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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태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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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리3. 비판4. 관련 문서

1. 개요


이거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된다.[1]

세계의 유명인, 위인들이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면 암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대체역사물 성격을 띤 꾸준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1998년 피시 통신 시절부터 떠돌던 글[2]로 최소한 그 이전에 쓰여진 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보면 세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1960년대 초였다. 19세기 말 개화운동으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보려고 머리를 싸맸던 김옥균은 이미 저승에 있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가 옥균이 바둑을 그리 잘 둔단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바둑 한 수를 청했다. 그러자 옥균은 그냥 두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 바둑을 두자고 했다. 내기의 내용인 즉, 만약 자신이 이기면 지금 한국에 세기의 천재 5명을 태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5명이면 한국이 충분히 발전할 것이라...

옥황상제가 그 5명이란 누구누구를 말하냐고 물으니.. 김옥균은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퀴리 부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대었다. 죄다 과학자 뿐인데 문화, 사회, 언어는 생각하지 않은 김옥균

옥황상제는 껄껄 웃으며 "허허, 한 시대에 한 명 태어나기도 힘든 천재들을 한꺼번에 다섯이나 달라 하니 참으로 과하도다!"라고 하면서 그래도 자기를 이겨보겠다고, 자기나라 잘 되게 해보겠다고 용쓰는게 갸륵한지라 내기를 받아 주었다.

옥균은 바둑 두기가 귀찮아서 옥황상제를 떼 버리려고 해본 말인데 선뜻 말이 트니 정신이 번쩍 나서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짜내서 바둑을 두어 끝내 이기고 말았다.

기분파 옥황상제가 말하길, "날 이기다니 대단하군. 당신같은 인재가 있었던 나라에는 천재 다섯도 아깝지 않네. 다섯을 다 주고 덤으로 한 명 더 주도록 하지. '스티븐 호킹'이라고 미래??[3]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날 놈인데 그 놈까지 주겠네."

그리하여 1960년대에 한국에 천재 6명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30년 후, 1990년대 초… 내기 바둑 이후 전혀 신경을 끄고 있던 옥균이는 어느날 그 일을 생각해 내고 "이제 한국이 세계적 대국이 되었겠지"하며 천리경을 꺼내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처음 천리경에 비친 김뉴턴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어째 이런 일이?"

알아본 즉, 뉴턴은 초등학교 때부터 팍팍 잘나가는 신동으로 주목을 받으며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서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신학설을 내고, 교수들의 학설을 부정하다가 교수의 눈 밖에 나서 추천장을 전혀 못받아 어느 연구소나 기업, 대학에도 진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초교교사가 되어 학부모들의 뇌물이나 뜯으며 살고 있었다.

벙찐 옥균은 얼른 이아인슈타인을 찾아 보았다. 거울에 비친 이아인슈타인은 철제 가방을 들고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본 즉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어려서부터 과학, 수학쪽으로 천재적 재질을 보여 그 쪽 과목은 항상 만점을 받은 이아인슈타인이었으나 내신에서나 대입시험에서 나머지 과목들을 조져(?)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다 끝내 팔수에서 포기를 하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짜장면을 배달하게 된 것이다.[4]

열받은 옥균은 홧김에 천리경을 박살내고 옆집 텔레스코프를 빌려와서 급히 박에디슨을 찾았다. 앗! 박에디슨은 고시원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떤 연유인가 하면, 박에디슨은 어마어마한 발명들을 마구마구 해냈었지만 특허청에서 특허나 실용실안 등록을 신청하면 등록자격미달, 등록요건미비,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음", "설명 부족" 같은 답장들만이 왔고…, 일본놈들은 어느새 그 발명도안을 훔쳐가서 세계 특허를 내는 일이 허다하자 끝내 "한국에서 먹고 살려면 을 공부해야 한다"며 고시생이 된 것이다.[5]

입이 딱 벌어진 옥균은 텔레스코프를 5도 돌려 퀴리 부인을 찾았다. 퀴리부인은 봉제공장에서 곰인형을 미싱하고 있었다. 이 또한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똑똑하고 영특한 퀴리부인이라 해도 얼굴이 못생겨서 어디고 취직이 안되는 판에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이 짓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옥균은 이미 벌써 텔레스코프를 뽀갰다. 연기가 삐직삐직 나는 텔레스코프를 뒤로 하고 옥균이는 구름을 타고 지상으로 최갈릴레오를 찾으러 갔다. 찾기 매우 힘들게도 최갈릴레오는 북한 반동자 수용소에 있었다. 최갈릴레오는 애초에 북한에서 태어났다. 당원의 아들로 태어나 특별히 모자랄 것 없이 자란 최갈릴레오는 젊어서부터 주체사상이 마음에 들어 열심히 주체사상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주체사상이 옳지 못함을 깨닫고 그러한 설을 퍼트리다가 혹독한 인민재판을 받았다. 재판석상에서 "주체사상은 옳고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자아비판을 한 후 뒤돌아 서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틀렸다"라고 웅얼댄 것이 들켜서 지금은 아오지 탄광에서 석탄을 캐고 있었다.[6]

한숨을 쉬며 다시 하늘로 올라 가는 옥균에게 멀리 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에 죽은 자였다. 그는 마지막 천재 정호킹이었다. 죽어서 혼이 되고 나니 지상에서 병신이었을 때와는 달리 맘대로 말할 수 있어서 좋다며 정호킹은 사연을 털어 놓았다. 어려서부터 천재였던 그는 각광을 받으며 일류대에 들어가 이론 물리학을 하며 상대성이론을 열심히 파고 또 팠으나[7], 근위축성 즉생경화증으로 점점 몸에 이상이 생기더니 끝내 장애인의 수준에 이르렀다.

장애인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 한국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무시당하다가, 오늘 갑자기 온 몸에 열이 오르고 전신에 마비가 와서 급히 택시에 실려 병원을 향했으나, 모든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로 받기를 거부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응급환자로 받아 주길 구걸하다가 끝내 받아 주는 병원이 없어 노상에서 객사하여 지금 하늘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 후, 머리 끝까지 분노한 옥균은 하늘로 안 올라가고 원혼이 되어 국내를 돌아다니며 보이는 천재는 다 잡아죽이고 있다는 설이 있다.

2. 정리

어찌보면 김옥균 고인드립?
우상화 정책, 우민화 교육 등이 반복된 1960~1980년대의 군부독재시절의 대한민국에 대한 후유증 및 학업 경쟁, 징병제의 악조건 속에서는 절대로 훌륭한 위인이 나올 수 없다는 논리가 시작되었다.

단순하게 말해서 브라질에서 태어난 김연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이건희, 인도에서 태어난 박지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집안이 가난해서 묻힌 인재들은 많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군사독재국가들의 우민화정책으로 인해 고의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게 막아 인재를 아예 죽여버리는 일도 상당히 많다. 당장 짐바브웨, 리비아, 우간다 같은 나라들도 각각 로버트 무가베, 무아마르 알 카다피, 이디 아민같은 독재자들만 아니었으면 유럽 못지 않게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독재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지식인이고 그 이유는 국민들에게 독재자 자신의 부당함을 설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자국 국민들을 고의로 멍청하게 만든다. 실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게 순 김부자 우상화밖에 없고 문과나 이과의 학문은 거의 없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르헨티나는 군사독재기간중에는 아무도 노벨상을 내지 못하다가 군사독재정권이 완전히 끝난 뒤인 1984년[8]에서야 비로소 세사르 밀스테인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동양의 군사적 권위주의 문화의 속성 상 자기 개성이 강해 튀는 사람을 모난 사람으로 보고 매장시키려는 풍토, 잘난 척 한다고 뒷담화로 깎아내리는 습성들, 인맥과 연줄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풍토 등도 아직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오랜기간에 걸쳐서 발전된 선진국인 유럽국가들, 미국같은 나라들과는 다르게 성장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집약적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3. 비판

애당초 위인이라는 것이 훌륭한 인물이 하나 떡하니 나타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성장 배경이나 환경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 것이 당연한데, 완전히 다른 환경에 같은 인물을 던져놓는다고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건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에 인삼을 심어놓고 한국산 인삼처럼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특히 산업화 자체가 늦었던 아시아 국가들과 헨리 포드, 에디슨, 월트 디즈니가 태어난 시기를 비교하면 '중국에 태어났으면'이나 '일본에 태어났으면'이라고 고쳐도 이상할 게 없어진다. 시기를 앞당겨 20세기 초.중반을 보면 한국은 한국전쟁10월 유신, 중국은 문화대혁명, 대약진 운동, 2.28사건, 일본은 패전 이후 한국 전쟁까지 GHQ 시기다. 반대로 말해서 한국의 위인들이 외국에서 태어났다고 쳐도 비슷한 꼴이 났을 확률도 높다.

한국사회에 있는 '전체주의'적인 측면도, 제도 문제도 문제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 또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선진국 항목처럼 선진국 콤플렉스와 자학적인 모습이 뒤섞여 있는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무슨 패배주의에 휩싸여서 절대로 자학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 1950, 60년대처럼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수준의 나라는 아니고, 밑을 내려다보자면 에이즈가 창궐하는 나라나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도 있고 위를 보자면 미국 같은 강한 나라도 있을 뿐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유럽도 하루아침에 그냥 발전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경쟁하고 넘어지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사실 불우한 사정을 딛고 일어선 한국의 근대 위인들을 이 공식대로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나 외국의 성공 사례나 완전 자력으로 성공하거나 또는 시대를 잘 타 성공한 경우 모두 있기 때문이다.

우선 뉴턴은 대중들이 몇몇 일화만 듣고 상상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공부돌이가 아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라이프니츠와의 미적분 논쟁이나 로버트 훅과의 악연, 조폐국장직 역임에서 알 수 있듯 뒤끝 심하고 권력욕, 명예욕이 많았으며 왕립협회 등을 통한 뒷방정치에도 강했다. 그런 사람이 인류 역사에 꼽힐 천재이기도 했으니 물리학자나 물리학 교수쪽으로 대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그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매우 우수했다. 우선 독일 김나지움 출신인데 이런 곳은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고교 졸업 시험에서도 수학 과학 외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단지 프랑스어, 지리학 등 2~3과목에서 중간 정도 성적을 기록했을 뿐이었다.[9] 이후 친구 아버지의 빽으로 특허청 심사관으로 들어간 후 상대성이론을 정립, 발표해서 일약 신데렐라가 되었다. 다만, 한국에서 아인슈타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면 프랑스어나 지리 과목 성적이 아니라 다름아닌 사상과 유대인에 대한 박해이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살았다.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때려치운 것도, 대학에서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지 못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것도, 첫 직장이었던 보험사에서 잘린 것도,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반핵 평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매카시즘 바람이 불 때 FBI에게 비밀리에 조사를 받은 것도 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인슈타인이 태어났다면 석박사 과정을 밟는 중에 교수와 싸우다 쫓겨나거나 직장에서 쫓겨났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특허청에 들어가서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이론을 발표했다면 그래도 역시 대학 교수나 연구원 정도로 인정받긴 했을 것이다.

갈릴레이의 경우 중세의 종교중심적 분위기나 북한의 주체사상중심의 분위기를 동일선상에 둔 것이 문제이다. 다른 케이스들과 달리 유일하게 현실은 시궁창인 케이스. 갈릴레이는 그래도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부인할 기회라도 주어졌지만, 북쪽에선 아무리 당원 아들이더라도 그런말이 튀어나왔다면 아오지로 끝나지 않는다. 요덕 수용소 항목으로.

에디슨의 경우 한국의 특허출원 및 등록과정은 다른 나라와 거의 다를 바가 없으며, 특허출원이 빨리 등록받기 위해 급행료를 내야하는 것은 법으로 정해진 공식적 절차이며 미국, 일본, 유럽 어디나 그러한 절차가 있다. 또한 국제특허를 위한 출원은 국내법이 아닌 국제협약인 특허협력조약의 적용을 받기에 국내의 발명이 외국의 발명에 비해 홀대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이런 거에 목말라 하는 실정이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왜 그토록 황우석을 언론에서 띄웠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발명자인 에디슨이 특허 진행 과정에 대해 몰라도 변리사라는 직종의 존재를 알고, 이들에게 의뢰를 하면 서류 미비등으로 고생할 일도 없다. 어릴 때부터 장사 수완은 있었다고 하니 수임료 낼 돈은 있었겠지... 했던 짓을 생각하면 오히려 남의 발명을 잘 털어먹었을지도 모른다.

퀴리 부인은 중등 교육 시절부터 줄곧 최우등생이었으며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한국에서라면 틀림없이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혹은 서울공대에 장학금을 받으며 조기졸업하였을 것이고, 국비유학생으로 뽑혔다면 못해도 지방대 정도의 교수자리는 보장되었을 것이다.[10] 한국의 어떤 연구소나 대학에서도 논문이나 실적보다 외모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물며 집안의 가난때문이 아니라[11] 외모때문에 공장 여공이 될 것이라는 의견은 매우 신빙성이 적다. 차라리 가난과 함께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 교수 자리 잡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말하는 게 더 신빙성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1950~60년대에도 지금처럼 교육열이 상당히 높았던 나라인만큼[12] 최소한 아무리 교육을 안 시켜도 초등학교 교육정도는 받았을 확률이 높은데다[13] 퀴리부인처럼 우수한 학생이었다면 가족들이 가난하게 살았을지언정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희생하면서도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뒷바라지를 했을 것이다.[14] 게다가 그 시절에는 대학에 입학하면 출세길이 열렸던 시대였던만큼 무슨 조선시대가 아닌 이상, 아무리 딸로 태어났어도 집안에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 공부를 시켰을 확률이 더 높다. 이런 경우, 퀴리부인은 부모님이 "가족들이 너 하나만 바라보면서 산다!" 라는 등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을 것이 뻔할 뻔자이며 오히려 공부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열심히 하라고 압박을 받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우리나라는 그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여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는 이화학당[15] 이 있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완벽한 비장애인이었다. 심지어 조정 선수 활동까지 했다고 할 정도... 학벌을 상당히 따지는 영국은 한국과 분위기가 비슷하므로 실력 못지않게 학벌 덕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가 전신불구가 되었다해도 자신의 재능을 펼쳤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의 이상묵 교수가 대표적인 예시. 물론 한국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서구보다 열악한 편이므로 영국보다는 힘들었을 겠지만 어차피 그정도 재능이면 해외 유명대학이나 연구소가지 한국에 오래 있지도 않는다.

위 동영상에서 제목으로 쓰인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경영 능력이 만렙에 다다른 먼치킨이었다. 애플 1을 만드는 첫번째 사업에서부터 스티브 워즈니악을 부려먹는 등 1970년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사업 방식을 채택하였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생소한 시대에 모니터나 주변 기기조차 없는 애플 1을 화려한 말빨로 판매하는 데 성공하여 일찌감치 영업에 소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근로기준법이 유명무실한 시대에서 승승장구하고 기업가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면 최소한의 도덕적인 제한조차 없는 괴물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본문과 위 동영상은 위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한국의 시대적 조건이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외국에서는 그 위인들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사회적인 지원과 뒷받침을 아낌없이 받아서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외국의 위인들이라고 사회적인 냉대와 불인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 퀴리 부인의 경우 세계적인 학자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프랑스 국내에서는 성차별을 받기 일쑤였다.[16] 해당 항목으로.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특허청 공무원이 아닌 당시 기준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정도의 사기업에서 일했으면 역사에서 잊혀졌을 수도 있다.
  • 에이브러햄 링컨의 경우 애초에 하층민 출신이었으며[17],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수많은 낙선의 고비를 맛봐야 했다.[18].=
  • 헬렌 켈러의 경우, 설리번 선생의 기적에 가까운 가르침이 없었다면, 그저 중증 장애인으로 남았을 것이다.[19]
  • 나폴레옹의 경우 프랑스 혁명이 실패했더라면 단두대에 올라가는 건 루이 16세가 아니라 나폴레옹이었을 것이고 부르봉 왕조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양부모는 그를 정성을 다해 부양했지만 경제적인 환경은 어려웠다. 입양아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어린이용 위인전만 봐도 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갔기 때문에 위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불합리함은 분명 존재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인재들의 잠재력까지 짓밟아 버린다고 여기며 체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론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계열의 유머는, 한국은 본문에 등장한 위인들의 출신 또는 활동 국가인 미국 및 서유럽의 일부 국가와는 역사적인 상황과 문화적인 배경 그리고 경제적인 토대 등의 측면에서 다른 점이 부지기수이고, 이러한 한국에 해당 위인들의 모든 것이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한국 사회와 위인들이 서로 부딪치는 점이 많았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풍자이자 자학개그의 성격을 가진 강한 블랙 유머라는 것이다.

4. 관련 문서



[1] 그러나 내용이 굉장히 극단적인 영상이라서 내부 리플에서 이미 반박이 다 나오고 있다. 10대때 이미 대가 수준이었던 천재 피카소, 단순한 이공계가 아니라 인문학적 경영능력 끝판왕인 잡스, 에디슨, 빌 게이츠와 당시 미국에서도 정말정말 이례적인 케이스였던 헬렌 켈러,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때까지만해도 건강했던 스티븐 호킹, 프랑스에서도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했던 파브르를 싸잡아서 한국 까내리는데 쓰고 있다.[2] 원본 자체는 피시통신이 도입되지도 않던 1989년~90년대 초반부터 돌아다니는 글이었다. 그것도 주간조선에서 한국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동화로 말이다![3] 스티븐 호킹은 1942년생이다.[4] 이건 2010년대 기준으로는 사실 엄청난 과장으로 보일 것이다. 수학, 과학만 만점 받아도 들어갈수 있는 인서울 중상위권 대학들은 많으며 최상위권 일류대도 특기자, 특례 전형으로 잘하면 갈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1998년 이전도로 그 당시는 대학 입학 전형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은 감안해야만 한다. 1999년 이전까지의 대학 입학은 순전히 내신성적과 학력고사 성적 및 대학본고사만이 전형수단이었다. 특히 내신은 1990년대 후반까지 고교시절에 정해진 것이 평생가는 시스템이었다. 무슨 얘기냐면 비교내신 같은게 없어서 고등학교 시절을 망치면 재수, 삼수때 정신 차려도 깎인 내신점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한국 1위를 하고 한국 대표로 세계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정도의, 즉 수학, 과학에서 대한민국 No.1의 실력이라도 타 과목, 특히 문과계통 암기과목(그시절에는 이과생들도 국사, 국민윤리, 사회계열 1과목이 필수였고 합하여 70점 만점이다. 반면에 이과생은 과학 2과목 선택에 40점 만점. 이거 이과 맞아?)에서 점수가 안 나오면 오로지 총점으로만 대학을 가는 시스템상 건국대 이상 가기도 힘들었다.[5] 베리에이션으로 '초등학교 중퇴라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버전도 있다.[6] 이 갈릴레오 버전은 배경이 대한민국 한정이면 교수들 학설에 꼬치꼬치 태클걸다가 밉보여서 압력을 받아서 결국 학설을 부정하지만 속으로 그래도 '내 학설이 옳다' 하고 궁시렁거리는걸로 나오기도 한다.[7] 위에서 아인슈타인이 철가방을 드느라 상대성이론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호킹이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8] 이 때의 아르헨티나는 라울 알폰신의 치세기간으로 문민정권이 갓 들어선 시점이었다.[9]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항목으로. 낙제한 과목도 없었다. 성적표 읽는 법이 1이 최하고 6이 최고인데 정반대로 읽어서 이런 오해가 번진 듯 하다.[10] 뛰어난 업적으로 아무도 반론 제기를 못할 자리에 가거나, 백그라운드가 좋아서 태클 걸 사람이 없다면 더더욱. 그런데 퀴리부인의 가정환경까지 재현했다면 업적으로 모든 걸 커버해야 된다.[11] 퀴리부인은 어려서부터 상당히 가난하게 살았다.[12] 6.25 전쟁 중에도 천막 하나 놓고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켰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덕수가 천구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말싸움을 할 때 여동생과 같이 천막 하나 놓고 수학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13] 일단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학교가서 한글 정도는 배워야 할 것 아닌가?[14] 아무리 집안이 보수적이어도 남의 자식이 아닌 이상, 똑똑한 자식들에게 무조건 돈 벌어오라고 힘든 공장으로 일시키러 보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라서 재능낭비나 다름없다. 게다가, 무조건 장남들만 밀어주고 공부를 시킨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결정적으로 장남도 공부를 잘해야 집안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다. 예를 들면, 장남이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사회에 일찍 진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 국제시장(영화)에서도 주인공 덕수가 서울대에 들어간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원해서 독일로 석탄을 캐러 갔다.[15] 이화여자대학교의법인이다.[16] 성차별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 보도로 인해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17] 국내에 출판된 링컨 위인전 중 한 권의 제목이 '초등학교도 못 나온 링컨'(...)이다. 실제로 9살 때 어머니를 여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18] 게다가 용모로도 칭찬받는 일이 없었으며 특히 항목에서도 나와 있지만 인생에서도 거의 실패하는 삶을 살았다. 그야말로 워런 G. 하딩안티테제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더욱이 결혼해서도 행복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할 정도의 생활의 연속이었다.[19] 설리반 선생이 헬렌 켈러의 인생에 나타나기 전까진 그녀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키워지고 있었다. 특히 설리반 선생이 어린 헬렌에게 식사예절을 가르쳤던 과정은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했을만큼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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