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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Si un journaliste, par exemple perpignanais... avec un accent à couper au couteau, s'il arrive à la télévision, bah, non, je ne vais pas le prendre. Et je défendrai l’idée de ne pas le prendre parce qu’on ne comprend pas ce qu’il raconte. »
"만약 기자가 TV에서 페르피냥 발음 같은 강한 억양을 구사한다면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지지할 것입니다."[1]
ARTE Radio의 이것은 참사다 - 왜 기자들은 모두 우스꽝스러운 억양을 갖게 되었는가? 중에서
"만약 기자가 TV에서 페르피냥 발음 같은 강한 억양을 구사한다면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지지할 것입니다."[1]
ARTE Radio의 이것은 참사다 - 왜 기자들은 모두 우스꽝스러운 억양을 갖게 되었는가? 중에서
이런 말[2], 뭔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걸리시죠? 이 말에 대한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우리 흑인들은 400년 이상의 세월을 걸었습니다. 이게 우리들이 쓰는 말일까요? 이런 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진 않습니까?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그런 영어를 가르치면 안 돼'라고 해야 합니다. Ebonics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백인 미국인들이 Ebonics 때문에 우리 흑인에게 감정을 가질까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백인 미국인들은 우리 흑인을 '왕따'시키려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3] 말(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힘입니다. 아이들에게 Ebonics를 쓰게 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틴 루터 킹 Jr.이나 말콤 X, 그 외에도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펼쳤던 사람들은 Ebonics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만일 최근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제발 이것을 계기로 Ebonics와 Ebonics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Ebonics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시다. 미국 흑인 전문직 협회에서 당신에게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미국 흑인 전문직 협회, 흑인 영어를 쓰거나 가르치지 말자는 광고[4]
표준어가 세련됐고 지역 억양이나 방언은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갖고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도 아래의 사례들을 보면 이에 자유로운 나라가 없음을 알 수 있다.-미국 흑인 전문직 협회, 흑인 영어를 쓰거나 가르치지 말자는 광고[4]
2. 아시아
2.1. 대한민국
자세한 내용은 언어 차별/사례/대한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20세기 중반까지 사실상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언어를 쓰는 상황이었다.[5]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은 강력한 언어 표준화 정책을 반세기 동안 펼쳐왔고, 결국 14억 인구가 보통화(표준 중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령 상하이 같은 경우 독자적인 방언(상해어)이 있음에도 젊은 세대들은 이미 모어로 보통화를 하고 언론, 교육, 사업 등 모든 것이 보통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반대로 광동어, 민남어는 원래는 상해어보다 사용 인구가 적었지만 홍콩, 마카오, 민주화 이후의 대만과 같이 본토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구심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영향력 있는 방언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은 표준중국어 보급에 아주 적극적이다.하지만 중국의 각기 다른 지방 언어는 현재도 힘을 발휘해 같은 보통화 라도 지역색이 짙은 편이다. 하다못해 오리지널 북경 사투리도 얼화 현상이 존재하여 보통화와 차이가 있으며 그나마 하얼빈 쪽 언어가 보통화와 흡사하다 한다. 또 지방에 따라 쓰이는 단어나 억양이 달라 서로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는 편은 아니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공식적인 자리서 보통화를 강조하지만 젊은 세대들도 각각 지방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편 이다.
2.3. 중화민국
중화민국에서는 중국국민당에서 비록 지금은 대만 섬에 있지만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 정부다'라는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표준 중국어를 적극 보급하고 타이완 현지 방언(대만어, 객가어 등)과 대만 제어, 그리고 마쭈 지역의 민동어 사용을 엄격히 통제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 중국 공산당에서 제정한 보통화도 원래 대륙 시절 중화민국에서 규범화한 표준중국어인 중화민국 국어를 고친 것으로, 당시 군벌과 일본이 깽판치는 난리판에 제대로 보급하지 못했다가 대만 섬에 틀어박히고 나서야 표준중국어를 보급할 수 있었다.동아시아에서는 대만이 비교적 언어 차별 반성에 적극적인 편이다. 1990년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전의 강경한 표준중국어 보급 및 방언 탄압 정책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졌는데, 지금도 공적 언어 생활은 대부분 표준 중국어로 이루어지지만 대만어, 객가어, 민동어 같은 방언들이 선택 과목으로 교육 과정에 당당히 들어가 있고 이들 방언과 대만 제어 보존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두된 타이완 독립운동, 그리고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민주진보당의 탈중국화 및 다문화 진흥 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진먼현의 민남어 방언인 진먼화(金門話)의 경우 독자 언어로 인정되지 않고 대만어의 일부로 취급되는데,[6] 이 때문에 진먼 현지에서는 진먼화가 공교육 및 타이완섬과의 교류로 인해 대만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으며, 진먼화를 대만어와는 별개의 언어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2.4. 일본
관련 문서: 일본/인종차별일본에서는 도쿄 야마노테 지역의 방언이 표준어로 간주되며, NHK에서 억양 사전을 내곤 한다. 패전 이전 일본에서도 언어 차별이 있어서 도쿄 야마노테 지역의 방언을 표준어로 제정하고 학교에서 방언 구사자에게 방언찰(方言札)을 붙어 망신을 준 역사가 있다. 패전 이후에는 언어 차별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서 이전에 비해 표준어를 강조하지 않고 표준어가 아닌 공통어(共通語)라는 말로 대체했다.
그러나 외국인 대상 언어 차별은 열차 언어가 한국어, 중국어로 바뀌어서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서 갈 길이 멀다. 심지어는 한국 땅에서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택시기사를 폭행한 일본인 관광객의 사례가 있었다. 뉴스 링크
달링은 넷우익 3화를 통해 일본의 언어차별과 외국인 차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인종차별을 참고한다.
2.5. 북한
2020년대 들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제정해 남한과 서양, 일본 등의 외래어로 찍힌 언어를 사용하면 최대 사형까지 내리는 등 철저히 억압하고 있다. 다만 문서에 나오듯 그 기준이 매우 제멋대로고 고위층의 내로남불도 흔히 볼 수 있다.3. 유럽
아래의 예시에 있는 국가들은 모두 언어 차별에 대한 고민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독일의 사정이 가장 낫고 벨기에는 지방어 보급에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네덜란드어권 사람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 정치권에서 좀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래의 국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그 국가들 역시 언어를 차별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3.1. 영국
관련 문서: 영국, 노르만어
영국은 국가에서 정한 표준 방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용인발음을 표준 발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19세기에는 지방 언어를 탄압해왔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 북아일랜드, 심지어 독립한 아일랜드에서도 원래 쓰던 언어[7]는 소수언어가 되었다.
영어의 방언이나 비표준 억양의 경우 20세기 중반 이후 표준어 강요에 대한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1990년대부터는 자국의 다양한 방언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어느 상황에서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의무교육법인 1872년 교육법에서 스코틀랜드 게일어 커리큘럼을 제외시킴으로써 영어가 주류가 되고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소수언어가 되었다.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게일어 화자는 약 30% 정도였으나 20세기 초에는 5% 내외로 줄어들었다. 또한 스코틀랜드 게일어를 쓰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저지 섬은 1900년대 이전까지는 프랑스어와 저지어를 써왔으나, 1900년대부터 의회에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프랑스어와 저지어 구사자의 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저지 정부는 부랴부랴 저지어 강사를 구해서 저지어 보급을 장려하고 있지만, 공공 기관 페이지에 프랑스어 혹은 저지어 페이지가 부실하고 저지어 방송국이 없는 등 갈 길이 멀다.
3.2. 아일랜드
관련 문서: 아일랜드어, 아일랜드
, 아일랜드/경제
2011년 아일랜드어 화자 분포 |
3.3. 프랑스
관련 문서: 프랑스어프랑스의 지방어 |
영어판 프랑스 24의 지역 억양에 대한 이야기 | ARTE Radio의 이것은 참사다 - 왜 기자들은 모두 우스꽝스러운 억양을 갖게 되었는가?[10] |
브르타뉴 출신의 교수가 쓴 논문에 있는 그래프를 보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 사이 브르타뉴어 화자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유별나게 표준 프랑스어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표준어라는 개념을 처음 창안한 나라도 프랑스이며, 표준 프랑스어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의해 확립되고 나서는 이를 전국적으로 교육하고 방언을 차별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프랑스의 지방 언어 문제 참조.
2016년에 필리프 블랑셰라는 마르세유 출신의 언어학자가 언어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어 공포증(glottophobi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언어 공포증은 프랑스에서 언어 차별을 뜻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후에는 방언이나 억양 차별을 교양 없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늘어났고 언론에서도 자주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애초에 영국 영어나 독일어와 달리 같은 표준어의 범주 내에서도 무조건 닥치고 파리 억양이 아니면 통용이 되질 않을만큼 본토 프랑스어 주류 언중의 언어 스펙트럼 자체가 굉장히 좁고 폐쇄적인데 지방어 차별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2018년 10월[11], 장뤼크 멜랑숑이 툴루즈[12] 오크어 억양을 사용하는 기자의 질문에 "뭔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 우리 말로 질문해라"라고 불쾌감을 표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크어는 실제로는 그냥 프랑스어와 다른 별개의 언어이기 때문에 오크어 억양으로 프랑스어를 하면 표준 억양을 구사하는 프랑스인이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걸 불쾌해 할 거면 뭐하러 오크어를 프랑스어의 사투리로 취급하면서 하나의 프랑스를 주창하냐고 까이는 것.
2019년 12월 3일, 프랑스 국민의회는 지역 억양의 사용을 장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20년 11월 26일에 국민의회를 통과하여 상원으로 넘어갔다.
3.4. 독일
관련 문서: 독일어, 저지 독일어
, 하노버
독일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세한 내용은 저지 독일어, 독일어, 하노버 문서를 참조. 현재는 방언 보존 노력의 결과 주변국인 프랑스, 영국 등의 상황에 비해 많이 나은 편이다.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간접적인 억양 차별이 존재하며, 내국인 대상 언어 차별은 ZDF 같은 전국 방송에서 지역 억양을 들을 수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긴 했지만, 슈바벤, 바이에른, 작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 차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룩셈부르크의 독일어 프로파간다 포스터 |
룩셈부르크 사람들이여, 당신은 독일인이다. 모국어는 독일어다.
나치 독일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하기 이전에는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룩셈부르크의 공용어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섞인 룩셈부르크 독일어 방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룩셈부르크를 점령하면서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심기 위해 프랑스어와 룩셈부르크 방언의 사용을 금지하고 표준 독일어 사용을 강요했다. 그 결과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해 왔던 독일어 방언을 '룩셈부르크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룩셈부르크어는 자체적인 표준화 과정을 거쳐 룩셈부르크의 국어가 되었다.[13]3.5. 네덜란드
19세기 네덜란드 연합왕국 시기에 남부 네덜란드 주민들을 대상으로 차별을 한 적이 있다. 그 중 정책적인 차원의 언어 차별도 포함되어 있었다.빌럼 1세가 1820년대 중부 네덜란드(지금의 벨기에 북부) 지역에 네덜란드어만을 공용어로 두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왈롱어와 프랑스어가 다수였던 지금의 브라방왈롱 지역에도 이 정책을 적용했다. 또한 중부 네덜란드 지역에서도 이 정책을 반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네덜란드 측에서 플람스어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14]
이 정책은 1828년, 1829년에 걸친 두번의 청원 끝에 1830년 6월이 돼서야 철회됐지만, 그로부터 약 2개월 뒤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 벨기에가 독립했다.
3.6. 벨기에
관련 문서: 벨기에/지역갈등, 플람스 운동
벨기에의 언어[15] |
Art. 23
L'emploi des langues usitées en Belgique est facultatif ; il ne peut être réglé que par la loi, et seulement pour les actes de l'autorité publique et pour les affaires judiciaires.
제23조(현재 제30조), 벨기에의 언어 사용은 선택적이다. 이것은 관할 기관의 행위와 법무를 위한 법으로만 정할 수 있다. - 벨기에 헌법(1831) 중에서[16]
L'emploi des langues usitées en Belgique est facultatif ; il ne peut être réglé que par la loi, et seulement pour les actes de l'autorité publique et pour les affaires judiciaires.
제23조(현재 제30조), 벨기에의 언어 사용은 선택적이다. 이것은 관할 기관의 행위와 법무를 위한 법으로만 정할 수 있다. - 벨기에 헌법(1831) 중에서[16]
« Les premiers principes d’une bonne administration sont basés sur l’emploi exclusif d’une langue, et il est évident que la seule langue des Belges doit être le français. Pour arriver à ce résultat, il est nécessaire que toutes les fonctions civiles et militaires soient confiées à des Wallons et à des Luxembourgeois ; de cette manière, les Flamands […] seront contraints d’apprendre le français, et l’on détruira ainsi peu à peu l’élément germanique en Belgique. »
"좋은 행정의 기본원칙은 단일 언어의 독점적 사용에 근거한 것이며, 벨기에인의 유일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되어야 함이 명백하다. 이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민간업무와, 군무를 왈롱인과 뤽상부르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이 방식으로 플란데런 사람들은 프랑스어 학습이 강제되며 이로써 우리들은 벨기에의 게르만적 요소를 서서히 파괴할 것이다."[17]
샤를 로지에, 1832
건국 초기 헌법에 플란데런 방언[18]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 개국 공신들을 포함한 상류층들이 처음부터 프랑스어만 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용어는 사실상 프랑스어 하나뿐이었다."좋은 행정의 기본원칙은 단일 언어의 독점적 사용에 근거한 것이며, 벨기에인의 유일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되어야 함이 명백하다. 이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민간업무와, 군무를 왈롱인과 뤽상부르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이 방식으로 플란데런 사람들은 프랑스어 학습이 강제되며 이로써 우리들은 벨기에의 게르만적 요소를 서서히 파괴할 것이다."[17]
샤를 로지에, 1832
벨기에는 19세기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지방어가 많이 쓰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가 이 지역을 20년간 다스리면서 현 플란데런과 왈롱지역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프랑스어의 보급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독립하였고 언어 정책 등의 갈등을 빚다가 벨기에 혁명 이후 벨기에를 건국하게 된다. 건국 이후 프랑스어 위주의 언어 정책을 펼쳤으며, 여기서 발생한 사회, 경제, 문화적 차별 등은 플란데런 민족 운동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19] 왈롱 지역의 프랑스어 (서민층) 보급은 19세기 말부터 가속화 되어 양차대전을 거친 이후에는 다수의 언어였던 지방어가 소수 언어가 되었다.[20] 지금은 프랑스어권 정치인들이 플란데런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지역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이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7. 룩셈부르크
유럽연합의 외국어 사용 설문조사(2012)[21] | |
QE1a. 자기계발에 가장 중요한 두가지 언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
영어 | 40%(EU 평균: 67%) |
독일어 | 17%(EU 평균: 17%) |
프랑스어 | 72%(EU 평균: 16%) |
QE1b. 자녀의 미래를 위한 언어는? | |
영어 | 71%(EU 평균: 79%) |
독일어 | 27%(EU 평균: 20%) |
프랑스어 | 63%(EU 평균: 20%) |
룩셈부르크의 인종차별 보고서(2022)[22] |
모든 이민자는 룩셈부르크어를 배워야한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동의함 67%(매우 그렇다: 31.7%, 약간 그렇다: 36.3%; 룩셈부르크인: 82.4%)[23] |
룩셈부르크어의 미숙함(이해도나, 발음 등)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동의함 48.8%[24](매우 그렇다: 17.6%, 그렇다 31.1%; 포르투갈인: 60.8%)[25] |
4. 아메리카
4.1. 미국
|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프로파간다 |
미국 역시 이런 풍조가 존재한다. Ebonics라고 불리는 미국 흑인 영어 및 심지어는 히스패닉들이 쓰는 아예 다른 언어인 스페인어에 맞서서 영어의 우월성을 증명하려 했던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규범적인 용법에 얽매이는 모습에서 벗어나 속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27] 실제로 일상 미국인들의 회화는 국내 교육에서는 똑바로 가르치지 않는 신조어와 속어, 감성적인 이어동사(phrasal verb)로 이루어져 있어 한국인들에게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절망감을 심어주고 있다.
4.2. 캐나다
- 영어권 화자의 프랑스어권 화자 차별
지금은 퀘벡 내 프랑스어권 화자들이 영어권 화자를 차별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영어권 화자들이 프랑스어권 화자들을 차별했다.[28] 이때 생긴 퀘벡 민족주의에 의해 나중에는 독립 투표도 했지만 지금은 독립 여론이 높지 않다. 그러나 퀘벡 민족주의 자체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캐나다의 언어 문제는 1969년 공용어법에 의해 프랑스어가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긴 했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 프랑스어권 화자의 퀘벡 주 내 영어권 화자 차별
비프랑스어권 화자의 절반이 퀘벡을 떠난다고 응답하였다 - 라디오 카나다(2014) |
프랑스어 화자가 다수인 퀘벡은 영어권 화자보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이러한 의지가 너무 강해서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무시하는 형태의 언어 차별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욤 패트리도 비정상회담에서 퀘벡의 차별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배타성 때문인지 비프랑스어 화자들이 퀘벡을 떠나는 것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퀘벡만큼 프랑스어 정책을 강하게 밀지 못한 국가 혹은 지역에서는 소수 언어가 됐기 때문에 언어 정책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과하다는 얘기는 나오고 있다.
그런데 퀘벡 주 정부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아메리카의 주 언어는 영어이고 프랑스어는 영어에 비해 국제적인 영향력이 다소 낮은 편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퀘벡 정부는 미국의 루이지애나주처럼 프랑스어가 소수 언어로 전락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퀘벡의 프랑스어 사용률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조하면 언어 차별 논란이 생기지만 반대로 영어화자를 배려해버리면 프랑스어 사용인구에 나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캐나다의 언어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데 퀘벡 주 정부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아메리카의 주 언어는 영어이고 프랑스어는 영어에 비해 국제적인 영향력이 다소 낮은 편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퀘벡 정부는 미국의 루이지애나주처럼 프랑스어가 소수 언어로 전락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퀘벡의 프랑스어 사용률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조하면 언어 차별 논란이 생기지만 반대로 영어화자를 배려해버리면 프랑스어 사용인구에 나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캐나다의 언어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다.
[1] 페르피냥은 옥시타니, 피레네메디테라네 레지옹의 카탈루냐어권인 피레네조리앙탈 데파르트망의 주요도시이다. 오크어권이 아닌 카탈루냐어권이라 이 지역의 프랑스어 억양은 오크어권과 비교해도 다르다.[2]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을 흑인 영어 'I has a dream'으로 바꿔 놓았다.[3] 이 부분은 일어 원서(세계의 공익광고)에서 발생한 오역이다. 광고 원문은 'if you think it's become a controversy because white America doesn't want us messing with their precious language, don't. White America couldn't care less what we do to segregate ourselves.'로, '만일 Ebonics가 그들의 귀중한 언어를 망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될 거라 생각한다면 Ebonics를 쓰면 안 됩니다. 백인 미국인들은 우리가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걸 개의치 않기 때문이죠'에 가깝다.[4] 번역 출처는 '세계의 공익광고(가네코 히데유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5] 중국어에서 말하는 '방언 간 격차'란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차이,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이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를 하나의 언어로 취급하는 것과 똑같다.[6] 아마도 대만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계라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7] 스코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웨일스어, 콘월어, 얼스터 피진어, 아일랜드어 등[8] 유로존에 영어가 공용어인 또 다른 국가인 몰타가 있으므로 틀린 말일 수도 있지만, 영어 사용국이라는 의미가 국민 모두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의미라면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몰타는 대부분의 국민이 몰타어를 구사할 수 있고, 약 80% 정도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므로 엄연히 몰타어가 주가 되는 나라지만, 아일랜드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영어를 모어로 구사할 수 있고, 소수의 국민만 아일랜드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9] 룩셈부르크어는 독일어의 친척에 속하지만 아일랜드어와 영어는 별개의 언어라는 다른 점은 있다.[10] 프랑스 2 뉴스에 나오는 기자들은 모두 특유의 강세가 들어간 억양으로 말하는데 출신지와 상관 없이 모두 획일적이다. 위의 라디오 다큐멘터리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서 압권인 부분은 파스칼 두세봉 프랑스 텔레비지옹 부편집장이 사실 상사들은 역설적으로 억양의 획일화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언급하면서 "기자 채용 시에 억양도 조건이 되었고 저는 젊은 기자들이 강한 억양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중략) 만약 기자가 TV에서 (페르피냥 발음 같은) 강한 억양을 구사한다면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그것(고용하지 않는 것)을 지지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즉, 상사들이 (알아듣기 쉽다는 이유로) 그러한 억양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파스칼 두세봉의 발언은 아래의 발의된 법안에 언어 차별 사례로 인용되었다.[11] 영어[12] 남부 오크어권의 중심지로, 툴루즈어가 오크어의 표준으로 간주된다.[13] 룩셈부르크 정부의 언어 페이지를 보면 룩셈부르크 점령기의 인구조사 서류가 나온다. 이 서류에는 모국어란이 있는데 설명에는 룩셈부르크어, 저지독일어와 같은 언어는 방언이므로 모국어가 될 수 없다고 쓰여있다. 그러나 해당 서류에서는 이에 저항하기 위해 대놓고 룩셈부르크어라고 적었다.[14] 당시 중부 네덜란드 지역의 언어는 표준화가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플람스어 계통의 방언이 주로 사용되었다.[15] 빗금: 이중언어(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황색: 네덜란드어, 적색: 프랑스어, 청색: 독일어[16] 이 조항은 현재 벨기에 헌법 제30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아래의 언어지역에 대한 부분과 공동체에 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벨기에 헌법 30조는 큰 의미가 없지만, 당시에는 언어에 대한 헌법 조항이 이것 뿐이라 문제가 많았다. 당시 벨기에 정치인들은 프랑스어만 써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나라든 대부분의 경우 언어사용은 헌법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정하는데 적어도 언어평등법 제정이전까지는 당연히 프랑스어 단일언어 정책으로 굴러갔다.[17] 당시에는 지역이라는 개념 보다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의도로 Wallons(왈롱)과 Flamands(플라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프랑스어를 포함한 오일계 방언을 쓰는 사람들과 네덜란드어와 그 계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8] 당시 벨기에 표준 네덜란드어가 없었기 때문에 북부 지방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언을 썼다.[19] 캐나다 영어권의 프랑스어권 차별은 다수의 소수 억압이었지만 벨기에는 상대적 소수의 상대적 다수 억압이었다. 언어는 사용인구가 많을 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차별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벨기에의 프랑스어권 세력이 특권을 내려놓기 더 어렵다. 그 결과 플람스 운동에 반발하는 왈롱 운동이 일어났고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은 지금도 해소된 것이 아니며 행정적으로 분리하여 급한 불만 끈 것에 가깝다.[20] C’est au xxe siècle que la situation linguistique va changer radicalement: la société qui était majoritairement unilingue dialectophone va devenir unilingue francophone. Cette évolution s’est opérée en deux étapes : l’acquisition généralisée du français, suite à l’instruction obligatoire votée à la veille de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et la rupture de la transmission intergénérationnelle des dialectes au sein des familles, suite aux mutations socio-économiques après la Seconde Guerre mondiale.[21] Europeans and their Languages (2012), 유럽연합[22] "Le racisme et les discriminations ethno-raciales au Luxembourg"(2022), 룩셈부르크 정부[23] 동의하지 않음 25%(매우 그렇다 10%, 그렇다 15.0%), 무응답 8.1%[24] 다른 언어(독일어, 프랑스어)의 미숙함에 대한 차별에 대한 동의의견은 각각 30.9%, 18.5%로 집계되었다. 룩셈부르크어 사용의 미숙함에 대한 차별은 통계에 나온 여러 차별 유형 중 가장 많은 응답자가 동의하였다.[25] 동의하지 않음 37%(매우 아니다: 4.7%, 아니다: 9.7%, 약간 아니다: 22.6%). 각각 Non !!, Non !, Non을 번역., 무응답 14.2%[26] 정확히는 국어 하나 공용어 둘.[27] 이 때문에 영국 영어가 미국 영어보단 상대적으로 교과서 영어(Textbook English)에 가깝다는 느낌이 나는 경우가 있다.[28] 누벨프랑스를 획득한 영국이 1763년 선언 이후 이 지역 주민을 동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때 한 차별이 가톨릭이가 아닌 사람을 공직자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이지역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톨릭이었으므로 영어권 화자들만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이후 1774년 퀘벡법이 제정됐는데 차별조항이 빠져있어서 영어권 화자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