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2:57:26

마누일 2세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포르투갈 국왕에 대한 내용은 마누엘 2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로마 제국 제127대 황제
마누일 2세
Μανουήλ Β
파일:Manuel_II_Palaiologos_(cropped).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마누일 팔레올로고스
Μανουήλ Παλαιολόγος
출생 1350년 6월 27일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1425년 7월 21일 (향년 75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391년 2월 16일 ~ 1425년 7월 21일 (34년)
전임자 요안니스 5세
후임자 요안니스 8세
부모 아버지 : 요안니스 5세
어머니 : 엘레니 칸타쿠지니
배우자 엘레니 드라가시
자녀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요안니스 8세,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종교 그리스도교(정교회)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5. 참고자료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의 127대 황제이자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제10대 황제. 말기 동로마 제국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노력한 황제였고, 실제로 그의 노력+티무르침공으로 인한 오스만 제국일시적 몰락이라는 행운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명은 반세기 연장될 수 있었다.

2. 생애

요안니스 5세의 둘째 아들로, 1373년 형인 안드로니코스 4세가 아버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듬해 후계자로 임명받았다. 그해 9월에 공동 황제가 되었고 1379년 아버지를 도와 형 안드로니코스가 1376년에 장악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제위를 다시 찾았는데 이때 오스만 베이국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오스만에 조공을 바치고 군사 원조를 해야 했다.

1390년, 안드로니코스의 아들 요안니스 7세가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왕위를 빼앗았으나 오스만 술탄국은 요안니스 5세와 마누일을 도와 왕위를 되찾게 해주었다. 그 뒤 마누일은 술탄 바예지드 1세의 신하로 그의 궁전에서 살다가 1391년 2월, 아버지 요안니스 5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탈출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와 제위에 올랐다.

이후 술탄 바예지드 1세는 가신인 그를 몇 차례 소환했는데 응하지 않자, 1394년부터 1402년까지 8년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포위된 지 5년째가 되는 1399년에 마누일 2세는 난국을 타개하고자, 조카 요안니스 7세에게 도시를 맡기고, 십자군의 결성과 원조를 위해 서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베네치아, 파리, 런던[1]을 순차적으로 방문하고 1402년에 귀환하였다. 그의 방문은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사이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는 큰 기여를 했으나, 원래 목적이었던 군사 원조 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당시 마누일 2세를 실제로 만났던 유럽 각국의 인사들은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낡고 오래된 이름뿐인 제국'으로 알고 있던 나라의 지도자가 엄청난 학식과 인품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402년, 오스만 술탄국은 티무르 제국의 아미르 티무르에게 참패하여 바예지드 1세는 포로로 잡히게 되었고 1403년, 바예지드 1세의 후계자 메흐메트 1세는 마누일 2세와 평화 조약을 맺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한 포위를 풀고 테살로니카(지금의 그리스 테살로니키)를 돌려받았으며 심지어는 트라키아 동부 지역(현 불가리아)의 해안지대를 수복하였다. 또한 비록 명목상이지만 메흐메트 1세의 상국이 되었으며 오스만에게 바치던 조공도 중단시키는 성과를 얻어낸다. 그래서 마누일 2세 치세의 후반기에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메흐메트 1세가 죽은 1421년까지 동로마와 오스만 사이에는 평화가 유지되었고, 안정을 찾은 마누일은 종교와 문학에 심취하기 위해 국사(國事)에서 손을 떼었다.

1421년, 메흐메트 1세가 죽은 뒤 무라트 2세가 즉위하자, 마누일의 아들인 공동황제 요안니스 8세는 두 나라 사이에 지속되던 미미한 유대관계를 무시하고 무라트 2세에 대항해 술탄위 요구자 무스타파를 지지했다. 무라트 2세는 무스타파가 이끄는 반란을 진압한 뒤 쳐들어와서 1422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공격했으며 1423년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유린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함락당하지 않았으나 마누일과 요안니스 8세는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해야 했으며 그 뒤 마누일은 수도원으로 물러나 1425년에 사망했다.

마누일 2세는 8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은 그의 뒤를 이은 요안니스 8세 황제다.[2]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마누일의 5남이다. 한편 아들들과 나이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났다. 이 사람이 1350년생인데, 장남이라는 요안니스 8세는 1392년생으로 42년, 그리고 콘스탄티노스 11세와는 55년이나 된다.

3. 평가

마누일 2세에 대한 평가는 팔레올로고스 왕조 황제들 중에서도 매우 좋은 편이다. 비록 도시국가로 전락하여 오스만 술탄국에 의해 포위된 상태에서 그가 제국의 상황을 크게 반전시킬 계기는 거의 만들 수 없었으나, 황제의 헌신적이고도 신중한 외교 정책으로 결정적인 위기들을 넘길 수 있었다.

4. 기타

  • 징기스칸 4의 시나리오 4(PK. 서역을 출발한 늑대. 1370년)에서 동로마 장수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부황처럼 좋지 않으나[3] 왕족이라서 받는 병력 보너스를 활용해야 한다.[4]
능력치 특기 병과적성
(보병, 궁병, 기병, 수군)
정치 57 전투 54 지모 61 농업, 외교, 화공 C C C C
  • Europa Universalis III에서 확장팩 Heir to the throne부터 가장 빠른 플레이 가능 연도가 1453년에서 1399년으로 앞당겨지며 동로마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됐고, 마누일 집권기로도 할 수 있다. 1404년으로 시작하면 메흐메트 1세와 왕위를 두고 다툰 쉴레이만 왕자가 테살로니키와 그 주변 지역을 동로마에게 양도했기에 땅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상태에서 시작한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6년에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강연했을 때 마누일 2세의 편지 내용을 인용했다. 출처[5]

5. 참고자료

  • 워렌 트레드골드: 《비잔틴 제국의 역사》
  •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비잔티움 제국사》

[1] 이 때 만난 사람이 헨리 4세이다. 자세한 내용은 헨리 4세 문서 참조[2] 정확히는 요안니스 앞에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일찍 죽어 사실상 요안니스 8세가 장남 대우를 받았다.[3] 실제로라면 능력치는 아버지보다 더 좋아야 하겠지만.....[4] 국왕과 왕족은 최대 병력 수가 5000, 친족 및 사위는 4000, 일반 장수는 3000이다.[5]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번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