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8:16:22

신상철(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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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 진실의길 대표
신상철
Shin Sang-chul
파일:신상철.jpg
출생 1958년
서울특별시
학력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 / 학사)
병역 해군 항해 중위 만기전역 (학군사관)

1. 개요2. 상세3. 비판 및 논란
3.1. 지역 감정 조장 및 북한 옹호 활동
4. 천안함 음모론자로서의 행적
4.1. 미개한 구 일본군식 사상에 입각한 신상철의 천안함 망언
4.1.1. 경계에 실패했는데 처벌 받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4.1.2. 대잠 전력이 약한 배를 NLL에 띄운 책임이 있다?4.1.3. 대잠 성능이 낮은 배를 만든 걸 책임져야 한다?4.1.4. 외국의 함선손실에 대한 징계 사례4.1.5. 구 일본군의 미개한 정신론에 입각한 신상철의 주장
4.2. 한미연합대잠훈련 중이었는데 탐지 못한 것이 수상하다.
4.2.1. 한미연합함대는 백령도 근해에 있지 않았다.4.2.2. 천해에서 100km 밖 잠수함을 수상함에서 탐지하는 기술은 없다.4.2.3. 미해군도 수상함 소나 하나로 잠수함을 탐지 할 수 없다.4.2.4. 잠수함 탐지 실패 사례
4.3. 이해찬의 천안함 음모론 배후 관여 의혹
5. 군 수뇌부에게 피소 및 법원의 침몰원인 판단6. 천안함 생존장병과 유족들에게 피소7. 음모론 장사와 후원 구걸

[clearfix]

1. 개요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의 대표.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음모론을 수도 없이 내어 이름을 알렸으며 천안함 대표격 음모론 매니아 원톱을 달리고 있다.

쉽게 말하면, 지만원과 똑같은 음모론자에 불과하다. 음모론자의 대표격으로 오죽하면 좌파에는 신상철이 있고, 우파에는 지만원이 있다고 할 정도다.

2. 상세

195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산광역시로 이주해 국민학교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ROTC로 임관해 해군 항해 중위로 2년 만기 전역했지만, 하는 소리만 보면 해군 장교는커녕 수병보다 아는 게 없어 보인다. 애시당초 조선인민군 해군 간첩[1]고속정화력으로 찍어누르기 위해 염가로 대량 양산한 포항급 초계함대잠용 함선이라 주장하는 것에서 부터 견적이 나온다.[2] 해군에선 LSM 갑판사관 등 대수상전, 대잠전 분야와 상관없는 상륙함 등에서만 근무했다.

70~80년대까지도 해양대학교해사대학 승선학부 인원들은 총원 강제로 ROTC에 입단해야 했고, 다수는 미군의 ROTC처럼 대부분이 졸업 당일 항해/기관 소위 임관 후 바로 전역해 예비역 소위 신분으로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실습 항해사나 실습 기관사로 3년간 승선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를 대체했으나, 일부 운 없는 이들은 임관 후 현역으로 2년간 해군에 근무해야 했다. 이들은 상선에서 보다 많은 돈을 받고 경력도 쌓으며 병역을 때울 승선예비역을 선호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돈도 경력도 인정 안 되는 군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체로 복무 의욕과 장기 복무 의지가 없어 군 생활을 대충 하다 보니, 해군 내에서도 여러 장교 임관 과정 중 가장 평이 좋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해군에서도 썩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다 전역하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이는 법령에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관례상 암묵적으로 강제된 것이었기에 문제가 됐다. 이는 1980년대 말 학생운동을 통해 ROTC 총원 입단 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1984년 대한선주(現 한진해운)에 입사해 컨테이너선항해사,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신조선 파견 감독, 대한조선공사 파견 수석감독 등으로 근무하다가 1992년 퇴사했다.

1992년에는 의료법인 한솔의료재단 산하 의료기관에 입사해 전산실장, 심사과장, 기획실장 등으로 근무했으며, 마산대학교 보건행정과 겸임교수로서 병원전산학, 원무관리, 의료보험 청구 등에 대한 강의에 출강했다. 1999년 퇴사한 뒤 2004년까지 병원 전산 시스템 관련 사업 및 IT 사업에 투신해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일대 10여 개 병원의 전산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코리아닷컴과 서울닷컴의 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또한 2002년부터는 '서프라이즈' 및 조인스닷컴에서 개혁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서프라이즈 사업본부장을 거쳐 2006년 서프라이즈 대표이사에 선임되었다. 2011년에는 인터넷 언론 '진실의길'을 창립해 대표이사를 지냈다.

3. 비판 및 논란

3.1. 지역 감정 조장 및 북한 옹호 활동

종북 성향이며 연평도 포격전연평도 포격 유도사건이라고 떠든다. 천안함 음모론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과거사 위원회서 재수사하여 북한테러가 맞다고 결론난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설명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8년째 재판을 진행중인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는 "국가기관이 어떠한 사고나 조작사건을 주도하거나 개입했을 때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그 사람들이 조사의 주도권을 쥔다"며 "KAL기도 마찬가지였고 천안함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 #
과거에는 독고탁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고 음모론과 경상도에 대한 적개심이 담긴 글이 많이 남아있다.

"경상도는 교화될 수 없는 집단" 신상철 과거 발언 구설수
교화될 수 없는 집단 - 경상도 바로보기 [1]
교화될 수 없는 집단 - 경상도 바로보기 [2]
신상철의 과거글 보기 [3]
신상철이 논란이 된 글에 대한 기사
신상철의 음모론글 기사
파일:신상철 연평도 포격 도발 음모론.jpg

신상철은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의 추천으로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에 들어왔다.
우선 신 대표는 축출된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합동조사단에서 나왔다. 이유는 "군 당국이 기뢰어뢰로 미리 답을 정해놓고 꿰맞추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신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2010년 5월 19일)한 것은 합동조사단 회의에 딱 한 번 참석하고 물러난 그가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조사단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개인적인 견해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평화방송 라디오' 'CBS 라디오'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 사고는 어떤 다른 선체와 충돌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충돌한 선체는) 미군 측 군함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당시 합동조사단은 어떤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천안함 절단면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수없이 모의실험을 했고, 천안함 절단면과 사고 해역에서 발견된 북한 어뢰 추진체에 각각 남아 있는 흡착물을 비교 분석해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다. 외국에서 조사에 참여한 인사들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신 대표는 아직도 국방부의 명예훼손과 관련해 재판 중이다.

201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2011년 4월 6일 신 대표로부터 천안함 어뢰 추진체에 붙어 있는 붉은 멍게 사진 3장을 입수했다며, 신 대표와 양식업자(인터넷 필명), 일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서해에는 없고 동해에만 서식하는 붉은 멍게가 붙어 있는 어뢰 추진체는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붉은 멍게로 보이는 것이) 생명체 조각이 아니라고 발표했고 '오마이뉴스'는 오보(誤報)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신 대표는 2013년 《천안함은 좌초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는 등 지금까지도 천안함 좌초설 등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세월호는 (실종자를)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 북한이 발간한 천안함 폭침 책자北 주장 대신 남한 內 음모론 편집해 실어
이 사람과 한 때 같은 성향으로 활동하다가 전향한 사람이 바로 변희재다(...).

4. 천안함 음모론자로서의 행적

NL계열의 주권방송에도 출연해 천안함 좌초설, 천안함 미국 개입설 등 다양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같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생존장병의 양심선언이 있었을거라는 말을 지어내서 말하기도 했다. 이에 끝내지 않고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 11가지 이유로 다시 거짓선동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넘어가게 해버린다.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하다하다 못해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음모론이 담긴 책까지 내는 음모론자로서의 끝판왕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행적만 보아도 이 사람은 일단 천안함이 북한 소행인 것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모습이다.

2021년 6월 10일, 서욱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서욱 장관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방조했다는 이유에서다. #

2021년 7월 4일,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개수작 TV를 통해 신상철에게 댓글로 토론을 제의했으나 실시간으로 차단을 당한 영상을 업로드했는데#[4], 이대로 빤쓰런하나 싶었던 신상철은 그 다음날인 7월 5일 자신의 채널에 11분 22초에 달하는 답변을 빙자한 개소리 영상을 업로드한다.# 그러면서도 천안함 관련해 토론은 하지 않겠다며 반박을 거부해 눈총을 샀다.

12월에는 아예 적반하장으로 최원일 함장을 군법 위반으로 공수처에 고발하였다.#

4.1. 미개한 구 일본군식 사상에 입각한 신상철의 천안함 망언

신상철은 입으로는 친일파 척결과 응징을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보다 미개하고 잔학한 구 일본군의 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으로 천안함 승조원에게 그 잣대를 드밀며 괴롭하고 학대며 사회적인 린치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은 삼군 중 유일하게 구 일본군 출신이 없는 자랑스러운 군대다. 일본 해군은 사보타주를 두려워하여 조선인에게 해군 승조원으로 입대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해군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 그런 해군을 나온 신상철이 누구보다 구 일본군식 정신론과 근성론에 입각한 주장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4.1.1. 경계에 실패했는데 처벌 받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항급 초계함은 작은 체급과 건조 목적상 본격적인 대잠전이 불가능한 함선이다. 대한민국 해군에서 포항급 초계함의 주 임무는 수상을 초계하고 북한 고속정을 잡는 것이지 대잠 작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가 나자 음모론자 신상철은 초계함은 잠수함을 잡는 배인데 잠수함을 탐지 못한 것이 수상하다는 논리를 퍼트렸다.[5]
"해군 중위로 제대를 했다. 소위 때는 천안함하고 동급의 배를 탔다. 전남함이라고. 이 배(천안함)는 초계함이고 그 배는 호위함이다. 초계함은 잠수함을 잡는 배다. 소나(sonar, 수중 음파탐지기)로 컨택해서 잠수함 추적하는 배인데, 그게 잠수함한테 깨졌다는 것도 웃기다."
2010.06.15 신상철 언론 인터뷰 발췌 #

신상철의 인터뷰 때문에 어느 새 '초계함은 잠수함을 잡는 배, 잠수함을 못 찾은 것은 경계 실패'가 되어버렸다(...) # # # # # 당시 해군이 대잠 탐지를 못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먼저 천안함의 경우는 80년대의 직주어뢰를 대상으로 한 소나를 가지고 있었기에 현재 북한이 쏘는 어뢰는 감지할 수 가 없다고 국방부 대변인이 공식인증했다. 즉 설령 이순신 장군이나 넬슨 제독급의 명장들만 승선에 있던지, 누가 있던간에 어뢰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미 연합 대잠훈련 장소는 사건 현장부터 90~170km 이상 밖에 있었다. 평균 수심 44m인 해역에서 90~170km 밖에 잠항한 잠수함을 수상함에서 탐지하는 기술은 없다.[6] 당시 서해 NLL에는 소나를 단 전투함은 AN/SQS-58 소나[7]를 단 포항급 초계함인 14번함 천안함과 19번함 속초함만 있었다. 포항급 초계함의 성능상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초계함은 哨戒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Corrvette의 일본식 영어 번역에 불과하다. Corrvette은 만재배수량 500~2,000t급의 작은 연안전투함을 의미한다.[8] 20세기 초중반만해도 초계함은 대잠함으로 쓰였지만 냉전기부터는 아래 서술할 이유로 초계함은 전문 대잠함의 역할 더 상위체급 함선인 호위함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9] 초계함경비정, 고속정 < 초계함 < 호위함 < 구축함 < 순양함으로 이어지는 단순히 수상전투함의 체급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이다.[10]

21세기가 아닌 냉전기를 기준으로 해도 포항급 초계함의 1,200t급의 작은 함체로 본격적인 대잠전을 하기 힘들다.
냉전기 기준 대잠함 크기

미군
녹스급 호위함: 만재배수량 4,200t급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 4,100톤급.

소련군
카신급 호위함: 4,300t급

영국군
21형 호위함: 4,300톤급
23형 호위함: 4,900톤급

프랑스군
조르쥬 레그급: 4,300톤급

전부 포항급 초계함의 3~4배 크기다. 소나는 소리를 듣고 수집하고 분석하는 장비기 때문에 크기가 아주 큰 성능의 척도다. 배가 작으면 커다란 고성능 소나를 달 수 없으므로 이미 냉전기부터 본격적인 대잠함들은 만재배수량이 4,000톤이 넘어갔다. 잠수함이 더욱 은밀해지고 치명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21세기 들어서는 서구권의 경우 전문 대잠함의 크기가 6,000톤을 넘어가기도 한다. 26형 호위함, 31형 호위함 참조.

파일:YXRU1bg.jpg
파일:22010210.jpg
미해군 줌왈트급 구축함의 AN/SQS-60 함수소나와 포항급 초계함의 AN/SQS-58 소나의 사진 [11]

미해군의 최첨단 구축함줌왈트급 구축함AN/SQS-60 소나조차 카달로그 상 성능으로 대잠 탐지 거리는 30km가 안 된다. 초강대국이 2010년대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제작한 함수 소나도 탐지가 거리가 30km가 안 되는데 1980년대 당시에도 저가형 소나던 AN/SQS-58에게 무얼 바라는가? 이 녀석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역이 한정되어 있다. 주로 구형 무유도 어뢰가 내는 음역대를 들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사실상 당시에도 구형 무유도 어뢰에 대한 경보용으로 달아줬다.

4.1.2. 대잠 전력이 약한 배를 NLL에 띄운 책임이 있다?

신상철은 이제 하다하다 진짜 천안함이 대잠능력이 약하다면 그걸 NLL에 띄운게 잘못이라고 비아냥 거린다. 2010년 당시 현대적인 대잠 성능이 갖춰진 함정을 서해 5도에 상시 배치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현대적인 대잠성능이 갖춰진 함정은 광개토대왕급(KDX-I) 3척, 충무공이순신급(KDX-II) 6척, 세종대왕급 방공 구축함(KDX-III) 1척 뿐이다. 이 중 광개토대왕급은 동해, 서해, 남해를 관장하는 제1,2,3함대의 기함으로 각 함대에 1척씩만 배속되어 있었으며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과 세종대왕급 방공 구축함은 진해의 해군작전사령부에 배속되어 있었다. 군함은 3~4척은 있어야 특정 해역에 1척을 상시 배치할 수 있다. (이동)-배치-대기-정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당시 세종대왕급 방공 구축함은 단 2척만 취역했다. 당연히 바다에 상시 1척을 배치할 수가 없었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6척이지만 이 중 1척은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서 가있어야 했다. 그리고 세종대왕급 방공 구축함과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이어도나 독도, 그외 EEZ등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작전에 많이 투입되었다. 우리 EEZ와 독도, 이어도를 포기하고 몇 척 안 되는 고성능 함선을 서해 NLL에 상시 배치할 수 없었다. 광개토대왕함은 당시 각 함대에 1척씩만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당연히 각 해역에 상시 띄울 수가 없다. 당시 NLL에는 대잠성능이 열악한 울산급 호위함이나 포항급 초계함이 주로 떠 있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영토와 영해, 영공을 지켜야하는 군대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하다는 이유로 초계 임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잠 성능이 낮은 포항급 초계함을 NLL에 배치하면 안 된다? 그럼 북한 고속정과 간첩선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어민이 납북되고 간첩선이 남하하는 것을 다시 지켜만 봐야 한다. 포항급 초계함은 쾌속의 소형함정에 대적하라고 만든 함정이다.

4.1.3. 대잠 성능이 낮은 배를 만든 걸 책임져야 한다?

포항급 초계함은 대잠 성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울산급 호위함, 포항급 초계함, 동해급 초계함을 건조하기 시작한 1970년대 우리 해군이 처한 전장 환경은 이렇다. 당시 북한은 우리 어민에 대한 북한의 납치 공작을 빈번했으며 북한은 숱하게 간첩선을 침투 시켰다. 북한의 미사일 고속정과 재빠른 간첩선은 도저히 당시 한국 해군이 갖춘 함정의 성능과 숫자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당시 북한 간첩선은 해상자위대의 경계를 뚫고 일본인을 납치해갈 정도였다. 북한 소형 함정과 간첩선을 고속으로 따라잡아서 자동화된 다수의 함포로 가라 앉히는 데만 철저히 집중해야 했다. 더군다나, 동-서-남 각 해역에 상시 3척의 초계함 이상 중대형 함정을 띄우기 위해서는 총 36척의 대규모 함대가 필요했다. 이는 당시 매년 3척씩 건조하는 속도로 함정을 만들어내야 했다. 가난하고 기술력이 없던 시절에 어민 납치와 간첩선 남하를 막기 위해서는 속도와 화력, 그리고 숫자를 만족 시키기 위해서는 함정의 대잠/대공능력 개선은 꽤 후일로 미루어야 했다. 가난하던 1970년대다. 당시 위협이 아니던 공중, 수중 위협에 대한 대처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대공, 대잠 위협에 대한 대비를 넣었다면 36척까지 만들 수도 없었으며 그럼 어민납치나 간첩선 침투를 지켜봐야했다. 그런 선택 덕분에 울산급 호위함 9척, 포항급 초계함 24척, 동해급 초계함 4척 총 37척의 함정을 만들 수 있었고 한국 해군이 꿈꿨던 대로 북한 고속정과 간첩선은 오는 족족 수장 되었다. 국산 호위함과 초계함이 바다를 장악한 이후 우리 해군은 물 위에서는 항상 승리했다. 그럼 그 이후에 뭘 했냐? 그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3척과 충무공이순신급 6척과 세종대왕급 방공 구축함 3척과 장보고급 잠수함 9척, 손원일급 잠수함 3척, 독도함 등을 건조했다.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함대이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FFX라는 울산급/포항급/동해급을 대체할 신형 중형 전투함이 건조 중이다. 곧 대체될 구형 함정에 신형 소나를 탑재하는 것 보다는 대체용으로 만들 신형 전투함에 더 좋은 소나를 탑재하는 것이 합당한 선택이다. 국방비는 한정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함정 건조비와 함정에 탑재할 전자 장비 도입 비용은 더더욱 한정된다. 이건 마치 보병이 왜 지뢰를 탐지 못했냐며 지뢰 밞은 소대의 소대장을 처벌하라는 이야기와 같다. 대체 누굴 처벌 해야 하는가? 박정희-전두환 때 건함계획 세운 관계자들을 부관참시할까? 김영삼 때 대양해군 플랜 세운 관계자들을 조리돌릴까? 김대중-노무현 때 기동전단 계획 세운 제독들과 군 통수권자들을 처벌할까? 이 불가항력적인 일에 대해 누굴 처벌 해야 하는가?

4.1.4. 외국의 함선손실에 대한 징계 사례

다음은 실제 2차대전 이후 해전에서 함장, 제독들이 함정 손실을 겪은 것에 대한 처벌 내용이다. 천안함 사건은 아래 실제 사례를 봐도 처벌 대상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침몰 후 최원일 함장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 사례 1. 윌리엄 홀시 제독이 태풍 코브라에 함선도 아니고 함대를 날려먹고 군법회의 끌려갈 '뻔' 했던 사례. 홀시 제독은 이후 원수까지 진급.
  • 사례 2.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장 '찰스 B 맥베이 3세' 대령이 일본 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즈라' 함장이 이끄는 순잠 을형 잠수함 이58의 공격에 함선을 상실해서 약 5일간 생존자들과 함께 바다를 표류하다가 카탈리나 비행정이 발견해 구조된 뒤 군법 회의에 회부된 사건. 이후 맥베이 대령은 소장까지 진급한 뒤 퇴역. 그의 동기들이 대부분 중장, 대장으로 전역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명예전역이었고 이후 권총자살. 사실 군법회의에서도 실형을 받았으나 잠수함에 정통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사면으로 현장에 복직. 이후 당시 미군이 맥베이 대령의 구조신호를 안일한 근무 태도로 듣지 못하였던 거나[12], 무시한 정황[13]들이 드러남과 동시에 당시 을형 잠수함 이58의 함장이었던 하시모토 모치즈라 전 중좌가 맥베이 제독의 명예 회복을 바라는 편지를 보내 당시 상황을 증언함으로써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맥베이 제독의 명예를 복권 시켰고 생존 장병 전원에게 은성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해군은 맥베이 제독의 명예를 복권하는데 반발하였으나, 결국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면서 맥베이 제독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 승조원들이 맥베이 '함장'[14]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하며 이 사실을 전했다.
  • 사례 3. 공고급 순양전함 2번함 히에이가 과달카날 전역에서 거의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방향타까지 맛이 가서 자력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마지막까지 버티던 함장이 아베 히로아키 중장의 퇴함 건의을 받아들여 퇴함 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뒤늦게 히에이를 부유 포대로 써서 미군을 견제하라는 전문을 날렸지만 이미 히에이는 벨브를 열어 자침한 뒤였고, 히에이 자체가 난전에서 USS 래피에게 대공포로 함교를 얻어맞아 참모진이 전멸하는 등 엄청난 손상을 입고 용케도 떠있던 상태라 별다른 처벌은 없었다.
  • 사례 4. 일본 해군의 상선 개조 항공모함 히요의 마지막 함장 요코이 도시유키 대좌가 히요 최후의 순간에 히요와 함께 죽기 위해 남아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자빠진거야!?'라는 생각에 근처에 있던 나무상자를 집어들고 냅다 바다에 뛰어내려 살아 남았다. 당연히 이후 별 처벌은 없었다.
  • 사례 5.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의 최신 방공구축함이었던 42형 구축함의 네임쉽 셰필드가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가 발사한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에 격침 당했다. 당시 레이더가 초저공비행체 탐지능력에 문제가 많았고 장비의 문제였으므로 셰필드 함장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15] 도리어 셰필드함의 함장은 전후 처벌은 커녕 오히려 승승장구 진급에 성공해 이후 해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 사례 6.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의 순양함이던 헤네랄 벨그라노가 영국 공격원잠 컨쿼러가 1.2km까지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하여 격침되었다. 그러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와 그를 호위하던 섬너급 구축함 2척은 대잠 능력이 매우 낮았므로 함장이던 헥토르 본조 대령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고 이후 해군 본부로 보직을 옮겼으며 명예롭게 전역한다.

1) 불가항력적인 일로 함선을 손실했고
2) 손실 후 승조원 구조나 상급 부대 지원 요청에 최선을 다 했으면 끝이다.

만일, 2)를 태만히 했다면 그건 중죄다. 하지만 최원일 중령은 이후 대처에서 함장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 심지어 최원일 함장은 피격 당시 충격으로 함장실 문이 찌그러져서 천안함과 함께 수장될 뻔 했다. 구조된 후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세계 해전사를 봐도 잠수함에 의해 수상함 잃었다고 중죄인으로 처벌하는 사례는 드물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위 라인을 전부 중죄로 다스리란 말이 얼마나 억지인 지 육군 출신이 많으니 육군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자.

1) DMZ 순찰 중 북한군이 소음기를 장착한 저격 소총으로 병사 저격
2) 현장에서 당장 알 수 없으니, 사주 경계를 하고 부상자 구조하고, 상급 부대에 지원 요청했음.
3) 이후 근처에 관통된 탄두를 찾아보니, 북한군이 쓰는 탄환이며, 해당 탄환에서 전사한 병사의 DNA가 발견되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짐.

여기서 정찰조장(천안함 함장)이 처벌을 받아야 하나? 지원 부대 보내준 상급 부대(링스 대잠 헬기를 급파시킨 합참)가 처벌을 받아야 하나? 아니면, 수풀 속에서 놀라 뛰쳐나간 고라니를 향해서 일제 사격한 인접한 정찰조의 조장(천안함 근처에 있다가 2차원 대공 레이더에 찍힌 새떼를 사격한 속초함 함장)이 처벌 받아야 하나? 이순신이 녹둔도에서 패했다는 장계가 올라간 뒤, 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참해야 한다는 대간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그냥 백의종군으로 끝냈다. 잠수함에 뚫렸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는, 전쟁을 알지 못 하는 대간들의 이순신을 참하라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도의적 책임만으로 처벌 한다면 목이 남아날 군인은 없다.

4.1.5. 구 일본군의 미개한 정신론에 입각한 신상철의 주장


신상철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 맞다면, 천안함 함장 이하 승조원들은 경계 실패자라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이들이 입으로 진보와 수구 척결을 외치면서도 자신들조차 진정한 수구인 일제의 미개한 잔재인 구 일본군의 정신론에 입각한 사상에 빠져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제는 우리의 정신에 많은 것을 남겼다. 신상철은 장비의 부실함에도 불가항력적 일에도 실패는 처벌해야한단다. 진정한 일제식 미개한 사상이다. 진정한 토착왜구가 누군지 자각하자. 경계에 실패하면 사형이란 것부터 대체 어디서 온 뇌피셜인지 모르겠다. 군 형법부터 보자.

제22조(항복) 지휘관이 그 할 바를 다하지 아니하고 적에게 항복하거나 부대, 요새, 진영, 함선 또는 항공기를 적에게 방임(放任)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제35조(근무 태만) 근무를 게을리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항 지휘관 또는 이에 준하는 장교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적과의 교전이 예측되는 경우에 전투준비를 게을리한 사람

자, 최원일 함장이 그 할 바를 다 하지 아니하고 적에게 항복하거나 함선을 방임했는가?

ㆍ소나를 끄고 다니라고 하길 했나
ㆍ레이더를 끄고 다니라고 했나
ㆍ음탐관에게 음탐하지 말라고 했나?
ㆍ소나와 레이더 정비를 하지 말라고 하길 했나?

대체 무엇을 보고 그가 함선을 방임하거나 전투준비를 게을리 했다고 했는가? 최원일 함장이 할 바를 다 하지 않았다? 함장이 먼저 도망이라도 갔나? 패닉에 빠져서 "아몰랑"으로 일관했나? 최원일 함장도 함장실 문이 찌그러져서 수장될 뻔하다가 초기에 구조됐다. 이후 보고와 사후 조치, 구조 지휘에 그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했다. 함미와 연돌부위는 이미 피격 즉시 침몰하거나 뒤집혔다. 어떤 장비와 사람이 근처에 있었어도 구할 수 없었다. 함수에서는 폭심지에서 가장 가깝던 자이로실을 제외한 곳에 58명의 생존자는 전부 최원일 함장의 구조 지휘 하에 살아남았다. 부하들 다 죽였다고? 부하를 죽인 건 북괴군이다. 북괴군의 공격으로 수 분 내 돌아가시지 않은 분들은 전부 함장 구조지휘 하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생존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이함했다. 이것이 함장의 책임있는 모습이며 품격이다. 이것만으로 그는 영웅이다. 실제 정상적인 국가는 군함에서 피격 후 생존자들이 성공적으로 이함한 것만으로도 영웅 대접을 한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다.

다음은 수소이탈의 죄를 보자

제27조(지휘관의 수소 이탈) 지휘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수소를 이탈하거나 배치구역에 임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 사형
2. 전시, 사변 시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
3. 그 밖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최원일 함장이 천안함을 이끌고 정당한 사유 없이 수소 이탈했는가? 경계 실패가 총살이란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군대서 간부들은 지금도 전시 즉결처분으로 위협을 하지만 즉결처분은 1951년에 남용에 의해서 폐지됐다. 이때 운전병이 시동 꺼트렸다고 즉결처분하던 시대니 임의대로 초병을 즉결처분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 시절 논리와 광기 더 거슬러올라가 전근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신상철은 진보를 외치면서도 미개한 일제의 잔재인 정신론을 읊고 있다. 그럼 그런 미개한 전근대 신민국가 일제가 아닌 근현대 국민국가는 배를 잃은 함장을 어떻게 대우했나 볼까?

2차 대전 때 존 F 케네디 항해 중위가 이끌던 어뢰정이 야간 해무 상황에서 갑자기 조우한 일본 구축함의 충각 공격으로 반파된다. 이 때 정장 케네디는 구조지휘와 구명정을 끌고 인근 섬으로 피신해가며 승조원들을 구한 공로로 전쟁 영웅이 된다. 해무 상황에서 시야가 제한되고 갑자기 조우한 어뢰정보다 수배 이상 킨 구축함의 충각 공격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고 그 이후 승조원 구조 지휘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그는 훈장을 받고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일제식 사고관을 가진 신상철말대로라면 뻔히 수상에 있는 일본 구축함을 보지 못하고 충돌한 레이건은 사형 당해야 마땅하지만 정상 국가인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공격기의 저공 공대함미사일 공격으로 1급 방공함이던 셰필드를 잃은 샘 솔트 함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해군에 남았으며 이후 셰필드의 함장은 피격원인을 연구하고 해군에 피격원인과 침몰 원인에 대한 조언을 해서 이후 영국해군은 저고도 방공 능력과 데미지 컨트롤에 대한 향상을 할 수 있었다. 셰필드의 함장은 중령에서 소장까지 진급한다. 레이더의 고질적인 성능상의 문제였지 함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영국 또한 신상철과 달리 미개한 일제식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았기에 샘 솔트 함장을 우대한 것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순양함 벨그라노를 잃은 헥토르 본조 함장은 그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해군 본부로 갔으며 대령으로 명예롭게 전역한다. 마찬가지로 소나 자체가 잠수함을 탐지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2000년 USS 콜 테러 사건 당시 잠수함도 아닌 눈에 뻔히 보이는 자살보트가 USS 콜에 자살 공격을 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평시 외국 항구에서 민간 보트가 지나가는 것을 제재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로 경계근무 태세에 문제가 없던 점을 들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독재국가 아르헨티나 또한 신상철 같은 인사처리를 하지 않는다.

반면 극히 부실한 대잠 성능을 가진 천안함에 장병들을 태워서 NLL을 지키게 하고서는 잠수함을 탐지 못하였다고 천안함 장병들을 경계실패자, 패잔병으로 몰아가는 신상철은 과연 근현대 국민국가의 마인드를 가지셨나? 미개한 전근대 문화를 가진 독재국가 구 일본제국의 마인드를 가지셨나? 정상적인 근현대 국민국가처럼 배 잃은 함장도 실전경험을 높게 쳐주고 등용하고 활용하는게 정상일까? 일본처럼 홀대라고 죽으라고 몰아세우는 게 정상일까? 선택하라, 자신의 정체성이 당신들이 증오하는 미개한 구 일본군의 신민인가? 정상적인 현대국가의 민주 시민인가?

해군 승조원은 사람이다. 사람은 나서 제 역할을 하는데 20년 가까이 걸리며 그런 사람들 훈련 시켜서 해군 장병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귀중한 자원이다. 해군에게 이함이란 유사시 이 가장 귀중한 자원을 얼마나 보존하냐는 중차대한 문제다. 따라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함선을 잃었어도 이 이함과 구조작전을 잘 수행한 함장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해군은 실전 이함을 훌륭하게 수행한 함장을 영웅시하며 군에 남게 하여 활용한다. 실전 이함은 싑게 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전세계 해군에서 피격 사태에서 최원일 함장만큼 훌륭한 실전 이함을 한 현역 해군 장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당초 국가 간 전쟁에서 해군함이 피격되어 격침될 정도의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미 해군에도 없던 훌륭한 인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 일본군의 정신론에 입각한 자칭 진보를 외치는 천안함 음모론자들의 눈치 때문에 해군은 최원일 함장은 끝까지 한직에 박아두고 박해했다.

4.2. 한미연합대잠훈련 중이었는데 탐지 못한 것이 수상하다.

파일:유시민억지.jpg
(출처: JTBC 썰전 18.03.02 방송분)

신상철, 유시민을 비롯한 음모론자들로부터 제기된 "당시 백령도 근해에서 한미연합대잠훈련 중이었는데 북한 잠수함이 탐지 되지 않았으니 수상하다."라는 의혹이다. 특히 신상철은 한미연합 대잠훈련 중 아군 잠수함과 충돌 했다고 주장한다.

4.2.1. 한미연합함대는 백령도 근해에 있지 않았다.

당시 프레시안AP통신을 인용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한미연합대잠훈련이 있었다고 보도 했다. 더불어 "한국 해군은 사건 현장으로부터 170km 떨어진 서격렬비열도에 있었다고 했는데 미군은 75마일(120km) 떨어진 근해에 있었다고 했네?"라며 마치 국방부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도 했다. # 그러나 프레시안의 이 보도기사는 전형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이다. 거짓말만 안 했을 뿐이지 한국군이 거짓말을 했다는 가짜뉴스를 던지고 있다. 국립해운조합서 당시 훈련 구역 좌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국제법에 의해서 반드시 민간과 주변국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훈련 구역은 조작 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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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서해안 ~ 군산 서방 ~ 해상훈련

○ 일 시 : '10. 3.23(화) 07:00 ~ 3.28(일) 09:00 / 6일간

○ 구 역 : 아래지점을 연결한 선내해면

(1) 37-00-00N, 124-30-00E

(2) 36-00-00N, 124-30-00E

(3) 36-00-00N, 126-25-00E

(4) 37-00-00N, 126-10-00E

(5) 37-00-00N, 125-55-00E

(6) 37-05-00N, 125-40-00E

(7) 37-00-00N, 125-30-0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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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좌표를 토대로 훈련 구역을 그려보면 굉장히 넓다. 대잠훈련 구역이 좁으면 잠수함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16]

파일:10.03.26당시대잠훈련장소.jpg

결론적으로 한국군 말도 맞고 미군의 말도 맞다. 훈련 구역이 넓어서 가까운 곳은 백령도로부터 90km, 먼 곳은 200km가량 된다. 우리 측과 미국 측 함선이 어디에 있었냐에 따라서 120km가 될 수도, 170km가 될 수도 있던 것이다. 게다가 프레시안은 근해라는 단어를 써가며 독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혼동을 주고 있는데 대양해군미해군에게 근해의 개념과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느끼는 근해의 개념은 다르다. 프레시안은 이를 무시하고 미군이 근해라고 발표한 것을 대중을 향해 거짓선동을 한 것이다.

4.2.2. 천해에서 100km 밖 잠수함을 수상함에서 탐지하는 기술은 없다.

잠수함은 수중에서 전기모터로 움직인다. 소나 탐지 거리가 100km라는 소리는 100km 떨어진 전기 모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주장인데 천해에서 그 정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상함 소나는 없다. 판매 홍보용 카달로그에도 양심상 못 적어 넣을 소리다. 냉전 시기 미국이 소련의 잠수함을 수 백km 밖에서 찾을 수 있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수심이 깊어 deep sound channel이 존재하는 대서양의 특수한 환경조건과 미국이 심해에 대규모로 구축한 SOSUS의 존재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고 추가로 상시 소음을 발생시키는 소련 원잠의 특성과 소음감소에 신경을 덜 쓴 당시 소련 잠수함 설계사상도 한몫 했다. 그나마도 소련 잠수함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려면 수상함이나 잠수함이 직접 가서 접촉해야 했다.

반면 서해의 환경은 수심이 극도로 얕아 음파가 멀리까지 전파될 수 없고 2010년 당시 서북도서 인근에는 SOSUS와 같은 음향탐지시설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하여 직접 소나로 탐지하는 방법뿐인데 당시 해당 해역선 AN/SQS-58 함저소나[17]를 단 포항급 초계함 14번함 천안함과 19번함 속초함 뿐이었다. 포항급 초계함은 소나도 하나 뿐이다. 게다가 북한의 기술력이 떨어져서 잠수정의 소음억제를 못했다치더라도 디젤 잠수함 특성상 모터를 끄고 매복 중이면 바위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원잠과는 다르게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탐색 난이도는 엄청나게 어려워지며, 이런 상황에서는 잠수함이 어디쯤 있는지 미리 알고 있어도 소나에서 접촉이 안 돼서 못찾는 일도 허다한 수준이다. 장보고급 잠수함 문서의 활약 항목 참조하자. 미 해군 측은 한국해군 잠수함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고서도 수색에 실패했다. 심지어 이때 장보고급을 수색할때는 P-3 오라이언 대잠초계기에 당시에 현역이던 S-3, 시호크 대잠헬기 그리고 같은팀으로 가상전투를 하던 국가들의 초계기들이 소노부이를 작정하고 마구 투하하고 나서야 겨우 알아낸 정보였다. 하물며 서해 환경의 훈련구역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매복중인 디젤 잠수함을 찾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최첨단인 줌왈트급 구축함AN/SQS-60 소나조차 대잠 탐지 거리는 30km가 안 된다. 2019년 현재 세계최강 군대의 최신함의 함수 소나 탐지거리가 30km가 안 되는데 2010년 당시 90~200km 떨어져있던 한미연합함대가 천해인 서해 해저 지형에 매복한 북한 잠수함을 90~200km 밖에서 찾는 것은 SF의 영역이다.

서해는 천해라 평균 수심이 40m밖에 안 되기에 소리가 절대 멀리 못 간다. 다음 사고 실험을 해보자, 반지름이 6,370km인 반구를 그리고 반지름이 6,369.96km인 반구를 동심이 되도록 그려보자. 이게 평균 수심 40m인 서해의 2차원 모델이다. 반지름이 6,370km인 반구의 곡선에 점 하나를 찍고(이게 수상함) 그 반구에서 곡선상으로 100km 떨어진 지점의 수심 20m에 점 하나(이게 잠수함)를 찍어보자. 그리고 그 두 점이 만나기 위해서 수중을 나가지 않고 몇개의 직선이 필요할 지, 그 직선의 총 길이가 얼마나 될 지 생각해보자. 북한 잠수함의 모터 소리가 지각과 맨틀을 뚫고서 직선으로 100km 떨어진 이지스함의 소나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음향은 발원지에서 방사형으로 전달되며 해저의 특성 상 굴절과 반사를 거듭하며 감쇄 된다. 전기 모터의 소리가 수심 40m의 공간에서 수면과 해저를 번갈아가며 찍고서 수 백km나 퍼진다고? 저소음으로 설계되지 않은 공장 설비의 소리도 100km까지 가지 않는다. 천해는 얕은 수심과 각종 소음으로 인하여 절대 원본의 소리가 멀리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당장 해저에 비해서 제약이 없는 지상에서 100km 떨어진 전기 모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비도 없다. 지상에서 그런 장비를 구현 못한다는 것은, 천해에서도 구현 못한다는 이야기다.

소나는 고주파, 중주파, 저주파 소너로 나뉜다. 중저주파는 소리가 멀리까지가지만 반대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액티브핑으로 중저주파를 쏠 때도 소리가 꽤 멀리까지 갔다고 돌아오지만 해상도가 낮아서 정확한 표적의 위치, 해저지형을 알 수가 없다. 반대로 고주파는 표적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히 추정 가능하고 액티브핑을 쏴도 해상도가 높아서 해저지형을 스캔할 수 있다. 그래서 고주파 소나는 해저 지형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미 해군의 최고성능 구축함줌왈트급 구축함의 저주파 소너인 AN/SQS-60 소나는 액티브핑 사거리기 29.6km지만 고주파 소너인 AN/SQS-61 소나는 액티브핑 사거리가 불과 1,9km에 불과하다! 소나는 대역별로 각 역할이 있는 거다. 스타크래프트 과학선처럼 자동으로 탐지하는 것이 아니다.

4.2.3. 미해군도 수상함 소나 하나로 잠수함을 탐지 할 수 없다.

파일:대잠작전개념도.jpg

파일:대잠작전개념도2.gif

해저에서 소리는 수온층, 해저 지형, 염분층, 조류로 인한 단절로 인하여 왜곡되고 감쇄 된다. 게다가 온갖 해양 생물과 조류가 내는 소음으로 묻히며, 근처의 선박들이 내는 소음까지 더하면 수상함 자체의 소나만으로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수상함의 소음서 멀어지기 위하여 예인 소나를 끌기도 하며 최근에는 대잠 작전 시 수상함의 소음을 최소로 줄이기 위하여 전기 추진 시스템까지 차용하는 추세다. 하늘에선 대잠 항공기가 소노부이, 디핑소나, 자기장 탐지 심지어 폭음탄까지 사용하여 해저를 훑는다. 잠수함 1척을 탐지하기 위하여 3~5척의 수상함과 여러 기의 대잠 헬기와 1~2기의 대잠초계기가 동원된다. 이것도 그 현장에 있어야 할 전력이고 3직제로 뛰어야 하니 1척을 탐지하기 위해선 저 전력의 최소 3배가 필요하다. 수상함 소나만으로 100km 떨어진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면 전세계 강대국 해군이 수 십조, 수 백조 원을 들여서 다양한 대잠경계망을 구성할 이유가 없다.

4.2.4. 잠수함 탐지 실패 사례

당시 해역에는 70~80년대에도 저가형 소나던 AN/SQS-58 소나를 단 천안함과 속초함 밖에 없었기에 당했지만 더 고성능의 대잠 플랫폼을 대량으로 가지고도 잠수함 탐지에 실패한 사례가 많다.
  • 2015년 미 항공모함 전단이 중국 잠수함에 추격당한 사건 #
  • 2009년 대서양을 초계하던 영국 해군의 뱅가드급이 프랑스의 르 트리옹팡급과 충돌한 사건. [18] 양 측 모두 소나를 한 두개만 단 잠수함이 아니다. 온갖 첨단 소나는 전부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탐지하지 못하여 충돌하고 말았다. 21세기 들어서 원자력 잠수함조차 그 은밀성이 향상 되었다는 사례다.
  • 2009년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방공 구축함 존 S 메케인함이 끌던 예인 소나가 중국 잠수함을 탐지하지 못하고 충돌했다.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끌고 다니던 예인 소나가 잠수함을 탐지하지 못하고 충돌한 것이다. #
  • 장보고급 잠수함의 림팩 훈련 당시 활약상 참조
    • 림팩 2004때 대한민국 해군 장보고함이 미 해군 니미츠급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함 등 30여 척을 가상격침했다. 심지어 니미츠급은 당시 미 해군 최정예 항공모함이다.
  • 2006년 10월 26일 서태평양에서 작전하던 항공모함 키티호크 5마일 밖에서 중국 해군 쑹급 잠수함이 부상한 적이 있다. 부상할 때까지 항모전단에서는 탐지 하지 못했고 미 해군은 경악했다. 쑹급 잠수함은 원자력 잠수함도 아니고 디젤 잠수함인데도 항모전단 사이를 뚫고 부상한 것이다.#
  •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은 감청을 통하여 아르헨티나 수뇌부가 포트 스탠리 근해에 209급 잠수함 산 루이스를 출동 시킨 사실을 알아냈다. 5월 1일, 영국 해군은 22형 호위함[19] 브릴리언트와 12형 호위함 야무스, 시킹 대잠헬기 3기, 링스 HAS2 대잠헬기 2기, 워스프 HAS 1 대잠헬기 1기를 동원하여 산 루이스를 찾아다녔다. 심지어 시킹 대잠헬기는 수상함 헬기데크 위에서 호버링 하면서 급유 호스를 연결하여 주유하는 HIFR를 하며 10시간씩 작전했다. 조종사 또한 로프를 통하여 호버링 중에 교대하였다. 그러나 찾는데 실패하였다. 5월 11일,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 산 루이스는 영국 해군 21형 호위함[20] 애로우와 얼래크러티를 발견하고 어뢰를 발사하지만 영국 호위함 2척은 산 루이스를 탐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래크러티가 예인하던 어뢰기만기[21]가 산 루이스가 발사한 어뢰에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안 뒤였다. 바로 그 영국이 구 소련의 잠수함에 대항하기 위하여 건조한 전문 대잠호위함 4척과 대잠헬기 5기가 잠수함 1척에 농락 당한 것이다. 영국은 6월 14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200발의 어뢰와 수 백 시간의 대잠헬기 비행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놓쳤다. 해당 해역이 천해였기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에게는 숨을 곳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해군은 미국제 구피급 잠수함 산타페는 부상 중 영국 대잠헬기에 탐지 당하여 AS-12 공대함미사일에 피격되어 격침 당했다.[22]
  •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의 프랑스제 Daphne급 잠수함 PNS hangor는 인도 수상함대를 안 들키고 돌파했는데 심지어 FIJI급 순양함 Mysore의 바로 옆으로 지나가도 들키지 않았다. 71년 12월 3일, 인도해군은 소나를 탑재한 영국제 블랙우드급 대잠호위함 INS Khkuri와 INS Kirpan을 파견한다. 동년 동월 4일 파키스탄 해군은 PNS hangor에게 인도 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력을 내린다. 9~10일 사이 통신감청을 통하여 서로가 같은 지역에 있음을 알았다. 같은 날 PNS hanger는 INS Kirpan에게 19시 57분에 유도어뢰를 발사했다. 첫 어뢰는 유도는 되었지만 폭발하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INS Kirpan은 어뢰가 지나치고 나서야 어뢰 공격을 감지했고 최고 속도로 해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즉, 이 시점에서 인도해군은 잠수함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단 것을 감지했다. 이 때 남쪽에서 INS 쿠크리는 어뢰의 방향을 관측했다. 즉, 잠수함이 근처에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방위까지 알아낸 것이다. INS Khukri는 곧장 속도를 높혀서 공격에 들어갔다. 이 때 PNS Hangor는 두 번째 어뢰를 발사했고 용맹하게 공격을 들어오던 INS Khukri는 탄약고에 어뢰를 맞고 격침 당한다. 이를 본 INS Kirpan은 폭뢰를 떨궈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 들어왔지만 세번째 어뢰를 함미에 맞고 손상되어 현장을 이탈한다. 파키스탄 해군의 잠수함이 인도 해군 순양함의 바로 옆을 지나며 통과하고 인도해군의 영국제 고성능 대잠 호위함 2척에게 대략적인 위치를 발각 당한 상태에서 1척 격침, 1척 소파의 전과를 올린 것이다. 전문 대잠 호위함도 잠수함 1척에게 유린 당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잠수함의 적 군함 격침 사례다.
  • 1944년 5월 18일부터 30일까지 남태평양 부겐빌에 출몰하는 일본 잠수함을 격침하기 위하여 미해군은 구축함 10척을 동원하였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똑같은 소나를 탑재한 미국의 호위 구축함 DE-635 잉글랜드는 혼자서 일본 잠수함 6척을 격침 시켰다. 대잠 작전이라는 것은 해당 해역의 조건과 기상에 따라 그 결과가 상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신상철의 주장대로 소나만 있다고 자동으로 탐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잠수함은 가상적국의 바다에 침투해있다.

4.3. 이해찬의 천안함 음모론 배후 관여 의혹

당시 민주당은 5개국 국제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불신하면서 북한의 소행을 부정하면서도 신상철과는 약간 거리를 두었다. 어느 정도냐면 신씨의 주장이 과격하여 논란이 되자 천안함 침몰 한달여만인 2010년 5월 12일, 신상철을 누가 민주당 추천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위원으로 추천했는지 모르겠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였을 정도다. # 그러나 정작 신상철을 조사단에 참여시킨 사람 자체가 민주당 소속 안규백 의원이며, 민주당 인사들은 신상철과 거리를 두면서도 확실히 내치지는 못하면서도 희한하게 신상철발 천안함 의혹을 믿고 유포했다. 이러한 의아한 행동의 이유는 훗날 신상철의 회고로 밝혀졌다. 신상철의 배후에는 이해찬이 있던 것이다. 신상철은 줄곧 자신의 음모론 방송을 통하여 이해찬과 친분을 과시했다. 53분25초부터 최근 신상철이 천안함 음모론 생성부터 이후 천안함 재판까지 이해찬과 깊게 소통했다는 것을 밝혔다. 38분부터 신상철의 뒤에 이해찬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민주당이 신상철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거리를 두면서도 내치치 못하던 분위기가 설명된다.

5. 군 수뇌부에게 피소 및 법원의 침몰원인 판단

결국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1월 25일, 대한민국 법원은 신상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며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로 침몰한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공소사실 34건 가운데 32건을 무죄로 판결한 반면, 2건만을 유죄로 판결했다. 2010년 4월 4일자 'MB정권 선체 조기인양 생존자 구출 원치 않았다'라는 글과 6월 11일자 '천안함 함미 좌현의 스크래치를 지운 김태영 국방장관 증거인멸로 고발한다'는 글이다. 재판부는 "개인의 명예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며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고 경솔한 공격으로, 상당성을 현저히 잃었으며, 비방의 목적 인정돼 유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과 동일하거나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략)
재판부는 △천안함 절단면 분석결과 좌현 하부에 큰 폭발력으로 인해 소성 변형과 워터제트와 같은 외력으로 전단파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되며 △절단이 시작된 위치가 용골 좌현 1.5미터 지점이었으며, 가스터빈 중심에 디싱현상과 함안정기 디싱현상은 강력한 폭발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북한 어뢰 폭발 원인으로 △함수 절단면 주변 선저면 둥근 물방울 모양 페인트 떨어진 버블흔이 발견됐다는 점 △사고당시 공중음파 2회와 지진파 감지 △좌현 견시병 얼굴에 물이 튀었으며 발목이 빠질 정도의 물이 고였다는 진술 △해안 초병이 2~3초 동안 백색섬광을 관측한 것 △사체를 검안한 결과. 파편상 화상 흔적이 발견 안됐고, 골절와 열상이 수중폭발 시 나타나는 현상과 일치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밖에도 폭약성분 발견, 흡착물질 발견, 1번글씨 등을 제시하는 등 재판부의 사고원인 설명은 합조단 발표 내용과 일치하다시피했다.
출처,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 25. 선고 2010고합1201 판결
신상철의 34건이나 되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게시글 중 당시 정부 관료들이 의도적으로 천안함 전사자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글과 김태영 국방장관이 좌초 증거를 인멸했다는 2건만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나머지 32건은 허위사실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지 비방의 목적이 부인된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군이 구조를 지연시켰다는 신 대표의 주장에 대해 "정부 해군과 당국 당직자들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생존자들이 살아돌아와 침몰원인을 밝히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해상크레인 투입을 늦추고 기자브리핑이나 하면서 고의로 지연하고 있다고 적시한 것"이라며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조속한 구조를 촉구한 것이 아니라 위 책임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침몰원인 조작할 시간 벌기 위해 생존자들이 살아돌아올 수 없도록 했다고 단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표현도 자극적이고 경멸적"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김태영 장관을 고발한다는 신 대표의 글에 대해 "인양 직후 페인트 벗겨진 부분과 녹이 슨 부분 상대적으로 옅게 보일 수 있으며, 합조단 위원이 면밀한 관찰했으나 피고 주장처럼 스크래치가 지워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재판부도 현장 검증에서 벗겨내거나 다시 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고, 스크래치라면 단시간 내 없앨 수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해보면, 천안함 좌현 스크래치에 있던 것을 김태영 장관이 없앴다는 주장은 허위 사실"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검찰이 기소한 34건 중 32건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 발표와 다른 침몰원인 주장하는 것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피고인 게시 글 중 주요 내용은 침몰사고는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이 북방한계선 갑자기 침몰한 초유의 사건으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이므로 사고원인과 조사과정, 기타 군 대응에 대해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공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이 침몰원인과 관련해 나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진실을 밝힌다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비방의 목적이 부인된다"고 밝혔다.
출처
2020년 10월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2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34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 서울고등법원 2020. 10. 6. 선고 2016노444 판결

하지만 여전히 법원은 천안함은 북함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폭침되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 소행이라고 판단한 1심 판결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윤 재판장은 △천안함 견시병들이 물기둥을 못봤을 수 있고, 백령도 초소 경비병이 섬광을 봤기 때문에 이들이 물기둥도 목격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화약냄새의 경우 김용현 병장이 법정에서 화약냄새가 어느 정도 있다고 증언했고 △함수 형광등이 깨지지 않은 것은 주변의 다른 형광등이 다 깨졌다는 점에서 그 형광등에만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합조단이 주장한 공증음파와 지진파의 버블주기 측정치가 수중폭발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근거라며 과학기술상의 한계로 완벽히 재현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분석에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어뢰추진체의 경우 재판부는 북한에서 제작한 CHT-02D의 설계도면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어뢰추진체의 부식정도가 50일 정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의혹에는 막 인양했을 때는 심하게 녹슬었다고 보기 어렵고, 인양히 급격히 산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신상철의 주장은 모두 허구라고 판단했다.
윤 재판장은 1심 재판에서 유죄로 판단한 신 전 위원의 2010년 4월 4일자 '서프라이즈' 게시글 '군이 의도적으로 실종자 구조를 고의 지연했다'는 주장의 경우 "허위사실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피해자를 특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 재판장은 "신 전 위원이 글에서 구조인양 지연 주체를 MB정권과 해군당국자로 써, 구체적으로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다"며 "게시 내용도 감시를 위해 자료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으로서 구조나 인양을 지시하는 개인들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이나 해군참모총장이라고 특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윤 재판장은 "초기 실종자 수색 및 구조가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며, 피고도 실종자 구조중단 요청으로 해군에게 조속한 구조 인양을 촉구하는 면으로 보인다"며 "구조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다수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본 점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며 비방 목적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부분 원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며 파기한다고 했다.

1심에서 유죄판결한 '군이 스크래치를 없애 증거를 인멸했다'는 신 전 위원의 2010면 6월11일자 서프라이즈 게시글을 두고 윤 재판장은 "천안함에 있는 페인트를 발견하지 못했고, 비밀리에 고압세척했다는 피고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는 면에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스크래치 있었던 것을 없앴다'는 주장 허위사실"이라면서도 "허위성을 인식하면서 허위사실 적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방목적에 대해서도 윤 재판장은 "피고인이 허위성 인식있었다 해도 실제로 스크래치 흔적에 훼손된 것 의문을 품을 만한 사정이 있어보인다"며 "정보를 투명히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목적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지적한 점을 종합적으로 볼 때 허위성의 인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비방목적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인정하지 못한다"며 "피고의 주장이 이유있다"고 했다.
신상철의 주장은 모두 허위지만 신상철이 당시에는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이 허위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고 허위 주장으로 피해를 입히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아서 신상철의 허위주장이 형사상 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신상철과 그 추종자들은 신상철의 주장이 법원에서 합당하다고 인정받아서 무죄가 선고된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2020도14513 판결문 전문

이후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과 김성찬 전 해군참모총장을 직무유기와 미필적 고의로 의한 살인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면서 여전히 반성 없는 행적을 이어가고 있다.

6. 천안함 생존장병과 유족들에게 피소

위 법원의 판결은 2010년 4월 당시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군 참모총장, 헌병 지휘관 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한 사건이다. 법원은 당시에 정보가 부족했고 피고인 신상철이 본인의 주장을 믿을 만하고 하여 그의 주장이 허위사실이지만 무죄를 준 것이다. 즉, 위 법원의 판단에서 피해자는 천안함 생존장병과 유족이 아니다.

2022년 3월 31일, 최원일 함장과 모든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신상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신상철이 단순히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여 피소된 것이 아니라 승조원들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했기 때문이다.

"천안함 승조원들이 천안함 을 좌초 시키고 몰래 뒤로 빼 낸 뒤 침수가 발생한 상태로 잠수함과 충돌케 했다.", "어뢰라고 허위보고 했다.", "모사 위증했다." 등 뉴스1

7. 음모론 장사와 후원 구걸

대선 무효 소송을 하겠다며 이재명 지지 커뮤니티에서 후원금을 구걸하여 많은 후원금을 편취했다. *

신상철은 허위성을 인지한 자신의 주장을 내용으로 출판을 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매체에서 천안함의 진실을 밝힌다며 후원을 요구한다. 무려 한달에 400만원에 달하는 후원을 고정적으로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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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은 음모론을 팔면서 월1만원 CMS 정기후원을 요구하고 있다. 2022년 12월 29일 자신의 방송에서 감사하다면서 그 명단을 공개했다. 정기 CMS 후원만 총 365명이다. 신상철이 정한 CMS 월 최소 금액이 1만원이므로 신상철은 최소한 월 365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만원 이상 후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도의 고액 후원자 명단까지 공개하였으므로 신상철은 월 평균 4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신상철은 아내가 중학교 퇴임 교사다. 여기서 막대한 부부 생활비는 걱정 없다. 아들은 변호사, 딸은 의사다. 그 외의 수익이다. 신상철은 자신의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에서 400만원이라는 막대한 용돈을 음모론을 팔아서 벌고 있다.

2022년 4월 12일, 천안함 유족들에게 사자 명예훼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죄로 고소당했다. 특히 신상철은 유족들이 천안함이 잠수함과 충돌하는 영상을 보고도 서약서에 싸인을 하고 보상금과 훈장에 눈이 멀어 진실을 조작하는데 동참했다는 주장을 여러번 하였다. #


[1] 지금이야 간첩선하면 반잠수정과 잠수정이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포항급과 동해급 초계함들이 대량 건조되기 전에는 고속정이 간첩/공작선의 주류였다. 해군에서 S-2 트래커를 도입한 배경도 이러하다.[2] 근거는 다름 아닌 함종이 '초계'함이니까 초계를 위해선 대잠전 수행능력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3] 스크롤을 쭉 내리다 보면 독고탁이 쓴 글 제목들이 보인다.[4] 그 이전에 해당 채널을 통해 천안함 음모론에 대한 1시간 16분짜리 반박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영상 링크는 이쪽으로.[5] 신상철은 천안함 음모론뿐만 아니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까지 북한 소행을 부정하며 음모론을 펴고 있다. 실제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히 북한 소행임을 부정하는 설명회를 하고 다닌다. 그 외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 서해에서 남북 간 교전은 북미 간 자작극 등 음모론을 오래 전부터 설파했다. #[6] 미 해군의 최첨단 구축함인 줌왈트급 구축함의 AN/SQS-60 중주파 소나조차 탐지거리가 30km가 안 된다.[7] AN/SQS-58 소나는 천안함이 건조되던 80년대 당시에도 저가형 소나였다.[8] 포항급 초계함은 만재 배수량 1,200t이다.[9] 20세기 초중반에 코르벳이 잠수함을 사냥하긴 했다. 다만 이 때 잠수함은 상시 잠수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몇 시간 잠항 하는 것과 불과 했고 무장도 빈약했기 때문에 잠수함이 부상 했을 때 함포 사격과 충각으로 잡았다. 아래 잠수함 충돌설 반박 항목에도 코르벳이 잠수함을 격침한 사례가 있다.[10] 물론 초계함의 체급은 연안에서 초계하기에 적당하다.[11] 옆에 사람과 비교해보자.[12] 통신소 당직 사관들이 놀다가 못 듣고, 술 처먹고 잔다고 못 들었다.[13] 일개 통신소 당직 사관이 '지금 와서 우리 배가 당할리 없다. 이건 일본 해군의 음모다.'라고 멋대로 판단하여 무시.[14] 당시 생존 장병들은 맥베이 제독을 어드미럴(제독)이라 부르지 않고 끝까지 캡틴(함장)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는 자신들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함장에 대한 존경과 예우의 표시.[15]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함을 날려먹은거나 다름 없었다.[16] 대잠 작전 시 수상함의 각종 소나가 수중을 훑고 공중에선 대잠초계기가 소노부이를 투하하고 대잠헬기가 디핑소나를 담근다. 훈련 구역이 지나치게 좁을 경우 대잠초계기가 미리 경로마다 소노부이 투하하여 잠수함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수상함과 대잠헬기로 조여나가기 쉽다.[17] 80년대 당시에도 저가형이었다.[18] #[19] 냉전기 구소련의 잠수함에 대항하여 대잠임무를 맡았다.[20] 역시 대잠함이다.[21] 음향유도어뢰를 기만하기 위하여 본함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22] 대잠전은 이렇게 같은 전쟁에서도 그 결과가 상이하게 다를 수 있다.[23] 아르헨티나는 전쟁 전에 2척을 영국으로부터 구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