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성 김'에 대한 내용은 金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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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용 김 Sung Yong Kim | |
한국명 | 김성용(金星容) |
본관 | 경주 김씨 |
출생 | 1960년 ([age(1960-01-01)]세)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현직 | 현대자동차그룹 대외협력·PR담당 사장 |
종교 | 개신교(침례회) |
학력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행정학 / 학사)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로스쿨 (법학 / J.D.)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 (법학 / LL.M.) 가톨릭대학교 (행정학 / 명예박사) |
경력 |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제22대 주대한민국 미국 특명전권대사 제31대 주필리핀 미국 특명전권대사 주인도네시아 미국 특명전권대사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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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외교관 출신 기업인.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식 이름은 김성용(金星容).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6자회담 수석대표, 주한미국대사, 주필리핀 미국대사,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 겸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역임했다. 2023년 공직에서 퇴임하였으며, 현대자동차의 고문을 맡고있던 중 2024년 11월부로 현대자동차 대외협력·PR담당 사장에 임명되었다.
2. 생애
1960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서 부친 김재권(1926. 4. 5 ~ 1994. 6. 23)[1]과 어머니 풍천 임씨 임현자 사이에서 태어났다.은석초등학교 4학년 때 주일 공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다가 아버지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에 개입되자 이듬해인 1974년 온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망명하였고, 성년이 된 1980년에 미국인으로 귀화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행정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스엔젤레스 잠시 검사 생활을 하다가 도중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동시에 우연히 외교관 시험을 접하여 한 나라를 대표해 외교 관계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으로 외교관이 됐다.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해서 모국어는 한국어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를 구사한다. 사석에서는 한국 측과 한국어로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6자회담 미국측 대표단으로 활동했지만, 당시 북한이 핵무장을 다시 본격화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재직하며 잠시 한반도 정세와는 거리를 두는 듯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며 다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맡은 경험이 있다.
3. 행적
3.1. 제22대 주한미국대사
주한미국대사로 재직하며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였다. 네이버 블로그 @ambsungkim 한국 생활 중 SBS 〈좋은 아침〉에 부인과 함께 출연하였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게 서울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3.2. 주필리핀 미국대사
주한미국대사를 임기를 마친 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역임하던 중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임명됐다. 그리고 2016년 9월 28일 연방 상원 전체회의에서 인준이 승인됨에 따라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필리핀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따라 성 김 대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 대사를 두 차례나 맡는 기록을 세웠다.성 김 대사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이자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로서 외교 현안들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특히 취임과 함께 초강경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인권 이슈 등으로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잇달아 미국을 겨냥한 강성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도 맡게 됐다.
3.3. 북미정상회담
2018년 2월 미국 외교관 최고위직인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 칭호를 받았다. 2018년 5월말 2018년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미국측 실무회담 대표단을 이끌면서 다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일선에 서게 되었다. 서울의 포시즌즈 호텔에 머물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에 관련하여 실무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에도 개최지인 싱가포르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실무회담을 벌였다.3.4.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으로 임명받았다.#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완성되어가는 가운데, 대북정책에 있어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의사를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3.5.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만나서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스티브 비건이 맡았던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 임명되었다.이후 2021년 6월 19일 방한하여, 6월 21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와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노규덕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당시 일본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회동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한미워킹그룹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았다.
2021년 6월 22일에는 이인영 전 통일부장관과 접견하면서 한미 양국은 대화와 외교를 통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공동의 약속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면담을 한 후 6월 23일에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2021년 8월 21일에 다시 방한하여, 8월 23일 노규덕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관련 논의를 하였다.
4. 여담
-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서울에 살았던 이민 1.5세대라서 한국어도 유창하다. 하지만 주한 미국대사 시절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계 이민자인 그가 공석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국익을 우선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받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기에 문제 없이 처신한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 임기 막바지에 SBS 〈좋은 아침〉에 가족과 함께 출연했을 때에는 성 김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한국어를 사용했다.
- 그가 주한미국대사로 내정된 후 성 김 대사의 아버지인 김재권 전 주일공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주목받았다. 김재권 전 주일공사는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연루되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희호 여사는 "성 김 내정자가 납치 사건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뭘 알았겠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며 "대사로서 잘 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납치사건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8년 성 김이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납치 사건은 그가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관계가 없는 일이며, 아버지의 잘못으로 아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 가수 임재범과 손지창을 외사촌동생으로 두고 있다. 성 김의 모친 임현자씨와 임재범, 손지창의 부친인 임택근 전 아나운서가 남매이기 때문. 손지창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는 성 김 대사의 외사촌동생이 맞지만 법적으로는 아니다. 임택근이 자기 아들로서 호적에 올리지 않고 외면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임택근 일가 및 친척과 남남 사이이기 때문이다. 손지창 본인도 방송가 고위층의 압력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였을 뿐, 임택근을 부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 사이다.# 정진석이 1993년 한국일보 워싱턴 D.C. 특파원에 부임하면서 워싱턴 현지의 주택을 구할 때까지 보름 동안 워싱턴에 있던 성 김의 집에 기거하기도 했고, 같은 해 성 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정진석이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가서 함진아비 역할을 했다고 한다.
[1] 본명은 김기완(金基完)으로,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나 충주시에서 상당기간 거주했다. 대한민국 공군 장교 출신으로 공군 정훈감을 지냈고, 1958년 일어난 창랑호 납북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전역 후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지배인으로 근무하다가 김형욱의 권유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포섭되었고, 이후 주일 공사가 되었으나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에 개입한 뒤 이듬해인 1974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귀국해 1979년 3월 27일 한국보험공사 사장에 취임했다가 1982년 미국으로 돌아와 1994년 6월 2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