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2 03:40:58

질링엄 버스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1. 개요

Gillingham Bus Disaster

1951년 12월 4일 영국 질링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2. 사고 당시

당시 왕립 해병대 소속 사관생도들이 권투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질링엄에서 채텀으로 도보로 이동중이었다. 인원은 모두 9~13세였고, 이들을 이끄는 성인은 영국 왕립 해병대 소속의 Lieutenant Clarence Murrayfield Carter 하사관이었다. 당시 인원들을 3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마지막 그룹은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신입들이었다. 그래서 아직 유니폼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이동 하면서, HM Dockyard로 가게 됐는데, 당시 그 거리에는 안개가 낀데다 가로등도 얼마 없는데다 고장나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사관생도들이 이동중임을 알리는 랜턴도 없었고, 당시 이들은 모두 어두운 색의 복장을 맞춰서 입고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도로 경계선에 가까이 서서 걸어가긴 했으나, 결국 이들을 보지 못한 Chatham & District 회사 소속의 2층버스가 시속 32km의 속도로 사관생도들을 밀어버렸다.

사고 버스의 운전자 존 샘슨(John William George Samson)은 당시 Chatham 버스 회사에서 약 40년을, 그중 25년을 버스 운전하면서 보냈는데, 당시 그 루트엔 익숙한지라 사이드라이트는 켜도 헤드라이트는 키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헤드라이트를 안 키는 건 불법은 아니었다. Samson은 사관생도들을 치고도 처음엔 버스가 좀 흔들리는걸로 그냥 도로에 돌맹이가 많다 정도로 생각했으나 이내 비명소리가 들리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버스는 사관생도들을 치고도 22m 가량을 움직인 뒤 멈췄다. 급히 구조대가 출동하고, 희생자들을 옮겼다. 운전자 존 샘슨은 자신이 아이들을 쳤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고, 시신을 다 옮기고 구조가 끝난뒤 충격에 쓰러졌다.

이 사고로 결국 24명이 사망,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17명은 현장에서, 7명은 병원으로 이송 된 뒤 사망했다. 디블스 다리 버스 추락 사고가 일어나기 전 까진, 당시 영국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교통사고였다.

3. 사고 이후

같은 달 12일, 사망자들을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 질링엄 공동묘지에서 열렸다.# 왕립 해병대가 장례식에 참여해 희생자가 담긴 관을 예우했다. 가톨릭 신자였건 3명의 아이들을 위한 장례식은 따로 열렸다.

법원은 운전자 Samson에게 유죄를 선고, 3년간 운전을 못하도록 했고, 벌금으로 20파운를 내게 했다. 샘슨은 사망할 때 까지 충격에 빠져있었고, 주변 사람들과 사고에 대해 얘기하길 꺼렸다.

사고 후 사고차량은 스크랩 처리됐다.

유가족들에겐 총 10,000파운가 지급됐다.

사고 이후 인근 지역에 가로등이 고쳐졌다. 또 군대에서 대규모로 도보로 이동할 땐 반드시 끝 그룹에서 랜턴을 들고 다니게 해 운전자가 보고 피할 수 있도록 지정됐다.

매년 사고가 일어난 날짜가 있는 주에, 일요일마다 추모식이 열린다.

2001년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명패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