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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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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PAN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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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6a4><colcolor=white> 법인명 정식: 주식회사 팬택
영문: Pantech Inc.
(2019년 신규법인 설립 이전 법인명 기준)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창업주 박병엽
설립일 1991년 3월 29일 (구 법인)[1]
2015년 10월 22일 (신 법인)[2]
2019년 11월 10일 (재설립 법인)[3]
해체일 2016년 3월 1일 (구 법인)[4]
2017년 10월 11일 (신 법인)[5]
업종명 방송 및 무선 통신장비 제조업[6]
무형재산권 임대업[7]
본사 명목상 본사 (매각)[8]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암로 179
(팬택빌딩)
실질적 본사[9]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251
(해동빌딩, 10층)
대표 이준우 (1차 법인, 등기상)[10][11]
김병진 (2차 법인, 등기상)[12]
김형윤 (3차 법인, 실질적)[13]
규모 중소기업[14]
모기업 아이디어허브
(2019년 신설된 3차 법인 기준)
상장 상장 폐지[A]
비상장[B]
시장 한국거래소[A]
종목코드 25930[A]
최종자산 1,785억 9,047만 3,164원[19]
도메인 파일:팬택 로고.svg
파일:팬택 로고.svg(iVEGA) (접속 불가능)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iSKY)[20]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41702600_0.jpg
구 팬택 본사 (現 한샘 상암사옥)[21]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 및 전성기(1991~2001)2.2. 확장기(2001~2006)
2.2.1. 현대큐리텔 인수2.2.2. SK텔레텍 인수
2.3. 침체기 및 안정기(2006~2012)2.4. 쇠퇴기(2012~2015)
2.4.1. 경영난의 시작2.4.2. 2차 워크아웃과 법정관리2.4.3. 유찰로 끝난 연내 매각형 회생 시도2.4.4. 회생 절차 포기
2.5. 전환기(2015~)
2.5.1. 인수자의 등장2.5.2. 팬택의 부활2.5.3. 1년 7개월 만의 신제품 출시, 그러나2.5.4. 완전 몰락2.5.5. 특허 전문 업체로의 변모
3. 특징4. 제품
4.1. 팬택&큐리텔4.2. 팬택 스카이4.3. 스마트폰
5. 이야깃거리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팬택 내수용 로고.jpg 파일:팬택 로고(2001-2005).svg 파일:팬택 로고.svg
내수용 로고 (1991~2001)[22] 2001~2005 2005~

대한민국의 옛 휴대전화 제조사. 과거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으며 스카이큐리텔 브랜드로 국내 피처폰 시장을 제패하여 내수 점유율 2위를 오랜기간 유지했고[23] 해외 시장에서도 기술력과 개발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휴대폰 점유율 4위까지 기록했던 벤처 신화의 전설적인 업체였다. 뿐만 아니라 전성기 시기에는 대기업 내지 중견기업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2010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이후 국내 업체로서는 최초로 안드로이드를 도입한 곳이지만 스마트폰 시기 발생했던 여러 품질 문제로 이미지가 실추되어 겨우 회복하는 와중 2014년 단통법이 시행되며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급제도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이동통신 3사 영업 정지까지 겹치며 코 앞의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법정관리에 돌입하기에 이르렀고, 기적적으로 쏠리드에 인수되어 2016년 사업을 재개했지만 자금난으로 결국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 후 마지막 남은 IoT 부문마저 매각하며 2017년을 끝으로 청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2019년 팬'텍'이라는 이름으로 KNA홀딩스에서 재설립된 후신 법인이 옛 팬택의 상표권과 일부 특허 등을 확보하여 현재는 아이디어허브 산하의 특허 전문 업체로 조용히 운영 중이다.

2. 역사

2.1. 초창기 및 전성기(1991~2001)


1991년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은 당시 맥슨전자[24]의 영업 사원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담보 잡아 무선 호출기를 만드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1994년부터 CDMA 방식의 휴대전화에 진출했다.[25]

흔히 팬택을 단순 휴대폰 제조사로 생각하지만, 이 시절 팬택은 잘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른 엄청나게 다양한 사업을 했었다. 팬택계열이라는 이름 및 그 이름 아래에 있는 자회사들을 통해 휴대폰과 무선호출기뿐만 아니라 산업용 무전기와 업무용 차량 무전기, 간이 TRS, CCD 카메라도 생산하였으며, 영상보드, 모뎀, VGA 카드, 화상회의시스템도 생산했다. 심지어 게임 개발사인 팬택네트를 설립해 딜문, 마제스티, 택틱스 머셔너리 등의 게임을 서비스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사실상 팬택의 전성기로 본다. 아카이브 사이트

2.2. 확장기(2001~2006)

2.2.1. 현대큐리텔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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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팬택은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13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고 매년 3억 달러씩 CDMA 방식 휴대 전화를 공급하기로 했다. 자신감이 생긴 팬택은 2001년 자기 회사보다도 더 규모가 컸던 현대큐리텔[26]을 사모펀드 KTB 네트워크와 50:50으로 1600억원에 인수하여 팬택&큐리텔로 이름을 바꾸어 사업 확장에 들어갔다. 참고로 팬택 측의 인수 자금은 전액 박병엽 부회장의 사재 출연이었다. 현대큐리텔은 '걸면 걸린다'는 광고 문구로 유명한 '걸리버', '네오미', '큐리텔' 등의 브랜드로 휴대폰을 생산했었다. 박병엽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당시 합병으로 성공했던 많은 기업들처럼 인수합병 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현대큐리텔은 대기업 전자회사라는, 현대전자의 후신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인지도가 훨씬 더 높았을 뿐 아니라, 실제 금융권에서의 신용등급도 오히려 팬택보다 높았으며, 대기업 출신답게 무려 500명의 연구 개발 인력을 얻었고, 해외 수출 판로까지 얻게 됐다. 팬택의 현대큐리텔 인수는 기술적, 양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유럽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2003년부터 수출 국가를 다변화할 수 있었다.

내수 시장에서도 큰 성장을 보인다. 현대큐리텔 인수 전의 팬택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영향력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고, 반면 현대큐리텔은 비록 '구리텔'이란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지만 현대라는 상표 가치 덕에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3위의 영향력 높은 회사였다. 그러한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며 결과적으로 팬택은 단숨에 큐리텔의 국내 점유율을 그대로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2004년에는 대우종합기계 인수 역시 추진했으나, 두산그룹에 패해서 인수가 좌절되기도 했다. #

2.2.2. SK텔레텍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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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2일, 팬택은 SKY 브랜드로 유명한 SK텔레텍의 지분 60%를 SK텔레콤으로부터 2924억원에 인수했다.[27] 인수 주체는 계열사였던 팬택앤큐리텔이었고, SK텔레텍은 인수된 이후 사명을 스카이텔레텍으로 변경했으나 자회사 체제로는 오래가지 못하고 모기업인 팬택에 곧 합병했다. 당시 팬택 경영진들은 저가형 브랜드 '큐리텔'과 프리미엄 브랜드 '스카이'로 시장을 병행 공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언론들은 팬택으로의 M&A로 공급 제한이 철폐된 스카이가 곧 LG전자싸이언을 제칠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내놓았었다.

2.3. 침체기 및 안정기(2006~2012)

||<-7> 팬택의 사업 실적(억원) ||<-6> 팬택앤큐리텔 사업 실적(억원) ||
회계연도 자산 부채 자본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자산 부채 자본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2002 3,081 1,625 1,456 5,378 827 572 3,157 1,967 1,190 7,300 459 437
2003 3,687 1,995 1,692 6,292 345 273 7,223 4,522 2,700 13,858 684 417
2004 3,505 1,400 2,104 6,525 327 431 8,101 5,254 2,847 20,243 570 464
2005 8,439 6,041 2,398 6,550 -422 -217 10,180 8,675 1,505 17,026 -596 -1,283
2006 7,055 8,934 -1,878 12,692 -1,670 -4,323 4,528 8,736 -4,207 13,614 -1,721 -6,159
2007 3,837 6,809 -2,971 6,063 -1,889 -2,487 5,158 6,510 -1,352 10,330 635 -148
결산은 당해 12월 31일


하지만 SK텔레텍의 인수합병은 승자의 저주가 되고 말았다. 팬택은 큐리텔의 인수를 통해 급속히 성장했고, 이번에도 같은 기회를 노렸으나 이는 판단 착오였다. SK텔레텍을 인수하자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채권단은 팬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인수합병 1년 5개월만인 2006년 12월 15일 워크아웃(기업 재무 개선 작업)을 결의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2007년 4월 1일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2007년 4월부터 본격적인 워크아웃 작업을 시작해 무려 4년 8개월이라는 시간 끝에 2011년 12월 종료되었다.

또한 SK텔레텍 연구진이 대거 이탈했고[28], 팬택 경영진은 스카이 브랜드에서 SK텔레텍의 흔적을 지웠다. 전성기 스카이를 대표하던 'It's different' 슬로건이 'MUST HAVE _'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 시장에서는 'Pantech, It's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런칭하며 스카이 동호인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을 받았다.

워크아웃 후 자금 확보를 위해 많은 폰들에 리베이트를 투입, 버스폰 양산의 주범으로 찍히며 스카이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망쳐버렸고, 이후 스카이는 '버스카이'로 불리며 '싸구려 중소기업 폰'이라는 이미지가 단단히 박혔다. 그리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스카이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쓰고 큐리텔을 저가 브랜드로 병행하여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무너져 큐리텔 브랜드로 내놓아야 할 저가 기종(IM-S220L 등등)들도 스카이 브랜드로 몰빵해서 나오게 되었고 큐리텔 브랜드 말년에는 두 브랜드간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지경이 되고 말았다.[29] 결국 2009년 즈음 큐리텔 브랜드는 소리소문 없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큐리텔 브랜드의 좋지 못한 이미지를 스카이가 완전히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원화되어 있던 큐리텔 브랜드와 SKY 브랜드를 사실상 통폐합해서 SKY 브랜드로 일원화 한 것이었으며, 결국 이 시점에서 스카이는 큐리텔 후계기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물론 팬택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SKT 전용의 프리미엄도 120만대 제한의 프리미엄도 전부 사라진 팬택의 스카이가 가격까지 고가정책을 유지한다면 이는 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꼴이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저가에 폰을 뿌려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카이는 쓸만한 기능이 제법 있었고, 자판을 비롯하여 대기업 제품과 구별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스카이 이용자는 계속 스카이 제품만 이용하게 되어 고객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 설탕 보드라고 비아냥을 샀던 내구성 문제도 있었을 뿐 아니라, 팬택으로 넘어온 후 배터리 부족 시 시도때도 없는 충전 경고로 오히려 배터리를 더 날려먹는 등 소프트웨어적인 구멍이 늘어났으나, 피처폰 시절 말기에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2009년 베이스밴드 칩셋 대금 및 기술사용료를 내지 못해 채권을 출자전환하면서 퀄컴이 팬택의 주주가 되었다. 그래서 팬택의 스마트폰은 전부 다 퀄컴 CPU를 쓰게 되었다. 팬택 제품 중 퀄컴 CPU를 사용하지 않은 기기는 스카이 더 플레이어 단 하나 뿐이다. 이쪽은 3G 등의 모바일 통신 기능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텔레칩스의 프로세서를 채택한 것이다.

2010년 스마트폰 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시리우스, 이자르, 베가, 미라크를 선보였다. 이 중 베가의 실적이 좋은 편이었고, 이를 브랜드화하여 베가 S, 베가 X를 선보인 후 베가 레이서를 출시, 150만 대라는 놀랄 만한 판매실적을 이루어내며 당시 피쳐폰에 미련을 가지던 남용 부회장의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의 2인자로 등극했다. 이후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 것으로 보였지만..

팬택의 역작으로 홍보했던 문제의 베가 레이서는 많은 버그와 발적화, 잔고장과 부실한 A/S로 오히려 베가 브랜드를 '베레기'라 불리게 만들었고, 2012년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결정하는 플래그십 폰 경쟁에서 팬택의 베가 레이서 2LG전자옵티머스 LTE II의 일격에 완패하고 말았다.

2.4. 쇠퇴기(2012~2015)

2.4.1. 경영난의 시작

||<-7> 팬택의 사업 실적(억원) ||
회계연도 자산 부채 자본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2011 20,089 17,531 2,558 29,820 2,184 1,025
2012 14,557 13,974 583 22,544 -1,052 -1,886
2013 7,140 11,815 -4,674 14,040 -2,922 -6,199
2014 2,794 9,961 -7,167 5,818 -1,545 -2,493
결산은 당해 12월 31일


결국 2012년부터 또다시 경영난이 시작되었다. 2012년에 내놓은 베가 레이서 2와 S5, R3의 부진이 원인이었다. 삼성전자LG전자에 비해 현금 동원력이 약해 적자가 나면 바로 회사가 휘청거리는 구조인데, 베가 시리즈 판매가 부진하자 지나치게 판매 장려금을 쏟아붓는 바람에 적자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이듬해인 2013년에도 부진은 지속됐고, 5월에는 삼성전자로부터 50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하였으나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 결국 2013년 9월 24일,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사임하고, 전체 직원의 1/3 정도인 800여 명에게 6개월 무급 휴직을 실시할 계획이라 밝혔다. # 2013년에 결국 자본 잠식 상태에 들어갔다.

팬택에서는 신규 자본을 유치하여 경영권까지도 넘기는 방안이 검토되기 시작했으며, 2014년 4월에는 인도의 마이크로맥스가 팬택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다. 2014년 7월 이동통신사들의 영업정지 여파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동통신사에게 갚아야 할 1,800억원 가량의 부채가 있지만 영업정지로 인해 제대로 된 판매를 할 수 없었다. 팬택과 채권단은 이동통신사에게 부채를 출자전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동안 답이 없어 법정관리 직전까지 갔다가, 출자전환 대신 변제를 2년 무이자로 늦춰주면서 간신히 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엔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되기 시작하였고,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2.4.2. 2차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채권단은 결국 2014년 8월 워크아웃을 재개했으나#,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고, 8월 19일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개시했다. 더불어 미국 조지아 주 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KBS의 시사 프로그램인 KBS 파노라마에서 팬택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 크게 어려운 회사 사정과 이를 어떻게든 풀어나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보도했다. 그리고 팬택의 법정관리는 2007년 워크아웃 때와는 달리 안타까운 점이 있었는데, 먼저 이 즈음에 팬택이 생산하던 스마트폰의 품질은 베레기로 불리던 베가 레이서 시절보다 월등히 좋아져 베가 R3이 출시된 이후에는 전체적인 평가가 상당히 좋아졌으며, 특히 베가 아이언 시리즈는 경쟁사의 기기들에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스마트폰 커뮤니티에서는 팬택 제품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질 즈음이었다. 그런 반면 스마트폰 시장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이동통신사에서는 베가 레이서 시절부터 쌓여온 재고를 해소하지 못해 팬택 제품들의 판매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재고가 계속 쌓이게 되었다. 게다가 이동통신 3사의 영업정지와 함께 단통법이 시행되자 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어 계속해서 재고를 해소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이런 여러 악재들이 겹쳐서 결국 많은 노력에도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매각 입찰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11월 14일 KT에서 베가 아이언 2의 출고가를 783,200원에서 352,000원으로 대폭 낮추었고, 이어서 이동통신 3사 모두 베가 아이언 2, 베가 시크릿 노트 등 팬택의 주요 제품들의 출고가를 대폭 인하하였다. 또한 신제품인 베가 팝업 노트도 출고가가 352,000원으로 매우 저렴하게 출시하였다. 원래 9월 경에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SK텔레콤에서 팬택 제품은 안 팔린다는 이유로 출시되지 못했다. 결국 출고가를 대폭 내린 11월에서야 출시하였다. 물량도 9월 당시에 만들어 놓은 3만 대밖에 없다고 한다. 추가 생산은 회사 재정 상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덕분에 단통법으로 얼어붙은 휴대폰 시장에 한 줄기 빛이 되었지만, 정부는 이를 휴대폰 단말기 출고가 인하의 시발점으로 보고 단통법을 현행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연히 삼성이나 LG 등 다른 제조사들은 단말기 값을 내릴 리 없다. 오히려 아래 서술된 현 상황을 보면 팬택이 청산되기 전 재고 처리를 했다는 게 확실했다.

2.4.3. 유찰로 끝난 연내 매각형 회생 시도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 11월 21일 매각은 유찰되었다. # 더불어 12월 1일 법원이 선정한 회계법인의 조사 결과, 회사를 청산할 때의 가치가 회사를 존속시켜 계속 기업활동을 할 경우의 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청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개매각이 실패하면서 매각주관사 측은 1:1 접촉을 통해 인수의향자를 찾기로 했다. # LA 지역의 원밸류에셋 매니지먼트라는 자산운용사가 인수자로 나섰으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무산되었다. 법원은 3월 9일 다시 매각 공고를 냈다. # 예비 입찰에서 2개 국내업체와 1개 해외업체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였으나, 법원은 모두 실질적인 인수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매각 절차를 중단했다. #

2.4.4. 회생 절차 포기

파일:SFU9yim.jpg

결국 2015년 5월 26일 회생절차를 포기하였다. 회생계획안 인가 전에 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한 것이기에 법원이 파산결정을 내리지 않을 가능성은 있으며, 그 경우 팬택 자체에서 독자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관련기사

이 무렵,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에 있는 팬택의 김포공장에서는 미국버라이즌에 납품하기 위한 노트북용 LTE 무선통신 모뎀을 만들고 있었으며, 2015년 6월 1일에 출하될 이 모뎀이 현 상황에서 김포공장에서 출하될 마지막 제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5년 5월 30일, 무선모뎀의 생산이 끝난 후 김포공장은 가동이 중지되었다.

이렇게 팬택은 삼성전자, 애플, LG전자 등의 메머드급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기 직전까지 갔지만...

2.5. 전환기(2015~)

2.5.1. 인수자의 등장

2015년 6월 16일, 광저장기기 전문 업체인 옵티스# 컨소시엄과 M&A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TSST도 이 회사가 지분을 인수했다고 한다.

2015년 6월 19일 기사에 따르면 옵티스의 최대주주인 진대제 전 장관의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는 팬택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결국 옵티스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진대제와 옵티스는 결별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후에 팬택은 망했고 옵티스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30] 진대제 전 장관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AS망과 김포공장은 매각될 예정이며, 동남아 위주로 사업을 이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나중에 잘못된 정보로 밝혀졌다. 허나 후에 김포공장의 기계들만 추가로 매입한다고 한다. # 김포공장에 있던 장비들만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뜯어가고 김포공장은 폐쇄할 듯.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스카이 아임백은 기존처럼 김포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옵티스는 실사를 끝내면서 중장기 사업 전략 수립에 나선다. 외부 컨설팅업체 도움없이 자체적으로 운영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사업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의사 판단을 위해서다. 최근 옵티스 회장으로 영입된 변양균[31]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전 TSST코리아 대표 황인섭 부회장이 팬택 인수와 전략 수립을 진두지휘한다. 향후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변양균 회장은 옵티스와 팬택을 아우르는 그룹 회장직을 맡는다. # 또한 브루클린 프로젝트나 베가 시크릿노트 2 등 개발 도중 상황악화로 중단된 개발 사업들도 인수 이후 국내 사업 비중에 따라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 다만 인수 및 인수 후 유지할 만한 자금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으로, 인수 납입금을 제때 납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앞서 원밸류에셋도 인수 납입금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자칫하면 제2의 쌍용자동차 같은 상황이 될 수 있기에 법원과 팬택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 있는 부분.

이주형 옵티스 대표는 인수 작업이 순항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포 공장 설비 구매, 서울 상암동 팬택 사옥 소유주와 건물 사용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해외에 제조라인을 마련할 때까지 당분간 국내에서 제품 생산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설비 구매를 검토 중이다. 옵티스는 팬택 인수에 400억원을 제시했다. 설비가 추가되면 500억원까지 금액이 늘어날 수도 있다. 연구개발(R&D) 인력 외에 제조 인력도 인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

7월 15일, 업계에 따르면 옵티스는 팬택의 유·무형 자산에 대한 실사를 마치고 팬택 실무진과의 협의 하에 법원에 제출할 계약서 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

7월 16일, 옵티스 컨소시엄에 EMP 인프라펀드 대신 통신 장비 기업인 쏠리드가 합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컨소시엄 이름도 옵티스-쏠리드 컨소시엄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7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3부의 본 계약 체결 허가에 따라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이 팬택을 인수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계약금은 20억원이며 8월 中 관계인 집회 등의 절차를 거쳐 8월에 공식 인수한다고 밝혔으나 바로 본 계약을 체결했다. 옵티스 대신 쏠리드가 팬택 인수를 주도하면서 컨소시엄 이름도 바뀌었다.

9월 3일, 중도금을 납부하지 못해 인수 계약 완료가 불투명해졌으나 법원의 납부기일 연기로 2015년 10월 8일까지 생명을 연장했다. #

10월 8일,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이 인수대금 잔금 386억원을 지불하였고#, 10월 16일, 결국 법정관리 14개월만에 법정관리를 탈출하였다. #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의 팬택 인수는 P&A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상암동 사옥, 김포공장 설비, R&D 기관, A/S망 등을 새 법인으로 물적분할하고, 김포공장 부지와 부실채무는 기존 법인에 남겨 청산시켰다.

2.5.2. 팬택의 부활

2016년 1월 7일 베가 시크릿 업 KT 모델의 구글 보안 패치가 진행되고 공식 트위터에서 6.0 마시멜로 업데이트를 언급하는 등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월 20일경 GFX 벤치에 Pantech V950이라는 기기가 올라오며 팬택이 출시할 보급형 스마트폰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이 기종은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고 베트남에만 출시되었다.

MWC 2016에서 사물인터넷에 관한 소규모 전시를 했다. 내년에는 스마트워치를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3월 2일, 갑자기 팬택의 "IM-A940K"라는 미확인 모델의 WiFi 인증이 통과되었다!# 인증 당시 확인된 안드로이드 버전이 예전 버전인 4.4.2 킷캣이라서 개발 중단되었던 브루클린 프로젝트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으나, KT에서 진행하는 재난망 시범사업용 스마트폰으로 밝혀졌다. 브루클린 프로젝트는 현대카드가 디자인 전반을 맡았고,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1층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7월 4일, SKY로 개명(?)한 고객지원 사이트에서 오랜만에 A/S지원 센터의 신규 개점을 알리는 공지를 하였다.

2.5.3. 1년 7개월 만의 신제품 출시, 그러나

2016년 6월 22일, 신제품 스카이 IM-100을 공개하고 6월 30일 정식 출시하였다. 퀄컴 스냅드래곤 430을 사용하며 출고가는 44만 9천원으로 책정되었다. #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예약판매에서는 7,000대가 팔렸으며, 초도 물량 3만대를 소진하였다고 한다. # 김포공장도 풀 가동 중이라고 한다. # 이를 발판삼아 7월 20일에는 12년만에 다시 벤처기업 자격을 획득하였다. # LG G5가 판매 부진을 넘어 망한 것과 대조되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에만 반짝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만대 판매가 목표였으나 13만 201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으며, 남은 물량 2만 8,168대도 다 처리하지 못해 재고처리 수순으로 들어갔다. 2016년 8월부터는 아예 생산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생긴 적자와 자금 유동성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특허권까지 팔아치우고 있다. #

2016년 3분기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자본잠식에 빠졌다. 모기업인 쏠리드 역시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아임백 출시와 함께 공격적으로 늘렸던 서비스센터들은 2016년 11월 이후로 운영을 종료하거나 주변 센터에 통합되고 있다. 가령 전라북도의 경우 2016년 9월에 전주 센터가 신규 오픈되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운영 종료되면서 서비스센터가 아예 없는 지역이 되었다. 2019년 현재 남아있는 서비스센터들도 유일한 직영점인 인천센터를 제외한 모두가 가맹점으로, 타 중소기업 소속 서비스센터가 팬택과의 계약을 체결해서 서비스 지정점으로 운영되거나 아예 사설 수리점이 팬택 기기도 담당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후속기기 국내 출시를 보류하고 합작법인을 세워 일단 해외시장부터 공략한다고 한다. 첫 해외 진출 국가는 베트남이다. 한편, IoT 전략을 설명하면서 전략제품으로 내세운 스마트워치 프로젝트는 완전히 폐기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한다고. 제품개발 인력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

2017년 5월 8일, LG전자가 팬택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사실 무근으로 판명되었다. 관련 기사

2.5.4. 완전 몰락

||<-7> 팬택의 사업 실적(억원) ||
회계연도 자산 부채 자본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2015 785 547 237 23 -82 -90
2016 604 1,073 -468 516 -595 -708
2017 172 995 -822 82 -273 -340
2015년 손익 실적은 2015년 10월 17일~12월 31일 실적
결산은 당해 12월 31일


결국 2017년 5월 11일, 팬택이 휴대폰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 당분간은 IoT 사업에 집중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

2017년 5월 21일 미국 특허청(USPTO) 등에 따르면, 팬택은 지난해 10월 31일 230건에 달하는 미국 특허를 골드피크이노베이션즈에 양도했다. 팬택은 또 지난해 9월에는 모 회사에 영상부호화 효율을 높이기 위한 예측모드의 부호화·복호화 방법 및 장치에 대한 특허(HEVC 코덱 관련 기술로 분류) 6건을 9억5000만원에 매각했다. 그리고 그 중 20건의 특허가 애플에게 인수되었다.

팬택이 핸드폰 사업을 접고 집중하겠다고 한 IoT 사업도 매각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로 인해 팬택은 특허만 남게 되어 쏠리드 컨소시엄은 기술먹튀 의혹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2017년 10월 11일 IoT 사업마저 우리넷에 매각되었다.

2017년 10월 26일 결국 쏠리드는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이 팬택의 인수를 위해 설립한 합작 특수목적법인인 에스엠에이솔루션홀딩스가 보유 중인 팬택의 주식 전량을 케이앤에이홀딩스에 1000만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케이앤에이홀딩스는 팬택을 재정비하여 신규 사업을 모색하고 휴대폰 AS사업과 특허수익화 사업 등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아는 제조사로서의 팬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2.5.5. 특허 전문 업체로의 변모

2019년 1월 SKY 인천센터를 통해 스카이 스마트폰, 스카이 폴더, 무선 이어폰의 시제품이 공개되었다. 착한텔레콤이 팬택과 'SKY' 브랜드 라이선스 독점 계약(5년)/서비스센터 인수/기존 팬택 잔여 인력 승계 등의 계약을 맺고 개발한 것이다. 제품 생산은 단가 문제로 중국 ODM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말기 자급제 형태로 공급될 예정이며 가격은 20~30만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월 21일 무선이어폰 SKY Fit Pro의 사전예약이 11번가에서 시작되었다.

2019년 11월 착한텔레콤 박종일 CEO는 출시할 계획이었던 SKY OneSKY Pad의 출시가 최종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2020년 5월 22일, 투넘버와 러이센스 계약을 체결했으며, 러기드 스마트폰인 팬택 스마트팬택 마음폰이 홈페이지에 등록되었다. 다만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의 제품명에만 팬택 명칭을 붙여서 실제 기기에는 팬택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2020년 5월 26일, 특허 수익화 전문 기업(NPE) 아이디어허브에 팬'택'의 모든 특허가 인수되면서, 아이디어허브의 100% 자회사 팬'텍'이 되었다. 관련링크 이후 pantech.com 사이트가 다시 개설되었다. 5월 30일 기준으로 아직 사이트를 구축중인 것으로 추정되며, 6월 3일 기준으로 접속이 불가능하며, 사이트를 내린 뒤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6월 15일, pantech.com의 작업이 모두 완료되어 접속이 가능해졌다. 역시나 제품 개발/출시 사업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사이트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2020년 7월 8일, Niantic, Inc.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미국의 법률회사 TRIPLE REALITY TECHNOLOGIES LLC.에 판 150개의 AR 특허를 재인수했으며, 그 AR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건 것. 관련기사

2020년 8월 2일, 팬텍 주식회사는 중고폰 전문업체 리모코리아 홀딩스와 팬텍 상표권 라이선스를 체결했다. 따라서 리퍼비시 스마트폰을 팬텍 브랜드로 유럽에 수출할 예정이다.

2021년 4월 22일, 중고 전자제품 판매 업체 리씽크와 계약을 체결했다. 동년 6월에 팬택 브랜드를 단 TV를 제조/판매할 예정이라고 하였으며, 실제로는 8월에 출시되었다.#

3. 특징

1991년에 설립된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인 팬택은 1997년 외환 위기를 넘기고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의 위치까지 성장해 온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제조업 계열의 회사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수많은 회사들이 쓰러진 것을 생각해 보면 팬택이 가졌던 저력과 기술에 대한 투자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삼성-LG의 양강 체제에 밀리고 스마트폰 2위 자리 결정전에서 패배하며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일본과 해외 시장에선 회사 규모와 투자비에 비해 어느 정도 잘 나가고 있었다. AT&T를 통해 구축해둔 유통망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해 베스트 스마트폰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괜찮은 디자인과 가성비로 통신사들이 많이 지원하기 때문. 일본 출시 상품과 한국 출시 상품이 다른데, 일본 디자인을 역으로 한국으로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KDDI au에 주로 피처폰을 납품했다. 또 다른 한국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중에서 LG는 NTT 도코모에 피처폰을 납품했으며, 삼성전자는 소프트뱅크에 피처폰을 납품한 적이 있다.

2012년 1월 말에 미국 제2위 통신사 AT&T와 제휴해서 보급형 스마트폰인 "버스트"와 방수 태블릿 "엘리먼트"를 출시했다. 이 두 모델의 하드웨어 사양으로는 ICS 뿐만 아니라 젤리빈까지 올릴 수 있는 스펙이지만... 결국 출시 후 10개월 동안 진저브레드로 있다가 10월 초순 겨우겨우 ICS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 정보를 기초로 해외에서도 명불허전이라며 까이지만 LG전자의 프라다폰 3.0은 2011년 12월~2012년 1월에 나와서 아직도 ICS인데다 이 기기는 보급형도 아니다. 그리고 태블릿은 ICS로 업그레이드 해준건 똑같이 LG전자의 옵티머스 패드에 비하면 엄청난 사후지원이다.

일부 베가 시리즈에 부트 로더 락이 걸려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만약 부트로더 락이 걸려 있다면 커스텀 부트 이미지나 리커버리의 적용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루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 부트로더 락이 걸린 엑스페리아 시리즈는 소니 에릭슨에서 부트 로더 락 해제 툴을 배포하기 이전까지 루팅이 불가능했으며, 모토로라의 드로이드X 등 부트 로더 암호화가 걸린 기종의 경우 XDA에서 이를 뚫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부트로더 락이 있다고 무조건 루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트로더 락이 없다면 안드로이드가 꺼진 상태에서 별도의 OS인 리커버리를 통해 저장장치에 접근, 슈퍼유저 바이너리와 앱을 설치하는 것으로 루팅이 비교적 간단한 데 비해 부트로더 락이 있다면 슈퍼유저 바이너리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안드로이드와 함께 켜져 있는 보안 시스템을 휘저어서 뚫어내야 하므로 보안 시스템의 헛점을 찾아내기 전까지 루팅이 불가능한 것 뿐이다. 베가 제품들은 최상 OS가 킷캣정도이며 그나마 최근에 출시된 아임백마시멜로로 출시되어 보안이 강화된 것으로 보이나 이젠 사후지원도 끊겨 한번 뚫리면 더 이상 막을 방도가 없다! 그 덕분에 베가 제품은 특히 루팅이 쉬운데, 부트로더 락도 걸려 있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몇번 검색만으로 구할 수 있는 원터치 루팅툴로도 간단한 루팅이 가능할 정도이며 Towelroot 하나만으로 거의 모든 베가 제품의 루팅이 가능하다. 다만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유명한 원클릭 루팅툴들로 다른 제조사들의 폰보단 간단하고 쉽게 루팅이 가능하다. 사족으로 제조사나 구글이 루팅을 자꾸 막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팅법이 개발됐다는 것은 바로 안드로이드 전체의 보안이 날아간거나 다름없다는 말이 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제조사가 부트로더 락을 걸지 않으면서 OS를 최신으로 유지하여 루팅하고싶은사람은 루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OS의 보안에 의해 보호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저브레드로 업그레이드된 기기의 경우 2.3.4 버전으로 올라와 루팅이 매우 어렵다. 안드로이드 2.3.4 진저브레드 때부터 루팅 때 이용하던 익스플로잇이 다 막히는 바람에 매우 힘들다. 그래서 타사 기기의 경우 루팅 스크립트가 들어 있는 부트이미지를 사용하거나, secure가 해제된 부트이미지를 적용시킨 뒤 adb shell을 통해 루팅한다. zergrush 익스플로잇이 새로 나왔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는 기대를 주었지만... 역시 안 된다. 덕분에 이 사실을 아는 유저들에게 "안드로이드가 너희 꺼냐", "기기만 팔아먹으면 다냐" 식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지만 애초에 루팅이라는 것 자체가 제조사가 권장하지 않는 것이다.

2011년 10월 오픈소스 문제는 팬택 측이 소스 공개 사이트(아카이브)를 별도로 만드는 형식으로 일부 모델의 커널소스를 완전히 공개했다.[32]

소스 사이트를 공개함과 동시에 SKT 미라크의 플랫폼 소스가 공개된 데 이어, 2012년 5월경 LG U+ 베가 레이서의 플랫폼 소스가 배포되었다. 뒤이어 SK텔레콤 베가 레이서의 안드로이드 플랫폼 소스를 공개하며 유저들의 희망을 모았으나 어느 순간 사이트가 사라졌다.

산하 브랜드로 Curitel과 캔유[33], SKY, 베가, 미라크, 이자르가 있으나 사실상 저중 나머지는 더 이상 사용을 안 하며 베가만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선보인 신제품 브랜드의 명칭으로 SKY가 선정되어 기존의 베가 브랜드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4. 제품

4.1. 팬택&큐리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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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팬택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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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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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야깃거리

은근히 스타 마케팅을 많이 했는데, 연예인들에게 자사 핸드폰을 협찬을 하고 1년 정도 사용한 뒤에 그 폰을 받아서 경매를 하는 식으로 스타 마케팅을 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경매로 얻은 수익은 모두 기부한다고 한다. 그래서 연예인들 중에서 은근히 팬택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큐리텔 국내 런칭 당시에는 윤도현강동원, 보아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그 후 보아는 애니콜 광고로 넘어갔다가 베가 레이서 2 광고 모델로 돌아왔다. 회사가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탑 클래스 배우인 이병헌을 모델로 내세우는 건 이병헌이 팬택 사장과 친해서 모델 개런티를 싸게 쓰기 때문이다.

베가 시리즈로 넘어온 이후에는 정우성차승원을 첫 모델로 내세워 스타일을 강조했고, 5인치 스마트폰 중 슬림한 사이즈를 자랑했던 베가 S5는 '잘.컸.다'는 카피에 어울리는 배우 유승호를, 베가 레이서 2 광고에는 안재현에게 광고 모델 겸 내레이션을 맡기기도 했다. 링크 과거 베가 S의 모델을 맡은 바 있는 배우 이병헌은 베가 아이언 이후로 사실상 전속 메인 모델로 자리잡게 되며 이후 베가 LTE-A, 베가 시크릿업, 베가 시크릿노트, 베가 브랜드 광고 등을 모두 맡게 된다.

그러나 초창기 베가 시리즈를 홍보하면서 크나큰 사고를 터뜨리게 되는데 경쟁 기종인 아이폰 시리즈를 까면서 아이폰 구매자들까지 싸잡아 까는 웹 홍보 영상을 뿌린 것. 당연히 이 영상을 본 아이폰 구매자들은 팬택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베가 시리즈는 앞으로 절대 쳐다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이는 당시 박병엽 부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가 아이언을 빨리 발음하면 백아연처럼 들리는지라, 아예 아이언의 홍보 모델로 가수 백아연을 내세운 적이 있었다. 베가 아이언 2 역시 약칭이 백아연2다. 스카이 IM-100의 약칭인 아임백 역시 백아연의 앨범 제목과 발음이 비슷하다.

비록 회사는 사라졌지만 같은 자음계열, 모음계열끼리 모아둔 키패드 형태인 베가 키보드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쓰이고 있다.

2010년 팬택은 PC가 5년내에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고 이것을 "P의 법칙"이라 명명했지만, 정작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PC는 멀쩡히 쓰이고 있으며, 오히려 Personal Computer가 아니라 Pantech Corporation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사에서도 지나가듯 언급된, '모바일은 한계가 있고 휴대폰으로 보고서를 만들 수 없다' 라는 2007년 빌 게이츠의 예측이 스마트폰이 발달할 대로 발달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 개그다.[35][36]

프로게임단 SG 패밀리를 인수하여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 팬택 EX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위메이드로 넘겨 위메이드 폭스로 변경되었다가 해체되었다.

영문 표기가 Pantech이니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팬테크가 맞지만, 사측에서 '팬택, 팬텍'이라는 국문 명칭을 사용중이고 이는 고유명사이므로 '팬택, 팬텍'이 올바른 명칭이다.

생산 라인은 경기 이천[37]과 김포에 위치해 있었는데, 2004년 김포공장으로 통합했다.[38]

6. 관련 문서



[1] 실제 설립일은 이쪽이고, 매각 과정에서 기업분할되면서 법적인 설립일만 후설 법인을 따른다.[2] 쏠리드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분할되면서 신설된 법인이다.[3] 기존 팬택이 사실상 완전히 청산된 이후, 옛 팬택으로부터 상표권과 일부 특허만을 인수인계받아 신설된 특허전문업체이다. 법인명의 표기가 팬택이 아니라 팬'텍'으로 바뀌었으며 사실상 과거의 팬택과 이렇다할 연관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4] 2015년 신설법인이 설립된 이후 기존의 법인은 기업회생절차에 따라 '(주)팬택자산관리'로 사명을 변경한 뒤 청산법인으로 전환되었다가 2016년 3월 1일자로 폐업하였다.[5] 2016년 출시된 스카이 아임백을 마지막으로 2017년 5월 12일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한 뒤 IoT(사물인터넷)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으나, 2017년 10월 11일을 끝으로 마지막 남은 IoT 부문마저 '우리넷'에 매각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모든 사업을 접고 현재는 청산법인으로 전환된 채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화되었다.[6] 과거 팬택의 업종명.[7] 2019년 재설립된 특허전문회사 팬'텍'의 등기상 업종명.[8] 등기상의 팬택자산관리 기존 법인 기준. 현재는 한샘에 매각되어 한샘 상암사옥이 되었다.[9] 아이디어허브 산하 3차 신설법인 기준.[10] (주)팬택자산관리 법인 대표.[11] 회사가 파산되었으므로 파산관재인인 이백수가 맡는다.[12] 쏠리드 산하의 팬택 주식회사 법인 대표.[13] 최종 후신인 주식회사 팬'텍'의 법인 대표. 본래 대표는 임경수였으나 모기업이 KNA홀딩스에서 아이디어허브로 바뀌면서 대표 또한 김형윤으로 변경되었다.[14] 국내 2위 피처폰 제조사였던 최전성기 시기에는 대기업의 위치까지 차지한 적이 있었고, 이후로도 위세가 감소하긴 했지만 한동안 중견기업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몰락을 거듭하며 최종적으로는 중소기업으로 격하되고 말았다.[A] 기존 팬택 법인 기준.[B] 팬택자산관리(舊 팬택)에서 분할되어 나온 이후의 팬택과 2019년 팬택에서 분할된 팬'텍' 법인 기준.[A] [A] [19] 팬택자산관리(舊 팬택)의 마지막 자산 총액.[20] 현재 접속이 가능하지만, 스카이 브랜드의 사용권이 착한텔레콤으로 이관되어, 이 사이트도 착한텔레콤 소유가 되었다.[21] 팬택 본사는 원래 여의도에, 팬택앤큐리텔 본사는 서초동 평화빌딩에 있었으나 2006년 10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암로 179(상암동 1623)의 건물로 이전하였다. 옥상 우측 끝 첨탑은 폴더폰의 안테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한샘에게 매각되어 한샘 본사 건물이 되었다.[22] 해외에서는 초기부터 2세대 로고를 병행해 사용하였다.[23] 스마트폰 시기엔 LG전자에 밀려 거의 3위 자리를 지켰으나 2012년에 다시 2위 자리를 잠시 동안 탈환한 바 있다.[24] 일동제약의 자회사로, 휴대 전화가 대중화 되기 전 가정용 전화기 만들던 회사 중 하나다. 1980~1990년대에 꽤 유명했던 회사. 현재 필립스 전화기의 ODM 제작을 맡고 있다.[25] 같은 시기 맥슨전자의 마케팅 담당부장이었던 김동연 회장도 맥슨전자에서 나와 텔슨전자를 창립하여 무선호출기휴대폰 사업을 시작하였다. 같은 맥슨전자 안에 있던 주요 인물 두 명이 경쟁 관계로 만났던 것.[26]현대전자 통신사업부.[27] SK텔레텍의 역사는 팬택 스카이 시리즈문서의 해당 항목 참조.[28] 이 연구원들은 나중에 SK텔레시스의 브랜드인 W로 다시 모여들지만, 결과는 대실패였고 SK텔레시스는 곧바로 휴대전화 시장에서 철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SK텔레시스의 통신사업부는 팬택의 창업자 박병엽이 설립한 팬택씨앤아이에 인수된다.[29] 대표적으로 이 무렵에 나오는 스카이의 일부 기종들은 인증번호가 SKY-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기의 큐리텔 기종 처럼 PNC-라는 접두어로 시작했다. 여기서 PNC는 Pantech & Curitel을 의미하는데 결국 실질적으로 큐리텔 브랜드와 스카이 브랜드가 합쳐친 셈이다.[30] 옵티스의 주력 제품인 ODD(PC나 노트북에서 CD를 읽어주는 장치) 시장이 대폭 축소되었던 상황에서 팬택 인수를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차입한 것이 원인이었다.[31] 신정아 사건의 그 변양균이다. 신정아 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망해버려서 그렇지, 변양균은 능력있는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32] SK텔레콤 미라크, 베가 레이서, 베가 No.5[33] 이쪽은 카시오&히타치와 LGU+랑 합작한 브랜드다.[34] 제조사가 순정 펌웨어를 유출시킨 유례없는 사례로 SK텔레콤 때문에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엔 의문이 많은 기기로 출시되었다. 또한, 패키징 자체는 고급형 폴더폰과 완전히 동일했던 물건이다. 삼성전자도 Palm OS 기반 폴더형 PDA를 출시하긴 했지만 패키징은 일반적인 폴더폰과 이질적이었다. #유출된 순정 펌웨어를 설치한 사용기.[35] 편의성, 휴대성을 중시하는 모바일 기기 특성상 스마트폰의 화면크기가 커져봤자 한계가 있는데 스마트폰보다 훨씬 큰 태블릿 PC로도 문서 작업하기 힘들다는 말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스마트폰으로 보고서를 만들 날이 올 확률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삼성의 갤럭시 폴드처럼 접는 스마트폰이 극도로 발달돼서 평상시엔 휴대할 수 있는 크기로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노트북 PC급의 크기로 펼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스마트폰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36] 다만 빌 게이츠가 했던 예측중엔 태블릿 PC가 가장 우세한 폼팩터가 될 거란 예측도 있는데 이게 또 제대로 빗나가긴 했다.[37] 큐리텔의 공장이었던 곳인데, 태초인 현대전자 공장 안에 소재해있었다. 해당 부지는 현재 다시 SK하이닉스 공장으로 사용되는 중이다.[38] 이외에도 SK텔레텍은 충남 천안 SKC 공장에서 위탁 생산을 해왔는데, 이 역시 팬택으로의 매각과 함께 김포공장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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