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테티스 잠수함 침몰.jpg
1. 개요
1939년 6월 1일 영국 웰스 인근 바다에서 일어난 잠수함 침몰사고.2. 사고 당시
HMS 테티스호는 영국에서 2번째로 만들어진 T급 잠수함으로, 독일 제국의 유보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길이 84m, 높이 8m, 수면에서 최고 속도는 15.25노트, 수중에서는 9노트로 항해 가능했다. 1938년 6월 28일에 건조됐지만 여러 문제가 겹쳐 첫 항해는 미뤄졌다.1939년 6월 1일 첫 항해가 예정됐다. 리버풀만에서 출발해 아일랜드해에서 잠수할 예정이었다. 오후 1시 15분 경, 테티스호는 승조원 103명을 태운 채 잠수를 시도했다. 그런데 밸러스트 탱크도 물로 가득 채웠으나 어째서인지 테티스호는 잠수되지 않았다. 어뢰관 중 5번, 6번에 이상이 생겼다. 6번 어뢰관에 혹시나 물이 차올랐나 확인했으나 별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5번 어뢰관을 여는 순간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뢰실에 물이 차오르면서 무거워지자 테티스호는 잠수가 아닌 침몰하기 시작했다. 균형을 맞춰보려고 밸러스트 탱크의 물을 빼고 고압의 공기로 채워넣으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어뢰실에서 급히 대피해 문을 닫으려 했으나, 잠금장치가 끼이는 바람에 문을 제때 닫지 못했다. 그 사이 물은 더더욱 차올랐다. 간신히 문을 닫아 물이 더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나, 오후 3시 경 테티스호는 완전히 가라앉아 수심 36m 아래 바닥에 닿았다.
영국 해군선에선 원래 예정됐던 시간모다 2시간 넘게 있고도 테티스호가 떠오르질 않자 급히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당시 배에서 지상에 구조신호를 보내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전신기사에게 라디오로 무전을 보내면 기사가 신호를 문서로 작성하고, 그 문서를 따로 배송해서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전송하는 과정에서 문서를 전송하던 소년의 자전거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문서 배송이 더 늦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테티스 호를 보고있던 선박이 닻을 늦게 내리는 바람에 배가 해류를 타고 4.5km 가량 이동했으나 이를 눈치 못채는 바람에 테티스의 침몰 위치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다.
테티스호에는 DSEA라는 탈출장비가 있어 승조원들이 탈출 가능했다. 4명은 DSEA를 써서 간신히 빠져나갔고, 테티스호의 정확한 위치를 알렸다. 하지만 잠수함 내 산소는 모든 인원이 8시간 가량 버틸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다 앞서 탈출하던 사람의 실수로 탈출실에도 물이 차올라 탈출이 불가능해졌다.
구조를 위해 출동한 군함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파악한 뒤였다.
사고로 99명이 사망했다. 사망원인 다수는 이산화탄소로 인한 질식사였다.
잠수함을 다시 인양하는데 3달이 넘게 걸렸다. 그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3. 사고 이후
테티스호는 이후 수리되어 HMS 썬더볼트로 이름을 바꾸고 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하다 1943년 3월 14일, 지중해에서 침몰했다.
웨일즈 홀리헤드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설치됐다.#