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페인의 화가, 미술가, 예술가, 조각가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2. 유년기
피카소가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 호세는 식당 장식을 하는 화가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말도 배우기 전부터 그림을 배우게 되는데, 그 천재적인 소질로 아버지를 항상 놀라게 했다.천재란 단어가 그를 위한 것이란 이야기가 딱일 정도로 그림에 있어서는 못할 것이 없었다. 말을 배우기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먼저라고 하며, 처음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가 연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화가 지망생이었던 아버지 호세 루이스(호세 루이스 이 블라스코, 1838~1913)의 조수 노릇을 했는데, 호세는 피카소가 자신이 시킨 것(새 다리 그려넣기)을 해온 것을 보고 말하기를 "네가 내 꿈을 이루어 다오."라고 말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도 했다. 이미 20세가 되기 전에 그의 회화 실력은 고전주의를 마스터한 수준이었다. 바르셀로나 예술학교 시절에 남들이 1개월 정도 준비하는 과제를 단 며칠[1] 만에 완성하고 1등을 차지했다. 입학 시험을 봤을 때도 남들이 1주일 걸리는 과제를 몇 시간 만에 완수했고, 이걸 본 교사가 큰 충격을 받아 바로 입학 후 월반시켰다는 일화도 있다.[2] 아래 그림을 보듯이 15살쯤에 이미 대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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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 피카소의 토르소 소묘[3] | 15세 피카소의 유화 |
훗날 그려진 입체파 그림들에 대해서 대중의 반응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의 현대미술에 비하면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은 상당히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현대미술의 괴리를 경험하고 난 사람들은 그제서야 피카소의 천재적인 재능을 다시 돌아본다는 말까지 할 정도이다. 게다가 위에 나오듯이 이미 입체파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피카소의 실력 자체는 정점에 이른 수준이었다. 그래서 피카소의 이 실력은 입체파 그림을 비롯한 현대미술을 오해하거나 오용하는 자들을 비판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현대미술 문서에 나오듯이 '현대미술을 하는 자들은 실력도 없으면서 입 잘 터는 것으로 미술을 한다'라고 오해하거나, 반대로 실제 실력도 없으면서 자신이 피카소와 같은 현대미술을 한다고 하며 들먹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대했던 그의 아버지는 평생동안 그의 화풍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 반목하다가 1913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아버지 호세의 입장에서는 고생고생해서 명문사립학교인 바르셀로나 예술학교와 마드리드 예술학교에 보내서 미술을 배우게 했건만, 피카소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그림 연습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 열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때문에 피카소는 집을 나오고 말았다.
3. 청년기
초창기에는 친구이자 시인인 막스 자콥(Max Jacob, 1876~1944)과 함께 지내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후술하겠지만 친구 카사헤마스가 죽기도 하고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아야 했는데, 이때 그림들이 전부 우울한[4] 푸른빛 톤에 우중충함, 슬픔, 고난 등의 주제를 다루었기에 이 시기를 청색 시대(Blue Period, 1901~1904)라고 부른다. 작품 목록 이 중 1901년작인 "카사헤마스의 죽음"은 역시 청년시절 친구이자 동료 화가였지만 실연 때문에 자살하여 20세로 요절한 카를로스 카사헤마스(Carlos Casagemas)를 추모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그 와중에도 파리의 발전상을 고향 스페인에 알리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예술가들의 후원가로 널리 알려진 레오 스타인(Leo Stein, 1872~1947)과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 남매의 후원을 받았다.[5] 이들 남매가 그림을 잇달아 사준 덕분에[6] 피카소는 살림이 좀 나아졌고, 그보다 살짝 이전에는 첫 번째 연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도 만났다. 또한 스타인 남매의 소개로 앙리 마티스(야수파의 창시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아파트 27 rue de Fleurus에서 모임을 가지며 가까워졌다. 정신적 여유가 생긴 피카소는 따사한 붉은빛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때를 장밋빛 시대(rose Period, 1904~1906)라고 한다.
4. 입체주의
피카소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다녔고, 어느 전시회에서 아프리카 토속 조각상을 보자 인상적인 생동감과 표현력을 느끼고 이를 자신의 그림에 담아내려고 했다. 이 때 나온 게 바로 그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년작)이다.왜 갑자기 힘든 길을 가나 궁금한 사람도 있을텐데, 폴 세잔 이후 나온 미술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미술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지 않았다. 사람 비슷한 게 나오다가 별안간 도형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나오고, 그러다 괴상망측한 게 나온다.[7] 피카소의 그림들 또한 "어떻게 하면 평면에서 입체의 여러 면(특성)을 한 번에 나타낼 것인가"라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명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큐비즘) 그림은 아름다워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과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또한 구성의 미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료와 친구들조차 피카소의 새로운 도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티스는 물론 절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조차[8] '이해할 수 없다, 다시 거지가 되고 싶으냐'고 반문했다. 다행히 빌헬름 우데(Wilhelm Uhde, 1874~1947)나 다니엘-앙리 칸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 1884~1979) 같은 독일계 화상들이 장식과 기교가 없는 대신 호소력이 짙다면서 호평한 덕분에 완전히 묻히지는 않았다. 칸바일러는 이 그림을 계기로 피카소의 친구가 되었고, 훗날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의 쌍두마차가 되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를 소개하기도 했다.[9]
피카소의 그림을 현실로 보면 대충 이런 느낌이다. 자세히 보면 옆얼굴이라 코가 절반만 나왔지만, 코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 것을 볼 수 있다. 즉 코의 특징을 전부 담아낸 셈. 어떻게 보면 앞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들을 보면 눈의 모양이 짝짝이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측면의 눈과 정면의 눈을 동시에 그려서 그런 것이다. 피카소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 변화와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인 사관 등에 영향을 받았던 유럽은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추구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과거로 회귀하는 신고전주의와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낭만주의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다. 피카소 당시에는 모더니즘이라는 이름하에 건축,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모더니즘 미술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술을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피카소는 과거의 영광을 잘 재현하는 유물이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서 미술계의 혁명가가 되느냐는 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 성공 이후
생전부터 그림이 잘 팔렸던 화가로도 유명한데, 피카소 본인도 자신의 그림이 얼마에 팔리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자기가 받을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린 그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공군의 콘도르 군단은 마을에 주둔한 공화국군의 퇴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교량을 파괴하기 위해 폭격을 실시했다. 이후 일어난 먼지구름 탓에 정확한 목표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차별 2차 폭격을 시행했던 것. 민간인 1,500~1,6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본 작품은 이후 황폐화된 게르니카의 참극을 듣고 그린 <게르니카>이다. 이 그림은 349×775cm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작품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붓이 아니라 롤러로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그 후 이런 식의 행보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망명을 갔고, 이후 전쟁이 끝나자 남유럽으로 돌아왔다가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피카소는 고 주장했다. 그래서 <게르니카>는 한동안 미국의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소장했다. 참고로 피카소가 92세까지 살았지만, 하필이면 프랑코도 천수를 누리는 바람에 스페인이 민주화되는 것을 못보고 세상을 떠났으며, 피카소 탄생 100주년이 된 1981년이 되어서야 이 걸작은 조국인 스페인으로 반환되었다. 반환 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했다가, 1992년부터 마드리드의 소피아 여왕 박물관(Museo Reina Sofia)에서 소장 중이다.
속설에 의하면, 나치의 파리 점령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게르니카>를 보고 피카소에게 "당신 작품인가?"라고 묻자, 피카소는 "아니, 당신들(의 작품)이다."이라며 촌철살인격인 답변을 날렸다고 한다.
그림이 크기 때문에, 소피아 여왕 박물관에 아예 <게르니카> 전시를 위한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또한 1951년 6.25 전쟁을 모티브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도 그렸다. 흔히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혹은 신천 양민 학살을 주제로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하여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그린, <게르니카>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 중 하나로, 당시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했다'는 주장도 생기는 바람에 한국에선 1980년대까지 금지 예술품이기도 했다.[10] 물론 누가 누구에게 했든 학살은 학살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그 표지에 이 그림을 쓰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의 구도를 참고해서 그렸다고. 이걸 가지고 조선일보는 해당 그림이 6.25 전쟁의 허위 선전물이라고 주장했다.
6. 마티스와의 라이벌 관계
미술사의 비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가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이다.| |
| 1913년쯤에 찍은 거트루드 스타인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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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1906년 |
그 밖에도 두 천재의 일화는 꽤 많이 있는데 라이벌인 것 치고 서로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서로를 고양시키는 라이벌 관계였던 모양이다. 피카소가 12살 더 많은 마티스의 화실에 종종 놀러올 정도였다. 마티스는 미술에서 색을 해방시키고 피카소는 형태를 해방시켰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서로의 스타일이 극명하게 다르기도 했고 서로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보고 있었다는 듯하다. 실제로 피카소는 마티스의 작품 일부를 차용해서 쓰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피카소가 화실에 놀러왔다 가면 마티스는 "저 인간 또 아이디어 훔치러 왔다."면서 투덜거리고는 했다는 일화가 있다.
7. 정치적 성향
공산주의자였다.[12] 피카소는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정치활동이 자신의 예술의 세계관적인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1937년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프랑코의 꿈과 거짓"이라는 산문시와 삽화를 만들기도 했다.다만 스탈린을 무척이나 혐오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공산당은 세계적인 화가의 입당을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 지면의 절반을 들여 선전했지만 곧 피카소와 갈등을 빚게 된다. 불화의 이유는 공산당에서 선전을 위한 그림을 요구했지만 당 간부들이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피카소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싫어해서 다른 공산당원들과도 상당한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13] 결국 피카소가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려주긴 했는데 전혀 닮지 않아서 더욱 사이가 멀어졌다. 사실 그럴만한게 피카소가 스탈린 초상화라고 그린 게 이것이었다. 지금 와서 유명한 피카소의 그림들과 비교해본다면 현실적인 편이지만, 공산당원들 입장에서는 초상화를 그려준다더니 웬 어린애 낙서를 가져온 것이었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공산당 당적을 유지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반군국주의 성향을 강하게 가진 예술가였고, 그렇기에 국가와 이념을 넘어 전쟁 자체를 혐오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게르니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그린 <시체 구덩이>, 6.25 전쟁에 관한 <한국에서의 학살>이 그의 대표적인 반전 회화이다. 이중 <한국에서의 학살>은 신천 양민 학살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카소가 1950년 말에 그림을 그릴 동안 해당 사건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근거가 희박하다. 작품 군인들도 소속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이 작품은 공산당에서 모호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분노를 사 한동안 그는 미국 예술계에서 냉대를 받았다.[15]
8. 이성 관계
피카소의 엄청난 여성 편력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나이 60, 70세가 넘어서도 스물 살 갓 넘은 손녀뻘인 여자들과 살림을 차려 자식을 낳기도 했다.[16] 여자를 꼬실 때 "당신을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한다."라는 작업 멘트를 했다고 한다.이들 중 대표적인 연인 및 배우자들 목록을 보자면...
- 페르낭드 올리비에(1881년 ~ 1966년)[17] - 프랑스계 예술가 겸 모델. 피카소의 다른 여인들이 피카소보다 연하인 것과는 달리 유일하게 피카소와 동갑내기이다. 그녀는 혼외관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16세에 결혼했지만, 불량배인 남편의 학대를 받다 가출하여 파리로 도망온 상태였다. 파리에서 하녀와 모델로 일하다가 1904년 아직 무명이었던 피카소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었고 곧 연인관계로 발전했으며, 그의 친구인 아폴리네르의 시에서도 등장한다. 피카소보다 키가 크다. 페르낭드는 피카소의 화풍에 엄청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녀를 만나기 전의 피카소는 이른바 '청색 시대'로 불리는 남색 계열의 대단히 우울한 작품들을 위주로 그렸으나, 그녀를 만난 이후 이른바 '장밋빛 시대'로 불리는 노란색과 오렌지색 계열의 생기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카소가 명성을 얻게 되면서 페르낭드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1912년 피카소의 냉대를 받던 페르낭드가 바람을 피우다 그에게 들키면서 결국 이별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도주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미 유부녀였고, 따라서 피카소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이별 시에도 피카소로부터 위자료를 받을 수 없었다. 페르낭드는 피카소와 이별한 후 정육점 직원, 골동품 판매원 등으로 근무하였으나 이마저도 짧게 일하고 그만두는 등 힘들게 살다가, 1930년대에 피카소와의 인연을 신문에 연재했고 이를 책으로 출간하려고 했을 때 피카소가 그의 변호사를 보내 해당 책을 출간하지 못하도록 회유했다. 결국 페르낭드는 피카소에게서 연금을 받는 대가로 피카소 생전에는 그에 대한 책을 출판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며, 이후 조용히 살다가 1966년에 사망했다.[18] 후술될 피카소의 다른 연인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봤을 때 페르낭드는 그들에 비해 약간 다행인 처지였다.
- 에바 구엘(1885년 ~ 1915년) - 페르낭드의 친구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다. 원래는 피카소의 동료 화가 루이 마르쿠시스와 동거하다가 페르낭드가 바람을 피울 때 친구였던 그녀를 끌어들여 알리바이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피카소와 그녀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에바를 정신없이 사랑하게 된 피카소는 곧 그녀와 결혼할 계획이었으나 그녀가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결국 에바는 1915년 결핵으로 병사하고 말았다. 에바의 죽음으로 인해 피카소는 한동안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폐해졌다고 한다.
- 올가 코클로바(1891년 ~ 1955년) -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 출신 발레 극단 소속 무용수. 파울로의 어머니. 피카소의 "골든 뮤즈"로 알려져 있으며,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연인이었다. 피카소는 1917년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에서 무대와 의상 작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만났고, 곧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갔다. 피카소는 러시아 발레단을 따라 로마에 갔다가 고전주의에 심취하게 되고,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올가를 모델로 한 초상화들을 많이 그렸다. 이들은 1918년에 결혼하고 1921년에는 첫아이를 출산하지만, 1927년 피카소가 17세 소녀와 불륜을 저질렀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1935년에야 제3자를 통해 알게 되자, 아들 파울로와 함께 피카소의 곁을 떠났다. 사실상 이혼.[19] 그녀는 1955년 암으로 사망했다.
- 마리 테레즈 월터(1901년 ~ 1977년) - 마야의 어머니. 1927년 39살이던 피카소는, 17세이던 마리 테레즈 월터를 만났다. 피카소는 그녀에게 "흥미로운 얼굴을 가졌네요.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피카소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그녀는 당시 피카소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녀를 초대한 후 1주일만에 피카소는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고. 마리는 매우 순종적인 성격이어서, 피카소와의 관계가 정식이 아닌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 않았고,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1934년 그녀가 피카소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사실을 알게되자, 피카소는 부인 올가와 이혼절차에 들어갔고,[20] 이듬해 딸을 낳게 되지만, 이 무렵 피카소는 또다시 다른 여자, 즉 도라 마르와 연애행각을 벌이고 있었고, 월터 모녀를 방문하는 일이 점차 뜸해졌으며, 그가 프랑수와즈 질로와 동거를 한 이후에는 거의 만나지 않았으나, 편지는 주고받았다고 한. 피카소는 1955년 법적인 부인 코클로바가 사망하자, 월터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녀는 피카소가 자신 몰래 도라 마르와 교제 중이였던 것을 보고 그의 추악한 실체를 알게되어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는 피카소가 사망한 지 4년이 되는 1977년에 자살했다.
- 도라 마르(1907년 ~ 1997년) - 사진작가이자 화가, 반파시스트 운동가로 피카소에게 사진술을 가르쳤으며, 이후 피카소의 정치적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에 괴로와 했는데, 그녀가 없었으면 게르니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며, 그녀는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고, 피카소는 이 사진들을 게르니카 제작에 참고하기도 했다. 피카소의 1937년 작 우는 여인 역시 스페인 내전 소식으로 괴로와하는 그녀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도라 마르는 피카소가 코클로바와의 결혼 외에도 월터 및 질로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고통스러워했고, 1943년 무렵 그와 결별했다. 이후 그녀는 경쇠약과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나를 모델로 그렸다는) 피카소의 그림은 거짓이다. 거기에는 내가 없고 피카소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자크 라캉이 그녀의 치료에 깊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후 사진대신 회화에 몰두했으며, 1997년에 병사했다.
- 프랑수아즈 질로(1921년 ~ 2023년) - 경제학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은 재원이었다. 하지만 미술에 관심이 많아 결국 전문 화가들과 교류하며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피카소와는 1943년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만났다. 그녀는 피카소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마티스와도 친분이 있었다. 피카소가 잘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두 아이, 클로드와 팔로마를 낳았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막고, 마티스의 편지 등을 포함한 그녀의 소지품을 부쉈다고 한다. 또한 그의 법적 부인 코클로바와 계속 마찰을 겪고 괴롭힘을 당하게 되자, 결국 1953년 무렵에 그와 결별했다. 이후에도 계속 피카소의 방해공작에 시달렸지만 그녀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어서 꾸준히 전시활동을 함과 동시에 역시나 피카소의 방해를 무릅쓰고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caso)'라는 책을 출간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55년에는 동료 화가인 뤽 시몽과 결혼한 후 딸을 낳았으나 시몽과도 이혼했으며,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의학자 조너스 소크와 재혼했다. 이후 199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023년 6월 6일에 101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늘날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아 100만달러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한편 전쟁사진으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피카소와 질로>라는 사진이 유명하다. 그 위대한 피카소가 시종처럼 파라솔을 받쳐들고 프랑수아즈의 뒤를 따라 걷는다. #
- 자클린 로크(1926년 ~ 1986년) - 피카소의 마지막 배우자(1961년 피카소와 재혼)이자 그의 뮤즈였다. 자클린은 2살 때 아버지가 가출해서 일생 동안 아버지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강했다. 피카소는 그동안 그렸던 다른 연인들보다도 자클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많이 남겼는데, 무려 400점 이상이었다. 피카소가 죽은 지 13년 후 피카소의 생일날, 그의 무덤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하지만 피카소의 전 연인들과 자식들, 손주들에게 냉혹하게 대해 하술할 책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에서 무자비하게 까였다.
이상 7명. 이 7명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117회에서 우정아 교수가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1#2
위에 언급된 7명의 여성 말고도 피카소는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대부분의 경우 먼저 또다른 여성과 사귄 이후에 기존 여성을 찼다.[21] 올가 코클로바 역시 남편이 마리 테레즈 월터와 바람을 피운 것을 친구로부터 알자마자 아들 파울로와 함께 집을 나가서 이혼 소송을 했다. 그런데 피카소가 재산 분할을 하기 싫어서[22] 이혼을 안 해준 덕에 올가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상태였고, 죽을 때까지 따로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올가는 명문 귀족의 딸이며 피카소가 아직 무명이던 시절 상류 사회에 피카소를 소개해 줘서 유명해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올가의 남편'이라는 호칭과 그로 인한 인지도를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피카소는 재산 분할 이외에도 그 호칭을 잃지 않으려고 이혼만 거절했다.
질로는 피카소와 이별한 후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asso)이라는 책을 발표해 피카소와 함께 한 10년간의 생활을 솔직히 고백했다. 심지어 피카소의 마초적인 성격과 여성 편력까지도(...).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피카소에게 "저는 저희 아버지나 남자친구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데 저보다 3곱절 연상인 당신과는 말이 통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애정 관계는 아니지만 '포니테일 소녀' 실베트 데이빗[23]을 모델로 수십 점의 <실베트 연작>을 만들고 격려와 금전적 지원(자기 그림)으로 예술가의 꿈을 키워준 이야기가 아동도서로 출간되어 잘 알려져 있다. 훗날 Lydia Corbett은 영국에서의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참고로 1953년 당시 피카소는 72세였고, 실베트는 19세였다.
이러한 피카소의 여성편력은 최근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한국에 잘 알려져 있었으며, 1974년 8월 17일자 조선일보 연재만화 야로씨에서는 주인공이 피카소의 여자관계가 부럽다고 개드립을 치는 에피소드가 실리기도 했다.
9. 나르시시즘
천재 화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하며, 어릴 적에 어머니가 자기에 대한 거창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워준 것이 피카소의 이러한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래서 피카소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우월하며 소중한 사람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보다 못났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여성들과는 일방적이고 짧은 관계를 계속 맺었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상처를 주는 것도 모자라 착취하고 학대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는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인간이었다.실제로 그의 여인들이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7명 중 2명은 자살, 2명은 정신이상, 1명은 요절) 데도 그의 탓이 크다. 피카소는 평소 "여자는 두 부류- 여신과 현관 발매트(goddesses and doormats)로 나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를 성공적으로 먼저 차버린 여인은 다름 아닌 프랑수아즈 질로였다.[24] 프랑수아즈가 떠나려고 할 때 피카소는 "나 같은 남자를 떠날 수 있는 여자는 없어.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이라도 있을 것 같아? 세상은 너란 존재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너를 좋아하는 것 같겠지만, 그건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종의 호기심일 뿐이야.", "너는 내 작업실의 먼지만큼 하찮은 존재야."라는 말로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수아즈는 "나는 결코 쓸려가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스스로 떠날 수 있는 먼지다."라고 맞받아치며 넘어가지 않았다. 피카소는 프랑수아즈를 향해 윽박지르거나,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복수하기 위해 프랑수아즈가 낳은 자기 자식들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물론 프랑수아즈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으면서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누구의 허락도 필요없다."라며 피카소를 떠났고, 법적으로 맞서 싸운 끝에 아이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등 피카소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다. 프랑수아즈의 결단에 피카소는 몹시 당황했고, 프랑수아즈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회고록을 출판하는 걸 막는 데 실패했을 때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한테 무수한 상처를 줘놓고 자기가 고작 그만큼 당하는 건 못 참았는지 모욕감과 패배감을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관심은 커녕 경제적인 지원도 전혀 없어 손자손녀들은 할아버지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넌 무능한 인간이야. 평생 그럴 거야."라는 말을 내뱉었으며,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손주들에게 '망디앙(거지)'이라고 이름붙인 디저트를 주는가 하면, 연인이자 자신의 아이까지 낳은 프랑수아즈의 30세 생일에 "어린 여자는 누구든 너보다 예뻐."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자존감, 자부심, 삶의 의지, 인간이 가진 위엄을 모두 꺾어놓고 오직 '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무력감만 안겨 주었다. 결국 이는 가족들이 우울증,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심지어 자살하는 결과를 부르고 말았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정작 피카소는 마지막 아내인 자클린 로크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의붓딸 카티만은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친딸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클로드와 팔로마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어머니의 양육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했으며, 마야도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 등 불행한 가정사를 겪었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다행히 이겨냈으나, 안타깝게도 파울로와 그의 자녀들은 불행한 삶을 보내야 했다.[25] 결국 파울로의 아들 파블리토 피카소는 피카소가 죽은 후, 자클린 로크에 의해 장례식에 참석을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자 락스를 마셔 자살했다. 이때 피카소의 그림을 급하게 팔아 그의 치료비를 댄 것은 다름아닌 마리 테레즈 월터.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파울로 또한 술에 의존하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파블리토의 여동생인 손녀 마리나 피카소도 장장 14년 동안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라는 책을 출간해 피카소의 민낯을 고발했다. 그래서 마리나는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후 유산으로 받은 3200억 원 가치에 달하는 할아버지의 작품들과 저택을 자신이 갖고자 하는 의사가 없었고, 과거를 그만 떠나보내겠다며 모조리 팔아버렸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대략 짐작이 간다.
| 나의 가족은 저 천재가 쳐놓은 덫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해 나가는 데 타인의 피를 필요로 했다. 나의 아버지, 오빠, 어머니, 할머니의 피와 나의 피, 그리고 한 인간을 사랑한다고 여기며 피카소를 사랑한 모든 이들의 피를. 나의 아버지는 그의 폭정의 굴레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그에게 속은 것에 실망하여 비천해지고 망가진 채 죽었다. 냉혹하게도. 그의 가학적인 취미와 무심함의 노리개가 되었던 오빠 파블리토는 스물넷의 나이에 락스를 마시고 자살했다. 식도와 후두가 타 버리고, 위가 파괴되었으며,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으로 피범벅 속에 누운 오빠를 발견한 건 나였다. (중략) 락스를 마심으로써 오빠는 고통을 끝장내고, 자신을 기다리는 암초들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 암초들은 나 또한 노리고 있었다. 피카소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는 우롱당하는 희망의 소용돌이라는 덫에 걸린 사산아들이었다.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 p.13 |
[1] 하루 만에 완성했다는 야사도 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파리피카소미술관 웹사이트에는 정말로 하루만에 했다고 나와 있다.https://www.museepicassoparis.fr/en/picassos-training[2] 14살에 입학하자마자 바르셀로나 예술학교 상급반에 등록했다. 원래는 나이가 너무 어려 시험 자격도 안됐지만 피카소의 아버지가 설득한 끝에 본 입학 시험을 허가받았다.[3] 프랑스의 판화가 샤를 바르그가 그의 저서 '드로잉 코스'에 남긴 벨베데레의 토로소 드로잉의 모사작인데 11살에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화의 본질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4] blue에는 '푸른'이라는 뜻과 '우울한'이라는 뜻이 존재한다.[5] 이때 특유의 화풍으로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이게 어딜 봐서 스타인의 초상화냐는 말에 "언젠가 이 얼굴과 닮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6] 참고로 피카소의 그림을 가장 먼저 사준 화상(畵商)은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이다.[7] 이에 관해서는 사진의 발명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에 대해서는 문서 참고.[8] 그래도 아폴리네르는 나중에 입체주의가 하나의 화풍으로 인정받자 시인의 필력을 활용해서 입체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나중에 안타깝게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머리에 유산탄을 맞은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9] 피카소의 예술 생활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동료로, 나중에 '우리들은 산에서 밧줄로 몸을 묶고 의지하는 관계'하고 표현했다. 물론 브라크도 피카소가 또 소재 뺏으러 온다며 마티스처럼 질색하기도 했다(…).[10] 사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군과 미군은 물론이고 인민군과 중공군, 심지어는 정치깡패인 서북청년단에 의해 벌어진 학살사건도 부지기수였다. 사실 이 작품이 금지작품이 된건 단순히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해서가 아니라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정부를 지지했던 것도 한 몫했다.[11] 스타인은 레즈비언이었다. 유럽에 온 것도 일종의 도피성이었다고 한다.[12] 당시에 아방가르드 예술과 같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던 예술가들은 급진적인 사상에 많이들 꽂혔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시작부터가 당시 과거의 예술을 부수던 미래주의가 사상적인 바탕이었고,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대표주자였던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같은 사람들도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등에 입각한 아방가르드 예술가였다. 다른 점이라면 파시즘에 갔던 미래주의자들은 '과거의 파괴'에 더 초점을 맞췄고, 사회주의에 갔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의 새로운 예술성(흔히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실험주의, 프롤레트쿨트 같은 것)에 더 초점을 맞췄다. 피카소같은 이들이 공산주의자인게 이상한 건 아닌 셈이다.[13] 사실 공산주의를 동경하던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스탈린이 독재행각을 벌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어서 공산주의는 동경해도 스탈린과 소련은 싫어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비슷한 이유에서 나중에 등장하는 마오쩌둥 같은 경우도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미치광이 독재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14] 이는 스탈린에 비해 호쾌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던 흐루쇼프도 마찬가지로 이런 추상예술을 낙서같다고 느껴서 추상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서 "당나귀가 제 꼬리로 그렸어도 이보다는 낫겠다!"라고 일갈한 에피소드가 있다.[15] 참고로 이 시기 미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공산주의자를 소련 스파이로 몰아 색출해내던 시기였다. 당장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매장당했던 것도, 찰리 채플린이 좌파분자 소리를 들어먹으며 미국을 떠났던 것도 이 시기이다.[16] 다만 자녀는 의외로 3명의 여성에게서 단출하게 4명을 두었다. 2남 2녀로 차례대로 파울로(장남), 마야(장녀), 클로드(차남), 팔로마(차녀). 이 중 마야, 클로드와 팔로마는 아버지처럼 예술계에 종사했다.[17] 본명은 아멜리아 랑(Amelia Lang)이지만 10대 시절 결혼했던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후 페르낭드 올리비에라는 가명을 사용했다.[18] 결국 피카소가 죽은 후에 그녀의 양아들에 의해 책이 출간되었다.[19] 다만 공식적으로는 계속 결혼 상태였다. 하술된 내용을 참고할 것.[20] 하지만 결국 이혼하지는 않았다.[21] 하지만 올가 코클로바와 프랑수아즈 질로에겐 먼저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질로는 올가와 달리 완벽하게 차고 떠나는 걸 성공했다. 피카소는 질로의 이별 통보에 큰 충격을 먹어,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달래기도 하고, 애원도 하며, 심지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22] 스페인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이혼이 금지되어 있었고, 설령 이혼을 하더라도 피카소는 재산의 반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23] Lydia Sylvette David, 결혼 후 Lydia Corbett. 1934년생[24] 프랑수아즈는 상술했듯이 정식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이런 문제에서는 정식 결혼한 사이였던 올가보다는 운신의 폭이 넓었다.[25] 파울로의 어머니이자 피카소의 첫 번째 아내 올가 코클로바가 피카소의 외도로 홀로 아들을 데리고 나가 별거하면서 양육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등 온갖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다 암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버린 프랑수아즈에게도 가스라이팅에다 온갖 직업상 보복을 가한 걸 생각해보면 자신을 떠난 올가 역시 아니꼽게 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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