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3:04:18

무타질라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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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래3. 주장4. 시아파로의 흡수5. 몰락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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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المعتزلة‎(알 무타질라)
영어: Muʿtazila

중세 이슬람의 여러 학파 중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통보다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종파' 가 아닌 '학파'로 분류되는 것이다.

지지자로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과 9세기 아랍의 대학자인 알 자히즈 등이 있다. 이슬람 황금기(9 ~ 10세기)의 자유로운 분위기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비록 848년 압바스 왕조에게 버려졌지만 북아프리카의 아글라브 왕조에서는 909년 파티마 왕조에게 멸망하기 전까지는 주류 학파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인에게 정치 권력을 잃은 아랍인들의 종교적 보수화, 십자군 전쟁 시기의 이슬람 원리주의의 득세 등으로 인해 이슬람권에서 이단시되어 사라졌다. 다만 이성을 중시하는 면모는 아슈아리 등 중도 절충적인 학파에 의해 어느 정도 계승되었고 쉬아 울라마 중에서는 자이드파(다섯이맘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1]

2. 유래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학자인 하산 알 바스리(642 ~ 728년)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죽음만이 확실하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위해 선을 행하고 신을 경외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의 시대로부터 800여년이 흐른 16세기 서유럽의 신학자 장 칼뱅이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한 것과 대조되는 발언이었다.

알 바스리는 이슬람의 적은 이교도가 아닌 위선자라고도 하였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압둘 말리크에게 비판적인 논조의 편지를 부치기도 하였다. 바스리의 제자 중 와실 이븐 이타(700 ~ 748년)라는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쿠란 주해를 비롯한 여러 저작을 남기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중세의 무타질라 학파를 확립했다.

무타질라 학파는 원자론을 심도 있게 공부했는데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 대신 인도중앙아시아의 원자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중앙아시아 대승 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원자론이었다. 7세기에 브라흐마 굽타가 쓴 천문연구서 "브라흐마스푸타-싯단타(Brahmasphuta-Siddhanta)"가 무함마드 빈 이브라힘 알 파자리[2]에 의해 신드힌드(Sindhind)라는 책으로 편역되면서 이슬람 천문학과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3. 주장

대체적으로 플로티누스신플라톤주의[3]와 유사하다. 플로티누스는 우주 만물이 단일 유기체의 여러 부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신비로운 존재가 되는데 바로 그 존재에서 만물이 발산해 나왔으며 결국에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 철학자들은 신플라톤주의의 단일 존재 개념이 신의 유일성 타우히드 개념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의 계시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무타질라 학파는 고대 그리스 철학가톨릭 교리, 우파니샤드 철학과도 흡사한 부분이 좀 있다.

알라인간 간의 유사성은 없으며 알라가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데 반해 인간은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 후 그에 책임을 져야 하며 천국에 가기 위해선 믿음과 함께 선행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슬림이 큰 죄를 지으면 그/그녀는 진정한 신앙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신자로 취급할 수는 없으며 그 중간에 위치한다.

4. 시아파로의 흡수

서기 995년 호라산 서부 투스에서 태어난 무함마드 투시[4]시아파 부와이 왕조에 봉사하면서 무타질라파 철학과 시아파 교리에 입각하여 하디스 편집본을 만들고 시아파의 관점으로 해석한 쿠란 주해서 앗 타비얀 피 탑시룰 쿠란을 편찬했다. 이전까지 주로 음모론 위주로 확장하던 시아파 12이맘파 신학은 무함마드 투시 이후 체계적인 교리를 갖춘 신학을 갖게 되었고 음모론이 확장되면서 시아파 교단이 계속 분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5] 현대 기준으로는 이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압돌카림 소루시가 무타질라 학파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로 이슬람 교리를 재해석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예멘자이드파가 무타질라 학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의 자이드파는 이웃한 순니파에 대해서는 온건한 태도를 견지했으나 대신 만만한 예멘 유대인들을 유달리 박해하였다.[6]

시아파 이스마일파도 신플라톤주의의 요소를 교리에 다소 흡수하기는 했으나 이들은 무타질라 학파와 교류가 활발했을 뿐이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학파다.

5. 몰락

무타질라 학파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을 그리스어에서 아람어(시리아어)로 번역하고 다시 아람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해야 하는 고비용의 투자를 통해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타질라 학파를 후원하던 아바스 왕조도 우마이야 왕조와 다를 바 없는 타락한 세속 왕조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무슬림 대중은 무타질라 학파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무타질라 학파에 대한 지원이 급감한 상황에서 알 가잘리와 이븐 타이미야의 공격을 받으면서 중동 수니파 세계에서 무타질라 학파의 영향력은 서서히 사멸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호라즘 지역에서는 몽골 침략 이전까지는 여전히 무타질라 학파가 대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12세기 호라즘의 인물인 마흐무드 알 자마크샤리는 무타질라 철학을 바탕으로 쿠란 주해서를 저술하였는데 그의 저작은 이미 당시 신학자들 기준으로 지나치게 합리주의적이라서 이단시되었으나 그의 주해서에 서술된 아랍어 문법 해석 및 주해서의 문장력이 매우 출중하여 후대 아랍인이나 페르시아인 쿠란 주석학자들은 자마크샤리의 주석서에서 무타질라 교리 내용만 자르고 인용하는 경우가 흔했다.[7] 자마크샤리의 쿠란 주해서의 아랍어 문법 해석을 인용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이븐 카시르를 들 수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알 안달루스에서 이븐 루시드는 알 가잘리의 <철학자들의 부조리>를 반박하며 무타질라 학파를 옹호하는 <부조리의 부조리>라는 책을 저술하였으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른바 무핫디순이라고 불린 근본주의자 학자들은 이븐 루시드를 숙청하였다. 여기에는 이븐 루시드의 잘못도 없지는 않았는데 당시 이븐 루시드가 대놓고 돼지고기랑 포도주를 마시면서 다른 무슬림 학자들을 놀리고 약올렸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대 와하브파는 이븐 루시드의 책 중 마드하브 분류체계에 관한 책 외에 다른 책은 출간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타질라파의 몰락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로 합리주의가 근본주의에게 패배했다'라는 식의 요약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무타질라파의 주장은 지나치게 그리스화되어 이슬람 입장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주장인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븐 시나는 그리스식 세계관과 영지주의 철학을 도입하여[8] 물질을 악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선의 궁극적 실체인 신은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를 직접 창조하지 않았고 이를 10개의 예지체 중 가장 마지막인 능동 예지체가 신 대신 실행했으며, 더 나아가서 신은 창조 작업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편적 사실만 인지할 뿐, 개별적 사실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한다라던가, 세계는 영원하며 창조 작업 이전에도 세계를 이루는 질료는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세계는 신에 의해 직접 창조되었고[쿠란14:19]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쿠란6:59] 쿠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무슬림 입장에서는 이단적 사고였을 뿐이다. 자세한 것은 이 논문을 참조.

6. 여담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중세 러시아를 침공한 몽골인들을 "알콰리즈미[11] 아리스토텔레스를 갖지 못한 아랍인"이라고 비판했는데[12]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랍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븐 루시드를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다시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짚은 것이었다.

[1] 애초에 무타질라 학파의 학자가 자이디 이맘들 중 한 명의 스승이었을 정도였다.[2] Muhammad ibn Ibrahim al-Fazari, 서기 806년 사망[3] 서기 3~4세기 로마 제국에서 유행했던 사변 철학 사조[4] 시아파 12이맘파 신도들은 특별히 존경심을 담아 셰이크 투시(투스 출신 석학님)라고 부르며 이 외에도 존칭으로 아부 자파르(자파르 법학파의 대부)라고도 부른다. 수니파 앞에서 셰이크 투시 혹은 아부 자파르라고 하면 다른 사람으로 알아듣는 수가 있다. 수니파 입장에서는 이븐 시나 같은 특별히 과학 쪽에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면 시아파 신학자들을 듣보잡 이단 신학자 123 시리즈로 취급하기 때문도 있다.[5] 물론 투시는 무타질라파 철학만 흡수한 것은 아니고 수니파 샤피이파에서 하디스를 고증하는 방식 역시 흡수하였다.[6]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무타질라 학파 자체부터가 비무슬림한테 특별히 더 온건한 학파는 아니다.[7] 출처 : 손주영 역 꾸란 35선[8] 정확히는 플로티누스식 유출론적 세계관을 도입했는데 이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쿠란14:19] 하나님께서 진리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뇨 그분은 원하실 때 너희를 제거하시고 새로이 창조하시니라[쿠란6:59] 보이지 않는 것의 열쇠들이 하나님께 있나니 그분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니라 그분은 땅위에 있는 것과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떨어지는 나뭇잎도 대지의 어둠속에 있는 곡식 한알도 싱싱한 것과 마른 것도 그분께서 모르시는 것이 없으니 그것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노라[11] 중세 대수학의 권위자로 알고리즘이란 단어의 유래다.[12] 알 안달루스의 아랍인들은 적어도 이런저런 과학기술을 가지고 스페인을 부흥시켰던 것과 다르게 몽골인들은 러시아인들을 가난에 빠트리고 퇴보시키기만 했다는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