특히 2월 4일에는 반 페르시의 혹사 논란이 있었고, 경기 내용도 아스날이 압도적으로 쳐바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전하지 못했다. 다만, 비단 박주영 뿐만 아니라 벤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울하다. 현재 아스날의 목표가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수성과 로빈 반 페르시 득점왕 만들기라 어지간하면 반 페르시는 계속해서 풀타임을 뛸 가능성이 높다.
3월 7일, 챔피언스 리그 AC 밀란전에 후반 38분 교체출전해 뛰었다. 마지막 추가시간에 아스날이 결정적 역습 찬스를 맞았으나 알렉스 송이 비어있는 박주영을 한번 보더니 외면하고 마크당하고 있는 반 페르시에게 패스를 하다 무산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 상황에서 밀란 수비진이 박주영이 가는 쪽으로 백업을 하고 있었고 송 빌롱이 패스를 한다면 오른쪽의 빈 공간을 향해 달려가던 토마스 로시츠키에게 패스해야 했었다. 어차피 박주영에게 패스 해줘봐야 역습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백패스를 하거나 뺐겼을 거란 이야기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영국매체 토크포스트에서 '영입 Worst11'에 선정됐고, 영국 스포츠블로그 풋볼 팬캐스트에 게재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선수 20인'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리저브팀에서는 몇 경기를 치루긴 했다. 첫 경기 선덜랜드 리저브팀과의 경기에선 1대1 찬스를 놓치는 등 경기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리저브팀에서 4경기 연속골을 넣긴 했다. 리저브팀에서는 같이 출장한 샤막보다는 골을 더 넣긴 했는데 그래도 외면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15] 덕분에 박주영의 영입은 이나모토처럼 애초에 벵거 감독이 원한 것이 아닌 구단측의 아시아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마저 나올 지경이다.[16]
결국 리그 경기 패스 성공률이 100%다.[17]
시즌 후 구단 공식 홈페이지의 2011-12 시즌 평가에서는 "박주영은 첫 시즌 제한된 기회만을 얻었다. 볼턴 상대로 멋진 골을 넣었으나 로빈 반 페르시의 뛰어난 활약에 밀려 리그 출전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리저브 경기에서 많은 골을 넣으며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다. 다음 시즌에는 더 큰 임팩트를 노리고 있을 것" 이라고 언급했다.
2011-12 시즌: 6경기 1골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프리미어 리그 | 1 | 0 | 1 | 0 | 0 |
| UEFA 챔피언스 리그 | 2 | 1 | 1 | 0 | 0 |
| 칼링컵 | 3 | 3 | 0 | 1 | 0 |
| 합계 | 6 | 4 | 2 | 1 | 0 |
4.2. 2012-13 시즌 초
이러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루카스 포돌스키 아스날 이적설이 탄력을 받으면서 안 그래도 좁던 입지가 더 좁아졌다. 이젠 벤치에 앉을 자리도 없어질 기세라는 식의 기사까지 나오는 중. #5월 1일 포돌스키가 정식으로 아스널로 이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6월 26일 프랑스 대표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했다는 아스널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로서 아스널의 공격진은 포화상태를 넘겼다. 반 페르시, 포돌스키, 월콧, 지루, 제르비뉴, 샤막, 아르샤빈(임대), 벤트너(임대), 벨라(임대) 그리고 박주영.
결국 8월 11일, 벵거 감독이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대놓고 말했다. 근데 이 날은 박주영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1골 1어시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맹활약한 날이다.
다른 팀들은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활약상을 소개하기 바쁘지만, 아스널은 박주영이 골을 넣었음에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완전히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접었음을 나타내었다. 사실 아스널 자체가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탓도 있다. 그런데 전 시즌 박주영 투명화의 주범인 아스날의 에이스 로빈 반 페르시가 맨유로 이적해서 계속 남는다면 기회가 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게 되었다.
12/13시즌 등번호 9번을 포돌스키에게 빼앗기며 30번을 갖게 되었다. 아스날과 결별도 그리 멀지는 않았다. 이적시장 막바지 풀럼 FC과 셀타비고 이적설이 올라왔고, 이적시간 마감일인 8월 31일 결국 100만 유로 (약 14억원) 으로 레알 클루브 셀타 데 비고로 임대되었다. 이 후 완전이적 옵션이 붙었다고 한다.
A South Korea international, Ju has played in the 2006 and 2010 World Cups. He also represented his country this summer in the 2012 London Olympics, where his two goals in six games helped the team to a bronze medal. Everyone at Arsenal wishes Ju well for his time at the Balaidos Municipal Stadium
여담으로 갈때까지 주라고 불렸다. 아스날에서 Chu Young이라는 이름 대신 콜네임으로 밀어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워낙 인지도가 낮아서 국내 팬들은 '그냥 잘못부르나보다' '골 넣을 때마다 주님 찾더니 '주'님 됐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4.3. RC 셀타 데 비고 (임대)
26경기 4골 1도움
팀의 에이스인 이아고 아스파스와 상성이 좋을 법한 공격수를 물색하던 파코 에레라 감독의 눈에 들어 2012-13 시즌부터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소속의 셀타비고로 임대를 오게 됐다. 기본적으로 아스파스의 원톱을 사용하는 팀의 성향상 플랜 B로서의 입지. 덕분에 꾸준한 출장기회는 잡고 있지 못한 가운데 공격력이 필요한 시점에 조커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도 있다. 아스파스와 얼마나 순조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가 활약의 열쇠가 될 듯하다. 이적 인터뷰에서 15골 이상 넣겠다고 발언했다.등번호는 18번. 2012년 9월 16일 발렌시아 CF와의 원정 경기에 교체로 나와 약 20분 가량을 뛰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뛰었지만 후반 들어 급격히 떨어진 팀 페이스 때문에 별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그래도 아스날 시절보단 폼이 많이 올라왔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9월 23일 헤타페 CF와의 홈 경기에서 교체출장하여 드디어 임대이적 후 첫 골을 터뜨렸다!
페널티 박스 왼쪽 외곽에서 크론 델리가 살짝 띄워 올려준 공을 쇄도하며 그대로 밀어넣었다. 결국 이 경기의 결승골이 되었으며 팀은 2-1 승리. 폼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18] 그러나 그 이후 출전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셀타 비고의 감독은 아직 우리가 바라는 수준을 맞춰 주지 못하고 있다며 좋은 선수이니 열심히 할 것이고 도와주겠다며 분발을 촉구했다.거기다가 팀과의 호흡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실력문제라고 디스했다. 그러나 11월 19일 마요르카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해 시즌 2호골을 만들었다. 감독으로부터 디스를 당하고 주전자리도 밀려있던 상황에서 나온 골인지라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골이 될듯하다.
11월 30일 국왕컵 32강 2차전에서 후반 10분, 헤딩으로 3호골을 작렬시켰다, 1차전에서 2-0으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 셀타비고는 3골을 넣으며 3-0으로 승리하여 최종스코어 3-2로 16강 진출 했는대 상대방이 레알 마드리드다. 그런데 12월 12일(한국시각으로 12월 13일 오전) 셀타비고가 레알 마드리드를 16강 1차전에서 2:1로 이겨버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헤트트릭 기회를 날렸다는 개드립 기사가 올라와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리고 박주영은 팀이 강등이냐 1부잔류냐를 결정짓는 마지막 리그경기때 팀을 나왔다. 관련 기사팀내 규정에의하면 뛰지않는 선수라도 경기장에서 지켜봐야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나온 것. 결국 이것 때문에 벌금(보너스 삭감)을 물고 라리가의 마무리를 안좋게 매듭지었다. 박주영의 이적소식을 매번 알려준 박주영의 지인의 말으로는 군사훈련 문제로 일찍 나왔다고 한다.
셀타 시절을 종합하면 실패를 부정할 수 없으나 운 또한 많이 없던 시절이다. 이적금이나 연봉을 생각하면 셀타도 에이스급으로 데려올 생각이었고 박주영도 그리 생각했을 터이나 당시 셀타의 에이스 이아고 아스파스와 동선이 겹치고 셀타가 중후반기로 갈수록 미드필더가 초토화되어서 팀 적응이 힘들었던 점도 있다. 이러하니 아스파스의 짝은 거의 베르메호로 굳어지는 형편이었다. 셀타도 이러한 점에서 패서형 미드필더를 겨울에 사려고 했으나 전임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감독은 아스파스에게 전권 몰아주기 박주영은 조커형으로 빼면서 안그래도 떨어진 폼을 회복하기엔 시간도없고 팀스타일도 안맞는 계륵이 되어버렸다. 26경기 출전이라지만 대부분이 교체라는 점에서 후반 30~35분 등에서 교체하니 실제로는 출전시간은 10-12경기 정도다. 하지만 강등권 팀에서 자리를 못잡고 컵대회에서는 언제나 선발이었다는 점과 아스파스가 결장일 때 확실하게 찬스를 살리지 못한 점 등, 박주영 자신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2012-13 시즌: 26경기 4골 1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라리가 | 22 | 8 | 13 | 3 | 1 |
| 코파 델 레이 | 4 | 4 | 0 | 1 | 0 |
| 합계 | 26 | 12 | 14 | 4 | 1 |
4.4. 2013-14 시즌 초
국내 기사에서는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가 박주영의 영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독일쪽에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고 오히려 함부르크측이 박주영 영입에 관심이 없다고 부인을 했다.프랑스 리그앙의 생테티엔, 로리앙 같은 팀들이 박주영을 원했고, 아스날측에선 프리로 보내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측이 연봉을 깎지 않아 이적이 무산되었다는 프랑스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박주영의 주급은 50,000 파운드, 연봉으로는 약 300만 유로 수준인데 이 정도 금액은 잉글랜드에서도 어지간한 중하위팀에서는 팀 수위급 연봉이며 프랑스에서는 2~3팀, 독일에서 3~4팀, 스페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AT 마드리드를 제외하고는 줄 수 없는 금액이다. 실력에 비해서 지나치게 고액 연봉을 받아서 이적하기 힘들었다. 참고로 산티 카솔라와 후안 마타가 스페인에서 뛸때도 주급으로 40,000 파운드를 못 받았다.
결국 이적은 하지 못했고 2013-2014시즌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25인 로스터에는 들었으나 1군에서 훈련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리인은 1군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고 부정했지만 아스날 1군 단체 촬영을 할 때 잠시 나타난 것을 빼면 박주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는데 웨스트브롬을 상대로 캐피털 원 컵 3라운드를 대비한 훈련에 참여했고 놀랍게도 출전명단에 포함됐다!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박주영이 훈련에 참여하고 벤치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국내외 축구팬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한 해외팬은 '박주영이 아직도 살아있었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나폴리전을 대비한 훈련에서도 모습을 비추고 벵거 감독과 악수를 했다. 물론 박주영은 챔피언스리그 출전 명단에는 없어서 당연히 출전은 불가능하다. 훈련에서는 의외로 팀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11-12 유니폼을 입은 박주영의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이 10월 4일이 돼서야 13-14 유니폼을 입은 사진으로 뒤늦게 바꿨다. [19] 니콜라스 벤트너가 프로필 사진 재촬영을 할 때 같이 한 걸로 보인다.
2013년 10월 7일(한국시간)부터 잉글리시 챔피언십 리그에 있는 위건 애슬레틱 FC가 긴급임대를 통해 박주영을 3개월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는데, 위건에서의 입지[20]와 박주영의 높은 주급[21]을 감당하기 힘든 위건의 사정으로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위건의 오언 코일 감독은 여전히 '그가 와주길 바란다'며 박주영이 스스로 주급을 깎아서라도 와달라고 하는데 박주영은 그럴 생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나왔다. 아스날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된 상태에서 다른 선수라면 주급을 깎아서라도 뛸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비교하며 사람들은 박주영을 '아스널에서 적당히 훈련뛰면서 축구 구경하고 주급 받아먹는 선수'라며 조롱하고 있다. 여기에 오언 코일에게 박주영을 추천한 게 이청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후배가 차려준 밥상 걷어찬놈'이란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프랑스 렌을 비롯해, 파리 생제르맹, 릴, 리버풀, 토트넘, 볼턴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사건의 전모는, 2011년 기사를 OSEN이라는 언론사에서 2년 후에 재활용했고, 네티즌들이 진상을 확인하고 비난을 퍼붓자 하루만에 내렸는데, 그 와중에 스포츠조선이 이걸 보고 받아쓰기한 것. 여담으로 파리 생제르맹의 2013년 공격진은 즐라탄, 카바니, 라베찌다.
그런데 2013년 10월 30일(한국시간) 캐피털원컵(리그컵) 첼시전에 후반36분에 교체투입되었다. 시즌 첫 투입으로인해 각종 드립이 난무중이다.
그 이후에는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지만 간간이 올라오는 훈련 사진에서 매우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내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벵거 감독은 꾸준히 박주영 뛸 곳 찾아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런 뱅거 감독의 우려와는 달리 북런던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박주영이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아스널에 남아 있는 것은 축구선수로서의 동기 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 탓일 수도 있다. 본인에게 월드컵 출전의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월드컵에 두 번 출전했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혜택도 받았으며, 박주영 본인의 성격이 매스컴 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므로 굳이 국가대표팀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어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거기에 45,000파운드의 주급[22]은 엄청난 금액이라 이를 포기할 이유도 없다. 때문에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명문 클럽 아스날의 경기를 VIP석보다 좋은 곳에서 공짜로 관람하고, 7천만원이 넘는 돈을 매주 받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축구팬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23] 아스날 입장에서도 저 중하위권 클럽에서 에이스놀이 할 선수급에 해당하는 비싼 주급때문에 쉽게 임대가 되지 않았다. 임대시 주급 지불에 대한 의견차 때문이다. 구단이 일방적 방출을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나, 이럴 경우 계약기간까지 보전된 주급을 일시에 지급해야 하므로 구단에선 섣불리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로 계속 머무른다면 다음 월드컵 출전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1월 중순까지는 결국 이적 실패로 남는가 했지만 1월 후반부터 급히 팀을 찾는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주영에게 관심을 보인 다수의 구단들이 "태도가 다소 좋지 않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접하고 영입을 주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관련 기사
12월 3경기 연속 후보 명단에 들었으나 출전하지 못하였다.
2013-14 시즌(아스날): 1경기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캐피탈 원 컵 | 1 | 0 | 1 | 0 | 0 |
| 합계 | 1 | 0 | 1 | 0 | 0 |
4.5. 왓포드 FC (임대)
통산 2경기
평판과 이미지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데다, 심지어 그가 브라질 월드컵 직전까지 반 시즌만 뛸 팀을 찾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이적은 어려웠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러나 박주영은 겨울 이적시장 막판 2부 리그의 왓포드 FC로 시즌 종료까지 임대 계약을 하는데 성공한다. 2014년 2월 기준 왓포드는 16위에 그쳐 있는 상황이라 리그 잔류가 더 우위(승격권보다 강등권 승점차가 좁으니)이기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은 어렵다.박주영으로선 벤치 멤버로 하는 일 없이 있는 것보단 여기라도 가는 게 급선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가기 위해 홍명보 감독이 제시한 꾸준한 경기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대표팀 승선을 위한 선택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같은 리그에 있는 이청용과의 맞대결도 기대가 되는 것 중 하나.
2부 리그, 그것도 하위권에 있는 팀을 어떻게 골랐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몇몇 축구 전문가들이 그 이유가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아직 신혼 생활인 아내 때문에 다른 곳으로의 이사는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런던 인근에 있는 팀을 찾은 듯한데, 그중 왓포드가 최적의 조건이었던 듯하다.
노란색이 왓포드, 빨간색이 아스날.[24]
위의 그림대로 왓포드는 아스날의 연습구장 거의 바로 옆에 붙어있다. 아예 2군들은 아스날 2군과 연습장을 공유해서 쓴다고 한다. 벵거 감독의 눈에 어쩌다 한 번이라도 띄기 위해선 최적의 위치라는 소리다. 영국 축구 평론가 존 듀어든은 왓포드 동네 자체가 시골과 다름없는 재미없는 마을이기 때문에 축구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우선은 앞에서 서술했듯 오랫동안 경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박주영 본인에겐 경기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인 듯하다. 그리고 박주영이 왓포드로 임대되자마자 임대해온 킴 칼스트롬이 훈련 도중 부상으로 2~3개월이나 결장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3일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리그 경기에서 91분 포레스티에리와 교체 투입되며 드디어 95일만에 경기에 나섰다. 실제 경기를 뛴 시간은 4분 정도. 이 와중에 박주영이 경고를 받은 것을 들어 프로정신과 집념의 증거라는 기사가 떠서 축팬들은 그럼 퇴장당하면 인간승리냐며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실제론 경고를 받은 적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사실 구단측 착오로 트위터상 중계에선 박주영이 경고를 받았다고 떴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2014년 2월 23일 32라운드 볼턴과의 리그경기에 실로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그리고 61분에 교체아웃될 때까지 골/도움/슈팅/유효슈팅/오프사이드/얻어낸 파울 모두 0개를 기록하며 팀은 0:2 패배를 당했다.
이후 국대에서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왓포드에서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됐었으나 돌아가자마자 부상을 당하며, 왜 경기 뛴지 오래된 공격수를 기용하는 게 위험한지를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25]
그리고 4월이 돼서야 부상 내용이 밝혀졌는데 바로 봉와직염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파주 NFC에서 훈련하는데 기사 이른바 황제훈련드립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아스날은 주전 스트라이커의 성추문 파문이 일어나고 심혈을 들여 영입한 미드필더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졌고, 리버풀에게 1:5로 털리고 벵거감독 1,000 번째 기념경기에서 천적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에게 0:6으로 털리는 참사를 맞이하였다. 결국 전반기 1위에서 4위로 미끄러진 채 시즌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토템이 없어서 그렇다’는 농담이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 돌기도 했다.
2013-14 시즌(왓포드): 2경기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EFL 챔피언십 | 2 | 1 | 1 | 0 | 0 |
| 합계 | 2 | 1 | 1 | 0 | 0 |
4.6. 계약 해지
5월 23일, 프리미어 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한 각 구단별 방출 선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병역특례로 2015년까지 계약을 연기할 수 있었지만 그 옵션을 포기하고 계약을 만료시켰다.이것으로 박주영의 축구 커리어는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여러 번의 뒷통수와 셀타 비고, 왓포드에서 부진한 활약으로 인해 유럽 쪽에선 평가가 매우 나쁜 터라 박주영을 원하는 팀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박주영에게 중요했는데, 러시아전에서의 활약이 없었고 알제리전에서도 중용되었지만, 후반 55분 만에 교체되어서 월드컵 2경기 연속 무 슈팅 기록을 이어갔다. 벨기에전은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서 팀의 패배를 지켜보았다. 월드컵이 끝난 후 과연 박주영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여부는 빠와 까들의 공통 관심사이다.
그런데 FC 서울 시절 함께했던 세뇰 귀네슈 감독이 있는 터키 쉬페르리그 부르사스포르에서 영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언플인지 실제 움직임이 있는지는 미지수. 터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영입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귀네슈 감독의 한국과 FC 서울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면 실제로 박주영을 영입할 의사는 있는 것 같다. 기성용도 한때 임대로 자기 팀에 데려오려고 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선덜랜드가 영입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지역지에서 나왔다.
하지만 죄다 소문으로 끝나고 8월 들어서 선덜랜드나 부르사스포르 영입설은 사그러들었다. 존 듀어든이 호주 A리그에서 관심이 있다고 한다. 아랍 몇몇 리그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 있으나 본인이 유럽행을 고집하여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8월 안으로 소속팀이 없다면 6달 동안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
2014년 8월 AFC C급 지도자 과정을 이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급 라이선스는 초등학교 이하 유소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으로, 만약 팀을 못 구할시 축구 교실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병역특례 자격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병무청에서는 박주영의 AFC C급 라이선스 취득에 대해 '지금까지 예술·체육요원이 34개월간 선수나 지도자 활동을 못해 복무를 위반한 적이 없었다.'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의하면 교육 내내 매우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5. 알 샤바브 FC
7경기 1골
5.1. 2014-15 시즌 초
알 샤바브 FC로 이적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입국하고 있다.2014년 10월 1일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소속의 알 샤바브 F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간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알 샤뱌브 FC는 2014년 사우디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박주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월 18일 알 힐랄 SFC와의 경기에 후반 12분 교체 출전하면서 데뷔전을 가졌다. 상대선수로 곽태휘가 뛰고있었기 때문에 코리안더비가 성사됐다. 그리고 0:0으로 끝날 것 같았던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 득점에 성공, 데뷔골을 기록했다.
골의 퀄리티는 상당한 편인데, 상대 선수가 흘린 볼을 곧바로 앞에있는 팀 동료에게 패스 후 본인은 수비수 여러 명 뒤로 침투해 들어갔고 패스를 받은 후 그대로 골키퍼와 골대 사이의 상당히 좁은 틈으로 밀어 넣었다. 실제로 골키퍼와 골대의 거리가 굉장히 좁았던 걸 생각하면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이슬람을 믿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특성상 기도 세리머니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데뷔골 이후 하자지가 퇴장을 당하면서 팀 내 패스를 해주는 선수가 사라졌고, 제로톱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박주영이 미드필더로 뛰게 되었다.
그런데 1월 이적시장이 며칠 안 남은 이 시점에 터키 쉬페르리그 10위 팀인 가지안텝스포르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 그러나 카더라 이야기일뿐, 아직 성사된 건 없다.
2017년 7월 박주영이 아직도 알 샤밥으로부터 150만 불 정도의 주급을 받지 못해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런 가운데 2015년 2월 5일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하며 자유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 계약 해지 이유는 박주영의 현지 적응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은 터키 가지안텝스포르와 계약을 하려고 논의를 하였는데 # 알 샤밥이 플레이 메이커와 계약이 완료돼야 떠날 수 있다고 하여 # 시간이 정체된 동안에 가지안텝스포르가 다른 선수를 영입하여 가지안텝스포르와 계약을 실패했다.
2014-15 시즌: 7경기 1골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 7 | 5 | 2 | 1 | 0 |
| 합계 | 7 | 5 | 2 | 1 | 0 |
6. FC 서울 2기
| |
| 218경기 55골 21도움 2015-2021 |
참고하십시오. |
2005-2008, 2015-2021
314경기 90골 31도움
314경기 90골 31도움
6.1. 시즌별 기록
2015 시즌: 24경기 9골 2도움|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 클래식 | 23 | 17 | 6 | 7 | 2 |
| FA컵 | 1 | 1 | 0 | 2 | 0 |
| 합계 | 24 | 18 | 6 | 9 | 2 |
2016 시즌: 49경기 11골 7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 클래식 | 34 | 20 | 14 | 10 | 1 |
| FA컵 | 5 | 3 | 2 | 0 | 4 |
| AFC 챔피언스 리그 | 10 | 3 | 7 | 1 | 2 |
| 합계 | 49 | 26 | 23 | 11 | 7 |
2017 시즌: 39경기 10골 1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 클래식 | 34 | 14 | 20 | 8 | 1 |
| FA컵 | 1 | 1 | 0 | 0 | 0 |
| AFC 챔피언스 리그 | 4 | 2 | 2 | 2 | 0 |
| 합계 | 39 | 17 | 22 | 10 | 1 |
2018 시즌: 22경기 4골 1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20 | 9 | 11 | 3 | 0 |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2 | 0 | 2 | 1 | 1 |
| 합계 | 22 | 9 | 13 | 4 | 1 |
2019 시즌: 36경기 12골 7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35 | 31 | 4 | 10 | 7 |
| FA컵 | 1 | 1 | 0 | 2 | 0 |
| 합계 | 36 | 32 | 4 | 12 | 7 |
2020 시즌: 31경기 9골 3도움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23 | 15 | 8 | 4 | 2 |
| FA컵 | 2 | 1 | 1 | 1 | 0 |
| AFC 챔피언스 리그 | 5 | 5 | 0 | 3 | 1 |
| AFC 챔피언스 리그 예선 | 1 | 1 | 0 | 1 | 0 |
| 합계 | 31 | 22 | 9 | 9 | 3 |
2021 시즌: 17경기
| <rowcolor=#fff>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17 | 10 | 7 | 0 | 0 |
| 합계 | 17 | 10 | 7 | 0 | 0 |
7. 울산 현대-울산 HD FC
2022년 1월 7일, 2012년 런던 올림픽 와일드 카드 발탁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최종 명단 발탁을 주도했던 은사 홍명보 감독이 있는 울산 현대로 이적한다는 단독 기사가 보도됐다. 김광국 단장도 박주영 영입 추진을 인정하면서 다각도로 영입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구단 측에서 선수단 내 최저 연봉을 제의했는데도 선수가 수용했고, 구단에 금전적 조건을 백지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현역 커리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한다.
팬들은 처음에는 외인 공격수도 영입 못 한 상황에 고령 + 고연봉 스트라이커를 영입하는 거냐며 반발이 심했으나 이런 뒷사정이 밝혀진 지금에선 응원하는 반응이 더 크다. 다만 선수 자체의 안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여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울산에서 새 출발하는 이번 시즌에서의 평가 여부가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2년 1월 16일, 울산은 박주영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1년.[26] 박주영의 영입까지 더해 울산은 전 소속팀이 FC 서울이었던 선수들만 현 스쿼드에 8명을 보유하게 됐다.[27] 2022년 1월 19일 전지훈련 미디어데이에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울산 현대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인터뷰 하였다.
7.1. 2022 시즌
서울에서 달았던 10번은 울산의 에이스 바코가 가져가게 되면서 등번호는 91번을 받았다.[28][29]선수 소개 멘트는 뜨거운 불꽃을 피운다, 천재 스트라이커.
영입 당시에 써드 옵션 공격수로 영입된 것은 팬들과 홍명보 감독을 포함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울산의 새 외인 스트라이커 레오나르도는 비자 발급이 늦게 되는 건지 아직 입국도 못 하고 있어 자가격리 등을 감안하면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시기는 3월 초인 것으로 보이며, 결정적으로 오세훈이 개막이 3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J리그 시미즈로 튀어버리는 바람에 자칫하면 개막전 선발을 넘어 강제 전성기를 맞이하게 생겼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프리시즌 광주 FC와의 연습 경기에 후반 교체투입되어 득점에 성공했다.
2월 20일, 김천 상무와의 개막전에 명단 제외되었다. 벤치에 앉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폼이 올라오지 않은 문제인 것인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팀은 원톱의 공백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공격진들의 빈공 끝에 0:0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주영을 명단에 넣을 수 있었지만, 시즌 초이기 때문에 조금 더 폼을 올린 후에 명단에 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2월 26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 FC와의 2라운드에서 교체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 이청용과 교체되어 투입되면서 울산에서의 데뷔전을 치렀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박주영의 투입으로 수비진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울산은 박주영의 더미 플레이를 통해 더 유효한 공격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3월 1일, 울산 현대 의 홈에서 열린 수원 FC와의 3라운드 경기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3월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4라운드 경기에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3월 11일, FC 서울과의 5라운드에서 벤치에 앉았다. 박주영이 나오기를 바라는 양 팀 팬들이 많았으나 아쉽게도 울산이 교체 카드를 실질적으로 두 장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30] 남은 두 장의 교체 카드도 바코와 이청용에게 돌아가 아쉽게도 출전이 불발됐다. 경기 후 서울 원정석을 향해 인사를 하러 갔고, 많은 팬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3월 15일,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포트 FC전에서 처음으로 선발출장했다. 선수단 내 코로나 19 집단 감염으로 인해 가용 인원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 때문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울산 현대 이적 후 첫 선발이었지만 공격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고, 60분을 뛴 후 레오나르도와 교체되었다.[31]
3월 27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6라운드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장하지는 못했다.
4월 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7라운드 경기에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4월 5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8라운드에도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이 불발되었다.
4월 9일, 울산 홈에서 열린 대구 FC와의 9라운드 경기에도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4월 15일, 말레이시아 조호르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1경기에서 후반 85분에 레오나르도를 대신해 투입되었다. 짧은 시간이었고 후반 막판에 가와사키에게 밀리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팀은 조현우의 아쉬운 막판 미스로 동점골을 허용하여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4월 21일, 광저우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3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출장했다. 이 날 세컨톱으로 나온 코스타와 호흡을 맞췄으며, 후반 57분에 이청용의 크로스를 받아 멋진 오른발 발리로 마무리해 울산에서의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이후 63분에 바코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4월 24일, 광저우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4경기에서 지난 경기에 이어 선발출장했다.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위치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고 슈팅도 여러차례 기록했다. 그 중 골대를 한 번 맞춰 2경기 연속골 기회가 아쉽게 무산되었다. 이 경기에서 울산 현대 이적 후 처음으로 풀타임 소화를 했고, FotMob로부터 평점 7.4점을 부여받았다.
4월 27일 가와사키전, 4월 30일 조호르전에 벤치명단에 들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5월 5일 수원 삼성전, 5월 8일 강원전, 5월 14일 인천전에는 경기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5월 18일 제주전, 5월 21일 김천 상무전에는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6월 19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1 16라운드 경기에서 1: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73분에 교체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미 골문 앞에 텐백으로 버스를 세운 전북을 상대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6월 26일 성남전에서 후반 18분 윤일록과 교체되어 필드를 밟았는데, 바코에게 전달된 결정적 백힐 패스로 어시스트를 할 뻔하기도 하는 등 최전방에서 특유의 센스 있는 플레이와 등지고 버티기로 울산의 공격에 힘을 더해줬다. 그러나 후반 추가시간 엄원상의 극장골 장면에서 박주영이 마상훈에게 파울을 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골이 취소되고 말았다.[32] 경기 후 평소 항의를 잘 하지 않던 그마저도 동료들과 함께 심판에게 항의했고, 골을 넣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책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이 경기는 박주영에게 있어서 억울한 경기가 됐다. 결국 울산은 0:0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7월 5일 강원 FC전에서 드디어 울산 현대 소속으로 리그에서 처음 선발 출전했고, 후반 24분까지 소화한 뒤에 레오나르도와 교체됐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으나 최전방에서 수비진들과 적극적인 경합을 벌이는 등 투혼을 발휘하며 팀의 2:1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울산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틴 아담을 영입한 뒤로는 계속해서 명단 제외가 되고 있다. 그래도 경기 외적인 면에서는 베테랑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 결국 울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솔선수범한 박주영의 리더십 덕에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며, 박주영 본인도 2016년 FC 서울에서의 리그 우승 이후 6년만에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33]
시즌이 모두 끝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올 한해 그리고 월드컵에 대해서 언급했다.#
마지막 리그 경기 제주전에서 은퇴 인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이호와는 달리, 박주영은 울산 현대와 단기 계약을 맺긴 했으나 현역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기에 내년에 그의 거취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생각도 물론 있지만 나이 및 체력과 가족 등 문제로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2월 23일 홍명보 감독의 제안으로 다음 2023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합류 및 지도자 연수를 준비한다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
2022 시즌: 9경기 1골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6 | 1 | 5 | 0 | 0 |
| FA컵 | 1 | 1 | 0 | 0 | 0 |
| AFC 챔피언스 리그 | 3 | 2 | 1 | 1 | 0 |
| 합계 | 10 | 4 | 6 | 1 | 0 |
7.2. 2023 시즌
보도대로 이번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를 맡게 됐다. 등번호는 작년과 똑같이 91번을 받았다.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전환되었기에 출전 명단에 포함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10월 24일 열린 조호르와의 ACL 조별리그 3차전에서 놀랍게도 벤치 명단에 포함되었다. 다만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은 결국 1분도 출전하지 않고 시즌을 마쳤다. 사실 작년의 이호처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 겸 마지막 경기를 홍명보 감독이 제안했으나, 박주영 본인이 주목받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플레잉코치로 계약을 연장할 수도, 이대로 조용히 은퇴 수순을 밟고 전업 코치로 새 출발을 시작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7.3. 2024 시즌
전지훈련에 동행한 것이 확인되면서 잔류가 확정됐다. 등번호도 전 시즌과 똑같이 91번을 받았다. 다만 직접 경기 출전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자신을 울산으로 데려온 홍명보가 논란 속에 국가대표팀으로 떠나게 되었다.
2024 시즌 종료 이후 은퇴할 것이라 한다.
11월 10일, 친정팀인 FC 서울과의 리그 37라운드 경기에서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오랜만에 명단에 포함되어 화제가 되었다. 약 1년 만의 명단 승선이었다. 전반 32분에 교체 투입되면서 748일 만에 그라운드를 밟았다.[34] 그리고 전반전 종료와 함께 교체 아웃되었다.
11월 23일, 리그 마지막 경기인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후반 28분 교체 투입되며 홈 팬들 앞에서도 출전했다. 2:2로 비기고 있던 후반 39분, 에사카 아타루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이전까지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99개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 어시스트로 K리그 통산 100번째 공격 포인트[35]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싶던 후반 45분, 이청용의 어시스트를 받아 몸을 날린 슬라이딩 슈팅으로 4:2를 만드는 득점까지 터트렸다! 이 골은 코로나19로 시즌이 축소되었던 2020년 26라운드에서 강원 FC를 상대로 만든 프리킥 득점 이후 무려 4년만에 터트린 리그 득점이자 울산에서의 리그 첫 득점이다. 특히 양박쌍용으로 묶이는 이청용과 만들어낸 골이라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의미가 크다. 이렇게 그는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고 38R 베스트 11에도 뽑히며 화려하게 시즌을 끝마쳤다.
은퇴 전 즐거운 마지막 경기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출전한 경기였으나 오히려 이날 울산 공격진 중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 사이에서 시즌 내내 공격진이 부진할 때 한두 번 정도 더 기용할 가치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36] 팀은 박주영의 1골 1도움으로 2:2를 4:2로 만드며 마지막 경기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챙겼으며, 또한 이로 인해 울산은 득점 수 3년 연속 1위[37]를 달성했다. 이렇게 그는 그야말로 한국 축구사에서 다사다난한 길을 걸어오며 많은 업적을 남긴 박주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드라마틱한 마지막 경기를 만든 셈이 되었다.
이날 기준 만 39세 4개월 13일의 나이였으며 이날 출전으로 2018년의 김용대, 득점으로는 2002년의 김현석을 뛰어 넘어 울산 구단 역대 최고령 출전&득점 기록자가 됐다.
2024 시즌: 2경기 1골 1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K리그1 | 2 | 0 | 2 | 1 | 1 |
| 합계 | 2 | 0 | 2 | 1 | 1 |
8. 은퇴
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은퇴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예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은퇴를 원하면 '안 보이면 은퇴가 아니겠나' 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예전부터 이야기가 나오던 대로 본인이 은퇴를 공식화해 주목을 받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보이며, 은퇴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만 사실상 조용히 은퇴한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이후 2024 시즌 종료 이후 2025 시즌부터 울산 HD FC의 정식 코치로서 합류하는 것이 확인되며 공식적인 은퇴 소식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선수로서의 은퇴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9. 양천 TNT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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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독이 몰래 유니폼을 빨아와서 시합이 끝나면 회수하는 식이었다고 한다.[2] 날아라 슛돌이를 본사람들은 알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1학년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3] 박주영이 청구고 1학년이던 시기는 한일 월드컵도 열리기 전인 2001년이었고, 청구고 소재인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팀이 없던데다가, 당시 청구고등학교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와 함께 포항 스틸러스의 실질적인 산하 유스팀이었기 때문에 포항의 지원을 받고 브라질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4] 참고로, 당시 박주영과 함께 브라질 유학을 갔던 20명 중 포항 스틸러스 1군 팀에 입단한 선수는 0명이다...[5] 첫 시즌에는 박주영과 호흡을 맞추는 리카타가 잘했으나,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하였다.[6] 이후 2020-21시즌에 황의조가 타이 기록을 세운다.[7] 다들 알다시피 오바메양은 박주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클래스를 가진 선수로 성장한다. 두 선수는 같이 뛴 적은 없어도 아스널에서 활약하게 되긴했는데 한 두경기에나 겨우겨우 출전한 박주영에 비해 오바메양은 엄연히 도르트문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스날의 주전으로 입성한 월드클래스 스타였다.[8] 리버풀, 토트넘, AC 밀란, AS 로마, 유벤투스, 세비야, 마르세유, 보르도, PSG, 그리고 중소규모 팀들이나 러시아 팀들까지해서 무려 20여개 팀과 연결되었다. 박주영 본인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 가능한 팀으로 이적을 원했다고 한다.[9] 아르센 벵거와 통화 후 이적결심[10] #[11] 벵거 감독이 경기 당일날 "박주영이 워크 퍼밋을 경기 전까지 발급받으면 경기에 내보내겠다" 라고 발언. 경기 직전에 워크 퍼밋이 발급되었다. 그리고 벵거의 말을 믿은 SBS와 한국 축구 팬들은, 아스날전 마지막 교체 카드로 샤막이 나오자 분노 폭발했다. 덕분에 정작 지동원과 기성용이 골 넣는 경기를 보지 못했다. 박주영 데뷔전도 아니고, 경기력도 한심했던 아스날전을 대체 왜 봤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12] 같은 날 박지성의 출전을 못하게 만든 맨유의 톰 클레버리, 조니 에반스와 함께 벵거가 추석 선물 3인세트를 선사했다.[13] 1:1 상황에서 다들 안나오겠거니, 하는 상황에서 박지성이 어시의 어시가 되는 연계 플레이를 하면서 2:1로 맨유가 앞서나갔다.[14] 좀 더 일찍 나올수도 있었는데, 아스날이 0:1로 뒤지고 있어서 뱅거 감독이 아르샤빈과 박주영을 동시에 투입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반 페르시의 동점골이 터지는 바람에 안드레이 아르샤빈만 투입되고 박주영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15] 사실 샤막 또한 반 페르시의 미친 활약 때문에 해당 시즌 13경기 그 중 대부분을 교체로 나와 1골 1어시에 불과했다.[16] 물론 박주영 영입은 벵거의 픽이 맞긴 하다. 다만 원래 벵거 감독은 베스트 멤버를 주야장천 굴리는 스타일로 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애당초 박주영에게 땜빵노릇 이상을 기대했다고 보긴 힘들다.[17] 단 3개만 시도했고, 모두 성공했다.[18] 여담으로 이날 홈구장 잔디가 안 좋아서 평소와 다름없는 기도 세레머니를 하려다 렉걸리듯 철푸덕해서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19] 이날 전까지는 박주영 혼자만 11-12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었다.[20] 3순위 공격수[21] 45,000파운드로 우리돈 약 7,600만원이라 한다.기사[22] 한화로 약 7,600만원. 한 주에 꼬박꼬박 통장에 7,600만원씩 들어온다.[23]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하나의 오류를 지적해 보자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VIP석이면 좋은 시야와 영상은 물론 쾌적한 실내환경과 푹신한 의자, 맛있는 음식과 양질의 주류들을 포함한 호화 서비스가 제공되며 런던 명사들과의 만남과 사교의 장으로서도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24] 사실 이는 런던 서부에 첼시 FC에 필적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는 라이벌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 당장 서런던에서 첼시 이외에 가장 성공적인 클럽이라고 하면 EFL 챔피언십 붙박이인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나 풀럼 FC 정도이고, 나머지는 브렌트포드 FC, AFC 윔블던등을 제외하면 프로에 올라오기도 벅찬 클럽들밖에 없다.남런던의 크리스탈 팰리스 FC도 이와 비슷한 상황인데, 이쪽은 그나마 찰턴 애슬레틱 FC도 존재하고, 역사적 라이벌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도 있어 낫다. 이와 비해서 동런던과 북런던은 너무하다 할 정도인데, 북런던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스날 FC와 토트넘 홋스퍼 FC가 있고, 동런던은 만나기만 하면 전쟁을 치르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 밀월 FC가 있다.[25] 실제 박주영 K리그 초창기 라이벌인 김진용 같은 선수 역시 현재 부상과 실전감각 저하가 계속 맞물리고 얽히고 설키며 굉장히 미미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26] 2022년 FA 명단에 이름을 올려 계약 기간이 1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27] 조수혁, 김태환, 박용우, 김성준, 고명진, 윤일록, 이청용, 박주영.[28] 2015년 사우디 아라비아리그 알 샤바브 FC에서 FC 서울로 복귀했을 때 받은 등번호와 같다.[29] 9+1=10의 의미가 강하다[30] 전반 6분만에 부상당한 센터백 김기희를 신형민으로 교체했다.[31] 푸른파도2 3화에서 코로나 증세를 앓고 있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무효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뛰었다고 밝혔다.[32] 정작 VAR을 통해 느린 화면으로 돌려보면 마상훈이 먼저 박주영을 팔로 미는 장면이 있었는데, 김우성 심판이 VAR을 보고도 공격자 반칙으로 노 골을 선언했다.[33] 절묘하게도 박주영이 K리그에 복귀한 2015년 이후로 전북이 리그 우승을 못 한 적이 딱 두번 있었는데, 두번 다 박주영의 소속팀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 그 중 첫번째 리그 우승했던 2016년 당시 전북이 우승을 눈앞에 뒀을 때 그 우승을 빼앗은 장본인이 본인이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서울 우승시에는 명백히 주인공이었고 울산에서는 조연이었다는 점이다.[34] 후반 막판 교체를 예상한 팬들도 많았지만 사실 울산의 경우 2022년 당시 이호(1984)의 경우처럼 은퇴를 앞둔 선수의 경우 전반 종료 직전에 투입시키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박주영 역시 38라운드에서 이런 식으로 마지막 경기를 가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특별히 친정팀 서울과의 경기인 만큼 37라운드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35] 리그컵 11개, 승강PO 2개 포함.[36] 하지만 원래는 특별히 주목받기 싫은 마음에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코치로서의 전환을 희망했었고, 은퇴 경기를 치러 팬들 앞에서 인사하고 필드를 떠나야 하지 않겠냐는 김판곤 감독의 설득 끝에 의사를 바꿨기에 시즌 도중의 기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때마침 2024시즌 K리그1 마지막 두 경기가 루키 시절부터 지켜본 오랜 팬들이 있는 친정팀인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 현 소속팀 팬들에게 인사하고 시상식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는 홈 경기였기에 더욱 의미있었다고 볼 수 있다.[37] 다만 올해는 강원과 공동 1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