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08:26

김상도(1914)

김상도
金相道 | Kim Sang-do
파일:김상도 의원.jpg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출생 1914년[1] 8월 19일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 냉천리
(現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2]
사망 1986년 12월 5일 (향년 72세)
대구직할시 동구 신암동 동서2차아파트 자택[3]
묘소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원제리
학력 보통학교 (졸업)
교남학교 (중퇴)
와세다대학 법문학부 (수료)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3, 4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4. 선거 이력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체육인 출신 정치인.

2. 생애

1914년 8월 19일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現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남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였다. 이후 와세다대학 법문학부를 수료하였다.[4]

정치 입문 전에는 씨름선수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무술회 부회장, 영남체육회 이사 등을 지냈다. 그 밖에 경북직물동업주식회사(慶北織物同業株式會社) 이사에 취임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영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권중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학교법인 금호학원을 설립하였고 1955년 영천군 금호면에 금호중학교가 개교되었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영천군 갑구당 위원장이 되었으며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감찰부 차장을 거쳐 1956년 감찰부장에 임명되었고 징계자격위원장이 되기도 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조헌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이원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정진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을 탈당하여 정치에서 은퇴하였다.

1986년 12월 5일 낮 12시 대구직할시 동구 신암동 동서2차아파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해는 영천시 금호읍 원제리에 안장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김상도 테러 사건[5]이 나오는 극중 96화가 유일한 출연 장면이다. 배우는 태조 왕건에서 입전, 근초고왕에서 찬웅포를 연기한 오성열. 자유당의 당 위원장 선거[6]가 있는 날에 국회에서 이기붕을 상대로 출마한 이갑성의 호위를 맡다가 자신들 쪽의 국회의원들이 단 한명도 국회에 나오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직접 국회 밖으로 나가서 동대문사단과 마주하게 된 동시에 이갑성을 지지해야 할 국회의원들과 자유당 대의원들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강제로 붙들려 있는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러자 김상도는 이기붕 의장과 연관되어있는 정치깡패 집단이 개입했다는 것을 깨닫고, 동대문사단의 일원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꽤나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존 인물이 씨름 선수 출신에 대한무도회 부회장을 역임한 사실이 있기에 주먹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시작부터 졸개에게 선빵을 맞았지만, 곧바로 졸개 5명을 순식간에 박살낸 다음 이정재의 보디가드인 이억일과 결투한다.

이억일과의 결투에서도 시종일관 근소 우위를 점하지만, 도중에 결투보단 투표가 더 중요하단 사실을 깨닫고 결투를 중지하고, 국회로 달려가 투표를 무산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40명이 넘는 위원들 앞에서, 그를 따라온 동대문사단에게 곧바로 집단 린치를 당하며 끌려가는 장면으로 퇴장한다.

전술하였듯이 싸움 실력이 상당하여 만약 주먹계로 투신했다면 상당히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시작부터 동대문 졸개들한테 선빵을 허용하고도 열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제압했고 그 상태로 동대문 사단의 상위권 강자인 이억일과 대등하게 싸웠고 막판에는 집어던지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김상도에게 잡힌 이억일은 풀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다가 내쳐졌으니 파워만큼은 김상도의 우위라고 보는게 맞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 갑[7])

[[무소속(정치)|
무소속
]]
4,573표 (15.87%) 낙선 (3위)
1952 1952년 지방선거 (경상북도의회 의원) - 당선 초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 갑[8])

[[자유당(1951년)|
파일:자유당_투명.png
]]
16,487표 (55.84%) 당선 (1위) 초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 갑[9]) 무투표 당선 재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 갑[10]) 7,700표 (21.85%) 낙선 (3위)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11]) 18,754표 (28.82%)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12])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흰색 로고타입.svg
]]
33,646표 (46.75%) 낙선 (2위)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천군[13]) 30,636표 (43.92%)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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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김원규 자격 상실 (195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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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갑 권오종 사망 (1960.2.1.)
* 대구 갑 신도환 사퇴 (19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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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 갑 조광희 사퇴 (1960.6.28.)
* 대구 기 최희송 사퇴 (19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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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을 김익기 사퇴 (19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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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인물연감에는 1917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장을 지낸 권태신도 이 마을 출신이다.[3] 관련기사[4] 정확히는 講義錄修, 즉 강의록 수료라고 되어 있는데, 강의록을 보고 독학하였거나 청강생 과정으로서 수료했다는 의미로 보이므로, 최종학력은 교남학교 중퇴로 보는 것이 맞다.[5] 이정재 패거리가 정치 테러의 첫 대상으로 김상도를 선택해 집단 폭행한 사건으로, 극중에서도 이석재이정재 패거리에게 폭행당하는 것으로 나온다.[6] 작중에서는 이 선거에서 이긴 쪽이 자유당의 당권을 잡아서 이승만 다음가는 당의 2인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1956년에 벌어질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측 부통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이기붕은 당내에서만 치르는 이 선거에 무조건 당선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7] 제19선거구[8] 제19선거구[9] 제23선거구[10] 제23선거구[11] 제14지역구[12] 제14지역구[13] 제16지역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