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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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茂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서진의 인물. 자는 계하(季夏). 무주의 아들, 무해, 무소의 동생.그의 자가 계하, 형인 무해, 무소가 각기 자가 원하, 숙하이므로 백중숙계의 원칙으로 보자면 형이 한 명 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2. 생애
예주 패국 죽읍현 사람으로 형인 무해, 무소와 함께 소년 시절부터 칭송 받았고 한결같이 명망이 있었지만 향리의 어른들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지 못했으며,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 같은 군의 유창이 무주를 찾아갔다. 유창이 세 아들이 모두 나라의 준재라면서 무해가 기량이 가장 뛰어나 재상의 기풍이 있어 벼슬길에 힘쓰면 삼공 다음 가는 작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무무는 무소와 함께 상백이나 납언 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상락태수, 산기상시, 상서 등을 역임했고 순개가 무무보다 나이가 적었는데, 순개가 인척임을 자부해 무무와 사귀고자 방문했지만 무무는 거절해 순개가 원한을 품었다.
291년에 사마요 등이 양준을 죽이려 할 때 부지가 양준에게 초대되었는데, 밤에 무무는 부지와 함께 운룡문으로 들어가 사태를 관찰하기를 요청했다. 양준이 주살되면서 순개가 무무가 양준과 이종형제라면서 그의 당으로 모함하자
죽임을 당했다.
무무는 맑고 바르고 곧음으로 주변에 알려졌지만 무고로 살해당하자 천하에서 불쌍히 여겼고 부지가 글을 올려 이를 밝히자 광혹훈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