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3 22:18:16

드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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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어스컴퍼니
Dreamus Company
파일:드림어스.png
정식명칭 주식회사 드림어스컴퍼니
영문명칭 Dreamus Company
설립일 1999년 1월 20일
업종명 그 외 기타 상품 전문 도매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코스닥시장 (2003년 ~ 현재)
종목코드 060570
대표이사 이기영
기업홈페이지 아이리버 홈페이지
1. 소개2. 지배구조3. 역사
3.1. 창립 초기3.2. 전성기와 몰락의 시작3.3. 문제의 G103.4. 재기를 위한 노력3.5. 부활과 고급화 전략3.6. SK그룹 인수 후
4. 서비스
4.1. Iriver Plus
5. 출시 모델6. 과거 LG와의 관계


1. 소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ld_river_logo2.png 파일:external/www.version-2.com/iriver_logo.jpg
최초의 로고 출처 iFP-900부터 사용된 로고
파일:external/i.uncyclopedia.kr/%EC%95%84%EC%9D%B4%EB%A6%AC%EB%B2%84.jpg 파일:external/www.iriver.co.kr/top_logo.gif
사명 변경 이후 로고 그룹 사명 변경 전까지의 로고[1]


코원과 함께 대한민국MP3 플레이어를 이끈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회사. 원래 대한민국의 디지털 기기 제조사인 레인콤의 브랜드였으나, 2009년 3월 레인콤이 사명을 아이리버로 변경했다. 1999년 1월 20일,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있었던 양덕준과 엔지니어 7명이 자본금 3억 원으로 설립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18길 5 (방배동)에 있다.

한때 대한민국 점유율 1위에 세계 2위[2]라는 기록을 갖고 있던 잘 나가던 회사였다. 최고의 전성기는 2004년으로, 창립 5년만에 매출 4540억 원, MP3플레이어 국내 시장 점유율 79%, 세계 시장 점유율 25%의, 대한민국 벤처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장세#를 보이며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 중 가장 큰 찬사를 받곤 했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의 완전한 상위호환인,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의 희대의 괴물이 탄생하자 곧바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 현재는 '과거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회사'로 인식된다.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던 당시 아이리버에 재직하던 디자이너들의 개인 디자인 작품집들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 중 하나가 코원에 가 있다

아이리버의 창업자이자 창립 이후 출시한 제품 중 대다수의 초기 컨셉을 만든 양덕준2008년 5월에 퇴사, 민트패스 사에서 민트패드라는 기기를 만들며 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메모하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잡은 기기로, WiFi로 인터넷 서핑은 물론, 블로깅, 일대 다 채팅, 유저들 간 컨텐츠 공유, 무선으로 음악, 영화, P2P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스마트폰의 특징을 상당수 갖춘 기기이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인지도가 거의 없어 초기 투자금을 회수할 만큼 팔리지는 않아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3] 거기다가 2009년 4월에 양덕준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등[4]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이 겹쳐 민트패드는 2010년에 폐업하고, 민트패드의 A/S부분은 페이도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래환을 포함한 엔지니어들은 에이트리라는 전자사전 제조 회사를 설립하며 아이리버와 결별하였다. 그는 뛰어난 엔지니어링 능력과 강력한 사업 추진력으로 양덕준 사장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 아이리버의 성공신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이다. 에이트리 전자사전의 상승세가 강력하여 밥줄을 위협받는다 느낀 아이리버는 에이트리를 고소했고, 그 결과 이래환 사장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위반 혐의로 패소하여 징역 10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 양덕준 사장은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이래환 부사장이 이끌고 있는 에이트리에 고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당시 경영진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고소했다고 한다. 사실 주식회사의 CEO는 마땅히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해야 하는 것이긴 하다. 만일 양덕준 사장이 경영진의 고소 요구를 거절했다면 양덕준 사장도 배임죄로 걸려들 수 있는 부분이었다.[5]

잘 보면 알겠지만 삼성전자에서 뛰쳐나와서 만든 것이 아이리버고, 그 아이리버에서 엔지니어가 뛰쳐나와서 에이트리를 만들고, 사장이 뛰쳐나와서 민트패스를 만들고, 부사장이 뛰쳐나와서 페이도스라는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었는데 민트패스와 협력사로 활동 중이다(...)분열의 기업

시코란 사이트에서 유달리 까이는 회사이기도 하다. 신제품 소식이 나오면 까고 아이리버 주식 이야기가 나와도 까고 심지어 다른 회사 신제품글에도 이상하게 아이리버를 까는 리플이 종종 보인다.(...)

원래는 초창기부터 중국에 자체 직영공장을 두고 있었으나 경영난으로 2012년에 공장을 매각해 버려서 지금은 아이리버 제품 전부다 OEM/ODM이다(...).

2013년부터 급성장하고 있는 원음파일 시장 덕에 제2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싸다는 제품이 50만원부터 시작이지만 지를만한 가치를 하다 보니 음덕들은 지른다

2014년 8월 SK텔레콤에 인수되었고, 2017년 8월에는 SM엔터테인먼트와 협력사업을 맺게 되었다. 지분 교환 등을 통해 현재 최대주주는 SK, 2대 주주는 SM엔터테인먼트다. 그리고 2018년 1월 31일 SK텔레콤의 새로운 음악사업 진출, 사업의 중심 기업으로 선정되어 2월부터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유통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다. 아이리버, 2월부터 SM · JYP · 빅히트 등 3개사 음원 유통 사업 시작

SK텔레콤에 인수된 이후 음반 유통을 맡더니, 아예 사명을 드림어스 컴퍼니로 바꾼다고 한다. # 아이리버 브랜드와 옛 기기에 정이 든 옛 유저들은 대부분 안타깝다는 평을 보이는 중.

2019년 3월 28일 사명을 주식회사 드림어스컴퍼니로 변경하였다. # 아이리버라는 명칭은 산하 브랜드의 명칭으로 남아있는 상태.

2. 지배구조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SK텔레콤 52.3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SM엔터테인먼트 15.6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1.44%

3. 역사

3.1. 창립 초기

양덕준 사장이 삼성을 나와 설립한 레인콤에서 처음 만든 iMP-100이란 MP3CDP가 히트해서 유명해졌다. 이 모델 하나로 순식간에 MP3CDP 시장을 정복하고 혜성같이 등장. 강력하고 유연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기능 개선으로 국내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한다. 이후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여러가지 제품을 만들었는데, 예를 들어 iMP-350 SlimX라는 모델은 출시 당시 MP3CDP로는 세계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였고, iFP-100 시리즈는 아주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출시되어 시장을 평정. 이 제품의 디자인을 맡은 회사가 이후 아이리버와 결별하기 전까지 아이리버 여러 기기들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던 이노디자인이다. 흔히 크래프트 시리즈로 유명한 iFP-300, iFP-700&800, T30도 이 곳의 디자인. 사장이자 디자이너인 김영세가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슬하의 1남 1녀 중 1남이 바로 에픽하이의 명예 멤버인 MYK(본명 김윤민). 전성기 때는 고급형 MP3로 이미지를 굳혔다. 2000년대 중반에 출시된 제품들이 하나같이 다 가격이 비싸게 책정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제품의 개발 뒷얘기가 아주 훈훈한데, 이노디자인에서 삼각형 프리즘 모양으로 제시한 목업 시제품을 두고 아이리버 개발팀에서 제품이 1mm 정도 늘어난다고 우려하자, 양덕준 사장이 한마디 했다고; "구겨 넣어".[6] 덕분에 개발팀은 정말 죽을 똥을 싸며 투덜투덜 개발했는데, 이게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또한 이 디자인은 이후 카메라 기능이 들어간 iFP-1000에서 고리 부분이 카메라로 바뀐 것만 제외하고 그대로 재활용되었다. 이 디자인 재활용 비화도 특이한 게, 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이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가서 어느 레스토랑에 갔을 때 딸이 iFP-100을 자기 목에 걸어줬었는데 마침 그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가 김영세 사장의 목에 걸린 iFP-100을 디지털 카메라로 오인하여 '목에 건 디지털카메라 멋지네요'(...)라고 하자 MP3P에 디지털 카메라를 결합시켜야겠다는 발상을 하여 나온 것이 iFP-1000이라고 한다.

MP3P
파일:external/it.donga.com/02_1.jpg
iFP-100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WA1J8K9RL.jpg
iFP-390
파일:external/cafefiles.naver.net/prod_small_iFP-500.jpg
iFP-500

MP3CDP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JRYCGQHNL.jpg
iMP-350 SlimX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KVDVA11VL.jpg
iMP-550 SlimX

2002년 ~ 2010년 사이에는 모든세대가 즐겨쓰는 MP3는 다 아이리버였을 정도. iFP-500 마스터피스 시리즈가 출시되던 때가 전성기로 알려진다. 실제로 이때는 광출력까지 가능한 MP3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2004년 ~ 2005년 무렵에 출시된 기기들은 요즘 나오는 기기들이 가지지 못한 기능을 지원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아직도 OGG Q10을 제대로 지원하는 MP3 기기나 광출력이 되는 기기는 몇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시기에 H300 같은(결국 시장에선 개발리고 후에 덤핑됐지만) 기기를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모험을 좋아했던 듯. 지금도 광출력이 되는 기기는 포터블 타이틀 달고 나오는 제품 중엔 중국의 C4나 최근 동사에서 생산하는 ak 시리즈에나 달려 나오지..

하지만 아이리버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고, 2004년부터 그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3.2. 전성기와 몰락의 시작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던 아이리버는 애플의 "사용하기 편한" 즉, 구매한 노래를 다운로드 받는 것부터 집어넣는 것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아이튠즈와 결합된 아이팟이 치명적인 가격에 출시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잃기 시작한다. 2010년대에는 고가형 제품으로 유명한 애플이지만 그러기 이전에 쟁쟁한 업체들을 쓰러뜨린 전략 중 하나는 거부할 수 없는 가성비였다. 밑의 항목에도 설명되어 있듯 이 전략을 사용한 대표적인 기종이 아이팟 나노다. 삼성전자로부터 당시 MP3플레이어의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플래시 메모리를 업계 평균의 반값으로 구매해서 가능한 전략이다. 이 때 대한민국 MP3 플레이어 업계의 삼성전자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러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까지 했으나 결국은 유야무야되었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AjqVBpJTL.jpg
iHP-100. 후에 H100으로 개명됨.
파일:external/www.anythingbutipod.com/iriver-h320.jpg
H300

아이팟이 차지하는 하드디스크형 MP3를 출시했으나, 초반에 iHP라는 모델명에서 휴렛팩커드에게 소송을 먹었다. 게다가 초창기 HP는 아이팟을 OEM으로 판매까지 하고 있었다. 소송 안 먹는게 비정상. H300이 나오면서 스펙다운 논란이 불거진데다가 하드디스크는 충격에 박살난다는 점을 잊은 유저들의 막굴리기 덕택에, 초반에 까이며 재미를 못 본다. 너무 크다고 까인 것도 한몫.

iFP-700, iFP-800을 출시했으나 디자인 우려먹기와, 딱히 나아진 것이 없는 스펙, 그리고 화이트노이즈 문제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 동시에 삼성전자YEPP코원의 iAudio가 치고 올라오게 된다. 사실 iFP-700과 iFP-800은 디자인 컨셉이 '크래프트2'라는 iFP-300의 후계 컨셉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iFP-900이 대놓고 iFP-500의 디자인을 우려먹었다. 화이트 노이즈의 원인은 앰프 칩셋이었는데, 동일한 앰프 칩셋이 사용된 타사 기기들은 하나도 까이지 않았다는 것. 후에 삼성과 코원에서도 같은 칩을 사용한 기기들이 보고되었으며, 실제로 화노 문제는 아이리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일례로 비슷한 시기의 소니 MP3나 삼성 T5 같은 경우엔 화이트노이즈가 더욱 심각하다. 사실, 씨코에서 아이리버 기기는 까도 타사 기기는 일단 제끼기에, 초보들은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 편중된 정보는 제대로 못 보게 만든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어쨌든 국내 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할 때쯤, 주력으로 밀던 수출은 애플이 이미 시장을 다 잡아 잡수기 직전. 하지만 카메라 달린 프리즘 MP3P같은 현재의 컨버전스 기기와 같은 물건을 만드는 등 다방면으로 시도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샘숭에서 몇 년 뒤에 YP-T8을 기반으로 한 YP-D1이라는 카메라 내장 모델을 내놨을 때는 생각보단 꽤 팔린 편.

파일:o9tVjXk.jpg
2005년 애플 타도용 야심작인 H10을 출시했다. 애플의 클릭휠을 벤치마킹하여 터치 스크롤을 채택한 하드디스크형 제품이다.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H10에 쓸 하드만 200억원어치를 사고 마케팅 비용을 100억원을 쓰는 등 열심히 찍어내고 팍팍 밀어줬다. 이 때 그 유명한 사과를 깨무는 엄청난 광고를 전 세계에 시전했다. 일본에서는 현지의 요도바시 카메라가 광고를 맡았다. 처음에는 꽤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터치 감도와 새로 도입된 iriver Plus가 인터페이스적으로 아이튠즈에 비해 불편했으며, 결정적으로 H10에 쓴 하드가 씨게이트의 유리 하드인지라... 이 부분에서 치명적 문제가 발생해 대규모 반품 사태가 발생. 결국 기대작이었던 H10은 500억원(...) 규모로 불어난 어마어마한 재고로 돌아와 아이리버에 거대한 타격을 준다. 이 때부터 자금 부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7]

이 무렵에 PMP를 한번 출시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적인 수준의 한계로 인해 도트가 튀는 LCD에, 지속시간이 형편없는 고로 결국 별로 팔리진 않았다. 국내에는 미출시됐지만 PMC-100시리즈라고 MS의 포터블 미디어 센터 기기가 있었으나, 동시대의 PMC들과 함께 같이 묻혔다. 결국 아이리버는 대추락을 하고야 만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 택한 파트너가 아이리버였는데, 둘 다 같이 망했었다. 그 덕인지 아이리버엔 윈도우 CE를 OS로 삼은 기기들이 많다.

3.3. 문제의 G10

아이리버는 2005년 말 엄청난 야심작을 발표했었는데, 바로 G10이다.
파일:/pds/200711/08/72/d0039272_4731ea98dc86d.jpg
좌측 G10 우측 G20
사진만 봐도 범상치 않은 이 기기는 3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NVIDIA GoForce 5500을 채용하고, 4인치 WVGA 해상도에 Windows CE를 탑재한 온라인 게임기였다. 데스크톱/노트북용 GeForce가 아닌 GoForce이며 NVIDIA Tegra 이전에 NVIDIA에서 제조하던 모바일 GPU이다.

당시 KT 와이브로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었던 아이리버는 이 기기를 바탕으로 와이브로 망을 이용하여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는 10년을 앞서나간 발상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발상은 2년 후에 실현된다. 이걸로 카트라이더를 하는 사진이 캡처 사진을 이용한 낚시였음이 밝혀지자 큰 논란이 되었으나, 그 후 넥슨 등의 온라인 게임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며 대작이 나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국내에서 와이브로는 질질 미루는 끝에 완벽히 사장당했었고, 아이리버의 재정도 그와 함께 극도로 나빠졌다. 그리고 엄청난 사양과 거기에 걸맞지 않은 와이브로 사정으로 수지를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감당을 못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G10 개발사업을 포스데이타에 넘겼고, 그 후 디자인이 대폭 수정된 채로 FLYVO G100이라는 이름으로 CES 2008에서 발표했으나 정식 출시되지는 않았고, 그 후 후속작 G200을 개발했으나 역시 발표되지 않았다. 쿼티 버전의 G20도 내놓을 생각이었으나 묻혔다. 이 G10 개발에 엄청난 공을 들였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이 기기를 결국엔 출시도 못한 것이 아이리버에는 엄청난 출혈을 일으켰다.

3.4. 재기를 위한 노력

아이리버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기업 로고를 변경하였다. 이후 목걸이형 N10을 출시해서 꽤 히트를 쳤으나,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시궁창. H10의 실패 이후로는 이 때쯤부터 컨버전스 기기로 성공하려 한다.

그리고 2005년 1월 중순에 전자사전 D10 (딕플)을 내놓았다. 광고는 김태희가 MP3를 들으며 사전을 찾는 광고. 근데 정작 실제 제품에서는 광고 속의 이 기능이 지원이 안 되어서 구라 광고라고 줄기차게 까였다. CPU의 한계로 인해서 음악 재생 중엔 사전 검색이 불가능했다. 라디오는 후에 펌업으로 가능해졌지만.
결국 2005년 12월 하순에 후속으로 내놓은 D20에선 컬러 액정에 노트북형 키보드를 도입, MP3 재생 중 사전도 가능해졌고, 2006년에 D10의 디자인을 계승한 D25, D20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사전 컨텐츠도 강화한 D26이 연달아 내놓아 전자사전 시장에서 꽤 높은 점유율을 먹게 된다.
2007년에 딕플의 라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3인치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소형 전자사전인 D5를 내놓아 라인이 확대되었다. 그간 전자사전이라는 이유로 탑재되지 않았던 동영상 기능이 그제서야 탑재되었지만 15fps까지만 지원하는게 결정적인 단점.
2008년에 전자사전에도 DMB가 탑재된 D30, DMB가 빠진 D28, DMB 기능에다 조그휠까지 탑재된 D35, 2009년에 무선랜인 Wi-Fi가 탑재된 D50, Wi-Fi가 빠진 D100, D5의 후속이자 동영상 30fps 지원에 DMB까지 탑재로 발전된 D7까지 연달아 출시되면서 MP3P가 도전했던 발자취인 컬러 액정, 동영상, DMB 기능을 전자사전에도 똑같이 재현하고 있어 기능적인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다. 무선랜을 제외한 나머지 멀티미디어 기능적으로는 이미 D30부터 완전체로 거듭난 셈. 그렇게 알게 모르게 국내 전자사전 시장 점유율이 어느새 1위를 달리게 되었다.
2010년 1월에 방영된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 때문에 뜻하지 않게 D100이 잘 팔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하드웨어적으로 D100과 동일한 D150을 내놓고 새 제품처럼 파는 만행은 참……. D150의 사례처럼 당시 아이리버는 '보급형제품출시→오류로 욕먹음→수정판출시→업그레이드 제품 출시' 이런 형태로 돌아갔다. 2008년 이전처럼 기능적으로 크게 발전되지 않아 매리트가 차라리 D30, D35 중고를 구하는게 나을 정도로 신제품의 매리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MP3P쪽은 재도약을 위해 결국 매너리즘에 빠진 INNO 디자인과 결별, D-Click을 채택한 미려한 디자인과 다양한 기능의 U10을 2005년에 공개했다. 음악, 동영상, 텍스트 등 흔히 MP4 플레이어로 불리는 기본적인 기능은 갖추고 있었으며, 심지어 플래시 게임까지 가능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기였다. 하지만 그때 북미 시장을 거의 장악한 스티브 잡스사악한 악의 군단 애플아이팟 나노를 지옥같은 가격으로 출시했다. 삼성전자에서 애플에 플래시 메모리를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했다.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던 상황. 사이좋았던 이 둘은 몇 년 후 둘도 없는 원수가 된다. 치고박고 싸우면서도 서로 부품거래는 매우 활발하지만. 발매가 잠시 늦춰졌던 U10은 그 후폭풍을 정통으로 맞고 닥버로우할 수 밖에 없었다. U10 1기가가 나노 4기가와 엇비슷한 가격이었다는 게 문제. 게다가 초창기 PMP에 비하면 출중했지만, 당대의 PMP들은 DivX는 웬만하면 다 재생하던 시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가격을 조금 낮춘 후에는 평균적인 아이리버 MP3보다는 더 오랫동안 팔렸다고 한다. 다른 제품은 발매 후 6개월도 안 돼 수명이 다 됐지만 U10은 1년은 팔렸다. [8] 이후 아이리버는 국내나 국외의 후발주자에 쫓겨 점유율이 급락하게 되었다. 결국 해외 시장은 애플, 국내 시장은 삼성에게 내주고 국내 점유율 2위로 떨어진다. 2000년대 후반의 아이리버는 보급형 제품에 라인업이 편중되어 있어서 수입도 별로고 E100이나 B30을 제외하자면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2008년 E100의 출시가 본격적인 이러한 행보의 신호탄이었다. D30, D35를 필두로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전자사전 제품군과는 정반대의 행보. 애플이나 코원이 고가형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를 확대하는 것에 비교된다.

2007년 국내 사모펀드 기업인 보고리오 투자목적주식회사에서 650억을 투자해 아이리버의 경영권을 인수받았다. 이들의 목적은 아이리버를 회생시켜 흑자 전환한 후 매각하여 그 차익을 얻고자 함이므로 아이리버는 언젠간 타 기업에 매각될 것이 확실하다. 경영권 매각 이후 밀리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성공은 한 U10의 후속작인 U20을 선보인다. 한국 출시명 Clix, 북미 출시명 Clix2다. 헷갈리지만 U10은 이미 북미에서 Clix라는 이름으로 선보여서 이렇게 된 듯하다. 전작과는 다르게 비누 모양의 곡선형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세계 최초로 화면에 AMOLED를 사용했다. 화면으로 AMOLED를 택한 건 아이리버 입장에서 상당한 모험이었다고 한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막 개발되서 부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AMOLED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양한 기능, 편리한 D-click 인터페이스와 빠른 반응 속도 등으로 사랑을 받으며 많이 팔렸다. 하지만 이미 애플을 따라잡기에는 애플이 너무 커버렸다.

2007년에는 디즈니 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미키마우스 모양의 MP3 플레이어인 Mplayer를 출시한다. 맨 처음 컨셉이 나왔을 때는 직접 컨셉을 구상한 아이리버에 들어오기 전 얼리어답터를 설립했었던 당시 최문규 부사장 말고는 아무도 잘 팔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MP3가 너무 장난감같이 생겨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인기있었다하지만 부사장이 우겨서 안 팔리면 본인이 사비로 초기 출시 물량의 재고를 다 사겠다고 약속한 끝에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 팔릴 것 같았는지 출시 직전에 가격을 1만원 올렸는데... 한 놈만 걸려라?? 예상 외로 잘 팔려서 회사 실적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9]

초기 꾸준한 펌웨어 업데이트와 친절하고 적극적인 고객지원은 날이 갈수록 무성의해져 가고, 디자인 빨로 어떻게 해보려 하지만, 항상 기기 스펙이 2%씩 부족해서 2008년 경부터는 대차게 까이며 대대적인 인기는 못 얻는다. 이것은 레인콤의 재정이 몇 년째 꾸준히 안 좋아졌고, 또 개발진들이 뒤에 나오는 회사들로 빠져나가면서 벌어지고 있는 악순환이다.

2008년 이후에 발매된 기기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단점과 비싼 가격을 안고 출시되었으며 과거 사용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쫓아가기도 바쁜 모습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한 업체인 것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쫒아갈 능력이 없다. 엔지니어들이 빠져나갈 대로 빠져나간 아이리버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 기간에 발매된 기기들은 초단위 리쥼이나 정렬조차도 제대로 지원 못한다. 그리고 비용 절감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인다. P7은 락칩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고 E100은 액션칩을 사용했다. 메이저급의 경쟁 업체나 아이리버 고급 제품들은 국내 기업인 텔레칩스 사의 칩셋 또는 알케미 칩셋을 사용한다. E200도 락칩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나마 인정받는 디자인에만 치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전성기 이후부터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는 한껏 기대감을 주었다가 정작 출시된 제품에는 좀 심한 결함이 보인다든지, 스펙다운이 되어 출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까일 요소는 충분히 있는 듯. 컨셉디자인과 양산형 제품의 디자인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CES 2008 낚시사건이 대표적이었고, 이것이 아이리버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를 날렸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런 것으로 보아 아예 낚시 마케팅 아니냐는 말까지 듣고 있다.

그 와중에도 2008년 국내 사용 현황 1위를 기록했다.# 2008년 2월 시장 점유율은 삼성 40%, 아이리버 15~20%, 애플 8~9%, 코원 5%, LG 2~3%, 기타 총합 22~28%로 2위를 간신히 커버 중이었다. 사실, 아직도 iFP-100시리즈, 심지어 iMP 시리즈도 간간히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구 기기 비중도 상당히 높다고 사료된다.

2010년 들어 LG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와 공동으로 전자책 제작 법인을 설립하기도 하고, LG텔레콤에서 프리스타일폰(일명 아이리버폰/오즈리버폰)을 출시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것은 하단의 LG와의 관계 참고.

2010년 10월 음악 다운로드 스토어인 아이리버 뮤직을 개장하였다. 아이리버 플레이어와 연동하여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듯 하다. 특히 12년 기념으로 만든 U100의 천일동안 서비스를 예정중이다.

2010년 12월경 아이리버 리플레이 파티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출시 예정 모델인 U100, P100, D2000을 살짝 공개했는데, 참석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기존 모델에 비해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 한다. 이외에도 Story HD가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등, 과연 이 모델들이 아이리버의 명예 회복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아이리버는 지금까지의 자만을 반성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겠다고 했지만, 유저들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2010년에 2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좀처럼 회사의 적자는 좁혀지지 않아 갈수록 기업의 가치는 떨어져 갔다.

2011년 4월, 보고펀드 공동대표 겸 아이리버 사장직을 맡고 있는 이재우에 따르면 작년에 제품 3종의 개발을 완료하고도 아이폰에 맞춰진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출시를 포기했다고 언급했다. 개발진에게는 "화면은 크게 하되 무조건 제일 얇고 가볍게 만들어라. 배터리도 오래가야 한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멋있게 디자인하라." 라고 주문했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된다면 기업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개발진은 "우리가 애플이나 삼성전자도 아닌데 어쩌란 말이냐" 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개발진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 말이긴 하지만, 사장 입장에서도 한 번 쯤 나올 수 밖에 없는 말이다. 그 시기에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스마트폰이나 아이팟을 위시한 mp3플레이어들과 경쟁이 힘든 것 역시 명백하기 때문. 결국 비슷한 레벨에서 경쟁하는 것은 포기하고 아스텔앤컨으로 고급화 전략으로 나서게 됐지만...

2011년 6월 블랭크라는 이름으로 휴대폰 액서서리 전문 브랜드를 개시하였다. 홈페이지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던 아이리버의 디자인 능력을 기반으로 고급 액서서리를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첫 제품이 경쟁사 제품인 갤럭시 S II 용 제품이라... 먹고 살기 힘든 듯

2012년 4월 분기별 실적 발표에서 3년만에 분기별 흑자 전환을 발표하였다. KT에 공급한 키봇이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다만 이 성과가 재기의 발판이 될지, 아니면 반짝 효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안타깝게도 반짝효과였다. 이건 매출만 놓고 본 거고, 아이리버 유저들 사이에선 문제점을 수정하려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강해서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2013년 반기보고서에서 다시 적자전환하게 된다.

2012년 6월 뜬금없이 PC와 모니터를 발표했다. 박일환 사장이 TG삼보 출신이라는 점에서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컴퓨터도 음악 재생이 가능하니 음향기기 다행히(?) 조금만 만들고 그냥 그만둔 듯하다. 계속 만들었으면 심히 골룸했을거다....

2012년에 전자책 아이리버 스토리K를 발매했는데 그 뒤 2개월만에 가격은 고작 3만원 차이에 성능은 넘사벽에 가까운(전자책 성능은 패널이 90%를 먹고 들어간다) 아이리버 스토리K HD 를 발매해 버렸다. 게다가 아이리버 스토리K 발매 당시는 물론이고 HD 발매 며칠 전까지 국내에 HD가 발매된다는 어떠한 공지 같은 것도 하지 않아 아이리버 스토리K를 구입한 사람들은 완전히 낚인 셈. 다만 스토리K가 잘 팔리니 HD도 언젠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있다. 물론 달랑 2개월만에 나오는 것까지는 예측 못 했겠지만... 게다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으로, HD 출시와 동시에 기존 스토리K를 단종 처리하기도 했다(현재는 다시 복구됨). 당연히 아이리버 스토리K를 구입한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전자책 관련 사이트에서는 아이리버를 향한 온갖 욕설에 회사가 하루빨리 망하기를 고사지내는 류의 글도 심심찮게 보일 정도.

급기야 완제품 PC 및 모니터 사업에도 진출했다. 완제품 PC 소개 링크 하지만 이는 약과였으니.... 급기야 칫솔살균기까지 진출했다! 최근엔 자동차용 블랙박스 제품도 열심히 판매 중이다. 충전식 손난로도 판다!!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차라리 스마트폰이나 사물 인터넷에 도전하는 게 어떨까

3.5. 부활과 고급화 전략

파일:Astell&kern divices.jpg
2012년 10월 10일 아이리버에서 Astell&Kern 이란 브랜드를 달고 하이파이 MP3가 출시되었다. 일본에선 1주일 전부터 이미 공지에 떴었으며[10], 곧 한국에도 출시했다.[11] 가격은 68만9천원. 고급형 음악 플레이어로 괜찮은 인상을 주었는지, 롯데백화점에도 자리를 잡고 전시되어 있다.

CD의 44kHz, 16bit를 뛰어넘는 192kHz 24bit 고해상도 샘플링을 지원하고 듀얼 micro SDHC 슬롯을 지원한다. 곡당 용량이 웬만하면 100MB를 가뿐히 넘어선다. 2006년 당시 사장이 기획하여 개발하다가 실패한 것을 다시 개발했다고 한다. 포터블 오디오 최초로 Wolfson WM 8740 DAC를 장착했다고 되어 있으나 Teclast T51이라는 Wolfson WM 8740 DAC 칩을 듀얼로 박았던 제품이 이미 2년 전쯤 출시 되었었다.

골든이어스에선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는 편이다. 거의 정지 상태에 있던 시코의 아이리버 게시판은 당시 이 기종 덕분에 약간 활성화 됐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컬러플라이나 하이파이맨 등의 제품들은 플레이어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해서 음악 플레이어 제작 경력이 있는 아이리버의 AK100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AK100은 측정치도 준수한 편에 속해 그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줬다. AK120 등의 후속작 역시 지속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이 때부터는 후술될 이유로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그 가격 값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K100은 70만원대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첫 달에만 1,000대의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판매량이 높았다. 국내보다 특히 일본, 중국, 유럽,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다. 사실 일반 MP3를 들고 다니던 사람들 입장에서야 70만원은 높은 가격이지만, 수천만원의 AV 시스템에 투자하던 매니아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부피가 큰 고가의 음향기기로만 듣던 고해상도 음원(MQS) 파일을 작은 사이즈의 포터블 기기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메리트로 다가왔던 것.

하지만 아이리버의 고질적인 단점이 드러나고 있다. 제품 교환을 3~4번 씩 받았다는 유저들이 꽤 있으며 화면이 작아서 노래가 많을 경우 스크롤이 힘들다. 또한 펌웨어의 문제인지 기기 자체의 결함인지는 모르겠지만 32GB micro SDHC를 삽입 시 DB 구축 시간이 20분 정도로 매우 길다. 컬러플라이나 하이파이맨보다는 낫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러시아에서 AK120 펌웨어를 가지고 AK100 커스텀 펌웨어를 만들어 버렸다! 더럽게 느린 OS의 속도가 개선되었고 아이리버에서 지원을 질질 끌던 갭리스(!)도 지원한다. 이후 아이리버에서도 AK100에 갭리스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펌웨어를 배포한다. 심지어 AK120보다 음색이 좋다는 사람까지 있으니 그야 말로 AK120 산 사람들은 희대의 호갱이 될 지경. 결국은 50만원 대 헤드폰 (ue900, 모멘텀 등)과 세트로 90만원 대로 파는 신세.

후속작 AK120을 발표했는데 148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한다. 이때부터는 비슷한 컨셉의 코원 P1은 물론, 아이폰6나 Fiio X5II와 같은 훨씬 저렴한 가격의 제품에 비교해도 나을 것이 없거나 떨어지는 성능을 보인다는 측정치가 시코에 올라온 이후에는 AK시리즈가 성능도 시원치 않은데 비싸기만 하다고 까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AK 시리즈의 출력을 꽤 크게 한 상태로 측정했을 때의 측정치가 올라왔다. 아이폰6의 경우는 측정 시 출력의 크기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조금 있다. 그러니까 실측치를 비교하면 Fiio X5II보다는 가성비가 떨어진다. AK120 이후의 대부분의 AK 시리즈가 비슷한 비판을 받는다.

추가로 192kHz/24bit 음원을 아이리버 자회사인 그루버스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곡당 가격은 1980원, CD 음원은 990원이다. 70만원 대 MP3P에 담긴 아이리버의 고민

2013년 7월 29일, 헬스케어 기능을 탑재한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셋 iriver on을 출시했다. 심장 박동수 체크, 칼로리 연소량, 현재 속도, 블루투스 전화 연결, 음악 재생 기능, GPS를 이용한 경로 기록 등을 지원한다.

칫솔 살균기 장사에 휴대용 손난로까지 하는 아이리버에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끼지만,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이후로 MP3 플레이어 시장이 아예 붕괴하였단 걸 생각하면 다른 사업영역을 찾아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가전기기 업체의 기본 특성상 매스마켓을 지향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극복하고 3년만에 프리미엄 시장을 뚫고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꽤나 보기 드문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아이리버가 AK 시리즈에 몰빵하느라 보급형 MP3P 기종들은 S100과 U100을 제외하고는 죄다 사실상 단종시켰다.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상태. 일본의 가격비교 사이트 '카카쿠닷컴'에서 집계한 2014년 MP3 플레이어 만족도 조사에서 AK 100 MK-2는 1위, 후속 모델인 AK240은 3위를 차지했다. AK240은 280만원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이 팔려나갔으며, 세계 최고 권위의 오디오 잡지인 스테레오파일을 비롯해 여러 개의 오디오 잡지의 표지에 등장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음질과 사양을 가진 휴대용 기기"라는 평을 들었다. 뉴욕타임즈에서도 '그동안 숱하게 나온 홈시스템을 능가하는 포터블 플레이어' 라고 평가하기도. 그러나 AK 시리즈도 사람이 평가하는 음질과 사양에 대한 호평과 실측치의 우수함에 차이가 있는 현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AK120-ii나 AK240의 경우 아이폰은 물론, 최근 나오는 하이엔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보다 떨어지는 실측치를... 2015년 초반까지는 보급형 MP3 플레이어는 모조리 단종된 상태였으나 2015년 7월에 T70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포터블 기기 중 DSD 파일을 네이티브 재생할 수 있는 모델은 아예 없다시피해서 국제적인 인기를 계속 누릴 수 있었다. 2016년 현재까지도 국제적 우위는 계속되는 중. 그리고 반 오디오, 오렌더, 칵테일 오디오 등등 한국의 하이엔드 파일 플레이어 메이커가 해외진출을 달성하는 계기를 낳기도 했다.

3.6. SK그룹 인수 후

2014년 5월 SK 인수설이 나왔고 그영향으로 주가가 2000원에서 한달만에 4600원까지 뛰었다. 결국 2014년 6월 13일 SKT가 아이리버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어 SKT에서 보고펀드가 가지고 있던 아이리버의 지분 37.5%를 295억에 인수했다. 보고펀드는 끝없이 계속되던 아이리버의 적자를 Hi-Fi 플레이어 시리즈인 '아스텔 앤 컨'으로 어느 정도 메꾸는 데 성공한 뒤에야 팔아버릴 수 있었다. 결국 아이리버는 2013년 80억대의 영업적자에서 2014년 15억원의 흑자를 내며 턴어라운드의 기틀을 마련했다. 위에서 언급한 SKT의 인수 등의 호재와 겹쳐 6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2014년 10월에는 창사 75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재즈계의 대 거물인 블루노트 레이블과 콜라보레이션 기획을 세웠다. AK240의 블루노트 에디션 버젼을 만든 것. 컬러링도 블루노트에 맞추었지만, 무엇보다도 재즈계의 초 유명 뮤지션들의 곡을 고해상도 음원화하여 꽉 채웠다. 이중 몇 곡은 고해상도 음원으로는 세계 최초 발매되었다. #

2015년 2월에 최초의 거치형 모델인 AK500N을 CES 2015에서 공개했다. 가격은 1400만원. 영국의 권위 있는 하이파이 오디오 전문지인 '왓하이파이(WHAT Hi-Fi)'[12]로부터 'CES의 별(Stars of CES 2015)'로 선정되었다. 실상은 전자파 차폐도 못해서 거치형 주제에 베터리를 충전해서 써야 하는 괴랄 오브 괴랄 모델. 하지만 제프 롤랜드를 비롯하여 오디오계에서 배터리 전원을 쓰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닷질 같은 메이커는 충전지도 아니고 아예 건전지를 쓴 경우도 있다.

2015년 4월 말에는 보급형 제품인 AK Jr를 내놓는다. 가격은 57만원. 64GB의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USB DAC는 지원하지만 AK100과 겹치지 않게 광출력은 지원하지 않는다.

2015년 8월에는 최초의 올인원 시스템인 T1을 출시하였다. 플레이어와 앰프, 스피커가 모두 하나로 묶인 시스템. 348만원인데 자칭 착한 가격이다. #

AK 시리즈의 대다수는 MSD 스피커의 주재자이기도 한 류국일이 디자인했다. 그 외에 에이프릴 뮤직의 스텔로 시리즈도 이 사람이 디자인한 것. 그리고 일본의 오디오 평론가 미우라 타카히토와는 절친이라고.

2018년 2월부터 SM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음원 및 음반을 유통한다. 이들의 현재 시장 점유율은 음원 15%, 음반 50%로 상당한 규모이다. 이후 SM 엔터테인먼트의 하위 레이블이 된 밀리언 마켓의 음반/음원과 미스틱엔터테인먼트월간 윤종신을 비롯한 일부 음반/음원을 유통하고 있다.

2019년 3월 1일자로 자회사 그루버스[13]와 합병했으며, 이에 따라 아이리버에서 FLO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다만 별도로 운영되던 그루버스 서비스의 경우 2019년 3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4. 서비스

2004년쯤 어느 소년이 이 회사에서 나온 MP3 플레이어를 분실한 후 고객센터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바람에 '아이리버 소년'이라는 검색어가 한동안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요구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었는데, 자기가 분실해 놓고 일개 크래프트2 모델에 어째서 GPS를 달아서 팔지 않았냐는 식으로 따지며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한참 동안이나 이곳저곳에 도배를 하며 떼를 썼고, 결국 아이리버에서는 이 소년에게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선심을 쓰며 동일 모델을 선물로 주며 사건은 끝이 났다. 보상이 아닌 포상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역시 까였다.(...) 아이리버 입장에서도 이 소년 덕분에 아이리버가 꽤 큰 이슈가 되어, 공짜로 홍보한 셈이 되었다. xxx 아이리버 사주기 운동본부 라는 카페까지 개설되었고 뉴스도 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카페는 2019년 8월 말 시점에서 아직 살아는 있다.(...) 물론 폐쇄되지는 않았다는 뜻이고, 광고만 무성할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광고를 잡초로 치환하고 카페를 건물로 치환하면 완벽한 폐허덕후용 명소

혹자는 이를 두고 그냥 무시했어도 되었을 일개 찌질이의 징징댐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한 사례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직영 서비스센터인 아이리버존을 전국 곳곳에 운영해왔으나 경영 문제 탓인지 아이리버존의 숫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특히 지방 쪽에서 감소가 심한 편으로, 2011년 3월엔 부평, 수원존이 문을 닫있다. 그러나 이제 서울 쪽도 버틸 수 없었는지 2012년에는 서울 코엑스점과 삼성역점이 문을 닫아, 2012년 7월 신촌점만 남고 2015년 5월 현재 신촌점, 대구점, 대전점 이렇게 3개 지점만 남았다. 2018년 3월 30일자로 신촌점도 폐쇄되면서, 대구, 대전점만 남아 있는 상황. 그리고 2018년 9월 대전점도 없어져서 대구만 남게 되었다.
2019년 3월 29일, 결국 마지막 남은 대구점도 문을 닫게 되었다. 현황

2011년 9월 9일 전자책 판매 서비스인 북투가 종료되었다.

4.1. Iriver Plus

애플의 아이튠즈(iTunes), 삼성의 삼성 미디어 스튜디오(SMS)처럼 아이리버의 MP3P, PMP를 관리하는데 사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Iriver Plus 4가 최신이나 어째서인지 홈페이지에는 3버전까지만 있다. 아이리버가 일반적인 MP3, PMP사업을 사실상 접은 관계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 봐도 무방하다. 메타데이터 자동 입력 기능이 있어 국내 음원의 MP3 파일의 태그가 엉망진창일 때 정리하는 용도로 유용하다.

5. 출시 모델

6. 과거 LG와의 관계

아이리버와 LG는 여러모로 협력했던 적이 있었다. 우선 LG 디스플레이의 경우 전자책 합동 법인을 세우며 STORY HD에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를 공급했다. P100과 스마트 탭은 LG IPS 디스플레이를 공급 받기도 했다. LG전자와는 프리스타일 폰을 만든 전례가 있고 아이리버가 외주회사를 통해 출시한 초보급형 안드로이드폰인 바닐라폰의 경우 LG 텔레콤(현 LG U+)전용 모델로 출시된 적이 있다. 콩끼리의 만남 하지만 SK텔레콤에 인수된 후에는 크게 협력하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LG는 2015년부터 아이리버가 개척한 시장을 뺏어 먹기 위한 대기횡포를 부리는데... 이젠 아이리버도 대기업 소속이다


[1] 2015년 6월 18일에 변경되었다. 드림어스로 사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산하 브랜드의 명칭과 로고로 존속하고있다.[2] 2004년 플래시 메모리형 MP3는 세계 시장 1위이기도 했다.[3] '거인과 싸우는 법' 261쪽[4] '거인과 싸우는 법' 38쪽[5] 이기형, '거인과 싸우는 법' 235-236쪽[6] 사실 이 발언을 한 사람은 양덕준 사장이 아니라 이래환 부사장이라고 한다.[7] 이기형, '거인과 싸우는 법' 184-185쪽[8] '거인과 싸우는 법' 219쪽[9] '이기형-거인과 싸우는 법'[10] http://www.iriver.jp/company/press/159.html[11] http://www.astellnkern.com/[12] 하지만 이 잡지는 사실 황금귀들을 겨냥하는 잡지.[13] 2016년에 지분 53.9%를 NHN벅스에 매각했다가 2018년 3월 다시 NHN벅스로부터 지분을 매입했으며, 2018년 9월부터는 그루버스에서 FLO를 운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