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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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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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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C008><colcolor=#00A99A>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
이태석
李泰錫 | Lee Tae-seok
파일:external/bimage.interpark.com/2011120618111566.jpg
출생 1962년 10월 17일[음력]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 611-340
(現 부산광역시 서구 해양로22번길 12)
사망 2010년 1월 14일 (향년 47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묘소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57-1 광주대교구 천주교공원묘역 살레시오회 성직자 묘역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흥양 이씨
학력 천마국민학교 (졸업)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 / 학사)
이탈리아 로마 살레시오대학교 (신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대위 전역 (군의관)
가족 관계 아버지 이봉하 (~1970년)
어머니 신명남[2]
10남매 중 아홉째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한)[3]
별명 쫄리, 남수단의 돈 보스코, 수단의 슈바이처, 한국의 슈바이처
소속 살레시오회

1. 개요2. 생애
2.1. 사제가 되기 전2.2. 사제 수품 후2.3. 사망
3. 사후
3.1. 이태석 신부에 대한 여러 기념 활동3.2. 제자들의 근황
4. 이태석 신부의 저서와 작품5. 이태석 신부를 다룬 작품
5.1. 2010년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5.2. 2020년 영화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5.3. 2020년 영화 부활5.4. 2022년 영화 이태석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가톨릭 교회 살레시오회수도자신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단(現 남수단) 톤즈(Tonj)에 선교사제로 파견되어 구호, 의료, 교육, 사목활동에 힘썼으며,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감화시킨 헌신적인 봉사 덕에 가톨릭은 물론이고 타 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다. 수단 현지에서 부르는 애칭은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기인 존(John)과 성씨 리(Lee)의 합성어인 '쫄리'이다.

2. 생애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 입회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입학
1994년 첫 서원
1997년 로마 유학(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2000년 종신서원(로마), 부제 수품(로마)
2001년 사제 수품(서울), 아프리카 수단 선교사제 파견으로 출국
2005년 제7회 인제인성대상 수상
2007년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2009년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사망
2010년 12월 제1회 KBS 감동 대상 수상
2011년 7월 15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2018년 11월 20일 남수단 대통령 훈장 추서

2.1. 사제가 되기 전

파일:johnlee.jpg
이태석 신부가 유년~청년기에 다녔던 송도성당
10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난 이태석 신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특히 수학에서 성적이 우수했으며 성당에서 풍금을 독학으로 익히고 직접 작사, 작곡도 하는 등 음악적 능력도 뛰어났다.

천주교 부산교구 송도본당에서 앨로이시어스 슈워츠(Aloysius Philip Schwartz, 또는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신부에게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미국인 슈워츠 신부는 훗날의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살아온 인생과 비슷한 인생을 먼저 살아가고 있던 인물로, 이태석 신부의 스승이다. 그는 전후 최빈국으로 떨어진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부산에서 봉사하고 학교법인 소년의집학원을 세워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으며, 영화 오 마이 파파가 슈워츠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 성당에서 보여준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소년 이태석은 그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중학교 3학년의 이태석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아래의 노래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삶을 그린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만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묵상」, 갓등중창단 1집 『내 발을 씻기신 예수』, 1993. 노래 듣기.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81학번으로 입학, 1987년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한다. 그후 육군 12사단 및 군수사령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부의 꿈을 품었다. 전역 후인 1991년, 이탈리아인 성 요한 보스코 신부가 설립한 가톨릭 교육 수도회인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2001년 6월 24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다.(아래 유튜브 59초 참고) 오늘날 한국천주교의 큰 자랑이자 존경을 받는 두 사제의 놀랄 만한 인연이었던 셈이다.

2.2. 사제 수품 후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생활성서사, 2013.
보통 사람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덕행은 남달랐다. 사제 수품 직후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가 얼마 안 되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인,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현 남수단)으로 건너가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먼저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도 병원을 손수 만들었다. 초창기의 병원은 현지인들이 사용하던 움막을 개조한 작은 사이즈의 시설이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환경이 열악해 진료 도중 환자의 상처에 천장에서 떨어진 거미나 벌레가 붙은 적도 있다고 한다. 2004년 새 병원 건물 공사를 시작해 이듬 해인 2005년부터 진료실, 수술실, 입원실 등을 갖춘 현대식 병원 건물을 완공했다.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발가락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발에 맞춰서 한 명 한 명 본을 뜨고 맞춤 제작한 신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동 진료를 하면서 8년을 지냈다.

내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을 미래 세대들을 걱정하며, 손수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원래 톤즈에는 초등학교 밖에 없어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120km 떨어진 다른 지역까지 유학을 가야했다. 하지만 가난한 톤즈 사람들 형편 탓에 아이들을 멀리 유학시킬 돈이 없어 대부분의 주민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종사해야했다. 초기에는 땅바닥에 칠판을 놓고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2006년 초중고 12년 과정을 갖춘 새 학교 건물을 폭격을 맞아 부서진 기존 학교 건물 위에 덧대어 새로 건축했다. 교복은 한국의 중고등학교 사재교복을 가져와서 입혔다고 한다.

거기다 아이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고 지휘를 맡기까지 했다. 이때 브라스밴드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기에 스스로 교본을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악보도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고 본인은 지휘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브라스밴드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이태석 신부에게 빨리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싶다고 하자, '먼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단다.'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 그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노래 중에는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가 있다.[4] 2006년 첫 공연을 가진 브라스밴드는 남수단 정부행사에도 초청되는 등 수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마을에서 이태석 신부만 가진 '사치품'이 있었다. 다름아닌 전등과 냉장고였다. 백신을 비롯한 약물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만큼은 꼭 필요했기에 집광판을 사 와 지붕에 직접 설치해서 발전을 하고 냉장고를 돌렸는데, 남는 전기는 해만 지면 암흑이라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거나 겨우 촛불이나 켜던 아이들의 야간 학습을 위한 조명에 있는 대로 털어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 25장 40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위와 같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여기고 의료활동을 해나가던 2008년 11월, 휴가차 귀국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 4기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느라 고생하였다고 한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말기암 선고를 받자마자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실의에 빠졌다는데, 본인이 암 판정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보였다고 한다. 판정 직후 인터뷰에도 병명은 숨긴 채로 미소를 띄우며 담담하게 봉사활동 및 지원 호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후에도 투병 중에 톤즈로 몇 번이고 다시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만약 자신의 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 톤즈에서 봉사를 했다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간혹 나온다. 아주 적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중병을 품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의외로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80세가 넘은 어머니를 걱정해 암 판정 사실을 숨겼고, 단지 건강이 나빠져 긴 휴가를 보내러 왔다고만 말했다.

2.3. 사망

Everything is good.
이태석 신부의 유언.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도 하고 각 지역의 성당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하였지만,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위의 유언을 남기고 향년 47세로 사망했다. 나중에 남수단을 취재한 <울지마 톤즈: 그 후 이야기>라는 책자에서 말라리아로 다 죽어가는 현지인 환자를 본 한국인 의사가 "이태석 신부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저랬습니다..."이라며 병명은 다르지만 삐쩍 마른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회고하는 게 나온다.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사망 몇 시간 전부터 의식이 희미해져서 손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돈 보스코!"라고 외쳤는데 돈 보스코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수호성인이다. 사망 직전 곁을 지키고 있던 수도회 수사들에게 '어젯 밤 꿈에서 돈 보스코가 나를 축복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본인이 소속된 수도회의 설립자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수녀는 이태석 신부에게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고 물었고, 이태석 신부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그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살레시오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강복을 해준 다음, 위의 유언인 "Everything is good"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파일:이태석 사제 1.jpg
파일:이태석 사제 2.jpg
투병 중의 이태석 신부. 오른쪽은 전재희 당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서울성모병원에 위문을 왔을 때로, 사망 불과 6일 전의 모습이다.
파일:external/bimage.interpark.com/2011120618111566.jpg
파일:external/web.pbc.co.kr/323337_1.0_titleImage_1.jpg
왼쪽 사진의 얼굴 부분이 나중에 영정사진이 되었다.

3. 사후

3.1. 이태석 신부에 대한 여러 기념 활동

시신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 천주교공원묘역 살레시오회 성직자 구역에 매장되었으며, 그 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복원된 생가와 그 옆에는 이태석 신부 기념관이 세워졌다.이태석 신부 기념관공식 블로그

사단법인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가 2011년에, 2012년엔 사단법인 이태석사랑나눔(현 이태석 재단)이 출범해 고인의 뜻을 이어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자는 그의 이름을 딴 '이태석 봉사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2021년 11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시상식은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한다고 한다.

2010년 4월 11일 방영된 KBS 스페셜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와 이를 재편집해 2010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그전에도 여러 성당을 돌며 모금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된 후 "그분이 그분이셨구나!"라는 반응을 보인 신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2011년 2월까지도 장기 개봉 중이며 단 몇 개 상영관 개봉 체제에서도 40만이 넘는 관객이 보았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문서로.

한 가지 씁쓸한 점은, 이태석 신부로 인하여 높아진 수단에 대한 한국의 인지도를 이용해 몇몇 한국인 범죄자들이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여러가지 사기 사건 등을 저지르고 있어, 이태석 신부의 노력과 한국인에 대한 평판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에서의 사기 사건은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따로 다뤄지기도 했다.

2011년 행정안전부에서는 정부포상 국민추천제를 시행하였는데, 이 제도를 통한 첫 번째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정부에서는 매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 또는 추서받은 사람은 이태석 신부와 2019년의 이국종 교수 두 명이 끝이다.

2011년 12월 15일 바티칸 교황청 내 비오 10세 홀에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울지마 톤즈>가 공식 상영되었으며, 사망 5년이 지나면 시복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망 5년이 한참 넘은 현재까지도 시복 청원조차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듯. 어차피 통상의 시복시성이 적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는 점, 그리고 까다로운 시복시성 철자를 위해서는 긴 시간을 두고 여러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태석 신부의 사례가 크게 지지부진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태석 신부의 활동지가 어디였는지 생각한다면 '자료 수집'은 어려울 것이다.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PD가 2012년에 쓴 책, <울지마 톤즈-그 후의 선물>은 여전히 열악한 남수단 내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이태석 신부가 도왔던 현지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서로 싸우고 죽게 하곤 왜 쫄리 신부님을 데려가느냐"면서 울부짖으며 "그분만큼 우릴 돕던 분이 없어요"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톤즈 마을 주민인 딩카족은 눈물을 보이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데,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톤즈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를 따랐는지, 그의 죽음에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고인을 잘 알았던 선배 성직자들은 '이룬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나를 데려가시지 않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나이도 젊은 이태석 신부를 먼저 데려가셨다'며 슬퍼했다. 이태석 신부가 자비를 털어가며 운영하던 병원은 이태석 신부와 같이 병원 일을 돕던 다른 한국인 신부가 남아서 하고 있는데 "정말 이태석 신부님이 하던 일을 도저히 못 따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태석 신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톤즈를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이 이태석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는데, 워낙에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음에도 군인이나 민병대원 누구도 훼방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

더불어 이태석 신부를 종교만 가지고 괜시리 욕하는 이들이 아직도 보이는데, 그는 절대로 그런 찌질이 종교 장사꾼이 아니었다. 생전 가톨릭 신자만이 아닌 무슬림, 토속신앙인, 개신교 신자 가리지 않고 모두 돌보았다. 민병대도 그 혜택을 받았기에 그들도 너무나 고마워하며 병원 근처에서는 전투를 벌이지도, 무기를 든 채로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 나와 있듯이 성당을 짓기 전에 병원과 학교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 성직자이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사단법인 이태석 사랑나눔을 봐도 스님도 있고 종교를 초월하여 충분히 존경할 만한 가치가 넘쳐흐르는 사람이다. 물론 이태석 신부는 엄연히 살레시오 수도회에 소속된 사제이며,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사제이지만'이 아니라 '사제였기에', 종교와 인간이 모순을 가지는 상황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른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2013년 9월 22일 한가위 특선으로 KBS 1TV에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브라스 밴드 한국에 오다!>(예고편)가 방영되었는데 바로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처음으로 만든 밴드가 이 브라스 밴드이다.

2018년 11월 20일 남수단 정부가 이태석 신부에게 대통령 훈장(Medal of the President)을 추서했다. 남수단 정부가 외국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2020년 1월 9일 이태석 신부 사망 10주기를 맞아 <울지마 톤즈 2 : 슈크란 바바>가 개봉됐다.

2020년 7월 9일 사는 곳이 다르며 의사, 약사, 공무원, 언론인 등이 된 제자 70명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영화 <부활>이 개봉됐다.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이다. #1 #2

2022년 9월,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선정한 '부산을 빛낸 12명'의 일원으로 포함되었다. 함께 선정된 인물은 장기려 박사, 우장춘 박사, 박차정 의사, 안용복, 송상현 장군, 최동원 선수, 금수현(마에스트로 금난새의 부친) 선생 등이다.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마리요셉,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1960~2019, 1989년 수품)는 이태석 신부 사후에 만들어진 이태석사랑나눔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이태영 신부의 뒤를 이어 <울지마 톤즈> 시리즈와 영화 <부활>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여러차례 다룬 바 있는 구수환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3.2. 제자들의 근황

2016년 8월 KBS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이태석 신부가 지은 학교의 제자들의 근황이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의학과 공학을 배우고 있다.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 두 사람은 2018년 1월 15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되었다.

2017년 1월 산티노 뎅 씨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태석 신부 사망 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한국에 공부를 하러 유학을 왔고, 충남대 토목공학과로 편입해서 졸업하였다. #

2018년 12월 21일 토마스 타반 아콧이 드디어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아프리카 출신자가 한국 의대를 졸업하여서 의사가 된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2019년 1월 존 마옌 씨도 같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의사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은 수련의 생활을 끝내는 대로 다시 남수단으로 귀국하여 현지에서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2019년 8월 아순타 아조크 씨가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태석 신부 사후에 개봉한 영화 <부활>에 그녀의 졸업식 모습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같은 해 11월 이태석 신부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시 한국을 찾았으며, 다음해인 2020년 이화여대 공식 블로그에 영화 <부활>의 개봉을 맞아 진행된 그녀와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2019년 12월 24일 토마스 타반 아콧 씨가 KBS 아침마당에 이태석위원회 위원장 유명일 사무엘 신부와 동반출연하였고, 이태석 신부에 대 인터뷰를 하였다.

2020년 2월 그의 제자 존 마옌 루벤(1986년생)이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2020년 6월 15일 아투아이 알비노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UN에 소속된 저널리스트(UN 라디오 방송국 앵커 겸 기자)여서, 그의 사망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에 재단 측에서는 유족들에게 장례비를 전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이태석 신부를 아버지처럼 따랐으며, 생전에 이태석 신부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가 <부활> 메인 예고편에 쓰였다. <부활> 개봉 때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다른 제자들의 근황과 함께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으며, 자막으로나마 짤막하게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비와 생활비를 재단 측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2021년 6월 16일 토마스 타반 아콧 씨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 또 다시 한국 방송에 출연해 다시 한 번 한국의 시청자들을 만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와 자신의 근황 등을 공개했다. 현재 부산백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으며, 전공의 과정이 끝나는 대로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사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4년 2월 23일 인제대학교 백병원 측은 토마스 타반 아콧 씨와 존 마옌 루벤 씨가 한국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의학 공부를 통해 의사가 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이태석 신부님 덕분이다. 전공의 수련에 어려움 없이 임할 수 있게 도와준 인제대 백병원 교직원분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의사가 된 뒤 부산백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거쳤고 토마스 타반 아콧 씨는 상계백병원 외과, 존 마옌 루벤 씨는 부산백병원 내과에서 레지던트로 수련받아 올해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다. 이들은 고국에 필요한 의료 분과를 고민하던 중 가장 생명과 직결되는 전공인 외과와 내과를 택했다. 오랜 기간 내전을 겪은 남수단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토마스 타반 아콧 씨는 더 많은 수술을 배워 외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쌓기 위해 인제대 상계백병원에서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이어갈 예정이며, 존 마옌 루벤 씨는 수련을 마친 뒤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료 활동과 함께 후배 의사를 양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1 #2

이렇듯, 이태석 신부가 남긴 선한 영향력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4. 이태석 신부의 저서와 작품

  • 생활성가 - "묵상" (성 바오로 출판사) 1998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생활성서사) 2009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증보판" (생활성서사) 2010년
  • 강론집 - "당신의 이름은 사랑(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 영성의 메시지)" (다른우리) 2011년
  • 만화 - "내친구 쫄리 신부님 1" (생활성서사) 2011년
  • 에세이 -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 (비아북) 2012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생활성서사) 2013년
  • 에세이 -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북루덴스) 2022년
  • 에세이 - 울지마톤즈 학교 (북루덴스) 2024년

5. 이태석 신부를 다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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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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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활 포스터(메인).jpg
파일:이태석(영화) 포스터.jpg

감독:구수환
2010. 09. 09.

감독:강성옥
2020. 01. 09.

감독:구수환
2020. 07. 09.

감독:이우석
2022. 12. 29.
}}}}}}}}}

5.1. 2010년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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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0년 영화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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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20년 영화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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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2년 영화 이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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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19일[2] 1926~2024.9.16.(향년 98세). 세례명은 안토니아.[3] 「한국 천주교 주소록」, 한국천주교주교회의.[4] 울지 말라구요?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데요?, 오마이뉴스,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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