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ابوبكر محمّد زکرياى رازى아부 바크르 무함마드 자카리야 알 라지
9세기 아바스 왕조의 대학자. 페르시아(이란)의 도시인 라이(현 테헤란)이 고향이라서 알 라지(라이에서 온 사람)라고 불렸다. 그는 의학과 화학, 철학 분야에서 활약하였는데 특히 의술 분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수두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말년에 그가 남긴 총서(아랍어; Al-Kitab al-Hawi, 라틴어: Liber Continens)는 13세기 완역된 이후 서구권에서 가장 널리 쓰인 의서 중 하나가 되었으며 14세기 파리 대학교 의대의 기본 교재로 쓰였다. 서유럽에서 알 라지는 '라제스'로 알려졌다.
다방면에서 유능한 인물이었는데 체스 실력 또한 당대 최고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한다. 또한 무타질라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현대 이란에서는 8월 27일을 라지의 날로 지정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
마니교 철학과 교리에 호의적이었으며, 이슬람 전통 신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반영한 기록을 남겼다. 학계에서는 그가 마니교 신자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이를 숨겼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업적
2.1. 의학 분야
라지는 약학 분야에서 활약하였지만 자신의 철학, 심리학에 대한 고찰을 활용하여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에 대한 연구를 하여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되었다. 비교하자면 코스 섬에서 활동한 히포크라테스 역시 당시 의학 기술의 한계로 환자들에게 심리 치료에 집중하는 것[1]은 마찬가지였지만, 정신 건강 자체에 대해서 논문을 쓴 것은 그가 최초였다. 또한 <소아 질병>이라는 저서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의학 처방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의학 처방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였다.커피에 대해서 최초로 문헌 기록을 남겼으며, 수두와 홍역이 서로 다른 질병이라는 것을 최초로 기록한 학자이기도 했다.
2.2. 화학 분야
라지는 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연금술사였고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증류를 통한 알코올 추출법을 발견해내는 성과를 올렸다.3. 여담
알 라지는 환자들을 성실하게 돌보는 선량한 의사로 명망이 높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술로 높은 평가를 받던 의사가 아니었으면 목이 날아갈 만한 발언을 자주 했다. 알 라지가 종교관이 어땠는지는 그가 종교 관련해서 저술한 세 편의 논문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언자들의 기만적인 속임수
-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술수
- 계시종교에 대한 반론
이성은 지배하되 지배받지 않는, 통제하되 통제되지 않는, 선도하되 선도되지 않는 최고의 권위이다.
알 라지는 이성에 역할에 대한 단호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특정' 종파의 신자는 그들 종교의 온당함을 입증해 보라는 요구를 받으면 발끈 화를 내고 이러한 문제로 자신들에 맞서는 이는 누구든지 죽여 버린다. 그들은 합리적인 추측을 금하고 적을 죽이기 위해 분투한다. 이것이 진리가 철저히 침묵하고 은폐되는 이유이다.
정확한 기록이 유실되어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알 라지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나 혹은 마니교 신도 입장에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비판한 듯 하다. 그가 조로아스터교 계열 종교 신도가 아니면 쿠란과 성경에 나온 예언자들의 이야기 거의 대부분을 모순이라며 반박할 리가 없었다.
쿠란에는 "누구든지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꾸란에 나온 계시 구절과 유사한 구절을 하나라도 만들어보게 하라"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더 적절하게 표현하고 훨씬 간단명료하게 문제를 서술한 수사학자나 달변가, 대담한 시인의 작품을 이용해 수천개의 유사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하나님 맙소사. 당신들의 말은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당신들은 고대 신화를 이야기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동시에 어떤 유용한 정보나 설명도 담고 있지 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서 당신들은 "그와 같은 것을 만들어보지?"라고 말한다.
쿠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었는데, 이슬람 이전 시대 아랍인들은 시 짓기와 시 낭독하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 때문에 고대 아랍인들은 이슬람 교리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조차 독자에게 직접 말하는 듯한 꾸란의 문체의 명료함 자체는 인정했다.[2] 그러나 페르시아인이었던 알 라지 입장에서는 페르시아어 번역본에서 아랍어 원문 문체를 초월번역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인도 철학에 정통했던 과학자 겸 역사학자였던 알 비루니, 알 안달루스(이슬람 스페인)의 무타질라 학파 철학자였던 이븐 루시드는 알 라지가 이슬람을 비판한 논문을 읽고 그가 마니교도였다고 판단내렸다.
알 라지는 지역 사회에 헌신하던 인자한 의사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슬람을 비판해도 사적제재를 당하지는 않았고, 6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