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데생 실력은 인체의 기본 구조를 원과 삼각형으로 쉽게 파악하는 데서 늘어난다. |
화가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이며, 이전에는 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예비적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하나의 독립된 완성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주로 대상의 인상의 파악을 목적으로 하며, 건축, 조각, 회화 제작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 외에 각종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그래픽 등 '그림'에 관련된 것이라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인데, 그림의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입체적으로 사물을 그리는 방법과 빛을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3]
2. 방법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화가가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선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상의 형태와 명암 등의 회화적 표현 등을 연습하기 위해 석고상[4]이나 골격 표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인간을 그리는 경우에는 최대한 색을 배제하기 위해 주로 누드 상태로 그린다.[5]3. 기본기로서의 위치
대다수의 미술학원에서 원생이 하려고 하는 분야를 불문하고 일단 들어오면 소묘 연습부터 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실 빛과 명암, 덩어리 같은 기본기를 익히는데 소묘만한 것도 없긴 하지만 지나친 획일화로 문제가 되어왔다. 허나 소묘는 기본기를 보는 좋은 실기로서 평가되어 디자인 입시를 비롯해 고려대, 이화여대 실기나 세종대 서양화 등지에선 아직도 소묘를 입시에 포함시키는 등 위상은 여전히 높다.소묘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옮기는데 치중한다지만 위에서 보듯이 화가의 의도에 따라 그림체나 화풍이 묻어나오기도 하나, 입시미술을 거친 소묘는 아무리 기본이라도 바로 입시미술 티가 난다.[6] 이는 강사가 학원 특성상 학생들을 일일이 못 대해 주니 획일화 시키는 악순환 과정에서 생성된다. 사실상 한 석고상을 40번쯤 그리면 안 보고도 그릴 수 있다. 대상을 보고 그리는 능력이 부족한 학생, 입시는 하려는데 시간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실물을 보고 그리기보다 아예 잘 그린 석고소묘 그림을 베끼게 하여, 입시 실기 현장에서도 거의 외워서 그리도록 하기까지 하였다.
다른 디자인전공 지도교수도 소묘는 모든 미술, 디자인의 기본임을 알고있어서 직접 소묘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예:도예과 전임교수도 소묘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음.)
4. 기타
고수들의 소묘는 손맛 자체가 다르다고 불리곤 한다. 소위 손, 선, 연필 맛으로 작가의 개성과 감성, 소묘 자체의 느낌 그리고 재료의 활용법을 언급하는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낸 소묘는 연필 한 자루로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석고소묘는 일제 시대에도 하던 것이고 입시 미술 과목으로는 해방 후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채택이 되고 있으며, 그 재료는 목탄에서 연필로,[7] 수채화나 포스터화(디자인과, 애니메이션과 등)로 다양해졌다. 석고 소묘는 디자인과/순수미술과 공통 실기 과목이었는데 2000년대에 입시미술비리 사건이 터지고, 획일적인 기법이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대학이 석고 소묘를 입시 과목에서 퇴출시켰다. 또한 석고상의 모델이 그리스-로마 시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이다 보니 학생들의 인물 표현이 유럽 인종에 가까와진다는, 문화 주체성 문제 또한 있었기에 점차 꺼려지게 되었던 것이다.[8]
연필 소묘는 3차원을 2차원에 재현하는 입체적인 행위이다. 소묘 과정에서 흑연 입자를 쌓아 올리거나 종이 입자 사이에 구겨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퍼뜨리거나 뭉치게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입자의 인식과 미묘한 차이의 구현은 실제 시각적 효과를 낳는다. 이를테면 강한 어둠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의 차이가[9] 그것인데, 전자는 흑연 입자를 위로 쭉 밀도있게 쌓아올린 것이고, 후자는 종이 입자 사이에 구겨넣고 퍼뜨림으로써 실제 물리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미세적인 테크닉이 면적 단위로 쌓여 나가게 되면 입체적인 느낌의 연필 소묘를 좀 더 나아지게 되는 것. 종이를 펼쳐 놓고 같은 톤으로 면을 칠해 놓은 뒤 하나를 손으로 죽죽 뭉개 보면 가라앉고 눈에 띄는 차이가 선명히 발생하는 점을 알 수 있다.[10]
국내 석고 소묘 기법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한국, 일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유럽 등지에서도 오래 전부터 미술 교육으로 하였다.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피카소의 소년 시절의 석고 소묘가 남아 있는데, 완벽하다. # 피카소 문서에도 자세한 내용이 있다.
늦은 밤, 미술실에서 혼자 남아 석소 소묘를 하는 여학생이 귀신을 만나는 일은 공포 영화의 클리셰가 되어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에도 나온다.
[1] "데셍"은 틀린 표현이다. 쇼팽(Chopin)이 "쇼펭"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2] 현재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해부학자,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발명가, 도시계획가 등이 다루는 다양한 분야를 몇몇 천재가 고루 섭렵했던 시절이었고, 그림은 이들의 작업을 구체화 하는데 훌륭한 수단이었다. Art가 예술이란 뜻도 있지만, 첨단기술이란 뜻도 가지고 있는 이유.[3] 다만 현대미술로 오면서 점점 기본 소양으로서의 소묘만 배우고 심화해 배우진 않는 경향이 있다.[4] 특히 아그리파가 지겨울 만큼 많이 쓰인다.[5] 원본이 되는 그리스-로마, 르네상스 대리석 조각상이 신화, 전설의 인물이나 신이라 누드로 표현한 것이 많기 때문이도 하다.[6] 명암(톤) 배분이나 연필 선 쓰는 것은 각자 다르게 할 수 있지만, 형태(원근법)만큼은 틀리거나 표준 화각(=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각이나 망원 렌즈로 본 것처럼 그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7] 대략 1980년대 이전에 바뀌었다. 목탄화는 연필보다 진하고 광택이 없어서 풍부한 양감을 표현할 수 있지만 문지르면 망가지기 때문에 실수한 척 하면서 옷으로 쓱 스치고 지나가며 남의 그림을 망쳐 놓거나, 그리다가 자기 그림을 실수로 망가뜨리는 일이 적지 않았고 손과 주변도 더러워졌으며, 정착액을 뿌릴 때 유기용제의 독성과 냄새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8] 그 이유로 한 때 국내 위인의 조각상을 복제한 석고상이 나오기도 했다.[9] 대비효과라고도 한다.[10] 이런 기법은 손이나 천으로 문지르고 닦아내는 과정이 필수인데, 입시 미술에서는 문질러서 진하게 하고 깊은 질감을 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가 흑연 입자가 종이에 깊게 들어가므로 잘 안 지워져서 고치기 어렵고 연필의 품질, 습도와 종이 질, 심지어 그리는 사람 손의 땀, 기름기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