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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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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 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Sinking of the HMS Birkenhead
파일:The_Birkenhead-Troopship.jpg
발생 날짜 1852년 2월 26일 오전 2시경
([dday(1852-02-26)]일, [age(1852-02-26)]주년)
발생 위치 영국령 웨스턴케이프 데인저 곶
선종 수송선
유형 암초 충돌
좌표 34° 38′ 42″ S, 19° 17′ 9″ E
탑승인원 638~643명(군인 617~622명, 민간인 21명)
사망인원 444~450명(전원 군인)
생존인원 193~194명(군인 172~173명, 민간인 21명)

1. 개요2. 배경
2.1. HMS 버큰헤드2.2. 마지막 항해
3. 침몰
3.1. 버큰헤드 정신: 어린이와 여성 먼저
4. 결과5. 버큰헤드의 보물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852년 2월 25일, 영국 해군수송함 HMS 버큰헤드 함이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 근해에서 침몰한 사건. 생명이 달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민간인들에게 구명정을 내어주고 자신들은 침몰해가는 배 위에서 담담하게 최후를 맞은 영국 군인들의 버큰헤드 정신은 전 세계 군인 및 선박직 종사자들의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해상 사건 사고 발생 시 선장, 함장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배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전통인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 역시 이 사고에서 탄생했다.

2. 배경

2.1. HMS 버큰헤드

버큰헤드함은 1845년 12월 30일에 영국 해군의 호위함으로 건조되었다. 그러나 호위함으로 운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전투함에서 외륜을 떼어내고 기존의 추진기를 프로펠러 추진기로 대체해 나가던 당시 영국 해군의 분위기[1]철갑함에 효율적으로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생각된 버큰헤드의 빈약한 무장[2] 문제가 되어 최종적으로는 수송선으로 운용하기로 방향이 정해졌다.

1847년에는 영국 해협에서 여객선 오라시오(Oratio)호와 충돌해 여객선이 침몰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1851년, 버큰헤드가 수송선으로 개수되면서 숙박 시설과 3개의 돛이 추가되었다. 한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는 버큰헤드에 탑승해본 뒤 '당시 목제 돛으로 항해하던 그 어떤 여객선보다 빠르고 편한 군함' 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버큰헤드의 함미에는 그리스 신화의 신 불칸의 형상이 양손에 망치와 천둥을 든 모습으로 조각됐다.

2.2. 마지막 항해

1852년 1월, 버큰헤드는 영국 육군 제2보병연대와 제74연대를 태우고 함장 로버트 새먼드 해군 대령의 지휘 아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버큰헤드의 임무는 알고아 만으로 육군 병력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2월 23일에는 케이프 타운 근처의 사이먼스 타운에 정박해 말과 건초, 석탄을 보급받았다.

침몰 하루 전인 2월 25일, 버큰헤드에는 승조원과 군인, 그들의 가족들을 합쳐 총 643명 내외의 남녀가 탑승해 있었다. 민간인은 21명(남성 1명, 여성 7명, 어린이 13명)이었다.

새먼드 대령은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항해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해안의 조류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버큰헤드는 8노트의 속도로 한밤의 바다를 헤쳐나갔다.

3. 침몰

1852년 2월 26일 오전 2시경, 버큰헤드는 데인저 곶 부근에서 수면 아래 2미터 가량까지 솟아오른 암초와 충돌했다. 이 암초는 파도가 치는 상황에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잔잔한 바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버큰헤드호의 항해사가 미리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새먼드 대령은 즉시 갑판으로 달려가 닻을 내리고 후진할 것을 명령했으며, 구명 보트를 내리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암초와 충돌하면서 생긴 배 밑바닥의 구멍으로 바닷물이 대량으로 흘러들면서 암초와 재차 충돌을 일으켰고, 내부 격벽이 찢어졌다.

2차 충돌 이후 10여분 뒤 뱃머리가 부서지며 밑바닥 앞부분과 기관실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100명에 가까운 승조원이 익사했다. 충돌한 지 20분만에 배는 완전히 부서졌다. 몇몇 생존자들은 해안까지 2.3km를 헤엄쳐 가 살아남았다. 또 몇몇 생존자들은 난파선 조각에 매달려 하루를 버틴 끝에 지나가던 범선 '라이오네스'의 구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국 육해군 장병들은 익사하거나 상어떼에게 죽임을 당했다.

3.1. 버큰헤드 정신: 어린이와 여성 먼저

살아남은 수병들과 병사들은 갑판 위에 집합해 명령을 기다렸다. 버큰헤드의 구명정은 단 5척뿐이었다. 그마저도 한 척은 물에 잠겼고 다른 한 척은 정비 불량으로 고장이 난 상태였기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구명정은 3척이 전부였다. 이 수역은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유일한 육지인 암초는 독성을 가진 해초가 빽빽하게 자라나 있었기 때문에 구명정에 오르지 못한다면 죽음은 곧 확정이었다.

새먼드 대령은 새튼 중령에게 여자와 어린이들을 먼저 구명정으로 보내도록 지시했고, 남는 공간에는 민간인 남성만을 태웠다. 그런 다음, 장병들 전부를 갑판 위에 부동자세로 서 있게 했다. 침몰 이후에도 구명정을 향해 헤엄치지 못하게 했는데, 군인들이 앞다투어 구명정으로 뛰어든다면 구명정에 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사고 7년 이후 스코틀랜드 작가 새뮤얼 스마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록 해양법상 근거는 없으나 오늘날까지도 해난 사고 발생 시 인식으로 자리잡았다.

4. 결과

이 사건으로 영국군 병력 441명이 목숨을 잃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 뒤에야 에드워드 WC 라이트(Edward WC Wright) 육군 대위 등 잔해를 붙잡고 살아남은 소수의 운 좋은 군인 173명 내외(육군 113명, 해군 54명, 해병 6명)만이 구조되어 살아남았다. 반면 그들의 희생으로 민간인들은 전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생존 승조원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함의 침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해군 장교들은 전부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버큰헤드호에는 17마리의 말 또한 타고 있었는데, 말이라면 헤엄을 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3] 새먼드 대령이 바다에 풀어주었다. 8마리의 말은 육지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9마리의 말은 파도에 휩쓸려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군마의 생존률은 100%였다.

1895년, 사고 이후 배들이 버큰헤드가 부딪힌 암초를 피해 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데인저 곶에 등대가 세워졌다.

5. 버큰헤드의 보물

침몰 이후 버큰헤드가 마지막 항해 전 화약실에 금화 24만 파운드를 군자금으로 들고 다녔다는 루머가 한동안 돌았다. 이 소문을 듣고 금화를 찾으려는 탐험가들이 많았는데 위에서 나온 새튼 중령의 조카도 그 중 한 명이다. 1958년에 케이프 타운 정부가 조사단을 파견해 과 골동품 몇몇을 회수했으나 금은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면서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진다.

보물과 금화에 대한 소문으로 찾아오는 불청객들 때문에 버큰헤드의 잔해는 상당히 훼손된 상태였으며, 때문에 1989년 영국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선박을 인양하고 회수한 물자를 나눠 가지는 데 동의했다.

6. 여담

  • 버큰헤드 침몰 사고에서 보여준 새튼 중령의 헌신은 '타군 병력이 동승했다면 그들 역시 승조원으로 간주한다(Soldier an' Sailor Too)'는 원칙도 탄생시켰다. 물론, 민간인이 없거나 다 내린 경우엔 함 승조원들보단 동승한 병력들이 탈출 우선 순위를 갖는다.

7. 둘러보기

역대 영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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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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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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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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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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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27일
22 미 공군 DC-3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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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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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허더스 필드 공장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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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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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931년 헤이그 광산 폭발 사고
1930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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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29년 12월 31일
72 글렌 극장 참사
1928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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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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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R38급 비행선 추락 사고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19년 10월 20일
31 레벤트 광산 사고
1919년 1월 1일
201 ~ 205 로라일호 침몰 사고
1918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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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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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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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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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K13 침몰 사고
1917년 1월 19일
73 실버타운 폭발 사고
1917년 1월 19일
30 E36호 침몰 사고
1916년 12월 5일
35 번보우 탄약 공장 사고
1916년 8월 21일 ~ 24일
40 로우 무어 폭발 사고
1916년 4월 2일
115 파버샴 공장 참사
1915년 6월 22일
226 퀸틴스힐 철도 참사
1915년 5월 27일
352 프린세스 이레네호 침몰 사고
1914년 10월 30일
83 로힐라호 침몰 사고
1914년 10월 14일
439 셍헤니드 탄광 참사
1914년 5월 29일
1014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사고
1914년 1월 16일
58 A7호 침몰 사고
1912년 7월 9일
91 카데비 광산 참사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0년 10월 21일
344 프레토리아 광산 참사

[ 190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09년 2월 16일
168 웨스트 스탠리 광산 참사
1908년 10월 27일
29 야머스호 침몰 사고
1906년 12월 28일
22 엘리엇 정션 열차 충돌 사고
1906년 7월 1일
43 세일스버리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11월 19일
39 왓슨 스트리트 하숙집 화재
1905년 7월 27일
20 홀로드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3월 10일
33 1905년 캠브리안 광산 참사
1903년 1월 27일
52 코니 병원 화재
1902년 4월 5일
25 1902 아이브록스 참사
1898년 6월 21일
34 알비온호 진수식 참사
1896년 4월 30일
82 펙필드 광산 참사
1892년 8월 26일
112 파크 슬립 광산 참사
1888년 9월 5일
63 모리스우드 광산 참사
1887년 9월 5일
186 엑세터 극장 화재
1887년 2월 13일
39 와트슨 광산 참사
1887년 5월 23일
73 우드스톤 광산 참사
1885년 12월 23일
81 마디 광산 폭발 사고
1884년 7월 16일
24 불하우스 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883년 7월 3일
124 다프네호 참사
1883년 6월 16일
183 빅토리아홀 참사
1882년 2월 16일
63 트림돈 그랜지 광산 참사
1881년 10월 14일
189 아이마우스 참사
1879년 12월 28일
59 테이 브리지 붕괴 사고
1878년 9월 11일
268 애버컨 광산 참사
1878년 6월 7일
189 우드핏 광산 폭발 사고
1878년 9월 3일
600+ SS 프린세스 앨리스 침몰 사고
1877년 10월 22일
207 블랜타이어 광산 참사
1874년 12월 24일
34 쉬프톤 처웰 열차 탈선 사고
1874년 9월 10일
25 소프 열차 충돌 사고
1873년 3월 20일
535 SS 아틀란틱 침몰 사고
1871년 2월 24일
38 펜터 광산 폭발 사고
1868년 12월 26일
26 퀸핏 광산 폭발 사고
1867년 1월 15일
40 리진트 공원 참사
1866년 12월 12일
361 오크스 폭발 사고
1866년 1월 11일
220 런던호 침몰 사고
1865년 3월 15일
20 벨 스트리트 홀 화재
1865년 1월 16일
20 던디 압사 사고
1864년 10월 6일 ~ 7일
53 뉴캐슬 대화재
1864년 3월 11일
244 데일 디크 저수지 붕괴 사고
1861년 8월 25일
23 클레이턴 터널 열차 충돌 사고
1853년 10월 20일
30 하트레이크 참사
1852년 2월 26일
444 ~ 450 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1850년 3월 30일
150+ 로얄 애들레이드호 침몰 사고
1849년 2월 19일
70 로얄 극장 참사
1848년 8월 18일
100+ 모레이 어선 참사
1846년 7월 9일
39 이스트 휠 로스 광산 참사
1845년 5월 2일
79 그레이트 야머스 대교 붕괴사고
1844년 9월 28일
95 해스웰 광산 폭발 사고
1838년 7월 4일
26 휴스카 광산 참사
1812년 5월 25일
92 펠링 광산 참사
1808년 9월 20일
23 로얄 오페라 하우스 화재
1807년 11월 19일
400+ 로치데일호 프린스 오브 웨일스호 충돌 사고
1807년 4월 18일
60 ~ 90 하위치 페리 참사
1807년 2월 23일
27 ~ 34 1807년 뉴게이트 참사
1806년 12월 25일
22 스톳필드 어선 참사
1806년 3월 16일
400+ 인빈시블호 침몰 사고
1800년 5월 17일
673 퀸 샬롯호 화재
1727년 9월 8일
80 번웰 인형극 극장 화재
1707년 10월 22일
1400+ 실리 영국 해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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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45년, 영국 해군은 실험을 통해 외륜보다 프로펠러를 사용한 추진 방식의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2] 버큰헤드의 주무장은 96파운드짜리 화포 2문으로 계획되었는데, 이 시기에 이르면 구시대의 화포로는 한창 발전하던 철갑함의 장갑을 더 이상 뚫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은 훗날 남북 전쟁에서 철갑함들이 거둔 성과로 명백해진다.[3] 말은 육상에서 무척 빠른 동물이지만 헤엄도 무척 잘 치는 편이다. 한국전쟁 때는 드넓은 한강을 짐과 주인 가족을 태우고 수차례에 걸쳐 도하한 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