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23:31:50

노포

1. 老鋪
1.1. 역사성1.2. 여담
2. 老圃3. 弩砲4. 기타: 합성어의 줄임말

1. 老鋪

상점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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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마타[1]의 노포 타카기야 시니세.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뜻하는 말.

일본어로 '시니세(老舗, しにせ)'라 읽으며, 한국의 '노포'는 1990년대에 언론에서 일본의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가게가 오래 가는 사례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이를 표현할 단어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 적어도 50년은 넘어가야 시니세라 불러주기 시작하는데, 한국에서는 20년만 지나도 노포라 부르곤 한다. 같은 단어가 한국에 와 기준이 매우 낮아진 셈. 국내에 이 단어가 들어온 것이 90년대로 늦기도 했고, 후술하겠지만 대한민국의 특성상 50년 넘게 가게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사정에 맞게 기준이 변한 것이다.

오래된 가게라는 말을 놔두고 일본어를 들여왔다는 비판도 있다.# 1960년대에 국어사전에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가게라는 의미로 수록되었다고 하지만 이또한 식민지기에 정착한 일본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게 국어로 착각되어 해방 직후 사전에 수록된 것일 뿐이다. 중국식 표현인 '노점'(老店)을 쓸 수도 있지만 이것도 밖에서 영업하는 가게란 뜻의 露店과 발음이 비슷하여 쓰기 어렵다. 하술하듯 한국은 역사적, 환경적 이유로 1세기 이상 오래 운영하는 가게를 일컫는 고유 표현을 만들 여지조차 없었다.

1.1. 역사성

노포는 오래된 전통이 있는 가게나 기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전통이란 짧게는 100년, 길게는 천 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을 가리킨다. 크기로는 영세한 음식점부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하다. 구찌, 프라다, 에르메스도 모두 유럽의 노포에서 비롯되었다.

서유럽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16세기 이후 세계적인 은 교역의 활성화 속에서 풍부한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했다. 몽골 제국의 멸망으로 세계 교역망이 붕괴한 후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실시하며 해상 무역을 통제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대륙의 영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한반도 지역은 함께 세계 무역망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후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가 다시 만들어진 16세기의 은 중심 세계 무역망에 슬금슬금 참여하는 와중에도 고려시대 이후 세계 무역망에서 배제된 조선은 고립된 지리적 원인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대한 적대 의식으로 인해 세계 무역망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제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 조선의 지배층은 기존의 성리학적 지대물박(地大物博) 사상을 유지, 강화하며 상업과 기술 진흥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노포의 기원이 될 상점이나 기업이 형성되지 못했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조선에서는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장사를 하더라도 대대손손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성리학에서는 농업은 천하의 근본이 되는 산업이라 하면서도 상업은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이익을 취하는 산업이라 하여 천하게 여겼으며 그로 인해 사농공상이라는 사상이 퍼진 이유이기도 했다. “상업을 쫓는 행위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는 일이다”고 여겨 조선 조정에서는 꾸준히 중농억상 정책을 펼쳤으며 시전이나 보부상 등은 철저히 국가의 등록 하에 움직여야 했다. 또한 일찍이 과거제가 발달하여 신분 이동이 쉽다보니 대대손손 직업을 세습하기보단 한양에 가서 출세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였고 직업을 물려받고 사는 사람은 '능력 없는 자'라며 천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특별히 자유무역을 권장하거나 상업을 진흥하려 한 전근대 국가는 찾기 어렵다. 상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상인들로 하여금 군주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게 하였고 군주 입장에서도 적국의 배를 불려주려는 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아 서유럽에서는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자유 무역을 통제하려 들었다. 일본은 에도 시대 내내 쇄국 정책을 유지했으며 지배층만이 이익 추구를 위한 국제 무역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서유럽의 경우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상인들 및 부르주아들이 정치 권력을 획득하고 정책 집행에 개입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야 국가 수반인 상인 스스로 국가를 이용해 상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들이 전근대 시절부터 상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기보다는 억상정책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상업이 발전할 정도로 국제 교역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노포가 생기기 어려운 것은 소규모 점포의 대다수가 생계형 자영업이고, 좁은 주거 면적으로 인한 아파트 위주의 주거 문화와 재개발이 잦은 도심 환경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6시 내고향 등의 방송에서 국내의 노포를 발굴,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노포라는 말의 발상지인 일본이나 지구 반대편 유럽에 비해 역사가 일천해서 100년이 되는 곳은 이문설농탕 같은 곳을 제외하면 없고 50년을 넘는 곳도 매우 희귀하다. 대한민국에서 가게의 평균 수명은 5년 정도에 불과하고, 심하면 1달 단위로 가게 간판이 휙휙 바뀌는 풍경도 일상적이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6.25 전쟁.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사라짐에 따라 유지하던 세습형 가업이 끊기고, 신분제가 강제적으로 철폐됨에 따라 천하게 여겨지던 직업을 가진 이들이 다른 직업으로 바꾸면서 한국형 노포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곳곳을 찾아보면 한국전쟁 전에 개업해 아직도 남아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꽤 있다. 서울에만 해도 80년이 넘는 가게들이 10곳이 넘고 전국적으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노포들이 많다. 이렇게 100년 가까이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은 대부분 모두 다 개업 날짜가 적힌 증거 자료를 가게 안의 벽에 걸어놓거나, 1대 사장님 당시의 사진을 걸어놓기도 한다. 다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많은 노포들의 명맥이 끊긴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에 노포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분 상승이 절대로 불가능했던 에도 시대의 사회 제도에 있다. 기본적으로 에도시대의 일반 평민(백성)은 영주의 소유물로, 야반도주를 제외하면 자신의 거주지를 절대 바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야망이 없다면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기존의 통념을 배제하며 시대를 바꾸겠다는 혁명가적 모습이 필요했던 것. 가장 대표적인 예로 모두가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다는 꿈을 품었던 센고쿠 시대에 비천한 출신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을 제외한다면 일본사에 그다지 이름을 남길만한 평민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또한 앞서 말한 센고쿠 시대를 경험하며 엄청난 전쟁을 겪었던 일본인들은 더 이상 신분상승을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된다면 전쟁 없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 중국과 달리 과거제가 전혀 실시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2] 그 결과 대대로 가업을 이을 수밖에 없는 문화와 높은 장인정신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문화에 일본 특유의 와(和)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3] 해당 지역에 토착한 이상 업종 변경을 시도해 튀는 변화를 시도하는 대신, 대를 이어 순종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 외에 특정 브랜드나 제품만을 사용하는 일본인 특유의 보수적인 소비 경향으로 안정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부분 등이 요인이라 볼 수 있다.[4] 또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본토 공습이 있었긴 하나 주된 전장이 본토가 아니었기에 노포들이 살아남은 것도 주요 이유이다. 재개발이 거의 없고 보수적인 도시 환경도 한몫 한다.

다만 이러다보니 일본의 노포 가운데는 시설이 상당히 노후화된 곳도 적지 않다. 오래된 여관을 가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를 느낄 수 있으나 냉난방 시설이 노후화 되어있어서 춥고 덥다. 또한 음식점들은 위생적인 면에서도 미흡하다. 오래 된 가게에서 꾸준히 장사를 하기 때문에 위생 관념이 부족한 편이다. 주방을 리모델링 하는 경우도 드물다. 실제로 일본의 노포라고 불리는 가게들을 가보면 규모가 큰 장어덮밥[5] 같은 식당의 주방은 볼 수 없지만 소규모의 노포들은 바로 앞에서 조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방에 기름때나 음식을 조리하며 소스나 건더기가 튄 흔적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세스코 병해충 관리서비스에 가입한 식당들은 그에 비하면 실험실 수준.

하지만 곤고구미의 사례처럼 경제불황과 인구감소 등 변화상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가게 및 회사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자영업이 모두 3대 이상 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소비세 인상과 코로나19로 닫고 있는 곳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류 회사였던 레나운(レナウン)[6]오사카의 100년 전통 복어집이자 랜드마크였던 '즈보라야'(づぼらや)가 있다.[7]

중국에서는 이러한 가게를 '라오뎬(老店, 노점)'이라고 부른다.[8] 원래는 중국도 일본 못지 않게 1세기 이상 장수하는 가게가 많았고, 공산화 이후에 상점과 기업이 국유화되는 가운데서도 기존의 사장과 임원들은 지분만 국가에 넘기고 관리인으로 전직하면서 직책을 보장받는 식으로 노포가 존속했는데 문화대혁명으로 상당수는 파괴되었다. 하지만 마오쩌둥마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점포 1,600여 곳은 살아남아 수백 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제약회사 퉁런탕(동인당)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는 야마나시현의 게이운칸(慶雲館, 경운관)[9]이란 이름의 료칸으로 무려 705년에 설립돼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영업해온 세월이 1300년 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사실 일본의 노포 수는 200년이 넘는 업체 혹은 가게의 수가 약 3,100여 곳이 넘는다. 이는 당연 세계 1위인 수준으로 2위인 독일의 3배가 넘는 수이다. 사전

1.2. 여담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노포의 이름값에만 기대어 불친절함, 불결함을 전혀 고치지 않는 가게들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 반작용으로 인해 젊은 요리사들이 열정을 갖고 하는 가게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충걸 GQ 편집장의 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일부 노포를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전용 엠블럼을 달게 해준다.

2020년대 노포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자 노포 맛집이라는 괴상한 용어가 덩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말로 치환하면 옛집 맛집으로 겹말이 되어 틀린 문법이므로 맛있는 노포 혹은 오래된 맛집이라고 해야 옳다.

2. 老圃


부산에서 '노포' 하면 거의 십중팔구 노포동터미널노포역을 지칭한다.

3. 弩砲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발리스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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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기타: 합성어의 줄임말

No와 '포'로 시작하는 단어로 만든 합성어의 줄임말.


[1] 남자는 괴로워의 배경이 된 곳.[2] 메이지 유신으로 사회가 근대화되고 나서야 대학교 진학 등을 통한 신분 이동이 가능해졌다.[3] 일본의 와(和) 문화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지낸다"라는 뜻으로서 일본은 규칙을 지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자신들의 본분에 다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라든지 혼네-다테마에 문화 역시 와(和) 문화에서 파생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튀는 문화를 싫어하며 튀는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을 배척한다. 또한 규칙을 깨는 사람을 경멸 수준으로 보는데, 이러한 국민성, 이러한 와(和) 문화는 일본적 개인주의의 근간으로 불리며 일본의 사회 구성에 작용하는 그 뿌리로 보고 있다.[4] 가성비 또는 '현존 최고사양'을 중시하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신뢰성'과 '익숙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때문에 다소 성능이 타사 제품보다 낮고 조작법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익숙하고 신뢰하는 제품을 구매한다. 일본 제품 상당수가 잘라파고스화됐던 건 이러한 소비자들의 소비 경향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5] izuei umekawa-tei 8대를 이어온 장어덮밥 노포[6] 메이지 시대인 1902년에 창립됐다. 한국에서도 화신그룹동일그룹을 통해 1990년대까지 진출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게 아놀드파마 브랜드.[7] 2020년 9월 15일에 폐업했다. 폐업 당일 안내문에 간사이벤으로 'ほな、さいなら'(안녕히 가이소)라 썼기 때문에 더더욱 화제가 되었다.[8] 다만 한국에서는 露店과 혼동될 수 있는 단어이다.[9] 게이운 시대에 지어서 게이운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