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8 10:31:57

전지전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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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작물에서의 전지전능3. 전능 역설4. 각 세계관의 전지전능5. 별명으로서의 전지전능

1. 개요

한자: 全知全能
영어: Omniscient and Omnipotent, Almighty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렇기 때문에 전지전능보다 강한 능력이 있다는 말은 언어적으로 모순이 된다. 즉, 아무리 인간이 온갖 머리를 쥐어짜고 여러가지 괴랄한 능력들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들은 전부 전지전능의 밑바닥일 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지전능인 존재는 보여주거나 사용하지 않을 뿐, 그 존재도 앞서 설명한 괴랄한 능력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파훼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

그리고 인간은 논리의 틀에 얽매인 존재[2]이기 때문에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전지전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전지전능은 모든 것을 포괄하거나 그 이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지전능에 관한 서술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쓰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묘사를 해도 전지전능하기에 합당한 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 진짜 전지전능한 존재가 행동하는 방식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3]

한편, 전지와 전능은 서로간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동일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전지전능에서 전(全)의 범위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나 지식에 한정되고, 전지한 자를 전능하게 만들 수 있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능한 자를 전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전지(전능) 하나만 가진 존재를 가정했을 때, 전능(전지)해질 지식(능력)이 없으니 그 전지(전능)한 존재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전지전능해질 수 없다.

반면 이런 식으로 제약을 걸지 않고 전지는 말 그대로 전지하며, 전능 역시 마찬가지라면 전지자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듯 자연스레 아무런 시련도 없이 스스로가 즉시 전능해지는 방법을 알 것이며 전능자는 어떠한 패널티도 없이 스스로를 전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 창작물에서의 전지전능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주인공이면 높은 확률로 재미가 없다.[4]

전지전능의 무지막지한 특성 때문에 모든 능력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몇몇 악역 캐릭터들이 노리는 목표가 되기도 한다. 비슷한 능력으로 현실 조작이 있다. 하지만 현실조작은 보통 강력한 능력으로 서술되기는 하지만 한계는 존재하며 완벽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리고 전지전능은 말 그대로 한계도 없고, 불가능이 없다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5]

그래서 창작물 속의 전지전능은 겉보기에는 어려운 개념이지만 전지전능의 본질을 이해하면 그 무엇보다도 쓰기 쉬운 개념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전지전능한 등장인물에 관련된 설정이나 스토리에 항의를 한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니까라고 답해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쓰기 쉬운 것과는 별개로 논리를 초월한 전능자를 억지로 등장시키면서 작품의 개연성과 논리를 망가트리면 독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동시에 그 작품은 불쏘시개 취급을 받으며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작중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면 밸런스가 붕괴하기 때문에 나오기 힘들다. 기습공격이나 음모를 꾸미려고 해도, 어떤 짓을 꾸미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며, 대적자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말 그대로 무적 그 자체라 무슨 짓을 해도 이길 방법이 없다.[6]

그나마 개연성을 유지하면서 납득이 갈 전개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관찰자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역할만 수행하던가, 아니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피조물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막강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용기를 보고 감동받아 일부러 진 척을 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래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전지전능이 워낙 초월적이라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 수행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야기 전체에 개입하고 있었거나 결국은 전지전능이 의도한 바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덕에 다방면으로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등장하자마자 해당 작품을 불쏘시개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래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캐릭터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개를 싫어하는 독자, 성장형이나 인간 찬가 형태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매우 비호감인 특성이다.

창작물에서 가장 전지전능을 피부에 와 닿게 표사한 것은 존 카펜터 감독의 《In The Mouth Of Madness》가 있다. 이 작품에서 전지전능자가 주인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데리고 노는데, 주인공이 계속 거부하자 현재의 주인공을 제외한, 과거의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다 바꿔버린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저 웃지요. 그나마 전지전능자가 그 꼴을 보고 웃고 즐기기에 웃을 수나 있는 것이다.

최강 논쟁에서 이런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뜨면 전지전능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캐릭터들은 무조건 그 아래로 버로우 당하고, 전지전능한 캐릭터들끼리 비교는 애초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이 파토난다.

한편, 유일신 종교권이 강한 곳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들 시에는 신성모독이라고 거센 항의가 올 수도 있기에, 가급적이면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가 성격이 악하다면 더욱 더 반발이 드세다.[7] 이 캐릭터가 선하다면 전개가 무척이나 꼬인다. 자세한 설명은 악의 문제 항목을 참고.

인터넷에선 어떤 요인으로 전지전능의 자리로 올라간 캐릭터는 완전한 전지전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처음부터 전지전능의 존재여야만 완전하다고 인정 받는다 카더라.

3. 전능 역설

전능에 한해서 논리적 역설에 해당하는 질문들이 매우 유명하다. 다만 '뭐든지 가능한 전능자'가 못하는 것은 없어야 하기에 아래 역설들은 단적으로 말해 전능자는 모순을 포함할 수 있는가의 질문이다. 다르게 말해 '전능자'가 모순할 수 없는 논리 체계 아래의 존재인 경우를 다룬다.
전능한 자는 자신의 전능성을 버릴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전능한 자는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는가?

만약 위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 바위를 창조한 순간에 그 바위를 들 수 없으므로 전능하지 않아지며,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바위를 창조한다는 행위가 불가능하므로 전능하지 않다. 따라서 전능자는 어떤 경우에도 전능하지 않다는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능자는 불가능이 가능해도 전능하지 않고 불가능이 불가능해도 전능하지 않다'라는 말이다.

사실 두 번째 줄의 부연 질문은 질문 자체가 모순인데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라는 존재부터가 '불능'의 영역이고, 전능한 존재라면 '불능'의 영역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는 지 묻기 위해서는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의 존재 가능성을 가정하여야 하는데 이 가정 자체가 전능자의 전능성을 부정하므로, 전능자가 그 바위를 만들 수 있든 없든 '전능자는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 오류이다.

때문에 엄밀하게는 첫 번째 줄의 질문만이 논리적으로 제대로 성립되며, 두 번째 줄의 질문은 윗 줄의 질문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무리하게 예시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혹자는 전능자는 '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전능성을 논리를 초월해서 '뭐든지 가능하다'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8] 어떤 체계에서 불가능이 존재할 때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전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 가령
1+1=3을 증명할 수 있는가?
실수를 0으로 나누었을 때 그 유일한 해를 찾을 수 있는가?
페아노 공리계에서, 현대 수학적 체계를 따르며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낼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이 제시되었을 때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불능의 영역이 생긴 것이고, 답을 할 수 있다면 이는 각각의 정의를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질문에 "있다."라고 대답할 수 없어 역시 불능이다. 만약 초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현대수학적 체계를 따른걸까? 간단하게 보자면 초논리에서 논리를 뺀 영역은 수학적으로 '비논리'에 속한다. 논리적으로 1과 2 사이의 자연수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비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찾아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 역시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가능하다 해도 틀린거고,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리는 데다가, 초논리, 논리 이상을 운운하며 가능하다고 해도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므로 틀린다.라는 사면초가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

전능성의 정의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논리적 허점 때문에, 그 정의와 범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이 가능'이라든가 '스스로 만든 법칙을 스스로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모든 것 가능' '논리에 속박되지 않고 모든 것 가능'이라는 식으로 전능성을 정의하기도 한다. 아니면 아예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로 따질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C.S.루이스는 그의 저서인 '고통의 문제'에서,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조합하고 '신은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고 갑자기 그게 말이 되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단, 전능한 존재가 말이 되는 것만 할 수 있다고 신이 전능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을 덧붙인다.

아우구스티노는 "전지전능하다 함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성립한다"라고 주장했다. '전지전능하니까 만들 수 있다고 치고, 만들고 나면 더이상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란 농담도 있지만 '능력'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위에서 나온 "들수 없는 돌을 만드는 것"을 예로 들면 전능한 자는 모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 돌을 만드는 순간 하나의 능력 (방금 만든 돌을 드는 능력)이 없어지는 셈이므로 전능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전능해지지 않게 된게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전능한 자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전능해지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인데 전능하다는 것이 반드시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들 수 없는 돌을 만들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돌을 만들어야 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은 사람 취급하지는 않는다. 전능한 자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능력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다만 이렇게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질문을 좀 바꿔서 '자신의 전능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는가'라고 묻는다면 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전능성을 잃지 않고 전능성을 잃을 수 있는가'라는 형태가 되므로 문제에 내포된 논리적 모순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물음도 가능하다.
무능도 전능의 영역에 포함되는가?

그런데 여러 서브컬처물에서 전지전능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실제로 무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전지전능 앞에선 당연히 어떤 능력을 써도 통하지 않지만 있는 거라곤 오로지 근성과 의지뿐인 주인공이 그것만 가지고 닥돌해 결국 기적을 일으켜 전지전능한 존재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인트 세이야가 있는데 무력한 인간(세인트)들은 항상 의지의 힘으로 코스모를 증폭시켜 전능한 신들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그런 신들이 전능이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무지무능 = 전지전능이란,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개념도 있다. 이 절대자는 지능이 없는 백치이자 신을 초월한 무언가이기도 하다.

다만 이 물음에 대해서는 결국 말장난일 뿐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특정한 작품의 무능이 아니라 일반적인 무능의 경우, 무능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 전능이란 쉽게 말해 모든 능력인데, 무라는 이름의 능력이 아니라 그냥 능력이 없는 상태 자체를 전능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전능에 더하여 전지까지 포괄하는 전지전능에 관해서도 아래처럼 논리적 역설인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전지전능한 자는 자신이 미래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하지 않도록 바꾸면...


사실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의 관점에서 결국 미래란 아직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단순히 그 행동을 하지 않게 되면 그 행동으로 인해, 혹은 기존에 자신이 할 예정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초래될 새로운 결과와 그에 관련된 인과를 새롭게 알 뿐인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창작물에서도 자신의 행동으로 상황을 완벽하게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미래를 미리 알고서 그 미래를 바꾸는 데 성공한 예시들도 결코 적지 않은데, 하물며 전능한데다가 상황이 자기 의지로 조정 가능한 상황인데 그러한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쪽이 어불성설이다. 만약 여기서 인과율을 운운한다 해도 의미가 없는게, 인과율이라는 개념은 전능이라는 개념 자체와는 특별한 모순이 없는데다가 미래를 바꾼 모든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이미 전지전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위의 문제들에 대한 의외로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으니 바로 전지전능하니까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할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는 전지전능하기 때문. 이걸 봐도 알 수 있듯이 단어 자체가 마스터피스라서 모순이 발생해도 그냥 전지전능하니 가능하다고 얼버무리면 그만이다. 간단히 말해, 전능 하니 바위를 못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 물론 전능하니까 자신이 못드는 바위를 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이 순환오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지전능이라는 '전체'를 수렴한 형태를 하나의 개별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순이다. 하나의 상태가 아닌 전체가 되는 것이란 수학의 예로 들자면 수직선의 수 전체를 수렴한 x다. 만약 들 수 없는 바위를 100으로 가정할 때 x는 이 바위보다 낮을 수 있고(불능), 같은 수 있고, 또한 동시에 높을 수 있다. 이는 하나의 상태가 아닌 전체의 이념으로써 생각하면 이 순환오류는 되려 인간의 인식적 확증편향의 문제점 및 개인의 인식적 한계점을 잘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전지전능의 순환오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이 모순을 인식하는 인간의 정의에 한계점이 없어야 한다. 1 + 1 = 2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1, 2, 그리고 +의 정의와 관계성이 확증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인간이 정의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확증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9]. 이는 '소설에 쓰여지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소설의 인물이라 인식할 수 없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신의 존재 여부, 전지전능의 여부는 상관 없이 인간이 정의한 상대성 전지전능에 대한 순환오류라고 볼 수 있다[10]. 이는 헴펠의 까마귀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문이다. 헌데 이러한 사유는 전지전능이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개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실 위의 주장에는 오류가 여럿 존재하는데, 순환 오류를 가지고 인간의 확증편향의 문제점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과대 해석이다. 또한 순환오류가 성립하기 위해서 인간의 정의에 한계점이 없어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또한 순환 오류에 대한 이야기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알 수 있는 부문이라고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것은 굉장한 논리적 비약으로 보인다. 또 헴펠의 까마귀도 형식적 오류인 순환 오류와 별개의사유를 다루는 역설인데 순환 오류에 대한 이야기에서 갑자기 연결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만약 전능자가 "거짓말을 못한다"라고 한다면, 그 전능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며 진실이다. 그것은 거짓말이며 진실이다. 또한 거짓말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전능 자체가 이미 논리를 초월한 영역이므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애초에 전능하지 않은 인간의 두뇌로 전능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능자가 1+1=3이라고 하면, 3=2인 것이다. 그리고 3은 2가 아니기도 하다. 아니면서 맞는 이중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3은 2가 맞으므로 이중성도 없다. 하지만 3은 2가 아니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가능하다.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즉 전능하다는 개념 자체가, 구현하는 사람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한 인간의 두뇌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애초에 전지전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창조한 굉장히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이기에 그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관념을 어떻게 완전히 이해하고 구체화 시키겠는가?

기독교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요한 계시록 19장 6절.[11] 또한 비슷하게 보이는 악의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능자' 자체는 비종교적이고 도덕과 관련 없는 개념일 수 있으므로 굳이 이들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않아도 된다.

'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같은 예처럼 의외로 신이 못하는 일이 많다.[12] 보통 전지전능은 신을 찬양할 때 쓰이는 수사 같은 것으로, 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13]에서 보이듯이, 전능함을 언제나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정의하지는 않는다.[14] 이는 대표적인 딜레마인 신정론 등과 관련해서 고찰해 볼 부분이 많은데, 완벽한 전지전능함을 논한다면 모든 인간의 고통은 신의 계획대로이고 신의 잘못이 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그 결과와 고통을 끌어안는 것을 신의 전능함이라 한다면 좀 다르게 볼 수 있다. 하튼 생각보다 복잡한 논제.

물론 기독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고등종교의 경우 그 신이 열라 짱세서 믿으라고 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종교단체 입장에서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다른 신들과 차원이 다르게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포교에 중요한 역할을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강조되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 완벽한 전지전능함은 기독교 등의 현실 종교들보다는 철학[15]이나, 신비주의 계통, 혹은 SF적 상상력의 사유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만화처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굳이 우리가 사는 차원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기의 의지대로 세계의 축을 새로이 삽입하거나 평행우주를 만들어버린다면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리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헌데 이건 전지전능은 논리를 초월한다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이런 저런 편법을 동원해 해낸다고 해도 평행세계 금지, 새로운 축 금지 등등 더더욱 자세한 제약을 넣으면 그만이다. 전지전능하다면 무슨 제약이 있어도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사이코패스에선 츠네모리 아카네의 사고실험 중 전지전능이라는 걸 꼭 언제나 충족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이 모순을 회피한다. 즉 자신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드는 순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바위가 창조된 뒤엔 그 바위도 들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해진다는 식인데 들 수 없는 바위를 영원히 들 수 없는 바위로 바꾸기만 해도 다시 모순이 생긴다. [16]

결국 '전지전능'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추상적인 관념 안에서만 그것도 불확실하고 애매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누구에게나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런 애매한 관념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고 드는 일은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하다. 실제로 형이상학적 개념들에 너무 집착하면 정신이 이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서양의 과학계와 기술계에서도 오메가 포인트라는 과학적 이론을 통해 전지전능을 추구하는 주장도 있다 .쉽게 말해 기술적 특이점양자 역학 그리고 종교인 기독교를 혼합적으로 만든 이론인데 SF적 황당함에도 서구에서는 제법 많이 언급되는 이론이다.

덧붙여 전지전능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저 전지전능의 일부에 불과하며 이미 모든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도 가능한데 이 논리를 공포물로 가공한 유형이 바로 코즈믹 호러다.[17]

이나 사후세계 떡밥 만큼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철학이나 종교를 다루는 커뮤니티에서 전지전능이 주제로 올라오면 옹호와 반박의 천일수가 벌어지면서 난장판으로 변한다.

덧붙여서 창작물의 최강자끼리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VS놀이에서도 전능의 역설을 볼 수가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서로 다른 세계의 전능자끼리 싸우면 결판이 나지 않고 천일수가 벌어진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냥 보기에는 무한대와 무한대가 싸우니 천일수가 벌어지는 것이 맞는 결과가 아니냐고 물을 텐데 전능의 정의를 잘 생각해보면 이건 말이 안된다. 전능의 정의는 모든 것이 가능한 불가능이 없는 궁극의 권능인데 천일수가 벌어진다는 얘기는 다른 세계의 존재에 의해 자신의 전능이 제한되어 승리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라 둘 다 전능자에서 비전능자가 돼버린다. 게다가 이걸 심화시켜서 모든 창작물에 등장하는 전능한 존재들을 가지고 싸움을 붙여보면 결국 모든 창작물에 등장하는 전능한 존재들은 세계관 최강자는 맞아도 전능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18]

다만 창작물이 아니더라도 복수의 전능자가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 전능은 유일한가?라는 물음이 이미 존재하기는 한다. 전능자가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너무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묻히다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4. 각 세계관의 전지전능

실제로 작중에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단정지어진 경우만. 완전히 전지전능하지 않으면서[19][20] 전지전능이라고 불리기만 하거나[21], 능력명만 전지전능인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창작물에서 전지전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캐릭터는 대부분 현실 조작과 겹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항목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5. 별명으로서의 전지전능

간혹 현실에서나 창작물에서나 진짜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 놀라운 성과를 거두거나 계획이 아주 척척 들이맞거나 하는 인물이나 캐릭터를 보고 전지전능하다고 찬사(?)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니발이랑 마블 시네마틱의 제모. 둘다 실제로는 전지전능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지만, 작중에서 보여준 엄청난 포스와 거기에 걸맞는 행적과 성과로 인해 팬들이 전지전능하다고 칭히는 경우이다.


[1] 다만 전지전능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논리적인 모든 일이 가능하면 전지전능에 부합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논리적인 일뿐만 아니라 논리를 초월한 일까지 가능해야 전지전능에 부합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에서도 논리를 초월한 일이 가능해야 전지전능이라는 사람들까지 있다.[2] 예를 들면 논리와 거리와 먼 모순의 일화처럼 둘 중 하나는 성립이 안되는 것이 공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3] 다만 전능하지 않은 자들은 무슨짓을 해도 전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전능자가 전능하지 않은 자들이 전능에 대해 이해할 수가 있도록 돕는 경우엔 가능하다. 하지만 전능자가 실존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실존한다고 치면 전능하지 않은 자들이 전능을 이해할 수가 있도록 도울 생각이 없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전능자는 생명체나 지성체가 아닌 현상이나 법칙에 가까운 존재라고 볼 여지도 있다.[4] 먼치킨 항목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들처럼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무리 전지전능이라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먼치킨 캐릭터들과는 능력의 차이가 차원이 다르기에 갈등을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주역일 경우 일상물, 혹은 배틀물이 살짝 가미된 일상물일 확률이 높다.[5] 사실 후술되는 이유로 전지전능을 표현하는게 매우 힘들기 때문에 창작물 속에서 전지전능은 대부분 강력한 현실조작같이 표현되는게 대부분이다. 일례로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은 브루스에게 자신의 모든 권능, 즉 전지전능함을 주겠다고 하지만 브루스가 툭하면 한계에 부딫히는 걸 보면 이건 결코 전지전능한게 아니다.[6] 양판소 따위에서 전지전능한 신보다 더 강한 이고깽 같은 존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전지전능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전지전능한 신으로 등장한 캐릭터는 사실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이고깽이 더 강했다는 식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7] 특히 근본주의 성향의 종파들은 더더욱 싫어한다.[8] 더 생각해 볼 만한 (억지스러운) 것으로서, "전능자는 둥근 사각형을 만들 수 있는가? 총각과 고아로 구성된 모녀 가족을 보여줄 수 있는가? 밝은 어둠에 어두운 빛을 비출 수 있는가?" 같은 말장난스러운 것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 요지는 논리를 초월하는 지점에서 전능을 정의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9] 더 명확히 하자면 확증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지만;[10] 예를 들자면 가정법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심장에 칼이 박히면 가능성은 죽지 않는 것과 죽는 것으로 나뉜다. 다만 보편적으로 대부분 심장에 칼에 찔리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지속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11]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헬라어로는 παντοκράτωρ(전능함)라고 써있다. 고로 오역도 아님.[12] 정확히는 '하지 않는다'가 맞다. 하지 않는게 불가능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할 수 있지만 그런 논리는 기계의 행동을 두고 판단할 때는 맞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신과 인간 모두 포함)의 행동을 지적할 때는 들어맞지 않는다.[13] "전능하다고 함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지, 그가 원하지 않는 바로 고통받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전능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고로, 그가 전능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14] 기독교의 신관 자체가 무제한적인 전능이 아닌, 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의 한정적인 전능만을 논한다. 즉 자기 룰 안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하느님이란 것이다. '신은 자살이 가능한가?'라든가 '신은 자기가 들지 못하는 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같은 지적을 위한 지적이 무의미한 이유.[15] 특히 형이상학.[16] 이는 조건 성립의 동시 만족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다. 즉 이런 명제는 누군가가 "나는 지금 미성년자라서 청소년보호법의 보호를 받지만, 얼마 후면 성년이 되어 투표권이 생긴다. 그러므로 결국 난 청소년보호법의 보호도 받고 투표권도 있는 초법적인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 엔트로피의 증가, 벡터의 변화 등에 따라 조건이 A에서 B로 변할 수 있다고 해서 A와 B를 동시에 전부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모두는 전지전능할 수 있다.[17] 대표적인 예로 크툴루 신화아자토스.[18] 아니면 세계관의 벽을 허물어 다 같은 존재라던가 예를 들어 절대자 하나가 있는데 그는 A에서는 야훼라 불리고 B에서는 원 어보브 올이라 불리며 C에서는 아자토스, D에서는 THE ONE(트랜스포머) 등등. 하지만 이 경우에 동일 존재의 행태가 세계별로 너무나도 달라서 모두가 동일 존재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전능자가 심심풀이로 각자 개별적인 전능자로 만들어 버린다면 문제는 또 다시 생긴며 그러지 못한다면 전능자에게 불가능한 일이 생겨버린다. 그런고로 이런 문제는 그냥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19]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한계가 작중에 직접 묘사되는 등.[20] 좋은 예시로 지니(디즈니 캐릭터)브루스 올마이티가 있다.능력은 일반인 시점에서 충분히 전지전능이지만 작품이 싱겁게 끝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건을 달아 제한시킨다.(공통적으로 1.사람을 죽일수 없음 2.시체를 살릴수없음 3.자유의지를 건드릴수없음)[21] 여기에 좋은 예시는 트랜스포머THE ONE(트랜스포머)이 어울린다. 설정상(하스브로의 설정)에만 언급될 뿐 작품 내에서는 거의 등장도 없고 당연히 작품내에서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인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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