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비트 왕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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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비트 왕조 المرابطون | Al-Murābiṭūn ⵉⵎⵕⴰⴱⴹⴻⵏ Imṛabḍ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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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 |||||||
| <nopad> | |||||||
| 무라비트 왕조의 최대 강역 | |||||||
| 1050 ~ 1147 |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 베르베르 부족 | 무와히드 왕조 | ||||||
| <colbgcolor=#E2E1E0><colcolor=#000> 위치 |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이베리아 | ||||||
| 수도 | 아주구이 아그마트 (1058년 ~ 1070년) 마라케시 (1070년 ~ 1147년) | ||||||
| 국가원수 | 아미르 | ||||||
| 정치체제 | 군주제 (아바스 왕조의 봉신국) | ||||||
| 국교 | 이슬람 수니파 | ||||||
| 언어 | 아랍어, 베르베르어 등 | ||||||
| 종족 | 마그레브 아랍인 등 | ||||||
| 면적 | 1,000,000km2 (1120년) | ||||||
| 현재 국가 | | ||||||
아랍어: المرابطون, 알 무라비뚠
베르베르어: ⵉⵎⵕⴰⴱⴹⴻⵏ, Imṛabḍen
스페인어[1]: Los almorávides
영어: Almoravid Dynasty
1. 개요
1040년 발흥하여 1147년 멸망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왕조. 최초 발상지는 현대의 세네갈 지역이지만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모로코가 실질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남북으로 3,000km에 이르는 넓은 판도를 자랑하였고, 타이파 시대를 종식시키며, 이베리아 반도 내 이슬람 세력의 패권을 재확립했지만 100여 년 만에 또 다른 베르베르인 왕조인 무와히드 왕조에게 멸망당했다.아랍어로는 알-무라비뚠(Al-Murābiṭūn)이라고 하기 때문에 무라비트 왕조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지만 대개 영어나 스페인어 표기를 따라서 알모라비드 왕조 혹은 알모라비데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모로코의 첫 베르베르계 통일 왕조로, 모로코의 어원이 되기도 한 왕성 도시 마라케쉬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2. 기원
| 11세기경 북서아프리카의 부족 분포 지도 |
아부 임란의 권유로 야히야 이븐 이브라힘은 모로코 남부 수스 계곡에 있는 왁가그 이븐 잘루 알-람티에게로 가서 백성들을 위한 말리키 학파 출신의 학자를 찾아 나섰다. 왁가그는 그에게 압달라 이븐 야신을 추천했다. 이븐 야신은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들은 엄격한 종교적 교조주의에 입각한 교단을 만들었으며, 수년에 걸친 포교와 세력 확장 끝에 강력한 규율을 가진 신정국가를 이뤄냈다. 야히야 이븐 이브라힘은 강력한 교단 조직 외에도 새로운 군대 체제를 만들었다. 그때까지 베르베르계 부족들의 전투방식은 대개 창과 방패를 들고 밀집하여 힘싸움을 벌이는 고대 그리스식 팔랑크스와 유사하였던 반면, 야히야의 새로운 군대는 마케도니아의 사리사를 연상시키는 긴 장창과 함께 투창을 도입하였으며, 측면 공격과 섬멸전을 위해 낙타병과 기병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3. 서북아프리카 정복
1053년부터 무라비트 왕조는 사하라 사막의 베르베르 지역과 사막 남쪽 지역으로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여러 베르베르계 부족들을 이기고 난 후 그들은 재빨리 사하라 사막 무역로 전체를 장악하여 1054년 북쪽 끝의 시질마사, 1055년 남쪽 끝의 아우다호스트를 정복하였다. 람투나 부족의 족장인 야히야 이븐 우마르는 1057년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종교 교사로서의 영향력이 무엇보다 컸던 압달라 이븐 야신은 형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를 추장으로 임명했다. 그의 휘하에 알모라비드족은 곧 사막 너머로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고, 아틀라스 산맥의 부족들을 정복했다. 그 후 그들은 베르베르계 부족 연합인 바르가와타와 접촉하게 되었다. 바르가와타는 강력하게 저항하였고, 압달라 이븐 야신은 1059년 모로코 롬마니 인근 마을인 크리플라에서 그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가와타는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에게 완전히 정복되어 순니 이슬람교로 개종할 수밖에 없었다. 1061년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는 자신이 수립한 권력을 나누어 사촌 유수프 이븐 타슈핀에게 주고, 또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 자이나브를 배속시켰다. 이븐 우마르는 무라비트 왕조의 근거지인 사막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가 다시 통치를 재개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 그는 사촌의 세력이 너무 강력해져서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087년 11월, 아부 바크르는 모리타니아에서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그 동안 유수프 이븐 타슈핀은 현재 모로코, 서사하라, 모리타니아를 완전히 굴복시켰다. 1062년에 그는 마라케시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고,1080년에는 틀렘센을 정복했다. 한편 남쪽에서는 1076년경 가나 제국을 공격했다. 무라비트 왕조는 가나 지배자들의 권위가 약화될 정도로 가나를 약화시키고 어마어마한 양의 조공을 받은 뒤 물러났다.4. 전성기
유수프 이븐 타슈핀 사망 직전의 무라비트 왕조
1086년 유수프 이븐 타슈핀은 이베리아 반도 알-안달루스의 타이파[2]들의 요청을 받아 레온과 카스티아의 침탈로부터 그들의 영토를 방어했다. 그 해 이븐 타슈핀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알헤시라스(카디스)로 향했고, 사그라자스 전투에서 카스티아-아라곤 연합군을 격파했다. 그후 유수프는 타이파 세력들의 실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충격"의 정체는 4년 후 밝혀지는데, 유수프는 타이파 지도자들이 종교적으로 해이해졌으며, 사치와 방종에 빠졌다고 주장하며[3] 그 휘하의 교조적인 종교학자들의 지지를 명분삼아 1090년에 이베리아 반도로 돌아와 그라나다 (1090년), 세비야 & 알메리야&코르도바(1091년), 알리칸테 (1092년), 바다호스 (1094년) 등의 순서로 정복했다. 이 와중에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차지하였다.
이렇게 하여 1094년까지 유수프는 사라고사를 제외한 모든 타이파 세력을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사라고사의 타이파 알 무타미드는 저항하였으나 나중에 정복되었다. 이후 무라비트 왕조는 콘세그라운드 전투에서도 승리하여 알 안달루스의 지배를 확고히 했다. 유수프는 1106년 죽었는데, 이때가 무라비트 왕조의 전성기였다. 수니파로써 압바스 왕조 칼리파의 종주권을 인정하였으나, 칼리파의 다른 칭호였던 아미르 알 무미닌, 즉 "신자들의 사령관"을 칭하며 권위를 세우기도 했다.
5. 몰락
유수프 이븐 타슈핀 사후 무라비트 왕조에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세력이었다. 1108년 타밈 알 유수프는 카스티야 왕국을 다시 한번 격파하였다. 무라비트 왕조는 1119년과 1121년에 다시금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였으나, 1119년 프랑스 왕국의 도움을 받은 아라곤이 사라고사를 점령하여 전세가 역전되었다. 1134년 파가 전투에서 무라비트 왕조는 승리를 거두었고, 아라곤의 알리폰소 1세를 살해하기까지 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게속되었지만, 알리 이븐 유수프의 무라비트군이 1138년 레온-카스티야의 알폰소 7세와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이베리아 반도 내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었다. 또한 1139년에 벌어진 우리크 전투에서도 패배하였다.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 근처에서 발흥한 무와히드 왕조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입지도 크게 위험해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알리 이븐 유수프가 사망한 1143년 이후 무라비트 왕조의 영역은 빠르게 무와히드 왕조에게 정복당했다. 알리 이븐 유수프의 후계자들이 몇 년간 저항하긴 했지만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특히 1145년 6월 이브라힘이 죽은 이후로 빠르게 붕괴하였다. 리스본은 1147년 포르투갈 왕국에게 정복되었다.6. 부흥 운동: 바누 가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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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바누 가니야#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바누 가니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 특징과 의의
무라비트 왕조가 이전의 마그리브(북아프리카)와 알 안달루스(이슬람 치하 이베리아)의 예전 왕조들과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베르베르인이 주도 세력이자 통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베르베르인들은 이슬람의 확산 과정에서 아랍인들에게 패배하고 그 휘하로 들어갔지만, 무라비트 왕조가 발흥하던 시대까지도 아랍인과 동화되지 않았으며 서로 감정도 험악한 편이었다. 특히 알 안달루스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랍인들은 베르베르인들을 야만인취급하였으며[4], 이후 타이파 시대에도 아랍계 타이파와 베르베르계 타이파는 격렬히 대립하였다. 하지만 베르베르계 왕조인 무라비트 왕조가 알 안달루스와 마그리브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루면서 양자가 점차 베르베르인 주도로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무라비트 왕조는 비교적 단명했지만, 다른 베르베르 세력인 무와히드 왕조, 그 다음에는 마린 왕조가 뒤를 이으면서 이 추세가 계속 이어졌다.한편 상술하였다시피 무라비트 왕조의 주도세력은 상당히 교조적이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었는데, 이는 기독교 세력과 계속 접촉하면서 세속화가 되었고, 이교도 문화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던 알 안달루스 지역의 문화와 대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라비트 왕조는 알 안달루스를 지배하면서 특별히 그런 문화를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런 종교적 교조주의는 무와히드 왕조 시대에도 이어지지만, 알 안달루스 지역에 대한 마그리브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었기 때문에 큰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8. 대중 매체에서 등장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서 엘 시드 캠페인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사라센(베르베르족) 흑위대는 바로 이 무라비트 왕조를 지칭하는 것이며, 여기서 등장하는 흑위대의 수장 유서프는 유수프 이븐 타쉬핀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아프리칸 킹덤에서 베르베르족이 플레이 가능 문명으로 등장했다.문명 5의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는 알모하드 왕조가 바로 무라비트 왕조이다.
9. 역대 군주
| 대수 | 이름 | 재위기간 | 비고 |
| 1대 | 압달라 이븐 야신 | 1040~1059 | 무라비트 왕조가 창건 되었다. |
| 2대 | 야하 이븐 이브라힘 | 1048~1048 | |
| 3대 | 이히야 이븐 우마르 알 람투니 | 1048~1056 | |
| 4대 |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 | 1056~1087[5] | |
| 5대 | 유수프 이븐 타슈핀 | 1072~1106 | 모로코가 정복되었다.가나 제국을 공격하였다.알 안달루스가 정복되었다.마라케시가 건설되었다. |
| 6대 | 알리 이븐 유수프 | 1106~1143 | 기독교 왕국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
| 7대 | 타슈핀 이븐 알리 | 1143~1145 | |
| 8대 | 이브라힘 이븐 타슈핀 | 1145~1147 | |
| 9대 | 이스하크 이븐 알리 | 1147~1147 | 알 안달루스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무라비트 왕조가 멸망했다. |
[1] 재미있게도 스페인어에서는 아랍어 정관사 al까지도 고유명사화하고 그 앞에 다시 정관사를 붙였다. 스페인어에서 변형된 아랍어 단어들은 이러한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를테면 el alcázar(요새화된 성), el arroz (쌀) 같은 단어들이 있다. 각자 원형은 al-qaçr, ar-ruz.[2]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한 후 난립한 이슬람 국가들로, 대부분의 타이파들은 1,000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3] 영화 엘 시드에서도 시작부터 유수프가 타이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고는 이를 크게 질타한다.[4] 지금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인은 베르베르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5] 1072년부터는 분할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